반승제는 말없이 휴대폰을 꺼버렸다, 마치 임경헌의 문자를 본 적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성혜인은 자신의 그림이 반승제 본인에게 전달됐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최효원이 만든 야식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를 했다. 겨울이도 얌전히 누워서 귀를 쫑긋거렸다. 성혜인은 최근 했던 일들을 생각하다가 금세 단잠에 빠졌다.이튿날 아침, 성혜인은 아침밥을 먹자마자 바로 공사 현장으로 출발했다. 신이한 덕분인지 새로 뽑은 직원은 아주 빠릿빠릿했다. 성혜인이 디자인적인 지시를 내리면 금방 알아듣고 빠르게 공사를 해나갔다.공사가 문제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성혜인은 재료 리스트를 꺼냈다. 서천에서만 만드는 옥단 장판 빼고는 전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인맥으로 비교적 싼 값에 거래할 수 있기도 했다.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옥단 장판이었다. 이를 위해 조만간 직접 서천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았다.성혜인은 공사 현장에서 떠나기 전에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젯밤 집에 돌아가지 않았더니 수많은 전화가 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라도 자기 뜻을 밝혀야 했다. 안 그러면 집안에서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할 것이다.2차 융자가 끝난 다음에는 반승제에게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 원래 하던 대로만 해도 회사가 잘 운영될 것이기 때문이다.성혜인은 부재중 통화를 못 본 척하고 출발하려고 했다. 이때 한지은이 갑자기 다가와서 창문에 노크했다.한지은은 저번에 조희준과 바람을 피우다가 부인한테 잡힌 적이 있었다. 그의 부인도 만만한 사람이 아닌게, 한지은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려 그녀의 평판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요즘 양한겸에게도 찝쩍대지 못하고 있었다.‘또 시비 걸러 온 건가?’성혜인은 창문을 내리더니 덤덤한 말투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한지은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회의하는 날이잖아요. 근데 제 차가 고장나서... 어차피 가는 길인 것 같은데 회사까지 데려다줄 수 있죠?”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차가 고장 났으면 택시를
“아주머니, 괜찮으세요?”반희월의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운전석에 있던 기사는 아예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들의 상황은 성혜인 쪽보다 훨씬 심각했다.교통 정체가 시작되자 교통경찰이 금방 와서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반희월은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차에서 내려왔다가 성혜인을 발견하고는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닌 걱정부터 하기 시작했다.“페니 양, 괜찮아? 다치지는 않았어?”성혜인은 미안한 마음에 후다닥 달려가서 그녀를 부축했다.“저는 괜찮아요. 죄송해요, 아주머니. 저 일단 119부터 부를게요.”교통경찰은 차 안에 있는 기사를 부축해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다행히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병원은 가야 할 것 같았다.성혜인은 사고 차량 운전자로서 당연히 경찰의 의심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녀는 대신 설명하려는 반희월을 막아서며 말했다.“아주머니, 구급차가 금방 도착할 테니까 먼저 병원으로 가세요. 제가 후에 직접 찾아뵙고 사과드릴게요. 이곳 일은 저 혼자 해결할 수 있어요.”성혜인의 차분한 태도는 얼빠진 채로 차 안에 앉아있는 한지은과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한지은은 원래 차에 기스가 남는 정도의 사고로 성혜인에게 겁을 줄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복수에 자신의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급한 마음에 핸들을 잘못 꺾어 건너편 차도로 넘어가고 말았다. 피해 차량이 비싼 외제차인 것을 발견한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차에서 내려가지도 못했다.성혜인은 경찰에게 핸들을 뺏긴 과정을 전부 설명하고 차량 블랙박스가 증거가 되어줄 것이라고 보충했다. 피해 차량이 비교적 비싼 차종이었기 때문에 경찰은 더 상세하게 기록을 남겼고 성혜인과 한지은을 전부 경찰서로 데려갔다.성혜인은 요즘 용한 무당을 찾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경찰서와 병원을 지나치게 많이 드나들었다. 안 그래도 나락을 치는 기분이 정신을 놓고 나불대는 한지은 때문에 더 나락을 치고 있었다.“그러게 운전대를 똑바로 잡고 있어야죠. 이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
임경헌은 넋이 나갔다. 하지만 어머니가 차 사고 났다는 말에 후다닥 일어나 옷을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스피커 폰으로 해놓고 침대에 놓아둔 휴대폰에서는 기사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사모님 곁에는 제가 있으니, 여자친구분한테 가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분도 다치셨는데 지금 경찰서에 있답니다. 사모님께서 절대 자신한테 오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고 계십니다.”최효원은 원래 임경헌에게 가지 말라고 애교라도 부리려고 했는데 기사 입에서 나온 여자친구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녀는 아직 반희월과 만난 적 없으니, 기사가 말한 사람은 분명히 다른 사람이었다.임경헌은 최효원의 기분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그는 기사가 말하는 여자친구가 페니라는 것도 뒤늦게 떠올랐다. 그는 최효원에게 설명할 새도 없이 외투를 입고는 그녀의 입술에 짧게 뽀뽀하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난 잠깐 나갔다 올게.”최효원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원래도 성격이 예민했던 그녀는 밀물처럼 밀려오는 상상을 멈출 수가 있었고 도무지 혼자 있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경헌 씨, 저도 같이 갈래요.”“오늘은 안 돼. 대신 내가 다음에는 꼭 소개해 줄게.”임경헌의 단호한 거절에 최효원은 아무 말도 못 했다.텅 빈 방 안에서 최효원은 자신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졌다. 비록 카운터 직원인 그녀가 임경헌과 만나는 것을 안 좋게 보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임경헌을 사랑했다. 그래서 하루빨리 반희월을 만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던 때, 최효원은 갑자기 자신을 위로하던 성혜인이 떠올랐다. 그래서 바로 옷을 걸치고 성혜인의 집 앞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문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성혜인을 찾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지라 최효원은 대문 앞에 앉아서 기다리기 시작했다.약 두 시간 후, 성혜인은 드디어 경찰서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사고의 흔적을 씻어내고 나서 반희월에게 가볼 생각이었
반승제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 임경헌의 전화를 받았다. 임경헌은 자기 할 말만 한참 하다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보탰다.“그래도 형을 뮤즈로 여기는 사람이잖아요.”저녁이 되자 길가의 가로등이 전부 켜지고 성혜원의 그림과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는 반승제가 보기에도 훌륭한 그림이었다.반승제의 차는 결국 임경헌이 알려준 주소로 가서 멈춰 섰다. 그는 성혜인이 새로 이사한 동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반승제를 기다리게 할 수 없었던 성혜인은 10분 전부터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목욕을 너무 오래 해서인지 머리가 어지러워 반승제가 차를 세운 지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아차리고 휘청거리며 다가갔다.“대표님, 데리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성혜인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어디 아파?”반승제는 성혜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안색이 비정상적으로 발그레한 것이 누가 봐도 몸이 불편한 것 같았다.성혜인은 뒷좌석에 앉아 눈을 감으며 말했다. 몸이 후끈거리는 걸 봐서는 열이 나는 게 분명했다.“그냥 조금 불편한 정도예요. 이번 사고는 제 불찰이에요. 경찰한테 사실대로 말했으니 곧 결과가 나올 거예요.”성혜인은 원래 병원으로 가는 길에 과일이라도 사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반승제의 차를 얻어타게 되었으니, 그를 기다리게 하고 과일을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빈손으로 가고, 다음번에 다시 제대로 된 선물을 사기로 했다.차 안은 아주 조용했다. 가끔가다 자동차 경적만 들릴 뿐이었다. 한창 퇴근 시간이라 안 막히는 길이 없었고, 반승제의 차도 제자리에 멈춰선 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성혜인은 눈을 꼭 감았다. 그 사이로 열이 더 올랐는지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곁에 앉아 있던 반승제도 열기를 느끼고 머리를 돌렸다. 성혜인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페니?”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렸다.이때 반희월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페니가 그와 함께 있는지 묻기 위해 건 전화였다.“승제야, 경헌이한테서 들어보니
반승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성혜인과 엮이는 게 달갑지 않았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움직일 힘이 없었던 성혜인은 얌전히 벤치에 앉아있었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녀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반승제는 성혜인을 벤치에 내려놓고 자신의 차 앞으로 돌아왔다. 마침 그가 문을 열려고 할 때,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여기 있었구나?!”여자는 사나운 표정으로 성혜인을 밀쳤다. 안 그래도 몸을 지탱하기 어려웠던 그녀는 저항 없이 뒤로 밀려났고, 벤치 등받이에 등을 찍고는 얼굴을 찡그렸다.머리를 들자 임남호와 함께 있던 여자가 보였다. 붉은 머리카락과 짙은 메이크업은 여자의 원래 모습을 완전히 가려버렸다.“말해. 남호 씨 지금 어디 있어?”여자는 성혜인의 힘 빠진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씩 올리며 머리채를 잡으려고 했다. 성혜인은 당연히 피할 힘이 없었다.이때 힘 있는 손이 나타나서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 머리를 든 여자는 반승제의 얼굴을 보고 잠깐 놀라더니 금세 하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아이고, 스폰서님 오셨어요? 더러운 것들도 끼리끼리 논다더니 참... 퉷!”반승제의 안색은 무섭게 어두워졌다. 누군가에게 목덜미를 잡힌 듯한 오싹한 느낌에 여자는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욕설을 다시 삼켰다.“이 여자가 제 남자를 숨겨 놔서 따지러 왔거든요?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갈 길이나 가시죠.”이 말을 들은 성혜인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누가 네 남자라는 거야? 백수 유부남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쫓아다녀?”성혜인은 임남호가 좋다고 쫓아다니는 여자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임남호는 부모와 아내를 버리고 밖에서 질 떨어지는 여자나 만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혜인의 인지 범위를 벗어난 지 오래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에 도무지 좋은 말을 해줄 수 없었다.여자는 임남호가 유부남이라는 것을 알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
반승제는 성혜인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그녀를 부축하며 걸어갔다. 반승제를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았던 성혜인은 그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었다.엘리베이터에 들어간 성혜인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댔다. 반승제는 혹시 몰라 그녀의 팔을 잡고 있을 뿐,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열리고 성혜인은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뒤지며 열쇠를 찾아냈다. 하지만 눈앞의 세상이 흔들리는 탓에 도무지 열쇠 구멍에 꽂아넣지를 못했다.반승제는 어쩔 수 없이 열쇠를 받아 들고 대신 꽂아 줬다. 문이 열리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성혜인의 집 안을 보게 되었다. 깔끔한 현관에는 여자 신발 몇 개만 놓여 있을 뿐, 남자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반승제는 의아한 표정으로 성혜인을 바라봤다.집안에서는 강아지의 소리가 들려왔다. 진작부터 열쇠 소리를 들은 겨울이는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왔다. 반승제를 발견한 그는 더 신이 나서 재롱을 부렸다. 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겨울이와는 초면이 아니었으니 말이다.“대표님... 죄송하지만 저를 소파로 데려다줄 수 있을까요?”정신없었던 성혜인은 겨울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애절한 눈빛으로 반승제를 쳐다봤다. 일부러 그의 곁으로 와서 배를 까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 재롱을 부리는 모습에 반승제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렸다.소파 앞으로 온 성혜인은 그대로 꼬꾸라져 버렸다. 나른한 재질의 소파에 부딪혀도 다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반승제는 붙잡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말없이 성혜인의 집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취향에 따라 인테리어 된 집안에는 남자의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남편이랑 따로 사는 건가? 아니면 이사를 마저 안했다던가... 그래도 현관에 신발 하나 없는 건 이상한데.’“멍멍멍!”겨울이가 반승제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주의를 끌었다. 그러고는 자기 얼굴을 그의 다리에 비비적댔다.반승제는 정장
BH그룹의 직원인 최효원은 당연히 반승제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집안과 반승제를 번갈아 쳐다봤다.‘페니 씨는 결혼했다고 했는데? 그 상대가 대표님일 리는 없잖아. 경헌 씨가 형수가 아닌 친구라고 소개했으니까. 근데 대표님이 왜 페니 씨 집에서 나오는 거지? 그것도 이 시간에...?’반승제가 얼마나 매정한 사람인지는 BH그룹의 직원이 아니라고 해도 다들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절대 사적으로 여자를 만나고 다닐 사람이 아니었다. 성혜인과 디자인적인 얘기를 해야 한다고 해도 집이 아닌 회사에서 만나야 했다.이때 최효원은 갑자기 성혜인이 그렸던 그림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평범한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어쩐지 젊은 나이에 대표님한테 선택받았다 했더니, 역시 페니 씨도 다를 것 없네.’최효원은 더러운 수단을 사용하는 여자라면 딱 질색이었다. 하지만 반승제 앞에서 티를 내지는 못하고 그저 빨리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반승제는 최효원이 초인종을 누르려는 것을 보고 성혜인과 아닌 사이일 것으로 생각했다.“페니가 열이 나고 있는데 집에 사람이 없어서요. 만약 시간 있으면 좀 챙겨줘요.”반승제는 덤덤한 말투로 말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최효원은 뒤에서 약간 주저하다가 말했다.“대표님, 저는 임경헌 씨 여자친구예요. 경헌 씨 말로는 페니 씨가 이미 결혼했다고 하던데, 남편이 돌아와서 챙겨주지 않겠어요? 근데 남편분이 엄청 바쁜 모양이에요.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걸 보면...”최효원은 카운터 직원인 자신이 임경헌과 만나게 된 것을 이미 대단한 복으로 여겼다. 하지만 유부녀인 성혜인이 반승제와 만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약간 이상했다. 이건 아마도 질투심일 것이다.반승제에게 시집가고 싶어 하는 여자는 제원에 널리고 널렸다. 그 많은 여자 중에 하필이면 유부녀인 성혜인이 선택받았다는 게 최효원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반승제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곳에서 그를 만났다는 자체만으로도 행운이
하지만 반희월은 임경헌이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임경헌은 어떻게 해야 최효원이 내일 몸을 피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가정이 부유하지 않았던 최효원은 임경헌과 사귀면서 늘 조심스러웠고 멘털도 약한 데다 예민한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말을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걱정됐다.임경헌은 한참 고민했지만 도저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빠르게 찾아왔다.성혜인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열은 다 내렸지만 목이 여전히 불편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따뜻하게 데우며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미간이 좁아졌다. 올해는 운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았다.곧이어 어제 반희월을 보러 갈 여유가 되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오늘은 꼭 가야지.’막 컵을 집어 들었을 때,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최효원이었다.최효원은 속이 편해지는 아침밥을 챙겨왔다. 성혜인의 안색이 많이 좋아진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어제 열이 많이 났잖아요. 아침에 죽 좀 끓였어요. 드세요.”최효원은 말을 이어가면서 집안 곳곳을 빠르게 훑었다.어젯밤 반승제가 페니의 남편이 일찍 나갔다 늦게 돌아온다는 정보를 알려줬었다. 하지만 남편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페니 씨, 남편은 아주 바쁜가요? 어제 그렇게 열이 났는데 돌봐주지도 않고요.”성혜인은 남편에 관련된 일을 빨리 해결해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이 사람들에게 남편이라고 소개할 남자라도 찾아야 한다. 이런 질문을 계속되면 들통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테니까.강민지는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인맥도 넓으니 믿을 만한 사람이 주변에 꽤 있을 것이다.“자주 출장 가야 하는 일이라서요.”최효원은 더 묻지 않고 죽을 권했다.성혜인은 감사 인사를 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그때, 최효원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표정이 한층 밝아지는 것만 봐도 전화를 건 주인공이 임경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경헌은 최효원에게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며 문을 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