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성혜인과 엮이는 게 달갑지 않았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움직일 힘이 없었던 성혜인은 얌전히 벤치에 앉아있었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녀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반승제는 성혜인을 벤치에 내려놓고 자신의 차 앞으로 돌아왔다. 마침 그가 문을 열려고 할 때,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여기 있었구나?!”여자는 사나운 표정으로 성혜인을 밀쳤다. 안 그래도 몸을 지탱하기 어려웠던 그녀는 저항 없이 뒤로 밀려났고, 벤치 등받이에 등을 찍고는 얼굴을 찡그렸다.머리를 들자 임남호와 함께 있던 여자가 보였다. 붉은 머리카락과 짙은 메이크업은 여자의 원래 모습을 완전히 가려버렸다.“말해. 남호 씨 지금 어디 있어?”여자는 성혜인의 힘 빠진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씩 올리며 머리채를 잡으려고 했다. 성혜인은 당연히 피할 힘이 없었다.이때 힘 있는 손이 나타나서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 머리를 든 여자는 반승제의 얼굴을 보고 잠깐 놀라더니 금세 하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아이고, 스폰서님 오셨어요? 더러운 것들도 끼리끼리 논다더니 참... 퉷!”반승제의 안색은 무섭게 어두워졌다. 누군가에게 목덜미를 잡힌 듯한 오싹한 느낌에 여자는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욕설을 다시 삼켰다.“이 여자가 제 남자를 숨겨 놔서 따지러 왔거든요?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갈 길이나 가시죠.”이 말을 들은 성혜인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누가 네 남자라는 거야? 백수 유부남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쫓아다녀?”성혜인은 임남호가 좋다고 쫓아다니는 여자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임남호는 부모와 아내를 버리고 밖에서 질 떨어지는 여자나 만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혜인의 인지 범위를 벗어난 지 오래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에 도무지 좋은 말을 해줄 수 없었다.여자는 임남호가 유부남이라는 것을 알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
반승제는 성혜인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그녀를 부축하며 걸어갔다. 반승제를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았던 성혜인은 그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었다.엘리베이터에 들어간 성혜인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댔다. 반승제는 혹시 몰라 그녀의 팔을 잡고 있을 뿐,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열리고 성혜인은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뒤지며 열쇠를 찾아냈다. 하지만 눈앞의 세상이 흔들리는 탓에 도무지 열쇠 구멍에 꽂아넣지를 못했다.반승제는 어쩔 수 없이 열쇠를 받아 들고 대신 꽂아 줬다. 문이 열리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성혜인의 집 안을 보게 되었다. 깔끔한 현관에는 여자 신발 몇 개만 놓여 있을 뿐, 남자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반승제는 의아한 표정으로 성혜인을 바라봤다.집안에서는 강아지의 소리가 들려왔다. 진작부터 열쇠 소리를 들은 겨울이는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왔다. 반승제를 발견한 그는 더 신이 나서 재롱을 부렸다. 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겨울이와는 초면이 아니었으니 말이다.“대표님... 죄송하지만 저를 소파로 데려다줄 수 있을까요?”정신없었던 성혜인은 겨울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애절한 눈빛으로 반승제를 쳐다봤다. 일부러 그의 곁으로 와서 배를 까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 재롱을 부리는 모습에 반승제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렸다.소파 앞으로 온 성혜인은 그대로 꼬꾸라져 버렸다. 나른한 재질의 소파에 부딪혀도 다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반승제는 붙잡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말없이 성혜인의 집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취향에 따라 인테리어 된 집안에는 남자의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남편이랑 따로 사는 건가? 아니면 이사를 마저 안했다던가... 그래도 현관에 신발 하나 없는 건 이상한데.’“멍멍멍!”겨울이가 반승제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주의를 끌었다. 그러고는 자기 얼굴을 그의 다리에 비비적댔다.반승제는 정장
BH그룹의 직원인 최효원은 당연히 반승제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집안과 반승제를 번갈아 쳐다봤다.‘페니 씨는 결혼했다고 했는데? 그 상대가 대표님일 리는 없잖아. 경헌 씨가 형수가 아닌 친구라고 소개했으니까. 근데 대표님이 왜 페니 씨 집에서 나오는 거지? 그것도 이 시간에...?’반승제가 얼마나 매정한 사람인지는 BH그룹의 직원이 아니라고 해도 다들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절대 사적으로 여자를 만나고 다닐 사람이 아니었다. 성혜인과 디자인적인 얘기를 해야 한다고 해도 집이 아닌 회사에서 만나야 했다.이때 최효원은 갑자기 성혜인이 그렸던 그림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평범한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어쩐지 젊은 나이에 대표님한테 선택받았다 했더니, 역시 페니 씨도 다를 것 없네.’최효원은 더러운 수단을 사용하는 여자라면 딱 질색이었다. 하지만 반승제 앞에서 티를 내지는 못하고 그저 빨리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반승제는 최효원이 초인종을 누르려는 것을 보고 성혜인과 아닌 사이일 것으로 생각했다.“페니가 열이 나고 있는데 집에 사람이 없어서요. 만약 시간 있으면 좀 챙겨줘요.”반승제는 덤덤한 말투로 말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최효원은 뒤에서 약간 주저하다가 말했다.“대표님, 저는 임경헌 씨 여자친구예요. 경헌 씨 말로는 페니 씨가 이미 결혼했다고 하던데, 남편이 돌아와서 챙겨주지 않겠어요? 근데 남편분이 엄청 바쁜 모양이에요.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걸 보면...”최효원은 카운터 직원인 자신이 임경헌과 만나게 된 것을 이미 대단한 복으로 여겼다. 하지만 유부녀인 성혜인이 반승제와 만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약간 이상했다. 이건 아마도 질투심일 것이다.반승제에게 시집가고 싶어 하는 여자는 제원에 널리고 널렸다. 그 많은 여자 중에 하필이면 유부녀인 성혜인이 선택받았다는 게 최효원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반승제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곳에서 그를 만났다는 자체만으로도 행운이
하지만 반희월은 임경헌이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임경헌은 어떻게 해야 최효원이 내일 몸을 피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가정이 부유하지 않았던 최효원은 임경헌과 사귀면서 늘 조심스러웠고 멘털도 약한 데다 예민한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말을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걱정됐다.임경헌은 한참 고민했지만 도저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빠르게 찾아왔다.성혜인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열은 다 내렸지만 목이 여전히 불편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따뜻하게 데우며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미간이 좁아졌다. 올해는 운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았다.곧이어 어제 반희월을 보러 갈 여유가 되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오늘은 꼭 가야지.’막 컵을 집어 들었을 때,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최효원이었다.최효원은 속이 편해지는 아침밥을 챙겨왔다. 성혜인의 안색이 많이 좋아진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어제 열이 많이 났잖아요. 아침에 죽 좀 끓였어요. 드세요.”최효원은 말을 이어가면서 집안 곳곳을 빠르게 훑었다.어젯밤 반승제가 페니의 남편이 일찍 나갔다 늦게 돌아온다는 정보를 알려줬었다. 하지만 남편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페니 씨, 남편은 아주 바쁜가요? 어제 그렇게 열이 났는데 돌봐주지도 않고요.”성혜인은 남편에 관련된 일을 빨리 해결해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이 사람들에게 남편이라고 소개할 남자라도 찾아야 한다. 이런 질문을 계속되면 들통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테니까.강민지는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인맥도 넓으니 믿을 만한 사람이 주변에 꽤 있을 것이다.“자주 출장 가야 하는 일이라서요.”최효원은 더 묻지 않고 죽을 권했다.성혜인은 감사 인사를 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그때, 최효원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표정이 한층 밝아지는 것만 봐도 전화를 건 주인공이 임경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경헌은 최효원에게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며 문을 열라고 했다.
성혜인은 심장이 바닥에 떨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거두려 했다.하지만 반희월은 그녀의 손을 놓아주지 않고 의심의 눈초리로 최효원을 쳐다봤다.최효원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임경헌과 성혜인을 번갈아 가며 훑었다. 그러다 맞잡은 손에 시선이 멈췄다.그녀는 반희월을 알고 있었다. 어젯밤에도 반희월을 찾아가기 위해 자신의 월급으로 선물까지 준비했었다. 임경헌의 전화 때문에 무산되었지만 말이다.자신의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임경헌과 어울리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임경헌은 최효원에게 잘해주었고, 최효원도 그를 많이 좋아했다.그런데 임경헌의 어머니가 임경헌과 성혜인의 손을 잡고 있다니.이게 무슨 상황인가?‘페니는 이미 결혼했잖아.’반승제와도 미묘한 기류가 있는 성혜인이, 임경헌과도 사귀고 있다고?꼬일 대로 꼬인 관계에 최효원은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이런 여자를 친구라고 생각하다니, 처음부터 날 속인 거였어!’성혜인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반희월도 여자로서 여자에게 까탈스럽게 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말이. 성혜인이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그런 말을 뱉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최효원은 수치심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면서 눈물을 떨궜다.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성혜인의 진짜 모습을 다 폭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최효원은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임경헌의 뺨을 때렸다.“나쁜 새끼!”그녀는 입술을 꽉 물며 소리쳤다. 곧이어 성혜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올렸다.성혜인은 그녀의 손을 막아내면서 반희월에게 붙잡혀 있던 손도 풀었다.최효원은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어떻게 욕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성혜인은 최효원의 심정이 이해됐다. 그렇지만 자신도 어쩌다 보니 이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이니 누군가에게 맞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그녀는 임경헌을 쳐다봤다. 최효원은 그의 여자친구다. 당연히 임경헌이 나서서 설명을 해야할 때였다.하지만 임경헌이 나서기도 전에 반희월이 차분한 목소리로
서러워진 최효원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어머님, 정말이에요. 페니와 반 대표님이...”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반희월이 말허리를 잘랐다.“그건 승제가 알아서 할 일이니 나에게 말해도 소용없다. 난 그저 집안 어른일 뿐, 사생활에 끼어들 생각 없어.”반희월의 목소리에서 냉기가 느껴졌다. 최효원에게 말을 하면서도 시선은 성혜인을 향했다.믿기지 않았다. 반승제를 길들일 능력이 있다니.반승제는 집에 있는 부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밖으로 나돌 애가 아니었다.하지만 병원에서 두 번이나 우연히 마주친 데다, 힘든 데도 꾹 참고 버티는 성혜인의 모습에 자신도 흔들렸었다.‘승제가 그런 술수에 넘어갈 리가 없지.’이 사회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살았는데, 반희월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알아서 하렴.”반희월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반희월이 떠나고 난 뒤, 방 안에는 적막만이 맴돌았다.한참이 지나 성혜인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사장님, 여자친구분 데리고 가세요.”최효원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임경헌은 그녀를 달랬다.“자기야, 집에 데려다줄게. 가서 전부 설명할게.”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최효원은 성혜인을 대놓고 노려봤다.“페니 씨, 이런 사람인 줄 몰랐네요. 친구라 생각해서 어젯밤 열심히 간호도 했는데... 두고 봐요!”임경헌은 계속 최효원을 달래며 끌고 나가려 했다. 최효원은 그제야 잠시 마음을 내려놓았다.성혜인은 현관문을 닫고 나서도 머리가 계속 지끈거렸다.이 건물에는 층마다 가구 수가 두 개뿐이다. 그렇다는 건 같은 층에 성혜인과 최효원, 둘만 산다는 것이다. 최효원과 틀어져 버린 것으로 모자라 임남호와 얽혀 있는 여자도 이 동네에 살고 있었다. 성혜인은 너무나도 괴로웠다.오랫동안 찾고 찾아 전 재산을 털어 구한 집인데, 결국 남은 건 이런 문제뿐이었다.포레스트 펜션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반승제만 피하면 되니까.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안 좋게 얽히면서 진
그 짧은 찰나, 성혜인은 차라리 반승제에게 솔직히 털어놓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체를 밝히고 나면 이렇게 숨을 필요도 없고 임경헌에게 거짓말할 필요도 없으니까.하지만 반승제가 성씨 집안을 대하는 태도가 문득 떠올랐다. 게다가 디자이너로 협력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난감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게다가 반승제도 성혜인을 많이 돕지 않았는가.성혜인은 일을 벌일 자신이 없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력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온몸이 무거웠다.마음도, 몸도 다 피곤했다.“아주머니, 몸이 좀 안 좋아서 밥은 건너뛰어야 할 것 같아요. 부르지 않으셔도 돼요.”유경아는 난감했다.“저... 사모님. 지난번에도 그 핑계를 댔었는데 대표님이 화를 내셨어요.”성혜인은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괜찮아요. 어차피 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사이인데요, 뭘.”정확히 말하면, 성혜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반승제 ‘부인’과의 관계 말이다.성혜인이 반승제 부인의 신분으로 그에게 다가간다면 분명 싫어할 것이다.반승제는 부인이 자신의 삶에서 멀어지길 바라고 있다. 16억을 빌리던 그날도 반승제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이체를 해주었다. 스스로의 신분이 무엇인지 똑똑히 기억하라는 눈치와 함께.성혜인이 처음부터 반승제 부인의 신분으로 그를 만났다면, 반승제는 절대 그녀와 만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유경아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결국 입을 꾹 닫을 수밖에 없었다.저녁 무렵. 반승제는 별장으로 들어오면서 정장을 스탠드에 걸었다.방안에 향긋한 밥 냄새가 가득했다. 막 회의를 마치고 온 터라 피로감이 느껴졌다.유경아는 꾸물거리지 않고 급히 마중을 나왔다.“오셨어요?”반승제는 요즘 자신이 오고 싶을 때마다 포레스트에 오고 있다.할아버지도 검사하겠다고 갑자기 포레스트를 찾아오고는 했다. 그때마다 며칠 밤 이곳에 머물며 할아버지를 챙겼다.“저녁 준비해 뒀어요. 식사하세요.”유경아는 도우미들에게 음식을 내오라고 지시했다. 반승제는 자리에
성혜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때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한 사람이 아니었다.곧이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개 키우는 사람이 있어요?”반승제다.성혜인은 급히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다시 닫았다.유경아가 아니라고 말하려던 그때, 그녀의 귀에도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반승제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다른 데로 보내요.”유경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반승제가 방 안으로 들어가고 난 후, 그녀는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다.때마침 성혜인은 복도로 나와 유경아를 붙잡았다.“아주머니, 겨울이를 풀어뒀어요?”유경아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를 싸맸다.“제가 문을 안 잠갔나 봐요. 겨울이는 워낙 똑똑해서 제가 문을 안 잠그면 스스로 열고 나오더라고요.”유경아는 다급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사모님, 걱정 마세요. 제가 얼른 안에 넣어둘게요.”성혜인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는 굳게 닫힌 반승제의 방문을 바라보며 말했다.“어서요. 대표님이 알면 안 돼요.”유경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원으로 향했다.겨울이는 며칠 동안 성혜인이 새로 구입한 집에서 머물렀다. 작지 않은 집이었지만 그래도 이 드넓은 정원만큼 편할 수 없었다.그렇다 보니 포레스트 펜션으로 돌아오자마자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와 정원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던 것이다.유경아는 혹여 들킬세라 혼내지도 못하고 빠른 보폭으로 겨울이에게 다가가 옆으로 끌어당겼다.같은 시각. 반승제는 큰 창문 앞에 섰다. 강아지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개 짖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도우미가 강아지를 키우는 듯했다.그는 별 신경 쓰지 않고 뒤로 돌아 진행하던 회의를 이어갔다.몸을 돌리던 바로 그때, 유경아에게 끌려가는 겨울이가 창문 밖을 지나쳐 갔다.“대표님, 서천 쪽에서 계획안이 나왔습니다. 이전에 있던 몇몇 임원들이 새로운 복지를 제시하였습니다. 저희는 그곳을 관광지로 만들 생각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기획부에서 기존 프로젝트에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