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우현은 이곳에서 한참을 찾아봤지만, 설기웅과 다른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8번 실험체가 아직 살아있어요. 그가 미쳐서 다른 사람들을 쫓아가 많이 죽였어요.”설우현은 8번 실험체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8번 실험체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총을 들고 그 방향으로 추격해 나섰다.이곳의 숲은 무성했다. 지진의 영향으로 인해 많이 망가져 있었지만 헬리콥터의 시야는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하늘에는 수많은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있었고 지상에서도 사람들이 하나하나 수색하고 있었다....최용호와 설기웅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8번 실험체가 계속 그들을 추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들도 반승제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최용호는 설기웅을 부축하며 계속 달렸고 설기웅을 따라 나온 소녀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는데 모두 8번 실험체가 공격한 것이었다.8번 실험체는 기지 내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였다. 이 소녀가 두 번째로 강하다고 해도 그와의 격차는 컸다.설기웅은 이때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들은 방금 지진이 일어났을 때 기지 내에서 고공으로 던져져서 각기 다른 정도의 뇌진탕을 겪었다. 만약 8번 실험체가 그들을 맹렬히 추격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설기웅은 기지에서 이미 많은 약물을 주입받았는데 지진과 8번 실험체의 추격으로 인해 온몸에 힘이 빠졌다.최용호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복부에 있는 커다란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젠장! 정말 괴물 같은 놈이네. 지치지도 않나?”8번 실험체는 그들과 100미터 떨어져 있는데 사지로 달리고 있었다. 마치 원시 야수처럼 보였다.그도 머리를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그러나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8번 실험체의 눈빛은 핏빛이었고 머릿속은 이 사람들을 죽여야만 기지에서 벗어나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최용호은 곁에 있는 사라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혼
설우현은 가슴 속에서 피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고 입안 가득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다행히도 총은 아직 그의 손에 있었다.설우현은 총을 나나에게 던지며 외쳤다.“받아요!”나나는 8번 실험체와 이미 백 번 넘게 공격을 주고받은 상태였다. 그녀는 재빨리 총을 잡고 8번 실험체의 복부를 향해 한 발 쐈다.8번 실험체는 움직이려 하다가 시선이 나나의 손목에 멈췄다. 손목에 감겨 있는 붉은 실에 비취 구슬이 꿰어져 있었다.원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8번 실험체는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다가 순간 몸을 버티고 있던 힘이 모두 빠져나가며 8번 실험체는 쓰러졌다.나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성혜인이 무사한지 확인하러 가려 했다가 8번 실험체의 목에 걸린 비취 구슬을 보고 자리에 얼어붙었다.손에 들고 있던 총이 바닥에 떨어졌고 나나는 무릎을 꿇고 그의 옷깃을 열어젖혔다.8번 실험체의 목에 비취 구슬이 걸려 있었고 나나는 떨리는 손으로 구슬에 새겨진 글자를 확인했다.“아!”“아아!”나나는 8번 실험체를 꼭 껴안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8번 실험체는 이미 기절한 상태였고 이마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설우현은 나나의 절규에 깜짝 놀라 피를 또 한 번 뱉었다.“무슨 일이에요?”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황을 대충 이해할 것 같았다. 8번 실험체가 아마도 나나가 찾던 동생인 것 같았다. 조금 전 나나가 그를 향해 총을 쐈지만 총알이 심장을 맞추지 않았기에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나는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곧 헬리콥터가 와서 부상자들을 빠르게 이송하기 시작했다.성혜인은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사라를 바라봤다. 성혜인은 사라를 처음 보지만 이 순간 사라의 눈빛은 복잡했고 기쁨과 고통, 그리고 갈등이 섞여 있었다.한쪽에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는 최용호는 그제야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그는 마지막 기운을 다해 설우현에게 말했다.“이 사람은 연구 기지에서 가장 뛰어난 박사야
일주일이 더 지났지만, 여전히 반승제를 찾지 못했다.성혜인은 임신한 데다가 이곳은 질병이 창궐하는 지역이기에 모두의 권유로 플로리아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신 상태는 좋지 않았다.사람들은 반승제를 찾기 위해 이곳에 남았고 매일 새로운 시신이 발굴될 때마다 보고했다.성혜인이 설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발걸음이 휘청거렸다.사라는 도착하자마자 설의종의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 불려 갔다.설의종을 처음 본 순간, 사라는 잠시 멈칫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사라는 방 안의 배치를 한 번 더 살펴보았다. 그러자 오래전의 기억들이 천천히 떠올랐다.옆에 서 있던 설우현은 초조해서 계속 서성거렸다.“박사님, 저희 아버지를 구할 수 있는 해독제를 만들 수 있나요?”“가능합니다.”사라는 차분하게 몇 가지 약을 나열했다.“이것들을 준비해 주시면 3일 안에 해독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정말 잘됐네요!”설우현은 눈을 반짝이며 바로 사람들을 시켜 준비하게 했다.사라는 여기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해독제를 연구해 내자마자 설의종에게 먹였다.하지만 해독제를 먹인 그날 오후, 구금섬에서 나하늘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사망 원인은 알 수 없었다.설우현은 충격을 받고 곧바로 그쪽 상황을 물었다.“도련님, 저희도 이유를 모릅니다. 아무도 나하늘 씨와 접촉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어제와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쓰러졌더라고요.”머릿속이 복잡해진 설우현은 바로 구금섬으로 가려고 했다. 소식을 들은 성혜인도 반드시 따라가겠다고 했다.설우현은 그녀가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걱정스러웠다. 성혜인은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계속 나하늘을 신경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나하늘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면 성혜인은 여기까지 다다를 수 없었을 것이다.결국 성혜인은 함께 가기로 했고, 사라도 동행했다.사라는 설씨 가문에 온 이후로 계속 침묵을 지켰고 연구할 때 외에는 다른 사람들과 전혀 교류하지 않았다.성혜인은 가끔 사라의 복잡한 감정이 담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사라는 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대화에서 이 지하실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미 알고 있었다. 작업팀은 한 달 동안 이곳의 잠금장치를 해제하려고 애썼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사라의 입가에 냉소가 흘렀다. 여석진이 이 감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하늘은 만성 독이 발작하기 직전까지 이곳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일까. 이 협소한 공간에서 몸부림치며 여석진이라는 인물을 견뎌야 했다.사라는 자신과 나하늘 중 누가 더 비극적인지 판단할 수 없었고, 두 사람 중 누가 진짜 나하늘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연구 기지에서의 인체 실험은 도덕과 인륜에 완전히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녀처럼 강제로 실험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성혜인이 나하늘의 손을 잡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사라는 그 눈물에 가슴이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사라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고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조차도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성혜인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밖의 하늘은 푸르렀다. 폭탄에 의해 성벽이 무너져 내린 이후, 여기 서서 멀리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뒤쪽에서는 작업팀이 이 장소를 영원히 땅속에 가라앉게 하려고 폭파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불길이 번지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성혜인은 그 장면이 갑자기 틈으로 변하더니 곧 시야가 어둠에 휩싸였다.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설씨 가문 본가였다. 성혜인은 익숙한 천장을 바라보며 손을 움켜잡았고 여전히 통화 중이던 설우현의 소리가 들려왔다.“모든 곳을 다 찾았다는데 어떻게 못 찾을 수가 있어요?”“8.1급 대지진이란 건 나도 알고 있어요. 당신 말은 반승제가 땅의 균열에 휘말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살았든 죽었든 시체를
제원.모니터를 보고 있는 장하리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한서진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요즘 행사가 많아서 힘드시죠?”장하리는 손을 들어 이마를 문지르며 옅게 웃었다. “괜찮아요. 며칠 동안 다들 고생 많았어요.”장하리는 최근에야 회복하여 어제 회사에 복귀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은 한서진이 회사 일을 대신 처리하고 있었다.“하리 씨, 오늘 가는 곳에서 서주혁을 만날 수도 있어요. 이번 시상식은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예요. 서씨 가문도 그중 하나고요. 게다가 후원자이기도 해요.”이번 연예인 시상식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행사로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사실상 마네킹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입은 모든 것, 심지어 가슴에 꽂은 브로치까지도 전부 협찬이었다.서씨 가문은 이번에 새로 개발한 자동차를 선보였다. 다음 달에 브랜드 전시 매장에서 전시할 예정이며 이번 시상식에서 연예인들은 레드카펫을 걸을 때 이 차를 지나쳐야 한다. 서씨 가문이 이번 시상식의 유일한 협찬사로 모든 자금을 지원했다.올해 S.M 소속 연예인들은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수상 후보에 올랐다. 장하리는 책임자로서 반드시 함께 가봐야 했다.서씨 가문의 자동차 브랜드는 송아현과 유해은 같은 슈퍼스타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이들이 자동차를 지나칠 때와 포즈를 취할 때 모두 구체적인 요구 사항이 있었다.오늘 밤 장하리는 브랜드 측과 저녁 식사를 약속했다. 그 자리에서 레드카펫 협찬에 대해 자세히 논의할 예정이다.물론 이런 자리에는 서주혁 같은 대표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서씨 가문 산하에는 많은 회사가 있고 자동차는 그들의 주력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이다.서씨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과학 연구 전자 기기이고 가장 은밀한 것은 무기 제조 관련 인재들이며 이들은 최상층과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다. 그 아래로 각종 전자 제품, 자동차, 휴대폰 등이 있다.올해는 국내 유일한 칩을 개발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해
옆에 있던 송아현이 홧김에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장하리가 저지했다.장하리는 웃는 얼굴로 진도준을 바라보았다.“진 대표님 성격이 시원하네요. 그럼 이렇게 하는 걸로 하고 제가 법무부에 계약서 준비하라고 할게요.”“네, 뭐. 하리 씨가 마실 수만 있다면 바로 서명하죠.”장하리가 잔에 느릿느릿 술을 따를 때, 송아현이 손으로 막고는 귓가에 속삭였다.“언니, 아무래도 좋은 의도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 그냥 가요.”모델은 안 하면 그만이다.장하리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송아현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호받는 온실 속의 화초인연예인이다. 특히 S.M과 계약한 이후에는 난감한 일도 겪은 적이 없다.역시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거다. 하지만 이것도 좋다.“괜찮으니까 아현 씨는 마시지 마세요. 제가 마실게요.”“어떻게 그래요?”송아현이 장하리의 술잔을 낚아채더니 통째로 들이켰다.주량이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술 알코올 농도가 매우 짙으므로 마시면 오장육부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또 한 잔을 비운 송아현은 1분도 안 되어 정신을 잃었다.장하리는 어쩔 수 없이 양미간을 꾹꾹 누르며 자신에게 석 잔을 따랐다.단숨에 마시고 일어나 쓰러진 송아현을 일으켜 부축했다.“대표님, 술 다 마셨으니 내일 제가 법무부 직원들더러 대표님과 모델에 관해 미팅하도록 얘기 해둘게요.”이에 진도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따라 일어섰다.“하리 씨도 성격이 호탕하네요. 그런데 모두 많이 취한 것 같으니 오늘 밤은 옆 건물 호텔에서 쉬고 가시죠.”장하리는 의식은 깨어있었으나 하늘 땅이 빙빙 도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꼈다.송아현은 톱스타였으므로 밖에서 취한 모습이 노출되어서는 안 되었다.“괜찮습니다. 밖에 기사님이 기다리고 계세요.”“하리 씨...”술까지 먹였는데 이대로 보내줄 리가 있겠는가.그가 덥석 장하리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아현 씨는 사람을 시켜서 데려다주라고 할게요. 대신 하리 씨는 오늘 밤 갈 수 없어요.”장하리는 깜짝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진도준이
서주혁은 차가운 얼굴로 그를 상대하지 않은 채 밖으로 향했다.겁에 질려 있던 진도준은 곧장 밖으로 나가는 서주혁을 보고 화색이 되었다.보아하니 그가 들은 소문이 사실인 듯했다. 서주혁은 장하리 같이 몸으로 꾀려 드는 여인은 싫어한다.그러면서 제 앞에서는 순진한 척을 다 하니, 이게 제 지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참 나.서주혁이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다가 멈춰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 화장실에서 장하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비켜요! 문은 왜 잠그는데요? 손대지 마세요!”“순진한 척하기는! 원하는 만큼 돈 준다니까?”화장실 문은 잠겨져 있고 소리는 점차 사라져갔다.순간 이성의 끈을 놓은 서주혁이 갓 불을 붙인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리곤 홱 돌아섰다.장하리는 세면대 앞까지 밀려나 외투마저 벗겨진 상태였다.세게 몸부림치는 바람에 이마의 땀이 계속 흘러내렸다.장하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소할 거야. 반드시.”“이제 기분 좋아지면 고소할 생각 접게 될 거야. 아가.”진도준은 마침 이상형의 얼굴을 한 장하리가 마음에 들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그가 막 장하리의 바지를 벗기려 할 때, 뒤에 있던 문이 날아와 등에 세게 부딪쳤다. 순간적으로 날아온 압력에 숨이 턱 막혔다.가죽띠가 풀린 채로, 정장 바지가 반쯤 벗겨진 그는 입구에 서 있는 서주혁을 보고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다.“서... 서 대표님.”아까 분명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셨는데? 왜 다시 돌아왔지?두 손으로 세면대를 받치고 힘겹게 선 장하리는 저도 모르게 다리가 자꾸 나른해졌다.동공은 초점 없이 흐릿했고 그저 진도준이 서 대표를 부르는 소리만이 귓가에 윙윙 들릴 뿐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느 서 대표란 말인가?장하리는 뇌가 굳은 듯 아무것도 제대로 생각할 수 없었다.얼굴이 빨개진 채 세면대 앞에 서서 기댈 힘조차 없는 장하리의 모습에 서주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망설임 없이 진도준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진도준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
휴대폰 화면을 드래그하던 서주혁의 손가락이 잠시 멈추고, 그의 머릿속에는 아리를 주웠을 때의 광경이 떠 올랐다.그 강아지도 이렇게 사람을 피해 벌벌 떨고 있었다.아리를 생각하니 그의 얼굴빛이 많이 부드러워졌다.한 손을 장하리를 부축할 생각도 없이 호주머니에 넣었으나 서주혁은 그 손으로 장하리의 허리를 감싸 품에 안았다.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전히 연락처를 뒤지고 있었다.오늘 밤 친구와의 사적 모임으로 인한 외출이었으므로 운전기사는 함께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기사를 시켜 장하리를 집에 보내도록 할 생각이었다.전화를 금방 걸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무리의 젊은 청년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는데 그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온시환이었다.온시환은 옆 사람과 웃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건지 활짝 웃고 있었고 이 때문에 코끝의 점이 더 잘 보였다.서주혁은 무의식적으로 트렌치코트로 장하리를 꽁꽁 감쌌다. 그리고 마침 이때 전화가 연결되었다.“하늘 레스토랑에 와주세요. 바래다줘야 할 사람 있습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온시환이 다가왔다.“어라? 서주혁?”온시환은 서주혁의 품에 안겨있는 여인을 보곤 눈을 가늘게 떴다.“이분은?”품에 안긴 사람이 장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온시환이 놀릴 것이 분명했다.“소개팅 상대.”확실히 최근 서씨 가문에서 그에게 선 자리 일정을 대거 만들긴 했다.온시환은 동정하듯 그의 어깨를 톡톡 쳤다. 보아하니 소개팅 상대가 또 술을 진탕 마시고 유혹하려는 것인 듯했다.“고생하네. 그런데 안 밀어내고 받아주는 걸 보니 희한하네.”다른 사람들이 저를 부르자 온시환은 서주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나는 투자자랑 식사하러 간다. 온시아와의 약혼이 엎질러졌으니, 그분이 마음에 들면 시도해 봐.”서주혁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온시환이 가까이 다가와 여인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다.이때 서주혁이 대답했다.“싫어. 맘에 들면 네가 데려가든가.”“됐어. 나도 요새 집안 때문에 피곤해.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