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아마 연못의 특별한 물에 의해 단련되었을 것이다. 직접 통증을 느껴보니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는 것이 그다지 견디기 힘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연못에 몸을 담그는 것은 마치 만 개의 바늘에 온몸이 찔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하여 그녀는 지금 손가락이 아프긴 했지만 그저 무언가에 한 입 물린 듯한 느낌일 뿐이었다.성혜인은 귀비탑에 기대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눈꺼풀이 저도 모르게 천천히 감겼다.다음날 돌아온 미스터 K는 성혜인의 태도가 쌀쌀해졌다고 느꼈다.처음 채찍을 피하는 데 실패했을 때 몇 마디 한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침묵의 연속이었고 그저 가끔 끙끙 앓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성혜인은 자신이 정말 미친 것 같았다. 한동안 벙어리가 되었을 때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는데 이제 와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게 느껴졌다.그저 수령의 자리에 대한 갈망만 더 간절해졌을 뿐.강해지고 싶었고 권력을 얻고 싶어졌다.아직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므로 절대 이곳에서 쓰러지면 안 되었다.또 한 번 채찍에 맞은 후, 성혜인은 땅에서 쓰러지고 말았다.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 부축하려던 미스터 K 가 성혜인이 오늘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하고 눈살을 찌푸렸다.“혹시 지금 성질부리는 거냐?”성혜인은 채찍에 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채찍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미스터 K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언짢은 마음에 힘껏 채찍을 휘둘렀다.그러나 성혜인은 가볍게 뒤로 피해 이 자비 없는 채찍질을 피해버렸다.미스터 K가 조금 놀라며 다시 한번 휘둘렀다.그러나 민첩하게 피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바람에 채찍의 꼬리가 허리를 휘감아버렸다.미스터 K는 채찍을 놓고 다가와 성혜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오늘 전보다 반응이 빨라졌네. 혹시 예전에 성녀와 함께 살았던 일이 생각나기라도 한 거야?”성혜인은 대답 없이 꼿꼿이 서 있기만 했다.말 없는 무표정의 성혜
002가 눈에 빛을 내며 싱긋 웃었다.“알겠어요.”미스터 K가 자리를 뜨자마자 002는 악랄하게 채찍을 연속 세 번이나 휘둘렀다.자비란 없었다. 성혜인이 일어서서 몸을 가누기도 전에 피하려야 피할 수 없게 채찍을 내리쳤다.“아프냐? 상관없어. 아파 죽는대도 넌 입을 열지 못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도 죽이진 않을게. 네가 미스터 K의 침대에 기어올랐다고 해서 신경 써줄 거로 생각했니? 천만에. 내가 똑바로 말해두는데, 넌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는 존재야. 이곳에서 네 생사 따위 신경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니까.”002는 채찍을 휘두르며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다.순식간에 채찍 열대를 연속 맞은 성혜인이 견디지 못하고 땅에 풀썩 쓰러졌다.002가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곤 인정사정없이 그녀의 배를 걷어찼다.“일어나. 고작 이런 거 하나 못 견디고 쓰러져?”002가 또 몇 번 채찍을 휘둘렀다.성혜인은 눈앞이 캄캄했고 정말이지 까무러칠 것 같았다.하지만 절대 002 앞에서 기절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힘을 주며 버티고 있었다.이 며칠간 연못에 몸을 담근 덕분에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확실히 향상되어 있었다.연못의 물은 그녀를 기절하지 않게 했고 현재 몸의 상처마저도 고통으로 성혜인이 더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게 하고 있었다.“찰싹!”“찰싹!”“미래의 수령? 하! 이 개처럼 내 아래에서 빌빌 기는 것이? 그냥 죽어라.”002는 속이 후련한 듯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2층의 한 방 안에서 누군가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그저 중얼거릴 뿐이었다.“미련한 것.”아무것도 모르는 002는 계속하여 채찍을 휘두르다가, 성혜인이 견딜 수 있는 최대 아픔임을 확인하고서야 채찍을 놓았다.“연못에 들어가. 이대로 아파서 죽어버리게.”그녀는 성혜인의 손을 덥석 잡아 연못 속으로 밀어 넣었다.거대한 고통이 순식간에 몰려와 성혜인을 덮쳤다.아프다.너무 고통스러워..
미스터 K는 이 며칠 동안 성혜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이었으므로, 전화를 끊은 뒤 바로 자리를 떠버렸다.그가거 떠난 것이 확실해진 이후 성혜인은 더욱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수없이 채찍을 맞고 연못에 몸을 담그게 되면 그녀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그러나 눈앞에 잘 보이지 않던 빛들이 점차 확실히 색을 찾아갔고 구체적인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회복이 빨랐으며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두 번째 날 아침.다시 눈을 떴을 때 성혜인은 이제 천장을 또렷이 볼 수 있게 되었다.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려는데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002의 목소리가 들려왔온다.“미스터 K가 떠난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어딜 게으름을 피워! 당장 일어나. 오늘은 색다른 놀이를 시켜주지.”성혜인은 아직 앞이 안 보이는 척 침대를 더듬거렸다.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므로 002는 성혜인의 팔을 끌어 한 방으로 향했다.이 방의 훈련은 채찍질을 피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했다. 이곳은 밀실로 매 단계의 관문을 통과하는 형식의 훈련이었는데 그 수가 많은 데다가 시험방법도 끊임없이 변화했다. 숨을 곳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숨더라도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문밖에는 버튼 하나가 있는데 이는 훈련 강도를 조정하는 버튼이었다.“강” 버튼은 사람을 죽음까지 이르게 할 수 있으며 “중” 버튼은 중상, “약” 버튼은 경상에 이르게 했다.성혜인을 이곳으로 끌고 온 002의 얼굴에는 냉소가 가득했다.“어디 한번 견뎌봐. 온전한 몸으로 나온다면 인정해 줄게.”말을 마친 002가 성혜인을 밀어 넣으려 했다. 그러나 성혜인이 재빠르게 몸을 피하며 냅다 002의 엉덩이를 걷어찼다.미처 방어하지 못한 002가 그대로 넘어져 버렸고 곧이어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성혜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버튼의 강도를 최상으로 올렸다.안에서 002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지만 방의 방음이 너무 잘 되었으므로 철문에이 귀를 가까이 대지는 것이 않으아니라면 들
식사 후의 훈련 시간, 003은 미스터 K가 했던 것처럼 같은 속도로 채찍을 휘둘렀다. 어렵게 겨우겨우 피하고 있었으나 003이 의도적으로 겨냥하여 채찍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이틀 후, 마당에서 자동차 타이어 마찰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미스터 K가 돌아온 것이었다.미스터 K가 돌아왔다는 것을 눈치챈 성혜인의 낯빛이 흙빛이 되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자신에게 이상한 제안을 하고 곤혹스러운 훈련을 시키는 미스터 K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었다.성혜인은 홀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녀의 휴식 시간이었다.거실의 문이 누군가에 의해 열리고, 003이 공손히 입을 열었다.“다녀오셨습니까.”현관 쪽으로 시선을 옮긴 성혜인은 남성의 얼굴 위에 쓰인 가면을 확인하고 마음이 차게 식었다.경각심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다. 아마 전에 성혜인을 훈련할 때도 가면을 벗지 않았을 것이다.성혜인은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미스터 K의 시선이 한참 주위를 훑는 것이 느껴졌다.“002는?”“몰라요. 이틀 동안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요. 아마 임시 임무 때문에 나간 거 아닐까요?”미스터 K가 미간을 찌푸렸다. 002가 임시 임무를 맡았을 리가 없다. 그가 떠나기 전 성혜인을 훈련하라 명령했고 그의 명령은 이곳에서 그의 명령을 어기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가장 불가항력이니까.그는 무의식적으로 성혜인을 힐끗 바라보고는 밀실로 향했다.문이 열리는 순간 002가 안에서 뛰쳐나오며 지친 모습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꼬박 이틀 동안 그녀는 감히 눈을 붙이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했으며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기습공격을 주시하며 피해야 했다.002의 능력이 강하지만 않았더라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바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그녀는 피곤했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미스터 K가 한 시간만 더 늦게 왔다면 정말 안에서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작 그 천한 성혜인이라는 여자의 손에.그녀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홀에 도착하여 쉬고
002의 일을 마친 뒤 미스터 K는 성혜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눈은 좀 회복됐어?”“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일주일 정도 지나면 완벽하게 회복될 것 같아요. 이제 어렴풋이 그림자정도는 보이거든요.”성혜인은 일어나려고 여기저기 더듬거리다가 책상 모서리에 발이 부딪혔고 미스터 K를 향해 넘어지면서 ‘우연히’ 그의 가면에 손이 닿았다.그러나 K의 반응은 더 빨랐고, 그는 성혜인을 소파에 밀면서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조심해.”성혜인은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있는 걸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불현듯 떠올랐다.설마 이 별장에서 가면을 벗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건가?성혜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아무래도 다른 기회를 찾아야 할 것 같은 상황이다....그렇게 시간은 어느새 이틀이 흘렀다.제원의 어느 한 별장 안.요즘 장하리는 의사한테 약을 교체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의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아마 오늘쯤 눈을 뜰 겁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최대한 담백하게 드셔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알겠습니다.”장하리는 예의 바르게 의사를 내보내고 침대 옆에 앉아 말없이 기다렸다.서주혁의 얼굴을 자세히 보는 건 아마 오늘이 처음인 듯싶다.차도남처럼 생긴 반승제와는 달리 서주혁은 위압적인 싸늘함을 갖고 있었다.그는 여자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조차 없었고 키스는커녕 사소한 일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하지만 그와 달리 여자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남자에 대해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다.그 이유 때문인지 전에는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서주혁이 오늘따라 유난히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장하리는 며칠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어젯밤에는 밤새 링거를 맞고 있는 그의 곁을 지키며 눈을 깜빡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잠이 밀려와도 꾹 참았다.눈을 뜬 서주혁은 온몸에 통증을 느꼈다.그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손에 이상한 촉감이 느껴지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순간
서주혁은 죽을 다 먹고 나서 옆에 놓인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눈치가 빠른 장하리는 얼른 다가와 식탁 위의 그릇을 정리했고 이참에 설거지까지 하려는 듯 부엌으로 향했다.서주혁은 곁눈질로 힐끗 장하리를 보았고 그녀는 앞치마를 가지고 와서 스스로 묶고 있었다.검은색에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였다.장하리는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갔고, 잠시 후 설거지하는 물소리가 들려왔다.서주혁은 여전히 식탁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절대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건만 눈을 뜬 순간부터 머릿속은 백지장이 되었고 보이는 건 익숙하지 않은 별장과 낯선 여자뿐이었다.그는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부상으로 인한 기억 상실이라면 언젠가 생각하기 마련이기에 이런 질문을 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장하리가 설거지를 마치자 그는 손을 내밀며 방까지 돌아갈 수 있도록 부축해달라고 손짓했다.장하리는 지금도 기억 상실이라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워낙 심한 부상을 입은 탓에 의사마저도 살아남지 못할 거라며 단정했지만 서주혁은 체력 하나로 지금까지 버텼다.그는 버텨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빠른 속도로 건강을 되찾고 있었다.방으로 돌아온 서주혁은 한쪽에 놓인 반듯한 작은 침대에 시선이 향했고 그 위에는 가지런히 개어져 있는 얇은 담요가 놓여 있었다.곧이어 그의 시선은 반쯤 열린 옷장을 향했고 그 안에는 깔끔하게 다림질된 옷 몇 벌이 있었다.이유는 모르겠으나 서주혁은 순간 미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그는 플러스가 되는 여자의 행동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부부도 아니고 짝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거라면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서주혁은 두 사람이 한때 부부였으나 지금은 이혼한 사이라고 추측했다.그래서 급하게 관계를 부인하고 심지어 그냥 친구일 뿐이라며 강조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부축을 받으며 침대에 앉은 그는 무의식적으로 장하리의 허리를 껴안았다.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장하리는 그의 앞에서 거절할 용기를 잃은 지 오래다.
지금 같은 가을 날씨에는 얇은 이불 하나를 덮는 게 춥지도 않고 아주 적정하다.마침 침대 머리맡의 조명이 두 번 깜박거리더니 갑자기 꺼졌고 방안을 비추는 건 태블릿에서 나오는 화면 밝기뿐이었다.장하리는 예전에 이 영화를 본 적이 있었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과는 아예 달랐다.그녀는 서주혁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어깨는 나란히 맞닿아 있었고 가느다란 그의 손가락과 한껏 솟은 핏줄은 자연스레 장하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순간 그녀의 입가에 과일 한 조각이 놓였다.장하리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그의 얼굴을 보았으나 여전히 무표정이었다.“안 먹어요?”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거다.그녀는 감히 받아먹지는 못하고 조심스럽게 이쑤시개를 넘겨 쥐었다.서주혁은 다시 한 조각을 집어 들더니 태블릿 밝기를 빌려 정교하게 다듬어진 모양을 살펴보았다. 토끼였다.그는 입에 넣으면서 또 다른 과일을 집어 들었고 그 시각 장하리는 마침 손에 든 과일을 입에 넣으려던 참이었다.“그런데 우린 왜 이혼을 한 거예요?”“쿨럭...”과일이 목에 걸린 그녀는 눈물이 맺힐 정도로 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서주혁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설마 제가 바람을 피웠나요?”아직 스스로가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지만 결혼했다면 절대 바람을 피울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했다.사레에 걸려 말을 잇지 못한 장하리는 어쩔 수 없이 손을 흔들었다.서주혁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럼 그쪽이 바람을 피운 거예요?”살기를 띤 그의 말에 장하리는 더욱 세차게 손을 흔들었다.둘 다 바람을 피운 게 아니라면 왜 이혼을 한 거지?서주혁은 장하리의 등을 두드리며 자연스레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봤다.온화한 외모와 남을 배려하는 세심함, 심지어 눈치 빠른 모습으로 유추해 봤을 때 장하리는 바람을 피우는 성격은 절대 아니었다.마지노선을 건드리는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라면 그는 용서할 생각이 있었다.“일 크게 만들지 말고 이왕이면 재결
제멋대로 이유를 단정한 후, 그는 계속하여 남은 영화를 다 보았고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저녁 9시가 되었다.장하리가 이불을 젖히고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려고 몸을 움직이자 서주혁이 그녀의 손을 잡더니 다시 끌어당겼다.“오늘 밤은 같이 자요.”잠자리에 불만을 느끼는 원인은 몇 가지에 불과하다.첫째는 쌍방 혹은 어느 한쪽이 아예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남자의 스킬이 부족한 경우다. 또한 시간이 짧으면 당연히 여자는 만족도가 떨어질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이혼을 생각할 수도 있다.서주혁은 무자비할 정도로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기에 옵션을 전부 나열한 다음 이어서 하나씩 제외했다.그는 장하리를 품에 앉았지만, 그녀는 이 상황이 불편한 듯 등을 돌렸다.서주혁이 누워만 있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경우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하여 장하리는 서주혁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 그녀를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아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허리에 얹은 서주혁의 손이 옷 속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온몸이 굳어졌다.잠옷 치마는 순식간에 걷혔고 장하리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귀와 함께 얼굴 반쪽을 베개에 파묻었다.몇 분 후, 서주혁은 손끝을 적시는 촉촉함에 그녀가 잠자리에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또한 그는 한껏 달아오른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첫 번째 경우의 수를 배제했다.그럼 이제 남은 가능성은 두 가지뿐이다. 스킬이 안 좋든지, 지속 시간이 짧다든지...장하리는 전전긍긍하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며칠 동안 피곤함에 쩔어 있었던 그녀는 서주혁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완전히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장하리는 무의식적으로 옆자리를 더듬었지만, 그 어떠한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벌써 일어난 건가? 침대에서 내려온 그녀는 씻으려고 욕실로 향했고 욕실 문을 열자마자 안에 있는 서주혁과 마주쳤다. 마침 그는...쿵!깜짝 놀란 장하리는 화끈거리는 얼굴과 함께 재빨리 문을 닫은 후 서둘러 다른 방으로 향했다.두 시간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