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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2화 거절할 용기를 잃다

서주혁은 죽을 다 먹고 나서 옆에 놓인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눈치가 빠른 장하리는 얼른 다가와 식탁 위의 그릇을 정리했고 이참에 설거지까지 하려는 듯 부엌으로 향했다.

서주혁은 곁눈질로 힐끗 장하리를 보았고 그녀는 앞치마를 가지고 와서 스스로 묶고 있었다.

검은색에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였다.

장하리는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갔고, 잠시 후 설거지하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서주혁은 여전히 식탁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절대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건만 눈을 뜬 순간부터 머릿속은 백지장이 되었고 보이는 건 익숙하지 않은 별장과 낯선 여자뿐이었다.

그는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부상으로 인한 기억 상실이라면 언젠가 생각하기 마련이기에 이런 질문을 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장하리가 설거지를 마치자 그는 손을 내밀며 방까지 돌아갈 수 있도록 부축해달라고 손짓했다.

장하리는 지금도 기억 상실이라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워낙 심한 부상을 입은 탓에 의사마저도 살아남지 못할 거라며 단정했지만 서주혁은 체력 하나로 지금까지 버텼다.

그는 버텨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빠른 속도로 건강을 되찾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서주혁은 한쪽에 놓인 반듯한 작은 침대에 시선이 향했고 그 위에는 가지런히 개어져 있는 얇은 담요가 놓여 있었다.

곧이어 그의 시선은 반쯤 열린 옷장을 향했고 그 안에는 깔끔하게 다림질된 옷 몇 벌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서주혁은 순간 미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는 플러스가 되는 여자의 행동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부부도 아니고 짝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거라면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서주혁은 두 사람이 한때 부부였으나 지금은 이혼한 사이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급하게 관계를 부인하고 심지어 그냥 친구일 뿐이라며 강조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부축을 받으며 침대에 앉은 그는 무의식적으로 장하리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장하리는 그의 앞에서 거절할 용기를 잃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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