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2세의 집안은 울음바다로 변했고 시신은 임시 영안실로 옮겨졌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온몸이 불에 타 사람의 형체를 알 수 없는 정도였고 스스로 음주 운전을 한 것이라고 밝혀졌다.CCTV에는 완전히 만취한 상태로 차에 오르는 그의 모습이 찍혀있었고 누군가가 일부러 사고를 냈다기에는 전혀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았다.온시환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저 밖에서 수소문하며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고선 자리를 떴다.때마침 진세운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시환아, 나 내일 점심에 휴가인데 술 마시러 올래?”진세운을 향한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동의했다.심지어 두 사람이 예전에 즐겨 먹던 간식을 사갈까 생각도 하고 있었다....침대에서 일어난 반승제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그는 어젯밤 설의종과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고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회장님, 혹시 다른 사람과 손잡은 적이 있으신가요? 사모님과 딸을 찾으려고 수년간 애를 썼다면 분명히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셨을 텐데...”“진 의사를 찾은 적이 있어.”최근에 BK 직원을 미행하고 있었던 그는 힘든지 잔뜩 쉰 목소리로 답했다.“진 의사는 의술이 아주 훌륭하잖아, 플로리아 명문가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하고. 한동안 내 주치의를 담당한 적이 있어서 제원에 가게 된다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부탁했었지. 그런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네. 강력한 배후가 있는 게 틀림없어.”반승제는 손끝으로 창틀을 가볍게 두드렸다.그러고선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고 마침 장미가 문을 열고 들어와 그에게 아침을 가져다주었다.“승제야, 건강 좀 신경 써. 며칠간 아예 쉬지도 못했잖아.”반승제는 말없이 창가에 서서 눈을 가늘게 떴다.“설씨 가문, 지하 격투장, 반씨 가문, 서씨 가문의 세력이 합쳐졌는데 그 막내딸을 찾지 못한다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아?”“이상하긴 하네. 의심되는 게 있어?”“누군가 일부러 내
미스터 K는 아무런 감정 변화 없이 그녀를 밀어냈다.“열나?”“네.”“아래층까지 부축해 줄게. 사람 시켜서 약 준비할 테니까 소파에서 쉬고 있어.”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그의 부축을 받았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그에게 기댔다.그녀는 남자의 다른 특징들을 알아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미스터 K는 항상 그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가져다주었고 그 느낌이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하여 그녀는 자신이 지금 그에게 기대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미스터 K는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떨리는 손으로 성혜인을 살짝 밀어냈다. 그렇게 아래층까지 부축한 후 곧바로 003에게 약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성혜인은 이때다 싶어 입을 열었다.“수면제도 주면 안 될까요? 요즘 불면증이 심해서 전혀 잠을 못 자고 있어요. 페노바르비탈 성분이 있으면 알러지가 심해져서 질식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종류로 부탁해요.”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모습은 허약하기 그지없었고 미스터 K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그는 성혜인의 이마를 만져보더니 열이 심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곧장 옆에 있던 003에게 말을 건넸다.“수면제, 두 알도.”003은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나갔다.하지만 002가 그 뒤에 있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그녀는 방금 성혜인이 페노바르비탈에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는 걸 들었다. 그 말인즉 그 성분이 들어간 수면제를 건네주면 질식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닌가?002의 눈에는 증오와 분노의 감정뿐이었다. 그녀는 아무 대가 없이 다리를 잃은 순 없다며 반드시 복수를 할 거라고 다짐했다.003은 약을 가지고 돌아오던 중 002에게 떠밀려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고 분노에 눈이 먼 채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모습을 보고선 마지못해 설득했다.“저 때문에 다리를 잃어서 화나는 건 알지만 수령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어요.”넘어지는 바람에 약들은 그대로 바닥에 쏟아졌다.002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몸을 굽히더니 바닥에 쏟아
이 상황에 지속된다면 미스터 K가 잠에서 깰지도 모른다.성혜인은 그의 옷을 입고 가면을 가져와 얼굴에 썼다.그녀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 일부러 높이가 있는 신발을 신었다.비록 걸음걸이가 이상해 보이지만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분장을 해야만 한다.그녀는 재빨리 옷차림을 정리하고선 003이 다시 노크하려던 찰나에 문을 열었다.003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가면을 쓴 사람을 보고선 겁에 질린 채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설의종 씨가 플로리아에 돌아갔고 지하 격투장까지 방문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반승제 씨와 손을 잡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실 계획입니까?”성혜인은 문을 닫고선 말없이 003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003은 이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워낙 싸늘한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랐다.“설의종 씨가 이번에 저희 쪽이랑 싸우면서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성혜인은 아무 대답 없이 줄곧 앞으로 나아갔다.“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지금 설씨 가문에 다녀오실 생각인 거죠?”003은 성혜인의 계획을 적중했다.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실의 문을 열고 밖에 주차된 차에 올라탔다.003은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한 그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느껴졌지만, 어찔할 방법이 없었기에 여느 때와 같이 차에 올라타 운전했다.성혜인은 겉으로 냉정한 척 연기했지만 차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고 어느새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성혜인은 미스터 K가 너무 빨리 깨어날까 봐 걱정되었고, 누군가 그녀의 이상함을 알아차리진 않을 까 전전긍긍했다. 한편으로는 경호원이 길을 터주지 않을까봐 조바심이 났지만 걱정과 달리 003이 앞에서 운전한 덕분에 그 누구도 다가와서 묻지 않았다.어느새 차는 산 아래에 이르렀고 철문을 지날 때쯤에는 온몸의 피가 들끓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미스터 K인 척하는 이 계획은 도박이나 다름없었는데 오늘은 운 좋게도 모든 게 순조로웠다.차는 산을 에워싸는
그제야 모든 사람이 성혜인에게 속았다는 걸 눈치챈 듯 003의 말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계획인지 훤히 알고 있는 게 미심쩍었는데 알고 보니 성혜인의 시력은 이미 회복된 지 오래였다.어차피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003은 무의식적으로 경계 태세를 늦추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맞아요. 시력은 진작에 회복했으니까 그쪽이 절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겠죠? 그래도 고마워요. 그쪽이 내 계획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니까 002도 걸려들었거든요. 두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렇게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그럼 안녕.”말을 마친 그녀는 액셀을 밟고 곧장 이곳을 떠났다.003은 002에 비해 충동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런 성혜인의 모습을 마주할 때는 마찬가지로 충격을 받기 일쑤였다.심지어 길가에 내팽개쳐있을 땐 분노와 수치심마저 밀려왔다. 남에게 조롱당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003은 자신이 무시당하던 사람에게 된통 크게 당했다.002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눈이 먼 성혜인을 안중에 두지 않았지만 002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경쟁자의 다리를 망쳤으니 수장에 한 발 더 가까워진 거나 다름없었고 이제 방법을 생각해 성혜인만 제거한다면 수장의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었다.마침 오늘 밤이 그 절호의 기회였다. 002가 종이봉투에 수면제 몇 알을 더 넣은 걸 알아차렸을 땐 어쩌면 이건 성혜인이 놓은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당연히 성혜인도 뭔가를 얻어야만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미스터 K의 방문을 열기 전까지는.문을 열자 눈에 띄게 마른 사람이 나타났고 그 순간 성혜인의 계획을 알아차렸다는 생각에 심장이 마구 뛰었다.비록 완벽한 계획이었지만 003의 협조가 없다면 성혜인은 절대 이 별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때마침 003도 자신만의 목적이 있었기에 일부러 설의종을 들먹이며 플로리아에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밑판을 깔았다. 그래야만 성혜인이 순조롭게 차에 탈 수 있으니까.하
여기는 플로리아의 산속이다. 즉 언제든지 맹수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혹은 악의적인 의도를 품은 남자를 마주치는 순간 더 깊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하지만 움직이지 않고 이곳에 머무르면 잡혀가는 건 시간문제다. 미스터 K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의 손에 넘어가면 다시는 도망칠 기회가 없는 거나 다름없다.성혜인은 그대로 차 문을 열고 어두운 산속으로 들어갔다.차는 길가에 버려졌고 그녀는 깔창을 뺀 후 한결 편안한 걸음걸이로 산 아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그녀는 도로에서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어쩌면 그것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자 사랑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반승제를 만날 수만 있다면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았고 기대감이 밀려와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해가 뜰 때까지 쉴 틈 없이 달리자 어느새 체력이 바닥나고 기진맥진했지만 남은 이성이 그녀의 정신줄을 꽉 붙잡은 채 희망을 북돋아 주며 도시를 향해 달릴 원동력을 제공했다.몇개의 산과 길을 넘었는지 모를 정도로 앞만 보고 달린 그녀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섰고 그 과정이 무한 반복되면서 온몸이 상처로 뒤덮였다.아무리 이를 악물고 달린다 해도 도시는 그녀와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산기슭에 있는 오두막을 발견하고선 걸음을 멈췄다.현기증이 났지만, 별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다.만약 지금의 체력 상태로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호수 근처에 위치한 이 오두막은 200평 정도의 크기를 자랑했다.성혜인은 본인이 지금 미스터 K의 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알고 있다. 003이 어젯밤 3시간 동안 운전했고, 또한 해가 뜰 때까지 쉴틈없이 달렸기에 지금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뭔가를 좀 먹어야만 했다.잠금장치가 걸려있지 않았던 문은 자동으로 열렸고 성혜인은 잔뜩 쉰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계세요?”
진세운은 그녀를 바라보며 몇 초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혜인 씨?”“맞아요! 저예요!”성혜인은 감격에 겨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한지 알았지만 그에게 이 모든 걸 설명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진 선생님이 여기에는 어쩐 일이에요?”“이분은 플로리아 명문가 출신이자 아주 높은 신분을 지닌 분이에요. 제가 설씨 가문의 주치의로 일하면서 운 좋게 이분을 알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플로리아에 올 때마다 진찰을 봐주고 있어요.”“그러니까 이따가 다시 돌아간다는 말씀이네요?”“네.”“제가 같이 가도 될까요? 승제 씨를 만나고 싶어서요.”“그럼 30분만 기다려 주세요.”“알겠습니다.”불안하던 마음이 진정된 성혜인은 배고픔이 밀려왔고 더 이상 뭔가를 사고할 여력조차 없었다.그녀는 조용하게 소파에 앉아 진세운이 어르신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봤다.방문이 닫히자 인자하던 어르신의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흥미진진한 듯 진세운을 바라봤다.맞은 편에 무표정으로 서 있던 진세운은 진찰하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따가 제가 데리고 갈게요. 같이 가실래요?”“도대체 계획이 뭐야?”“희망을 주고 그걸 완전히 짓밟는 게 얼마나 짜릿한지 아세요? 그런 걸 겪고 나면 아마 반항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거예요. 어쩐지 요즘 따라 말을 너무 잘 듣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다만 그녀가 이렇게 큰 수를 쓸 줄은 몰랐다.똑똑하다. 처참하게 짓밟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다.어르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비꼬듯이 말했다.“참 불쌍한 애야. 왜 하필 네 심기를 건드려서. 쯧쯧.”진세운은 그 말에 답하지 않 은채 묵묵히 진찰했고 검사를 마친 후 의료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성혜인은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마치 황량한 사막을 걷고 있는 사람이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빵 하나를 먹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머리가 아프고 현기증을 느꼈다.어젯밤 밤새도록 달린 그녀는 동서남
“아마 승제는 지금 바쁠 겁니다. 밀입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매사에 조심해야 하지요. 아마 원씨 가문의 원진이 마중 나갈 거예요.”“성혜인 씨는 원씨 가문에 대해 잘 모르시죠? 원씨 가문은 상부의 명령을 받들어 허락한 범위 내에서 상부를 도와 일을 합니다. 하기에 원씨 가문은 매우 은밀하다고 할 수 있어요. 현 가주인 원진은 병치레가 잦지만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자비 없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 승제가 미쳐 날뛰는 동안 백씨 가문과 원씨 가문의 화물을 가로채 원진과 백현문 두 사람의 미움을 크게 샀어요.”“그럼 원진이 승제 씨에게 복수할 거란 말인가요?”“그렇진 않을 거예요. 제가 인사를 드렸으니 아마 빈정거리거나 말로 심기를 건드릴 순 있겠지만 약속한 일은 반드시 해줄 거예요.”성혜인이 안도하며 그를 향해 인사했다.“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제 친구 승제에 관한 일인데 당연히 도와줘야죠.”그는 운전에 집중하며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뒷좌석에는 백발에 벽안인 한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두 사람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었지만 눈을 감고 뒷좌석에 기대어 잠든 척하고 있었다.그는 진세운이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건지 알지 못했고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다.차가 두 시간 넘게 달렸을 무렵 그제야 도시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진세운이 성혜인에게 물었다.“플로리아에 친구는 있어요? 없으면 제 별장에서 승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도 됩니다.”“아, 감사합니다.”미스터 K에게 또 잡혀갈까 두려웠던 그녀는 결국 안전하게 진세운을 따르기로 했다.현재 성혜인은 제운시로 돌아갈 수도 없었기에 그저 반승제가 플로리아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진세운은 시내의 한 별장 앞을 향해 차를 몰았다.“안에 도우미도, 경호원도 있으니까 사는 데 불편한 점은 없을 거예요. 제 핸드폰을 드릴 테니 언제든 승제와 연락해요. 그리고 떠나고 싶을 때 저에게 알려주면 됩니다.”진세운에 대한 인상이 한층 더 좋아졌다. 비록 전에 여러
성혜인이 별장 밖에 서서 서성였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뒤의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별장 내부는 풍경이 좋았다. 이곳은 거창하고 큰 별장이 아니라 노인들이 살만한 아늑한 스타일의 별장이었다.천천히 숨을 내쉰 성혜인이 열쇠로 별장 문을 여니 안에는 도우미 몇 명이 청소하고 있었다.성혜인을 본 그들은 표정 변화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 뒤 이어서 청소했다.온종일 이동한 성혜인은 몸도 피곤하고 배도 고팠다.그녀가 도우미에게 물었다.“혹시 옷 몇 벌 준비해 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음식도 준비해 주세요. 배고파서요.”“아가씨, 사장님께서 이미 분부하셨습니다. 위층으로 모실게요.”성혜인은 진세운이 세심하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네, 고마워요.”위층에 도착한 그녀는 편안하게 샤워했고 몸에 채찍 자국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반승제가 본다면 무조건 가슴 아파할 것이다.그러나 특별한 약물에 몸을 담그지 않는 이상 채찍 자국은 예전처럼 빨리 낫지 않았다.손끝으로 채찍이 남긴 자국들을 만지며 성혜인은 문득 자신과 미스터 K가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다른 세계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신기한 약물이 있을 수가 있을까. 통증은 증폭시키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고작 며칠이면 되었다.성혜인은 더 이상 그곳의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반승제와 빨리 만나기만 바랄 뿐이었다. 반승제와 만나면 그녀는 그곳으로 가는 노선을 알려주고 함께 미스터 K가 살고 있는 그 별장으로 갈 것이다.BKS에 있어서 그 별장은 분명 중요할 것이고 002나 003과 같은 핵심 인물들이 있을 것이다.반승제와 통화만 할 수 있다면 반드시 이 중요한 소식들을 알려줄 것이다.성혜인은 아직도 그 길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샤워를 마친 후에도 피곤함은 여전했고 동시에 배도 고파져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침침해졌다.아래층으로 내려가 밥을 먹고 나서야 성혜인은 소파에 웅크리고 잠에 들었다.임지연을 다시 찾기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