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혁은 죽을 다 먹고 나서 옆에 놓인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눈치가 빠른 장하리는 얼른 다가와 식탁 위의 그릇을 정리했고 이참에 설거지까지 하려는 듯 부엌으로 향했다.서주혁은 곁눈질로 힐끗 장하리를 보았고 그녀는 앞치마를 가지고 와서 스스로 묶고 있었다.검은색에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였다.장하리는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갔고, 잠시 후 설거지하는 물소리가 들려왔다.서주혁은 여전히 식탁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절대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건만 눈을 뜬 순간부터 머릿속은 백지장이 되었고 보이는 건 익숙하지 않은 별장과 낯선 여자뿐이었다.그는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부상으로 인한 기억 상실이라면 언젠가 생각하기 마련이기에 이런 질문을 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장하리가 설거지를 마치자 그는 손을 내밀며 방까지 돌아갈 수 있도록 부축해달라고 손짓했다.장하리는 지금도 기억 상실이라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워낙 심한 부상을 입은 탓에 의사마저도 살아남지 못할 거라며 단정했지만 서주혁은 체력 하나로 지금까지 버텼다.그는 버텨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빠른 속도로 건강을 되찾고 있었다.방으로 돌아온 서주혁은 한쪽에 놓인 반듯한 작은 침대에 시선이 향했고 그 위에는 가지런히 개어져 있는 얇은 담요가 놓여 있었다.곧이어 그의 시선은 반쯤 열린 옷장을 향했고 그 안에는 깔끔하게 다림질된 옷 몇 벌이 있었다.이유는 모르겠으나 서주혁은 순간 미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그는 플러스가 되는 여자의 행동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부부도 아니고 짝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거라면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서주혁은 두 사람이 한때 부부였으나 지금은 이혼한 사이라고 추측했다.그래서 급하게 관계를 부인하고 심지어 그냥 친구일 뿐이라며 강조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부축을 받으며 침대에 앉은 그는 무의식적으로 장하리의 허리를 껴안았다.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장하리는 그의 앞에서 거절할 용기를 잃은 지 오래다.
지금 같은 가을 날씨에는 얇은 이불 하나를 덮는 게 춥지도 않고 아주 적정하다.마침 침대 머리맡의 조명이 두 번 깜박거리더니 갑자기 꺼졌고 방안을 비추는 건 태블릿에서 나오는 화면 밝기뿐이었다.장하리는 예전에 이 영화를 본 적이 있었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과는 아예 달랐다.그녀는 서주혁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어깨는 나란히 맞닿아 있었고 가느다란 그의 손가락과 한껏 솟은 핏줄은 자연스레 장하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순간 그녀의 입가에 과일 한 조각이 놓였다.장하리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그의 얼굴을 보았으나 여전히 무표정이었다.“안 먹어요?”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거다.그녀는 감히 받아먹지는 못하고 조심스럽게 이쑤시개를 넘겨 쥐었다.서주혁은 다시 한 조각을 집어 들더니 태블릿 밝기를 빌려 정교하게 다듬어진 모양을 살펴보았다. 토끼였다.그는 입에 넣으면서 또 다른 과일을 집어 들었고 그 시각 장하리는 마침 손에 든 과일을 입에 넣으려던 참이었다.“그런데 우린 왜 이혼을 한 거예요?”“쿨럭...”과일이 목에 걸린 그녀는 눈물이 맺힐 정도로 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서주혁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설마 제가 바람을 피웠나요?”아직 스스로가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지만 결혼했다면 절대 바람을 피울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했다.사레에 걸려 말을 잇지 못한 장하리는 어쩔 수 없이 손을 흔들었다.서주혁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럼 그쪽이 바람을 피운 거예요?”살기를 띤 그의 말에 장하리는 더욱 세차게 손을 흔들었다.둘 다 바람을 피운 게 아니라면 왜 이혼을 한 거지?서주혁은 장하리의 등을 두드리며 자연스레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봤다.온화한 외모와 남을 배려하는 세심함, 심지어 눈치 빠른 모습으로 유추해 봤을 때 장하리는 바람을 피우는 성격은 절대 아니었다.마지노선을 건드리는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라면 그는 용서할 생각이 있었다.“일 크게 만들지 말고 이왕이면 재결
제멋대로 이유를 단정한 후, 그는 계속하여 남은 영화를 다 보았고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저녁 9시가 되었다.장하리가 이불을 젖히고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려고 몸을 움직이자 서주혁이 그녀의 손을 잡더니 다시 끌어당겼다.“오늘 밤은 같이 자요.”잠자리에 불만을 느끼는 원인은 몇 가지에 불과하다.첫째는 쌍방 혹은 어느 한쪽이 아예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남자의 스킬이 부족한 경우다. 또한 시간이 짧으면 당연히 여자는 만족도가 떨어질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이혼을 생각할 수도 있다.서주혁은 무자비할 정도로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기에 옵션을 전부 나열한 다음 이어서 하나씩 제외했다.그는 장하리를 품에 앉았지만, 그녀는 이 상황이 불편한 듯 등을 돌렸다.서주혁이 누워만 있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경우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하여 장하리는 서주혁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 그녀를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아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허리에 얹은 서주혁의 손이 옷 속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온몸이 굳어졌다.잠옷 치마는 순식간에 걷혔고 장하리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귀와 함께 얼굴 반쪽을 베개에 파묻었다.몇 분 후, 서주혁은 손끝을 적시는 촉촉함에 그녀가 잠자리에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또한 그는 한껏 달아오른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첫 번째 경우의 수를 배제했다.그럼 이제 남은 가능성은 두 가지뿐이다. 스킬이 안 좋든지, 지속 시간이 짧다든지...장하리는 전전긍긍하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며칠 동안 피곤함에 쩔어 있었던 그녀는 서주혁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완전히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장하리는 무의식적으로 옆자리를 더듬었지만, 그 어떠한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벌써 일어난 건가? 침대에서 내려온 그녀는 씻으려고 욕실로 향했고 욕실 문을 열자마자 안에 있는 서주혁과 마주쳤다. 마침 그는...쿵!깜짝 놀란 장하리는 화끈거리는 얼굴과 함께 재빨리 문을 닫은 후 서둘러 다른 방으로 향했다.두 시간
장하리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마침 고개를 돌려 피하려던 찰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피하지 마요. 내가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할 거예요.”반박하고 싶었지만, 서주혁은 다시 키스를 퍼부었고 장하리는 마치 덩굴에 얽힌 것처럼 전혀 숨을 쉴 수 없었다.마침내 말할 기회를 잡은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기울였다.“주혁 씨, 나중에 절 탓할까 봐 두려워서 그래요. 당신은 절대... 먼저 입맞춤을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말하던 장하리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여자라면 누구나 뒤끝이 있고 투정 부리기 마련이다. 서주혁은 잠자리를 가질지언정 절대 키스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아무리 이성을 잃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이런 찝찝한 키스는 단호하게 거절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어쩌면 너무 창피한 일이다. 장하리는 매번 신경 쓰지 말자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그게 다짐처럼 되지는 않았다.“키스한 적이 없다고요?”서주혁은 그 말을 되풀이했다.‘내가 그랬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장하리는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와 눈시울이 붉어졌고 서주혁은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곧이어 그의 손끝이 장하리의 입술에 닿았다.“여기에 입을 맞춘 적이 없다고요?”장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그의 손끝은 아래로 내려가 은밀한 곳에 닿았다.“여기는요?”서주혁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지만, 질문만 들어도 장하리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는 장하리의 반응을 보고 알아차렸다.“싫어하는 건 아니죠?”장하리의 몸은 진작에 그에게 적응했다. 예전에는 남자와 닿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렸지만 서주혁을 만나면서 스킨쉽의 짜릿함을 느꼈고 때로는 이성을 잃은 채 그에게 키스를 퍼붓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매번 거절당했다. 그러면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을 번쩍 차리기 일쑤였다.장하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순간 서주혁의 손은 그녀의 머리를 감쌌고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에 닿았다.두말할 것도 없이 뜨거운 입맞춤이 그녀를 덮쳤다.장하
반승제의 시선은 여전히 그에게 향했고 말투에서는 짜증이 느껴졌다.“아직도 연락이 안 닿은 거야?”배현우는 어깨를 으쓱였다.“아직 자고 있나 봐. 언제 깨어날지 모르겠어.”반승제가 막 화를 내려던 찰나 밖에서 장미가 걸어 들어왔다.“승제야, 설기웅 씨 왔어. 너랑 할 얘기가 있으시다네?”“안 만날래.”“연구 기지가 어딘지 알고 있대. 설인아 씨랑 결혼하겠다고 약속하면 알려준다는데 안 만날 거야?”그 말에 얼어붙은 반승제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귀를 의심했다.설기웅이 그곳을 알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반승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설기웅을 만나러 나갔다.그 시각 설기웅은 홀에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반승제를 보고선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설인아는 눈이 먼 채로 벙어리가 되었다. 감정 컨트롤이 안 되는 바람에 설씨 가문 전체는 어둠에 휩싸인 듯 우울한 분위기의 연속이었고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반승제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설인아는 줄곧 반승제의 이름만 외치고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반 대표님, 인아랑 결혼하면 연구기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드릴게요.”반승제는 입가를 올리며 비웃었다.“그쪽이 연구 기지를 알고 있다고요?”“반 대표님이 우리 인아를 벙어리로 만들었죠? 하지만 괜찮아요, 전 연구기지에서 준 해독제를 얻었거든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인아를 완벽하게 회복할 거예요. 전에는 몇 시간마다 몸 전체에 심한 통증을 느꼈지만 그것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거든요. 이제 두 달만 지나면 목소리와 시력을 되찾을 거예요. 반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인아를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약이 연구기지에서 제공하는 해독제잖아요.”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설인아가 정말 회복한다면 분명 연구기지 사람들이 그녀를 도와줬을 것이다.장미가 내린 독은 성대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강한 독성을 갖고 있어 웬만해서는 회복이 안 되지만 연구기지의 사람들이 나선다면 상황이 달라진다.어찌 됐든 그 안에는 최고의 천재들만 모여있으니까.“인아가 회복 가
반승제는 대충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상황인지 눈치챘다.“그러니까 함께 제국으로 떠난 사모님은 행방불명이 되었고 돌아온 사람은 나미선 씨 본인이라고 의심하는 거죠? 사건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럼 나미선 씨가 데려온 딸도 회장님의 딸이 아니라는 거네요? 그럼 사모님은 딸과 함께 사라진 건가요?”설의종은 고통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힘없이 말을 이었다.“맞아. 처음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줄어든 줄 알고 엄청 큰 죄책감을 느꼈어.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진실을 알고 나니 등골이 오싹해지더라고. 조사를 시작하려고 움직였을 때는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고 단서는 아예 찾을 수가 없었지. 우연히 BK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는데 그 조직이 어쩌면 미선이와 연결됐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어 지난 몇 년 동안 유심히 BK를 주목하고 있었어. 하지만 워낙 경계가 삼엄해서 접근할 수조차 없어.”“그럼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거네요?”“몇 가지 단서가 있어. BK에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두 명 있거든? 한 명은 blood, 다른 한 명은 killer. 두 사람의 약자를 따서 BK인 거야. 그들은 조직 내에서도 높은 지위를 갖고 있고 평소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몰라. 내가 미스터 K랑 두 번 정도 만나봤는데, 그 사람은 귓불에 아주 작은 점이 있었어.”귓볼에 작은 점이 있다니?반승제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설의종은 생각에 잠긴 그의 모습을 보고선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그 두 사람의 신분은 아직도 미스터리야. 지금까지 알아낸 바로는 그중 한 명이 제원의 재벌가에 숨어있다는 거야. 그래서 막내아들을 시켜 재벌가 자제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라고 했건만 워낙 눈치가 없는 애라서 그런지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했어. 나도 개인적으로 제원에 몇 번 가봤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만약 미선이의 실종이 BK와 관련됐다면 함께 사라진 딸도 이 조직이랑 엮인 게 분명해.
반승제의 부탁을 받은 탓에 그는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고 주변 사람 그 누구도 놓치면 안 된다는 얘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온시환은 무심한 듯 진세운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그가 고개를 돌린 틈을 타 재빨리 오른쪽 귓불을 확인했다.다행히도 없었다.온시환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편으로는 요즘 따라 진세운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진세운은 수술할 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가끔 담배를 피운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술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담배를 피우고 있고 그 자세도 매우 능숙했다.진세운은 그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듯 천천히 담배를 피운 뒤 담배꽁초를 근처 휴지통에 버렸다.“시환아, 내가 준 멜라토닌은 먹었어?”“아직. 요즘 대본 쓰고 있어서 깊이 잠들면 안 돼. 영감이 떠오르면 밤새야 하거든. 이제 대본을 다 썼으니까 오늘 밤에는 푹 잘 수 있겠네.”“다행이네. 저녁에 푹 쉬어.”진세운의 부드러움은 반승제와 달랐다. 봄바람 같은 반승제와 달리 진세운은 매우 온화한 스타일이다.며칠간 대본을 쓰느라 피곤함이 극에 달했지만, 여전히 술자리를 잡았다.그는 한가로운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서주혁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그 상태에 오늘 본 흑백 초상화까지 더해지니 숨 막힐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그는 진세운의 어깨를 툭툭 친고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고 진세운은 제자리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술집에서 한바탕 즐거운 시간을 보낸 온시환은 곧바로 별장으로 돌아왔고 순간 침대 옆에 놓인 멜라토닌에 시선을 사로잡혔다.한 알을 꺼내 먹으려던 찰나 머릿속에 번개가 번쩍였다.기억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의 반승제는 결혼을 강요받은 상태였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룸에 모여 앉아 결혼할 상대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가볍기로 소문났던 온시환은 곧장 룸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 허풍을 떨었다.“내가 예전에 점쟁이를 만났거든? 내 코끝에 있는 점 보이지? 이게 풍류점이래.
약병을 건넨 뒤 그는 곧바로 당시 농담을 던졌던 재벌 2세를 찾아갔다.먼저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서둘러 운전해 그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착하고 나서야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그렇게 온시환은 모든 친구에게 전화를 돌린 끝에 그 사람이 지금 스카이웨어에 있다는 걸 알아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과 10분 전에 자리를 떴다고 한다.온시환은 즉시 운전해 스카이웨어로 향했고 입구에 있는 경호원에게 그가 언제쯤 떠났는지 물어보려고 했다.“아마 10분 정도 지났을 겁니다. 전화 한 통을 받고선 혼자 나갔어요.”온시환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로 사람을 시켜 CCTV를 돌려봤다.하지만 영상을 보기도 전에 재벌 2세의 가족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트럭에 치여서 죽었대요. 우리 아들이...”그 말을 들은 온시환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단순 사고일까 아니면 우연을 가장한 계획 살인인 걸까?결정적인 단서를 찾은 순간에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우연이라기엔 참 의심스럽다.그 시각 병원. 온시환에게서 약병을 건네받은 의사는 마침 성분 분석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때마침 옆에 있던 동료가 진세운이 지금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세운 씨가 여긴 무슨 일로 오신 거죠?”“잊었어요? 원장님이 지난달에 현장 실습을 준비했잖아요. 다 같이 가는 거 아니었어요?”의사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선 약병을 주머니에 넣으며 걸음을 옮겼다.진세운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고 현장에 있던 여의사들은 그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었다.왜냐하면 의학을 배우는 사람 중에 이렇게 뛰어난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두 시간 후에야 수업이 끝났다.진세운이 밖으로 나가자 그 의사는 뭔가 생각이 난 듯 즉시 쫓아 나가 수술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질문했다.진세운은 주저하지 않고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고선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의사 손에 들린 약병을 발견했다.의사는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