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가 눈에 빛을 내며 싱긋 웃었다.“알겠어요.”미스터 K가 자리를 뜨자마자 002는 악랄하게 채찍을 연속 세 번이나 휘둘렀다.자비란 없었다. 성혜인이 일어서서 몸을 가누기도 전에 피하려야 피할 수 없게 채찍을 내리쳤다.“아프냐? 상관없어. 아파 죽는대도 넌 입을 열지 못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도 죽이진 않을게. 네가 미스터 K의 침대에 기어올랐다고 해서 신경 써줄 거로 생각했니? 천만에. 내가 똑바로 말해두는데, 넌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는 존재야. 이곳에서 네 생사 따위 신경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니까.”002는 채찍을 휘두르며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다.순식간에 채찍 열대를 연속 맞은 성혜인이 견디지 못하고 땅에 풀썩 쓰러졌다.002가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곤 인정사정없이 그녀의 배를 걷어찼다.“일어나. 고작 이런 거 하나 못 견디고 쓰러져?”002가 또 몇 번 채찍을 휘둘렀다.성혜인은 눈앞이 캄캄했고 정말이지 까무러칠 것 같았다.하지만 절대 002 앞에서 기절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힘을 주며 버티고 있었다.이 며칠간 연못에 몸을 담근 덕분에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확실히 향상되어 있었다.연못의 물은 그녀를 기절하지 않게 했고 현재 몸의 상처마저도 고통으로 성혜인이 더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게 하고 있었다.“찰싹!”“찰싹!”“미래의 수령? 하! 이 개처럼 내 아래에서 빌빌 기는 것이? 그냥 죽어라.”002는 속이 후련한 듯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2층의 한 방 안에서 누군가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그저 중얼거릴 뿐이었다.“미련한 것.”아무것도 모르는 002는 계속하여 채찍을 휘두르다가, 성혜인이 견딜 수 있는 최대 아픔임을 확인하고서야 채찍을 놓았다.“연못에 들어가. 이대로 아파서 죽어버리게.”그녀는 성혜인의 손을 덥석 잡아 연못 속으로 밀어 넣었다.거대한 고통이 순식간에 몰려와 성혜인을 덮쳤다.아프다.너무 고통스러워..
미스터 K는 이 며칠 동안 성혜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이었으므로, 전화를 끊은 뒤 바로 자리를 떠버렸다.그가거 떠난 것이 확실해진 이후 성혜인은 더욱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수없이 채찍을 맞고 연못에 몸을 담그게 되면 그녀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그러나 눈앞에 잘 보이지 않던 빛들이 점차 확실히 색을 찾아갔고 구체적인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회복이 빨랐으며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두 번째 날 아침.다시 눈을 떴을 때 성혜인은 이제 천장을 또렷이 볼 수 있게 되었다.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려는데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002의 목소리가 들려왔온다.“미스터 K가 떠난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어딜 게으름을 피워! 당장 일어나. 오늘은 색다른 놀이를 시켜주지.”성혜인은 아직 앞이 안 보이는 척 침대를 더듬거렸다.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므로 002는 성혜인의 팔을 끌어 한 방으로 향했다.이 방의 훈련은 채찍질을 피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했다. 이곳은 밀실로 매 단계의 관문을 통과하는 형식의 훈련이었는데 그 수가 많은 데다가 시험방법도 끊임없이 변화했다. 숨을 곳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숨더라도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문밖에는 버튼 하나가 있는데 이는 훈련 강도를 조정하는 버튼이었다.“강” 버튼은 사람을 죽음까지 이르게 할 수 있으며 “중” 버튼은 중상, “약” 버튼은 경상에 이르게 했다.성혜인을 이곳으로 끌고 온 002의 얼굴에는 냉소가 가득했다.“어디 한번 견뎌봐. 온전한 몸으로 나온다면 인정해 줄게.”말을 마친 002가 성혜인을 밀어 넣으려 했다. 그러나 성혜인이 재빠르게 몸을 피하며 냅다 002의 엉덩이를 걷어찼다.미처 방어하지 못한 002가 그대로 넘어져 버렸고 곧이어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성혜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버튼의 강도를 최상으로 올렸다.안에서 002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지만 방의 방음이 너무 잘 되었으므로 철문에이 귀를 가까이 대지는 것이 않으아니라면 들
식사 후의 훈련 시간, 003은 미스터 K가 했던 것처럼 같은 속도로 채찍을 휘둘렀다. 어렵게 겨우겨우 피하고 있었으나 003이 의도적으로 겨냥하여 채찍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이틀 후, 마당에서 자동차 타이어 마찰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미스터 K가 돌아온 것이었다.미스터 K가 돌아왔다는 것을 눈치챈 성혜인의 낯빛이 흙빛이 되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자신에게 이상한 제안을 하고 곤혹스러운 훈련을 시키는 미스터 K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었다.성혜인은 홀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녀의 휴식 시간이었다.거실의 문이 누군가에 의해 열리고, 003이 공손히 입을 열었다.“다녀오셨습니까.”현관 쪽으로 시선을 옮긴 성혜인은 남성의 얼굴 위에 쓰인 가면을 확인하고 마음이 차게 식었다.경각심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다. 아마 전에 성혜인을 훈련할 때도 가면을 벗지 않았을 것이다.성혜인은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미스터 K의 시선이 한참 주위를 훑는 것이 느껴졌다.“002는?”“몰라요. 이틀 동안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요. 아마 임시 임무 때문에 나간 거 아닐까요?”미스터 K가 미간을 찌푸렸다. 002가 임시 임무를 맡았을 리가 없다. 그가 떠나기 전 성혜인을 훈련하라 명령했고 그의 명령은 이곳에서 그의 명령을 어기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가장 불가항력이니까.그는 무의식적으로 성혜인을 힐끗 바라보고는 밀실로 향했다.문이 열리는 순간 002가 안에서 뛰쳐나오며 지친 모습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꼬박 이틀 동안 그녀는 감히 눈을 붙이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했으며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기습공격을 주시하며 피해야 했다.002의 능력이 강하지만 않았더라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바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그녀는 피곤했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미스터 K가 한 시간만 더 늦게 왔다면 정말 안에서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작 그 천한 성혜인이라는 여자의 손에.그녀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홀에 도착하여 쉬고
002의 일을 마친 뒤 미스터 K는 성혜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눈은 좀 회복됐어?”“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일주일 정도 지나면 완벽하게 회복될 것 같아요. 이제 어렴풋이 그림자정도는 보이거든요.”성혜인은 일어나려고 여기저기 더듬거리다가 책상 모서리에 발이 부딪혔고 미스터 K를 향해 넘어지면서 ‘우연히’ 그의 가면에 손이 닿았다.그러나 K의 반응은 더 빨랐고, 그는 성혜인을 소파에 밀면서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조심해.”성혜인은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있는 걸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불현듯 떠올랐다.설마 이 별장에서 가면을 벗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건가?성혜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아무래도 다른 기회를 찾아야 할 것 같은 상황이다....그렇게 시간은 어느새 이틀이 흘렀다.제원의 어느 한 별장 안.요즘 장하리는 의사한테 약을 교체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의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아마 오늘쯤 눈을 뜰 겁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최대한 담백하게 드셔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알겠습니다.”장하리는 예의 바르게 의사를 내보내고 침대 옆에 앉아 말없이 기다렸다.서주혁의 얼굴을 자세히 보는 건 아마 오늘이 처음인 듯싶다.차도남처럼 생긴 반승제와는 달리 서주혁은 위압적인 싸늘함을 갖고 있었다.그는 여자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조차 없었고 키스는커녕 사소한 일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하지만 그와 달리 여자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남자에 대해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다.그 이유 때문인지 전에는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서주혁이 오늘따라 유난히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장하리는 며칠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어젯밤에는 밤새 링거를 맞고 있는 그의 곁을 지키며 눈을 깜빡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잠이 밀려와도 꾹 참았다.눈을 뜬 서주혁은 온몸에 통증을 느꼈다.그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손에 이상한 촉감이 느껴지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순간
서주혁은 죽을 다 먹고 나서 옆에 놓인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눈치가 빠른 장하리는 얼른 다가와 식탁 위의 그릇을 정리했고 이참에 설거지까지 하려는 듯 부엌으로 향했다.서주혁은 곁눈질로 힐끗 장하리를 보았고 그녀는 앞치마를 가지고 와서 스스로 묶고 있었다.검은색에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였다.장하리는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갔고, 잠시 후 설거지하는 물소리가 들려왔다.서주혁은 여전히 식탁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절대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건만 눈을 뜬 순간부터 머릿속은 백지장이 되었고 보이는 건 익숙하지 않은 별장과 낯선 여자뿐이었다.그는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부상으로 인한 기억 상실이라면 언젠가 생각하기 마련이기에 이런 질문을 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장하리가 설거지를 마치자 그는 손을 내밀며 방까지 돌아갈 수 있도록 부축해달라고 손짓했다.장하리는 지금도 기억 상실이라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워낙 심한 부상을 입은 탓에 의사마저도 살아남지 못할 거라며 단정했지만 서주혁은 체력 하나로 지금까지 버텼다.그는 버텨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빠른 속도로 건강을 되찾고 있었다.방으로 돌아온 서주혁은 한쪽에 놓인 반듯한 작은 침대에 시선이 향했고 그 위에는 가지런히 개어져 있는 얇은 담요가 놓여 있었다.곧이어 그의 시선은 반쯤 열린 옷장을 향했고 그 안에는 깔끔하게 다림질된 옷 몇 벌이 있었다.이유는 모르겠으나 서주혁은 순간 미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그는 플러스가 되는 여자의 행동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부부도 아니고 짝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거라면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서주혁은 두 사람이 한때 부부였으나 지금은 이혼한 사이라고 추측했다.그래서 급하게 관계를 부인하고 심지어 그냥 친구일 뿐이라며 강조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부축을 받으며 침대에 앉은 그는 무의식적으로 장하리의 허리를 껴안았다.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장하리는 그의 앞에서 거절할 용기를 잃은 지 오래다.
지금 같은 가을 날씨에는 얇은 이불 하나를 덮는 게 춥지도 않고 아주 적정하다.마침 침대 머리맡의 조명이 두 번 깜박거리더니 갑자기 꺼졌고 방안을 비추는 건 태블릿에서 나오는 화면 밝기뿐이었다.장하리는 예전에 이 영화를 본 적이 있었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과는 아예 달랐다.그녀는 서주혁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어깨는 나란히 맞닿아 있었고 가느다란 그의 손가락과 한껏 솟은 핏줄은 자연스레 장하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순간 그녀의 입가에 과일 한 조각이 놓였다.장하리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그의 얼굴을 보았으나 여전히 무표정이었다.“안 먹어요?”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거다.그녀는 감히 받아먹지는 못하고 조심스럽게 이쑤시개를 넘겨 쥐었다.서주혁은 다시 한 조각을 집어 들더니 태블릿 밝기를 빌려 정교하게 다듬어진 모양을 살펴보았다. 토끼였다.그는 입에 넣으면서 또 다른 과일을 집어 들었고 그 시각 장하리는 마침 손에 든 과일을 입에 넣으려던 참이었다.“그런데 우린 왜 이혼을 한 거예요?”“쿨럭...”과일이 목에 걸린 그녀는 눈물이 맺힐 정도로 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서주혁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설마 제가 바람을 피웠나요?”아직 스스로가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지만 결혼했다면 절대 바람을 피울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했다.사레에 걸려 말을 잇지 못한 장하리는 어쩔 수 없이 손을 흔들었다.서주혁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럼 그쪽이 바람을 피운 거예요?”살기를 띤 그의 말에 장하리는 더욱 세차게 손을 흔들었다.둘 다 바람을 피운 게 아니라면 왜 이혼을 한 거지?서주혁은 장하리의 등을 두드리며 자연스레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봤다.온화한 외모와 남을 배려하는 세심함, 심지어 눈치 빠른 모습으로 유추해 봤을 때 장하리는 바람을 피우는 성격은 절대 아니었다.마지노선을 건드리는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라면 그는 용서할 생각이 있었다.“일 크게 만들지 말고 이왕이면 재결
제멋대로 이유를 단정한 후, 그는 계속하여 남은 영화를 다 보았고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저녁 9시가 되었다.장하리가 이불을 젖히고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려고 몸을 움직이자 서주혁이 그녀의 손을 잡더니 다시 끌어당겼다.“오늘 밤은 같이 자요.”잠자리에 불만을 느끼는 원인은 몇 가지에 불과하다.첫째는 쌍방 혹은 어느 한쪽이 아예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남자의 스킬이 부족한 경우다. 또한 시간이 짧으면 당연히 여자는 만족도가 떨어질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이혼을 생각할 수도 있다.서주혁은 무자비할 정도로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기에 옵션을 전부 나열한 다음 이어서 하나씩 제외했다.그는 장하리를 품에 앉았지만, 그녀는 이 상황이 불편한 듯 등을 돌렸다.서주혁이 누워만 있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경우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하여 장하리는 서주혁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 그녀를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아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허리에 얹은 서주혁의 손이 옷 속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온몸이 굳어졌다.잠옷 치마는 순식간에 걷혔고 장하리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귀와 함께 얼굴 반쪽을 베개에 파묻었다.몇 분 후, 서주혁은 손끝을 적시는 촉촉함에 그녀가 잠자리에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또한 그는 한껏 달아오른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첫 번째 경우의 수를 배제했다.그럼 이제 남은 가능성은 두 가지뿐이다. 스킬이 안 좋든지, 지속 시간이 짧다든지...장하리는 전전긍긍하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며칠 동안 피곤함에 쩔어 있었던 그녀는 서주혁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완전히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장하리는 무의식적으로 옆자리를 더듬었지만, 그 어떠한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벌써 일어난 건가? 침대에서 내려온 그녀는 씻으려고 욕실로 향했고 욕실 문을 열자마자 안에 있는 서주혁과 마주쳤다. 마침 그는...쿵!깜짝 놀란 장하리는 화끈거리는 얼굴과 함께 재빨리 문을 닫은 후 서둘러 다른 방으로 향했다.두 시간
장하리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마침 고개를 돌려 피하려던 찰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피하지 마요. 내가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할 거예요.”반박하고 싶었지만, 서주혁은 다시 키스를 퍼부었고 장하리는 마치 덩굴에 얽힌 것처럼 전혀 숨을 쉴 수 없었다.마침내 말할 기회를 잡은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기울였다.“주혁 씨, 나중에 절 탓할까 봐 두려워서 그래요. 당신은 절대... 먼저 입맞춤을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말하던 장하리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여자라면 누구나 뒤끝이 있고 투정 부리기 마련이다. 서주혁은 잠자리를 가질지언정 절대 키스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아무리 이성을 잃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이런 찝찝한 키스는 단호하게 거절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어쩌면 너무 창피한 일이다. 장하리는 매번 신경 쓰지 말자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그게 다짐처럼 되지는 않았다.“키스한 적이 없다고요?”서주혁은 그 말을 되풀이했다.‘내가 그랬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장하리는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와 눈시울이 붉어졌고 서주혁은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곧이어 그의 손끝이 장하리의 입술에 닿았다.“여기에 입을 맞춘 적이 없다고요?”장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그의 손끝은 아래로 내려가 은밀한 곳에 닿았다.“여기는요?”서주혁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지만, 질문만 들어도 장하리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는 장하리의 반응을 보고 알아차렸다.“싫어하는 건 아니죠?”장하리의 몸은 진작에 그에게 적응했다. 예전에는 남자와 닿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렸지만 서주혁을 만나면서 스킨쉽의 짜릿함을 느꼈고 때로는 이성을 잃은 채 그에게 키스를 퍼붓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매번 거절당했다. 그러면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을 번쩍 차리기 일쑤였다.장하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순간 서주혁의 손은 그녀의 머리를 감쌌고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에 닿았다.두말할 것도 없이 뜨거운 입맞춤이 그녀를 덮쳤다.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