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들이 타고 있는 선박은 크지 않으며 소형 화물을 운송하는 데 사용된다.선박의 가장자리로 자리를 옮겨 사람을 확인한 남성은 가볍게 웃었다.“보물단지를 건졌네. 백현문한테 연락해 봐. 사람 찾았다고.”부하가 즉시 서주혁을 건져 올렸다.완전히 혼수상태에 빠진 서주혁은 온몸이 뜨거운 데다 상처도 곪아있어 치료가 필요했다.백현문의 연락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사람을 찾았으므로, 원철은 기분이 좋은 편이었다.그는 갑판 위의 남자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당장 의사에게 진찰받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최근 서씨 가문에서는 장례식을 치르는 준비를 하느라 바삐 보내는 것 같았는데, 그 장본인이 이렇게 물에 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원철은 소위 부잣집의 비밀 따위 파헤치고 싶은 흥미는 없었다.“배 얼른 뭍에 대고 의사 불러.”“어르신, 간병인은 안 보내십니까?”“필요 없어. 이 자식 친구 반승제란 놈이 얼마 전에 내 화물 운반작업을 망친 적이 있어. 이대로 죽이지 않는 건 다 내가 백현문 그놈 체면 봐줘서 그러는 거야.”부하가 목을 움츠리며 더 이상 질문하지 못했다.이곳은 제원과 거리가 조금 먼 곳으로, 제원에서 100km 떨어진 한 작은 도시였다.곧이어 배가 뭍에 오르고 서주혁은 보잘것없는 작은 별장에 옮겨졌다.한편 연락을 받은 백현문은 서주혁이 아직 살아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전화를 끊은 그가 유해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주혁은 지금 원철 손에 있어요. 원철은 절대 간병해 주지 않을 테니 제가 사람을 보내야겠어요.”“아니요. 제가 반 대표님께 연락해서 물어볼게요.”유해은의 말에 백현문의 안색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전에 그들과 일면식조차 없던 유해은이 이제 매우 친해진것 같아 보였다.백현문은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 능숙하게 반승제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줄곧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들려올 줄은 몰랐다.한참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이 일,
메시지를 본 장하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어젯밤 병원에 갔을 때 우연히 만난 온시환에게서 서주혁이 죽었다는 말을 확실히 들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또 서주혁이 살아있다고?유해은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하리 씨, 반 대표님께서 직접 시킨 일이에요. 서주혁 씨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가 된 거예요?”장하리는 잠시 동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렸고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주며 꽉 쥐었다.“그... 그냥 업무 중에 몇 번 만났어요.”유해은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장하리는 성혜인의 비서였으므로 대표님을 따라 크고 작은 파티에 출석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었다.게다가 장하리는 한눈에 봐도 일 잘하고 온화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시간이 늦었으니 지금 바로 운전해서 가야 해요. 아마 밤 10시까지 운전해야 할 것 같은데 도착하면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하리씨와 서주혁 씨 외에 그 작은 별장에는 의사만 출입할 수 있어요. 반 대표님께서 이 일은 당분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어요.”“온시환까지요?”“네. 모든 사람이요.”“네. 알겠어요.S.M에 함께 몸 담그고 있는 이 사람들은 서로를 매우 신뢰했다.장하리는 바로 자신의 임무를 한서진에게 맡겼다.한서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한마디 당부할 뿐이었다.“다치지 말고 몸조심해요.”이 회사의 사람들은 마치 한 가족 같았다.황급히 집으로 돌아온 장하리는 갈아입을 옷 다섯 벌을 챙겼다. 그리고 가까운 곳 쇼핑몰로 향해 서주혁이 입을만한 남성 옷 여덟 벌을 산 후에야 비로소 차를 타고 별장으로 향했다.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 반이었다.별장 앞은 누군가 지키고 있었고 경비원은 그녀와 사진을 번갈아 보며 확인하더니 곧 들여보내 주었다.장하리는 차를 별장 입구에 세운 뒤 곧바로 로비로 들어갔다.유해은이 별장의 비밀번호를 메시지로 보내주었으므로 그녀는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2층으로 올라가니 안방에 서주혁
미스터 K가 그녀의 행동을 보고 물었다.“보여?”“희미하게만 보여요.”“네가 우려낸 약이 좋은가 보네. 일주일 내로 회복되겠어. 역시 성녀가 네 몸을 훈련했던 게 분명해. 그렇지 않았다면 약효가 이렇게 빨리 나타났을 수 있겠어?”성혜인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매일 훈련이 끝나면 성혜인은 졸음이 몰려왔다.“편히 쉬고, 필요한 게 있으면 002한테 말해.”“002가 누구죠?”“번호 002부터 005까지 모두 수령의 인선이야. 당연히 그 전제는 내가 널 찾지 못했을 때 이야기고. 지금은 네가 돌아왔으니 다 네 조력자가 되었지.”말을 마친 미스터 K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그가 자리를 뜨니 002가 입을 열었다.“BKS의 수령 자리를 맹인에게 맡길 수는 없어요. 저 포함 다른 사람들 모두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미스터 K의 이번 결정은 너무 경솔했어요. 아니면 혹시 당신이 무슨 수단을 써서 현혹했나요?”성혜인은 미스터 K가 BKS에서 지위가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든 이곳의 수령이 되려면 그의 인정을 받아야 했다.그러나 002는 수령 자리를 원한 것뿐만 아니라 미스터 K를 흠모하여 성혜인에 대한 적대심이 큰 것 같았다.성혜인은 몸도 아프고 잠도 오지 않았다. 하여 기꺼이 002의 도발에 대응했다.“어제 미스터 K가 저에게 말하길, 전 부수령이라고 했어요. 그쪽은 제 말에 불복해도 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 되는 거죠, 맞죠?”002의 안색이 흐려졌다. 그녀는 원망을 가득 담은 얼굴로 성혜인을 바라보았다.좀 예쁜 것 빼고는 괜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받아온 그들에게는 성혜인이 얼마나 꼴불견일까.“당신은 자격이 없어요. 당신은 그저 침대 위를 기어다니는 것 밖에는 할 줄 모르는 쓰레기일 뿐이고, 미스터 K는 그저 현혹된 것뿐이에요.”“나가서 무릎 꿇으세요.”성혜인이 담담한 말투로 빛이 가장 강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마 그곳이 밖일 것이다.“제가 만족할 때까지요.”
성혜인은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아마 연못의 특별한 물에 의해 단련되었을 것이다. 직접 통증을 느껴보니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는 것이 그다지 견디기 힘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연못에 몸을 담그는 것은 마치 만 개의 바늘에 온몸이 찔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하여 그녀는 지금 손가락이 아프긴 했지만 그저 무언가에 한 입 물린 듯한 느낌일 뿐이었다.성혜인은 귀비탑에 기대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눈꺼풀이 저도 모르게 천천히 감겼다.다음날 돌아온 미스터 K는 성혜인의 태도가 쌀쌀해졌다고 느꼈다.처음 채찍을 피하는 데 실패했을 때 몇 마디 한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침묵의 연속이었고 그저 가끔 끙끙 앓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성혜인은 자신이 정말 미친 것 같았다. 한동안 벙어리가 되었을 때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는데 이제 와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게 느껴졌다.그저 수령의 자리에 대한 갈망만 더 간절해졌을 뿐.강해지고 싶었고 권력을 얻고 싶어졌다.아직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므로 절대 이곳에서 쓰러지면 안 되었다.또 한 번 채찍에 맞은 후, 성혜인은 땅에서 쓰러지고 말았다.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 부축하려던 미스터 K 가 성혜인이 오늘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하고 눈살을 찌푸렸다.“혹시 지금 성질부리는 거냐?”성혜인은 채찍에 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채찍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미스터 K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언짢은 마음에 힘껏 채찍을 휘둘렀다.그러나 성혜인은 가볍게 뒤로 피해 이 자비 없는 채찍질을 피해버렸다.미스터 K가 조금 놀라며 다시 한번 휘둘렀다.그러나 민첩하게 피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바람에 채찍의 꼬리가 허리를 휘감아버렸다.미스터 K는 채찍을 놓고 다가와 성혜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오늘 전보다 반응이 빨라졌네. 혹시 예전에 성녀와 함께 살았던 일이 생각나기라도 한 거야?”성혜인은 대답 없이 꼿꼿이 서 있기만 했다.말 없는 무표정의 성혜
002가 눈에 빛을 내며 싱긋 웃었다.“알겠어요.”미스터 K가 자리를 뜨자마자 002는 악랄하게 채찍을 연속 세 번이나 휘둘렀다.자비란 없었다. 성혜인이 일어서서 몸을 가누기도 전에 피하려야 피할 수 없게 채찍을 내리쳤다.“아프냐? 상관없어. 아파 죽는대도 넌 입을 열지 못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도 죽이진 않을게. 네가 미스터 K의 침대에 기어올랐다고 해서 신경 써줄 거로 생각했니? 천만에. 내가 똑바로 말해두는데, 넌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는 존재야. 이곳에서 네 생사 따위 신경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니까.”002는 채찍을 휘두르며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다.순식간에 채찍 열대를 연속 맞은 성혜인이 견디지 못하고 땅에 풀썩 쓰러졌다.002가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곤 인정사정없이 그녀의 배를 걷어찼다.“일어나. 고작 이런 거 하나 못 견디고 쓰러져?”002가 또 몇 번 채찍을 휘둘렀다.성혜인은 눈앞이 캄캄했고 정말이지 까무러칠 것 같았다.하지만 절대 002 앞에서 기절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힘을 주며 버티고 있었다.이 며칠간 연못에 몸을 담근 덕분에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확실히 향상되어 있었다.연못의 물은 그녀를 기절하지 않게 했고 현재 몸의 상처마저도 고통으로 성혜인이 더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게 하고 있었다.“찰싹!”“찰싹!”“미래의 수령? 하! 이 개처럼 내 아래에서 빌빌 기는 것이? 그냥 죽어라.”002는 속이 후련한 듯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2층의 한 방 안에서 누군가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그저 중얼거릴 뿐이었다.“미련한 것.”아무것도 모르는 002는 계속하여 채찍을 휘두르다가, 성혜인이 견딜 수 있는 최대 아픔임을 확인하고서야 채찍을 놓았다.“연못에 들어가. 이대로 아파서 죽어버리게.”그녀는 성혜인의 손을 덥석 잡아 연못 속으로 밀어 넣었다.거대한 고통이 순식간에 몰려와 성혜인을 덮쳤다.아프다.너무 고통스러워..
미스터 K는 이 며칠 동안 성혜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이었으므로, 전화를 끊은 뒤 바로 자리를 떠버렸다.그가거 떠난 것이 확실해진 이후 성혜인은 더욱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수없이 채찍을 맞고 연못에 몸을 담그게 되면 그녀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그러나 눈앞에 잘 보이지 않던 빛들이 점차 확실히 색을 찾아갔고 구체적인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회복이 빨랐으며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두 번째 날 아침.다시 눈을 떴을 때 성혜인은 이제 천장을 또렷이 볼 수 있게 되었다.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려는데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002의 목소리가 들려왔온다.“미스터 K가 떠난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어딜 게으름을 피워! 당장 일어나. 오늘은 색다른 놀이를 시켜주지.”성혜인은 아직 앞이 안 보이는 척 침대를 더듬거렸다.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므로 002는 성혜인의 팔을 끌어 한 방으로 향했다.이 방의 훈련은 채찍질을 피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했다. 이곳은 밀실로 매 단계의 관문을 통과하는 형식의 훈련이었는데 그 수가 많은 데다가 시험방법도 끊임없이 변화했다. 숨을 곳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숨더라도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문밖에는 버튼 하나가 있는데 이는 훈련 강도를 조정하는 버튼이었다.“강” 버튼은 사람을 죽음까지 이르게 할 수 있으며 “중” 버튼은 중상, “약” 버튼은 경상에 이르게 했다.성혜인을 이곳으로 끌고 온 002의 얼굴에는 냉소가 가득했다.“어디 한번 견뎌봐. 온전한 몸으로 나온다면 인정해 줄게.”말을 마친 002가 성혜인을 밀어 넣으려 했다. 그러나 성혜인이 재빠르게 몸을 피하며 냅다 002의 엉덩이를 걷어찼다.미처 방어하지 못한 002가 그대로 넘어져 버렸고 곧이어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성혜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버튼의 강도를 최상으로 올렸다.안에서 002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지만 방의 방음이 너무 잘 되었으므로 철문에이 귀를 가까이 대지는 것이 않으아니라면 들
식사 후의 훈련 시간, 003은 미스터 K가 했던 것처럼 같은 속도로 채찍을 휘둘렀다. 어렵게 겨우겨우 피하고 있었으나 003이 의도적으로 겨냥하여 채찍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이틀 후, 마당에서 자동차 타이어 마찰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미스터 K가 돌아온 것이었다.미스터 K가 돌아왔다는 것을 눈치챈 성혜인의 낯빛이 흙빛이 되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자신에게 이상한 제안을 하고 곤혹스러운 훈련을 시키는 미스터 K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었다.성혜인은 홀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녀의 휴식 시간이었다.거실의 문이 누군가에 의해 열리고, 003이 공손히 입을 열었다.“다녀오셨습니까.”현관 쪽으로 시선을 옮긴 성혜인은 남성의 얼굴 위에 쓰인 가면을 확인하고 마음이 차게 식었다.경각심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다. 아마 전에 성혜인을 훈련할 때도 가면을 벗지 않았을 것이다.성혜인은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미스터 K의 시선이 한참 주위를 훑는 것이 느껴졌다.“002는?”“몰라요. 이틀 동안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요. 아마 임시 임무 때문에 나간 거 아닐까요?”미스터 K가 미간을 찌푸렸다. 002가 임시 임무를 맡았을 리가 없다. 그가 떠나기 전 성혜인을 훈련하라 명령했고 그의 명령은 이곳에서 그의 명령을 어기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가장 불가항력이니까.그는 무의식적으로 성혜인을 힐끗 바라보고는 밀실로 향했다.문이 열리는 순간 002가 안에서 뛰쳐나오며 지친 모습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꼬박 이틀 동안 그녀는 감히 눈을 붙이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했으며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기습공격을 주시하며 피해야 했다.002의 능력이 강하지만 않았더라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바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그녀는 피곤했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미스터 K가 한 시간만 더 늦게 왔다면 정말 안에서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작 그 천한 성혜인이라는 여자의 손에.그녀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홀에 도착하여 쉬고
002의 일을 마친 뒤 미스터 K는 성혜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눈은 좀 회복됐어?”“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일주일 정도 지나면 완벽하게 회복될 것 같아요. 이제 어렴풋이 그림자정도는 보이거든요.”성혜인은 일어나려고 여기저기 더듬거리다가 책상 모서리에 발이 부딪혔고 미스터 K를 향해 넘어지면서 ‘우연히’ 그의 가면에 손이 닿았다.그러나 K의 반응은 더 빨랐고, 그는 성혜인을 소파에 밀면서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조심해.”성혜인은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있는 걸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불현듯 떠올랐다.설마 이 별장에서 가면을 벗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건가?성혜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아무래도 다른 기회를 찾아야 할 것 같은 상황이다....그렇게 시간은 어느새 이틀이 흘렀다.제원의 어느 한 별장 안.요즘 장하리는 의사한테 약을 교체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의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아마 오늘쯤 눈을 뜰 겁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최대한 담백하게 드셔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알겠습니다.”장하리는 예의 바르게 의사를 내보내고 침대 옆에 앉아 말없이 기다렸다.서주혁의 얼굴을 자세히 보는 건 아마 오늘이 처음인 듯싶다.차도남처럼 생긴 반승제와는 달리 서주혁은 위압적인 싸늘함을 갖고 있었다.그는 여자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조차 없었고 키스는커녕 사소한 일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하지만 그와 달리 여자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남자에 대해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다.그 이유 때문인지 전에는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서주혁이 오늘따라 유난히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장하리는 며칠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어젯밤에는 밤새 링거를 맞고 있는 그의 곁을 지키며 눈을 깜빡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잠이 밀려와도 꾹 참았다.눈을 뜬 서주혁은 온몸에 통증을 느꼈다.그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손에 이상한 촉감이 느껴지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