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은은 끈나시 원피스에 얇은 카디건 하나를 걸쳤는데 매우 우아해 보였다.백현문은 그녀가 걷는 매 발걸음이 자기 심장을 짓밟는 것 같았다.최근 백현문은 줄곧 유해은과 만나고 싶어 했지만 유해은은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완전히 그에게서 뒤돌아선 것이다.유해은은 대외적으로 이미 스캔들에 함께 휘말린 남자 친구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와 허민환이 언제 헤어질지 궁금해했지만 두 사람은 그들의 기대를 짓밟기라도 하듯 틈틈이 SNS에 연인 사이를 티 내곤 했다.백현문은 이미 연예계에 대해 적지 않은 지식을 알고 있었다. 비서가 그에게 이르길, 일종 영업방식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인기를 동시에 올리기 위한.“해은 씨.”그가 유해은을 품에 안고 탐욕스럽게 그의 체향을 킁킁 맡았다.전에 향기가 짙다고 향수를 싫어하던 유해은이 이제 듬뿍 뿌리고 다닌다.“오늘 무슨 향수 뿌렸어요?”“직접 제작한 건데, 향 좋아요?”전혀 헤어진 커플로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대화.유해은은 자신이 그의 기분에 맞춰주지 않으면 도움받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다.“네. 좋네요.”“현문 씨 도움이 필요해요. 서주혁 씨가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는데 정말 죽은 건지, 차를 몰고 나간 밤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 줄 수 있나요?”그 누구든 백현문의 도움을 받으려면 좋은 말로 잘 구슬려가며 눈치를 보아야 한다.유해은은 태연하게 그의 품에서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저한텐 중요한 일이에요.”백현문이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눈을 맞췄다.전이었다면 유해은은 초롱초롱한 예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팔을 이리저리 애교 부리듯 흔들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네? 안 돼요?”그러나 지금 유해의 말투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그녀의 눈에 백현문은 그저 사건 조사를 더 쉽게 하도록 도움을 주는 백 대표일 뿐 좁은 방에서 스킨십하며 설렘을 느끼게 하던 백현문이 아니다.그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다. 그는 눈을 깜박거리더니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룸문이 갑자기 열리며 재벌 2세들이 우르르 들어오려 했다. 그리고 마침 공교롭게도 그들은 백현문이 누군가의 치마를 찢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유해은이 그들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재벌 2세들은 그녀가 스카이웨어의 접대녀라 생각했다.“대표님 부럽습니다.”“대체 어떤 아가씨가 백 대표님 마음을 움직인 겁니까?”그들은 백현문의 화난 안색을 눈치채지 못한 듯 여전히 소란스럽게 말하고 있었다.백현문은 자신의 윗 정장을 벗어 유해은의 다리에 둘러주고는 재벌 2세들에게 소리쳤다.“나가. 당장.”그의 험상궂은 표정에 놀란 사람들이 꽁무니 빠지게 바로 도망갔다.문이 닫히고 깜짝 놀란 백현문은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려 노력했다.“이미 조사하게 했으니 늦어도 오늘 밤까지는 결과가 나올 거예요. 집에 데려다줄게요.”유해은은 꼿꼿이 선 채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차오른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그는 얼른 위를 쳐다보며 눈물을 참고는 돌아서서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정말 대단하세요.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전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없나 봐요. 이렇게 카리스마 있으신 분을 어떻게 배달원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을까요?”참 어리석기도 하지. 배달원이라는 거짓말에 속아 바보처럼 몸을 내주었다.백현문은 문 앞에 선 채로 비수가 꽂힌 듯 아린 심장을 애써 무시했다.그는 문을 열어 복도의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도록 했다. 방 안이 답답하게 느껴져서.“데려다줄게요.”유해은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그러나 스카이웨어 밖을 나오자 그녀는 자기 차에 올라탔다.“대표님, 괜찮아요. 저녁에 다시 촬영하러 가야 해서요.”순식간에 마음이 공허해진 듯한 마음에 백현문이 다급히 물었다.“서주혁의 일이 궁금하다면서요. 친구한테도 도와달라고 했는데, 원씨 가문과 백씨 가문이 다 조사에 참여했으니 새벽 전에 결과를 알수 있을 거예요.”잠시 고민한 유해은은 차에서 내렸다.“그럼 현문 씨 집에 가서 결과 기
남성이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들이 타고 있는 선박은 크지 않으며 소형 화물을 운송하는 데 사용된다.선박의 가장자리로 자리를 옮겨 사람을 확인한 남성은 가볍게 웃었다.“보물단지를 건졌네. 백현문한테 연락해 봐. 사람 찾았다고.”부하가 즉시 서주혁을 건져 올렸다.완전히 혼수상태에 빠진 서주혁은 온몸이 뜨거운 데다 상처도 곪아있어 치료가 필요했다.백현문의 연락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사람을 찾았으므로, 원철은 기분이 좋은 편이었다.그는 갑판 위의 남자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당장 의사에게 진찰받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최근 서씨 가문에서는 장례식을 치르는 준비를 하느라 바삐 보내는 것 같았는데, 그 장본인이 이렇게 물에 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원철은 소위 부잣집의 비밀 따위 파헤치고 싶은 흥미는 없었다.“배 얼른 뭍에 대고 의사 불러.”“어르신, 간병인은 안 보내십니까?”“필요 없어. 이 자식 친구 반승제란 놈이 얼마 전에 내 화물 운반작업을 망친 적이 있어. 이대로 죽이지 않는 건 다 내가 백현문 그놈 체면 봐줘서 그러는 거야.”부하가 목을 움츠리며 더 이상 질문하지 못했다.이곳은 제원과 거리가 조금 먼 곳으로, 제원에서 100km 떨어진 한 작은 도시였다.곧이어 배가 뭍에 오르고 서주혁은 보잘것없는 작은 별장에 옮겨졌다.한편 연락을 받은 백현문은 서주혁이 아직 살아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전화를 끊은 그가 유해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주혁은 지금 원철 손에 있어요. 원철은 절대 간병해 주지 않을 테니 제가 사람을 보내야겠어요.”“아니요. 제가 반 대표님께 연락해서 물어볼게요.”유해은의 말에 백현문의 안색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전에 그들과 일면식조차 없던 유해은이 이제 매우 친해진것 같아 보였다.백현문은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 능숙하게 반승제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줄곧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들려올 줄은 몰랐다.한참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이 일,
메시지를 본 장하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어젯밤 병원에 갔을 때 우연히 만난 온시환에게서 서주혁이 죽었다는 말을 확실히 들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또 서주혁이 살아있다고?유해은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하리 씨, 반 대표님께서 직접 시킨 일이에요. 서주혁 씨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가 된 거예요?”장하리는 잠시 동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렸고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주며 꽉 쥐었다.“그... 그냥 업무 중에 몇 번 만났어요.”유해은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장하리는 성혜인의 비서였으므로 대표님을 따라 크고 작은 파티에 출석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었다.게다가 장하리는 한눈에 봐도 일 잘하고 온화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시간이 늦었으니 지금 바로 운전해서 가야 해요. 아마 밤 10시까지 운전해야 할 것 같은데 도착하면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하리씨와 서주혁 씨 외에 그 작은 별장에는 의사만 출입할 수 있어요. 반 대표님께서 이 일은 당분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어요.”“온시환까지요?”“네. 모든 사람이요.”“네. 알겠어요.S.M에 함께 몸 담그고 있는 이 사람들은 서로를 매우 신뢰했다.장하리는 바로 자신의 임무를 한서진에게 맡겼다.한서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한마디 당부할 뿐이었다.“다치지 말고 몸조심해요.”이 회사의 사람들은 마치 한 가족 같았다.황급히 집으로 돌아온 장하리는 갈아입을 옷 다섯 벌을 챙겼다. 그리고 가까운 곳 쇼핑몰로 향해 서주혁이 입을만한 남성 옷 여덟 벌을 산 후에야 비로소 차를 타고 별장으로 향했다.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 반이었다.별장 앞은 누군가 지키고 있었고 경비원은 그녀와 사진을 번갈아 보며 확인하더니 곧 들여보내 주었다.장하리는 차를 별장 입구에 세운 뒤 곧바로 로비로 들어갔다.유해은이 별장의 비밀번호를 메시지로 보내주었으므로 그녀는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2층으로 올라가니 안방에 서주혁
미스터 K가 그녀의 행동을 보고 물었다.“보여?”“희미하게만 보여요.”“네가 우려낸 약이 좋은가 보네. 일주일 내로 회복되겠어. 역시 성녀가 네 몸을 훈련했던 게 분명해. 그렇지 않았다면 약효가 이렇게 빨리 나타났을 수 있겠어?”성혜인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매일 훈련이 끝나면 성혜인은 졸음이 몰려왔다.“편히 쉬고, 필요한 게 있으면 002한테 말해.”“002가 누구죠?”“번호 002부터 005까지 모두 수령의 인선이야. 당연히 그 전제는 내가 널 찾지 못했을 때 이야기고. 지금은 네가 돌아왔으니 다 네 조력자가 되었지.”말을 마친 미스터 K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그가 자리를 뜨니 002가 입을 열었다.“BKS의 수령 자리를 맹인에게 맡길 수는 없어요. 저 포함 다른 사람들 모두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미스터 K의 이번 결정은 너무 경솔했어요. 아니면 혹시 당신이 무슨 수단을 써서 현혹했나요?”성혜인은 미스터 K가 BKS에서 지위가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든 이곳의 수령이 되려면 그의 인정을 받아야 했다.그러나 002는 수령 자리를 원한 것뿐만 아니라 미스터 K를 흠모하여 성혜인에 대한 적대심이 큰 것 같았다.성혜인은 몸도 아프고 잠도 오지 않았다. 하여 기꺼이 002의 도발에 대응했다.“어제 미스터 K가 저에게 말하길, 전 부수령이라고 했어요. 그쪽은 제 말에 불복해도 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 되는 거죠, 맞죠?”002의 안색이 흐려졌다. 그녀는 원망을 가득 담은 얼굴로 성혜인을 바라보았다.좀 예쁜 것 빼고는 괜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받아온 그들에게는 성혜인이 얼마나 꼴불견일까.“당신은 자격이 없어요. 당신은 그저 침대 위를 기어다니는 것 밖에는 할 줄 모르는 쓰레기일 뿐이고, 미스터 K는 그저 현혹된 것뿐이에요.”“나가서 무릎 꿇으세요.”성혜인이 담담한 말투로 빛이 가장 강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마 그곳이 밖일 것이다.“제가 만족할 때까지요.”
성혜인은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아마 연못의 특별한 물에 의해 단련되었을 것이다. 직접 통증을 느껴보니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는 것이 그다지 견디기 힘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연못에 몸을 담그는 것은 마치 만 개의 바늘에 온몸이 찔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하여 그녀는 지금 손가락이 아프긴 했지만 그저 무언가에 한 입 물린 듯한 느낌일 뿐이었다.성혜인은 귀비탑에 기대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눈꺼풀이 저도 모르게 천천히 감겼다.다음날 돌아온 미스터 K는 성혜인의 태도가 쌀쌀해졌다고 느꼈다.처음 채찍을 피하는 데 실패했을 때 몇 마디 한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침묵의 연속이었고 그저 가끔 끙끙 앓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성혜인은 자신이 정말 미친 것 같았다. 한동안 벙어리가 되었을 때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는데 이제 와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게 느껴졌다.그저 수령의 자리에 대한 갈망만 더 간절해졌을 뿐.강해지고 싶었고 권력을 얻고 싶어졌다.아직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므로 절대 이곳에서 쓰러지면 안 되었다.또 한 번 채찍에 맞은 후, 성혜인은 땅에서 쓰러지고 말았다.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 부축하려던 미스터 K 가 성혜인이 오늘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하고 눈살을 찌푸렸다.“혹시 지금 성질부리는 거냐?”성혜인은 채찍에 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채찍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미스터 K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언짢은 마음에 힘껏 채찍을 휘둘렀다.그러나 성혜인은 가볍게 뒤로 피해 이 자비 없는 채찍질을 피해버렸다.미스터 K가 조금 놀라며 다시 한번 휘둘렀다.그러나 민첩하게 피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바람에 채찍의 꼬리가 허리를 휘감아버렸다.미스터 K는 채찍을 놓고 다가와 성혜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오늘 전보다 반응이 빨라졌네. 혹시 예전에 성녀와 함께 살았던 일이 생각나기라도 한 거야?”성혜인은 대답 없이 꼿꼿이 서 있기만 했다.말 없는 무표정의 성혜
002가 눈에 빛을 내며 싱긋 웃었다.“알겠어요.”미스터 K가 자리를 뜨자마자 002는 악랄하게 채찍을 연속 세 번이나 휘둘렀다.자비란 없었다. 성혜인이 일어서서 몸을 가누기도 전에 피하려야 피할 수 없게 채찍을 내리쳤다.“아프냐? 상관없어. 아파 죽는대도 넌 입을 열지 못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도 죽이진 않을게. 네가 미스터 K의 침대에 기어올랐다고 해서 신경 써줄 거로 생각했니? 천만에. 내가 똑바로 말해두는데, 넌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는 존재야. 이곳에서 네 생사 따위 신경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니까.”002는 채찍을 휘두르며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다.순식간에 채찍 열대를 연속 맞은 성혜인이 견디지 못하고 땅에 풀썩 쓰러졌다.002가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곤 인정사정없이 그녀의 배를 걷어찼다.“일어나. 고작 이런 거 하나 못 견디고 쓰러져?”002가 또 몇 번 채찍을 휘둘렀다.성혜인은 눈앞이 캄캄했고 정말이지 까무러칠 것 같았다.하지만 절대 002 앞에서 기절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힘을 주며 버티고 있었다.이 며칠간 연못에 몸을 담근 덕분에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확실히 향상되어 있었다.연못의 물은 그녀를 기절하지 않게 했고 현재 몸의 상처마저도 고통으로 성혜인이 더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있게 하고 있었다.“찰싹!”“찰싹!”“미래의 수령? 하! 이 개처럼 내 아래에서 빌빌 기는 것이? 그냥 죽어라.”002는 속이 후련한 듯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2층의 한 방 안에서 누군가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그저 중얼거릴 뿐이었다.“미련한 것.”아무것도 모르는 002는 계속하여 채찍을 휘두르다가, 성혜인이 견딜 수 있는 최대 아픔임을 확인하고서야 채찍을 놓았다.“연못에 들어가. 이대로 아파서 죽어버리게.”그녀는 성혜인의 손을 덥석 잡아 연못 속으로 밀어 넣었다.거대한 고통이 순식간에 몰려와 성혜인을 덮쳤다.아프다.너무 고통스러워..
미스터 K는 이 며칠 동안 성혜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이었으므로, 전화를 끊은 뒤 바로 자리를 떠버렸다.그가거 떠난 것이 확실해진 이후 성혜인은 더욱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수없이 채찍을 맞고 연못에 몸을 담그게 되면 그녀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그러나 눈앞에 잘 보이지 않던 빛들이 점차 확실히 색을 찾아갔고 구체적인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회복이 빨랐으며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두 번째 날 아침.다시 눈을 떴을 때 성혜인은 이제 천장을 또렷이 볼 수 있게 되었다.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려는데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002의 목소리가 들려왔온다.“미스터 K가 떠난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어딜 게으름을 피워! 당장 일어나. 오늘은 색다른 놀이를 시켜주지.”성혜인은 아직 앞이 안 보이는 척 침대를 더듬거렸다.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므로 002는 성혜인의 팔을 끌어 한 방으로 향했다.이 방의 훈련은 채찍질을 피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했다. 이곳은 밀실로 매 단계의 관문을 통과하는 형식의 훈련이었는데 그 수가 많은 데다가 시험방법도 끊임없이 변화했다. 숨을 곳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숨더라도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문밖에는 버튼 하나가 있는데 이는 훈련 강도를 조정하는 버튼이었다.“강” 버튼은 사람을 죽음까지 이르게 할 수 있으며 “중” 버튼은 중상, “약” 버튼은 경상에 이르게 했다.성혜인을 이곳으로 끌고 온 002의 얼굴에는 냉소가 가득했다.“어디 한번 견뎌봐. 온전한 몸으로 나온다면 인정해 줄게.”말을 마친 002가 성혜인을 밀어 넣으려 했다. 그러나 성혜인이 재빠르게 몸을 피하며 냅다 002의 엉덩이를 걷어찼다.미처 방어하지 못한 002가 그대로 넘어져 버렸고 곧이어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성혜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버튼의 강도를 최상으로 올렸다.안에서 002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지만 방의 방음이 너무 잘 되었으므로 철문에이 귀를 가까이 대지는 것이 않으아니라면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