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랑이 태연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남자가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남자가 그녀에게 화를 낸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번마다 겉보기에만 무서웠지 실질적인 위협은 가하지 않았다. 그가 여자를 때릴 정도로 막돼먹은 사람도 아니었다.남자의 분노는 그냥 얼굴에만 드러나 있었다. 표정이 무서운 것 외의 다른 행동은 보다시피 나타나지 않았다.담이 작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그의 기세에 겁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익숙해졌거나, 담이 큰 사람이라면 절대 무서워할 리가 없다.강하랑은 이제 익
강하랑은 커튼도 치지 않은 채 숙면을 취했다. 화물선에서 낮잠 잘 때 햇빛을 그대로 만끽하던 것이 습관으로 남은 것이다.조지와 얘기를 나누고 위층에 올라간 그녀는 두꺼운 커튼을 절반만 닫았다. 남은 절반은 얇은 레이스 커튼으로 막았다. 이렇게 하면 방안이 밤처럼 어둡지도, 잠들지 못할 정도로 환하지도 않았다.맞춤한 환경에서 잠든 그녀는 꿈도 꾸지 않고 잤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바람에 흩날리는 얇은 커튼 사이로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그녀는 급하게 일어나지 않고 창가를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저 사람이 네가 만난다고 했던 친구야? 너 어떻게 여기에도 친구가 있어?”호텔에 들어가면서 단유혁이 물었다. 그는 일부러 조지가 있는 쪽을 보지 않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강하랑은 숨김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연바다 쪽 사람이에요. LC그룹에 문제가 생겼는지 시어스에 돌아갈 생각이던데, 나도 데려가려고 저래요.”만약 국내였다면 연바다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다. 일단 그녀가 돌아간다면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비를 보탤 것이기 때문이다.연바다는 이제 연성태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한 번 뒤통수 친 사
말을 마친 뒤 그녀는 단유혁을 향해 웃어 보였다.단유혁은 그녀를 한참 빤히 보다가 살풋 웃었다.“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더 좋고.”그는 강하랑 곁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할 말을 끝낸 뒤 소파 위에 있던 노트북을 챙기곤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시간도 늦었으니까 일찍 쉬어. 내일 아침 비행기라는 거 잊지 말고 일찍 일어나. 난 내 방으로 이만 돌아가서 쉴게.”“응, 가요.”강하랑은 손을 휘저으며 그를 배웅했다.단유혁이 가고 나니 방안은 조금 허전했다.강하랑은 걸음을 옮겨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시선을 떨구자마자 차
“소연 언니한테 다른 차에 타라고 하길 잘했네요. 안 그랬으면 지금 이 속도라면 언니는 분명 겁먹고 있었을 거예요.”차는 이미 번화한 도시 길거리로 진입하고 있었다. 주위인 사람이 가득했기에 속도도 점차 줄였다.강하랑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자신들과 사뭇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신기한 듯 구경했다.추우면 내복을 껴입는 국내와 달리 이곳의 사람들은 상의는 패딩이었지만 하의는 반바지였다. 꼭 상체와 하체의 계절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그런 사람들과 달리 점포 사장들의 옷차림은 지역 느낌이 물씬 났다.예쁜 자수
어젯밤에 봤던 국내의 번화가와는 환경이 달랐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지역 특색을 아주 잘 살려내고 있었다.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거대한 광장도 있었고 분수대 근처엔 하얀 비둘기가 엄청 많았다. 길거리엔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었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예술가들을 둘러싸고 앉아 구경했다. 공연이 끝나자 자그마한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가 동전을 건넸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다음 곡을 연주하기를 기다렸다.거대한 원형 분수대 뒤에는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성당이었다.제일 가운데엔 커다란 분침이 천천히 움
이렇게 덩치도 크고 뭐 씹은 듯한 표정을 하며 그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니 대충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갔을 것이다.강하랑은 원래 기분이 아주 좋았다. 단유혁과도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옆 테이블에 앉은 조지를 발견한 후 바로 표정이 굳어졌다.“머리에 문제 있어?”더는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강하랑은 포크를 내려놓으며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를 향해 욕설을 날리기 시작했다.“임무 완성 못 할 것 같으면 그냥 시어스로 빨리 꺼져. 뭘 x 새끼처럼 자꾸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녀? 시간이 아깝지도 않아? 그리고 말이야, 조지
“거래?”그녀의 말에 조지는 드디어 다른 표정을 지었다.어둡기만 했던 안색에 비웃음이 가득하여 그가 지은 표정이라고 하기엔 조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강하랑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그가 말을 이었다.“하랑 씨, 지금 상황에서 거래한다는 말은 조금 이상하지 않나? 아니면 하랑 씨는 옆에 있는 오빠라는 사람이 애초에 하랑 씨를 안전하게 국내로 데려갈 거로 생각하지 않아서 나한테 거래를 제안하는 건가?”그러자 강하랑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난 그냥 우리가 평화롭게 해결하자고 거래를 제안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