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다와 돌아온 강하랑은 바로 음식을 먹으러 가지 않았다.한바탕 울고 나니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었고 몸에도 어느새 땀이 나 찝찝했다. 그래서 배고픔을 참고 일단 호텔 방으로 돌아와 샤워부터 했다.호텔 1층이 바로 레스토랑이었다. 음식은 바깥에 있는 식당과 맛이 비슷했고 심지어 가격도 더 쌌다.강하랑은 방으로 올라가기 전에 연바다에게 1층에서 자신을 기다려 달라고, 어떤 음식이든 편식을 하지 않으니 먼저 시켜도 된다고 했다.연바다는 그녀와 함께 방으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옷을 갈아입고 내려가면서 잊지 않고 진정석에게도 밥을 먹
“...”연바다는 샴페인 마시려던 행동 그대로 멈췄다.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말이다.대략 1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는 샴페인 잔을 그대로 다시 내려놓고 냅킨으로 손을 닦았다.그는 테이블을 빤히 보면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진 교수는 의사죠. 단하랑의 상태가 어떻든 전부 의사인 진 교수가 나한테 알려줬죠. 기억 상실했다는 것도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전부 단하랑의 연기라고 나한테 말을 하네요? 진 교수, 자꾸 이러면 내가 진 교수 능력을 의심하게 될 거예요.”연바다가 마지막으로 한 말에 그
강하랑은 연바다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마침 직원이 그들이 먼저 주문한 음식을 서빙하고 있었다.“교수님은 왜 주문 안 하셨어요? 안 드시는 거예요?”직원이 떠나자 강하랑은 다소 의아한 어투로 물었다.진정석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의 앞에 있던 스테이크 접시를 가져가며 연바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진 교수는 금방 주문한 거라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우리가 먼저 먹고 있자.”“그래? 교수님은 그럼 좀 기다리셔야겠네요.”강하랑은 진정석을 향해 미소를 짓곤 작은 스푼을 들어 푸딩을 맛보았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남자가 음식을
진정석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눈앞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가득했지만 심각한 생각에 빠진 진정석은 입맛이 없었다.반대로 그의 맞은편에 앉은 강하랑은 연바다가 집어다 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천천히 음미하고 있었다.“교수님, 왜 안 드세요?”가만히 앉아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진정석에 강하랑은 결국 고개를 들고 말했다.“여기 식당 맛은 괜찮은 것 같은데, 혹시 교수님 입맛에는 안 맞는 거예요? 그래서 안 드시고 있는 거예요?”호텔 식당의 음식은 대부분 무난한 맛이었다. 여행객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호텔에선 심지어 현지 음식
호텔 3층엔 발코니와 카페가 있었고 전부 호텔로 온 투숙객들이 무료로 휴식을 제공하는 장소로 쓰였다.밖으로 뻗은 발코니엔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중 가장 많은 것은 장미였다. 붉은색, 흰색, 노란색 등 여러 가지 색으로 피어있었고 다른 꽃들과 피어 은은한 조명 아래 아주 아름다운 작은 정원의 모습을 보이었다.아주 예뻤다.연바다는 진정석을 데리고 오자마자 바로 진정석이 아닌 강하랑과 같이 왔어야 했다고 생각했다.장미꽃.그가 조사한 바로 강하랑이 제일 좋아하는 꽃은 바로 장미꽃이었다.흔하고도 낭만적인 장미꽃을 말이다.
분명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대충 이루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가 포장한 장미는 아주 예뻤고 오후에 강하랑에게 사준 꽃송이보다 더 예쁘게 포장되었다.연바다는 대충 자신이 포장한 꽃을 보곤 이내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진정석은 감히 그의 기분을 추측할 수 없었고 여유로운 그의 표정이 더욱더 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진정석은 연바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연바다는 테이프를 뜯어 자신이 포장한 장미에 붙였다. 그리고 그제야 연바다를 상대할 마음이 생겼는지 입을 열었다.“사과는 굳이 할 필요 없어요. 나의 하랑이도 진 교
겨우 맑아진 진정석의 머릿속은 다시 흐리멍덩해졌다.그는 하마터면 연바다가 누굴 가리키는지 반응하지 못할 뻔했다.‘누, 누가 사라져?'“도련님. 단하랑 씨가 산책하러 갔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아니면 화장실 노크 해보셨어요? 일단 조금 기다려 보세요. 곧 돌아올지도 모르잖아요.”조금 전 저녁 식사 시간에 강하랑을 떠보던 일을 떠올릴 새도 없이 진정석은 바로 강하랑 대신 말을 해주며 연바다를 진정하게 했다.그러나 아무런 효과는 없었다.심지어 그의 대답 때문인지 서늘하기만 했던 연바다의 목소리엔 어느새 분노가 담겼다.“당장 방
다만 신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줄곧 제멋대로 굴던 도련님이 어떻게 연유성인 척 연기를 지금까지 할 수 있는지 말이다...“진 교수, 하랑이가 어디로 갔을 것 같아요?”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지며 나는 요란한 소리에 생각에 잠겨 있던 진정석은 깜짝 놀라게 되었다.CCTV 속에는 옷을 갈아입고 나온 강하랑이 호텔에서 빠져나가는 것만 찍혀있었다. 영상이 끝났지만, 화면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나가는 모습만 남아 있었다.노트북에서 흘러나오던 소리가 사라지고 방 안도 고요해졌다.진정석은 머리가 하얘져 연바다의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