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강하랑은 사흘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운학산에서 병원에 온 지 사흘이나 지났지만, 그녀는 전혀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검사 결과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을 제외하고는 소독만 하면 낫는 상처였다. 그러니 며칠이나 정신 차리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너무 지쳐서 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도 사흘이나 자는 건 단연 비정상이었다. 그래서 의사가 괜찮다고 해도 단씨 집안사람들은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이덕환도 직접 병원에 왔다 갔다. 그도 의사와 마찬가지로 잘 쉬고 나면 자연스레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기
연성태의 미소는 점점 선명해졌다. 자신이 직접 키운 아이가 ‘미친놈’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도 말이다.보통 어른은 이런 평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바다 걔가 조금 남다른 건 사실이다. 규칙을 지킬 줄 몰라 외국이면 몰라도 국내에서는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하지. 바다 같은 성격으로는 큰일을 못 할 거야.”연성태는 느긋하게 말했다. 또다시 중심을 벗어난 대답에 연유성은 미간을 찌푸렸다.‘도대체 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연유성이 참다못해 다시 물어
“그게 무슨 뜻이죠?”연성태는 해코지라는 말에 중점을 더했다. 얼핏 들으면 그를 안심시키는 말 같았다. 하지만 연유성이 듣기에 이는 적나라한 협박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몸을 일으키면서 물었다.아쉽게도 연성태는 연유성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다이닝룸을 향해 걸어갔다. 연유성이 따라가서 다시 물으려고 하자, 식사 소식을 알린 사람이 앞을 막아섰다.상대는 연성태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하지만 연유성을 말려서는 모습은 전혀 노인 같지 않았다. 연유성의 손목은 잡은 손아귀 힘은 뼈가 아플
한주의 어느 한 항구, 창고로 보이는 건물 곁에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집이 있었다. 점심때가 되자 요리하는 연기는 강으로 흘러가 물안개와 한데 뒤엉켰다. 작은 집을 맴도는 약 냄새와 음식 냄새는 쉽게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옅었다.“도련님, 지시하신 물건 가져왔습니다.”연도원은 자그마한 상자를 든 채 집의 한쪽 끝에 서 있었다.폐건물로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안은 고급 호텔 못지않게 화려했다. 연바다는 벽 쪽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늦가을에 들어서서 날씨가 쌀쌀한데도 시원하게 옷을 벗어 던진 몸에는 선명한 흉터가 보였다.
저녁 여섯 시.저녁때에 들어선 연씨 가문의 본가에는 쌀밥의 향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연성태가 가마솥 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오늘은 특별히 가마솥에 밥을 지었다.연유성이 한 무리의 사람을 데리고 본가에 도착했을 때,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쌀밥은 마침 주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수도에서 오래 지낸 연성태는 가마솥이 그리웠는지 직접 장작을 피우고 있었다.쌀밥이 완성된 것만 보고도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마침 반찬을 나르려다가 주방 앞을 지키던 오병욱의 목소리를 들었다.“어르신, 작은 도련님이 돌아오셨습니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연유성의 표정은 한결 후련해 보였다.지승우와 오래 있다 보니 그의 입담도 슬슬 닮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에는 HN그룹 대표라는 신분 때문에 터놓고 얘기하지 못했다. 연성태만큼 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사람도 없었고 말이다.아무리 연성태라고 해도 강하랑을 진짜 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원 출신이라고 영호 단씨 가문을 무시하는 모습은 보기 안 좋았다. 동시에 진씨 가문의 영역에서 그녀를 몰래 빼돌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유일한 사람이라는 말이기도 했다.우리병원에는 연유성의 경호원뿐만 아니라 혁이들의
“저기요!”지승우는 당연히 이런 말을 듣고도 참을 사람이 아니었다. 오병욱이 그가 아닌 단원혁에게 한 말이라고 해도 그는 참을 수 없었다.하지만 단원혁이 팔을 뻗어 그를 말려 섰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도 알 건 다 아는 제벌2세였기에 어쩔 수 없이 혼자 화를 삭였다. 그리고 뒤에서 연성태를 죽어라 노려보기만 했다.반대로 연성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보기에 지승우 등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어린애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은 퍽이나 재미
“도련님, 어르신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항구의 작은 집, 잡초가 무성해야 하는 강가의 한적한 구역에는 낚시하기 편한 평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나무로 만든 평상에 커다란 파라솔까지 더해지자, 이보다 더 시원한 곳도 없을 것 같았다.연도원은 태블릿을 들고 연바다 곁에 서 있었다. 태블릿 화면은 새로운 메시지 때문에 계속해서 반짝였다. 연바다는 낚싯대를 내려놓고 태블릿을 건네받으면서 물었다.“그 여자는 어떻게 됐어요?”가벼운 목소리와 다르게 태블릿을 바라보는 연바다의 목소리는 아주 진지했다. 눈빛도 평소와 달리 한껏 어두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