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여섯 시.저녁때에 들어선 연씨 가문의 본가에는 쌀밥의 향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연성태가 가마솥 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오늘은 특별히 가마솥에 밥을 지었다.연유성이 한 무리의 사람을 데리고 본가에 도착했을 때,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쌀밥은 마침 주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수도에서 오래 지낸 연성태는 가마솥이 그리웠는지 직접 장작을 피우고 있었다.쌀밥이 완성된 것만 보고도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마침 반찬을 나르려다가 주방 앞을 지키던 오병욱의 목소리를 들었다.“어르신, 작은 도련님이 돌아오셨습니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연유성의 표정은 한결 후련해 보였다.지승우와 오래 있다 보니 그의 입담도 슬슬 닮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에는 HN그룹 대표라는 신분 때문에 터놓고 얘기하지 못했다. 연성태만큼 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사람도 없었고 말이다.아무리 연성태라고 해도 강하랑을 진짜 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원 출신이라고 영호 단씨 가문을 무시하는 모습은 보기 안 좋았다. 동시에 진씨 가문의 영역에서 그녀를 몰래 빼돌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유일한 사람이라는 말이기도 했다.우리병원에는 연유성의 경호원뿐만 아니라 혁이들의
“저기요!”지승우는 당연히 이런 말을 듣고도 참을 사람이 아니었다. 오병욱이 그가 아닌 단원혁에게 한 말이라고 해도 그는 참을 수 없었다.하지만 단원혁이 팔을 뻗어 그를 말려 섰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도 알 건 다 아는 제벌2세였기에 어쩔 수 없이 혼자 화를 삭였다. 그리고 뒤에서 연성태를 죽어라 노려보기만 했다.반대로 연성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보기에 지승우 등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어린애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은 퍽이나 재미
“도련님, 어르신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항구의 작은 집, 잡초가 무성해야 하는 강가의 한적한 구역에는 낚시하기 편한 평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나무로 만든 평상에 커다란 파라솔까지 더해지자, 이보다 더 시원한 곳도 없을 것 같았다.연도원은 태블릿을 들고 연바다 곁에 서 있었다. 태블릿 화면은 새로운 메시지 때문에 계속해서 반짝였다. 연바다는 낚싯대를 내려놓고 태블릿을 건네받으면서 물었다.“그 여자는 어떻게 됐어요?”가벼운 목소리와 다르게 태블릿을 바라보는 연바다의 목소리는 아주 진지했다. 눈빛도 평소와 달리 한껏 어두웠다.
강가에 폭죽이 터지고 화려한 크루즈가 서서히 멈춰 섰다. 크루즈가 움직이면서 만든 여울에는 다양한 색깔의 불꽃이 비춰서 일렁였다.크루즈의 갑판에서 연바다는 정장 외투를 어깨에 걸친 채 화재가 일어난 집을 바라봤다. 차가운 눈빛에는 어울리지 않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고, 손가락은 갑판의 난간을 톡톡 두드렸다. 마치 피아노라도 연주하는 것처럼 말이다.“어때요, 내가 준비한 불꽃놀이 예쁘죠?”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고 난간을 두드리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시선은 살짝 곁으로 돌려서 남자를 바라봤다.그의 뒤에 멈춰 선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날 얼마나 미워하는지 알아. 네 마음속에는 강세미밖에 없잖아. 하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같이 자란 친구야. 내가 부모 없는 고아가 됐다고 네 이름 하나 못 부를 건 없잖아.”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닭똥 같은 눈물은 쉴 새 없이 뚝뚝 떨어졌다. 이 모습을 보고서도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도련님, 잠깐만요.”이때 곁에서 지켜보던 의사가 이상을 눈치채고 끼어들었다. 비록 연바다와 강하랑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강세미라면 그도 잘 알았다.
“그래?”연바다는 약간 멈칫하면서 강하랑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어디가 달라졌을까? 한 번 맞춰보지 않을래?”“음...”강하랑은 주저하는 표정으로 익숙한데도 낯선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그는 분명히 연유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투와 행동에서 나오는 낯선 느낌은 도무지 무시할 수 없었다.왠지 모르게 연유성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강하랑은 금방 기각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얼굴을 한 사람은 연유성이 유일했다.“모르겠어. 약간 낯설다는 느낌밖에 안 들어. 그
“...”강하랑의 서러움 가득한 얼굴에는 곧바로 놀라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붉어진 눈을 크게 뜨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핸드폰을 바라봤다. 작게 벌린 입에서는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목소리가 나왔다.“벌써... 2023년이 됐다고?”“너는 언제라고 생각했는데?”연바다는 핸드폰을 거두더니 연유성과 비슷한 말투로 물었다. 시선은 계속 강하랑의 예쁜 얼굴에 향해 있었다. 그녀의 놀라움을 구경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연기는 아닌지 확인하는 것 같기도 했다.미간을 찌푸린 강하랑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지금은 분명히 20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