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돌린 강하랑은 아주 익숙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칠흑 같은 눈빛은 분노가 서린 채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지승현과 함께 있는 것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그런 표정보다도 거슬리는 것은 그가 뱉은 말이었다. 그는 강하랑이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과거를 잊고 새사람으로 살아가려던 강하랑의 다짐은 그의 말을 들은 순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왜 하루가 멀다 하게 한남정에서 이런 꼴을 당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난 도대체 왜 이런 놈을 좋아했던 거지? 인물도 우리 오
“너...!”목구멍까지 올라온 불만은 연유성의 사과 때문에 결국 다시 삼켜지고 말았다. 강하랑도 무턱대고 자신을 끌고 나온 그가 갑자기 사과할 줄은 몰랐다.‘에잇! 어떻게 욕할지도 다 생각해 놨는데!’연유성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뚱한 표정으로 강하랑의 붉은 손목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손에 힘을 풀면서 그녀를 가만히 안고 있었다.“듣기 싫은 얘기를 해서 미안해. 내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어. 네가 지승현이랑 같이 있는 걸 보고 혹시... 아, 아무튼 지승현 그 자식 아주 나쁜 자식이야. 가깝게 지내지 마.”강하랑은 연유
“아내 아니야.”연유성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반박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강하랑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우리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어. 그러니 아내라고 부르지 마.”호칭에 이토록 예민한 사람이 이혼한 다음에도 자신을 아내라고 불렀다는 생각에 강하랑은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강세미를 질투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어서 결국 다른 말을 했다.“너희 둘 결혼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멀지 않아 곧 아내가 될 텐데 그렇게 따질 건 또 뭐야? 여자의 질투심을 무시하지 마, 만약 네 예비 아내가 네 말을 들었다면 또 한
사람들은 부모 없는 고아가 연유성에게 시집간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라고 했다. 그래서 강하랑은 서러운 일이 있더라도 감히 말하지 못했다.강씨 가문에서 지낼 때 강세미는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빼앗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연성철이 결정한 혼사도 전부 그녀 때문에 빼앗겼다고 여겼다.그런 환경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혼자 꾹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괜히 말했다가 남의 인생을 빼앗아 살면서 주제도 모르고 투정을 부린다고 욕먹을까 봐서 말이다. ‘도둑년’이라는 말을 이름보다 더 많이 들었을 때이니 그럴 만도 했다.그래서 그녀는
차 안에서 강하랑은 연유성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아 손은 저도 모르게 차 문을 열려고 했다. 연유성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서 말이다.하지만 손끝이 차가운 금속에 닿은 순간 그녀는 우뚝 멈췄다. 그리고 어두운 눈빛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유성을 바라보기만 했다.조금 전 그런 말로 연유성을 돌려보내 놓고 따라가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순수한 걱정이라고 해도 이제는 더 이상 할 자격이 없었다.강하랑은 가만히 차 안에만 있었다. 그래도 지승우에게 문자를 보내 연유성의 상황을 알
지씨 가문의 분쟁은 그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둘이 왜 싸웠는지도 딱히 묻지 않았다. 지승우가 언젠가 말해주리라 믿고 말이다.“다친 데는 괜찮아? 괜찮으면 밥 먹으러 가고, 안 괜찮으면 병원에 데려다줄게.”“괜찮아, 이까짓 상처가 뭐라고!”지승우는 연유성이 들어온 것을 발견하자마자 쪼르르 달려가서 입꼬리에 흐른 피를 닦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태연하게 주변을 기웃거렸다.“사랑 씨는?”지승우가 말을 마치자, 지승현의 시선도 연유성에게 향했다. 둘이 나가고 혼자 돌아온 것이 의아한 듯했다
한남정.진영선의 소식을 받고 난 강하랑은 부리나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길가에 누가 있는지 제대로 볼 새도 없이 지승우가 알려준 룸으로 달려갔다.걸어서 10분 거리를 3분 안에 간 강하랑은 노크고 뭐고 신경 쓰지도 못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룸에 있던 두 사람은 놀란 표정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강하랑을 바라봤다.“연... 연유성...”한참이나 숨을 헐떡이던 강하랑은 겨우 연유성의 이름만 불렀다. 그러자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보더니 찻잔을 들어 올렸다.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아니꼬워하는 반응이었다
연유성은 고개를 숙여 강하랑을 바라봤다. 이곳까지 달려오느라 그녀의 입술을 바짝 말라 있었다. 목소리에도 힘이 잔뜩 빠져서 조금 전의 오만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멍청하기는...’연유성이 한참 지났는데도 대답 없는 것을 보고 강하랑은 또다시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 연유성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나가면서 지승우에게 얘기했다.“차는 내가 몰고 갈게. 밥은 너 혼자 먹고 택시 타고 돌아가.”지승우는 멍하니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한참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달려 나가면서 외쳤다.“왜 나는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