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은 아니고요. 그냥 내장국밥이 고향 맛과 다르다던 손님이 있어서 청아 씨 평가를 듣고 놀랐을 뿐이에요.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 평가도 다른 법이겠죠. 얼른 드세요. 이러다가 다 식겠어요.”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았던 강하랑은 미소를 지으면서 금방 설명을 끝났다. 하지만 지승현은 그녀의 말을 유심히 듣더니 또다시 화제를 이었다.“하랑 씨 말이 맞아요. 사람마다 전부 입맛이 다르기 마련이죠. 그리고 종종 기억 속의 맛을 기준치로 삼는 사람도 있어요.”지승현은 말하다 말고 잠깐 멈칫하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보탰다.“그러
“급한 일이 있다잖아. 더구나 밥도 하랑 씨가 사는 건데 뭐가 불만이야?”진정훈은 지승현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사람을 왜 그렇게 봐? 할 말 있으면 그냥 해.”지승현은 내장국밥을 떠먹으려다 말고 진정훈의 부담스러운 눈빛 때문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진정훈은 곁에 있는 권청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말했다.“형, 오늘따라 어쩐지 급해 보이는데요? 짝꿍 씨는 형을 기억도 못 하는 것 같은데 갑자기 그러면 불편해하지 않겠어요? 연유성도 그렇게 다정하게 굴지는 않을 거예요
몸을 돌린 강하랑은 아주 익숙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칠흑 같은 눈빛은 분노가 서린 채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지승현과 함께 있는 것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그런 표정보다도 거슬리는 것은 그가 뱉은 말이었다. 그는 강하랑이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과거를 잊고 새사람으로 살아가려던 강하랑의 다짐은 그의 말을 들은 순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왜 하루가 멀다 하게 한남정에서 이런 꼴을 당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난 도대체 왜 이런 놈을 좋아했던 거지? 인물도 우리 오
“너...!”목구멍까지 올라온 불만은 연유성의 사과 때문에 결국 다시 삼켜지고 말았다. 강하랑도 무턱대고 자신을 끌고 나온 그가 갑자기 사과할 줄은 몰랐다.‘에잇! 어떻게 욕할지도 다 생각해 놨는데!’연유성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뚱한 표정으로 강하랑의 붉은 손목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손에 힘을 풀면서 그녀를 가만히 안고 있었다.“듣기 싫은 얘기를 해서 미안해. 내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어. 네가 지승현이랑 같이 있는 걸 보고 혹시... 아, 아무튼 지승현 그 자식 아주 나쁜 자식이야. 가깝게 지내지 마.”강하랑은 연유
“아내 아니야.”연유성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반박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강하랑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우리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어. 그러니 아내라고 부르지 마.”호칭에 이토록 예민한 사람이 이혼한 다음에도 자신을 아내라고 불렀다는 생각에 강하랑은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강세미를 질투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어서 결국 다른 말을 했다.“너희 둘 결혼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멀지 않아 곧 아내가 될 텐데 그렇게 따질 건 또 뭐야? 여자의 질투심을 무시하지 마, 만약 네 예비 아내가 네 말을 들었다면 또 한
사람들은 부모 없는 고아가 연유성에게 시집간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라고 했다. 그래서 강하랑은 서러운 일이 있더라도 감히 말하지 못했다.강씨 가문에서 지낼 때 강세미는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빼앗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연성철이 결정한 혼사도 전부 그녀 때문에 빼앗겼다고 여겼다.그런 환경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혼자 꾹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괜히 말했다가 남의 인생을 빼앗아 살면서 주제도 모르고 투정을 부린다고 욕먹을까 봐서 말이다. ‘도둑년’이라는 말을 이름보다 더 많이 들었을 때이니 그럴 만도 했다.그래서 그녀는
차 안에서 강하랑은 연유성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아 손은 저도 모르게 차 문을 열려고 했다. 연유성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서 말이다.하지만 손끝이 차가운 금속에 닿은 순간 그녀는 우뚝 멈췄다. 그리고 어두운 눈빛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유성을 바라보기만 했다.조금 전 그런 말로 연유성을 돌려보내 놓고 따라가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순수한 걱정이라고 해도 이제는 더 이상 할 자격이 없었다.강하랑은 가만히 차 안에만 있었다. 그래도 지승우에게 문자를 보내 연유성의 상황을 알
지씨 가문의 분쟁은 그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둘이 왜 싸웠는지도 딱히 묻지 않았다. 지승우가 언젠가 말해주리라 믿고 말이다.“다친 데는 괜찮아? 괜찮으면 밥 먹으러 가고, 안 괜찮으면 병원에 데려다줄게.”“괜찮아, 이까짓 상처가 뭐라고!”지승우는 연유성이 들어온 것을 발견하자마자 쪼르르 달려가서 입꼬리에 흐른 피를 닦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태연하게 주변을 기웃거렸다.“사랑 씨는?”지승우가 말을 마치자, 지승현의 시선도 연유성에게 향했다. 둘이 나가고 혼자 돌아온 것이 의아한 듯했다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