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씨 형제는 강하랑이 밖에서 술 마시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번 안서동 9번지에 갔을 때도 우유만 주문해 줄 정도로 말이다. 이게 바로 그녀가 지승우에게 연락한 이유이기도 했다.만두를 꿀꺽 삼키고 난 강하랑은 일부러 대답을 안 해주고 있는 연유성을 힐끗 보면서 다시 물었다.“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내가 뭐 실수하지는 않았지?”연유성은 고개를 들고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맞춰봐.”“흥, 말 안 할 거면 됐어.”“만약 실수했으면 네가 책임질래? 아내로서?”“말 안 할 거면 됐다니까.”강하랑은 연
“당연히 이...”연유성의 안색이 하도 어두웠는지라 강하랑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여전했다.‘할아버지 때문에 마지못해 허락한 결혼을 끝낼 수 있게 됐는데, 연유성이 제일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갑자기 정색하고 지랄이야?’아쉽게도 강하랑은 깊이 생각할 새가 없었다. 그릇이 깨지면서 튕긴 파편에 연유성이 손을 벴기 때문이다.수돗물이 연유성의 상처를 따라 흘러내리면서 싱크대는 어느덧 붉게 물들었다. 그 모습에 강하랑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넌 가서 밴드나 붙여.
강하랑은 부랴부랴 단톡방에 생존 신고를 했다. 그리고 문자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단오혁이 벌써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잘못을 저지른 쪽은 강하랑이었기에 그녀는 최대한 낮은 자세와 달콤한 목소리로 선제공격했다.“오빠~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강하랑은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식사했으니 시간은 어느덧 아침 다섯 시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 단오혁은 강하랑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너 연유성이랑 같이 있지?”불쾌함이 잔뜩 묻어 있는 말투에 강하랑은 순간 멈칫했다.
단오혁의 한숨 소리에 강하랑은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숙취 때문인지 걱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뼈에 사무치게 후회하는 중이었다. 이 화제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던 강하랑은 충전기를 핸드폰에 연결한 채 침대에 엎드려서 말했다.“근데 오빠는 왜 안 자고 있었어?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둘째 오빠가 알려줬을 텐데, 설마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지? 혹시 일하는 중이었어?”전화 건너편에서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가끔 들려왔다. 단오혁과 단유혁이 함께 회사를 세우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단유혁이 도맡았고 단오혁은
연유성은 강하랑의 통화를 일부러 훔쳐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도 곧 방전인 것을 발견하고 모든 침실에 있는 비상 충전기를 찾아주고 자신의 충전기는 되찾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노크하기도 전에 강하랑의 애교 섞인 목소리를 듣고 우뚝 멈춰 서게 되었다.‘내 꿈 꿔...?’연유성은 노크하려고 들어 올렸던 손을 툭 내렸다.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강하랑은 아주 친한 사람과 통화하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연유성이 강세미가 돌아오기 전에만 들어본 적 있는 말투로 말이다.‘도대체 누구지?’비스듬히 열린
이렇게 생각하던 연유성은 몸을 돌려 떠나려다 말고 한 마디 보탰다.“이혼 절차는 내가 빨리 끝내볼게. 하지만 그전에는 조심 좀 하지? 괜히 서로 불쾌하지 않게.”말을 마친 연유성은 쌩 멀어져 갔다. 멍한 표정으로 문턱에 멈춰 선 강하랑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말이다.‘저게 무슨 말이야? 내가 뭘 조심해야 하는데? 혹시 승우 씨랑 술 마셔서 그러나? 아니면 또 둘째 오빠 때문에? 마지막으로 만난 게 지난번 엘리베이터 사고 때였으니... 설마 사내놈이 쪼잔하게 그걸 지금까지 기억하는 건 아니겠지?’강하랑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문을
연유성은 어정쩡하게 손을 올리고 있었다. 마침 노크하려던 참에 강하랑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강하랑은 갑자기 나타난 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왜 여기에 있어?”이 시간에 방문을 열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도 소리 지르지 않을 사람은 강심장 강하랑 밖에 없을 것이다.연유성은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강하랑의 불쾌하다는 표정을 발견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금세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난 출근 시간이 돼서 나가야 한다고 알려주려고 왔어. 가는 길에 태워줄까?”청진 별장 근처에는 택시가 잘
강하랑은 역시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연유성이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를 말이다. 그녀는 그저 연유성에게 빚지기 싫었을 뿐이다.예전에 받았던 것은 연유성과 강세미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한 것으로 퉁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그건 연성철이 원해서 강하랑을 도와준 것이기에 연유성이 토를 달 자격은 없었다.“미안.”강하랑은 발끝을 바라보면서 사과했다. 머리를 푹 숙이고 있는 탓에 연유성은 그녀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보아낼 수 없었다. 그저 입꼬리가 억지로 올라간 것만 희미하게 보였다.“네 말이 맞아. 내가 너희 가문에 빚진 게
강하랑은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비록 현지에 있었지만 서양의 유화가 색감이 진하고 화려한 것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 같다. 사진으로도 이미 한 폭의 유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스스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그래서 인터넷 영상을 따라 하나하나 연습하기 시작했다.첫눈이 내릴 때, 강하랑의 조금 만족스러운 첫 작품이 완성되었고 동시에 그녀의 다음 여행도 시작되었다.추위를 두려워하는 강하랑은 이번에는 남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향했다.그녀는 국내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 가서 전에
굳이 단점을 말하자면, 이 마을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강하랑은 초등학교에 머무는 동안, 다 함께 아껴 쓰고 절약하며 지내느라 한 푼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이 여행에서도 같은 습관을 유지했다.그녀는 이 생활의 정취가 짙은 이 작은 마을이, 생활 리듬이 느리면서도 물가가 수도권 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비쌀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정말 믿기 어려웠다.강하랑은 이곳에 한 달만 머물렀다.햇살이 따스한 날, 아파트의 작은 창가에 누워 맞은편 초등학교의 어린이날 예술 공연을 다 보고 나서야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
강하랑은 설이 끝난 후 도망쳤다.그전에는 단이혁의 회사에서 잠시 일을 했다.솔직히 말해서, 연예인 지망생들의 외모는 정말로 훌륭했다.예쁜 여자들은 하얀 피부에 다리가 길쭉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몸매가 엄청 좋았다.정말로 선택해야 한다면, 강하랑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택할 것이다.자신의 플레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었다.몸매 좋은 남자들이 강하랑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았지만 예쁜 여동생들이 그녀를 볼 때마다 인사하면서 미소를 짓는데, 그 미소는 정말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그녀는 돈도 많고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행복했을 때와 다름없는 미소였다.예전 같았으면, 단유혁은 한숨을 돌리고는 강하랑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 찍고,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다.하지만 최근에는,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강하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녀는 머리를 기울이고, 차 문 앞에 기대어 말했다. "오빠, 나는 어떤 사람의 죽음 때문에 조금 슬펐던 건 인정하지만, 예쁘고 똑똑한 여동생이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죽고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줘, 알겠지?"그녀가 좋아했던 사람은 선행으
“하랑이는 추후 어떤 계획 있어?”단유혁은 질문을 피하며,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그는 강하랑의 시선을 따라 멀지 않은 해변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배구를 치는 아이들과 얇은 옷을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런 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인생은 곧 걸어가는 과정에서의 수행이기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화로운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고 즐기는 것이다.이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을까?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강하랑에
“하지만 너 이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안심할 수가 없었어.”단유혁은 정희월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차를 몰고 가며 강하랑을 한 번 흘겨본 후 농담처럼 말했다.별장에서의 어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아이구.” 강하랑은 깊게 한숨을 쉬며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무리 말해도 난 과다 출혈로 다친 환자야. 휴식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 말은 당연히 둘러대는 말이었다.연바다에게 끌려갔을 때, 그녀의 팔 부상은 완벽하게 처치되어 있었고 이후에도 상처가 부딪혀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병원과 별장에서
정희월이 원래 긴장을 풀었던 마음이 다시 조여졌다.그녀는 강하랑을 달래며 말했다. “하랑아, 너 왜 그런 걸 묻니? 그 장면은 보기 좋지 않아. 만약 집에서 지루하다면 오빠에게 데리고 나가서 놀거나 나와 함께 정원에 가서 꽃을 심자.”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정희월은 직접 산에 가본 적은 없지만 뉴스에서 온서애를 실어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연씨 가문의 온서애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산의 상황은 더 위험했을 것이다.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오지
강하랑은 단시혁이 돌아온 후 바로 퇴원을 했다.병원 창밖의 풍경이 좋기는 했지만 병원에 있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기에서도 그녀가 싫어하는 냄새가 났다.그녀는 집에 가고 싶었다.단시혁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동생의 기분이 좋지 않고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사가 몸에 큰 이상이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다고 했으니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는 강하랑을 데리고 서해시에 있는 단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이곳에는 사람이 많아 그녀를 돌보기가 편했다.게다가 곧 설날이 다가와 그녀를 자신의 아파트로 보내는
강하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고, 귀에는 전자 기기의 소리가 들려왔다.공기 중에는 자극적인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고 그녀는 한참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창밖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느리게 돌아가는 머리를 서서히 회전시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그녀가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그가 케인에게 묻히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이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고 강제로 감금시키고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