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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6화

작가: 이한나
윤혜인은 몸이 경직된 상태였지만 여전히 본능적으로 한구운의 손길을 피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한구운의 손은 허공에 멈춰 섰다.

잠시 후, 그는 갑자기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혜인아, 내가 여러 번 말했잖아. 강하게 맞서봐야 결국 너만 손해일 뿐이라고.”

윤혜인은 그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아름이의 행방을 찾으러 가려 했다.

그러나 한구운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보다는 나한테 부탁하는 게 낫지 않겠어?”

윤혜인은 걸음을 멈추고 갑자기 뒤돌아보며 물었다.

“아름이와 홍 아줌마의 행방을 알고 있어요?”

한구운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람을 찾는 건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윤혜인은 한구운이 그녀가 절망에 빠진 틈을 타 자신을 조종하려는 의도를 알고 있었다.

발길을 돌려 떠나려 했지만 한구운은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세상에 진짜 나비 요정이 있을까?”

그 순간, 윤혜인의 눈앞이 아찔해졌다.

이건 그녀가 아름이에게 들려주던 이야기였다.

만약 길을 잃으면 여기저기 뛰어다니지 말고 그 자리에 멈춰 나비 요정이 와서 데려가도록 기다리라고 말이다.

윤혜인은 한구운에게 달려가 그의 옷깃을 잡고 격하게 물었다.

“우리 아름이를 어디에 숨겼어?!”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목소리는 마치 성대가 찢어진 것처럼 쉬어있었다.

“당신이 맞지? 당신이 우리 아름이를 데려간 거야. 돌려줘. 내 아이를 돌려줘!”

그러나 한구운은 태연하게 말했다.

“너무 흥분하지 마. 계속 이렇게 나를 붙잡고 있으면 사람들이 네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면 너와 나 사이에 떠돌던 소문도 저절로 사라지겠지.”

이제야 한구운의 속셈이 드러났다.

하지만 윤혜인은 지금 그런 꿍꿍이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한구운을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들 인간이긴 해? 내 아이는 그냥 어린애야. 내 아이를 돌려주지 않으면 당신을 죽여버릴 거야!”

그녀는 피를 토하듯 절박하게 외쳤다.

“정말이야. 죽여버릴 거라고.”

하지만 한구운은 그저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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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미 준비해 뒀어.”육경한이 말했다.이내 그는 신분증을 꺼내 들었고 소원이 그것을 낚아채서 펼쳐 보았다.그 안에는 소원의 신분증 사본은 물론 그녀 어머니의 주민등록증 사본도 포함되어 있었다.육경한은 정말로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엄마 주민등록증 사본 복원해 놓을 줄이야...’이쯤 되니 소원은 이해할 수 없었다.이 정도로 능력이 있다면 굳이 소원이 나설 필요도 없이 육경한은 두 사람의 혼인신고를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왜 꼭 같이 구청까지 와야 했지?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도 아닌데... 이런 곳에 와서 애정을 가장하는 게 정말 불편하지도 않나?’소원은 냉랭하게 말했다.“이 정도는 뭐든 할 수 있으면서... 여기 오는 건 쓸데없는 일이었잖아.”“쓸데없는 일이 아니지.”육경한은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이 일은 직접 해야 의미가 있잖아.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싶지 않아.”그의 말에 소원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에게 이렇게 정상적으로 말을 걸고 날카롭게 대립하지 않는 육경한은 너무 낯설었다.게다가 그의 말투에는 어딘가 소원을 달래려는 뉘앙스까지 숨어 있었다.소원은 곧바로 경계심을 느끼며 구청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한 발짝이라도 더 떨어지려 애썼다.육경한은 이런 그녀의 작은 몸짓을 눈치챘지만 화를 내기는커녕 입가에 미소를 띠며 소원의 그런 모습마저 귀엽게 느껴졌다.이른 아침이라 구청은 막 문을 연 상태였다.소원은 육경한이 분명 미리 사람을 준비시켜 VIP 통로라도 열어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야 그녀도 혼인신고를 빨리 끝내고 떠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하지만 남자는 태연하게 뒤에서 걸어오며 손에 들린 번호표를 보여주었다.23번.소원은 말문이 막혔다.직접 하겠다던 육경한의 말이 허언은 아니었던 것이다.그는 정말로 줄을 서서 기다리려 하고 있었다.문이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23쌍의 커플이 앞서 대기하고 있었다.소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오늘 무슨 특별한 날이라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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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감정은 마치 황량한 사막에서 자라난 초록빛 잔디처럼 거칠고 끈질기게 뻗어 나갔다.그는 냉정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내면을 억지로 찢어놓으며 모습을 드러냈다.하지만 소원은 곧 그 감정을 냉정하게 끊어냈다.애초에 있어서는 안 될 감정이었다.소원과 육경한 사이에는 이미 어떤 가능성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더는 이런 부질없는 감정이 그녀를 흔들거나 방해해서는 안 되었다.오랜 침묵이 이어지면서 남자의 모든 희망은 서서히 사라졌다.그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역겹다고 해도 평생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소원, 그 말 받아줄게.”소원은 그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육경한이 다시 말했다.“오늘 차에서 내리는 순간 난 서씨 가문을 상대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거야. 너 그 남자 놓지 못한다며?”그의 눈빛에는 진한 증오가 담겨 있었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얼음처럼 차가웠다.“내가 그 사람 없애버릴 거야.”“뭐라고?”화들짝 놀란 소원은 고개를 돌리며 손에 힘을 주었다.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손등이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나한테는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육경한은 무표정하게 말했다.“그리고 너도 알잖아. 네가 어제 한 일은 이미 방씨 가문에 알려졌을 거야. 내 보호 없이는 방민아나 방민기 중 누구도 널 가만두지 않을걸.”그의 말은 소원의 속을 꿰뚫고 있었다.정확히 그녀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을 찌르고 있는 것이었다.“지금 나와의 거래를 포기한다면 너뿐만 아니라 네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해질 거야. 네 친구 영숙이라는 사람도 포함해서 말이야.”육경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소원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방민아는 분명히 그녀를 죽도록 미워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영숙은 그녀의 분노를 가장 먼저 받을 대상이 될 것이다.소원은 단순히 자신만이 아닌 그녀를 도와준 영숙의 안전도 무시할 수 없었다.육경한은 고개를 숙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원, 선택해야 해. 뭘 선택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거야.”소원은 침묵했다.그들의 내면이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628화

    차에서 내리려던 소원이 동작이 순간 멈췄다.육경한의 차가운 목소리가 얇은 입술을 통해 들려왔다.“소원, 이 차에서 내린다면 우리의 거래는 끝나는 거야. 내가 말한 대로 기회 없다고 했으면 진짜로 없는 거라고.”그는 이미 그녀의 심리를 꿰뚫어 본 듯 냉담하게 덧붙였다.“억지로 하라는 건 아니야. 잘 생각해 봐.”움직일 수도 없이 소원은 온몸이 굳어버렸다. 마치 돌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차에서 내린다는 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지만 육경한과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겠다는 건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농담이었다.‘내가 어떻게 육경한이랑 결혼을 해?’그들은 원수였다.비록 유진이라는 아이가 둘 사이를 연결해주고 있다 해도, 비록 그들이 지금 유진이의 혈연관계로 묶여 있다 해도, 그들 사이에 깊이 새겨진 사랑과 증오의 복잡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소원은 자신이 평생 이 남자와 부부가 되는 건 불가능하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이 문제는 더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단 1초라도 더 고민하는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불경이었다.아버지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누구인지,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변명할 여지조차 없는 일이었다.갑자기 숨이 가빠지더니 소원은 문손잡이에 손을 올려놓은 채 말했다.“난 이미 충분히 생각했어. 당신이랑 결혼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육경한.”문이 열렸다.소원이 몸을 낮춰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등 뒤에서 남자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러니까 내 애인이 되어 내 침대에서 잘 수는 있지만 내 가족의 일원이 되는 건 못 받아들이겠다는 거야?”소원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이 남자는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생각을 간파한 것이었다.이 거래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다. 유진이와 서현재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타협이었다.지금 당장은 더 나은 방법이 없었고 유진이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물러서야만 했다.하지만 이 긴급한 위기가 지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627화

    그녀는 유진이에게도 항상 그렇게 가르쳐 왔다.무려 1분 동안 육경한은 그녀를 바라봤다.“옷은 조금 있다 가져올 테니 입고 내려와.”곧 이 한마디를 던지고 그는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그제야 소원은 한숨을 돌린 듯했다.다음 순간, 그녀는 힘이 풀려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명확히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절한 것도 아니었다. 육경한이 그렇게 말했다는 건 여지가 있다는 뜻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도우미가 문을 두드리며 옷을 들고 들어왔다.옷은 몸에 딱 맞는 사이즈의 옷이었다.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도우미가 아침 식사를 식탁 위에 준비해 놓고 말했다.“대표님께서 아침을 다 드시고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소원은 육경한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전날의 과로와 몸의 통증 때문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게다가 아침 식사의 고소한 냄새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이었다.결국 소원은 식탁에 앉아 아침을 천천히 다 먹었다.아침 식사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자 남자가 거실 소파에 앉아 길게 다리를 꼰 채 신문을 읽고 있는게 보였다.앞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놓여 있었다.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육경한은 여전히 아침을 거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었다.그 한 잔이면 완벽한 컨디션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소원이 내려오는 것을 보자 그는 신문을 내려놓고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번에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향했다.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지만 소원은 일단 따라나섰다.남자는 이미 차에 올라 있었다. 뒷좌석 문이 열려 있었고 운전기사는 그녀가 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닫아주었다.소원은 고개를 숙이고 차에 올라 육경한의 오른편에 앉았다.운전기사가 문을 닫고 출발하자 소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지금 어디 가는 거야?”육경한은 단 한 마디로 대답했다.“구청.”“...뭐라고?”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소원은 눈을 크게 뜨고는 다시 물었다.“육경한, 지금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626화

    남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한 걸음 다가왔다.차갑고 섬뜩한 육경한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하고도 속으로 긴장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만약 그가 화를 낸다면 지금 그의 집에 있는 상황에서 소원이 저항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지금 나 위협하고 있는 거야?”육경한이 입을 떼자마자 강렬한 압박감이 그녀를 덮쳤다.소원은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며 평온한 눈빛으로 그의 시선을 마주한 채 대답했다.“위협이 아니야. 단지 거래지. 내가 현재를 지켜달라고 부탁하는 이유는 현재가 유진이의 생명의 은인이라서야. 그때 그 해변 절벽에서 현재가 없었다면 나는 이미 유진이와 함께 떨어져 죽었을 거야. 현재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와 유진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소원은 육경한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그를 자극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서현재에게도 불리했다.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유진이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육경한에게 서현재의 안전도 지켜달라고 하는 것이다.이건 육경한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녀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변화무쌍한 서울에서 뿌리 없는 두 사람이 스스로 살아남으려면 정말 쉽지 않았다.더군다나 그녀는 이미 수많은 적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으니 말이다.비록 그 적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지만 소원은 어쩔 수 없이 맞서야만 했다.지난밤 만약 영숙의 말이 아니었다면 소원은 지금 이토록 빠르게 마음을 고치지 못했을 것이다.영숙이 말했다.“스스로 살아가는 게 고결하게 보일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마. 오히려 스스로만 의지해서 초라하게 산다면 사람들의 조롱거리밖에 안 될 거야. 똑똑한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모든 기회를 붙잡는 법이지. 법을 어기지만 않으면 자신을 도울 수 있는 길은 옳은 길이야. 쓸데없는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쓸 필요 없어...”영숙의 위로에 소원은 많은 것을 깨달았다.그동안 수없이 부딪혀 왔던 벽들, 이제는 좀 더 똑똑하게 자신이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625화

    소원은 눈앞에 놓인 담백하고 향긋한 보양식을 보며 희미하게 쓴웃음을 지었다.‘몸이 다쳤을 때는 보양식으로 보충할 수 있다지만 마음은 어떡해야 하지? 상처 입은 마음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비록 입맛은 없었지만 그녀는 억지로 음식을 삼켰다.건강한 몸이 필요했다.절식하며 저항하는 건 미성숙한 아이들이나 할 짓이었다.약해진 몸으로는 아무런 계획도 세울 수 없고 제대로 된 판단도 할 수 없었다.억지로 먹긴 했지만 그 양은 겨우 생명을 유지할 정도에 불과했다.정상적인 사람이 배부르게 먹을 양에는 한참 못 미쳤다.남은 음식을 도우미가 들고 나갈 때, 육경한은 그 모습을 흘낏 보며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연근을 좋아하니까 다음 끼니엔 연근 요리를 준비해.”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지만 도우미는 속으로 생각했다.‘연근 같은 사소한 취향까지 기억하다니... 이 여자는 정말 육 대표님께 특별한 존재임이 틀림없어.’다음 날 아침, 소원은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도우미에게 말했다.“육 대표님을 불러주세요.”그녀에게는 삼일이나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유진이의 안전은 단 한순간도 미룰 수 없는 문제였다.곧이어 육경한이 방 안에 들어서자 방 안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소원이 입을 열었다.“조건 받아들일게.”이 결정에 육경한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사람은 약점이 있으면 잡히기 마련이었으니 말이다.소원의 약점은 언제나 그녀의 소중한 사람들이었다.그녀는 어머니를 포기할 수도, 아이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소원을 굴복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하지만 육경한은 그동안 그런 수를 쓰지 않았다.자신에게 아직 그 알량한 자신감이 남아 있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결국 육경한은 그 자신감이 얼마나 허망한지 깨달았고 소원은 그에게 남아 있는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하지만 나도 조건이 있어.”소원이 덧붙였다.육경한은 그녀가 조건을 제시하는 일에 대해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히려 조건을 내놓지 않는다면 그건 소원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624화

    육경한은 눈앞의 여자를 산산조각 내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와 욕망이 뒤섞였다.조금 전의 짧은 접촉만으로도 그의 온몸의 세포가 깨어난 듯했다.그녀를 지금 이 자리에서 눌러 제 몸 어디 한 부분에라도 붙여두고 싶었다.다시는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더는 다른 남자를 유혹하지 못하도록 말이다.특히 그녀가 술에 취해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던 ‘현재야’라는 말은 마치 날카로운 가시처럼 그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그는 지금 당장 서현재를 붙잡아 바다 깊숙이 가라앉히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육경한, 양심에 손을 얹고 우리 모자에게 부끄럽지 않아? 왜 내가 당신에게 빌어야 하지? 유진이는 당신 아들 아니야?!”소원은 눈가가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격분하며 그를 노려보았다.눈앞의 이 남자가 자신을 위협하는 모습에 깊은 증오를 느꼈다.육경한은 차분히 말했다.“내가 두 사람에게 잘못한 건 인정해. 하지만 네가 나한테 그걸 만회할 기회를 준 적이 없었잖아.”그의 말은 소원에게는 터무니없게 들렸다.그렇지만 육경한은 개의치 않았다.소원을 곁에 둘 수만 있다면 비웃음을 사는 것쯤은 상관없었다.“네가 유진이의 엄마로 돌아와 내 곁에 머문다면 내가 필요한 권리를 줄 거야. 하지만 네가 유진이의 엄마가 아니라면 그 권리는 너와 아무 상관없어.”육경한의 말은 현실적이고도 냉정했다.교환을 원하는 것이었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고 그는 분명히 했다.곧 소원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육경한, 당신 왜 이래? 이건 사랑이 아니야! 우리 둘 사이엔 사랑 따윈 없어!”극도로 지친 소원은 무력감을 느꼈다.육경한은 이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과는 항상 같았다.그를 이길 수 없었고 심지어 서현재조차 위험에 빠져 있었다.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눈빛이 어두워진 채 육경한은 그녀의 상처를 조심스레 손끝으로 쓰다듬었다.“이제 와서 사랑이니 뭐니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그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623화

    남자는 소원의 손가락을 단단히 얽으며 열 손가락을 맞물렸다.그리고 조금씩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그 키스는 어젯밤 일에 대한 대가야. 이제부터가 내가 내놓을 조건이야.”소원은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이번엔 또 뭘 하려는 거야!”“뭘 하겠어? 당연히...”눈을 가늘게 뜨더니 육경한은 고개를 숙였다.“널 가질 거야.”뒤이어 거칠고 압도적인 키스가 다시금 그녀에게 덮쳐왔다.이번 키스는 이전 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더 거침없었다.조금 전의 키스는 단순한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소원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남자의 가슴을 치며 몸부림쳤다.그녀의 손톱이 등과 목에 선명한 붉은 자국을 남겼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남자는 소원을 침대 위로 강제로 밀어 눕히고 그녀의 다리를 가슴 위로 억누르며 반항할 여지를 완전히 차단했다.그의 뜨겁고 거친 키스는 소원의 입술에서 목덜미로 이어졌고 술에 취한 듯한 짙은 욕망이 가득했다.남자의 손은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타고 내려가며 탐욕스럽게 그녀를 더듬었다.서로 뒤엉킨 숨소리는 남자가 흥분했을 때만 내뱉는 거친 숨결이었다.정신이 아득해지며 소원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육경한이 이렇게 폭력적으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분명 최근에는 자신과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보였던 그가 왜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눈빛에 진한 욕망의 빛이 서린 채 육경한은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를 잠시 놓아주었다.“아까 나한테 물었었지? 내가 원하는 게 뭐냐고.”그는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내 조건은 간단해. 널 내게 줘. 그러면 내가 유진이의 엄마로 만들어줄게.”소원은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멍해졌다.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유진이의 엄마’라니. 유진이는 원래부터 그녀의 아이다.‘난 이미 유진이의 엄마잖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육경한은 소원이 자신의 말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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