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구운은 윤혜인의 투명하고 애절한 눈동자를 보며 잠시 마음이 약해졌지만 그 약함은 그의 야망을 뒤흔들기엔 부족했다.정신병을 앓는 어머니의 다양한 학대 속에서 살아남은 한구운은 권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권력을 쥐고 있어야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고 그 안에는 여자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말했잖아. 내가 데려간 게 아니라고. 하지만 아이의 행방을 알 수도 있어.”윤혜인은 지금 머리가 혼란스러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건에 누가 관여했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단지 아름이를 되찾고 싶었다.“말해줘요...”맑은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제발, 말해줘요.”그러자 한구운이 미소를 살짝 지었다.“애원하기엔 아직 성의가 부족한 것 같은데...”툭.윤혜인은 망설임 없이 땅에 무릎을 꿇었다.“알아요. 다 내 잘못이에요. 내가 한구운 씨를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어요. 제발...”그녀는 촉촉해진 눈으로 한구운을 바라보며 간절히 애원했다.“제발, 아름이를 돌려줘요...”아름이를 위해서라면 그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지금은 시간이 곧 생명이었다.‘이 짐승 같은 사람에게 우리 아름이가 어떤 해를 입을지 몰라...’“너!”한구운은 기뻐하기는커녕 분노에 찬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이곳에서 윤혜인이 무릎을 꿇는 것은 방금 세운 자신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사람들은 자연히 그가 윤혜인을 협박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일어나!”한구운은 그녀의 팔을 붙잡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윤혜인, 나를 화나게 하지 마.”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구운은 강제로 윤혜인을 모퉁이로 끌고 갔다.윤혜인은 순순히 따라가며 다시 말했다.“아름이를 돌려줘요...”“할 말이 그것뿐이야?”한구운은 눈을 가늘게 떴다.그의 얼굴은 한때는 온화해 보였지만 진정으로 냉정해졌을 때는 그 어떤 설명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음산함이 속에 담겨 있었다.특히 금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한구운
윤혜인은 지금 당장 한구운의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어떻게 이런 역겨운 말을 이토록 당당하게 할 수 있지? 정말 낯짝이 성벽보다 더 두꺼운 것 같네.’윤혜인은 표정을 굳힌 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공허한 표정이 오히려 한구운이 좋아하는 순종적인 모습이었다.그는 그녀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걱정할 필요 없어. 나와 함께 있으면 너와 아이의 안전은 내가 보장할게. 비록 아름이가 내 아이는 아니지만 아이가 힘들지 않도록 해줄 거야.”윤혜인은 이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역겨움에 치를 떨었다.그의 말은 마치 이렇게 들렸으니 말이다.“봐, 네 아이까지 받아줄 정도로 난 관대한 사람이야. 그러니 더 이상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지 않겠어?”그녀는 인간이 역겨움을 느끼게 하는 한계가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는지 처음으로 실감했다.예상치 못한 것은 이번엔 윤혜인이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한구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나를 사랑한다면 한구운 씨, 솔직히 말해줘요. 정말 당신이 아름이를 납치한 거예요?””한구운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윤혜인이 그의 ‘사랑'에 대해 반박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그것만으로도 한구운은 기분이 좋아졌다.그래서 그는 윤혜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내가 한 일이 아니야.”지금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그는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할 리 없었다.윤혜인은 한구운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폈고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그런 후에야 그녀는 눈길을 돌렸다.한구운은 윤혜인의 부드러운 태도를 만족스러워하며 속삭였다.“오늘 밤, 나랑 함께 있어...”이렇게 말하면서 윤혜인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으려 했지만 그녀는 재빨리 몸을 피했고 결국 한구운의 안색은 즉시 어두워졌다.윤혜인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그녀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예전처럼 대립적인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형수님... 저번 스캔들이 났던 그 영상 속의 여자인가?곧 서민주는 한구운의 팔짱을 끼며 자신의 영역을 선언하듯 그를 꽉 붙잡았다.“안녕하세요.”윤혜인은 억지로 미소를 지을 힘조차 없었고 한구운처럼 뻔뻔할 수도 없었다.그래서 그저 무표정하게 짧게 대답한 후, 윤혜인은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서민주는 약간 어색해하며 한구운의 어깨에 기대어 말했다.“날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나 봐요.”“그럴 리 없어. 네가 생각이 너무 많은 거야.”그러자 서민주는 얼굴을 돌려 그를 바라보며 살짝 입을 삐죽였다.“하지만... 뭔가 구운 씨와 저분 사이에 평범하지 않은 게 있는 것 같아서요...”“민주야.”얼굴에 있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지며 한구운의 표정은 음울하고 위협적으로 변했다. 평소처럼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지만 서민주는 그 속에 깔린 공포스러운 의미를 느꼈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사과하기 시작했다.“미, 미안해요. 구운 씨...”보통이라면 약혼자 사이에 약간의 심술궂은 다툼은 애정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번에는 한구운의 표정이 달랐다.서민주는 처음으로 그가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그러나 다음 순간, 한구운은 그녀를 부드럽게 안으며 칭찬했다.“착하지. 우리 민주.”한구운의 잘생긴 얼굴에는 끝없는 애정이 담겨 있는 듯 보였다.그러자 금세 한구운의 품에 빠져들며 서민주는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조금 전의 불쾌한 감정은 순식간에 잊혀지고 말이다.서민주는 그의 품에 고개를 파묻으며 부끄러운 듯 말했다.“구운 씨, 오늘 밤 구운 씨네 집으로 갈게요...”그녀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만난 지 두 달에 약혼까지 하게 되었으니 서민주는 이제 연인 사이의 스킨십 진도를 나가도 될 때라 생각했다.이내 한구운은 가볍게 웃으며 무거운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내 집에 오겠다니... 내가 너를 삼켜버릴까 봐 두렵지 않아?”그 말에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지며 서민주는 한구운의 허리를 더욱 꽉 껴안
아름이의 실종 이후, 곽경천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각 방면에서 아이를 찾기 위해 애썼지만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그는 원지민의 상황도 주시하고 있었으며 그녀가 외부인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소식을 접하고 윤혜인에게 전했다.하지만 윤혜인은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이 원지민이라고 생각했다.몇 초 동안 생각한 후 윤혜인은 말했다.“오빠, 원씨 가문 사람들을 계속 주시해줘. 나는 병원에 가서 원지민을 지켜볼게.”곽경천은 말했다.“병원에 가도 만날 수 없을 거야. 원지민은 감시받고 있거든.”비록 아직 명확한 증거가 없었지만 원지민은 여전히 혐의를 벗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경찰은 그녀를 격리 병실에 두기로 했다.“알아. 주변에서 상황을 살펴볼게.”윤혜인은 이렇게 대답하며 바로 행동에 나섰다.병원에서 잠시 지켜보던 중, 윤혜인은 뜻밖에도 문현미가 원지민의 병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원지민이 병실에서 만나고 싶어 한 유일한 사람이 바로 문현미였던 것이다.문현미는 병실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있는 원지민을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날 찾았어?”“어머님...”원지민은 여전히 예전처럼 문현미를 ‘어머님'라고 불렀지만 문현미는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했다.문현미는 한 장의 감정 보고서를 원지민의 얼굴에 내던지며 날카롭게 말했다.“어머님이라고 부르지 마. 우리 집 준혁이든 나든 너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원지민은 감정 보고서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처음에 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아이가 임호의 아이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지민은 오직 한 가지 생각만 하게 되었다.바로 이 아이를 이준혁의 아이로 만들겠다는 것 말이다.원래는 주사기로 그를 협박하려 했지만 이준혁이 그 ‘천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졌다.처음엔 받아들일 수 없었던 상황이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원지민이 입술을 가리더니 깔깔 웃어대기 시작했다.“어머님,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냥 친구가 말해줘서 알고 있었을 뿐이에요. 저 모함할 생각하지 마세요. 너무 무서워요. 근데..”원지민이 멈칫하더니 억지로 쥐어짠 눈물을 닦아내는 척하며 말했다.“금방 임산부를 함부로 대하려고 한 거 사람들이 다 봤어요...”문현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원지민이 일부러 쇼하면서 목격자까지 얻은 것이다. 이 여자는 악독하다는 말로 묘사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모기 같았다.문현미는 화가 치밀어올라 눈시울마저 붉어졌다.“내 손녀 어디 숨겼어. 얼른 내놓지 못해? 내가 귀신이 돼서라도 너 가만히 놔두나 봐라.”원지민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이더니 느긋하게 말했다.“어머님, 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성격이 더 급해지시는 거예요? 제가 드린 약 꼬박꼬박 드시고 있죠? 제가 어머님을 왜 해치겠어요. 약을 안 드시니까 지금 이렇게 화를 참지 못하시는 거예요.”문현미는 다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녀가 어디 갔는지 알 수가 없으니 정말 마음이 바질바질 타는 것 같았다. 할머니인 문현미도 그런데 윤혜인은 오죽하겠는가.이준혁이 사라지고 문현미는 주변 사람들의 민낯을 알아보게 되었다.윤혜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준혁이 떠난 자리를 넘보는 하이에나들 같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문현미는 전에 눈이 멀어 며느리를 밀어낸 빌런이 되었고 아들 이준혁이 윤혜인을 잃고 몇 년간 슬픔 속에 지내게 했다.윤혜인이 강에 빠진 게 문현미 잘못은 아니지만 생각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었다. 그때 막지만 않았다면, 윤혜인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면 두 사람이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알콩달콩 재미난 삶을 살았을 것이다.사람은 잃고 나서야 후회하고 아파하게 된다.문현미는 지금 손녀가 안전하게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기만을 빌었다.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하든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설사 그게 목숨일지라도 말이다.문현미는 애써 진정
“쯧쯧...”원지민이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또 다급해하시네요. 아직 말 안 끝났잖아요.”원지민이 까만색 핸드폰을 꺼내 문현미에게 건네주며 귀띔했다.“전화에서 알려주는 대로 하면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일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면 안 돼요. 그러면 앞으로 영원히 사랑하는 손녀를 만날 수 없을 거예요.”원지민은 이렇게 말하면서 껄껄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묘하게 소름이 끼쳤다.문현미는 원지민이 독한 여자라는 걸 알았기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병원에서 나와 얼마 걸지도 못했는데 앞을 지키고 있던 윤혜인과 마주쳤다.윤혜인은 거리낌 없이 문현미의 팔을 잡으며 애원했다.“아주머니, 원지민이 뭐라든가요? 아름이 행방을 알고 있든가요?”문현미가 침묵했다.시간이 일분일초 지나가자 윤혜인은 다급해 미칠 지경이었다. 골든 타임 48시간이 거의 다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곽아름의 행방은 전혀 단서가 잡히지 않았다.곽경천이 강력하게 항의하는 바람에 경찰서에 입건되긴 했지만 여전히 아무 단서도 없었다.곽아름은 홍 아주머니가 데려갔기에 경찰은 아는 사람의 유괴라고 의심해 홍 아줌마의 주변 사람들을 조사하는 데 주력했다. 구지윤도 홍 아주머니의 딸로서 소환 조사를 받았다.윤혜인은 홍 아주머니가 곽아름을 유괴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홍 아주머니는 곽아름을 친손녀처럼 아끼던 사람이었다.하지만 경찰은 믿지 않았고 새로운 단서도 더 나오지 않았다.윤혜인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지만 문현미가 부축했다. 윤혜인이 울먹이며 문현미에게 물었다.“아주머니, 아름이 소식 알고 있죠? 제발 알려주시면 안 돼요?”문현미는 한참 고민하다가 버벅거리며 말했다.“아니... 없어...”윤혜인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눈치는 아니었다.윤혜인이 울면서 말했다.“아름이 어릴 때부터 자폐증 증상이 있었어요. 제때 치료를 받아서 심각한 후유증으로 발전하지 않은 거예요. 환경이 바뀌면 병이 다시 도질 수도 있어요.
“같은 배에 탔는데 같은 마음은 아니구나. 무슨 일 있으면 둘이 토론하고 다시 얘기해.”“...”상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윤혜인이 전화를 끊었다.역겨운 사람끼리 서로 물고 뜯게 할 생각이었다. 개들이 싸워봤자 털만 잔뜩 먹을 뿐 얻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운전기사가 윤혜인에게 물었다.“아가씨, 어디로 모실까요?”윤혜인이 대답했다.“잠깐만요.”그러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오빠, 문현미 아주머니 위치 좀 파악해 줄 수 있어?”곽경천은 얼른 아래 사람에게 지시하더니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조사하라 했어. 아참, 나도 단서를 좀 찾아냈는데 그 길목 바로 아래 길목에 그 시간대에 지나간 184대의 차량 중 까만 밴 하나가 대포차더라고. 그 차에 아름이가 유괴되었을 수도 있어.”곽경천도 단서를 찾기 위해 밤새 눈을 붙이지 못했다. 몇몇 수하와 밤을 새우며 100여 대나 되는 차량의 가정과 인간관계, 그리고 혐의가 있는지까지 조사했다.곽경천이 다시 물었다.“근데 이준혁 어머니 행방은 왜? 혐의점이 있어?”윤혜인이 말했다.“지금 아름이 찾으러 가는 것 같아서.”곽경천이 미간을 찌푸렸다.“아름이를?”“아직 설명하자면 일러. 빨리 위치 추적이나 해줘. 찾으러 가게.”“응. 보냈어.”곽경천은 문현미의 위치를 윤혜인의 핸드폰으로 보냈다.“잠깐만 기다려. 같이 가자.”곽경천이 말했다.“지금 바로 갈 거야. 끊어.”윤혜인이 운전기사에게 위치를 알려주며 그쪽으로 가달라고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윤혜인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그 위치가 10분째 미동도 없었기 때문이다.아무리 차가 막힌다 해도 서울에서 이렇게 꽉 막힌 도로는 드물었다. 다행히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윤혜인은 바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길가에는 멈춰 선 차가 보이지 않았다.운전기사에게 잠깐 차를 대라고 하고는 직접 찾으러 내려갔다. 한 바퀴 빙 둘러봤지만 그 어떤 차량의 흔적도 없었다.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게 몇 바퀴 더 돌고 나서야 윤혜인은
윤혜인이 안으로 들어가 차량 행적이 끊긴 곳에서 내렸다.습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간 윤혜인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멀지 않은 곳에 문현미가 아이를 안고 서 있었는데 곽아름이었다.“아름아.”윤혜인이 울면서 그쪽으로 다가가 아이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눈물이 마치 줄 끊어진 구슬처럼 하염없이 흘렀다.“아름아, 드디어 너를 찾았어...”하지만 곽아름은 지금 윤혜인의 말에 대꾸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치 약에 취한 것처럼 말이다.윤혜인은 얼른 곽아름의 맥박을 짚어봤다. 꽤 안정적인 편이었다.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아 병원에 가서 검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윤혜인이 고개를 들어 문현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아주머니, 아름이 옆에 다른 사람은 없었나요? 아름이를 돌보던 아주머니도 같이 사라졌거든요.”문현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바짝 긴장한 채 곽아름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아주머니, 아름이 어디서 찾은 거예요? 한번 가보고 싶어서요.”윤혜인이 물었다.문현미가 강가를 가리켰다. 멀지 않은 곳에 녹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아이는 저 나무 아래서 자고 있었어.”핸드폰 알림에 따라 찾아오면서도 원지민이 다른 수단을 썼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곽아름을 찾을 줄은 몰랐다.윤혜인은 지금 문현미가 어떻게 곽아름을 찾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건 일단 둘째 치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곽아름의 몸 상태와 홍 아주머니의 행방을 찾는 것이었다.이때 윤혜인의 핸드폰이 울렸다. 곽경천이 걸어온 전화였다.문현미는 아이를 안고 있는 윤혜인이 전화를 받기 힘들어 보이자 손을 내밀었다.“내가 안을게.”윤혜인이 문현미의 자애로운 눈빛을 보고는 잠깐 망설이다가 곽아름을 넘겨줬다.그러더니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받자마자 곽경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혜인아, 홍 아주머니 찾았어.”“찾았다고?”“길에 쓰러져 있는 걸 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