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은 귀가 뜨거워지며 고개를 저었다.“이제 그만해요."몸이 아직도 피곤한 상태였다.남자들이 다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준혁은 다양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가끔은 괜찮지만 너무 자주 하다 보면 그녀는 버틸 수 없었다.예전에도 이준혁은 윤혜인이 까다롭다고 말하며 항상 그녀를 ‘달래준’ 해준 후에야 시작했다.“오래 하지 않을게.”이준혁은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오늘 밤에 올 거야?”조금 전 그녀를 ‘달래주느라’ 거의 시간을 다 보낸 탓에 제대로 시작도 못 했고, 그래서 이준혁은 아쉬움이 남았다.하지만 윤혜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늘 밤은 아름이랑 함께 있어야 해요.”“그럼 내가 별장으로 갈게.”이준혁은 자신이 찾아가는 걸 개의치 않았다.“안 돼요.”윤혜인은 조금 겁이 났다.또다시 그에게 괴롭힘을 당할까 봐서 말이다.그러나 이내 이준혁의 실망한 표정을 보고 윤혜인은 마음이 아팠다.조금 전 그가 자신에게 최고의 경험을 주기 위해 얼마나 참았을지 생각해 보니, 윤혜인은 이러는 것이 조금 지나친 것 같았다.“내일 밤에요.”이준혁을 바라보자 윤혜인은 얼굴이 붉어졌다.“내일 밤에 별장에 와요. 아름이한테 준혁 씨를 정식으로 소개하고 싶어요.”그러자 순간 이준혁의 눈빛이 밝아지며 숨조차 고르지 못했다.“정말?”“네, 아름이도 자신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이전에 아름이는 이준혁을 ‘대디'라고 부를 때 언제나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그녀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표정을 지으면 아름이는 순순히 ‘삼촌'이라고 불렀다.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윤혜인은 마음이 아프고 서글펐다.아름이는 이준혁을 정말 아빠라고 불러도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그녀는 진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다.갑자기 이준혁은 목이 멘 채로 윤혜인을 꽉 안았다.“고마워... 정말 고마워, 여보.”이준혁은 그녀를 존중했고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 일을 수백 번은 생각했을 것이다.“난 좋은 아빠가 될 거야. 너희
“안 돼요!”속눈썹이 떨리고 윤혜인은 얼굴이 새빨개졌다.‘이런 장소에서 한 번으로도 부족한 건가, 얼마나 더 원하냐고...’그러자 이준혁은 그녀의 허리 쪽을 살짝 눌렀다.“왜 안 돼? 아까 만족하지 못했어?”얼굴은 어느새 토마토처럼 붉어졌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지금 이거 일부러 그러는 게 분명해!’조금 전 이준혁은 자꾸 그녀를 놀려서 억지로 소리를 지르게 만들었다.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윤혜인은 그의 뜻대로 해버렸다.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윤혜인은 그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이준혁은 그녀가 만족하지 못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오히려 윤혜인은 매우 만족했다.그녀의 반응이 전보다 훨씬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이준혁의 노력이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항상 부끄러워하며 얌전하게 굴던 그녀를 조금만 밀어붙이면 두 사람 모두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그 장면을 떠올리며 이준혁은 미소를 짓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음번엔 저녁에 와, 사무실 큰 창에서 보는 저녁 풍경이 정말 좋거든...”너무나 귀에 거슬리는 말이었다.윤혜인의 심장은 거의 터질 것 같았다.“준혁 씨...!”뒤이은 말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끊기고 말았다.이준혁은 그녀의 볼을 꼬집고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가자.”차에 다다랐을 때, 윤혜인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은을 보았다.여은은 임무를 마치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다.이전 경호원은 몇 가지 문제가 있어서 윤혜인을 따라다니기 어려웠고 그다지 안전하지 않았다.이준혁은 여은에게도 완전히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윤혜인을 가까이에서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그래서 여은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경계를 늦추지 마세요.”여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대표님.”그렇게 이준혁은 윤혜인의 차가 떠나는 것을 지켜본 후에야 천천히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 또 다른 차가 윤혜인의 차량을 따라나섰다.윤혜인은 바로 별장으로 돌아갔다.그
원진우는 ‘진우야’라는 호칭을 듣고 순간 표정은 물론이고 몸도 얼어붙었다.윤아름은 그의 이상한 표정을 보고 고개를 들며 약간 의아해했다.“진우 씨, 왜 그래?”원진우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말했다.“아니야, 기분이 어때?”윤아름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약간 찡그렸다.“왜인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너무 아파.”그러자 원진우는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부드럽게 마사지해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의사 불러서 한 번 봐달라고 할게.”윤아름은 피곤한 표정으로 ‘응’이라고 대답했다.그렇게 원진우가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꺼냈을 때 침대 위의 윤아름이 물었다.“진우야, 우리 부모님은 어디 계셔?”탁!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졌다.원진우는 윤아름의 얼굴을 주시하며 차가운 기운을 발산했다.하지만 윤아름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했다.“진우야, 핸드폰 떨어뜨렸어.”원진우는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무시하고 그녀에게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뭐라고 했더라...”윤아름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아빠... 맞아, 부모님은 왜 집에 없지?”눈빛이 차가워진 채로 원진우는 방을 둘러보았다.방의 인테리어는 그녀의 소녀 시절 방과 똑같았기에 윤아름이 이런 질문을 한 말도 했다.“아름아, 네 부모님은...” 그러나 원진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윤아름이 끊었다.“엄마 불러줘, 내가 줄곧 혼수상태였으니 엄마가 걱정하셨을 거야...”원진우는 완전히 말문이 막혔다.깊고 복잡한 감정이 오가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잠시 후 원진우가 다시 말을 꺼냈다.“네 엄마가 널 걱정하고 있다고?”“응, 왜 그래?”“아름아...”원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너 설마 일부가 기억 안 나는 거 아니야?”그러자 윤아름은 아름다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내가 뭘 잊어버렸는데?”원진우는 말했다.“아름아, 너 몇 살이지?”“18살이지!”원진우는 평온하게 말했다.“난 몇 살인데?”
“건강하다고?” 원진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지만 그 미소에는 차가운 기운이 섞여 있었다.“내가 반나절이나 진찰을 받게 했는데 그게 당신 결론인가?”그의 미소는 날카롭고 의사는 마치 단두대에 오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러더니 갑자기 의사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며 빌었다.“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오늘 아름이가 깨어난 건 좋은 일이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지. 하지만...”원진우는 불쾌한 기분을 억누르며 의사의 머리카락을 잡아채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당장 사라져!”호화로운 저택의 구조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다.한쪽은 대문으로 통하는 길, 다른 쪽은 깊고 어두운 지하실로 이어지는 길이었다.의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머리를 감싸며 계단을 굴러 내려갔다. 마치 공처럼 몸을 굴리며 내려갔다.다른 건 모르겠지만 의사는 자신의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에만 해도 감사했다.원진우가 지금까지 바꾼 의사는 열 명은 되지 않지만 여덟 명은 족히 된다.하지만 바뀐 모든 의사들은 한결같이 잔인한 죽음을 맞이했다.많은 의사들은 원진우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다.보상은 상당했지만 그만큼 목숨을 걸어야 했기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목숨을 잃는 것은 싫었다.그러나 원진우의 지목을 받은 의사들은 오지 않으면 죽을 것이며 운이 좋다면 일 년 반 정도는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저택 안은 매우 조용했다. 도우미들은 발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걸었다.원진우는 지하실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침실로 들어갔다.윤아름을 돌보던 도우미들은 원진우가 들어오자마자 정중하게 낮은 목소리로 인사했다.곧이어 원진우는 손짓으로 도우미들에게 나가라고 지시했고 그들은 즉시 명령을 따랐다.침대 옆으로 다가가 앉은 원진우를 보며 윤아름은 약간 서운한 얼굴로 물었다.“진우야, 우리 엄마는 왜 아직 안 와?”그러자 원진우는 한 손을 윤아름의 다리 옆에 두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엄마는 안 오실 거야.
“그래, 자.”원진우는 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충분히 있었으니 말이다.아름다운 윤아름이 눈을 감고 호흡이 점점 안정되기까지 기다린 후, 원진우의 얼굴에서의 감정도 점차 사라졌다.조금 전의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어둠이 깃들었다.그는 손을 들어 여자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수많은 기억을 떠올렸다.윤아름을 만났을 때, 그는 원씨 가문의 버려진 자식이었다.그의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평범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하면서 집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었다.원진우의 아버지는 집안에서 사랑받지는 못했지만 생활하는 데에 부족함은 없었다.그러나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사랑은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사라졌다.돈이 부족할 때, 다툼이 점점 많아졌다.결국 어느 날, 아버지는 원진우와 그의 어머니를 버리기로 결심했다.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견디지 못한 원진우의 어머니는 중고차를 빌려 아버지를 치어 죽이고 자신도 현장에서 사망했다.그리고 이후 원진우는 이웃집 사람에게 발견되어 키워졌다.이웃은 술주정뱅이로 술에 취하면 그를 때리거나 구박했다.원진우는 자신의 정체성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양부의 학대 아래서 자랐다.어느 날, 양부는 술에 취해 넘어져 뒷머리를 다쳤고 원진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하지만 원진우는 차갑게 그를 지나쳤다.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양부가 구조 요청을 하려다가 촛대를 넘어뜨린 것 같았다.하지만 원진우는 불길이 점점 커지는 것을 차분하게 바라보며 그 술주정뱅이를 구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작은 마을을 떠난 후, 원진우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고 6살의 윤아름을 우연히 구했다.윤아름의 부모는 원진우가 부모 없는 아이임을 알고 좋은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였다.원진우는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호신술에 흥미를 느껴 많은 것을 배웠고 이를 계기로 윤아름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윤아름이 성장함에 따라 두 사람의 감정은 점점 깊어졌다.윤아름은 순수하고 선량한 마음으로
잠에 깊이 빠져 있던 여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주변은 황혼이 내려앉았고 그녀의 손은 침대 시트를 꽉 쥐고 있었다.아름다운 눈에서 눈물이 진주처럼 흘러내렸다.‘원진우, 이 괴물! 이길 수 없으니 신중해야 해.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 반드시 탈출해야 해! 딸이 보고 싶어. 그리고 그 짧은 생을 마감한 내 아들도...’...다음 날, 아름이는 오늘 대디 이준혁이 온다는 소식에 들떠 있었다.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수십 벌의 드레스를 꺼내어 가장 예쁜 것을 골라 그와 함께 놀러 가려 했다.아침부터 점심까지 아름이는 그 이야기만 했다.윤혜인은 웃으면서 아이에게 말했다.“대디는 퇴근 후에나 올 거야.”그러자 아름이는 그 큰 눈을 반짝였다.“그럼 우리 가서 대디 퇴근하는 거 기다리면 안 돼요? 대디 차 타고 집에 오고 싶어요.”결국 아름이의 성화를 못 이긴 윤혜인은 이준혁에게 물어본 후 아름이와 함께 이선그룹으로 가서 그를 기다렸다.하지만 그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차 안에서 기다렸다.윤혜인은 아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미리 말했다.“아름아, 대디랑 엄마가 너에게 할 말이 있어.”그러자 아름이는 큰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엄마, 나 맞춰봐도 돼요?”“응, 아름이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할 것 같은데?”아름이는 똑똑하게도 단번에 맞혔다.“대디가 진짜 아름이의 아빠가 되는 거예요?”윤혜인은 놀랐다.“아름아, 너...”“엄마,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그러는데 아이들은 하늘에서 부모님을 선택해서 태어난대요. 아름이는 엄마랑 가까운 것처럼 대디에게도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는 대디가 진짜 아빠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따뜻한 아름이의 설명에 윤혜인은 미소를 지었다.“아름아, 진짜 아빠가 무슨 뜻인지 알아?”“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진짜 아빠는 유일한,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아빠란 뜻이야.”윤혜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했다.“아빠는 아름이의 유일한 아빠고 아름이는 아빠의 유일한 아기야.”그러자 아름이는
윤혜인은 이 한마디만 듣고 얼른 곽아름의 입을 막고 뒤로 물러섰다.차에 도착해서도 곽아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곽아름은 고개를 돌려 윤혜인을 바라봤다.“엄마, 내가 아빠 유일한 딸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왜 아줌마는 아빠한테 아이가 또 있다고 하는 거예요?”이 말에 윤혜인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준혁이 설명하기를 기다려야 했고 이 일에 곽아름을 포함해서는 안 되었다.“아름아, 아빠한테 물어보고 대답해 줄게.”윤혜인은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곽아름도 이제 다섯 살이었고 또래보다 성숙했기에 어설프게 속였다가 들키면 상처받을 수도 있다.“그래요. 그러면 아빠랑 잘 얘기해 봐요. 싸우지 말고.”곽아름은 어른처럼 당부했다.“응, 아빠랑 잘 확인해 볼게.”윤혜인은 여은을 시켜 집으로 데려다주라고 하고는 혼자 남았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었다. 원지민이 어쩌다 이준혁의 아이를 갖게 되었는지 말이다.마음이 착잡했다. 화해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이가 단단해지기도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원지민의 말이 진짜라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사고하고 해도 남편이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윤혜인은 자꾸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한참 지나서야 이준혁이 전화를 걸어왔다.아직 주차장에 있다는 말에 이준혁이 부랴부랴 내려왔다.차에 올라타 보니 윤혜인밖에 없었다. 이준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름이 먼저 돌려보냈어요.”이준혁은 덤덤한 표정으로 윤혜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미안, 회의하느라 늦었어.”이 말에 윤혜인은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다.이준혁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우연히 마주치지 않는다면 이 일을 숨길 생각인 걸까.“회의를 이렇게 오래 해요?”이준혁이 멈칫하더니 부드럽게 말했다.“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이 사과에 윤혜인은 완전히 실망했다.어물쩍 넘어간다는 건 말하기 싫다는 의미였다. 순간 윤혜인은 모든 게
집에 돌아온 윤혜인은 핸드폰을 꺼두고 푹 잤다.곽아름은 얌전했다. 윤혜인이 아파 보이자 칭얼거리지 않고 홍 아줌마가 시킨 대로 씻고 바로 잠에 들었다.윤혜인은 이튿날 오후까지 쭉 잤다.잠에서 깬 윤혜인은 작업실에서 찾을까 봐 전원을 켰다.핸드폰엔 구지윤이 보내온 문자밖에 없었다. 작업실 주문은 예정대로 잘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푹 쉬라는 문자였다.하지만 정작 이준혁은 밤새 문자 한 통이 없었다.윤혜인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이게 뭘 설명하는지 알고 있었다.윤혜인은 씁쓸하게 웃었다.‘이렇게 끝인가 보지...’이렇게 생각한 윤혜인은 정리하고 작업실로 향했다.어떤 상황에서든 그녀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건 업무뿐이었다.작업실에서 바쁘게 돌아치다 보니 다른 잡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그렇게 날이 어두워졌다. 구지윤이 같이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의 업무를 토론해 보자고 했다.두 사람은 회사 근처에 위치한 상가로 향했다.절반쯤 먹었는데 구지윤이 갑자기 걸려 온 업무 전화에 먼저 자리를 비웠다.윤혜인은 저녁을 먹고 곽아름에게 뭘 좀 사주려고 1층에 있는 어린이용품 매장으로 향했다.매장에 들어가려는데 점원이 앞을 가로막았다.“죄송합니다. 매장은 아직 개방 전입니다.”윤혜인이 멈칫하더니 물었다.“오픈한 거 아니에요?”“매장 VIP를 모시는 중이라, 죄송합니다.”매장은 가끔 이런 상황이 있었다. 레벨이 높은 VIP가 올 때면 매장을 닫고 오직 그 VIP에게만 집중했다.윤혜인이 상황을 이해하고 돌아서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윤혜인 씨.”고개를 든 윤혜인의 표정이 순간 차가워졌다.원지민이 배를 내밀고 천천히 안에서 걸어 나왔다. 문현미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부축했다.“윤혜인 씨도 어린이용품 보러 온 거예요? 누구 사주려고요?”원지민은 윤혜인이 사라진 5년간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물은 것이었다.원지민의 배는 사실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 3개월쯤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일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