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우는 ‘진우야’라는 호칭을 듣고 순간 표정은 물론이고 몸도 얼어붙었다.윤아름은 그의 이상한 표정을 보고 고개를 들며 약간 의아해했다.“진우 씨, 왜 그래?”원진우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말했다.“아니야, 기분이 어때?”윤아름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약간 찡그렸다.“왜인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너무 아파.”그러자 원진우는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부드럽게 마사지해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의사 불러서 한 번 봐달라고 할게.”윤아름은 피곤한 표정으로 ‘응’이라고 대답했다.그렇게 원진우가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꺼냈을 때 침대 위의 윤아름이 물었다.“진우야, 우리 부모님은 어디 계셔?”탁!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졌다.원진우는 윤아름의 얼굴을 주시하며 차가운 기운을 발산했다.하지만 윤아름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했다.“진우야, 핸드폰 떨어뜨렸어.”원진우는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무시하고 그녀에게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뭐라고 했더라...”윤아름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아빠... 맞아, 부모님은 왜 집에 없지?”눈빛이 차가워진 채로 원진우는 방을 둘러보았다.방의 인테리어는 그녀의 소녀 시절 방과 똑같았기에 윤아름이 이런 질문을 한 말도 했다.“아름아, 네 부모님은...” 그러나 원진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윤아름이 끊었다.“엄마 불러줘, 내가 줄곧 혼수상태였으니 엄마가 걱정하셨을 거야...”원진우는 완전히 말문이 막혔다.깊고 복잡한 감정이 오가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잠시 후 원진우가 다시 말을 꺼냈다.“네 엄마가 널 걱정하고 있다고?”“응, 왜 그래?”“아름아...”원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너 설마 일부가 기억 안 나는 거 아니야?”그러자 윤아름은 아름다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내가 뭘 잊어버렸는데?”원진우는 말했다.“아름아, 너 몇 살이지?”“18살이지!”원진우는 평온하게 말했다.“난 몇 살인데?”
“건강하다고?” 원진우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지만 그 미소에는 차가운 기운이 섞여 있었다.“내가 반나절이나 진찰을 받게 했는데 그게 당신 결론인가?”그의 미소는 날카롭고 의사는 마치 단두대에 오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러더니 갑자기 의사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며 빌었다.“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오늘 아름이가 깨어난 건 좋은 일이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지. 하지만...”원진우는 불쾌한 기분을 억누르며 의사의 머리카락을 잡아채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당장 사라져!”호화로운 저택의 구조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다.한쪽은 대문으로 통하는 길, 다른 쪽은 깊고 어두운 지하실로 이어지는 길이었다.의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머리를 감싸며 계단을 굴러 내려갔다. 마치 공처럼 몸을 굴리며 내려갔다.다른 건 모르겠지만 의사는 자신의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에만 해도 감사했다.원진우가 지금까지 바꾼 의사는 열 명은 되지 않지만 여덟 명은 족히 된다.하지만 바뀐 모든 의사들은 한결같이 잔인한 죽음을 맞이했다.많은 의사들은 원진우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했다.보상은 상당했지만 그만큼 목숨을 걸어야 했기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목숨을 잃는 것은 싫었다.그러나 원진우의 지목을 받은 의사들은 오지 않으면 죽을 것이며 운이 좋다면 일 년 반 정도는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저택 안은 매우 조용했다. 도우미들은 발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걸었다.원진우는 지하실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침실로 들어갔다.윤아름을 돌보던 도우미들은 원진우가 들어오자마자 정중하게 낮은 목소리로 인사했다.곧이어 원진우는 손짓으로 도우미들에게 나가라고 지시했고 그들은 즉시 명령을 따랐다.침대 옆으로 다가가 앉은 원진우를 보며 윤아름은 약간 서운한 얼굴로 물었다.“진우야, 우리 엄마는 왜 아직 안 와?”그러자 원진우는 한 손을 윤아름의 다리 옆에 두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엄마는 안 오실 거야.
“그래, 자.”원진우는 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충분히 있었으니 말이다.아름다운 윤아름이 눈을 감고 호흡이 점점 안정되기까지 기다린 후, 원진우의 얼굴에서의 감정도 점차 사라졌다.조금 전의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어둠이 깃들었다.그는 손을 들어 여자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수많은 기억을 떠올렸다.윤아름을 만났을 때, 그는 원씨 가문의 버려진 자식이었다.그의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평범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하면서 집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었다.원진우의 아버지는 집안에서 사랑받지는 못했지만 생활하는 데에 부족함은 없었다.그러나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사랑은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사라졌다.돈이 부족할 때, 다툼이 점점 많아졌다.결국 어느 날, 아버지는 원진우와 그의 어머니를 버리기로 결심했다.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견디지 못한 원진우의 어머니는 중고차를 빌려 아버지를 치어 죽이고 자신도 현장에서 사망했다.그리고 이후 원진우는 이웃집 사람에게 발견되어 키워졌다.이웃은 술주정뱅이로 술에 취하면 그를 때리거나 구박했다.원진우는 자신의 정체성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양부의 학대 아래서 자랐다.어느 날, 양부는 술에 취해 넘어져 뒷머리를 다쳤고 원진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하지만 원진우는 차갑게 그를 지나쳤다.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양부가 구조 요청을 하려다가 촛대를 넘어뜨린 것 같았다.하지만 원진우는 불길이 점점 커지는 것을 차분하게 바라보며 그 술주정뱅이를 구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작은 마을을 떠난 후, 원진우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고 6살의 윤아름을 우연히 구했다.윤아름의 부모는 원진우가 부모 없는 아이임을 알고 좋은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였다.원진우는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호신술에 흥미를 느껴 많은 것을 배웠고 이를 계기로 윤아름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윤아름이 성장함에 따라 두 사람의 감정은 점점 깊어졌다.윤아름은 순수하고 선량한 마음으로
잠에 깊이 빠져 있던 여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주변은 황혼이 내려앉았고 그녀의 손은 침대 시트를 꽉 쥐고 있었다.아름다운 눈에서 눈물이 진주처럼 흘러내렸다.‘원진우, 이 괴물! 이길 수 없으니 신중해야 해.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 반드시 탈출해야 해! 딸이 보고 싶어. 그리고 그 짧은 생을 마감한 내 아들도...’...다음 날, 아름이는 오늘 대디 이준혁이 온다는 소식에 들떠 있었다.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수십 벌의 드레스를 꺼내어 가장 예쁜 것을 골라 그와 함께 놀러 가려 했다.아침부터 점심까지 아름이는 그 이야기만 했다.윤혜인은 웃으면서 아이에게 말했다.“대디는 퇴근 후에나 올 거야.”그러자 아름이는 그 큰 눈을 반짝였다.“그럼 우리 가서 대디 퇴근하는 거 기다리면 안 돼요? 대디 차 타고 집에 오고 싶어요.”결국 아름이의 성화를 못 이긴 윤혜인은 이준혁에게 물어본 후 아름이와 함께 이선그룹으로 가서 그를 기다렸다.하지만 그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차 안에서 기다렸다.윤혜인은 아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미리 말했다.“아름아, 대디랑 엄마가 너에게 할 말이 있어.”그러자 아름이는 큰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엄마, 나 맞춰봐도 돼요?”“응, 아름이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할 것 같은데?”아름이는 똑똑하게도 단번에 맞혔다.“대디가 진짜 아름이의 아빠가 되는 거예요?”윤혜인은 놀랐다.“아름아, 너...”“엄마,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그러는데 아이들은 하늘에서 부모님을 선택해서 태어난대요. 아름이는 엄마랑 가까운 것처럼 대디에게도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는 대디가 진짜 아빠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따뜻한 아름이의 설명에 윤혜인은 미소를 지었다.“아름아, 진짜 아빠가 무슨 뜻인지 알아?”“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진짜 아빠는 유일한,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아빠란 뜻이야.”윤혜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했다.“아빠는 아름이의 유일한 아빠고 아름이는 아빠의 유일한 아기야.”그러자 아름이는
윤혜인은 이 한마디만 듣고 얼른 곽아름의 입을 막고 뒤로 물러섰다.차에 도착해서도 곽아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곽아름은 고개를 돌려 윤혜인을 바라봤다.“엄마, 내가 아빠 유일한 딸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왜 아줌마는 아빠한테 아이가 또 있다고 하는 거예요?”이 말에 윤혜인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준혁이 설명하기를 기다려야 했고 이 일에 곽아름을 포함해서는 안 되었다.“아름아, 아빠한테 물어보고 대답해 줄게.”윤혜인은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곽아름도 이제 다섯 살이었고 또래보다 성숙했기에 어설프게 속였다가 들키면 상처받을 수도 있다.“그래요. 그러면 아빠랑 잘 얘기해 봐요. 싸우지 말고.”곽아름은 어른처럼 당부했다.“응, 아빠랑 잘 확인해 볼게.”윤혜인은 여은을 시켜 집으로 데려다주라고 하고는 혼자 남았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었다. 원지민이 어쩌다 이준혁의 아이를 갖게 되었는지 말이다.마음이 착잡했다. 화해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이가 단단해지기도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원지민의 말이 진짜라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사고하고 해도 남편이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윤혜인은 자꾸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한참 지나서야 이준혁이 전화를 걸어왔다.아직 주차장에 있다는 말에 이준혁이 부랴부랴 내려왔다.차에 올라타 보니 윤혜인밖에 없었다. 이준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름이 먼저 돌려보냈어요.”이준혁은 덤덤한 표정으로 윤혜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미안, 회의하느라 늦었어.”이 말에 윤혜인은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다.이준혁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우연히 마주치지 않는다면 이 일을 숨길 생각인 걸까.“회의를 이렇게 오래 해요?”이준혁이 멈칫하더니 부드럽게 말했다.“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이 사과에 윤혜인은 완전히 실망했다.어물쩍 넘어간다는 건 말하기 싫다는 의미였다. 순간 윤혜인은 모든 게
집에 돌아온 윤혜인은 핸드폰을 꺼두고 푹 잤다.곽아름은 얌전했다. 윤혜인이 아파 보이자 칭얼거리지 않고 홍 아줌마가 시킨 대로 씻고 바로 잠에 들었다.윤혜인은 이튿날 오후까지 쭉 잤다.잠에서 깬 윤혜인은 작업실에서 찾을까 봐 전원을 켰다.핸드폰엔 구지윤이 보내온 문자밖에 없었다. 작업실 주문은 예정대로 잘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푹 쉬라는 문자였다.하지만 정작 이준혁은 밤새 문자 한 통이 없었다.윤혜인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이게 뭘 설명하는지 알고 있었다.윤혜인은 씁쓸하게 웃었다.‘이렇게 끝인가 보지...’이렇게 생각한 윤혜인은 정리하고 작업실로 향했다.어떤 상황에서든 그녀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건 업무뿐이었다.작업실에서 바쁘게 돌아치다 보니 다른 잡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그렇게 날이 어두워졌다. 구지윤이 같이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의 업무를 토론해 보자고 했다.두 사람은 회사 근처에 위치한 상가로 향했다.절반쯤 먹었는데 구지윤이 갑자기 걸려 온 업무 전화에 먼저 자리를 비웠다.윤혜인은 저녁을 먹고 곽아름에게 뭘 좀 사주려고 1층에 있는 어린이용품 매장으로 향했다.매장에 들어가려는데 점원이 앞을 가로막았다.“죄송합니다. 매장은 아직 개방 전입니다.”윤혜인이 멈칫하더니 물었다.“오픈한 거 아니에요?”“매장 VIP를 모시는 중이라, 죄송합니다.”매장은 가끔 이런 상황이 있었다. 레벨이 높은 VIP가 올 때면 매장을 닫고 오직 그 VIP에게만 집중했다.윤혜인이 상황을 이해하고 돌아서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윤혜인 씨.”고개를 든 윤혜인의 표정이 순간 차가워졌다.원지민이 배를 내밀고 천천히 안에서 걸어 나왔다. 문현미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부축했다.“윤혜인 씨도 어린이용품 보러 온 거예요? 누구 사주려고요?”원지민은 윤혜인이 사라진 5년간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물은 것이었다.원지민의 배는 사실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 3개월쯤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일부러
윤혜인은 지금 원지민이 혼전 임신했다고 비아냥대고 있었다.원지민의 눈빛이 순간 매섭게 변했지만 이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가냘프게 생긴 윤혜인을 만만하게 생각했지만 말발이 이렇게 셀 줄은 몰랐다.‘흥. 이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알고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원지민이 이내 숨을 고르고는 배를 살살 어루만지며 수줍게 말했다.“이 아이 준혁이 아이예요.”윤혜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준혁 씨가 인정했어요?”이 말에 원지민이 멈칫했다. 윤혜인이 이렇게 덤덤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원지민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에요?”윤혜인은 이준혁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꼬웠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이준혁이 원지민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만약 좋아한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했는데 진작에 만났을 것이다. 굳이 윤혜인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만날 필요는 없다.가능성을 따져보자면 원지민이 무슨 방법을 써서 아이를 가진 게 그나마 가능성이 제일 컸다. 그리고 아이가 정말 이준혁의 아인지는 더 알아봐야 했다.“전에 원지민 씨가 발표회에서 준혁 씨와 업무 외에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직접 해명하지 않았나요? 배 속의 아이는 친자 감정했나요? 준혁 씨 아이라고 확정 지을 수 있는 거죠?”속사포 질문에 원지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갈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어서야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억제할 수 있었다.윤혜인에게 면박을 주고 싶었지만 되려 말발에 밀려 말문이 막히고 만 것이다.원지민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이를 지켜보던 매장 직원들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혼전 임신뿐만 아니라 다른 비밀도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옆에서 지켜보던 문현미는 원지민이 기싸움에서 밀리자 얼른 편을 들며 윤혜인을 손가락질했다.“지민이 내가 인정한 며느리야. 배 속에 아이도 우리 이씨 가문 핏줄이고. 날짜는 이미 잡았고 식 올리기만 기다리고 있어. 무슨 자격으로 지금 여기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거야?”윤혜인은 이미 문현미에게
문현미는 선생님의 말씀이 그대로 들어맞았다고 생각했다.이준혁이 여러 번 죽을 뻔한 것도 다 이 불길한 여자와 엮여서 그런 거라고 여겼다.얼마나 어ㄹ벼게 얻은 아들인데 절대 무슨 일이 있으면 안 된다.문현미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며 울기 시작했다.“아이고, 젊은이가 사람 치네, 사람을 쳐.”윤혜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또 무슨 꿍꿍이일까.문현미가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말했다.“그냥 내 아들한테서 떨어지라고 했다고 이렇게 밀면 어떡해? 이 나이에 넘어졌다가 죽으면 어떡하려고.”윤혜인은 문현미가 헛소리를 지어낼 정도로 무너졌을 줄은 몰랐다.재벌 집 사모님이 기본적인 이미지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다.원지민은 앞머리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기에 모든 시선은 윤혜인과 문현미에게로 쏠렸다.문현미는 밖에 잘 나오지 않았기에 재벌 집 사모님인 걸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윤혜인은 얼마 전 발표회를 열면서 유명세를 조금 얻었기에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문현미가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아무리 그래도 우리 아들을 꼬셔서는 안 되지. 며느리가 임신한 지도 3개월이 됐는데 험한 말로 협박하기나 하고.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선뜻 문현미를 부축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따가운 시선이 윤혜인에게로 쏠렸다.“인물도 좋은 여자가 왜 내연녀를 자처하는 거지?”“유부남을 꼬신 것도 모자라 본처를 도발하기나 하고. 게다가 시어머니 폭행까지.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아가씨. 일자리나 찾아. 내연 관계는 오래 못 갈뿐더러 끝도 안 좋아.”“직장 있을걸? 전에 뭐 달밤 작업실 사장이라고 했나? 상도 받았던 거 같은데? 그때는 뭐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겠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자랑스럽긴커녕 목덜미 잡고 쓰러지지 않아도 다행이겠네.”“사진 찍어. 찍어서 사람들한테 알려. 아마 꼬신 사람이 한 명이 아닐 수도 있어...”구경꾼들이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용품 매장의 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