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은 화가 치밀어올라 힘껏 그를 밀쳐냈다. 하지만 육경한이 손목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소원도 더는 육경한의 인내심에 도전하지 않았다. 상처를 덧내는 일은 한 번은 있어도 두 번은 있을 수 없다. 아니면 육경한의 성격에 무조건 그녀보다 더 강하게 나올 것이다.소씨 가문을 위해 복수하려면 무모하게 나가서는 안 된다. 목숨을 걸더라도 값진 싸움이 되어야 한다.소원이 더는 발버둥 치지 않자 육경한은 소원의 뒤통수를 꽉 부여잡고 더 가까이 당겼다.키스는 뜨거우면서도 열렬했다.육경한은 자신의 온도로 소원의 분노를 녹여주려 했다.그는 그녀가 굴복하는 모습이 좋았다.그러면서도 더는 그를 도발하지 않은 그녀의 총명함에 몰래 감탄했다.아니면 정말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른다.육경한의 눈썹에 난 상처는 어딘가 흉측해 보였다. 다년간 헬스로 다져진 탄탄한 팔은 소원을 쥐고 흔드는 데 충분했다.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소원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져서야 육경한은 천천히 손을 놓았다.구슬처럼 예쁜 소원의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육경한은 그저 한번 힐끔 쳐다봤을 뿐인데도 가슴이 욱신거렸다.소원이 상처 주는 말을 내뱉기 전에 육경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회사 간다며? 가기 전에 일단 이자부터 좀 받을게.”소원이 멈칫했다. 한참 실랑이를 벌여야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그녀를 놓아줄 거라는 생각도 못 했다.소원은 육경한이 한 말을 다시 곱씹었다.‘조금이라니? 설마 끝도 없이 받을 생각인가? 어림도 없지.’소원이 마치 더러운 오물이라도 닦아내듯 입술을 마구 닦으며 화냈다.“앞으로 한 번만 더 함부로 손대봐. 체면이고 뭐고 없어.”육경한이 웃으며 말했다.“기대할게.”육경한은 체면을 주지 않아야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그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럴만한 인내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원을 앞에 두고 참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소원은 화가 치밀어 올라 말문이 막혔다. 더는 이 변태 같은 놈과 말을 섞기가 싫었다.자
소원은 육경한이 마음이라도 바꿀까 봐 온몸으로 경계했다.“이랬다저랬다하는 건 남자로서 할 짓이 못 되는 거 알지?”육경한은 이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는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내가 남자인지 아닌지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소원은 얼굴이 순간 화끈 달아올랐고 더는 참을 수 없어 욕설을 퍼부었다.“넌 정말 저질이야.”그러더니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육경한은 굳게 닫힌 문을 보며 웃음기가 점점 사라졌다....소원은 별장 앞채를 지나가다가 바닥에 꿇어있는 소종을 보며 걸음을 멈추고는 마치 먼지라도 털어주듯 소종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그런 소종을 비웃었다.“비서님, 육경한이 비서님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소종의 표정이 순간 변했다.그에 반해 소원은 활짝 웃으며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소종이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말로 소종이 육경한을 조금이라도 미워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했다.마음이 갈라서야 기회가 생기게 된다.그리고 소종도 그렇게 억울한 건 아니었다.소원은 별장에서 나오자마자 바깥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육경한이 준비한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소원의 옆엔 육경한의 수하도 함께했다.떠나기 전 소원은 어딘가 음침해 보이는 별장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소종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열쇠 하나가 몸에서 툭 떨어졌다.그가 잊어버린 그 열쇠였다. 소종은 그 열쇠를 주워 들어 다시 주머니에 던져넣었다.방으로 돌아와 보니 육경한은 침대에 기대 있었고 앞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소종이 들어오자 육경한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가져갔어?”소종이 고개를 끄덕였다.육경한이 덤덤하게 말했다.“내려가 봐.”방안은 정적이 흘렀다.육경한은 하얀 벽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당겼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소원아, 나 실망하게 하지 마.’...윤혜인은 육경한의 별장에서 나오고 나서부터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옆에서 운전하
“...”‘이 남자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네!'윤혜인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말했다.“ 제가 언제 준혁 씨의 아이를 낳겠다고 했어요? 저를 빨리 내려주세요.”시간이 지나기 전에 윤혜인은 얼른 약을 먹으려고 했다.윤혜인은 손을 뻗어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준혁의 큰 손바닥에 손목이 잡힌 채 그에게 갑작스럽게 끌려가는 바람에 이준혁의 가슴에 박았다.윤혜인은 자신의 머리가 철벽처럼 딱딱한 가슴에 박은 것 같아 화가 나서 남자를 노려보았다.“준혁 씨, 뭐 하는 거예요?”이준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윤혜인을 주시하며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윤혜인은 이준혁의 눈빛이 조금 위험하게 느껴져 경계하면서 물었다.“준혁 씨 도대체 왜 그래요?”윤혜인의 눈빛을 보자 이준혁은 가슴이 미어지고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이준혁은 윤혜인에게 매우 묻고 싶었다. ‘내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누구의 아이를 낳고 싶은 건데!’그러나 너무 사납게 굴면 그녀가 미워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준혁은 자신의 강한 소유욕을 가까스로 억눌렀다.그러고 난 후, 이준혁은 천천히 윤혜인의 손목을 놓아주더니 어두워진 잘생긴 얼굴로 말했다.“내가 갈게.”“...”이준혁은 약국에 가서 두 가지 약을 샀다.하나는 특효약이었고 하나는 비타민이었다.윤혜인은 줄곧 몸이 허약해서 예전에 의사 선생님도 그녀한테 피임약은 몸에 안 좋으니 먹지 말라고 당부했었다.그래서 이준혁은 윤혜인이 피임 특효약을 먹지 않았으면 했다.게다가 아침에 시간이 없어서 두 사람은 한 번만 했기에 이준혁은 그렇게 쉽게 임신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차에 돌아온 후 이준혁은 물컵을 꺼내 온수를 따르고 나서 또 약을 꺼내 윤혜인에게 건넸다.약과 물을 건네받은 윤혜인은 마음이 따뜻해 나는 것만 같아서 이준혁에게 말을 건넸다.“고마워요.”이준혁은 비록 정말 터프할 때도 있었지만, 반대로 자상할 때도 많았다.말랑말랑한 윤혜인의 감사 인사 한마디에 이준혁의 우울했던 기분은 순간 온데간데없이
애초에 윤혜인은 주산응을 대신하여 인하마을 사람들에게 5억을 갚았고 집을 팔았던 돈까지 계산하면 7억이 넘었다.그리고 이준혁이 10억 줬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일반인이었다면 17억으로 괜찮은 집 한 채를 사고도 남은 돈으로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그러나 주산응이 분수에 맞지 않는 사람일 줄 누가 알았겠어!윤혜인은 주산응이 외할머니의 유일한 아들이라는 걸 생각해서 이미 그에 대한 예의를 갖춰 최대한의 도움을 주었다.어쨌든 윤혜인은 앞으로 주산응의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것이고 그에게 한 푼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이준혁이 수표를 받지 않자, 수표를 들고 있던 윤혜인은 손이 조금 시큰거려 수표를 차 안 콘솔박스에 올려놓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당부했다.“저의 외삼촌이 또 준혁 씨에게 찾아가면 그 사람한테 저희가 진작에 이혼했고 이제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해요. 그러면 그 사람도 더 이상 준혁 씨를 찾아가 돈 달라고 하지 못할 거예요.”윤혜인이 괜한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다.그녀는 주산응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아마 주산응은 핸드폰 연락처에 이준혁을 ‘멍청하고 돈이 많은 ATM’이라고 비고를 적었을 것이었다!이때 이준혁의 표정은 이미 완전히 굳어버렸다.그는 마음이 너무 갑갑했다!그는 윤혜인이 자신의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을 참았다!그는 윤혜인이 피임약을 먹는 것도 참았다!지금 윤혜인은 또 묵은 빚까지 끄집어내면서 돈을 갚아준다고 하다니!심지어 두 사람은 이미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말했다!이렇게 철저하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 윤혜인의 말을 받고 있자니, 핸들을 잡고 있던 이준혁의 손등에는 핏대가 섰다.이준혁은 너무 화나서 명치가 아팠다.그는 갑자기 콘솔박스 위에 놓인 수표를 쥐더니 바로 찢어버렸다.그리고 윤혜인의 의아한 눈빛 속에서 이준혁은 이를 갈며 말했다.“내가 기꺼이 준 거니까 당신은 상관하지 않아도 돼.”말을 마친 후 이준혁은 액셀을 밟고 질주했다.윤혜인은 이준혁이 왜 저러는
윤혜인은 비로소 자신을 납치하려는 것이 두 남자임을 제대로 보았다.두 남자는 모두 올 블랙 옷차림에 마스크와 볼캡을 쓰고 있었다.“욱...”윤혜인의 입은 테이프로 막혔고 손은 묶어져 있어 엉엉거리는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두 남자 중의 한 사람이 윤혜인을 어둡고 구석진 모서리로 끌고 갔다.그리고 그녀는 손가락이 쿡 찔리는듯한 느낌을 받았다.윤혜인은 상대방이 자신의 손가락에서 피를 채집했다는 걸 느꼈다!피를 다 채집하고 나서 한 명은 피가 담긴 작은 튜브를 가방에 넣으면서 말했다.“사람들한테 들키기 전에 얼른 갑시다.”그러나 다른 한 명은 윤혜인의 맑고 아름다운 얼굴을 들여다보고서 딴마음이 생겨 발걸음을 멈추었다.앞서던 블랙 남은 파트너가 따라오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다시 원자리로 돌아갔다.그곳에서 파트너는 옹졸한 세모눈으로 침을 흘리며 납치당한 여자의 가슴을 쳐다보고 있었다.“안 가요?”블랙 남이 파트너를 불렀다.세모눈을 한 파트너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먼저 가세요. 저는 볼일 좀 보고 갈게요!”이 ‘볼일’이 무슨 뜻인지 블랙 남은 단번에 알아들었다!블랙 남은 어두운 불빛을 빌려 여자를 훑어보았다.어린 여자는 확실히 아름다웠으며 이목구비는 마치 그림 속의 요정 같았고 몸매도 아주 좋았다.그들과 같은 사람은 평소에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감히 거들떠볼 수도 없었다.그러나 블랙 남은 조심스럽게 파트너를 말렸다.“이 여자를 건드리라고는 안 했잖아요. 그냥 갑시다.”“젠장. 나 아직 이런 돈 많은 여자를 놀아본 적이 없단 말이에요. 이 날씬하고 여린 모습을 보면서 벌써 들떴단 말이에요!”세모눈은 바지 지퍼를 열면서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나 빨리 끝낼게요. 길어 봤자 5분이니까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요!”블랙 남은 윤혜인을 보면서 조금 아쉬워했다. 사방에 감시카메라가 깔려 있고 시간이 촉박할까 봐 걱정되는 것만 아니었다면 블랙 남도 여자랑 놀고 싶었다!‘에잇. 이 색광에게 기회를 뺏겼어!’블랙
이 말을 하고서 윤혜인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른 것만 같았다!윤혜인은 마음속으로 이준혁이 자신의 말을 이해했기를 묵묵히 기도했다.하지만 전화 안에서는 몇 초 동안 말이 없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뭐, 안 탄다고?”윤혜인은 심장이 바닥까지 덜컹 내려앉았다.이준혁은 윤혜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세모눈은 표정이 확 바뀌었다. 그는 윤혜인이 도움을 청한 줄 알고 버럭 폰을 들어 바닥에 내리치려 했다!이때 스피커폰에서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탈 거면 진작에 말했어야죠. 제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요!”세모눈은 폰을 내리치려던 동작을 멈추었고 윤혜인은 급하게 말을 이었다.“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제가 말한다는 걸 깜박했어요!”“제 평점이 깎이면 안 되니까 그쪽에서 주문을 취소하세요!”전화 반대편에서 전화를 뚝 끊었다. 전화 안의 사람은 화난 게 틀림없었다.그제야 세모눈은 윤혜인이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는 걸 믿었고 그녀에 대한 경각심을 내려놓았다.세모눈은 윤혜인의 핸드폰에서 앱을 뒤지면서 말했다.“빨리 얘기해. 이 폰의 계좌 이체 비번이 어떻게 돼?”이때 전화가 다시 울렸다.여전히 조금 전 그 전화번호였다.세모눈은 낯 색이 어두워졌다.“뭐야!”윤혜인은 슬기롭게 대답했다.“아마 주문을 취소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아요. 제 쪽에서 주문을 취소하지 않으면 기사님이 다른 주문을 받지 못하거든요.”세모눈은 윤혜인이 시키는 대로 주문을 취소해 보았지만 한참 동안 해도 주문은 취소되지 않았다.핸드폰은 또 계속 울려 세모눈은 짜증이 나고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씨발. 이 핸드폰 왜 이래!”윤혜인은 이 틈을 타서 말했다.“저기요, 제가 해드릴게요. 이게 지문 인식이 필요해서 그래요.”세모눈은 윤혜인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손목의 끈을 풀어달라고 날 속이는 거 아니지!”“절대 아니에요!”윤혜인은 겁에 질려 말했다.“지문 인식하는 게 아주 빨라요. 그리고 제가 좀 있다가 돈 보내 드릴 때도 비번을 틀릴까 봐 걱
세모눈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가긴 어딜 가. 날 아직 안 모셨는데!”윤혜인은 세모눈이 신용을 지키지 않을 줄 알았다.그녀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두 손을 싹싹 빌며 말했다.“저기요. 돈도 이미 드렸는데 제발 저를 보내주세요...”이 동작은 마침 그녀를 칼날이 닿는 곳에서 벗어나게 했다.윤혜인이 계속 몸을 떨고 있어서 세모눈은 비수가 움직여진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음탕한 눈빛으로 윤혜인의 두툼하고 예쁜 입술을 쳐다보며 말했다.“빨리 시작하자. 오빠 시간 없다. 날 기쁘게 모시면 내가 너의 밑은 안 건드릴게...”세모눈이 대놓고 침 흘리는 걸 보고 윤혜인은 토 나올 것만 같았다.윤혜인은 심호흡하고 나서 입술을 깨물며 불쌍한 척하면서 고분고분 말했다.“정말인가요? 제가 오빠를 잘만 모시면 정말 보내주시는 건가요?”세모눈은 윤혜인이 받아들인 줄 알고 조급하게 말했다.“당연하...”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세모눈은 처참하게 비명을 질렀다.“아!! 악!!”윤혜인은 세모눈이 안 보는 사이에 돌멩이를 잡아 그의 하체를 세게 내리치고는 냅다 도망쳤다.윤혜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생각뿐이었다.바로 빛이 있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윤혜인은 뛰면서 큰 소리로 도움을 청했다.그러나 이 시간 때에 금융센터 이쪽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도로에는 차조차 드물었다.“이년! 널 죽여버릴 거야!”뒤에서 세모남의 살벌한 함성이 들려왔다.윤혜인은 세모남의 전투력이 이토록 강해서, 그 한방을 당하고도 자신을 이렇게 쫓아올 줄 몰랐다.그녀는 미친 듯이 앞으로 내달렸다.그러나 발밑을 조심하지 않아 결국 길 어구에 걸려 쾅 하고 넘어졌다.땅바닥에 세게 넘어진 윤혜인은 온몸이 따끔했다!세모눈은 맞은 곳을 손으로 가린 채 험상궂은 얼굴로 달려오면서 매섭게 말했다.“이년! 감히 내 뒤통수를 쳐? 오늘 내가 너의 이 아름다운 얼굴을 다 갈기갈기 찢어버리겠어!”말을 마치고 그는 비수를 높이 치켜들고 윤
비록 이준혁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가볍게 떨렸다.다행히 조금 전에 운전하고 있던 사람이 주훈이어서 그는 이준혁에게 평점 얘기를 꺼내 세모남을 상대하라고 가르쳐주어 세모남을 속일 수 있었다.그리고 주훈은 틈을 타서 사람을 시켜 윤혜인의 위치를 추적하게 했다.추적한 결과 그저 회사 근처라는 것만 나왔을 뿐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없었다.하여 이준혁과 주훈은 뿔뿔이 흩어져서 사람을 찾았다.결국, 이준혁은 윤혜인의 비명을 듣고 그녀의 위치를 판단해 냈다.세상에!이 짧디짧은 몇 분 동안이 이준혁에게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그는 심지어 자신을 탓했다.‘혜인이한테 화내지 말걸, 회의 때문에 늦게 도착하지 말걸...’그는 윤혜인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걱정되었고, 그런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이준혁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그저 머리를 숙여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윤혜인은 자신의 건조한 옆얼굴에서 촉촉한 느낌을 받았다.윤혜인은 뜨거운 촉감에 몸을 살짝 떨었다.‘이 남자... 설마 또 눈물을 흘린 거야?'비록 한 방울이었지만 윤혜인은 여전히 매우 놀랐다.윤혜인은 남자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준혁 씨가 두려워하고 있고 날 걱정하고 있는 건가?’이 순간 윤혜인은 마음을 굳게 먹을 수도, 자신을 억제할 수도 없는 것 같아 손을 뻗어 이준혁을 안았다.남자의 슈트는 더 이상 차갑지 않았고 얇은 온도가 한 층 드리워졌다.그녀는 천천히 손가락을 모으고 생각을 잠시 비우면서 이 따뜻함을 만끽하였다.그들 뒤에서, 세모눈은 상황이 불리해진 걸 보고 비틀비틀 일어서서 도망치려고 했다.한 발짝도 도망치지 못하고 세모남은 양복 차림의 한 남자에게 어깨가 틀리면서 호되게 내동댕이쳐졌다.“아!!”또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세모눈은 자신을 쓰러뜨린 남자의 우람하고 튼튼한 체격을 보았는데 딱 봐도 싸움 잘하는 사람 같았다.주훈은 세모눈의 멀쩡한 나머지 한 손을 밟으면서 호되게 말했다.“말해! 왜 사람을
“난 그런 적 없어요... 경한 씨, 제발 믿어줘요. 나 아니에요.”방민아는 죽어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정말 방민아가 유진을 해친 게 된다면 더는 육경한과 이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민아는 육경한이 유진을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유진을 위해 정관 수술까지 하겠다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은 절대 따라올 수가 없었다.“그런 적 있는지 없는지는 경찰 조사에 맡기죠.”육경한이 이렇게 말하더니 안으로 들어가려 걸음을 멈추고는 한마디 보충했다.“그리고 최근에 방씨 가문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민아 씨 아버지가 80%의 수익을 가져갔어요. 그때 도와준 은혜를 수천조로 갚았는데 그걸로 부족해요?”방민아가 계속 따라붙으려는데 보디가드가 막아섰다. 그뿐만이 아니라 경찰이 오기전까지 도망가지 못하게 막기까지 했다.온몸에 힘이 풀린 방민아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 빌어먹을 년이 어쩌다 경한 씨의 와이프가 된 거지? 그 자리는 내 자리여야 하는데.’방민아는 새로 한 매니큐어가 부러질 정도로 바닥을 박박 긁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머릿속엔 온통 어떻게 다시 육경한의 와이프 자리를 꿰찰지, 어떻게 빌어먹을 소원과 짐승만도 못한 유진에게 복수할지로 가득 차 있었다....유진이 이끄는 대로 걸어간 유진은 이내 아주머니를 가둬놓은 방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주머니는 누렇게 뜬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소원이 눈물을 뚝뚝 떨구며 침대맡으로 다가가 통곡했다.“아주머니...”유진이 놀라서 울음을 터트리더니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연신 불러댔다.“할머니... 할머니... 일어나봐요...”“아직 숨은 쉬고 있어.”뒤에 나타난 육경한이 이렇게 귀띔했다.소원이 고개를 들어 손을 아주머니의 코밑에 갖다 댔다. 호흡이 약하긴 했지만 확실히 숨은 쉬고 있었다. 흥분한 소원이 유진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유진아, 엄마 구급차 불렀어. 아주머니 선한 사람이니까 하느님
방민아가 육경한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말했다.“경한 씨,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소원 씨 안 건드릴게요. 다 질투해서 그런 거라고 이해해 주면 안 돼요? 소원 씨가 경한 씨 마음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 자꾸만 경한 씨를 뒤흔드는 게 질투 나서 그랬어요. 이제 잘못한 거 알았고 앞으로 소원 씨 존재도 묵인할 테니까 제발 나 버리지 마요...”방민아의 말에 소원은 넋을 잃고 말았다. 육경한만 동의하면 일부다처제도 받아들이겠다는 뜻처럼 들렸다.다만 방민아는 원할지 몰라도 소원은 싫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역겨운 상황이었다. 조선시대가 망한 지 언젠데 있는 집 딸인 방민아가 남자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구시대의 여인상을 보이는 게 너무 우스웠다. 게다가 소원은 한평생 육경한 곁에 남아 있을 생각이 없었다.육경한이 언짢은 표정으로 다리를 들자 방민아는 어쩔 수 없이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나 와이프 있는 남자예요. 방민아 씨, 앞으로 말 가려서 해요.”육경한의 눈매는 여전히 차갑기만 했지만 ‘와이프’라는 말을 내뱉는 육경한의 말투에서 방민아는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온도를 느꼈다. 방민아와 함께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갑자기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방민아와 함께 있을 때는 늘 차분하고 덤덤하고 감정 기복이 없었는데 말이다.살아났다는 말이 제일 맞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낸 것처럼 피가 있고 살이 있는 육경한으로 다시 태어났다.그런 육경한을 보며 방민아는 너무 불안했다. 전에는 본 적 없는 아예 다른 모습이었다.소원은 방민아가 사랑과 전쟁을 패러디하는 걸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그저 육경한이 살인미수범인 방민아를 감싸면 어쩌나 걱정할 뿐이었다.하지만 육경한의 생각 따윈 상관없었다. 아까 절대 끼어들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소원은 핸드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안녕하세요. 경원 별장인데 신고 좀 하려고요. 누군가 제 아들을 해치려고 했어요. 네.
“내가 곧 경한 씨랑 결혼할 것 같으니까 뺏어가려는 거죠. 어림도 없어요.”방민아의 머릿속엔 온통 소원이 육경한을 뺏어가는 장면으로 가득해 이성을 잃었다.“내 남편 뺏어갈 생각하지 마요. 소원 씨는 그저 뻔뻔한 세컨드일 뿐이에요.”“하하하...”소원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방민아 씨, 남편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이르지 않나요? 결혼 등기는 했어요? 왜 아는 사람이 없죠?”방민아는 이미 마음속으로 자기가 미우 그룹 안주인이라고 생각해 차분하게 말했다.“곧 등기하러 갈 거예요. 경한 씨가 다음 주에...”“다음 주에도 등기는 못 할 거예요.”소원이 단칼에 잘라버렸다.“왜요? 소원 씨가 못한다면 못하는 거예요? 봐요. 내 남자 뺏어가려는 거 맞잖아요. 하하. 내가 잘 캐치한 거 맞죠?”이성을 잃은 방민아는 꼴이 우스워도 너무 우스웠다.“내가 오늘 등기했거든요.”소원이 바로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은 마치 번개처럼 방민아에게 떨어졌고 방민아는 환청이라도 들리는 줄 알았다. 올해 들었던 중에 가장 우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소원이 왜 경한 씨랑 결혼 등기를... 에이, 잘못 들은 거겠지.’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방민아는 심장이 떨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방민아의 얼굴이 잿빛이 되어가자 소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고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온몸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방민아가 갚아야 할 빚은 아직도 많았다.소원이 말을 이어갔다.“그러니 방민기 씨 애인하라고 한 제안은 못 받아들이겠네요. 남편이 동의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방민아는 마치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럴 리 없어. 절대 그럴 리 없어...’“거짓말하지 마요.”방민아가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육경한의 팔을 부여잡고 캐물었다.“경한 씨, 진짜가 아니라고 해줘요. 소원 씨가 나 속이는 거라고 좀 말해줘요...”육경한의 침묵에 방민아의 마음도 점점 싸늘해졌다. 진실은 눈앞에 보이는 그
소원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방민아는 분명 소원의 아이를 죽이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소원을 때릴 때 보인 표정은 정말 소원을 죽이고 싶은 표정이었다.육경한은 여자가 이렇게 자주 변하는 동물인지 몰랐다. 방민아도 예전엔 이런 여자가 아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방민아 편을 든다고 생각해 바로 입을 열었다.“방민아 씨, 그 말은 경찰서 가서 얘기해요. 난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까.”방민아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너 따위가 뭔데 감히 이딴 식으로 말해? 그냥 못 넘어가? 못 넘어가면 어쩔 건데.’방민아는 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마음이 약해진 거라고 생각해 얼른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하소연했다.“소원 씨, 우리 원수라도 졌어요? 내가 곧 경한 씨랑 결혼할 것 같으니까 아니꼬운가 본데 나 소원 씨 아이 최선을 다해 보살폈어요. 나를 모함한 것도 뭐라 안 했는데...”방민아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소원 씨는 엄마라 그러겠지만 나도 누군가의 딸이에요. 내가 괴롭힘당하는 거 알면 우리 아빠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방민아는 방민수까지 끌어들였다. 방민수가 나온 이상 육경한도 방씨 가문의 은혜를 저버리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애초에 육경한이 사면초가의 처지에 빠졌을 때 방씨 가문이 없었다면 미우 그룹도 서울에서 자리를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제일 어려울 때 손길을 건넨 사람을 저버릴 순 없는 일이었기에 이 점만으로도 육경한은 방민아를 너무 심하게 대하진 않을 것이다.소원이 입을 열었다.“방민아 씨, 우리 원수 진 거 없어요. 오히려 너무 열정적으로 대해줬죠.”방민아는 소원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몰라 멈칫하는데 소원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아까도 오빠 방민기 씨의 애인이 되라고 열정적으로 소개해 줬잖아요.”“그... 그게 무슨 헛소리에요.”방민아는 켕기는 게 있는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왜 헛소리에요?”소원이 말했다.“방민기 씨 애인으로 반년만 있으면 3개월 후에
방민아가 아무리 울고 불쌍한 척해도 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봐서는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경한 씨, 아까 그 말 진심이 아니라 그저...”방민아는 얼굴을 감싸 쥔 채 숨이 올라오지 않는 것처럼 한참 호흡을 고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유진이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어린 나이에 이렇게 모함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방민아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악독한 걸로 치면 유진이 자기보다 백배, 천배 더 독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방민아가 모르는 게 있었다. 만약 그녀가 사람을 해치려 하지 않았다면 유진처럼 어린아이가 꿍꿍이가 있다 해도 어쩌지는 못했을 것이다.유진은 총명한 아이였기에 모든 수모를 꾹 참으며 목숨을 지켜내려고 노력한 것밖에 없었다. 조금만 멍청했으면 진작 죽어서 뼈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방민아는 이를 악물고 해명했다.“경한 씨, 하늘에 맹세해요. 난 절대 그 누구에게도 유진이 해치라고 한 적 없어요. 게다가 유진이가 한 말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봐요. 유진이가 정말 거짓말한 거라면 어린 나이에 잘해준 사람 모함한 게 되잖아요. 그건 짐승이나 다름없는 짓이에요.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못 받아서 그런 게 아닌지 의심해야죠.”육경한의 말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정말 잘해줬다면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겠죠.”“나는...”방민아는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무너질까 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유진이 진실을 말했다 해도 방민아 손엔 피를 묻히지 않았으니 그들도 딱히 그녀를 어찌할 방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끝까지 발뺌하면 그만이다.육경한이 그런 방민아를 보며 말했다.“방민아 씨, 그때 나한테 했던 말 기억 나요?”방민아가 멍한 표정으로 육경한을 바라봤다.육경한은 방민아가 진심으로 이 아이를 대해야만 결혼을 고민해 보겠다고 했고 방민아도 얼른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방민아가 아닌 다른 여자라도 그 제안을 흔쾌히 동의했을 것이다. 대답할 때만 해도 유진을 충분히 무시할 수 있다고
시터도 사실 그저 보여주기식으로 박으려 했다. 부잣집은 체면을 중요시했기에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일을 크게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아니나 다를까 보디가드가 시터를 잡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자 시터가 펑펑 울며 억울하다고 아우성쳤다.그때 유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증거 있어요.”이 말에 모든 사람이 놀라고 말았다. 몇 살짜리 애가 증거를 확보했다고 큰 소리로 외치니 그게 뭔지 다들 의문이었다.유진은 목에 건 호루라기를 벗으며 말했다.“이 호루라기 사진 찍을 수 있는 호루라기에요. 시터가 두유에 약 타는 장면을 찍어서 남겼고 쓰레기통에 버린 약병에 적힌 진료소 이름도 찍어놨어요. 그리고 이모랑 둘이서 작은 방에 모여 있는 사진까지 전부 모아뒀어요.”이 호루라기는 서현재가 유진에게 준 생일 선물이었다. 유진은 그 호루라기가 퍽 마음에 드는지 늘 목에 걸고 다녔고 소원마저 그 호루라기가 사실 작은 카메라라는 걸 알고 있었다. 총명한 유진이 시터가 약 타는 장면을 찍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유진은 줄곧 얌전하고 말이 별로 없어 누구든 쉽게 휘두를 수 있다는 착각을 줬지만 사실 총명함을 숨긴 채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연기한 것이었다.사실 유진은 그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그 누구보다 총명했다. 반항하면 육경한은 오히려 화만 냈고 반항하면 할수록 방민아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말할 때 그 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순종하며 겁이 많은 척 연기해 적절한 시기를 기다렸다가 나쁜 여자의 민낯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시터는 이제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작은 몸집에 이렇게 많은 꿍꿍이가 들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을 생각을 다 하다니, 유진을 너무 얕잡아봤다는 생각이 들었다.입이 떡 벌어진 시터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이제 벽에 머리를 박겠다고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다.육경한은 넋을 잃은 시터를 보며 힘껏 발로 걷어찼다.“감히 내
방민아는 부들부들 떨며 얼른 앞으로 나아가 육경한을 당겼지만 육경한이 매몰차게 뿌리쳤다.쿵.그 힘이 어찌나 센지 방민아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경한 씨...”방민아는 육경한이 이렇게 세게 밀칠 줄은 몰랐기에 너무 억울했다.“잘 생각해 보고 얘기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내 아들이 거짓말하는 건지 아니면 방민아 씨가 거짓말하는지 말이에요.”육경한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내뱉은 말도 하나같이 온도가 없어 가슴이 떨리게 했다. 그러더니 이미 혼비백산한 시터 앞으로 다가가 서늘하게 말했다.“누가 시켰어요?”시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육경한을 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고 혀에 쥐가 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방민아도 너무 긴장해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시터는 진실을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되돌릴 수 있는 게 없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전 아무것도...”“다시 말할 기회 줄게요.”그러더니 한 걸음 한 걸음 시터에게로 다가가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경고했다.“그래도 거짓말한다면 가족 모두 힘들어질 거예요.”깜짝 놀란 시터는 눈물, 콧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이도 들 만큼 들었던 터라 이 일만 마치면 은퇴할 생각이었지만 돈에 눈이 멀어 육경한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간과한 것이다.밉보여서는 안 될 사람에게 밉보였으니 이제 모든 게 늦어버렸다.방민아는 시터가 주저하자 얼른 입을 열었다.“맞아요. 얼른 얘기해요.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는지 아니면 모함을 받았는지 얘기하라고요. 나이도 들었는데 아이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잘 얘기해야 할 거예요. 잘못하면 벌받아야겠지만 잘못하지 않은 사람을 핍박하지는 않을 거예요...”“방민아 씨, 그 입 다물어요.”육경한의 차가운 경고에 방민아가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다시 진정하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해명했다.“경한 씨, 나도 혐의 벗고 싶어요. 경한 씨보다 더 진실을 원하는 사람은 나라고요. 그래야 나도 누명을 벗을 수 있을 테니까
방민아가 설득했다.“유진아. 이모랑 했던 약속 잊었어? 말 잘 듣고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사실 방민아는 유진에게 두 사람이 한 약속을 잊지 말라고 귀띔하고 있었다. 만약 유진이 말을 듣지 않으면 더는 엄마를 만나지 못할 거라는 약속 말이다.‘어린아이가 알면 뭘 안다고. 겁만 줘도 고분고분해질 텐데.’방민아가 말했다.“거짓말하면 코 길어지는 거 알지? 그러니까 얼른 이모한테 와.”하지만 유진은 들으려 하지 않을뿐더러 겁에 질린 표정으로 점점 더 거세게 울었다.“왜 또 째려봐요...”유진이 소원의 품에 파고들며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엄마, 저 여자 나 째려보기만 한 게 아니라 꼬집기도 하면서... 시켜준 대로 아빠한테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엄마 못 만날 거라고 했어요...”유진이 육경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빠, 이모가 한 말 사실이에요? 엄마 못 만날까 봐 하라는 대로 하긴 했는데 정말 너무 무서워요... 저 나쁜 아줌마가 그러는데 두유에 약 타라고 한 것도 이모가 시킨 거래요. 나 죽이려 드는데 고분고분 말 들어야죠...”이 말에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방민아는 목덜미에 칼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온몸에 오한이 몰려왔다.‘짐승 같은 놈이 다 연기한 거야? 이렇게 큰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방민아는 이렇게 어린아이가 이런 꿍꿍이를 꾸몄다는 게 그저 무서울 뿐이었다.육경한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앞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더니 유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이렇게 말했다.“아니야. 엄마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 아빠가 있는데 감히 누가 엄마를 건드리겠어.”“아빤 절대 그 누구든 너에게 손대지 못하게 할 거야.”유진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깜빡이며 물었다.“아빠, 정말 저 나쁜 이모가 유진이랑 엄마 해치지 못하게 지켜줄 거예요?”육경한이 대답했다.“너랑 엄마 다 무사할 거야. 아빠가 약속해.”유진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소원의 품에 머리를 파묻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의미심장한 눈빛으
시터가 퉁명하게 쏘아붙이며 유진을 뺏어가려는데 갑자기 날아든 발차기에 그대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아악.”힘이 잔뜩 들어간 발차기에 시터는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서 두 번 뒹굴더니 배를 부여잡고 곡소리를 냈다.“누가 나를...”원망하던 시터가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대표님이 나를 왜.’켕기는 게 많은 시터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까먹었다.“대표님...”육경한이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매섭게 쏘아붙였다.“누가 도련님 쫓으라 했어. 도련님을 돌볼 때 어떤 수칙을 지켜야 하는지 잊었어?”유진은 체질이 별로 좋지 않아 노트에 명확하게 달리거나 흥분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으니 추격전을 벌이는 건 더더욱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그게 아니라...”시터가 화들짝 놀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기도 모르게 옆에 선 방민아를 바라봤다. 해명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던 육경한이 매섭게 말했다.“물건 정리해서 꺼져요.”이 말에 시터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시급을 이렇게 많이 주는 일이 없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방민아를 바라봤지만 방민아는 그저 화가 치밀어오를 뿐이었다.‘멍청하긴. 나는 왜 보는 거야. 내가 언제 사람들 앞에서 유진이 데리고 뛰라고 했나?’방민아는 시터의 눈알이라도 파내고 싶었지만 얼르 이렇게 암시했다.“경한 씨 더 화내기 전에 얼른 가요.방민아가 이렇게 말하며 시터에게 눈빛을 보내자 시터가 바로 알아들었다. 따로 두둑이 챙겨주겠다는 약속이었다.시터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아까는 너무 급해서 그랬어요 지금 당장 짐 싸서 갈게요...”그때 유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아빠. 아줌마 이렇게 보내면 안 돼요.”육경한이 유진에게 물었다.“왜?”유진이 시터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나쁜 아줌마가 두유에 뭘 섞었어요. 할머니한테 준 약이랑 같은 건데 두유에 섞어서 유진이 먹이려는 거 내가 몰래 토했어요.”이 말에 시터와 방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