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은 퍽 의외라고 생각했다. 육경한이 소종을 벌주는 게 신기했다.소종은 그동안 육경한을 도와 많은 나쁜 짓을 했다. 그는 육경한에게 백 퍼센트 충성했다. 그리고 유민 그룹에서 소종은 두 번째로 꼽혔다.육경한은 소종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절대 아랫것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벌주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이렇게 벌을 세웠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하지만 소원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소종 외에 그녀를 도둑처럼 경계할 사람은 없었다.소원은 밖에서 시간을 좀 끌다가 육경한의 방으로 돌아갔다.육경한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쉬고 있었다. 상처가 다시 덧나는 바람에 육경한의 입술을 갈라져 있었다. 얼굴도 하얗게 질린 게 뭔가 산 사람 같지 않았다.이마는 언제 부딪쳤는지 새끼손가락만 한 상처가 미간까지 쭉 이어진 게 보는 사람을 놀라게 했다.처량한 모습이긴 했지만 육경한의 얼굴은 여전히 각진 게 잘생겼다.대학 시절부터 육경한은 따라다니는 여자가 많았다. 집안으로 보나 외형으로 보나 우월하지 않은 게 없었다.육경한을 좋아하는 여자는 많았지만 그는 전부 거절했다.그때는 소원이 먼저 육경한을 좋다고 따라다녔다. 소원은 그때 남자 친구에게 차인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기분이 매우 우울한 상태였다.한번 시도는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자기도 무조건 다른 여자처럼 거절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육경한은 학교에서도 유명인사였다. 학생회 회장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스펙까지 가미하자 더 반짝반짝 빛났다.의외로 육경한은 소원이 아무렇게나 유혹한 말에 넘어왔다.실험실에서 소원이 육경한에게 물었다.“회장님, 혹시 여자 친구 있어요?”육경한이 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분위기가 살짝 어색해졌다.소원은 찬란하게 웃으며 육경한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안녕, 나는 여자 친구라고 해.”하지만 육경한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한참 동안 아무 동작도 보이지 않았다.그렇게 손을 들고 있던 소원이 너무 쪽팔려
육경한은 소원의 말투에서 원망을 느끼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나랑 있어. 일하지 말고. 원하는 거 모든 다 줄게.”소원이 육경한을 비웃더니 사발을 내려놓았다.“대표님, 전에도 같이 있어 주면 비용 짭짤하게 주셨는데 지금도 그러고 싶으신 거예요?”이 말에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육경한의 잘생긴 얼굴이 보기 드물게 어색해 보였다.육경한이 설명했다.“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야.”소원은 여전히 웃었다.“나는 별반 다를 거 없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이나 예전이나 내 느낌은 변한 적 없거든.”육경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일단은 이 화제를 넘기려 했다.“나 찔러서 다치게 했는데 좀 같이 있어 달라는 것도 안 돼?”“그냥 신고해.”소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네가 먼저 나를 침해하려 했잖아. 나는 정당방위 했을 뿐이야.”“고의가 아닌 건 맞지만 내가 죽기를 바랐잖아.”육경한의 눈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때 소원이 보여줬던 눈빛은 그를 죽이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소원이 우스갯소리라도 들었다는 듯 웃었다.“육경한, 그걸 오늘에야 안 거야?”육경한이 눈썹을 추켜세우더니 우습다는 듯 말했다.“아니, 알고 있었지. 근데 네가 살아있는 한 나도 죽기 싫어.”소원의 입가에 조롱의 미소가 걸렸다.“왜? 나랑 같이 죽기라도 하겠다는 거야?”육경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의도는 선명했다.소원은 그런 육경한이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소원은 가늘고 예쁜 손가락으로 육경한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낮게 웃으며 말했다.“육경한, 꿈도 꾸지 마. 살면서 한 번도 죄를 지어본 적이 없어서 죽어도 천국 갈 거야. 넌 아마도 지옥 가겠지.”소원은 잘생긴 육경한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증오가 가득 서린 눈빛은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았다.“길이 다르다고. 알아?”구슬처럼 예쁜 소원의 눈동자에는 역겨움과 증오가 가득 차올랐다. 그 눈빛이 육경한을 우울하게 만들었다.하지만 육경한은 그렇게 쉽게 휘둘
소원은 화가 치밀어올라 힘껏 그를 밀쳐냈다. 하지만 육경한이 손목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소원도 더는 육경한의 인내심에 도전하지 않았다. 상처를 덧내는 일은 한 번은 있어도 두 번은 있을 수 없다. 아니면 육경한의 성격에 무조건 그녀보다 더 강하게 나올 것이다.소씨 가문을 위해 복수하려면 무모하게 나가서는 안 된다. 목숨을 걸더라도 값진 싸움이 되어야 한다.소원이 더는 발버둥 치지 않자 육경한은 소원의 뒤통수를 꽉 부여잡고 더 가까이 당겼다.키스는 뜨거우면서도 열렬했다.육경한은 자신의 온도로 소원의 분노를 녹여주려 했다.그는 그녀가 굴복하는 모습이 좋았다.그러면서도 더는 그를 도발하지 않은 그녀의 총명함에 몰래 감탄했다.아니면 정말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른다.육경한의 눈썹에 난 상처는 어딘가 흉측해 보였다. 다년간 헬스로 다져진 탄탄한 팔은 소원을 쥐고 흔드는 데 충분했다.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소원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져서야 육경한은 천천히 손을 놓았다.구슬처럼 예쁜 소원의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육경한은 그저 한번 힐끔 쳐다봤을 뿐인데도 가슴이 욱신거렸다.소원이 상처 주는 말을 내뱉기 전에 육경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회사 간다며? 가기 전에 일단 이자부터 좀 받을게.”소원이 멈칫했다. 한참 실랑이를 벌여야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그녀를 놓아줄 거라는 생각도 못 했다.소원은 육경한이 한 말을 다시 곱씹었다.‘조금이라니? 설마 끝도 없이 받을 생각인가? 어림도 없지.’소원이 마치 더러운 오물이라도 닦아내듯 입술을 마구 닦으며 화냈다.“앞으로 한 번만 더 함부로 손대봐. 체면이고 뭐고 없어.”육경한이 웃으며 말했다.“기대할게.”육경한은 체면을 주지 않아야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그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럴만한 인내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원을 앞에 두고 참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소원은 화가 치밀어 올라 말문이 막혔다. 더는 이 변태 같은 놈과 말을 섞기가 싫었다.자
소원은 육경한이 마음이라도 바꿀까 봐 온몸으로 경계했다.“이랬다저랬다하는 건 남자로서 할 짓이 못 되는 거 알지?”육경한은 이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는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내가 남자인지 아닌지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소원은 얼굴이 순간 화끈 달아올랐고 더는 참을 수 없어 욕설을 퍼부었다.“넌 정말 저질이야.”그러더니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육경한은 굳게 닫힌 문을 보며 웃음기가 점점 사라졌다....소원은 별장 앞채를 지나가다가 바닥에 꿇어있는 소종을 보며 걸음을 멈추고는 마치 먼지라도 털어주듯 소종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그런 소종을 비웃었다.“비서님, 육경한이 비서님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소종의 표정이 순간 변했다.그에 반해 소원은 활짝 웃으며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소종이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말로 소종이 육경한을 조금이라도 미워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했다.마음이 갈라서야 기회가 생기게 된다.그리고 소종도 그렇게 억울한 건 아니었다.소원은 별장에서 나오자마자 바깥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육경한이 준비한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소원의 옆엔 육경한의 수하도 함께했다.떠나기 전 소원은 어딘가 음침해 보이는 별장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소종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열쇠 하나가 몸에서 툭 떨어졌다.그가 잊어버린 그 열쇠였다. 소종은 그 열쇠를 주워 들어 다시 주머니에 던져넣었다.방으로 돌아와 보니 육경한은 침대에 기대 있었고 앞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소종이 들어오자 육경한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가져갔어?”소종이 고개를 끄덕였다.육경한이 덤덤하게 말했다.“내려가 봐.”방안은 정적이 흘렀다.육경한은 하얀 벽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당겼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소원아, 나 실망하게 하지 마.’...윤혜인은 육경한의 별장에서 나오고 나서부터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옆에서 운전하
“...”‘이 남자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네!'윤혜인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말했다.“ 제가 언제 준혁 씨의 아이를 낳겠다고 했어요? 저를 빨리 내려주세요.”시간이 지나기 전에 윤혜인은 얼른 약을 먹으려고 했다.윤혜인은 손을 뻗어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준혁의 큰 손바닥에 손목이 잡힌 채 그에게 갑작스럽게 끌려가는 바람에 이준혁의 가슴에 박았다.윤혜인은 자신의 머리가 철벽처럼 딱딱한 가슴에 박은 것 같아 화가 나서 남자를 노려보았다.“준혁 씨, 뭐 하는 거예요?”이준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윤혜인을 주시하며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윤혜인은 이준혁의 눈빛이 조금 위험하게 느껴져 경계하면서 물었다.“준혁 씨 도대체 왜 그래요?”윤혜인의 눈빛을 보자 이준혁은 가슴이 미어지고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이준혁은 윤혜인에게 매우 묻고 싶었다. ‘내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누구의 아이를 낳고 싶은 건데!’그러나 너무 사납게 굴면 그녀가 미워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준혁은 자신의 강한 소유욕을 가까스로 억눌렀다.그러고 난 후, 이준혁은 천천히 윤혜인의 손목을 놓아주더니 어두워진 잘생긴 얼굴로 말했다.“내가 갈게.”“...”이준혁은 약국에 가서 두 가지 약을 샀다.하나는 특효약이었고 하나는 비타민이었다.윤혜인은 줄곧 몸이 허약해서 예전에 의사 선생님도 그녀한테 피임약은 몸에 안 좋으니 먹지 말라고 당부했었다.그래서 이준혁은 윤혜인이 피임 특효약을 먹지 않았으면 했다.게다가 아침에 시간이 없어서 두 사람은 한 번만 했기에 이준혁은 그렇게 쉽게 임신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차에 돌아온 후 이준혁은 물컵을 꺼내 온수를 따르고 나서 또 약을 꺼내 윤혜인에게 건넸다.약과 물을 건네받은 윤혜인은 마음이 따뜻해 나는 것만 같아서 이준혁에게 말을 건넸다.“고마워요.”이준혁은 비록 정말 터프할 때도 있었지만, 반대로 자상할 때도 많았다.말랑말랑한 윤혜인의 감사 인사 한마디에 이준혁의 우울했던 기분은 순간 온데간데없이
애초에 윤혜인은 주산응을 대신하여 인하마을 사람들에게 5억을 갚았고 집을 팔았던 돈까지 계산하면 7억이 넘었다.그리고 이준혁이 10억 줬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일반인이었다면 17억으로 괜찮은 집 한 채를 사고도 남은 돈으로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그러나 주산응이 분수에 맞지 않는 사람일 줄 누가 알았겠어!윤혜인은 주산응이 외할머니의 유일한 아들이라는 걸 생각해서 이미 그에 대한 예의를 갖춰 최대한의 도움을 주었다.어쨌든 윤혜인은 앞으로 주산응의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것이고 그에게 한 푼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이준혁이 수표를 받지 않자, 수표를 들고 있던 윤혜인은 손이 조금 시큰거려 수표를 차 안 콘솔박스에 올려놓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당부했다.“저의 외삼촌이 또 준혁 씨에게 찾아가면 그 사람한테 저희가 진작에 이혼했고 이제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해요. 그러면 그 사람도 더 이상 준혁 씨를 찾아가 돈 달라고 하지 못할 거예요.”윤혜인이 괜한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다.그녀는 주산응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아마 주산응은 핸드폰 연락처에 이준혁을 ‘멍청하고 돈이 많은 ATM’이라고 비고를 적었을 것이었다!이때 이준혁의 표정은 이미 완전히 굳어버렸다.그는 마음이 너무 갑갑했다!그는 윤혜인이 자신의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을 참았다!그는 윤혜인이 피임약을 먹는 것도 참았다!지금 윤혜인은 또 묵은 빚까지 끄집어내면서 돈을 갚아준다고 하다니!심지어 두 사람은 이미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말했다!이렇게 철저하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 윤혜인의 말을 받고 있자니, 핸들을 잡고 있던 이준혁의 손등에는 핏대가 섰다.이준혁은 너무 화나서 명치가 아팠다.그는 갑자기 콘솔박스 위에 놓인 수표를 쥐더니 바로 찢어버렸다.그리고 윤혜인의 의아한 눈빛 속에서 이준혁은 이를 갈며 말했다.“내가 기꺼이 준 거니까 당신은 상관하지 않아도 돼.”말을 마친 후 이준혁은 액셀을 밟고 질주했다.윤혜인은 이준혁이 왜 저러는
윤혜인은 비로소 자신을 납치하려는 것이 두 남자임을 제대로 보았다.두 남자는 모두 올 블랙 옷차림에 마스크와 볼캡을 쓰고 있었다.“욱...”윤혜인의 입은 테이프로 막혔고 손은 묶어져 있어 엉엉거리는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두 남자 중의 한 사람이 윤혜인을 어둡고 구석진 모서리로 끌고 갔다.그리고 그녀는 손가락이 쿡 찔리는듯한 느낌을 받았다.윤혜인은 상대방이 자신의 손가락에서 피를 채집했다는 걸 느꼈다!피를 다 채집하고 나서 한 명은 피가 담긴 작은 튜브를 가방에 넣으면서 말했다.“사람들한테 들키기 전에 얼른 갑시다.”그러나 다른 한 명은 윤혜인의 맑고 아름다운 얼굴을 들여다보고서 딴마음이 생겨 발걸음을 멈추었다.앞서던 블랙 남은 파트너가 따라오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다시 원자리로 돌아갔다.그곳에서 파트너는 옹졸한 세모눈으로 침을 흘리며 납치당한 여자의 가슴을 쳐다보고 있었다.“안 가요?”블랙 남이 파트너를 불렀다.세모눈을 한 파트너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먼저 가세요. 저는 볼일 좀 보고 갈게요!”이 ‘볼일’이 무슨 뜻인지 블랙 남은 단번에 알아들었다!블랙 남은 어두운 불빛을 빌려 여자를 훑어보았다.어린 여자는 확실히 아름다웠으며 이목구비는 마치 그림 속의 요정 같았고 몸매도 아주 좋았다.그들과 같은 사람은 평소에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감히 거들떠볼 수도 없었다.그러나 블랙 남은 조심스럽게 파트너를 말렸다.“이 여자를 건드리라고는 안 했잖아요. 그냥 갑시다.”“젠장. 나 아직 이런 돈 많은 여자를 놀아본 적이 없단 말이에요. 이 날씬하고 여린 모습을 보면서 벌써 들떴단 말이에요!”세모눈은 바지 지퍼를 열면서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나 빨리 끝낼게요. 길어 봤자 5분이니까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요!”블랙 남은 윤혜인을 보면서 조금 아쉬워했다. 사방에 감시카메라가 깔려 있고 시간이 촉박할까 봐 걱정되는 것만 아니었다면 블랙 남도 여자랑 놀고 싶었다!‘에잇. 이 색광에게 기회를 뺏겼어!’블랙
이 말을 하고서 윤혜인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른 것만 같았다!윤혜인은 마음속으로 이준혁이 자신의 말을 이해했기를 묵묵히 기도했다.하지만 전화 안에서는 몇 초 동안 말이 없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뭐, 안 탄다고?”윤혜인은 심장이 바닥까지 덜컹 내려앉았다.이준혁은 윤혜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세모눈은 표정이 확 바뀌었다. 그는 윤혜인이 도움을 청한 줄 알고 버럭 폰을 들어 바닥에 내리치려 했다!이때 스피커폰에서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탈 거면 진작에 말했어야죠. 제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요!”세모눈은 폰을 내리치려던 동작을 멈추었고 윤혜인은 급하게 말을 이었다.“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제가 말한다는 걸 깜박했어요!”“제 평점이 깎이면 안 되니까 그쪽에서 주문을 취소하세요!”전화 반대편에서 전화를 뚝 끊었다. 전화 안의 사람은 화난 게 틀림없었다.그제야 세모눈은 윤혜인이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는 걸 믿었고 그녀에 대한 경각심을 내려놓았다.세모눈은 윤혜인의 핸드폰에서 앱을 뒤지면서 말했다.“빨리 얘기해. 이 폰의 계좌 이체 비번이 어떻게 돼?”이때 전화가 다시 울렸다.여전히 조금 전 그 전화번호였다.세모눈은 낯 색이 어두워졌다.“뭐야!”윤혜인은 슬기롭게 대답했다.“아마 주문을 취소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아요. 제 쪽에서 주문을 취소하지 않으면 기사님이 다른 주문을 받지 못하거든요.”세모눈은 윤혜인이 시키는 대로 주문을 취소해 보았지만 한참 동안 해도 주문은 취소되지 않았다.핸드폰은 또 계속 울려 세모눈은 짜증이 나고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씨발. 이 핸드폰 왜 이래!”윤혜인은 이 틈을 타서 말했다.“저기요, 제가 해드릴게요. 이게 지문 인식이 필요해서 그래요.”세모눈은 윤혜인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손목의 끈을 풀어달라고 날 속이는 거 아니지!”“절대 아니에요!”윤혜인은 겁에 질려 말했다.“지문 인식하는 게 아주 빨라요. 그리고 제가 좀 있다가 돈 보내 드릴 때도 비번을 틀릴까 봐 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