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이 완전히 갈라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이제 더는 못 참겠어.”5년 동안 금욕 생활을 했고 지금 눈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더는 성인군자가 되기 어려울 것 같았다.이준혁이 얼마나 그녀를 원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윤혜인도 결국 이준혁의 미색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이 되었다.이준혁은 다시 고개를 숙여 윤혜인의 볼과 귓불과 쇄골에 키스했다. 지나간 곳마다 키스 자국이 꽃처럼 피어났다.윤혜인은 온몸이 활활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오랫동안 메말랐던 몸에 숨겨져 있던 깊은 욕망이 끓어올랐다.이준혁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최대한 인내하며 참아내는 것 같았다.“혜인아, 너도 원하잖아. 나 속일 생각하지 마. 솔직히 아까 좋았잖아...”그의 목소리는 마치 불에 달구기라도 한 듯 갈라져 있었다.윤혜인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볼에서 귓불까지 사과처럼 빨개진 상태였다.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몸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그녀도 원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이어진 감정은 수치, 깊은 수치였다.이준혁에게 반응하는 몸이 너무 싫었다.이준혁은 윤혜인에게 고민할 기회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키스했다.“혜인아, 나한테 맡겨. 더 편안해지게 해줄게...”그는 이렇게 말하며 윤혜인의 손목을 잡아 베갯머리로 올렸다. 차가운 입술로 귓불을 살짝 핥더니 그대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윤혜인은 이제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반항할 힘조차 없었다.이준혁의 말처럼 그녀는 이미 극락을 느끼고 있었다.순간 윤혜인은 마음이 꽉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로서의 만족이었다.이런 일로 모든 걸 잠시 잊는 듯한 쾌락을 얻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그동안의 애증은 잠시 내려두고 원초적인 본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끝나고 나니 윤혜인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움직이기조차 싫었다.힘을 쓰는 사람은 분명 그녀가 아닌데 말이다. 이준혁이 전적으로 시중을 들면서 보듬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하지만 그래도 몸 위로 타이어가 짓누르고
아쉽게도 이준혁은 그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친근하게 그녀의 코끝을 쓸어내리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그래.”그러더니 윤혜인을 번쩍 들어 올려 욕실로 향했다.“어...”윤혜인이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내려줘요.”두 사람은 지금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윤혜인은 어디를 만지든 이상한 것 같아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내가 씻는 거 도와줄게.”이준혁은 샤워 타올을 세면대에 잘 펴놓더니 이내 물을 내렸다. 그러고는 윤혜인을 욕조에 내려주었다.윤혜인은 자기가 이준혁의 불쌍한 척에 속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특히 그쪽 체력은 어마어마할 정도로 좋았다.윤혜인은 욕조에서 반신욕을 즐기며 이준혁이 들락날락하는 걸 지켜보다가 아예 눈을 감았다.차라리 보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다.샤워가 끝나자 이준혁은 다시 그녀를 침대로 안아다 줬다. 윤혜인은 이준혁이 시트를 바꿨다는 것에 놀랐다.깔끔하고 나른한 시트에서 잠에 든다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이준혁이 부드럽게 말했다.“좀 자. 나도 샤워하고 올게.”한 번 입은 옷은 다시 입지 않는 게 이준혁의 습관인지라 어제 올 때 이미 옷을 가지고 온 상태였다.윤혜인은 욕조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듣자 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이준혁이 분명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그녀가 자기를 받아들였다고 말이다.이준혁이 옷을 입고 나왔을 때는 윤혜인도 차분함을 되찾은 뒤였다.“준혁 씨, 나 할 말 있어요.”이준혁은 윤혜인의 차가운 얼굴을 보며 안 좋은 예감에 흥분이 반쯤 사라졌다.그는 까만 눈동자를 아래로 축 늘어트리며 말했다.“그래. 말해 봐.”“아까는 그냥 서로 필요한 걸 가져갔을 뿐이니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이준혁이 고개를 들더니 상처받은 눈빛으로 되물었다.“상처?”윤혜인도 이 말이 나쁜 년이나 하는 말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도 아까 일어난 일이 일시적인 충동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되었다.구별이 안 된다면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이 관계
윤혜인은 ‘좋아한다’는 말에 안색이 변했다.전에도 좋아한다는 말에 심하게 뎄던 그녀였다. 하여 차가운 눈빛으로 매정하게 말했다.“이준혁 씨, 원했던 거는 인정할게요. 하지만 그건 그냥 생리적인 수요일 뿐이에요. 꼭 이준혁 씨여야 된다는 법은 없어요. 너무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어요.”이준혁은 꼿꼿하게 서 있었지만 몸은 이미 그대로 굳은 상태였다.마음에 마치 무수히 많은 바늘이 꽂힌 것처럼 너무 아팠다.그저 생리적인 수요라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사랑에 결벽증이 있던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꼭 그가 아니어도 된다니, 다른 사람이어도 괜찮다니, 이건 그를 능멸하는 거나 다름없었다.윤혜인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 윤혜인 외에 다른 여자는 없다는 걸 말이다.이준혁이 차가운 눈빛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차갑게 물었다.“그러면 이미 만족했으니까 나를 다시 뻥 차버리겠다는 거야?”윤혜인은 이준혁이 너무 질척거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원의 일을 아직 부탁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모질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하여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냥 나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나 혼자 좋았던 것도 아니잖아요. 준혁 씨도 좋았잖아요. 아니에요?”이준혁은 가슴이 먹먹한 게 아팠다.‘좋았다라.’이준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좋았다니 그럼 한 번 더 하지 뭐.”이준혁이 이렇게 말하더니 윤혜인을 번쩍 안아 침대에 던졌다. 까만 눈동자는 음침하기 그지없었다.윤혜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준혁의 모습이 아주 예전에 봤던 모습과 겹쳤다. 지금 그는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이준혁 씨, 내가 원해야만 가능해요.”발버둥 치며 일어나려 했지만 이준혁이 윤혜인의 손목을 꽉 잡고 침대에 눌렀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윤혜인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원하는 걸 얻는 사이라며? 나 지금 너 원해.”깜짝 놀란 윤혜인이 고개를 저으며 발길질했다.“나는 싫어요. 이준혁 씨
윤혜인이 한참 침대에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아직 소원의 일을 해결하지도 못했는데 이준혁이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이다.소원이 육경한과 같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찾기는 쉬울 것 같았다.육경한이 병원에 가지 않은 것도 소원을 보호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병원에서 그런 상처를 보면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윤혜인은 그나마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준혁이 육경한은 소원을 해칠 리 없다고 한 말이 맞는 것 같았다.윤혜인이 도지훈에게 문자를 보냈다. 육경한이 살만한 곳이 어딘지 조사해 보라고 말이다.이때 홍 아줌마가 올라와 밥 먹으러 내려오라고 했다.윤혜인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거울 앞에 마주 섰다가 흠칫 놀랐다.하얀 목덜미에 크고 작은 키스 마크들이 가득했다.이준혁은 마치 푸딩을 먹는 것처럼 정신없이 그녀의 목을 공략했던 것이다.정말 해도 해도 너무 했다.윤혜인은 착잡한 심정으로 옷장을 열어 복고풍 레이스 블라우스를 꺼냈다. 하지만 그래도 어떤 키스 마크는 가려지지 않았다.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윤혜인은 스카프를 꺼냈다. 그러자 뭔가 더 이상해 보였다.식탁으로 온 윤혜인은 곽아름을 안고 있는 남자를 보고 넋을 잃었다.이준혁이 가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이다.아까 분명 씩씩거리며 문을 박차고 나갔는데 지금은 곽아름을 안고 고구마를 까주고 있었다.홍 아줌마는 윤혜인이 멀뚱하게 서 있자 이렇게 해명했다.“대표님이 아침 일찍 오셔서 아름이랑 아침 식사하겠다고 해서요.”식탁에 앉은 두 사람이 일제히 그녀를 바라봤다.곽아름은 윤혜인을 보자마자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엄마, 빨리 와서 앉아요.”윤혜인이 자리로 가서 앉았다.곽아름은 까놓은 고구마를 윤혜인에게 내밀며 활짝 웃었다.“엄마, 아빠가 까준 고구마인데 한 번 먹어봐요.”윤혜인은 아직 경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터라 이준혁을 힐끔 쳐다봤다.이준혁은 그런 윤혜인을 보지 않고 곽아름을 안은 채 고개를 숙이고 고구마만 계속 깠다.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 보
“아빠, 무슨 모기가 그렇게 커요? 아름이는 한 번도 본 적 없어요.”“본 적 있을 텐데?”“근데 왜 그렇게 크게 물었대요?”이준혁이 맞은편에 앉은 윤혜인을 힐끔 보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많이 배고팠나 보지.”“...”이 말에 윤혜인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도대체 애한테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5년 동안의 금욕 생활에 미쳐버린 건 이준혁뿐만이 아니었다.극락이 무엇인지 체험해 본 사람들이었기에 윤혜인도 처음엔 흐리멍덩했을지 몰라도 금단의 열매에 다시 손을 대니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 갔다.이른 새벽, 이준혁의 갈라진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힘들면... 나 물어... 알았지... 너 자신을 깨물다가 다치면 안 되니까...”분명히 이준혁이 먼저 이렇게 말했다.곽아름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빠, 그러면 미리 배부르게 먹여요. 그래야 이렇게 힘껏 안물지.”이준혁이 곽아름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배부른게 뭔지 모르는 대왕 모기였다.이준혁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그래, 알았어.”윤혜인이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어 마른기침하더니 이렇게 말했다.“아름아, 죽 먹어.”그러면서 이준혁을 매섭게 째려봤다.‘애한테 이상한 것만 가르쳐주네.’이준혁도 따라서 죽그릇을 들더니 호호 불어 곽아름에게 떠먹여 줬다.“아름이 착하지. 밥 많이 먹어야 모기한테 안 물린다.”“...”윤혜인은 할 말을 잃었다. 이준혁이 일부러 이러는 게 틀림없었다.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곽아름만 계속 재잘재잘 말했고 윤혜인은 거기에 맞장구를 쳤다.이준혁은 아이를 달래는 건 참 잘했다. 매번 아름의 식사를 챙길 때마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많이 먹는 게 눈에 보였다.이준혁은 아빠로서는 제격인 것 같았다.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윤혜인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위험한 생각은 애초부터 싹을 자르는 편이 좋다.뜬금없이 고개를 젓는 윤혜인을 보고 이준혁은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 말에 맞은편이 조용해졌다.고개를 들어보니 이준혁은 이미 가고 없었다. 그대로 가버린 것이다.순간 윤혜인의 마음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서글펐다.마치 예전에 이준혁에게 무참히 버려지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바보같이 뭘 또 기대한 거야...’윤혜인은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순간 정신을 차리고 그런 자신을 비웃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자신이 한심했다.기대가 없어야 더 단단해질 수 있다.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문 쪽에서 경적이 들려왔다.반쯤 내려진 차창으로 이준혁의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그는 윤혜인을 힐끔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안 타고 뭐 해?”윤혜인은 그가 갔다가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사실 이준혁이 아까 그렇게 나간 건 차를 빼려고 나간 것이었다.윤혜인은 착잡한 눈빛으로 이준혁을 쳐다보더니 핸드폰을 들고 차에 올랐다.가는 내내 차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윤혜인은 아직 아까 버려졌던 슬픔에 잠겨 있었다. 마음이 너무 뒤숭숭했다.이준혁은 우울해 보이는 윤혜인을 힐끔 쳐다봤다. 윤혜인은 지금 온몸으로 이준혁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준혁의 마음도 따라서 우울해졌다.잘 보이려고 2시간을 공들여 시중했는데 결국 그녀는 서로 원하는 부분을 채우는 사이라고 말했다. 그가 만약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했다면 지금쯤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했을 것이다.이준혁은 오늘 윤혜인을 달래주지 않기로 했다. 결국 달래는 데 실패할 텐데 계속 들이대기도 그랬다....차가 한 별장 앞에 멈췄다.문 앞에 까만 슈트를 입은 보디가드가 지키고 있었다.윤혜인은 동떨어진 별장을 보며 그 별장이 소원을 가두는 감옥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입구에 도착하자 보디가드는 이준혁을 알아보고 그냥 들여보냈지만 처음 본 윤혜인을 보고는 몸수색하겠다고 했다.이에 이준혁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 보디가드를 쳐다보며 말했다.“내 사람이야.”이 말에 윤혜인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보디가드가 망설이는데 이준혁이 윤혜인의 손을 잡으며
“달래기 쉽다고?”이준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다른 여자를 달래본 적이 없어서 달래기 쉽다는 표준이 뭔지도 몰랐다.육경한이 말했다.“전에 임세희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도 혜인 씨는 별로 신경 안 쓰고 용서해 줬잖아. 그게 달래기 쉬운 게 아니면 뭐야?”이준혁이 이해가 안 된다는 말투로 물었다.“내가 임세희를 잘해줬다고?”이준혁은 아무런 정성도 힘도 들이지 않고 물질적인 만족만 주는 건 잘해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돈은 그에게 제일 가치 없는 물건이었다.오직 윤혜인만 지치지 않고 계속 달래줬지만 윤혜인은 그 마음을 몰라줬다. 그것도 모자라 그를 보잘것없는 하찮은 존재라고 말했다.육경한은 뻣뻣해진 팔을 움직이며 덤덤하게 말했다.“나도 알아. 너한테 잘해준다는 의미가 뭔지. 그리고 물질적인 거를 제일 하찮게 생각한다는 것도 다 알아. 하지만 여자의 생각은 남자랑은 달라. 신경 쓴다는 건 좋은 일이야. 질투한다는 뜻이고 아직 너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뜻이야. 말만 그렇게 해서 그렇지.”이 말에 이준혁의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사실 윤혜인도 보이는 것만큼 매정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질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마음과 반대로 말하는 건 있는 것 같았다.이준혁은 창백한 육경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다 아는 사람이 왜 소원 씨랑은 그렇게 된 거야?”“상황이 다르다니까.”육경한은 씁쓸하게 웃었다.“내가 한 잘못은 되돌릴 수 없어.”육경한과 소씨 가문 사이에 있었던 비즈니스 경쟁과 거기에 사용한 수단을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은 모르고 있었다.육경한도 그렇게 자세히 말해줄 리가 없었다.하지만 소원의 아버지가 투신자살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 친구들이 깜짝 놀라긴 했다. 육경한과 관련된 일이라는 걸 모르긴 해도 말이다. 만약 정말 관련되어 있다면 이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이다.이준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경한아, 너 위해서 하는 말이야. 노력해도 안 되면 그냥 놓아주는 게 맞아.”“소원
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원이 주변을 살피더니 엿듣고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진지한 표정으로 윤혜인에게 귓속말했다.“작업실에 약 하나 보냈거든. 수령인에 네 이름을 적었다. 3일 뒤에 금오구 120번지 옆에 있는 골목에 있는 빨간 기와집으로 가서 할머니에게 전해줘.”윤혜인은 멍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무슨 약이기에 이렇게 비밀스러운지 궁금했다. 그리고 윤혜인은 소원에게 남은 가족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전에 있던 친척들은 하나같이 흑심을 품고 소원의 아버지가 투신자살하기 전에 건질만한 것들을 다 건지고 도망갔다.할머니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소원이 말했다.“혜인아. 이 일은 아무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돼. 이준혁 씨도 안 돼.”이준혁과 육경한은 친한 친구였기에 이준혁이 알면 유진은 숨어있을 곳이 없게 된다.윤혜인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진지해 보이는 소원의 표정에 이 일이 절대 단순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꼭 가져다줄게.”소원이 윤혜인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더니 울먹이며 말했다.“혜인아, 고마워. 뭘 보든 놀라지 말고. 내가 앞으로 다 설명해 줄게.”“그래. 우리 사이에 뭔 인사야.”“갈 때 미행 조심해. 육경한이...”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늦어서 4일이야. 그전에 꼭 할머니 손에 넘겨줘야 해. 그거 목숨 살리는 약이야...”소원은 모든 희망을 윤혜인에게 거는 수밖에 없었다.윤혜인은 이준혁이 뒤에 서 있기에 들킨다 해도 윤혜인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육경한도 어쩔 방법이 없었다.하지만 다른 사람은 달랐다. 육경한 그 미친개는 무슨 짓이든 해낼 수 있다.얘기를 얼마 나누지도 못했는데 집사가 소원을 찾아왔다.“소원 씨, 도련님 약 드실 시간입니다.”소원이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알았어요.”윤혜인은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소원의 손을 다독이며 말했다.“소원아, 내가 이준혁 씨한테 말해볼게. 네가 얼른 이곳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