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아는 의문스러웠다.“저랑 관련이 있어요? 무슨 일인데요?”원지민은 유유히 말했다.“곽윤혜 씨는 경한 씨의 첫사랑과 절친이에요.”방민아는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진아연 씨... 말하는 거죠?”육경한이 대외로 밝혔던 여자는 진아연뿐이었다. 그래서 방민아는 무의식적으로 진아연이 곧 육경한의 첫사랑이라고 생각했다.원지민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진아연 씨는 아니에요. 사실 경한 씨의 첫사랑은 예전 소씨 집안의 따님인데, 경한 씨와 그의 첫사랑 두 사람은 동창이기도 하고 소꿉친구이기도 해요...”“소씨 집안?”방민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몰락하면서 대표가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그 소씨 집안 말인가요?”“맞아요. 그 소씨 집안 아가씨도 지금 서울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경한 씨와 아직 연락하는 것 같아요...”원지민은 마음이 놓이지 않은 듯 방민아에게 당부했다.“민아 씨도 조심하세요. 절친인 이 두 여자는 보통이 아니에요. 부리는 수가 정말 대단해요...”방민아는 그제야 육경한이 왜 얼굴 한번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쁜지 알았다.순간, 방민아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르며 매섭게 얘기했다.“이 천한 년들, 너무 재수 없네요. 제가 사람을 찾아서 한바탕 혼내 줘야겠어요!”원지민은 방민아의 분노를 눈여겨보면서 아랫입술을 살짝 올리더니 바로 방민아를 위로하는 척했다.“민아 씨, 흥분하지 말아요. 제가 민아 씨에게 얘기했다는 걸 경한 씨가 알면, 저도 준혁 씨 앞에서 곤란해져요...”방민아는 시원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전 어리석지 않아요. 지민 씨가 알려줬다는 걸 말하지 않을 거예요.”방민아는 기자회견 현장 쪽을 바라보며 분분하게 말했다.“남의 남자를 꼬시는 천한 년을 절대로 가만두어서는 안 돼요...”한편, 기자회견 현장에서, 그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여자는 여전히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기자들이 질문하는 동안, 아무도 표절에 대해 묻지 않자 그녀는 선 자리에서 불만스럽게 몇 마디 외쳤다.그러나 아무도 그 여자의
순간 현장은 적막에 잠겼다.행패를 부리는 건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한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싶었다.윤아름이 은퇴한 이상 윤혜인의 말 몇마디로 그녀가 윤아름의 딸이라는 걸 단정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역시나 기자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그러게요. 일방적인 주장만 듣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그럼 윤 선생님이 만드신 윤씨 자수법을 시켜보는 건 어떨까요? 그 자수법은 따님만 전수받았다고 들었어요.”“그러게요.”한편, 여자가 온전히 깽판을 치기 위해 온 것이라는 걸 눈치챈 윤혜인은 매니저 도지훈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인 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한 번 보여드리죠.”곧이어 스태프들이 도구를 챙겨오고 그 위에 천을 펼쳐놓은 다음 옆에 실과 바늘을 내려놓았다.그러자 모두가 흥분하기 시작했다.윤씨 자수법이 유명한 이유는 바늘과 실을 끊지 않고 단 번에 수를 놓는 것 때문이었다.베이스로 쓰는 실을 정한 뒤 다른 컬러의 실을 사용할 때는 특별한 묘한 기법을 사용해 실을 끊지 않고 수를 사용하는 기묘한 수법인 윤씨 자수법은 한때 윤아름이 자수를 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 비법을 알아내지 못했었다.태연하게 의자에 앉은 윤혜인이 드디어 바늘을 들었다. 가는 손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자수의 밑그림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정교한 스킬에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가 더해져 보는 이들의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자수는 재미없는 취미라는 선입견과 달리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지만 그 누구도 자수에 담긴 비법을 보아내지 못했다.그리고 30분도 되지 않아 아름다운 새끼 봉황이 천 위에 담겼다. 전체적인 모습부터 표정까지 말 그대로 예술 작품이었다.특히 그 빛이 담긴 그 눈은 어느 쪽에서 보든 확실한 걸작이었다.20년만에 다시 보는 윤씨 자수법 작품에 다들 말을 잃은 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그리고 윤혜인의 하얗고 가는 손을 바라보는 순간,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저
순간 당황한 여자가 바로 도망치려 했지만 다른 형사가 그녀의 앞을 마아섰다.“뭐야. 난 아무 짓도 안 했다고! 난 억울해.”난리통에 여자의 선글라스와 마스크가 벗겨지자 도지훈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말 북성 엔터에서 혜인이 누나 험담을 하다 해고된 그 여자잖아?”“누나, 저 여자인 걸 어떻게 아셨어요?”도지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전 윤혜인이 그의 귓가에 한 말이 바로 경찰에 신고하라는 말이었다.성준이 확보한 CCTV 영상에 의하면 바로 저 여자가 축제 드레스를 보관하는 탈의실에 몰라 들어가 다른 스튜디오에 판매했고 그 과정에 드림 작업실에 들켜 표절 논란까지 일어났었다.‘아마 해고된 걸로 앙심을 품고 여기까지 와서 난리를 피운 거겠지. 엄마의 작품을 고가에 매입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걸 거야. 뭐, 경찰 조사에서 밝혀지겠지.’“입가에 점이 있거든.”평소 관찰력이 뛰어난 윤혜인은 한 번 스쳐지난 사람이라도 그 특징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천재적인 스킬에 그녀를 바라보는 도지훈의 눈동자가 존경심으로 반짝였다.‘정말 볼 때마다 놀랍다니까.’보디가드들의 경호를 받아 무대에서 내려온 윤혜인은 배남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현장을 나섰다. 무례한 질문과 촬영을 막기 위해 내내 윤혜인의 앞을 지키는 모습에 다들 그가 윤혜인의 남자친구가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다.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을 피해 윤혜인은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호텔 밖, 검은색 벤이 길가에 멈춰 있다.그리고 그 차에는 그림과 같은 옆모습을 자랑하는 남자가 앉아있다. 태블릿으로 라이브 방송을 지켜보던 이준혁은 실시간 댓글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선남선녀가 따로 없네. 진짜 너무 잘 어울려요!”“너무 젠틀하잖아. 저 손 좀 봐.”“딸이 진짜 미인이네. 윤 선생님도 미인이시긴 했지. 역시 유전자의 힘이란!”사람들 앞에서 반짝이는 윤혜인의 모습은 5년 전과 같은 사람이라 보기 힘들 정도였다.‘윤혜인의 어머
‘그러니까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한편, 윤혜인과 배남준은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차에 타려던 순간, 어디선가 훅 나타난 누군가가 윤혜인의 손을 잡으려 하자 배남준이 바로 남자의 팔을 가로막았다.“왜 막고 난리야. 나 쟤 삼촌이라고!”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든 윤혜인은 역시나 남자의 정체가 주산응인 걸 확인하곤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혜인아, 오랜만이네.”주산응이 히죽거리며 말했다.외할머니 장례식에도 얼굴 한 번 보이지 않았단 그의 만행에 윤혜인은 차갑게 대꾸했다.“안 죽고 살아있었네.”“퉷.”한참을 침을 뱉던 주산응이 불쾌하다는 얼굴로 말했다.“어디서 저주야. 난 오래오래 살 거다.”이 꼴이 나고서도 반성 하나 하지 않는 모습에 윤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네, 그러세요. 가요.”윤혜인이 돌아서려던 순간, 주산응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야, 이 건방진 계집애가. 거기 안 서?”배남준이 그를 제압하려던 찰나, 윤혜인이 먼저 깔끔한 킥으로 주산응의 무릎을 가격했다.“으악!!”바닥에 주저앉은 주산응이 비명과 함께 욕설을 내뱉었다.“감히 날 차? 나 네 삼촌이야! 이런 예의없는 계집애. 이제 좀 잘 나간다고 가족은 나 몰라라 한다 이거야?”“당신이 무슨 삼촌이야. 외할머니 장례식에 얼굴 한 번 안 비춘 주제에. 그 동안 성묘 한 번 가본 적 있어?”비록 진짜 외할머니는 아니었지만 우연히 주운 그녀를 진짜 손녀처럼 아껴주었던 사람이기에 지금까지도 감사한 마음은 그대로였다.그랬기에 친아들인 주산응이 이렇게까지 매정할 수 있나 싶었다.“큼, 삼촌이 워낙 바빠서 말이지. 너 그 동안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했는데 이 삼촌 용돈 정도는 챙겨줄 수 있는 거 아니야?”“하.”윤혜인이 코웃음을 쳤다.“저번에 준 돈은 벌써 다 쓴 거야?”“그게 벌써 언제쩍 일인데.”주산응은 괜히 눈물을 훔치는 척하며 말했다.“삼촌이 또 사기를 당했지 뭐냐...”‘웃기시네. 또 도박에 전부 박았겠지.’“빚 갚아준 걸로 난 은혜는 갚았다고
“비밀?”발걸음을 멈춘 윤혜인이 돌아섰다.절뚝거리며 일어난 주산응이 입맛을 다셨다.“돈 내놔. 그럼 알려줄게.”“그럼 됐어. 비밀이고 뭐고 상관없어.”윤혜인이 또다시 돌아서려 하자 주산응은 또 목소리를 높였다.“네가 어떻게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일이야. 정말 알고 싶지 않아?”“뭐?”‘아빠 말로는 6살 때 날 잃어버렸다고 했어. 엄마는 슬픔에 매일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고... 그러다 어느 날 쪽지 한 장 남겨놓고 실종되었다고 했었지... 그냥 단순히 길을 잃은 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윤혜인의 검은 눈동자가 주산응을 응시했다.“주산응, 지금 나한테 사기치려는 거지?”어린 주제에 이름을 대놓고 부르는 윤혜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돈을 받으려면 장단을 맞춰주는 수밖에 없었다.“거짓말 아니야. 맹세해.”“그럼 말해 봐든가.”“이게 어디서 맨입으로 들으려고. 일단 돈부터 내놔. 안 그럼 한 마디도 안 할 거야.”“얼마나 필요한데?”이에 주산응이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10억이면 돼.”“하, 그냥 그 비밀 평생 품고 있어.”솔직히 궁금한 건 사실이었지만 주산응의 인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윤혜인은 그 돈을 주고 싶지 않았다.지금 10억을 준다면 앞으로 50억, 100억 평생 그녀의 등골만 빨아먹을 게 분명했다.“참나... 10억도 없어?”그리고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배남준을 훑어보았다.“남자가 또 바뀌었네. 하여간 재주도 좋아...”윤혜인이 매서운 눈동자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닥쳐.”‘호오, 켕기는 게 있긴 하나 보지? 새 남자친구 앞에서 내숭이라도 떨고 싶은 거야?’“내 입 막고 싶으면 돈으로 막아. 안 그럼 저 남자 앞에서 네가 어떤 짓까지 했는지 다 밝힐 테니까.”‘그 동안 반반한 얼굴 하나 믿고 까불었지? 돈 많은 사장님들이 널 진짜 사랑해서 만나는 줄 알아? 그냥 대충 가지고 노는 것뿐이야.’“할 말 없으면 그냥 가.”“왜 지금 남친이
그 말에 주산응은 기가 찰 따름이었다.‘뭐? 개? 지금 내가 개라 이거야? 그래... 내가 이대로 넘어갈 것 같아?’피가 흐르는 입술을 막은 채 주산응이 고래고래 소리쳤다.“이 계집애가 지금까지 만난 남자만 몇 명인 줄 알아? 돈만 많으면 유부남도 만나는 애가 얘가. 지금 돈 좀 있으니까 그나마 옆에 있는 거지 조금만 수틀리면 바로 차버릴 거라고!”주산응의 선 넘는 말에 윤헤인이 분노했다.“닥쳐. 또 그렇게 헛소리 해봐. 그땐 진짜 신고할 거니까!”“헛소리? 저번에 병원에서 널 도와준 남자도 그렇고. 아, 저번에 남자랑 차에서 키스까지 하던 거 내가 똑똑히 봤어! 어느 남자가 너 같은 걸 아내로 맞이하겠어? 음탕한 계집애!”거칠게 핏물을 내뱉은 주산응이 욕설을 이어갔다.“하여간 너도 참... 남자 보는 눈이 점점 떨어져서 어떡하냐? 전에 남자는 10억 그냥 턱턱 내놓더만. 이 남자는 돈 한 푼 안 주네.”“1억이라니? 누가 그 돈을 줬단 소리야!”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숨길 게 있나 싶어 주산응은 말을 이어갔다.“전에 너랑 키스했던 그 남자 말이야. 이선그룹에서 일한다는 그 남자, 내가 회사까지 따라가서 네가 그 동안 길러준 은혜도 모르고 건방지게 군다고 하니까 바로 1억 보내주던데? 너 귀찮게 굴지 말라고 하면서.”그리고 배남준에게 눈을 돌린 그가 말했다.“어디 보자. 이쪽도 귀티는 좔좔 흐르는 것 같은데 왜 이러나 몰라.”“말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전 혜인이랑 그냥 친구입니다.”배남준이 주먹을 꽉 쥐었다.“에이, 남녀 사이에 친구는 무슨. 쟤랑 자고 싶다는 생각 한 번도 안 했어?”다른 건 몰라도 윤혜인의 외모만큼은 인정하는 주산응이었다.그 시골에서 자라면서도 고급스러운 미모와 몸가짐은 눈에 확 띨 정도로 남달랐으니 말이다.점잖은 배남준이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닥쳐!”한편, 윤혜인은 주산응의 한 말에 꽤 충격을 먹은 상태였다.‘이준혁이 주산응한테 돈을 줬다고... 나 귀찮게 하지 말라고? 어쩐지 병원
“어어!”주산응이 차 뒤편에서 소리 지르며 달려왔다. “머……멈춰!”그러건 말건 차는 멈출 기세 없이 앞으로 내달렸다.“쿵!”큰 소리가 울렸다.주산응은 볼품없이 넘어져,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극심한 고통에 눈물이 줄줄 나왔고, 흐릿한 시선으로 차를 확인하고 뒷걸음질했다.유리창이 서서히 내려왔다.윤혜인은 무표정으로 전했다. “아직도 할 말 있어?”주산응은 피떡이 되어 못 볼 꼴이 된 얼굴에, 더 이상 이 조그만 녀석에게서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라고 직감했다.“얼마 줄 건데?”윤혜인도 그와 똑같이 한 손을 척 들어 올렸다.주응산은 입꼬리가 떨렸다.그러나 그도 이 비밀은 윤혜인 말고는 흥미가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서는 한 푼도 못 받을 것이 눈에 생생했다.주응산은 두 눈을 딱 감고 입을 삐쭉하며 말했다. “그래그래! 오천이면 오천이지! 오천만 주면 내가 싹 다 알려줄게. 한마디 거짓말도 없이.”윤혜인은 그를 정신병자 보듯 흘겨봤다.그리고 시정했다.“내 뜻은 오백이라고.”“……!” 주산응은 말을 못이었다.그는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욕을 퍼부었다. “미친년, 어디 문제 있나, 그렇게 깎는 게 어디 있어!”윤혜인은 아무것도 안 들리는 양 담담히 계속 내뱉었다. “사백.”“……정신병 걸린 년, 진짜 심각하네!”윤혜인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이게 마지막이야.”“마지막은 무슨 마지막!” 주산응은 화병에 붉으락푸르락했다.반면 윤혜인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이백.”“……”어라? 주산응은 이상함을 눈치챘다.“수학을 돼지한테서 배웠나, 다음은 삼백 이겠지?”윤혜인은 느긋하게 답했다. “내가 내는 거니까 내 마음이지.”주산응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꿈 깨. 삼백이면 몰라도……”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엔진음이 울리며 차창이 닫혔다.주산응의 피 먼지가 붙은 얼굴은 삽시에 사색이 됐다.그는 미친 사람의 끝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판사판인 데다, 한번 뱉은 말은 무조건 실행했다.
윤혜인은 주산응의 감춰지지 않는 욕심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빨리 말해.”주산응의 손아귀의 돈다발을 하나하나 다 세어보고 나서야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몇 년 전인가, 밖에서 술을 먹었어. 형부가 술집에 나를 데리러 온 거야. 돌아가는 길에 한 쓰레기통이 있었는데, 거기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린 거지. 한밤중에 얼마나 무섭던지. 형부보고 빨리 가자고 말했는데, 글쎄 형부가 기어코 가서 확인하겠다는 거야.나는 당연히 따라 안 갔지. 얼마 안 지나서 형부가 포대에 쌓인 아기를 꺼내더라고. 머리에는 물고기 잡을 때 쓰는 튼튼한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는 게, 딱 누군가가 이 애를 죽이려고 한 것 같았어.형부는 이 애를 데려갔는데, 마침 그 날 밤 집에 어린 손녀가 갑자기 열이 내리지 않아서 급성 뇌염으로 죽어버린 거야.우리 누나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서 이 딸 하나뿐이었는데, 혹여나 어르신이 충격받으실까 봐 형부가 이 애를 손녀딸인 거로 속이자고 한 거였어.”주산응의 말은 꽤 길었다. 윤혜인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그녀가 바로 그 이야기 속의 어린 아기였다……“난 다 말했어. 절대 거짓은 들어있지 않아. 그때 형부와 절대 어머니한테 들키지 않게 할 거라고 약속했었다고.”윤혜은의 양부, 바로 주산응의 형부는 주산응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한 자루의 양심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누나가 돌아간 뒤 형부는 아버지와도 같은 역할을 하며 집안을 지켜줬다.모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며 자기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굶기지는 않았다.형부는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좋은 사람이었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이상한 사람들과 엮여 도박 놀음을 하러 다니진 않았을 것이라고 주산응은 생각했다.주산응이 돌아간 후.윤혜은은 아직도 충격적인 진실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주산응이 말한 게 모두 사실이라면 당시 자신은 잃어버린 게 아니라 고의로 해코지당한 것이 아닌가!6살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가 누군가에게 해코지당할 정도로 나쁜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