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클락션 소리가 울려 퍼졌다.배남준은 거의 본능적으로 윤혜은을 끌어안아 뒤로 몇 발 물러섰다.하지만 그 차는 그들을 향해 온 것이 아니었다.차는 그대로 배남준의 검은색 밴을 들이받았다.“쾅!”극도로 큰 소리가 들려왔다.밴은 완전히 일그러졌으나 뒤의 차량은 큰 변화가 없었다.범퍼 빼고는 거의 손상을 입은 곳이 없었다.이도 주훈의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아귀는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전에 비슷한 일이 있은 뒤로 주훈은 무슨 일이 있던 대표에게 핸들을 쥐여주지 않았다.주훈이 직접 운전하면 그나마 힘 조절이 가능했기 때문이다.대표였다면 눈앞의 차는 이미 가루가 됐을지도 모른다……윤혜은은 머리가 아팠던 찰나에 또 충격을 받아버려 그만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완전히 배남준의 품에 기대었다.검은색 고급 외제 차의 문이 열렸다.광택이 나는 구두가 천천히 지면에 닿았다.남자는 한 손은 슈트 바지 주머니에 걸친 채 걸어왔다.올블랙의 슈트가 검은 먹과도 같이 엄숙한 분위기를 냈다. 몸짓에서 자연스레 스며 나오는 고귀한 분위기는 감춰지지 않았다.배남준은 기분이 상했다. 산에서 도를 닦는 승도 성깔이 있다고 하는데, 하물며 얼음 밭의 늑대 굴어서 자라온 그는 어떻겠는가.“이건 무슨 뜻이죠?”그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눈웃음을 지었다.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었으나, 그뿐이었다.이준혁의 검은 눈이 여인을 안고 있는 남자의 팔에 잠시 머물렀다. 차가운 시선으로 입꼬리만 씩 올리며 말했다. “실수로 차를 긁었네요.”배남준의 눈에는 더 힘이 들어갔다.왜 말이 통하지 않는 건가.이번은 차였지만, 다음은 사람을 칠게 아닌가!두 남자는 말 없이 서로를 노려보기만 했다. 범 두 마리가 대치하듯 기세 흉흉하여, 누구 하나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그때, 윤혜은이 벌떡 일어나 얼굴을 굳혔다.“준혁 씨, 미쳤어요? 왜 여기 있는 거예요?!”순간 헛것이라도 보고 있는 줄 알았다.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에 나타난 것인가.이준혁은 먹먹
윤혜은은 기분이 언짢았지만, 트집 잡을 군데는 딱히 없었다.교활한 남자였다.주훈은 벌써 따로 차를 두 대 마련해 왔다. “배남준씨, 실례를 끼쳤습니다. 함께 가시죠.”배남준은 윤혜은을 보며 물었다. “같이 올 거야?”하지만 윤혜은이 대답하기도 전에 이준혁이 말을 가로챘다. “한길이 아니니 제가 데려다주겠습니다.”윤혜은은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당신과도 같은 길이 아닌걸요.”배남준은 더 할 말이 있는 낌새였으나 주훈이 입을 열었다. “배남준씨, 안심하세요. 차는 충분히 있으니, 제가 꼭 아가씨를 집까지 바래다 드릴 겁니다.”윤혜은은 배남준의 차에 아직 처리하지 않은 돈과 서류들이 남아 있던 것이 떠올라 말했다. “남준 오빠, 먼저 가세요. 전 괜찮아요.”배남준은 신경이 쓰였지만 차 안에 가족과 연관된 기밀 문서들이 있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었기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윤혜은에게는 이준혁도 있었기에 다른 건 몰라도 위험만큼은 없을 것이다.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당부했다. “집에 도착하면 연락해.”윤혜은은 자신 때문에 배남준에게 적지 않은 일들을 떠안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순순히 응했다.곁에 서 있던 이준혁만 주먹을 꽉 쥐었다 다시 힘을 풀었다.배남준은 그를 보며 전했다. “혜은이를 부탁드리겠습니다.”이준혁은 여전히 서늘한 눈길로 회답했다. “당연합니다.”두 사람의 대화에는 곁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칼바람이 서려 있었다.두 쌍의 눈 속의 거센 파도는 모두 윤혜은을 자신의 소유물인 양 감싸고 돌았다.배남준이 먼저 시선을 돌려 윤혜은을 따뜻하게 바라보고는 자리를 떴다.이준혁은 윤혜은을 바라보는 배남준의 시선을 주시하다, 또 한 번 심장이 찢기는듯한 기분이 들었다.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질 지경이었다.윤혜은은 주훈이 마련한 차가 도착하자 바로 빠른 걸음으로 올라타 문을 닫았다.이준혁이 오를 틈은 한치도 남기지 않았다.“서호 별장까지 가주세요.” 기사에게 전했다.기사는 대표를 두고 감히 먼저
남자가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을 본 윤혜은은 서늘한 얼굴로 차 문을 열려 했다.이준혁은 그 모습에 급히 불러세웠다. “혜은아, 아름이……”윤혜은은 나지막이 말하는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름이 오늘 많이 놀랐겠어. 아름이가 많이 걱정할까 봐 가보고 싶은데.”이 말에 윤혜은은 담시 멈칫했다.이준혁은 윤혜은이 아름이에게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아름이 보게 해줘. 매일 너희 앞에 나타나진 않을 거라고 약속할게. 그러니 오늘 밤만 보게 해줘, 제발.”남자의 낮게 떨리는 목소리는 자존감은 다 내려놓은 채 구질구질하게 빌기만 했다.문을 열려던 윤혜은의 손이 멈췄다.“혜은아, 부탁이야. 오늘만 아름이와 만나게 해줘.”이준혁의 그 잘난 얼굴이 시허옇게 질린 것을 보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약해졌다.하지만 그 정도로는 이미 차갑게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을 다 녹일 수는 없었다.자기가 당했던 그 상처들을 생각하면 일분일초가 고통스러웠다.그러나 아름이의 눈물범벅이 된 작은 얼굴을 떠올리면 별수가 없었다……약간의 고민 끝에 드디어 혜은은 손을 내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준혁은 그녀가 동의 했음을 알아차렸다.내심 기쁘면서도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다.아름이가 아니었더라면 일말의 기회라도 없었을 게 분명했다.서호 별장.혜은은 문 앞에 도착하고 바로, 홍 아줌마가 아름이를 안고 정원에서 거니는 모습을 보았다.그녀는 가끔 아름이의 등을 토닥여주며 작은 목소리로 달래고 있었다.그 모습에 혜은은 가슴이 아려와 곧장 달려가 이름을 불렀다. “아름아!”아름이는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엄마……”어린아이는 얼굴이 발그스레 했다. 아마도 오랫동안 울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긴 속눈썹이 바람에 말라 다 뭉쳐버렸었다. 가여운 것.혜은은 당장 팔을 뻗어 안아줬다.“아름아.”이준혁이 뒤에서 함께 이름을 불렀다.아름이는 그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 물었다.“아빠, 안 죽었네……”이준혁은 홍 아주머니 손에서 아름이를 안아 와, 웃으며
그 말에 윤혜인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때로는 혈연관계를 정말로 믿어야 할 때도 있는 것 같았다.분명 아름이의 옆에도 꽤 남자가 많았다. 예를 들면 삼촌도 있었고 배남준 아저씨와 외할아버지도 있었다.이렇게 많은 어른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는데도 결국에는 이준혁과 가장 친해졌다.그런 친밀감은 나타난 것과 같았고 아무런 장벽도 없었다.정말 아름이의 심리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많은 이성의 관심을 받더라도 아빠의 사랑을 대신할 수 없는 것 같았다.심리 선생님의 말씀처럼 건강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의 사랑이 있어야 했고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건강하게 클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들은 수많은 오해와 상처가 있는데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방 안에서 아름이는 오늘 밤 특히나 이준혁에게 애착을 느끼고 있었다. 아름이는 화장실에 갈 때를 빼고 손을 씻을 때도 이준혁의 품에 안겨 있었다.이준혁은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아름이를 바라보았고 진심으로 아름이와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윤혜인은 이준혁의 안색이 조금 좋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허리를 굽힐 때면 그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피를 토하고 실신한 뒤 그의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았다.하지만 그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아름이와 놀아주고 있었다.윤혜인은 앞으로 다가가 이준혁의 품에 안겨 있는 아름이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름아 너무 늦었어. 우리 이제 씻고 자야 해.”아름이는 한창 재밌게 놀고 있었기에 이준혁과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아름이는 이준혁의 목을 꽉 껴안고서는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엄마 오늘 밤 아빠도 여기서 자면 안 돼?”윤혜인은 아름이가 이른 부탁을 할 줄은 몰라 멈칫했고 이준혁은 옆에서 기대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하지만 그도 지금 자신의 안색이 얼마나 안 좋은지 몰랐다.그는 지금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이 창백했다.윤혜인은 심장이 빨리 뛰면서 익숙한 슬픔이 느껴
윤혜인은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이준혁의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을 보고 아무 말도 없이 그녀에게 물었다.“비서한테 오라고 했어요?”지금 이준혁의 상태로는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이준혁은 멈칫하더니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부드럽게 말했다.“말했어.”윤혜인은 이준혁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고 얼음물을 부은 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오해하지 말아요. 난 그냥 준혁 씨가 우리 집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사고가 생기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아서 데려다주는 거예요.”이준혁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잠깐 기다려요.”윤혜인은 몸을 돌려 잠옷을 아름이에게 가져다주었다.아름이는 욕실을 나와 문 앞을 지나가며 이준혁이 여전히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아름이는 바로 도우미의 손을 뿌리치고서는 이준혁을 향해 달려갔다. 아름이는 작은 입을 삐죽 내밀며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아름이 재워주면 안 돼요?”“아름아 아저씨는.”윤혜인이 다 말하기도 전에 이준혁은 이미 아름이를 품에 안았다.그는 고개를 들고서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조금만 더 아름이하고 있으면 안 돼?”윤혜인은 멈칫했지만 아름이를 실망하게 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아름이는 기뻐하며 작은 손으로 손뼉을 쳤다.“고마워 엄마. 아빠 내 방으로 가요.” 두 사람은 방으로 들어갔고 아름이는 동화책을 잔뜩 들고 와서 이준혁에게 건네주며 읽어달라고 했다.이준혁은 침대 옆에 앉아서 동화책을 펴 아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아름이는 너무 행복하고 잔뜩 신이 났는지 눈을 감은 채 여전히 속눈썹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이준혁은 아름이의 귀여운 움직임에 마음이 녹아버릴 것 같았다.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아름이는 오늘 울다 지쳤는지 졸음을 참아 보려고 해도 무겁게 내려오는 눈꺼풀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너무 졸려. 너무 졸려.’아름이는 이미 잠에 들었지만 잊지 않고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아빠 사랑해요.”순간 이준혁은 가슴에 갓
이준혁의 깊은 눈빛에 윤혜인은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리고서는 황급히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이준혁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잘생긴 얼굴에 순간 외로움이 깃들었다.그들이 문밖에 도착했을 때 주훈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윤혜인은 문 앞에 서서 함께 기다렸고 먼저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조금 다급해하며 말했다.“아니면 주 비서님한테 다시 전화해 봐요.”이준혁은 법을 아주 잘 지키는 시민인 것처럼 담담하게 말했다.“운전할 때 전화 받으면 위험해. 곧 도착할 거야.”윤혜인이 조금 의심스러워 그에게 물으려는 데 이준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성훈이가 유능한 심리 선생님을 알고 있어. 이제 내가 만나게 해줄 테니까 네가 먼저 만나보고 괜찮으면 우리 같이 아람이 데리고 만나보는 건 어때? 괜찮아?”윤혜인은 조금 머뭇거렸지만 그의 제안을 거절하진 않았다.아람이는 한 번 발작하면 자폐증이 나타났다. 비록 자주 이러는 건 아니었지만 만약 완전히 치료될 수 있다면 분명 더 좋을 것이다.그리고 그녀는 김성훈을 꽤 믿는 편이었기에 그가 소개해 주는 의사라면 분명 믿음직한 사람일 것이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어요. 우리 이제 시간 맞춰서 가 봐요.”이준혁은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어두운 불빛이 그의 잘생긴 옆모습을 비췄고 웃는 모습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윤혜인은 아직도 의심스러워하고 있는데 이준혁이 말했다.“그래. 우리.”그녀는 그제야 이준혁의 뜻을 이해하고서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대꾸하지 않았다.“혼자 기다려요.”아직 그녀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준혁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를 꽉 껴안았다.윤혜인은 눈을 크게 뜨며 고슴도치같이 화를 냈다.“이 봐요. 뭐 하는 거예요?”이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그녀의 목덜미에 깊이 파묻었다. 뜨겁고 간질거리는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았다.윤혜인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이준혁 씨 이거 놔요.”“윤혜인.”
소원은 지난번 병원에서 헤어진 이후로 며칠 동안 육경한을 보지 못했다.그녀도 육경한이 쉽게 포기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진짜로 그녀를 찾아올 줄은 몰랐다.설마 육경한은 이렇게 쉽게 화를 낼 수 있는 걸까?그렇다면 정말 너무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졌다.그녀는 아직 육경한이 필요했기에 그녀에 대한 그의 관심이 너무 빨리 사라지도록 하면 안 됐다.소원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집에 가려고.”육경한의 왼쪽 입가에 작은 보조개가 웃을 때 살짝 오목하게 들어갔지만 자세히 봐야 알 수 있었다.소원은 예전에 자기가 그가 웃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던 것이 떠올라 조금 당황스러웠다.입꼬리가 올라갈수록 선명해지는 보조개 덕분에 그는 더욱 수줍어 보이면서도 잘생겨 보였다.하지만 이제는 수줍음을 상징하던 보조개가 육경한에 의해 사악해 보일 때도 있었다.그가 미소를 지으면 잘생긴 외모 뒤에 치명적인 위험이 숨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육경한은 그녀가 자신을 넋을 놓고 쳐다보는 것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나한테 반했어? 며칠 못 봤다고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나?”소원은 순간 파리를 삼킨 것 같았다.얼굴이 굳어지더니 그녀는 바로 자신의 차에 오르려고 했다.그녀가 차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세게 잡아당겼다.육경한이 이미 차에서 내려 그녀의 목덜미를 잡으며 잘생긴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차에 타지 않으면 내가 널 안아서 차에 태워주길 원하는 거야?”소원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정말 왜 이렇게 뻔뻔하지?”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스럽게 말했다.“어디로 갈 건데?”육경한은 기분이 좋은지 눈썹을 들썩거리며 말했다.“야식 먹으러 가자.”소원이 그에게 욕을 퍼부으려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그녀는 핸드폰을 확인하고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육경한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나 먼저 전화 좀 받을게.”그녀의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육경한도 그녀를 놓아주었다.소원은 두 걸음 앞으로
이윽고 감동받은 듯한 표정으로 변하며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응, 나는 이것밖에 못 해.”이를 본 육경한은 더는 묻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죽 사줄게. 아주 맛있는 집이 있거든.”소원은 자신이 착각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육경한의 마지막 말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춘 듯했다.그리고 그의 얼굴에 때때로 번지는 미소는 소원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소원은 더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짝 눈을 감고 그를 더 이상 보지 않았다.육경한은 백미러의 위치를 조정하고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입가에 있는 미소는 차갑고 어두웠다.곧 검은색 스포츠카가 고급 죽집에 멈췄다.육경한은 차에서 내려 소원의 손을 잡아끌며 안으로 들어갔다.소원은 매우 불편했다. 비록 그를 이용하려 했지만 그에게 손을 잡힌 피부가 오염된 것 같아 너무나 싫었다.정말이지 아예 떼어버리고 싶은 정도였다.소원은 그를 이용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육경한에게 꽉 잡힌 손을 힘껏 뿌리치려 했지만 오히려 그에게 몸을 기댈 정도로 가까워졌다.그러자 육경한이 이를 악문 듯 차갑게 경고하며 말했다.“더 움직이면 안고 들어갈 거야.”소원은 순순히 따라갔다. 그가 손을 잡는 것보다 안기는 것이 더 참기 힘들었으니 말이다.두 사람은 손을 잡고 죽집에 들어갔고 대충 보면 연인 같았다.하지만 얼굴을 보면 한 사람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마지못해 따르는 듯했다.육경한은 홀에 앉아 직원에게 말했다.“버섯 닭죽 하나 주세요.”그 말을 들은 소원의 눈이 잠시 반짝였다.‘버섯 닭죽...’그녀가 처음으로 육경한에게 만들어준 음식이었다.두 사람이 대학 시절, 저녁에 식당에 가지 않고 그녀가 육경한에게 가져다주었던 유일한 음식이 바로 이것이었다.그리고 육경한은 매일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 무려 석 달 동안이나 말이다.나중에 육경한이 사라진 후, 소원은 그를 잊지 못해 매일 자신에게 버섯 닭죽을 만들었고 일주일 동안 매일 먹다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