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은 지난번 병원에서 헤어진 이후로 며칠 동안 육경한을 보지 못했다.그녀도 육경한이 쉽게 포기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진짜로 그녀를 찾아올 줄은 몰랐다.설마 육경한은 이렇게 쉽게 화를 낼 수 있는 걸까?그렇다면 정말 너무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졌다.그녀는 아직 육경한이 필요했기에 그녀에 대한 그의 관심이 너무 빨리 사라지도록 하면 안 됐다.소원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집에 가려고.”육경한의 왼쪽 입가에 작은 보조개가 웃을 때 살짝 오목하게 들어갔지만 자세히 봐야 알 수 있었다.소원은 예전에 자기가 그가 웃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던 것이 떠올라 조금 당황스러웠다.입꼬리가 올라갈수록 선명해지는 보조개 덕분에 그는 더욱 수줍어 보이면서도 잘생겨 보였다.하지만 이제는 수줍음을 상징하던 보조개가 육경한에 의해 사악해 보일 때도 있었다.그가 미소를 지으면 잘생긴 외모 뒤에 치명적인 위험이 숨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육경한은 그녀가 자신을 넋을 놓고 쳐다보는 것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나한테 반했어? 며칠 못 봤다고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나?”소원은 순간 파리를 삼킨 것 같았다.얼굴이 굳어지더니 그녀는 바로 자신의 차에 오르려고 했다.그녀가 차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세게 잡아당겼다.육경한이 이미 차에서 내려 그녀의 목덜미를 잡으며 잘생긴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차에 타지 않으면 내가 널 안아서 차에 태워주길 원하는 거야?”소원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정말 왜 이렇게 뻔뻔하지?”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스럽게 말했다.“어디로 갈 건데?”육경한은 기분이 좋은지 눈썹을 들썩거리며 말했다.“야식 먹으러 가자.”소원이 그에게 욕을 퍼부으려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그녀는 핸드폰을 확인하고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육경한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나 먼저 전화 좀 받을게.”그녀의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육경한도 그녀를 놓아주었다.소원은 두 걸음 앞으로
이윽고 감동받은 듯한 표정으로 변하며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응, 나는 이것밖에 못 해.”이를 본 육경한은 더는 묻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죽 사줄게. 아주 맛있는 집이 있거든.”소원은 자신이 착각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육경한의 마지막 말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춘 듯했다.그리고 그의 얼굴에 때때로 번지는 미소는 소원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소원은 더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짝 눈을 감고 그를 더 이상 보지 않았다.육경한은 백미러의 위치를 조정하고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입가에 있는 미소는 차갑고 어두웠다.곧 검은색 스포츠카가 고급 죽집에 멈췄다.육경한은 차에서 내려 소원의 손을 잡아끌며 안으로 들어갔다.소원은 매우 불편했다. 비록 그를 이용하려 했지만 그에게 손을 잡힌 피부가 오염된 것 같아 너무나 싫었다.정말이지 아예 떼어버리고 싶은 정도였다.소원은 그를 이용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육경한에게 꽉 잡힌 손을 힘껏 뿌리치려 했지만 오히려 그에게 몸을 기댈 정도로 가까워졌다.그러자 육경한이 이를 악문 듯 차갑게 경고하며 말했다.“더 움직이면 안고 들어갈 거야.”소원은 순순히 따라갔다. 그가 손을 잡는 것보다 안기는 것이 더 참기 힘들었으니 말이다.두 사람은 손을 잡고 죽집에 들어갔고 대충 보면 연인 같았다.하지만 얼굴을 보면 한 사람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마지못해 따르는 듯했다.육경한은 홀에 앉아 직원에게 말했다.“버섯 닭죽 하나 주세요.”그 말을 들은 소원의 눈이 잠시 반짝였다.‘버섯 닭죽...’그녀가 처음으로 육경한에게 만들어준 음식이었다.두 사람이 대학 시절, 저녁에 식당에 가지 않고 그녀가 육경한에게 가져다주었던 유일한 음식이 바로 이것이었다.그리고 육경한은 매일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 무려 석 달 동안이나 말이다.나중에 육경한이 사라진 후, 소원은 그를 잊지 못해 매일 자신에게 버섯 닭죽을 만들었고 일주일 동안 매일 먹다 결
이 말을 들은 육경한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육연주는 소원을 한참 동안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육경한이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가 정말 예쁘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소원은 표준적인 여우상의 눈을 가지고 있었고 눈꼬리가 길며 은은한 직장인 화장을 하고 있었다. 평범한 직장인의 차림이었지만 어딘가 사람을 유혹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육연주는 웃으며 말했다.“삼촌, 여자한테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더니 숙모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셨네요.”여자가 ‘숙모’라고 부르며 웃는 소리가 소원의 귀에 매우 거슬렸다.그녀는 육경한이 미소를 짓기 전에 반박했다.“그런 거 아닙니다.”그러자 육경한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었다. 육연주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언니, 화내지 마세요. 삼촌이랑 농담한 것뿐이에요.”곧이어 그녀는 의자를 당기며 말했다.“삼촌, 우연히 만났는데 같이 앉아요.”육경한은 아무 말 없이 동의했고 소원은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자리에 앉은 후, 육연주는 옆의 의자를 서현재에게 내밀며 말했다.“현재 씨, 앉아요.”서현재까지 앉자 네 명이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육연주는 육경한과 마주해 앉았고 소원은 서현재와 마주 앉았다.이때, 향긋한 버섯 닭죽이 나왔다.그 냄새를 맡은 육연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겠다. 현재 씨, 우리도 이거 먹어요.”그러자 서현재는 냉담하게 말했다.“연주 씨 먹어요. 난 괜찮으니까.”“정말 안 먹어요? 현재 씨 저녁도 별로 안 먹었잖아요.”서현재는 냉정하게 말했다.“안 먹어요.”육연주는 서현재의 차가운 옆모습을 보며 좋아하는 마음과 약간의 수줍음을 느끼며 말했다.“그럼 우리 같이 한 그릇 먹을까요?”이 말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주 친밀해 보인다는 느낌을 주었다.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소원은 빠르게 서현재의 얼굴을 한 번 스캔했지만 죽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서현재의 냉정하고 섬세한
“너 예전에 나한테 매일 만들어주던 거 기억하지? 이 집 죽은 네가 만든 것만큼 맛있진 않지만 내가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맛이야. 네가 없을 때 나 자주 여기 와서 먹었어.”그 얇은 입술 사이로 나오는 말은 소원을 향한 육경한의 깊은 애정을 담고 있었다.한 여자를 매우 사랑하는 남자의 모습이 순간 드러난 것이다.육경한은 원래 말이 없었기에 육연주는 오늘 많은 비밀을 듣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놀라서 물었다.“삼촌, 언니랑 오랫동안 알고 지냈어요?”육경한은 차분하게 지시했다.“소원 언니라고 불러.”“소원 언니.”육연주는 입을 가리며 말했다.“이분이 바로 소원 언니셨구나...”‘삼촌이 10년 동안 사랑했다던 그 사람이잖아!’온 얼굴에 놀라움을 드러낸 채 육연주가 말했다.“드디어 삼촌을 이렇게 홀린 여성분을 보게 되었네요.”이 말에 현장에 있던 두 사람은 모두 심장이 흠칫했다.소원은 육연주가 내막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했다.만약 육경한이 그녀를 사랑해서 이런 행동을 한 것이라면 그는 정말로 미친 사람이었다.죽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모든 사람의 시야를 흐리게 했다.때문에 아무도 서현재가 주먹을 하도 꽉 쥔 탓에 손끝이 하얗게 변한 것을 보지 못했다.맑은 눈은 연기 속에서 흐려졌고 한 테이블의 거리가 그를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나누는 것 같았다.버섯 닭죽 냄새를 맡은 소원은 또다시 역겨워졌다.안색이 점점 나빠지고 손도 힘껏 뿌리치려 했다.그리고 그녀의 이 본능적인 거부 반응은 육경한의 검은 눈빛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육경한의 얼굴이 차가워질수록 그가 가진 치명적인 매력은 더욱 뚜렷해졌다.그런 사람들은 웃지 않을 때 더 매력적인 법이다.이 매력이 위험한 눈빛과 결합되면 서울 절반 이상의 여자를 매혹시킬 수 있다.지나가는 종업원들은 얼굴을 붉히며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잘생긴 남자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육연주는 이런 시선에 익숙했다.육경한은 항상 매우 잘생겼다. 하지만 그 잘생김은 차가운 색이었다.너무 차가
솔직히 육경한 같은 잘생긴 삼촌을 두고 있다면 일반 남자들은 육연주의 눈에 들기가 어렵다.많은 재벌가 남자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그녀는 아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오직 서씨 가문에 막 돌아온 사생아 서현재에게만 마음을 빼앗겼다.모두가 서현재의 신분이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서씨 가문은 명문가이지만 서현재는 서진태의 혼외 자식으로 신분이 매우 애매했다.서씨 가문의 현재 후계자, 즉 서현재의 형은 이미 마흔이 넘었는데 갑자기 스무 살 차이 나는 동생이 나타났으니 이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비록 그 형이 강하게 반대했지만 서진태는 서현재를 집으로 데려오라고 했다.그렇게 한 연회에서 육연주는 서현재와 우연히 만났고 그 이후로 그녀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그녀는 육경한에게 이 이야기를 했고 서씨 가문에서는 바로 사람을 보내 두 사람의 만남을 제안했다.육연주는 서현재의 맑고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좋아하는 마음이 솟구쳐올라 용기를 내어 숟가락을 들어 서현재에게 건넸다.“현재 씨, 한 번 먹어봐요.”서현재는 눈이 멍한 상태로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었다.얼굴이 빨개진 채 육연주는 수줍게 숟가락을 그의 입가에 가져가며 말했다.“현재 씨, 먹어보...”그러나 다음 순간.“팍!”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졌다!육연주는 손가락에 뭔가 맞은 느낌이 분명히 들었지만 믿기지 않는 눈으로 서현재를 바라보았다.‘현재 씨가 정말 내가 준 숟가락을 내친 거야?’그러나 여전히 육연주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고 서현재는 목젖을 살짝 움직이며 말했다.“미안해요. 못 봤어요.”그제야 당황한 표정을 잠시 진정시키며 육연주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이 소란스러운 광경이 육경한의 주의를 끌었다.“연주야, 무슨 일이야?”그는 육연주에게 물었지만 그 차가운 눈빛은 서현재를 바라보고 있었다.육연주는 웃으며 말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 제가 숟가락을 제대로 못 잡아서 옷에 쏟았어요. 옷 갈아입고 올게요.”아름다움을
소원의 손은 점점 더 강하게 쥐어졌고 가슴속의 불쾌함도 점점 더 강해졌다. 육경한에게 역겨움을 느꼈기 때문이다.육경한은 소원의 창백해진 손을 보며 한 마디씩 뱉었다.“사생아 주제에 우리 육씨 가문에 엮이려 하다니... 저 사람이 운이 좋은 거야.”“삼촌, 제발 작은 소리로 말해요!”육연주는 서현재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저 사람이 네 손발이 되어주는 게 넌 좋아?”육경한은 소원에게 갑작스레 물었다. 눈빛과 고개를 돌리는 동작, 말투 모두 소원에게 묻는 것이었다.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육연주가 곧 말을 하려는데 갑작스러운 기침 소리에 멈추고 말았다.“콜록콜록...”소원의 얼굴은 새빨개졌고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육경한은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차갑게 말했다.“그러게 왜 서둘러. 게임은 천천히 즐겨야지...”그는 이 말을 무슨 의미로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우웩...”소원이 갑자기 구역질을 하자 육경한의 무표정한 얼굴이 순간적으로 변했다.다음 순간, 소원은 토해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전부 육경한에게로 쏟아지고 말았다!버섯 조각과 닭고기가 전혀 소화되지 않은 채로 완벽하게 토해 내지자 육경한의 얼굴에는 극도로 불쾌한 감이 드러났다.위가 매우 불편했는지라 소원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미안...”하지만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녀는 또 한 번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우웩...”그녀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가리고 화장실로 달려갔다.육경한은 자신에게 묻은 죽 냄새를 맡으며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그때, 종업원이 다가와 말했다.“손님, 저희 가게에 응급처치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샤워하실 수 있습니다. 들어가셔서 옷을 갈아입으시겠어요?”그러자 육경한은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종업원이 차에서 옷을 가져오는 동안 육경한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육연주도 함께 처치실로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한편 소원은 화장실에서 그 한 그릇의 버섯 닭고기 죽을 전부 토해냈다.그러나
이 말을 끝내자 주변 공기가 마치 죽은 듯이 정적에 휩싸였다.그러나 서현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날 신경쓰지 않는다고요? 누나가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거 나 다 알고 있어요.”그녀는 자신이 진심이 아닌 말을 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엄지손가락으로 검지의 손톱을 누르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이 무의식적인 행동은 서현재의 미소가 더욱 환해지게 했다.그녀가 자신을 일부러 자극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 후, 서현재는 기쁨과 행복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소원은 깜짝 놀라며 서현재가 자신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래서 약간 붉어진 눈가로, 그녀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말했다.“쓸데없는 짓 하지 마, 알겠니? 나는 네 도움이 필요 없어!”그녀는 서현재가 왜 훌륭한 의사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서씨 가문이라는 복잡한 곳으로 돌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서현재의 신분에 대해 그녀도 전에 추측한 적이 있었다.그가 해외에 있을 때 항상 보디가드가 따라다녔기 때문이다.그 보디가드들은 고액의 페이를 받는 보디가드였지만 서현재가 고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래서 누군가가 그를 보호하려고 했다는 것밖에 설명이 가능하지 않았다.그녀는 서씨 가문의 복잡한 상황을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육연주가 최근 서씨 가문에 돌아온 사생아를 좋아한다고 듣긴 했지만 그 사람이 서현재일 줄은 몰랐다.서씨 가문은 명성이 나빴고 내부는 거의 혼란 그 자체였다.그녀는 서현재처럼 맑은 사람은 오염되기를 바라지 않았다.“쓸모없는 짓 같은 거 안 해요!”서현재는 이곳이 얘기를 나눌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밤 12시, 예전 장소에서 기다릴게요.”그러자 소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안 가.”하지만 서현재는 그녀의 거절과 상처에 익숙해진 듯 했다.“그럼 매일 밤 갈 거예요.”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는 소원을 뒤로하고 서현재가 또 입을 열었다.“방금 그 죽 안에 생
소원의 머릿속이 마치 청천벽력에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뭘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혼란스러운 생각들 때문에 그녀는 육경한이 강하게 키스하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붉고 촉촉한 입술은 치명적인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소원이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어도 그 매력은 육경한에게 있어서 여전히 100%였다.그는 그녀를 그리워하고 갈망했다. 수많은 긴 밤, 그는 그녀와 함께하는 상상 속에서 살아왔다.나중에 그녀가 자신을 농락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는 기꺼이 그녀를 용서했다.소원이 자신을 미워한다면 그는 그녀가 화를 풀게 두었고 소원이 상처를 주고자 하면 그는 심지어 칼을 건넬 수도 있었다.그러나 그가 절대로 허락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그녀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그녀의 전반 생애의 마음은 자신을 사랑하는 데 썼고 후반 생애는 자신을 미워하는 데 쓴다고 해도 그는 기꺼이 받아들였다.그러나 그녀가 다른 남자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그는 L 국에 갔었다. 그녀가 한때 살았던 곳, 그녀가 새 삶을 시작한 곳이었다.그리고 그녀가 ‘SU'라는 가명으로 젊은 교수와 함께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주말에는 헤븐 비치를 산책하고 광장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고 함께 장을 보기도 했다.게다가 그들에게는 아이도 있었다.그녀는 그 남자와 아이를 낳은 것이었다.이웃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아이를 거의 밖에 데리고 나오지 않았고 멀리서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아이는 매우 작고 여려서 세 살도 안 되어 보였다고 한다.그가 고통 속에서 밤을 지새울 때, 소원은 다른 남자와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함께 육경한을 속인 것이다.이 모든 것을 생각하니, 육경한은 자기 머릿속의 고층 빌딩이 빠르게 무너지는 것 같았다.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차가운 입술이 그녀를 강하게 침범할 때 소원은 마침내 정신이 들었다.그녀는 힘껏 밀쳐내며 소리쳤다
“난 그런 적 없어요... 경한 씨, 제발 믿어줘요. 나 아니에요.”방민아는 죽어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정말 방민아가 유진을 해친 게 된다면 더는 육경한과 이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민아는 육경한이 유진을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유진을 위해 정관 수술까지 하겠다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은 절대 따라올 수가 없었다.“그런 적 있는지 없는지는 경찰 조사에 맡기죠.”육경한이 이렇게 말하더니 안으로 들어가려 걸음을 멈추고는 한마디 보충했다.“그리고 최근에 방씨 가문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민아 씨 아버지가 80%의 수익을 가져갔어요. 그때 도와준 은혜를 수천조로 갚았는데 그걸로 부족해요?”방민아가 계속 따라붙으려는데 보디가드가 막아섰다. 그뿐만이 아니라 경찰이 오기전까지 도망가지 못하게 막기까지 했다.온몸에 힘이 풀린 방민아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 빌어먹을 년이 어쩌다 경한 씨의 와이프가 된 거지? 그 자리는 내 자리여야 하는데.’방민아는 새로 한 매니큐어가 부러질 정도로 바닥을 박박 긁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머릿속엔 온통 어떻게 다시 육경한의 와이프 자리를 꿰찰지, 어떻게 빌어먹을 소원과 짐승만도 못한 유진에게 복수할지로 가득 차 있었다....유진이 이끄는 대로 걸어간 유진은 이내 아주머니를 가둬놓은 방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주머니는 누렇게 뜬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소원이 눈물을 뚝뚝 떨구며 침대맡으로 다가가 통곡했다.“아주머니...”유진이 놀라서 울음을 터트리더니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연신 불러댔다.“할머니... 할머니... 일어나봐요...”“아직 숨은 쉬고 있어.”뒤에 나타난 육경한이 이렇게 귀띔했다.소원이 고개를 들어 손을 아주머니의 코밑에 갖다 댔다. 호흡이 약하긴 했지만 확실히 숨은 쉬고 있었다. 흥분한 소원이 유진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유진아, 엄마 구급차 불렀어. 아주머니 선한 사람이니까 하느님
방민아가 육경한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말했다.“경한 씨,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소원 씨 안 건드릴게요. 다 질투해서 그런 거라고 이해해 주면 안 돼요? 소원 씨가 경한 씨 마음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 자꾸만 경한 씨를 뒤흔드는 게 질투 나서 그랬어요. 이제 잘못한 거 알았고 앞으로 소원 씨 존재도 묵인할 테니까 제발 나 버리지 마요...”방민아의 말에 소원은 넋을 잃고 말았다. 육경한만 동의하면 일부다처제도 받아들이겠다는 뜻처럼 들렸다.다만 방민아는 원할지 몰라도 소원은 싫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역겨운 상황이었다. 조선시대가 망한 지 언젠데 있는 집 딸인 방민아가 남자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구시대의 여인상을 보이는 게 너무 우스웠다. 게다가 소원은 한평생 육경한 곁에 남아 있을 생각이 없었다.육경한이 언짢은 표정으로 다리를 들자 방민아는 어쩔 수 없이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나 와이프 있는 남자예요. 방민아 씨, 앞으로 말 가려서 해요.”육경한의 눈매는 여전히 차갑기만 했지만 ‘와이프’라는 말을 내뱉는 육경한의 말투에서 방민아는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온도를 느꼈다. 방민아와 함께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갑자기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방민아와 함께 있을 때는 늘 차분하고 덤덤하고 감정 기복이 없었는데 말이다.살아났다는 말이 제일 맞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낸 것처럼 피가 있고 살이 있는 육경한으로 다시 태어났다.그런 육경한을 보며 방민아는 너무 불안했다. 전에는 본 적 없는 아예 다른 모습이었다.소원은 방민아가 사랑과 전쟁을 패러디하는 걸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그저 육경한이 살인미수범인 방민아를 감싸면 어쩌나 걱정할 뿐이었다.하지만 육경한의 생각 따윈 상관없었다. 아까 절대 끼어들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소원은 핸드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안녕하세요. 경원 별장인데 신고 좀 하려고요. 누군가 제 아들을 해치려고 했어요. 네.
“내가 곧 경한 씨랑 결혼할 것 같으니까 뺏어가려는 거죠. 어림도 없어요.”방민아의 머릿속엔 온통 소원이 육경한을 뺏어가는 장면으로 가득해 이성을 잃었다.“내 남편 뺏어갈 생각하지 마요. 소원 씨는 그저 뻔뻔한 세컨드일 뿐이에요.”“하하하...”소원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방민아 씨, 남편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이르지 않나요? 결혼 등기는 했어요? 왜 아는 사람이 없죠?”방민아는 이미 마음속으로 자기가 미우 그룹 안주인이라고 생각해 차분하게 말했다.“곧 등기하러 갈 거예요. 경한 씨가 다음 주에...”“다음 주에도 등기는 못 할 거예요.”소원이 단칼에 잘라버렸다.“왜요? 소원 씨가 못한다면 못하는 거예요? 봐요. 내 남자 뺏어가려는 거 맞잖아요. 하하. 내가 잘 캐치한 거 맞죠?”이성을 잃은 방민아는 꼴이 우스워도 너무 우스웠다.“내가 오늘 등기했거든요.”소원이 바로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은 마치 번개처럼 방민아에게 떨어졌고 방민아는 환청이라도 들리는 줄 알았다. 올해 들었던 중에 가장 우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소원이 왜 경한 씨랑 결혼 등기를... 에이, 잘못 들은 거겠지.’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방민아는 심장이 떨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방민아의 얼굴이 잿빛이 되어가자 소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고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온몸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방민아가 갚아야 할 빚은 아직도 많았다.소원이 말을 이어갔다.“그러니 방민기 씨 애인하라고 한 제안은 못 받아들이겠네요. 남편이 동의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방민아는 마치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럴 리 없어. 절대 그럴 리 없어...’“거짓말하지 마요.”방민아가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육경한의 팔을 부여잡고 캐물었다.“경한 씨, 진짜가 아니라고 해줘요. 소원 씨가 나 속이는 거라고 좀 말해줘요...”육경한의 침묵에 방민아의 마음도 점점 싸늘해졌다. 진실은 눈앞에 보이는 그
소원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방민아는 분명 소원의 아이를 죽이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소원을 때릴 때 보인 표정은 정말 소원을 죽이고 싶은 표정이었다.육경한은 여자가 이렇게 자주 변하는 동물인지 몰랐다. 방민아도 예전엔 이런 여자가 아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방민아 편을 든다고 생각해 바로 입을 열었다.“방민아 씨, 그 말은 경찰서 가서 얘기해요. 난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까.”방민아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너 따위가 뭔데 감히 이딴 식으로 말해? 그냥 못 넘어가? 못 넘어가면 어쩔 건데.’방민아는 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마음이 약해진 거라고 생각해 얼른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하소연했다.“소원 씨, 우리 원수라도 졌어요? 내가 곧 경한 씨랑 결혼할 것 같으니까 아니꼬운가 본데 나 소원 씨 아이 최선을 다해 보살폈어요. 나를 모함한 것도 뭐라 안 했는데...”방민아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소원 씨는 엄마라 그러겠지만 나도 누군가의 딸이에요. 내가 괴롭힘당하는 거 알면 우리 아빠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방민아는 방민수까지 끌어들였다. 방민수가 나온 이상 육경한도 방씨 가문의 은혜를 저버리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애초에 육경한이 사면초가의 처지에 빠졌을 때 방씨 가문이 없었다면 미우 그룹도 서울에서 자리를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제일 어려울 때 손길을 건넨 사람을 저버릴 순 없는 일이었기에 이 점만으로도 육경한은 방민아를 너무 심하게 대하진 않을 것이다.소원이 입을 열었다.“방민아 씨, 우리 원수 진 거 없어요. 오히려 너무 열정적으로 대해줬죠.”방민아는 소원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몰라 멈칫하는데 소원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아까도 오빠 방민기 씨의 애인이 되라고 열정적으로 소개해 줬잖아요.”“그... 그게 무슨 헛소리에요.”방민아는 켕기는 게 있는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왜 헛소리에요?”소원이 말했다.“방민기 씨 애인으로 반년만 있으면 3개월 후에
방민아가 아무리 울고 불쌍한 척해도 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봐서는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경한 씨, 아까 그 말 진심이 아니라 그저...”방민아는 얼굴을 감싸 쥔 채 숨이 올라오지 않는 것처럼 한참 호흡을 고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유진이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어린 나이에 이렇게 모함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방민아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악독한 걸로 치면 유진이 자기보다 백배, 천배 더 독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방민아가 모르는 게 있었다. 만약 그녀가 사람을 해치려 하지 않았다면 유진처럼 어린아이가 꿍꿍이가 있다 해도 어쩌지는 못했을 것이다.유진은 총명한 아이였기에 모든 수모를 꾹 참으며 목숨을 지켜내려고 노력한 것밖에 없었다. 조금만 멍청했으면 진작 죽어서 뼈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방민아는 이를 악물고 해명했다.“경한 씨, 하늘에 맹세해요. 난 절대 그 누구에게도 유진이 해치라고 한 적 없어요. 게다가 유진이가 한 말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봐요. 유진이가 정말 거짓말한 거라면 어린 나이에 잘해준 사람 모함한 게 되잖아요. 그건 짐승이나 다름없는 짓이에요.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못 받아서 그런 게 아닌지 의심해야죠.”육경한의 말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정말 잘해줬다면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겠죠.”“나는...”방민아는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무너질까 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유진이 진실을 말했다 해도 방민아 손엔 피를 묻히지 않았으니 그들도 딱히 그녀를 어찌할 방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끝까지 발뺌하면 그만이다.육경한이 그런 방민아를 보며 말했다.“방민아 씨, 그때 나한테 했던 말 기억 나요?”방민아가 멍한 표정으로 육경한을 바라봤다.육경한은 방민아가 진심으로 이 아이를 대해야만 결혼을 고민해 보겠다고 했고 방민아도 얼른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방민아가 아닌 다른 여자라도 그 제안을 흔쾌히 동의했을 것이다. 대답할 때만 해도 유진을 충분히 무시할 수 있다고
시터도 사실 그저 보여주기식으로 박으려 했다. 부잣집은 체면을 중요시했기에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일을 크게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아니나 다를까 보디가드가 시터를 잡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자 시터가 펑펑 울며 억울하다고 아우성쳤다.그때 유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증거 있어요.”이 말에 모든 사람이 놀라고 말았다. 몇 살짜리 애가 증거를 확보했다고 큰 소리로 외치니 그게 뭔지 다들 의문이었다.유진은 목에 건 호루라기를 벗으며 말했다.“이 호루라기 사진 찍을 수 있는 호루라기에요. 시터가 두유에 약 타는 장면을 찍어서 남겼고 쓰레기통에 버린 약병에 적힌 진료소 이름도 찍어놨어요. 그리고 이모랑 둘이서 작은 방에 모여 있는 사진까지 전부 모아뒀어요.”이 호루라기는 서현재가 유진에게 준 생일 선물이었다. 유진은 그 호루라기가 퍽 마음에 드는지 늘 목에 걸고 다녔고 소원마저 그 호루라기가 사실 작은 카메라라는 걸 알고 있었다. 총명한 유진이 시터가 약 타는 장면을 찍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유진은 줄곧 얌전하고 말이 별로 없어 누구든 쉽게 휘두를 수 있다는 착각을 줬지만 사실 총명함을 숨긴 채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연기한 것이었다.사실 유진은 그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그 누구보다 총명했다. 반항하면 육경한은 오히려 화만 냈고 반항하면 할수록 방민아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말할 때 그 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순종하며 겁이 많은 척 연기해 적절한 시기를 기다렸다가 나쁜 여자의 민낯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시터는 이제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작은 몸집에 이렇게 많은 꿍꿍이가 들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을 생각을 다 하다니, 유진을 너무 얕잡아봤다는 생각이 들었다.입이 떡 벌어진 시터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이제 벽에 머리를 박겠다고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다.육경한은 넋을 잃은 시터를 보며 힘껏 발로 걷어찼다.“감히 내
방민아는 부들부들 떨며 얼른 앞으로 나아가 육경한을 당겼지만 육경한이 매몰차게 뿌리쳤다.쿵.그 힘이 어찌나 센지 방민아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경한 씨...”방민아는 육경한이 이렇게 세게 밀칠 줄은 몰랐기에 너무 억울했다.“잘 생각해 보고 얘기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내 아들이 거짓말하는 건지 아니면 방민아 씨가 거짓말하는지 말이에요.”육경한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내뱉은 말도 하나같이 온도가 없어 가슴이 떨리게 했다. 그러더니 이미 혼비백산한 시터 앞으로 다가가 서늘하게 말했다.“누가 시켰어요?”시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육경한을 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고 혀에 쥐가 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방민아도 너무 긴장해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시터는 진실을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되돌릴 수 있는 게 없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전 아무것도...”“다시 말할 기회 줄게요.”그러더니 한 걸음 한 걸음 시터에게로 다가가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경고했다.“그래도 거짓말한다면 가족 모두 힘들어질 거예요.”깜짝 놀란 시터는 눈물, 콧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이도 들 만큼 들었던 터라 이 일만 마치면 은퇴할 생각이었지만 돈에 눈이 멀어 육경한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간과한 것이다.밉보여서는 안 될 사람에게 밉보였으니 이제 모든 게 늦어버렸다.방민아는 시터가 주저하자 얼른 입을 열었다.“맞아요. 얼른 얘기해요.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는지 아니면 모함을 받았는지 얘기하라고요. 나이도 들었는데 아이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잘 얘기해야 할 거예요. 잘못하면 벌받아야겠지만 잘못하지 않은 사람을 핍박하지는 않을 거예요...”“방민아 씨, 그 입 다물어요.”육경한의 차가운 경고에 방민아가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다시 진정하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해명했다.“경한 씨, 나도 혐의 벗고 싶어요. 경한 씨보다 더 진실을 원하는 사람은 나라고요. 그래야 나도 누명을 벗을 수 있을 테니까
방민아가 설득했다.“유진아. 이모랑 했던 약속 잊었어? 말 잘 듣고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사실 방민아는 유진에게 두 사람이 한 약속을 잊지 말라고 귀띔하고 있었다. 만약 유진이 말을 듣지 않으면 더는 엄마를 만나지 못할 거라는 약속 말이다.‘어린아이가 알면 뭘 안다고. 겁만 줘도 고분고분해질 텐데.’방민아가 말했다.“거짓말하면 코 길어지는 거 알지? 그러니까 얼른 이모한테 와.”하지만 유진은 들으려 하지 않을뿐더러 겁에 질린 표정으로 점점 더 거세게 울었다.“왜 또 째려봐요...”유진이 소원의 품에 파고들며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엄마, 저 여자 나 째려보기만 한 게 아니라 꼬집기도 하면서... 시켜준 대로 아빠한테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엄마 못 만날 거라고 했어요...”유진이 육경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빠, 이모가 한 말 사실이에요? 엄마 못 만날까 봐 하라는 대로 하긴 했는데 정말 너무 무서워요... 저 나쁜 아줌마가 그러는데 두유에 약 타라고 한 것도 이모가 시킨 거래요. 나 죽이려 드는데 고분고분 말 들어야죠...”이 말에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방민아는 목덜미에 칼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온몸에 오한이 몰려왔다.‘짐승 같은 놈이 다 연기한 거야? 이렇게 큰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방민아는 이렇게 어린아이가 이런 꿍꿍이를 꾸몄다는 게 그저 무서울 뿐이었다.육경한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앞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더니 유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이렇게 말했다.“아니야. 엄마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 아빠가 있는데 감히 누가 엄마를 건드리겠어.”“아빤 절대 그 누구든 너에게 손대지 못하게 할 거야.”유진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깜빡이며 물었다.“아빠, 정말 저 나쁜 이모가 유진이랑 엄마 해치지 못하게 지켜줄 거예요?”육경한이 대답했다.“너랑 엄마 다 무사할 거야. 아빠가 약속해.”유진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소원의 품에 머리를 파묻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의미심장한 눈빛으
시터가 퉁명하게 쏘아붙이며 유진을 뺏어가려는데 갑자기 날아든 발차기에 그대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아악.”힘이 잔뜩 들어간 발차기에 시터는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서 두 번 뒹굴더니 배를 부여잡고 곡소리를 냈다.“누가 나를...”원망하던 시터가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대표님이 나를 왜.’켕기는 게 많은 시터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까먹었다.“대표님...”육경한이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매섭게 쏘아붙였다.“누가 도련님 쫓으라 했어. 도련님을 돌볼 때 어떤 수칙을 지켜야 하는지 잊었어?”유진은 체질이 별로 좋지 않아 노트에 명확하게 달리거나 흥분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으니 추격전을 벌이는 건 더더욱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그게 아니라...”시터가 화들짝 놀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기도 모르게 옆에 선 방민아를 바라봤다. 해명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던 육경한이 매섭게 말했다.“물건 정리해서 꺼져요.”이 말에 시터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시급을 이렇게 많이 주는 일이 없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방민아를 바라봤지만 방민아는 그저 화가 치밀어오를 뿐이었다.‘멍청하긴. 나는 왜 보는 거야. 내가 언제 사람들 앞에서 유진이 데리고 뛰라고 했나?’방민아는 시터의 눈알이라도 파내고 싶었지만 얼르 이렇게 암시했다.“경한 씨 더 화내기 전에 얼른 가요.방민아가 이렇게 말하며 시터에게 눈빛을 보내자 시터가 바로 알아들었다. 따로 두둑이 챙겨주겠다는 약속이었다.시터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아까는 너무 급해서 그랬어요 지금 당장 짐 싸서 갈게요...”그때 유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아빠. 아줌마 이렇게 보내면 안 돼요.”육경한이 유진에게 물었다.“왜?”유진이 시터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나쁜 아줌마가 두유에 뭘 섞었어요. 할머니한테 준 약이랑 같은 건데 두유에 섞어서 유진이 먹이려는 거 내가 몰래 토했어요.”이 말에 시터와 방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