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감동받은 듯한 표정으로 변하며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응, 나는 이것밖에 못 해.”이를 본 육경한은 더는 묻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죽 사줄게. 아주 맛있는 집이 있거든.”소원은 자신이 착각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육경한의 마지막 말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춘 듯했다.그리고 그의 얼굴에 때때로 번지는 미소는 소원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소원은 더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짝 눈을 감고 그를 더 이상 보지 않았다.육경한은 백미러의 위치를 조정하고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입가에 있는 미소는 차갑고 어두웠다.곧 검은색 스포츠카가 고급 죽집에 멈췄다.육경한은 차에서 내려 소원의 손을 잡아끌며 안으로 들어갔다.소원은 매우 불편했다. 비록 그를 이용하려 했지만 그에게 손을 잡힌 피부가 오염된 것 같아 너무나 싫었다.정말이지 아예 떼어버리고 싶은 정도였다.소원은 그를 이용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육경한에게 꽉 잡힌 손을 힘껏 뿌리치려 했지만 오히려 그에게 몸을 기댈 정도로 가까워졌다.그러자 육경한이 이를 악문 듯 차갑게 경고하며 말했다.“더 움직이면 안고 들어갈 거야.”소원은 순순히 따라갔다. 그가 손을 잡는 것보다 안기는 것이 더 참기 힘들었으니 말이다.두 사람은 손을 잡고 죽집에 들어갔고 대충 보면 연인 같았다.하지만 얼굴을 보면 한 사람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마지못해 따르는 듯했다.육경한은 홀에 앉아 직원에게 말했다.“버섯 닭죽 하나 주세요.”그 말을 들은 소원의 눈이 잠시 반짝였다.‘버섯 닭죽...’그녀가 처음으로 육경한에게 만들어준 음식이었다.두 사람이 대학 시절, 저녁에 식당에 가지 않고 그녀가 육경한에게 가져다주었던 유일한 음식이 바로 이것이었다.그리고 육경한은 매일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 무려 석 달 동안이나 말이다.나중에 육경한이 사라진 후, 소원은 그를 잊지 못해 매일 자신에게 버섯 닭죽을 만들었고 일주일 동안 매일 먹다 결
이 말을 들은 육경한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육연주는 소원을 한참 동안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육경한이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가 정말 예쁘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소원은 표준적인 여우상의 눈을 가지고 있었고 눈꼬리가 길며 은은한 직장인 화장을 하고 있었다. 평범한 직장인의 차림이었지만 어딘가 사람을 유혹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육연주는 웃으며 말했다.“삼촌, 여자한테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더니 숙모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셨네요.”여자가 ‘숙모’라고 부르며 웃는 소리가 소원의 귀에 매우 거슬렸다.그녀는 육경한이 미소를 짓기 전에 반박했다.“그런 거 아닙니다.”그러자 육경한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었다. 육연주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언니, 화내지 마세요. 삼촌이랑 농담한 것뿐이에요.”곧이어 그녀는 의자를 당기며 말했다.“삼촌, 우연히 만났는데 같이 앉아요.”육경한은 아무 말 없이 동의했고 소원은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자리에 앉은 후, 육연주는 옆의 의자를 서현재에게 내밀며 말했다.“현재 씨, 앉아요.”서현재까지 앉자 네 명이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육연주는 육경한과 마주해 앉았고 소원은 서현재와 마주 앉았다.이때, 향긋한 버섯 닭죽이 나왔다.그 냄새를 맡은 육연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정말 맛있겠다. 현재 씨, 우리도 이거 먹어요.”그러자 서현재는 냉담하게 말했다.“연주 씨 먹어요. 난 괜찮으니까.”“정말 안 먹어요? 현재 씨 저녁도 별로 안 먹었잖아요.”서현재는 냉정하게 말했다.“안 먹어요.”육연주는 서현재의 차가운 옆모습을 보며 좋아하는 마음과 약간의 수줍음을 느끼며 말했다.“그럼 우리 같이 한 그릇 먹을까요?”이 말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주 친밀해 보인다는 느낌을 주었다.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소원은 빠르게 서현재의 얼굴을 한 번 스캔했지만 죽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서현재의 냉정하고 섬세한
“너 예전에 나한테 매일 만들어주던 거 기억하지? 이 집 죽은 네가 만든 것만큼 맛있진 않지만 내가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맛이야. 네가 없을 때 나 자주 여기 와서 먹었어.”그 얇은 입술 사이로 나오는 말은 소원을 향한 육경한의 깊은 애정을 담고 있었다.한 여자를 매우 사랑하는 남자의 모습이 순간 드러난 것이다.육경한은 원래 말이 없었기에 육연주는 오늘 많은 비밀을 듣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놀라서 물었다.“삼촌, 언니랑 오랫동안 알고 지냈어요?”육경한은 차분하게 지시했다.“소원 언니라고 불러.”“소원 언니.”육연주는 입을 가리며 말했다.“이분이 바로 소원 언니셨구나...”‘삼촌이 10년 동안 사랑했다던 그 사람이잖아!’온 얼굴에 놀라움을 드러낸 채 육연주가 말했다.“드디어 삼촌을 이렇게 홀린 여성분을 보게 되었네요.”이 말에 현장에 있던 두 사람은 모두 심장이 흠칫했다.소원은 육연주가 내막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했다.만약 육경한이 그녀를 사랑해서 이런 행동을 한 것이라면 그는 정말로 미친 사람이었다.죽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모든 사람의 시야를 흐리게 했다.때문에 아무도 서현재가 주먹을 하도 꽉 쥔 탓에 손끝이 하얗게 변한 것을 보지 못했다.맑은 눈은 연기 속에서 흐려졌고 한 테이블의 거리가 그를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나누는 것 같았다.버섯 닭죽 냄새를 맡은 소원은 또다시 역겨워졌다.안색이 점점 나빠지고 손도 힘껏 뿌리치려 했다.그리고 그녀의 이 본능적인 거부 반응은 육경한의 검은 눈빛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육경한의 얼굴이 차가워질수록 그가 가진 치명적인 매력은 더욱 뚜렷해졌다.그런 사람들은 웃지 않을 때 더 매력적인 법이다.이 매력이 위험한 눈빛과 결합되면 서울 절반 이상의 여자를 매혹시킬 수 있다.지나가는 종업원들은 얼굴을 붉히며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잘생긴 남자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육연주는 이런 시선에 익숙했다.육경한은 항상 매우 잘생겼다. 하지만 그 잘생김은 차가운 색이었다.너무 차가
솔직히 육경한 같은 잘생긴 삼촌을 두고 있다면 일반 남자들은 육연주의 눈에 들기가 어렵다.많은 재벌가 남자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그녀는 아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오직 서씨 가문에 막 돌아온 사생아 서현재에게만 마음을 빼앗겼다.모두가 서현재의 신분이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서씨 가문은 명문가이지만 서현재는 서진태의 혼외 자식으로 신분이 매우 애매했다.서씨 가문의 현재 후계자, 즉 서현재의 형은 이미 마흔이 넘었는데 갑자기 스무 살 차이 나는 동생이 나타났으니 이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비록 그 형이 강하게 반대했지만 서진태는 서현재를 집으로 데려오라고 했다.그렇게 한 연회에서 육연주는 서현재와 우연히 만났고 그 이후로 그녀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그녀는 육경한에게 이 이야기를 했고 서씨 가문에서는 바로 사람을 보내 두 사람의 만남을 제안했다.육연주는 서현재의 맑고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좋아하는 마음이 솟구쳐올라 용기를 내어 숟가락을 들어 서현재에게 건넸다.“현재 씨, 한 번 먹어봐요.”서현재는 눈이 멍한 상태로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었다.얼굴이 빨개진 채 육연주는 수줍게 숟가락을 그의 입가에 가져가며 말했다.“현재 씨, 먹어보...”그러나 다음 순간.“팍!”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졌다!육연주는 손가락에 뭔가 맞은 느낌이 분명히 들었지만 믿기지 않는 눈으로 서현재를 바라보았다.‘현재 씨가 정말 내가 준 숟가락을 내친 거야?’그러나 여전히 육연주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고 서현재는 목젖을 살짝 움직이며 말했다.“미안해요. 못 봤어요.”그제야 당황한 표정을 잠시 진정시키며 육연주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이 소란스러운 광경이 육경한의 주의를 끌었다.“연주야, 무슨 일이야?”그는 육연주에게 물었지만 그 차가운 눈빛은 서현재를 바라보고 있었다.육연주는 웃으며 말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 제가 숟가락을 제대로 못 잡아서 옷에 쏟았어요. 옷 갈아입고 올게요.”아름다움을
소원의 손은 점점 더 강하게 쥐어졌고 가슴속의 불쾌함도 점점 더 강해졌다. 육경한에게 역겨움을 느꼈기 때문이다.육경한은 소원의 창백해진 손을 보며 한 마디씩 뱉었다.“사생아 주제에 우리 육씨 가문에 엮이려 하다니... 저 사람이 운이 좋은 거야.”“삼촌, 제발 작은 소리로 말해요!”육연주는 서현재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저 사람이 네 손발이 되어주는 게 넌 좋아?”육경한은 소원에게 갑작스레 물었다. 눈빛과 고개를 돌리는 동작, 말투 모두 소원에게 묻는 것이었다.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육연주가 곧 말을 하려는데 갑작스러운 기침 소리에 멈추고 말았다.“콜록콜록...”소원의 얼굴은 새빨개졌고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육경한은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차갑게 말했다.“그러게 왜 서둘러. 게임은 천천히 즐겨야지...”그는 이 말을 무슨 의미로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우웩...”소원이 갑자기 구역질을 하자 육경한의 무표정한 얼굴이 순간적으로 변했다.다음 순간, 소원은 토해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전부 육경한에게로 쏟아지고 말았다!버섯 조각과 닭고기가 전혀 소화되지 않은 채로 완벽하게 토해 내지자 육경한의 얼굴에는 극도로 불쾌한 감이 드러났다.위가 매우 불편했는지라 소원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미안...”하지만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녀는 또 한 번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우웩...”그녀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가리고 화장실로 달려갔다.육경한은 자신에게 묻은 죽 냄새를 맡으며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그때, 종업원이 다가와 말했다.“손님, 저희 가게에 응급처치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샤워하실 수 있습니다. 들어가셔서 옷을 갈아입으시겠어요?”그러자 육경한은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종업원이 차에서 옷을 가져오는 동안 육경한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육연주도 함께 처치실로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한편 소원은 화장실에서 그 한 그릇의 버섯 닭고기 죽을 전부 토해냈다.그러나
이 말을 끝내자 주변 공기가 마치 죽은 듯이 정적에 휩싸였다.그러나 서현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날 신경쓰지 않는다고요? 누나가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거 나 다 알고 있어요.”그녀는 자신이 진심이 아닌 말을 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엄지손가락으로 검지의 손톱을 누르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이 무의식적인 행동은 서현재의 미소가 더욱 환해지게 했다.그녀가 자신을 일부러 자극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 후, 서현재는 기쁨과 행복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소원은 깜짝 놀라며 서현재가 자신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래서 약간 붉어진 눈가로, 그녀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말했다.“쓸데없는 짓 하지 마, 알겠니? 나는 네 도움이 필요 없어!”그녀는 서현재가 왜 훌륭한 의사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서씨 가문이라는 복잡한 곳으로 돌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서현재의 신분에 대해 그녀도 전에 추측한 적이 있었다.그가 해외에 있을 때 항상 보디가드가 따라다녔기 때문이다.그 보디가드들은 고액의 페이를 받는 보디가드였지만 서현재가 고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래서 누군가가 그를 보호하려고 했다는 것밖에 설명이 가능하지 않았다.그녀는 서씨 가문의 복잡한 상황을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육연주가 최근 서씨 가문에 돌아온 사생아를 좋아한다고 듣긴 했지만 그 사람이 서현재일 줄은 몰랐다.서씨 가문은 명성이 나빴고 내부는 거의 혼란 그 자체였다.그녀는 서현재처럼 맑은 사람은 오염되기를 바라지 않았다.“쓸모없는 짓 같은 거 안 해요!”서현재는 이곳이 얘기를 나눌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밤 12시, 예전 장소에서 기다릴게요.”그러자 소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안 가.”하지만 서현재는 그녀의 거절과 상처에 익숙해진 듯 했다.“그럼 매일 밤 갈 거예요.”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는 소원을 뒤로하고 서현재가 또 입을 열었다.“방금 그 죽 안에 생
소원의 머릿속이 마치 청천벽력에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뭘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혼란스러운 생각들 때문에 그녀는 육경한이 강하게 키스하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붉고 촉촉한 입술은 치명적인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소원이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어도 그 매력은 육경한에게 있어서 여전히 100%였다.그는 그녀를 그리워하고 갈망했다. 수많은 긴 밤, 그는 그녀와 함께하는 상상 속에서 살아왔다.나중에 그녀가 자신을 농락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는 기꺼이 그녀를 용서했다.소원이 자신을 미워한다면 그는 그녀가 화를 풀게 두었고 소원이 상처를 주고자 하면 그는 심지어 칼을 건넬 수도 있었다.그러나 그가 절대로 허락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그녀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그녀의 전반 생애의 마음은 자신을 사랑하는 데 썼고 후반 생애는 자신을 미워하는 데 쓴다고 해도 그는 기꺼이 받아들였다.그러나 그녀가 다른 남자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그는 L 국에 갔었다. 그녀가 한때 살았던 곳, 그녀가 새 삶을 시작한 곳이었다.그리고 그녀가 ‘SU'라는 가명으로 젊은 교수와 함께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주말에는 헤븐 비치를 산책하고 광장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고 함께 장을 보기도 했다.게다가 그들에게는 아이도 있었다.그녀는 그 남자와 아이를 낳은 것이었다.이웃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아이를 거의 밖에 데리고 나오지 않았고 멀리서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아이는 매우 작고 여려서 세 살도 안 되어 보였다고 한다.그가 고통 속에서 밤을 지새울 때, 소원은 다른 남자와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함께 육경한을 속인 것이다.이 모든 것을 생각하니, 육경한은 자기 머릿속의 고층 빌딩이 빠르게 무너지는 것 같았다.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차가운 입술이 그녀를 강하게 침범할 때 소원은 마침내 정신이 들었다.그녀는 힘껏 밀쳐내며 소리쳤다
몇 년 전부터 소원은 계획을 시작했다.다만 서현재의 등장과 그가 소원을 찾은 시점이 예상보다 빨랐다.그래도 괜찮았다. 육경한이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그녀에게는 기회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그녀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가 신경을 쓰는 것이었다.육경한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다른 사람과는 아이를 가질 수 있으면서 왜 나랑은 안 되는데? 다른 사람과는 연애할 수 있으면서 왜 나랑은 안 되는 거야?”소원은 그가 이런 말을 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로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육경한, 당신 정말 정신이 나간 거 아니야?”육경한은 순순히 인정했다.“응, 나 정신 나갔어. 안 그랬으면 어떻게 가짜인 너를 안고 5년 동안 잘 수 있었겠어?”소원이 역겨운 표정을 지은 것을 보고 육경한은 자존심에 크게 상처받았다.그는 그녀의 목을 움켜잡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소원, 네가 나를 속였잖아! 너라고 속였잖아!”“아니야. 그건 우연의 일치야.”소원은 그의 손목을 잡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미친놈, 정신병자, 변태, 나를 놔줘!”“그래, 난 미쳤어. 내가 미치지 않으면 네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맞지 않잖아!”육경한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소원, 우리 아이를 갖자.”소원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이윽고 육경한의 그녀의 셔츠를 벗기려 했다. 그의 의도는 너무나도 분명했다.소원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소리쳤다.“육경한, 누가 너랑 아이를 가진다고 그래. 너 같은 짐승이랑... 네가 그럴 자격이 있어?”하지만 육경한은 그녀의 셔츠 뒤의 단추를 잡아채며 아랑곳하지 않았다.“아이한테 잘해줄게. 우리 엄마가 여자 마음을 붙잡으려면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했어.”그는 소원을 좌석에 밀어 넣고 강하게 제압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간청했다.“소원아, 제발...”5년의 그리움과 고통이 한순간에 실체가 되었다. 그는 그녀를 원했다. 미친 듯이 그녀를 원했다.“비켜!”눈이 충혈된 채 소원은 그를 발로 차고 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