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의 머리가 지끈거리고 시야가 흐릿해졌다.조금 전, 육경한의 앞에서 분노와 원망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충동적인 성격이라 그녀는 때로 그 증오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몸 안에 언제든지 튀어나올 것 같은 원령이 살고 있는 듯, 그것은 소원을 조여오며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그 모든 고통의 근원은 바로 육경한 때문이었다. 5년, 무려 5년이었다.처음에는 절망감에 휩싸여 수없이 죽고 싶어 했지만 이후에는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와 일하고 생활했다.5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고 그녀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달라 보였다. 그러나 그녀만큼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심장은 결코 치유되지 않았고 이미 썩어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을.살아있지만 마치 시체처럼 살아가는 기분이었다.그녀는 대량의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자신을 치료하려 했으나 그 이유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닌 언젠가 후회 없이 죽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코너를 도니 앞의 밝은 불빛이 눈부시게 비쳤다.소원은 쓸데없는 눈물을 삼키고 다시 무장하며 무너지지 않게 자신을 다잡았다.‘나만 이렇게 밤새 잠 못 이루고 고통받을 수는 없어...’회의가 끝난 후, 소원은 아인 그룹의 임원들과 함께 뷔페식 저녁 식사에 참석했다. 소원의 아인 그룹 상사는 권력 있는 반지음이라는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출세하기 위해 노력하며 온화한 성격으로 소원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사실 소원은 귀국하기 전 이미 사직했지만 반지음은 그녀가 귀국 후 회사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아인 그룹의 한 프로젝트에 협력자로 참여하도록 초대했다. 반지음은 소원을 배려하여 아인 그룹의 큰 나무 아래에서 인맥을 넓히는 것이 그녀가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원은 흔쾌히 받아들였다.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걸지 않고 회사 운영을 계획했기에 이렇게 하면 육경한의 의심도 피하기 쉬워지니 말이다.게다가 그녀는
한편 육경한은 예상치 못하게 두 걸음도 채 가지 않아 한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여인에 의해 길이 막혀버렸다.그녀는 단정하고 아름다웠으며 어느 집안의 딸인지는 모르겠지만 용기는 가상했다.소원은 누군가가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을 보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밖에는 바비큐가 준비된 뷔페식이 있었고 커다란 선풍기가 시원한 바람을 불어주어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즐겁게 대화하고 있었다.손에 있던 과일주가 거의 다 떨어져 소원은 뷔페 음료 구역으로 가서 다시 주문했다.이 과일주는 매실로 만든 것으로 새콤달콤하고 부담 없이 마시기 좋았다.그렇게 과일주를 다 받고 자리를 찾으려는 순간, 소원은 누군가와 부딪혔다.그 결과, 한 잔 가득 담긴 과일주가 소원의 치마에 절반 이상 쏟아졌고 일부는 상대방의 신발에도 튀었다.“네가 부딪힌 거야!”뱃살이 두툼한 기름진 중년 남자가 소원을 일반 직원으로 착각해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남자가 먼저 자신과 부딪쳤음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을 보고 소원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응시하며 말했다.“그쪽이 저를 친 거잖아요.”“이런 하찮은 게... 너 눈멀었어?!”하지만 곧 느끼하게 생긴 중년 남자는 소원의 뛰어난 외모를 보고는 놀라 눈을 번쩍 뜨며 말문을 닫았다.“아니, 이렇게 예쁜 아가씨라니...”남자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소원을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이렇게 예쁜 아가씨면 무슨 실수를 해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아가씨, 아가씨 때문에 내 허리가 너무 아파. 어떻게 보상할 생각이야?”느끼한 목소리와 드문드문 남아있는 머리카락은 정말 역겨웠다.사실 소원은 이 남자가 누군지 처음 보자마자 알아봤다. 그는 인심 그룹의 조 대표였다.그는 아인 그룹의 장기 협력 공급업체 대표였고 이번 아인 그룹의 입찰에서도 유력한 후보였다.소원의 이름을 건 회사도 이번 입찰에 참여했는데 인심 그룹의 아래 순위에 있었다.즉, 조 대표를 배제하면 소원에게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었다.게다
몇 번 밀어붙인 후 몇십만 원만 더 주면 말없이 따르게 될 거라 예상했다.‘어쩌면 여러 번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업계의 규칙상, 이런 ‘뇌물’에 관한 일은 서로 합의된 것이기 때문에 여자가 고소할 수도 없었다.소원은 붉은 입술을 살짝 올리며 매혹적으로 웃었다.“그럼 마실게요, 조 대표님.”그녀의 웃음은 강력한 매력을 뿜어내며 조 대표의 혼을 쏙 빼놓았다.그는 소원이 망설임 없이 술잔을 들고 단숨에 마시는 것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그러고는 음흉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기억해내려 했지만 쉽사리 떠오르지는 않았다.마음이 이미 조급해진 그는 소원을 강제로 홀로 끌어들였다.“우리 위층에 가서 쉬자...”위층에는 회의실과 휴게실이 많이 있어 아무 방이나 찾아 즐길 수 있었다.소원은 조 대표의 손을 밀어내며 옆에 있는 작은 인공 숲을 가리켰다.“조 대표님, 위층에 가는 건 번거로워요. 저기 수영장 옆에 정자가 있잖아요...”그러자 조 대표는 눈빛을 번쩍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생각지도 못한 소원의 좋은 아이디어에 그는 더욱 흥분했다.야외에서 하는 것은 더 자극적이었다.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다 생각했는지 그는 다급히 말했다.“아유, 이쁜이. 빨리 가자!”조 대표는 소원을 끌고 서둘러 걸어갔다.하지만 그때, 소원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조 대표님, 천천히 가요, 저 머리가 어지러워요!”“천천히? 오빠 못 참겠는데?!”아직 정자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조 대표는 벌써 참지 못하고 소원의 허벅지를 만지려 하며 음흉하게 웃었다.“옷이 젖었네, 내가 벗겨줄게...”그러자 소원은 문득 뒤로 물러섰다.“조 대표님, 저 안 갈래요.”잠시 당황해 멍해 있다가 조 대표가 달래며 말했다.“그러지 말고 가자. 저기 앞이 얼마나 편한데, 누울 곳도 있어...”“저 안 갈래요. 방금 주신 술에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몸이 너무 불편해요.”조 대표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무슨 소리야,
육경한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방씨 집안의 딸, 방민아였다.방씨와 육씨 두 집안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방민아는 방씨 집안의 딸로서 다른 자리에서도 육경한을 두어 번 만난 적이 있었다.육경한은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지만 방씨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에 방민아의 체면을 무시하지 않았다.이로 인해 방민아는 육경한이 접근하기 쉽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게다가 육경한은 뛰어난 외모와 기품을 지녔고 대표라는 직함이 더해지면서 말수가 적고 성격이 까칠해도 많은 여자가 그를 따랐다.그래서 다른 여자가 감히 육경한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방민아는 내심 만족스러워했다.그녀는 막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고 외국의 개방적인 문화를 많이 접한 터라 육경한의 여성에게 무심한 태도를 일종의 미덕으로 여겼다.방민아는 달콤하게 웃으며 말했다.“오빠, 저랑 춤 한 곡 추실래요?”시선이 가려진 육경한은 방민아를 보고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다른 사람 찾아봐요. 전 바쁘니.”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방민아를 지나쳐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사람들 앞에서 대차게 거절당한 방민아는 굴욕감을 느끼며 즉시 안색이 어두워졌다.이전에 육경한은 비록 열정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이 계실 때는 이렇게 냉담하게 굴지는 않았었다.방민아는 남자의 팔을 붙잡고 계속해서 말했다.“오빠, 제가 가르쳐드릴게요. 정말 쉬워요.”그러자 육경한은 무표정하게 팔을 뿌리쳤다.“필요 없습니다.”방민아는 계속된 거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며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아빠 가셨어요. 근데 가시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오빠 찾아가라고 하셨어요. 저 혼자 여기는 낯선데...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육경한은 다시 앞을 보았지만 그 늘씬한 실루엣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인내심이 바닥 난 그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전 방민아 씨에게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이해하셨어요?”남자의 얼굴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고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그렇게 방민아가 원 자리에서 멍해 있는
육경한의 눈빛은 더욱 음울해졌다.그리고 그가 차가워질 때의 위압감은 무시무시했다.그는 항상 날카로운 관찰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 바텐더가 분명히 그녀를 보았을 것이라는 직감을 느꼈다.바텐더는 두려움에 떨며 말을 더듬거렸다.“못... 못 봤...”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넥타이가 육경한에게 확 잡혀 당겨졌다. 육경한은 차가운 표정으로 한 마디씩 똑똑히 말했다.“잘 말해. 봤어, 안 봤어!”“봤... 봤습니다.”결국 바텐더는 남자의 눈빛에 굴복하며 뒤쪽에 있는 길을 가리켰다.“말씀하신 분은 한 남성분과와 함께 저쪽으로 갔던 것 같아요...” 육경한은 손을 놓자마자 바로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제야 바텐더는 크게 숨을 내쉬며 한참 동안 그 무서운 기운에 압도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조약돌로 포장된 작은 길.조 대표는 미친 사람처럼 소원의 한쪽 다리를 잡아 어둠 속으로 끌고 갔다. “이거 놔!”소원이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남녀 간의 힘 차이가 너무 컸고 한쪽 다리를 잡힌 상태에서는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그렇게 그녀는 점점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마침내 정자 아래에서 조 대표는 그녀를 힘껏 내던져 땅에 떨어뜨렸다.그러고는 소원을 가리키며 이를 드러내고 말했다.“넌 그냥 술 접대하는 아가씨일 뿐이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쓸데없이 저항하지 마, 알겠어?”소원은 숨을 고르고 일어나 앉으며 악에 받쳐 말했다.“난 연회에 참석한 손님이지 접대부가 아니야. 알아서 꺼지지 않으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얼굴도 조금씩 붉어지며 그녀는 시간 계산을 하고 있었다. 방금 마신 술이 효과를 발휘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15분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15분이 지나면 약효가 몸에 흡수될 테니 그 전에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원래는 증거를 잡아 조 대표를 체포해 열흘 정도만 갇히게 하려고 했는데 그녀도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다.조 대표가 그녀를 알아보고 진짜 ‘접대부’라고
“아아아아아!”돼지 멱따는 소리와 같은 비명이 들렸다.소원이 조 대표의 민감한 부분을 힘껏 발로 찬 것이었다.조 대표의 덩치가 커서 정확히 맞추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그 부분은 워낙 약한 곳이라 그 강한 발차기 한 방에 조 대표는 바닥에 쓰러져 아파서 숨을 헐떡였다.그는 고함을 치며 욕설을 퍼부었다.“이 싸가지 없는 년, 네가 감히 날 때려? 당장 죽여버릴 거야...”그러자 소원은 일어서서 손을 털며 냉소했다.“당신의 그 중요 부위가 부러졌는지 안 부러졌는지부터 확인해보는 게 좋을걸?”그러고 나서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조 대표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여기 전시 센터에 누군가 약을 타서 여성에게 불법 행위를 시도하려고 해요... 네, 이게 제 번호예요, 제가 피해자예요. 네... 여기서 기다릴게요.”조 대표는 소원이 정말 경찰에 신고할 줄은 몰랐다.순간 그는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이 싸가지 없는 년, 몸 파는 주제에 감히 겁도 없이 경찰을 불러? 네가 먼저 유혹한 거잖아! 헛소리하지 마! 경고하는데 내 뒤 봐줄 사람 있거든? 당장 신고 취소하지 않으면 넌 끝장날 줄 알아.”조 대표는 소원처럼 젊고 예쁜 여자는 이런 위협에 쉽게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냥 겁을 주기만 해도 금방 무릎을 꿇을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게다가 그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회사의 대표로서 이런 일이 알려지면 좋을 게 없었으니 말이다.점점 화가 치밀어올라 조 대표는 욕설을 퍼부었다.“빌어먹을 년, 내가 너만 죽여버릴 것 같아? 네 가족 모두를 죽여...”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세게 뺨을 얻어맞았다.순간, 조 대표의 얼굴에는 다섯 개의 붉은 손자국이 새겨졌다.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외쳤다.“이 빌어먹을 년이 감히 나를...”그러나 또 말을 마치기도 전에...“짝, 짝, 짝!”분노에 찬 잔인한 얼굴로 소원은 계속해서 조 대표를 때렸다.곧 그의 얼굴은 돼지 간처럼 붉게 변했고 입가에는 피가 흘러내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며 그는 소원의 귀에 있는 것을 가리키며 경악했다.“너! 그게 뭐야...”그러자 소원은 냉소를 지으며 귀에 있는 장치를 가리켰다.“당신 생각이 맞아.”그녀가 착용한 것은 전화용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위장할 수 있는 소형 카메라였는데 흰색이라 눈에 띄지 않아서 몸에 가지고 다니기에 매우 편리했다.소원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 안에 당신 사람이 있다고 했지? 이번에는 누가 당신 도와주는지 한번 봐야겠네.”조 대표는 피가 마를 정도로 화가 치밀어올랐다!사실 그는 소원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줄 알고 겁을 주려 했던 것뿐이었다.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사실 그대로 녹화되었고 거짓말을 한 증거까지 남겨졌다.조 대표는 분노와 충격으로 인해 피를 토할 듯한 고통을 느끼며 ‘우웩’ 하는 소리와 함께 큰 소리로 피를 토했다.그리고 소원은 조 대표의 그런 비참한 모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그녀는 정신을 집중하며 손가락을 꽉 쥐고 가슴에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가려움과 함께 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조 대표에게 방해받아 원래 계획했던 시간에 구토를 하지 못해 약물은 이미 몸에 흡수되었다.이제 구토를 유도해봐야 소용없었고 그저 위를 상하게 할 뿐이었다.소원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조 대표를 보며 그가 다시 일어설 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빠르게 수영장으로 들어갔다.차가운 물은 그녀에게 일시적인 안도감을 주었다.그러나 잠시 후, 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해졌다.소원은 더 깊은 물로 들어가 상체를 물속에 잠기게 하여 고통을 완화하려 했다.경찰이 도착해 증거를 넘기기 전까지 병원에 갈 수 없었다.이곳의 누구에게라도 증거를 맡길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 가장 쉽게 매수되기 때문이다.그러나 물속에 있는 것만으로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내부의 갈증이 그녀를 수영장 더 깊은 곳으로 향하게 했다.그리고 물속에서 조 대표는 소원의 이상한 모습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어깨가 붉게 변한 것으로 보아
육경한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지만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터져 나올 듯했다.그는 소원의 약한 몸을 강하게 당겨 공격적으로 자신의 품에 안았다.남자는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허락 못 해!”뜨거운 그의 피부는 화학 약물이 몸에 퍼진 소원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육경한은 그녀를 감싸 안아 몸속 깊이 녹여버렸다.육경한의 몸은 경직되어 기계적이었다.오래전, 익숙한 듯한 감각이 그의 심장을 멈추게 할 것 같았다.5년 전의 그 찢어질 듯한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아니, 겪을 수도 없었다.소원은 반드시 살아 있어야 했다!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소원은 그의 젖은 가슴에 얼굴이 눌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발버둥 치려 했지만 남자의 또 다른 손이 그녀의 등을 단단히 눌러서 움직일 수 없었다.산소 부족과 혼란스러움이 그녀의 가슴속에 휘몰아쳤다.그러자 육경한이 붉게 변한 눈으로 이를 악물며 외쳤다.“소원!”그는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죽지 마, 다른 방법으로 나를 벌해...”남자의 낮고 떨리는 목소리는 두려움이 가득했다.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었지만 다행히도 물이 얼굴을 가려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소원은 얼굴이 눌려 육경한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그저 자신을 안고 있는 이 몸이 떨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뿐.‘대체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걸까...’머리가 어지러워 판단이 흐려졌기에 소원은 아마도 자신의 감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육경한 같은 사람이 두려움을 느낄 리 없지.’그녀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본래도 너무나 힘들었는데 이제 육경한이 더욱 강하게 안고 있어서 가슴 속의 갈증이 목구멍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으으...”그녀는 힘겹게 소리를 냈다.마침내, 육경한은 환각에서 깨어난 듯 그녀의 얼굴을 풀어주었다.“누가 죽고 싶어 한다고 그래?! 당신이 죽어도 난 절대 안 죽어!”소원은 화가 나서 그를 욕하며 손을 세게 뿌리쳤다.“손 떼!”그러고 나서 그녀는
원진우가 점점 다가오자 윤혜인은 마지막 기회를 잡고 숨겨둔 막대를 다시 한번 휘둘렀다.하지만 이번에는 실패했다. 이미 대비하고 있던 원진우가 맨손으로 막대를 가볍게 붙잡아 꽉 쥐었기 때문이다.윤혜인은 막대를 빼앗으려고 온 힘을 다했지만 소용없었다.그 순간, 원진우는 다른 손으로 윤혜인의 목을 단숨에 움켜쥐고 그녀를 다락방 유일한 창틀 가장자리로 밀어붙였다.목이 졸려 말을 할 수 없었던 윤혜인은 두 손으로 창틀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이 다락방은 지상에서 족히 10미터는 넘게 높았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죽지 않아도 식물인간이 될 것이 분명했다.이 순간, 원진우의 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그의 눈에 더 이상 딸이라는 개념은 없었다.처음에는 딸에게 보상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윤혜인이 윤아름을 데리고 떠난 것은 원진우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었다.누구든 그의 역린을 건드리는 자는 심지어 친자식이라도 용서받지 못한다.윤혜인이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자 원진우는 냉소를 띠며 말했다.“아직도 말 안 할 거냐?”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죽고 싶어 안달이 났군.”이 말과 함께 윤혜인의 몸 반쯤이 창밖으로 나갔다.“멈춰!”갑자기 아래에서 분노에 찬 외침이 들려왔다.윤혜인은 몸이 거꾸로 매달려 있어 피가 거꾸로 흐르고 있었고 눈앞이 점점 어두워졌다.간신히 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곽경천이 그곳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오빠가... 오빠가 드디어 왔어...’원진우가 서둘러 나왔던 탓에 데려온 네 명의 경호원은 이미 곽경천이 데려온 사람들에게 제압당한 상태였다.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본 원진우도 곽경천을 발견했다. 그러자 그는 느긋하게 미소를 지었다.“오늘 무슨 날인가? 죽어야 할 사람들이 모두 모였군.”“이 미친놈! 내 여동생 당장 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곽경천이 외쳤다.원진우는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곽경천을 겨누며 말했다.“뭐? 날 죽
‘그래서 나한테 얌전히 기다리라고 한 거였어.’윤혜인은 창밖을 바라보며 푸른 섬에 눈길을 빼앗긴 윤아름을 돌아봤다.윤아름은 창밖의 풍경에 매료된 듯, 맑은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이윽고 윤혜인은 마음을 굳히고 부드럽게 말했다.“엄마.”윤아름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윤혜인을 바라봤다.그러자 윤혜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게임 하나 해요...”원진우는 차 안에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운전하는 경호원은 고속으로 차를 몰며 윤혜인이 타고 도주한 검은 차량을 추적했다.그러던 와중 차량이 눈에 보이자 경호원은 차를 세우며 보고했다.“대표님, 저 앞에 있습니다.”원진우는 차에서 천천히 내려 차량 앞으로 다가갔다.차 안을 들여다봤지만 이미 텅 비어 있었다.그는 차가운 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말 들을 애가 아니지.”딱딱 소리를 내며 손가락 관절을 꺾더니 원진우는 생각에 잠겼다.‘찾으면 어떤 벌을 줘야 할까. 다리 힘줄과 손 힘줄을 끊을까, 아니면 독을 써서 목소리를 없앨까... 아니면 둘 다 한꺼번에 해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그는 특히 윤혜인이 윤아름을 데리고 도망치려 한 점에 분노했다.‘제 엄마를 유혹해 나를 떠나려 하다니...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어.’곧 원진우는 경호원들에게 지시했다.“주변을 샅샅이 수색해.”차량의 전력 시스템을 끊은 뒤부터 지금까지 겨우 15분이 지났다.때문에 그녀들이 멀리 도망쳤을 리는 없었다.잠시 후, 경호원이 돌아와 보고했다.“대표님, 앞쪽에 사람이 없는 교회 한 채를 발견했습니다.”주변에 흔적이 없는 걸 보니 교회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원진우는 교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가슴과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 기도하듯 중얼거렸다.“주님, 제 죄를 용서하소서.”그 후 손짓으로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수색해.”건장한 경호원 네 명이 흩어져 교회 곳곳을 뒤졌다.그렇게 모든 곳을 수색한 후, 마지막으로 확인하지 못한 곳
게다가 원진우의 계획을 보니 해운성에서 그녀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계속 이동할 생각인 듯했다.아마 한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군데를 거쳐 이동하겠다는 의도였으니 그의 행방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윤혜인은 그제야 이해했다.그녀가 보낸 신호가 전송되었어도 곽경천 일행이 빠르게 도착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나라 하나를 건너야 하는 거리에서 아무리 빨리 와도 금방 닿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그녀는 차량에 내장된 스마트 시스템을 떠올리고 외국어로 시스템에 말을 걸어 보았다.“나 대신 신고 좀 해줘!”그러자 시스템의 인공지능이 대답했다.“현재 해운성 해안경비대로 연결 중입니다.”돌아오는 답변에 윤혜인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대다수의 차량 시스템이 전화 통화는 불가능해도 긴급 신고는 가능할 것이라 짐작했다.‘해안경비대에 연락만 닿는다면 오빠가 도착할 때까지 안전하게 기다릴 수 있어. 아무리 원진우가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모든 나라에 그 세력이 미치게 할 수는 없을 거야.’윤혜인은 차를 멈추고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 연결을 기다렸다.삐빅 하는 두 번의 신호음 뒤에 전화가 연결되었다.통화 너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상담원이 물었다.“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윤혜인은 다급히 말했다.“저와 제 어머니가 납치되었습니다.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범인이 저희를 추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상담원은 침착하게 물었다.“상대방이 누구인지, 그리고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세요.”윤혜인은 대답했다.“저희를 납치한 사람은 국제적으로 수배가 되어있습니다. 혐의도 한두 개가 아닐 겁니다.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겠고 주변에 바다밖에 없어요. 내비게이션에서는 블루섬이라고 나옵니다.”윤혜인은 상대가 국제 수배범이라는 말을 일부러 꺼냈다. 경찰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였다.게다가 이번 원진우에 대한 폭로로 곽경천 일행이 그의 과거 행적을 어느 정도 파악했을 것이므로 국제 수배범이라는 표현이 적절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렸다.윤혜인의 손에는 스마트 디스플레이 키가 들려있었는데 조금 전 원진우에게서 몰래 훔쳐 온 것이었다.그녀는 단 1초 만에 시동을 걸고 곧장 대문을 향해 내달렸다.대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지만 멈출 생각은 전혀 없는 듯 보였다. 그대로 부딪힐 각오인 듯 말이다.대문 앞에 서 있던 보안 요원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만약 차에 부딪혀 사람이 다치기라도 하면 책임을 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급히 원진우에게 상황을 보고했다.“선생님, 저기... 대문을 어떻게 할까요...”원진우는 차의 기세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멈출 기색이 전혀 없는 그 모습에, 겉보기에는 얌전해 보이는 윤혜인이 자신의 열정과 영리함을 꽤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결국 그는 짧게 고심한 후 단호히 말했다.“문 열어!”아무리 비싼 슈퍼카라 해도 이 속도로 대문을 들이받으면 운전자의 안전이 100%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문을 열어주더라도 그녀가 도망칠 수는 없었다.슈퍼카가 대문에 닿기 직전, 대문이 위로 열렸다.순식간에 슈퍼카는 대문을 빠져나갔다.윤혜인은 눈 앞에 펼쳐진 넓은 도로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몇십 초를 기다린 끝에야 상황을 이해했다.“엄마, 우리 탈출했어요!”기쁨에 찬 외침이었다.윤아름은 아직도 조금 혼란스러운 상태였지만 딸의 말에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탈출’이라는 말은 지하실에 수십 년 동안 갇혀 있던 그녀에게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희망이었다.윤아름이 기뻐하며 창문을 두드리자 윤혜인은 곧바로 창문을 내렸다.하지만 안전을 위해 반 정도만 내렸다.그 작은 틈으로도 윤아름은 크게 기뻐했다. 손가락을 밖으로 조금 내밀어 바람을 느끼며 냄새를 맡았다.자유로운 바람이 스치는 윤아름의 얼굴은 완전히 행복해 보였다.윤혜인은 엄마 윤아름의 이런 모습을 보며 모든 게 다 가치 있다고 느껴졌다.긴장으로 땀이 찼던 손바닥도 이제는 차갑게 식었고 조금 전 그녀는 원진우에게 조금의
그녀가 당한 모든 불행은 전부 이 남자 때문이었다.어머니의 사랑을 받아야 할 그녀는 이리저리 떠돌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원진우 씨, 지금 무슨 헛된 꿈을 꾸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쪽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떠날 거예요. 당신이 우리 엄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감금했는지,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는지 절대 잊지 않았어요.”윤혜인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당신 같은 사람은 지옥에나 가야 해요!”그러자 원진우는 분노가 가득 찬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이렇게는 대화가 안 되겠군.”그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괜찮아. 우리 세 식구에게는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까. 내가 얼마나 좋은 아버지인지 천천히 알게 될 거야.”윤혜인은 경계심을 품고 원진우를 응시했지만 그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그러나 곧 그 의도를 알게 되었다.원진우는 손짓으로 도우미를 불러 들어오게 한 후, 지시를 내렸다.“아가씨의 짐을 챙겨서 비행기에 실어라.”윤혜인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며 원진우는 느긋하게 설명했다.“우린 곧 떠날 거라서.”원진우가 윤아름과 자신을 데리고 떠나려 한다는 말에 윤혜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원진우가 매우 영리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수십 년 동안 윤아름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던 걸 보면 그의 경계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이번에 끌려가면 아버지, 큰오빠, 아이들, 모든 가족과 친구들을 평생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난 안 가요!”윤혜인은 근처에 있던 의자를 집어 던지고 온 힘을 다해 문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나 문에 도달하자마자 윤혜인은 원진우에게 팔이 붙잡히고 말았다.곧 원진우는 넥타이로 그녀의 손을 묶은 뒤 그대로 어깨에 들쳐 업었다.시간이 촉박했다. 이미 이곳이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즉시 떠나야 했다.바깥에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떠나기만 하면 전처럼 윤아름과 윤혜인 모두 꽁꽁 아무도 모르게 숨
윤혜인이 갑자기 손을 들자 봉투가 바닥에 떨어지더니 안에 들어있던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윤혜인은 자료를 보고 싶은 생각보다는 하얀 나무젓가락을 들어 원진우의 목에 찔러넣고 싶었다. 두 사람은 신장 차이가 있었지만 원진우는 지금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이고 있어 윤혜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지 못했다. 뾰족하게 자른 나무젓가락이 그대로 원진우의 목에 들어갔다. 그러자 피가 나무젓가락을 타고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하지만 떨어지는 피의 양에서 윤혜인은 글렀다는 걸 알아챘다. 동맥을 찌르지 못했으니 원진우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원진우는 고개를 들어 아래로 흘러내리는 피를 보더니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윤혜인을 바라봤다.“나 죽이고 싶어요?”원진우가 차분하게 물었다. 까만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고요했다. 윤혜인이 뒤로 물러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곧 사람들이 나와 엄마를 구하러 들이닥칠 거예요. 도망은 꿈도 꾸지 마요.;원진우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연락이 됐나 보네요.”윤혜인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윤혜인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원진우는 어떻게 된 일인지 충분히 알아챘을 것이다. 아니면 윤혜인도 이렇게 무모하게 나가기보다는 계속 위장하는 걸 선택했을 것이다.원진우는 목에 꽂혀있는 젓가락을 뽑지도 처리하지도 않은 채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제법인데? 역시 내 핏줄이라 그런가? 배짱이 커.”윤혜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간사하기로 소문난 원진우가 친자 감정을 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미 자기 핏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원진우는 윤혜인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모든 걸 알아차렸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나 속이려 했나 본데...”원진우가 허리를 굽혀 서류를 줍더니 윤혜인에게 건네줬다.“봐... 네 말이 맞아. 너 정말 내 딸이야.”“...”윤혜인은 원진우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이내 결과지에 적힌 숫자에 눈길이 갔다.99.99%.그럴
문이 삐걱 열리더니 원진우가 안으로 돌아왔다. 표정이 밝아진 윤아름을 보고 원진우의 표정도 살짝 풀렸지만 그렇다고 단둘이 있는 시간을 연장해 주지는 않았다.“시간 됐어요.”원진우가 덤덤하게 말하더니 윤아름이 의향도 물어보지 않고 윤아름을 번쩍 안아 들고는 방에서 나갔다.다음날.윤아름이 제시간에 나타나자 윤혜인은 그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줬다. 이야기가 결말까지 이어지자 윤아름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성을 잃은 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이거야?”윤아름이 마술을 부리듯 손목에 묶었던 레이스를 풀더니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헤헤 웃었다.“이거?”윤혜인은 원하던 물건이 윤아름 몸에 숨겨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손목에 묶여있는 레이스가 그저 장식이라고만 생각했다. 윤혜인은 얼른 자수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위치 추적기가 아직 들어있었다. 윤혜인은 자수를 더듬거리며 버튼을 찾더니 꾹 눌렀다. 그때 문 쪽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 윤혜인이 얼른 자수를 윤아름의 손목에 묶어줬다.발신기의 발신 기회는 고작 두번이었다. 마지막 한 번을 사용했으니 이제 더는 기회가 없다. 윤혜인은 윤아름이 다시 끌려가는 걸 보고 너무 안타까웠지만 곧 구출될 거라는 희망을 안고 꾹 참았다.한편, 곽경천과 배남준은 북안도를 이 잡듯이 뒤지며 윤혜인을 찾고 있었다. 원진우의 출입국 기록이 없는 걸 봐서는 아직 북안도에 숨어있다는 의미였다.이준혁도 온 힘을 다해 윤혜인을 찾았다. 꼬박 3일을 눈도 붙이지 못하고 돌아치던 이준혁은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잠깐 휴식하려 했다.그때 문이 열리더니 주훈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안으로 들어왔다.“발신기... 발신기에서 또 한 번의 신호를 보내왔습니다.”이준혁이 얼른 외투를 집어 들더니 지하 차고로 향했다. 가는 길에 주훈은 발신기 주변에 위험 물체가 있는지 탐색했다. 이준혁은 이 소식을 곽경천과 배남준에게 알렸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했지만 목표는 똑같이 윤혜인과 윤아름을 구해내는 것이었다.
“아름아, 왜 그래?”원진우가 앞으로 다가와 윤아름이 도대체 왜 그러는지 확인하려 했다. 뒤를 힐끔 돌아본 윤아름이 원진우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지르더니 윤혜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윤아름이 오히려 애가 된 것 같았다.“삼촌, 일단 나가 계세요. 삼촌이 여기 있으면 오히려 자극만 받을 거예요.”윤혜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원진우는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았지만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윤아름을 보고 한발 양보했다.“윤혜인 씨, 얌전하게만 있으면 절대 다치게 하지 않는다고 약속할게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원진우가 타이름 반 협박 반으로 말했다. 얕은 수작을 부리면 벌을 내리겠다는 경고였다. 윤혜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하더니 윤아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엄마, 엄마, 나 혜인이야...”원진우는 겨우 차분해진 윤아름을 보며 더는 자극하기 싫어 방에서 나갔다. 윤혜인은 방문이 닫히는 걸 똑똑히 보았다. 오전에 방안을 둘러보며 카메라가 없다는 건 이미 확인한 상태였다. 새 거처를 바꿔서 그런지 아니면 윤아름을 데리고 떠날 계획이라 그런지 여기는 카메라가 없었다.“엄마, 미안해요. 아팠죠?”윤혜인이 얼른 윤아름의 등을 확인했지만 다행히 살짝 빨개진 정도였다. 이런 위험한 수를 둔 건 윤아름이 조금만 이상해도 원진우가 신경 쓴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윤아름의 정서를 이용해 원진우를 영향 주려 했다. 다행히 그 방법이 제대로 먹혔다. 윤아름이 아닌 윤혜인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면 죽을 정도가 아니고서는 원진우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윤아름은 여전히 아무 감각이 없는 듯했지만 윤혜인이 친근하게 다가가도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저 멍한 눈으로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을 깜빡였다가 윤혜인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윤혜인은 윤아름의 팔을 잡고 눈물을 뚝뚝 떨궜다.“엄마...”윤혜인은 한참 동안 속 시원하게 울더니 울음을 그치고는 물었다.“엄마, 그때 그 자수는 어디에다 뒀어요?”윤혜인이 물은 자수는
윤혜인이 문 앞으로 다가가 힘껏 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불렀다.“엄마... 엄마...”화들짝 놀란 도우미가 얼른 달려와 윤혜인을 막았다.“아가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만하세요.”도우미가 윤혜인을 안더니 힘껏 침대 쪽으로 끌어당겼다. 윤혜인은 문을 두드릴 수 없어 큰 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엄마. 엄마. 엄마.”윤혜인이 큰 소리로 외치자 바깥에서 들리던 웅얼거리는 소리가 달라졌다.쿵.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쿵. 쿵. 쿵.휠체어로 문을 힘껏 부수는 소리와 도우미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사모님... 사모님. 안 됩니다. 이러시면 안 돼요.”윤혜인이 더 높은 소리로 불렀다.“엄마. 엄마. 엄마.”방 안에 있던 도우미가 윤혜인의 입술을 틀어막자 윤혜인이 팔다리를 마구 버둥대며 웅얼웅얼 소리를 냈다.문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탈칵 하는 소리와 함께 열쇠가 망가졌다. 문이 열리더니 검은 그림자가 안으로 쌩하고 들어왔다. 윤아름은 큰 꽃병 하나를 이고 들어와 윤혜인의 입을 막고 있는 도우미를 내리쳤다. 도우미는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쓰러지더니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윤아름이 휠체어에서 겨우 일어나 윤혜인을 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윤혜인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엄마를 다시 안아보는 거라 윤혜인도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도우미는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다른 도우미를 보고 윤아름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긴 윤아름은 아까 정신이 살짝 나간 것 같았다. 게다가 원진우가 윤아름을 다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기에 과분하게 말렸다가 윤아름이 다치는 날에는 도우미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다.이때 소식을 들은 원진우가 다급하게 걸어왔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녀를 보게 되었다. 원진우는 멈칫하더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울다가 웃기를 반복하는 윤혜인은 정상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멍하던 예전과 비기면 정서라는 게 생겼다. 윤혜인이 확실히 윤아름을 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