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형 추적기였다. 전에 결혼식 답례품에 있던 제비 자수에 심은 것이었다.매 답례품에 빼놓지 않고 다 심어놓았을뿐더러 잘못 터치할까 봐 복잡한 공법으로 수놓은 것이었기에 윤아름만 어떻게 푸는지 알 수 있었고 그래야 추적기를 촉발할 수 있었다.곽경천은 어깨에 입은 상처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로 노트북을 꺼내 추적기의 위치를 찾아봤다. 5초 만에 알아내 위치는 원진우의 저택이었다. 저택에서 사람을 숨길 수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지하실일 것이다.지하실 입구만 찾아내면 윤아름을 찾을 수 있다.이신우는 바로 계획을 세우고 원진우의 저택에 잠입할 준비를 했다.잠입 계획을 실시하는 날이 되었지만 이신우는 들어갈 수 없었다. 알아본데 의하면 원진우가 며칠 전 북안도에서도 유명한 황실 능묘의 장인을 불러와 별장에 그 유명한 ‘불모래’를 설치했다.불모래는 말 그대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별장 전체에 불이 달리기 쉬운 모래가 쏟아지면서 화염에 휩싸일 수 있는 물질이었다.원진우는 저택을 아예 능묘로 만들 생각인 것 같았다.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었다.이신우가 주저했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들어간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뿐만 아니라 원진우에 의해 지하실에 갇힌 윤아름의 목숨도 위험해졌다.원진우의 행보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불모래를 심을 생각을 한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런 극단적인 일을 벌이는지 알 수 없었다.사람을 찾으러 들어가는 일은 일단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다.이신우는 연세가 있는 장인들을 찾아가 불모래의 특점을 알아보면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며칠을 연구해도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돌파구라면 바로 원진우를 밖으로 유인한 후에 집으로 잠입해 신속하게 조사해 보는 방법밖에 없었다.문제는 원진우가 이미 연속 며칠 동안 두문불출하면서 누가 초대하든 거절한다는 것이었다.그럴수록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조급해졌다. 윤혜인도 이 일도 연속 며칠간 불안해했다.윤혜인의
윤혜인은 눈을 의심했다. 이준혁은 지금 국내에서 재활 중이라 여기에 나타날 리가 없었다.원래대로라면 재활 훈련을 한 달 동안 더 받아야 했다. 그래도 다 낳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몇 달간 조심하면서 힘이 들어가는 일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뭘 그렇게 봐?”배남준은 윤혜인이 한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이렇게 물었다.윤혜인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왜 다른 사람을 이준혁으로 착각했는지 모르지만 깊이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요즘 엄마 일로 정신이 없어서 그를 떠올릴 새가 거의 없었다. 좋은 징조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누군가를 천천히 잊는다는 게 이런 느낌일 것이다. 아프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길을 거닐다가 비슷한 그림자를 보고 심장이 저릿해질 수는 있다.식당에 도착하니 윤혜인의 얼굴에 땀이 맺혔다. 배남준은 친절하게 손수건을 건네며 땀을 닦으라고 하더니 자리에 앉아 메뉴를 주문했다. 거의 해산물이었다.배남준은 윤혜인이 해산물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북안도는 해산물 자원이 풍부했지만 윤혜인은 임신한 관계로 혹시나 아이에게 영향 줄까 봐 늘 조금씩만 먹었다.하지만 오늘 주문한 해산물은 배남준이 다 계산해서 주문한 것이라 임산부도 적정량을 지켜서 먹으면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었다.윤혜인은 배남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시름 놓고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껍질이 있는 해산물은 까기가 번거로웠다. 배남준이 윤혜인에게 새우 몇 개를 까주더니 다른 것들도 골라서 윤혜인에게 집어줬다. 이내 윤혜인의 앞접시는 먹기 좋게 까놓은 해산물로 가득했다.윤혜인은 약간 민망해지기 시작했다.“오빠, 오빠도 먹어요. 난 이거면 됐어요.”배남준은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껍질을 까서는 윤혜인의 앞접시에 쌓아 올렸다.“오늘은 많이 먹어도 돼. 산후조리 들어가면 아무것도 못 먹는다.”윤혜인의 예정일은 아직 2주 정도 남아 있었다. 요즘 제일 큰 고민거리라면 바로 윤혜인이 예정일을 맞아 국내로 들어가는 게 걱정되었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국내까지
솔로 기간만 30년인데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가정이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다행히 벗어났어. 나쁜 습관은 없을 거야. 바람피우는 일도 없을 거고. 한평생 너만 바라보면서 살게. 만약 우리가 가정을 꾸릴 수 있다면 한마음 한뜻으로 가정을 위한 삶을 살 거야. 아빠가 되는 게 처음이지만 어떻게 좋은 아빠가 될지 열심히 공부해 볼게. 아이는 네가 갖고 싶지 않다면 안 가져도 돼. 아름이, 초롱이, 그리고 파랑이까지, 그 아이를 유일한 내 자식처럼 돌보면서 살게.”초롱과 파랑은 윤혜인이 뱃속의 아이를 위해 지은 태명이었다.이름보다는 진지한 감이 좀 떨어질 수 있지만 윤혜인은 어릴 적 그녀를 길러준 외할머니가 간단한 이름일수록 더 키우기 쉽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시골에서 가끔 남자아이 태명을 똥강아지라고 짓고 여자아이 태명을 꼬물이라고 짓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낳아서 잘 키우기 위한 목적이었다.윤혜인도 이번에는 미신을 믿기로 하고 아주 일반적인 태명을 지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무사하고 건강한 삶만 산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솔직히 배남준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윤혜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평생 자기 아이를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윤혜인의 세 아이를 그의 자식처럼 돌보면서 살겠다는 게 누구나 내릴 수 있는 결심은 아니었다.윤혜인은 전에 더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을 더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그렇게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했다.윤혜인은 소원을 떠올렸다. 사랑을 좇다가 날개가 꺾이고 나락으로 빠져 허우적댔지만 지금은 사랑에서 벗어나 오히려 더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세 아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 키울 자신은 있었지만 아버지라는 역할이 빠지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 성격이 변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었다.윤혜인이 고민하자 배남준이 말했다.“혜인아, 지금 당자아 대답할 필요 없어. 무엇이든 시간이 필요하잖아. 일단 눈앞에 놓인 관문부터 해결하고
그러면 혼자 좋아할 자격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오빠가 한 말은 고민해 볼게요.”윤혜인이 말했다.배남준은 윤혜인이 이런 대답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넋을 잃은 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윤혜인은 배남준에게 거부감이 없었다. 만약 가정을 다시 꾸린다면 배남준도 좋은 선택이긴 했다.그리고 윤혜인도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아이들을 정확히 인도할 수 있으니 말이다.침착한 성격을 가진 사람과 함께라면 무슨 일을 하든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전에는 아이가 한 명뿐이라 이런 일은 고민하지 않아도 혼자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뱃속에 품은 아이까지 태어나면 고려해야 할 게 점점 늘어날 것이다.배남준은 침착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입에 발린 말에 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낑낑대던 배남준이 겨우 고맙다는 말밖에 내뱉지 못했다.윤혜인은 그런 배남준의 반응이 재미있어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고마워요. 남준 씨.”변화를 주고 싶다면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이 바로 호칭을 바꾸는 것이었다. 계속 배남준을 오빠라고 부르면 곽경천처럼 오빠로만 생각하지 좋은 남자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배남준은 너무 기뻐서 표정 관리가 잘되지 않았다.두 사람이 식당에서 나왔을 때는 하늘에서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북안도는 다른 건 다 좋았지만 너무 추운 게 문제였다. 윤혜인은 매번 곰처럼 겹겹이 껴입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배남준은 윤혜인의 손에 보들보들한 장갑을 끼워주고 나서야 윤혜인의 손을 잡고 돌아갔다.오늘은 길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손을 잡지 않으면 부딪히기 십상이었다.하지만 윤혜인은 오늘 저녁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멀지 않은 곳에서 또 이준혁과 닮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익숙함이 전에 봤던 그림자보다 더 짙었다.어깨라인이 선명한 뒷모습에 윤혜인은 순간 그 사람이 이준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배남준은 윤혜인이 또 멍을 때리고 있자 윤혜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
거실에 더없이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남자는 체격이 잘빠졌고 얼굴도 여전히 준수했다. 고개를 돌린 순간 은하수를 통째로 담은 듯한 눈동자가 보였다.윤혜인은 넋을 잃었다. 착각이 순간 현실이 된 것이다.시선이 닿은 순간 윤혜인은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여기는 왜 온 거지...’하지만 머릿속을 가득 메운 생각은 달랐다.‘다리는 다 나았나... 지팡이를 짚지 않은 걸 봐서는 많이 좋아졌다는 건데. 아직 다 낫기도 전인데 찾으러 온 건 아니겠지?’뒤쫓아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윤혜인은 걸음을 멈추더니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돌렸다.남자는 윤혜인을 부를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덤덤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준... 이준혁 씨.”윤혜인이 입을 열었다.잠깐 고민해 봤지만 그래도 말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여기까지 찾아와도 다시 그를 만날 생각은 없었다.게다가 이준혁은 아직 채 낫기 전이었다.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기는 싫었다.윤혜인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저번에 알아듣게 잘 얘기한 것 같은데요?”이준혁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렇게 찾아온 건 볼일이 있어서야.”윤혜인은 전혀 믿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무슨 그렇게 큰 일이 있다고 병이 채 낫지 않기도 전에 엄동설한인 북안도까지 달려온 건지 궁금했다.출산과 엄마 일로 이미 충분히 속이 뒤숭숭한 상태였기에 걱정거리를 하나 더 추가하기는 싫었다.너무 많은 일이 쌓여 있어 숨을 돌릴 겨를도 없었다. 속으로는 자기 몸 하나 아낄 줄 모르는 남자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윤혜인은 자기가 왜 화났는지 알아보기도 전에 먼저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이준혁 씨, 이러는 거 정말 짜증 나는 거 알아요? 이런 짓 하고 혼자 감동하고 그러는 거 아니죠? 이제 그런 짓 좀 그만해요.”이 말에 이준혁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그렇게 한참 침묵하던 이준혁이 다시 입을 열더니 그런 자신이 우습다는 것처럼 말했다.“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윤혜인은 이준혁이 아직도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하여 이선 그룹에서 이 프로젝트를 중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유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염치를 불문하고 준혁 오빠랑 같이 왔다고...’윤혜인은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이준혁을 오해한 것 같았다.이준혁은 윤혜인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위해 온 것이었고 여자 친구까지 데리고 왔다.윤혜인은 그것도 모르고 이준혁이 그녀를 위해서 달려온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보다 더 난감한 순간은 없을 것 같았다.이때 이신우도 안에서 나왔다. 윤혜인을 보자마자 먼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혜인 씨, 준혁이는 프로젝트 토론하러 온 거예요. 그리고 곽경천 씨 상황을 전해 듣고 같이 보러 왔어요.”이신우가 소개하기 시작했다.“강씨 가문 아가씨는 기억하고 있죠?”전에 캠핑하러 갔을 때 정유미도 함께였고 윤혜인도 있었으니 더 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윤혜인은 지금 이 상황에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출산에 가까워진 초조함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얻은 직접적인 결과는 바로 사리 판단에 어두워졌다는 것이었다.아까 이준혁이 분명 여러 번이나 그녀를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그녀는 자꾸만 자기와 연관 지었다.윤혜인은 얼굴이 너무 뜨거워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정유미는 눈치를 살필 줄 잘 몰랐기에 아직도 열정적으로 말했다.“언니, 설마 방해한 거 아니죠? 준혁 오빠가 데려오지 않겠다는 거 내가 꼭 따라가고 싶다고 한 거예요...”“아니에요. 오빠 보러 와줘서 고마워요.”윤혜인의 얼굴이 빨갛던 데로부터 하얗게 변하더니 애써 웃으며 말했다.“미안해요. 좀 피곤해서 올라가서 쉬어야겠어요.”윤혜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하고는 곽경천을 보러 갈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당황한 정유미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오빠, 내가 혹시 실수한 거 아니에요?”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이준혁이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너
곽경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정일이 다가오니 잠을 잘 자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일단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아이나 생각해. 지금 제일 중요한 게 뱃속에 있는 아이니까.”곽경천이 말했다.윤혜인은 약간 죄책감이 들었다. 곧 예정일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일이 지체되고 있었다.곽경천은 윤혜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알아챘다.“너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불모래에 대처할 방법도 아직 찾고 있고 원진우도 최근에 두문불출이래. 게다가 저택 경비까지 더 강화했고. 들어가려고 해도 억지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 중이야.”“응, 알았어.”윤혜인이 말했다.곽경천이 위로했다.“이제 와서 하루 이틀 급해한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지금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원진우가 갑자기 미쳐서 엄마한테 해코지하지는 않을 것 같아. 그냥 원진우가 무슨 낌새를 눈치챈 것 같으니까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더 파헤쳐봐야지.’곽경천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니 원진우는 윤아름과 감정으로 얽혀 있는 관계인 것 같았다. 그러니 윤아름을 쉽게 해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하지만 사람이 약간 미친 건 확실했다. 계획 없이 무턱대고 진입했다가는 원진우가 안으로 들어간 사람과 같이 죽자고 달려들 수도 있다. 거기에는 당연히 윤아름도 포함되어 있었다.곽경천이 자연스럽게 물었다.“어제 이준혁 씨 만났어?”윤혜인은 쪽팔렸던 어제가 다시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윤혜인이 부담을 느낄까 봐 그러는지 곽경천이 특별히 설명했다.“하나로 프로젝트 토론하려고 왔대.”“알아.”윤혜인이 말했다.“남준이가 그러더라. 어제 너한테 고백했다고.”곽경천이 어제 있었던 일을 꺼냈다.윤혜인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배남준이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다고 생각했다.“너는 어떻게 생각해?”곽경천이 물었다.윤혜인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곽경천이 질문을 바꿨다.“고민해 본다고 한 말 진심이야?”“나... 사실 나도 잘 모
“너에게 잘해주고 아이에게 잘해주는 건 우리 같은 가족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늘 해줄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 고민할 때 이 두 개는 제쳐두고 하나만 생각해. 그건 바로...”곽경천이 말을 이어갔다.“그 남자가 네가 원하는 남자인지만 생각하라는 거지.”윤혜인은 이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윤혜인은 기여형 인격이었다. 제일 먼저 자기가 제일 아끼는 사람부터 챙겼다. 그다음이 가족이고 마지막이 윤혜인 자신이었다.아이에게 아빠를 찾아주는 일을 고민할 때도 순전히 좋은 아빠의 표준만 고려했고 윤혜인은 자기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곽경천이 말했다.“혜인아, 나도 감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너랑 남준이처럼 지내는 건 아닌 것 같아. 남준이가 너에게 잘해주는 건 맞지만 거기에 보답할 방법이 없어서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야.”윤혜인은 어릴 적 겪었던 일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자기 기분보다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다른 사람이 잘해주면 윤혜인도 곱절로 잘해줬다. 그러다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고 생각하면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그 사람이 만족한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다.곽경천은 윤혜인이 자기 마음이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는 게 싫었다.“내 말은 네가 원하지 않는 거를 우리의 의견을 듣는답시고 선택하지 말라는 소리야. 너의 인생이니까 네 생각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니겠어?”윤혜인은 곽경천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순간 곽경천이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아직도 알아듣지 못한다면 정말 똥멍청이나 다름없었다. 윤혜인도 곽경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곽경천은 윤혜인이 그저 좋은 남자를 찾아서 결혼하기보다는 그녀와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를 바랐다.윤혜인은 그제야 깨달았다. 전에는 뭔가 이상한 늪에 빠진 것 같았다. 세 아이에게 아빠를 찾아준다는 기준만 생각하고 상대를 가늠했기 때문이다.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뜻인지 알아. 잘 고민해 볼게.”곽경천은 동생이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