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천이 돌아온 것이었다.하지만 그는 직접 걸어서가 아니라 비서인 도지훈에게 들려서 돌아왔다.윤혜인은 그를 보자마자 달려갔다.곧 곽경천의 창백한 얼굴과 하얗게 질린 입술을 보고 그녀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오빠, 오빠, 어떻게 된 거야?”하지만 곽경천은 눈을 감고 대답하지 않았다.윤혜인의 시선이 곽경천의 어깨로 옮겨졌다. 피가 흥건하게 번진 그의 어깨는 명백히 총상을 당한 것으로 보였다.곧이어 배남준도 뒤따라 들어왔는데 의사들과 함께였다. 그는 도지훈에게 곽경천을 아래층 손님방으로 옮겨 바로 수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이런 상황에 능통한 배남준 덕에 방은 즉석에서라도 이내 임시 수술실로 바뀔 수 있었다.비위생적이거나 감염될 위험은 전혀 없었다.윤혜인은 닫힌 방 문을 바라보며 가슴을 움켜잡고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 배남준에게 물었다“남준 오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오빠는 분명히 점심에 멀쩡히 나갔는데... 왜 이렇게 심하게 다쳐서 돌아온 거지?’배남준은 윤혜인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바로 대답하지 않고 먼저 그녀를 소파에 앉혔다.그러고는 천천히 윤혜인을 안정시킨 후에야 입을 열었다.“경천이가 그 의사 집에 가봤는데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어. 사람도 없었다고. 그렇게 한창 경천이가 집을 뒤집어 보고 철수하려던 순간... 도둑이랑 마주쳐서 싸움이 벌어졌어.”“도둑이라니...”윤혜인은 그런 우연을 믿을 수 없었다. 북안도에서 꽤 오래 머물렀던 그녀는 이곳의 풍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보통의 경우 평민들은 권력자에게 함부로 손대지 않는다. 외지에서 온 귀빈에게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한다.곽경천의 차림새나 타고 다니는 차량만 봐도 그는 값비싼 사람임이 분명한데 그런 도둑이 감히 그를 공격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윤혜인은 목이 메인 채로 말했다.“믿을 수 없어요. 솔직히 말해봐요. 누군가 오빠를 암살하려고 한 거죠?”겨우 윤아름에 대한 단서를 찾았는데 곽경천이 이렇게 큰 부상을 입었으니 이것
의사의 말을 들은 후, 윤혜인은 조금 안심했다.방에 들어가 보니 곽경천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옆에 있는 모니터에 곽경천의 각종 생체 신호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표시되어 있어 그녀의 불안한 마음도 조금은 가라앉았다.그녀가 잠시 옆에 앉아 곁을 지키고 있을 때, 배남준이 들어와 말했다.“저녁 좀 먹고 와. 조금 이따 다시 와서 한 시간 정도 더 보고 그다음엔 쉬어.”만약 시간을 정해주지 않으면 윤혜인은 아마 밤늦게까지 곁을 떠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임신 중인 그녀가 밤을 새며 걱정하는 것은 몸에 해로웠다.하지만 윤혜인의 표정은 영 떠나고 싶지 않아 하는 표정이었다.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남준은 이내 윤혜인을 다독였다.“여기엔 나도 있고 간병인들도 있으니까 걱정 마. 24시간 동안 절대 혼자 두지 않을 테니까. 지금 네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건 너 자신이야. 나중에 경천이가 깨어나서 네 상태를 보고 걱정하지 않게 말이야.”윤혜인은 배남준이 자신을 위해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기에 순순히 일어나 저녁을 먹으러 갔다.식욕은 없었지만 임신 후기에 접어든 아기들을 위해 영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조금 더 먹으려 애썼다.식사 중에 윤혜인은 배남준에게 물었다.“남준 오빠, 그 약을 산 여자의 배후는 정리됐어요?”그 여자가 사라진 이상, 그녀의 배후 관계를 파악해 단서를 찾아야 했다.배남준은 답했다.“그 진우희라는 여자는 원씨 가문의 개인 주치의야. 동시에 외부에서도 개인적으로 일을 받곤 했어.”사적으로 일을 받을 때마다 높은 금액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아 겉보기에 진우희는 돈을 꽤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원씨 가문이요?”윤혜인은 잠시 의아해하며 물었다.“남준 오빠, 그 원씨 가문이 설마 원지민의 삼촌인 원진우의 집이에요?”배남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바로 지난번 결혼식에서 봤던 그 남자.”그 남자의 독수리 같은 날카로운 눈빛이 떠오르자 윤혜인의 마음에는 다시 불안감이 엄습해왔
이러한 이해관계를 배남준이 굳이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윤혜인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저녁을 먹고 나서도 윤혜인은 곽경천의 곁을 조금 더 지켰다.곽경천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고 마취의 영향이 가시지 않은 듯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시간이 되자 배남준이 윤혜인을 재촉했다.임신 중에는 충분히 쉬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윤혜인도 억지로라도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배남준이 곽경천의 곁을 지키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방으로 돌아왔지만 윤혜인은 잠이 오지 않았다.그렇게 평소처럼 스마트폰을 켜고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잠을 청하려 했는데 실수로 뉴스 앱을 열어버렸다.바로 첫 페이지에 뜬 뉴스는 이선 그룹 대표가 여러 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는 모습이 포착되었다는 내용이었다.이선 그룹의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곧 이선 그룹은 성명을 발표해 대표가 단순히 수면 장애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경영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히며 이준혁 대표와 이신우 임시 대표의 지도 아래 이선 그룹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언론은 더 이상 추측성 보도를 삼가고 생산 상황에만 집중해 달라고 요청했다.뉴스 화면에 스치듯 보이는 병원에서의 이준혁의 모습은 많이 수척해 보였다.원래도 뚜렷했던 그의 턱선은 더 선명해졌고 몸이 한층 더 말라 있는 듯했다.그러나 병색은 조금 나아 보였다. 그가 적극적으로 재활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에 윤혜인은 조금 안도했다.만약 이준혁의 다리가 평생 낫지 않는다면 윤혜인은 평생 그것이 마음에 걸려 안심하지 못할 것이다...윤아름이 옷을 다 입고 나자 원진우가 방으로 들어왔다.그는 오늘 다크 레드 벨벳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 덕에 우아하면서도 품격 있는 분위기를 풍겼다.얼굴에도 평소의 차가운 기운은 없고 약간의 미소가 감돌며 무언가 기쁜 일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오늘 윤아름은 높은 목의 니트 스웨터에 모피 코트를 걸치고 목에는 또 다른 핑크 사파이어 목걸이를 매치했다.원진우는 그 핑크
원진우는 일부러 신비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윤아름은 마음속에서는 그제야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원진우의 호의를 믿는 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가 이유 없이 자신을 데리고 나왔을 리가 없었다.그녀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창문을 열고 도망치려 계획했으나 차는 점점 더 황량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주위에 아무도 없었고 뛰어내린다고 해도 도움을 구할 사람은커녕 도망갈 곳조차 없었다.윤아름은 일부러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밥 먹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난 가까운 곳인 줄 알고 아침도 안 먹고 나왔어. 근데 왜 이렇게 오래 차를 타야 해?”그러자 원진우는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멀지 않아. 곧 도착해.”윤아름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손을 뻗어 창문을 열려고 했지만 창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창문이 잠겨 있는 것이었다.이 차 안의 모든 것이 그녀를 감시하고 있었다.마치 예전에 별장에서 빠져나오려고 온갖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국 도망치지 못했을 때처럼 말이다.윤혜인은 발코니에 앉아 원진우의 시선을 받으며 단호하게 뛰어내렸다.자유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걸 수 있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발코니 아래는 원진우가 미리 준비한 부드러운 흙으로 바뀌어 있었고 뛰어내린 그녀는 죽지 않고 그저 긴 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그리고 지금 다시 깨어났다.그 감옥에 갇힌 듯한 숨 막히는 감각은 마치 깊은 바닷속의 물처럼 그녀를 꽉 감싸고 있었다.윤아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해야 했으니 감정을 드러내거나 분노할 수 없었다.“바람 좀 쐬고 싶어.”윤아름이 말했다.그러자 원진우는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차가 달릴 땐 바깥바람이 차가워서 감기에 걸릴 수도 있어.”윤아름의 입술은 하얗게 질려있었다.“바람 쐬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원진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윤아름, 또 무슨
윤아름이 진우희를 진짜 보고 싶어 했을 리가 없다.그녀는 원진우가 의심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차를 돌리는 것은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새로 가는 길에 몇 대의 차가 지나가는 것으로 보아 이는 완전히 사람 없는 곳은 아니라는 뜻이었다.윤아름은 창밖을 쓱 훑어보더니 갑자기 날카로운 포크를 꺼내 원진우의 목에 겨누며 운전기사를 위협했다.“차 세워!”포크 끝은 이미 갈아져서 매우 날카로웠고 살짝 닿기만 했을 뿐인데 원진우의 목에서 피가 흘렀다.운전기사는 깜짝 놀라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더니 차를 멈춰 세웠다.하지만 포크는 큰 충격으로 인해 더 깊숙이 박혀버렸다.순간 상처에서 얇은 핏줄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붉은 피가 윤아름의 얼굴에까지 튀어 오르며 무서운 광경을 연출했다.“사모님,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운전기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문 열어!”윤아름이 단호하게 명령했다.하지만 운전사는 눈길을 원진우에게 돌릴 뿐 감히 마음대로 문을 열지 못했다.그러자 윤아름은 포크를 더 깊숙이 찔러 넣었다. 이제 얇은 핏줄기는 조금 더 굵어져 상황이 더 위험해 보였다.그러나 정작 원진우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마치 날카로운 무기에 전혀 위협받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그는 아주 평온하게 물었다.“윤아름, 정말 여기서 내리겠다고?”윤아름은 당연히 떠나고 싶었다.여기 근처는 작은 상가가 있었고 차에서 내리기만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주위에 상점도 많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원진우가 아무리 날뛰어도 사람 많은 곳에서 그녀를 잡아갈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그가 무슨 일을 벌이더라도 북안도의 법 집행부에 가서 해결하면 되는 일이었다.윤아름의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목적만이 있었다.법 집행부에 도착하면 배씨 가문과 연락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딸을 만날 수 있을 것 말이다.그리고 그 순간부터 원진우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증오로 가득 찬 눈빛을 윤아름은 더 이상 숨길 필요도
과거에 윤아름은 이신우에게 자신의 아이를 보내기 위해 이웃에게 부탁했었다. 그 아이를 곽진명에게 맡겨 키우게 하려는 계획이었다.곽진명이 그녀와 결혼한 이유는 윤아름의 아버지가 곽진명에게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이었다.곽진명은 원래 신체적 문제로 인해 평생 결혼하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다 위기에 처한 윤아름을 만나 그녀를 구해주고 미친 남자의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그녀에게 집을 제공해주기로 결심했다.비록 결혼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서로를 돕는 가족과 같았다.곽진명 역시 윤아름을 친척처럼 여겼다.그런데 이웃이 그 당시 남긴 말에 따르면 그들이 탄 배가 뒤집혀서 태어난 지 세 달도 안 된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그때 윤아름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을 느꼈다.하여 오랜 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고 믿어왔다.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이신우가 키운 그 아들은 바로 그녀의 아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순간 윤아름의 마음속에 희망이 차올랐다.‘우리 아이가 무사히 살아있다니... 하느님께서 분명히 날 불쌍히 여기신 거야! 이제 반드시 탈출해야 해. 반드시!’“원진우, 네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게 그런 거야? 넌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거야? 넌 살인자야! 내 부모님을 죽이고 날 감금한 미친놈이라고!”윤아름은 감정이 폭발한 듯 소리쳤다. 더 이상 원진우의 위선적인 태도를 견딜 수 없었다.그녀는 원진우와도 평화로운 시절이 있었던 걸 떠올렸다.그때 윤아름의 부모가 동시에 세상을 떠났을 때, 윤아름은 원진우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했다.그가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이유가 오로지 사랑 때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다른 사람들과 달리 윤아름은 원진우가 다가온 목적이 자신이 물려받을 유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윤아름은 자신의 신분을 잊고 전심으로 원진우를 사랑했지만 결국 부모님의 죽음에 그가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어느 날 한쪽 눈이 멀어버린 남
하늘도 그녀를 불쌍히 여긴 것인지 어느 날 윤아름의 ‘눈’이 갑자기 회복되었다.그러나 그녀는 원진우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고 계속해서 ‘눈먼 사람’인척 연기했다.그렇게 해야 원진우가 지나치게 경계를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어느 날 집에 돌아온 원진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윤아름은 그 틈을 타 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몰래 도망쳐 나왔다.그렇게 곽진명을 찾아갔고 그 뒤 윤아름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원진우의 아이였다.윤아름은 극심한 고통에 빠졌다.이 아이를 낳을지 아니면 지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꿈에 나타나 ‘아이는 우리 대신 너와 함께 있어 줄 존재다’라고 말하는 꿈을 꾸었다.그 순간 아이는 죄가 없다는 것을 윤아름은 깨달았다.하여 그녀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곽진명은 윤아름에게 결혼을 제안했고 곽경천은 곽진명이 입양한 아이로, 세상에는 윤아름의 친아들로 알려졌다.그 사이 윤아름과 곽진명은 원진우가 윤아름의 부모님을 죽인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원진우는 너무나 치밀하고 잔인하게 일을 처리했기에 그를 조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윤아름이 자신이 곽진명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일부러 알린 이유는 자신이 계속 숨어만 있으면 언젠가는 원진우에게 다시 붙잡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차라리 공개적으로 신분을 드러내는 것이 원진우가 그녀를 납치하는 데 더 큰 제약이 생길 것이었다.그리고 실제로 원진우는 몇 년 동안 잠잠해졌다. 그것은 윤아름이 가장 행복했던 몇 년이었다.아이들과 함께였고 곽진명 역시 훌륭한 아버지였으니 말이다.그러나 원진우가 단지 잠잠한 척만 했을 뿐이라는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그는 그동안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결국 다시 윤아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악몽은 다시 반복되었다.하지만 이제 그 길고 긴 악몽을 끝낼 시간이 되었다.원진우는 윤아름의 말
“푹!”손등에서 순식간에 피가 솟구쳤다.예상치 못한 상황에 원진우는 본능적으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윤아름은 그 포크를 차 좌석에 꽂아 원진우의 손을 단단히 고정시켰다.이 포크는 그녀가 오랫동안 갈고 닦은 것으로 원진우의 손을 완전히 꿰뚫어 버렸고 쉽게 빠지지 않게 만들어졌다.만약 억지로 빼내려 한다면 엄청난 고통이 뒤따를 것이었다.다음 순간 윤아름은 팔꿈치를 들어 올려 그의 후두부를 강하게 가격했고 원진우는 결국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운전기사는 깜짝 놀라 외쳤다.“가주님!”하지만 원진우가 여전히 윤아름의 손에 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윤아름은 그동안 품어왔던 깊은 증오를 담아 모든 행동을 신중하게, 그러나 강하게 취했다.비록 직접 이 악마를 죽여 부모님의 복수를 하지 못할지라도 윤아름은 원진우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운전기사를 향해 말했다.“포크에는 독이 묻어 있어.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해.”사실 포크에는 독이 묻어 있지 않았고 그녀의 상황에서는 독을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을 벌기 위해 윤아름은 운전기사를 속였다.말을 끝내자마자 윤아름은 차에서 뛰쳐나와 사람이 많은 식당으로 달려갔다. 운전기사는 핏기없는 원진우를 보며 윤아름이 너무도 잔인하다고 생각했다.‘남자는 사랑에 휘말리면 이렇게 멍청해지는 걸까? 심지어 평소에 그렇게 똑똑한 가주님마저 애인에게 속아 넘어가다니...’하지만 운전기사는 안심했다.원진우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윤아름이 오늘 무슨 일을 벌일지 이미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기사는 원진우가 왜 이런 고통을 굳이 감수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다 예측하고 있었다면 왜 사건을 미리 막지 않고 일부러 이런 일을 당하게 놔둔 것일까?부유한 사람들의 생각은 정말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곧 운전기사는 미리 준비한 강력한 주사제를 꺼내 원진우의 팔에 주입했다.
“소원, 우리 혼인신고 했어.”육경한이 짧고 간결하게 설명했다.소종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대표님 미친 거 아니야? 혼인신고를 했다고?’한참 후, 소종은 겨우 입을 열었는데 말 속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형님,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그 여자가 형님을 해치려고 한다는 걸 알면서도 옆에 두시겠다고요?”소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이해가 안 됐다.육경한의 머리를 한번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았다. 병원에 가서 뇌 CT라도 찍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그저 황당하고 답답할 뿐이었다.“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육경한은 단호하게 말했다.그나마 소종은 평생을 함께하며 고난을 헤쳐온 동료였기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말 자체를 꺼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형님...”소종은 어렵게 입을 뗐다.그가 육경한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건 솔직한 진심을 말할 때뿐이었다.그 호칭은 그들이 한때 얼마나 험난한 늪에서 기어 나왔는지를 상기시켜주는 이름이었다.지금의 안정된 삶을 소중히 여겨야 했다.그런데 왜 굳이 육경한이 스스로 곁에 시한폭탄을 들여놓으려 하는지, 그것도 머리맡에까지 두는지 소종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만.”육경한이 그의 말을 끊었다.“이제부터 소원은 내 아내야. 미우 그룹의 모든 자원은 소원을 위해 조건 없이 제공될 거다. 그리고 누구든 내 아내를 괴롭히는 걸 나는 보고 싶지 않아. 알겠어?”“...”소종은 말문이 막혔다.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차갑고 무정한 여자가 대체 뭐가 좋아서 대표님은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육경한이 한 말은 지켜야 했다.지켜야 하는 동시에 그의 안전도 보장해야 했다.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알겠습니다.”소종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봐.”육경한이 말했다.사무실에서 나간 뒤에도 소종은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하여 그는 바로 게으름을 피우는 직원들을 닭 잡듯이 몰아
“대표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얼굴이 정말 밝아 보이네요.”“대표님 결혼하신다면서요? 아마 방민아 씨와 관련된 일이겠죠.”“방민아 씨랑 늘 사이가 좋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기분 좋아 보인 적은 없었는데... 꼭 방민아 씨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그럼 누구 때문인데요?”직원들이 소곤소곤 수군거리는 소리에 갑자기 낮고 냉랭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다들 그렇게 한가해요?”직원들이 고개를 돌리자 소종이 마치 지옥에서 온 사신처럼 서 있는 게 보였다.“소 비서님...”소종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일 안 하고 대표님 뒷얘기나 하다니. 다음번에 근무 시간에 이런 소리를 들으면 월간 개근 수당 전부 삭감할 테니까 알아서들 해요.”직원들은 몸을 움츠리며 황급히 흩어졌지만 모퉁이를 돌아가면서도 계속 속삭였다.“소 비서님, 왜 이렇게 분노하신 거예요? 뭔가 이상한 냄새 나는데.”“대표님 기분은 좋아 보이던데 소 비서님은 왜 이렇게 안 좋아 보이죠?”“그만해요. 또 걸리면 진짜 큰일 나요. 빨리 일이나 하자고요...”소종의 얼굴이 어두웠던 이유는 방금 홍보 부서에서 나온 직후였기 때문이다.30분 전, 육경한은 그에게 방씨 가문과의 결혼 취소에 대한 공식 발표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이 발표는 회사 안팎으로 큰 충격을 줄 것이 분명했다.단순히 대표의 개인사가 아니라 방씨 가문과 여전히 협력 관계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터진 폭탄 같은 소식이었기 때문이다.‘만약 방민아 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면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와 명성이 추락할 수밖에 없겠지.’소종은 속으로 기도했다.‘제발 방민아가 입 다물고 조용히 넘어가 줬으면. 괜히 일 키우지 말라고.’그러나 속으로 한탄하면서도 그는 방민아를 조금은 비웃고 있었다.‘사모님 자리를 꿰찰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패배하다니. 쓸모없네.’그렇게 소종은 대표 사무실에 도착했다.육경한은 책상 앞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프로젝트 제안서를 수정하고 있었
소원은 밤새 이어진 피곤함에 결국 다음 날 오후까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눈을 뜨자마자 보니 침대에 남아 있어야 할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몸 아래 깔린 침대 시트도 전날의 짙은 색에서 은은한 미색으로 바뀌어 있었다.소원은 희미하게 기억났다.‘침대 시트를 갈아야 했던 건... 너무 젖어서 못 잘 지경이었으니까.’이런 생각이 미치자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남자의 지나친 무절제함에 화가 치밀었다.‘도대체 이 거래는 누구한테 유리한 거야? 완전 오랫동안 굶주린 늑대처럼 굴었잖아.’처음의 분위기조차 그저 식전 음식 같은 것에 불과했다니 정말 어이없을 정도였다.소원이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방 문이 살며시 두드려졌다.“사모님, 깨어나셨습니까?”그 말에 잠시 멍해 있던 소원은 곧 대답했다.“네, 깼어요.”“아침 식사를 방으로 가져다드릴까요?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이 말을 듣고 소원은 잠시 침묵했다.‘우리가 어제 얼마나 늦게까지 했는지 다들 아는 걸까...’창피함이 몰려왔지만 굳이 내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다.“10분 뒤에 가져와 주세요.”침대에서 내려오려던 그녀는 한쪽 다리가 휘청이며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속으로 육경한을 욕한 뒤 이를 악물며 욕실로 가 재빠르게 씻었다.방으로 올라온 아침 식사를 보니 준비된 음식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정갈했다.죽, 깔끔한 반찬, 그리고 속을 편하게 해주는 보양식 위주의 메뉴였다.소원은 생각보다 배가 고팠는지라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그녀의 속이 가벼워진 건 단순히 음식을 먹어서만이 아니었다.유진이와 아주머니의 상황이 조금씩 안정되면서 마음속 큰 짐이 내려간 덕이었다.‘아주머니는 그동안 유진이를 위해 거의 모든 걸 바치셨어. 내가 아주머니를 포기할 순 없어. 반드시 좋은 치료를 받게 해야 해.’그녀는 어제 전문가들이 한 말을 떠올렸다.제대로 치료만 한다면 아주머니의 몸 상태가 70% 정도는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였다.특히 소원
게다가 남자는 온갖 수를 다 써서 소원을 자극했다.소원은 화가 치밀어 올라 속으로 외쳤다.‘대체 이런 것들은 어디서 배운 거지? 이런 건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그의 과감한 행동과 적재적소에서의 신경 자극은 소원을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이건 육경한의 평소 이미지와 너무 달라. 마치 전혀 다른 사람 같아.’그는 그녀의 입술 대신 다른 곳에 입맞춤을 했다.그 덕분에 상황이 더 격렬해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육경한은 손목을 고정하던 손을 천천히 놓고는 소원의 목을 지그시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다른 손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 수건 아래로 들어갔다.소원이 있는 힘껏 저항했지만 그의 힘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그는 소원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인해 붉게 달아오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그 눈빛 속에는 그녀가 불편하게 여기는 생생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는지라 눈을 질끈 감았다.‘이 모든 게 거짓이야. 단지 각자 필요한 걸 얻기 위해 몸을 거래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소원은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였지만 육경한은 결코 그녀에게 그런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듯 행동했다.그는 그녀의 방어선과 수치심을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듯 무릎을 굽히며 가까이 다가왔다.그리고 혼란 속에서 수건은 바닥으로 미끄러졌다.소원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굳어버렸다.유리에 닿아 있던 손가락이 순간적으로 긴장하며 곧게 펴졌다.‘이 사람이 미쳤나? 어떻게 이런 일을...’그녀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욕실 벽면의 반사된 모습을 향했고 흐릿한 증기 속에서도 두 사람의 실루엣이 뚜렷하게 보였다.그는 마치 새로운 경험을 주는 듯 그녀의 모든 감각을 흔들었다.소원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머릿속이 하얘지며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한 마디로 분노를 터뜨렸다.“육경한, 진짜 정신 나갔어?”하지만 그는 소원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를 단숨에 들어 올려 침대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그리고 소원의 입술을 강하게 붙잡고 깊은
소원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몸 앞의 수건을 꽉 움켜쥐었다.그 행동에 육경한은 비웃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뭘 감추는 거야? 내가 못 본 데라도 있나?”그의 말투는 낮게 깔리면서도 약간 장난스러워 듣는 이를 무안하게 만들었다.소원은 그의 말을 듣고 더욱 수건을 꽉 붙들며 단호하게 말했다.“누가 당신더러 들어오라 했어?”육경한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섞어 말했다.“내 집에 내가 들어오는 데 허락이 필요한가?”그의 말이 얄밉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소원은 인내심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나가줘. 옷 입어야 하니까.”그러자 육경한은 침대 위에 놓인 갈아입을 옷을 집어 들고는 대충 소원에게 던졌다.“그냥 이거 입어. 어차피 내가 못 본 것도 없잖아.”“...”더 이상 말다툼을 할 기운도 없었는지라 소원은 옷을 품에 안고 욕실로 들어갔다.하지만 욕실에서 옷을 확인한 순간, 그녀는 육경한이 일부러 자신을 골탕 먹이려 했다는 걸 깨달았다.그가 던진 것은 옷이 아니라 얇고 거의 투명한 속옷 같은 옷이었다. 꼭 가릴 곳만 어렴풋이 가려진 도저히 입고 나갈 수 없는 옷이었다.과거에도 이런 옷을 입어본 적 없는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렸다.‘이 인간이 정말...!’분노가 치밀어 오른 소원은 소리쳤다.“육경한! 이게 뭐야!”그 순간, 욕실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육경한이 문턱에 느긋하게 기댔다.“나 불렀어?”소원은 수건을 꼭 붙들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부른 거 아니야, 나가!”육경한은 그녀의 표정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분명 내 이름을 불렀잖아?”소원은 그의 태도에 답답함과 불쾌감을 느끼며 말했다.“그건 당신더러 들어오라는 뜻이 아니야!”그러나 육경한의 깊은 눈빛이 소원을 강하게 응시하자 그녀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느꼈다.그와 결혼을 결정했던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며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그렇다고 완전히 후회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 그녀는 선
“유진아, 네가 한 일들이 정말 많고 대단했어. 알아?”소원이 유진이를 다독였다.하지만 아들과 이렇게 가까이 이야기해본 적이 많지 않은 소원은 혹여나 말실수를 하거나 자신의 말이 유진이에게 너무 어려워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됐다.다행히 유진이는 매우 똑똑했는지라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저 알아요. 제가 틀린 건 없었고 앞으로도 나쁜 사람들 혼내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게 할 거예요.”소원은 아들의 영리함이 대견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다음에는 더 조심하자. 제일 중요한 건 우리 안전을 지키는 거야. 나쁜 사람들을 잡는 일은 어른들에게 맡기자, 알겠지?”“네, 알겠어요, 엄마.”유진이는 말을 이었다.“엄마, 다음에 외할머니 뵈러 갈 때는 우리 같이 가요.”소원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너 외할머니 뵈러 갔었니?”유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빠...”그러나 두 글자를 말한 후, 유진이는 소원이 기분 나빠할까 봐 얼른 말을 고쳤다.“그... 아저씨가 데려갔어요. 그 아저씨가 여기가 엄마의 엄마, 제 외할머니라고 알려줬어요.”소원의 마음은 복잡했다.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겠는 기분이 밀려왔다.육경한이 아들을 데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갔다니 뜻밖이었다.소원이 전미영을 찾아갔을 때마다 그와 마주친 적이 없었던 걸 보면 일부러 시간을 피해서 간 모양이었다.‘참 계산적이네.’유진이가 말했다.“외할머니는 말을 못 하시지만 저한테 웃어주셨어요. 제가 외할머니한테 말도 많이 걸었는데 계속 웃으면서 들어주셨거든요.”소원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응. 우리 유진이 정말 기특하다. 외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렸구나. 다음에는 같이 가자.”잠시 후, 유진이가 갑자기 물었다.“엄마, 저 언제 삼촌 볼 수 있어요? 저 삼촌이 너무 보고 싶어요.”서현재는 유진이의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함께하며 큰 위안과 즐거움을 준 사람이었다.유진이는 아직 어리지만 자신에게 잘해준 사람은 잊지 않았다. 오랫동안 못 본
시선을 축 늘어트린 육경한의 눈동자에 소원의 목에 올라온 닭살이 보였다. 입고 온 옷이 얇았는데 병원에서 에어컨을 너무 세게 튼 것이다.소원은 아주머니가 너무 걱정되어 육경한이 옷을 벗어줘도 딱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육경한이 옷을 벗어줬다는 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육경한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전문가 회진은 3시간이나 지속되었고 토론으로 얻은 방안은 투석, 즉 피를 바꾸는 것이었다. 치료 과정이 꽤 오래 걸릴뿐더러 아주머니가 언제 깨어날지도 미지수였고 치료한다 해도 아주머니의 몸은 예전처럼 돌아가기 어려웠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생활 능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에 소원은 눈시울이 붉어졌다.순간 방민아에 대한 원망도 극에 달했다.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방민아만 생각하면 정말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소원이 고개를 들어 육경한에게 말했다.“난 아주머니 이렇게 만든 사람 절대 용서 못 해.”육경한은 소원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고 있었다.“걱정하지 마. 난 절대 끼어들지 않을게.”“약속 못 지킬까 봐 그러지.”적어도 지금은 육경한에게 밉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소원은 말을 가려서 했다. 유진을 지키려면, 서현재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내려면 일단 몸을 사려야 했다. 서진태는 소원이 봤던 사람 중에 제일 악독한 사람이었기에 서현재도 잘 지낼 리가 없었다.지금 상황을 해결하려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육경한밖에 없었다.육경한이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더니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야? 유진이 내 아들이기도 해.”소원이 대꾸했다.“알면 됐어.”육경한이 이렇게 말하니 소원도 일단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육경한만 끼어들지 않는다면 방민아의 상황은 절대 좋아질 수 없었다.간호조무사가 일단 두 사람에게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일단 여독을 말끔히 배출하고 투석을 시작해야 했기에 두 사람이 여기 남아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게
사실 그게 더 무서웠다. 육경한이 소원을 위해 한걸음 크게 물러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사람은 영원히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방민아는 오장육부가 뒤틀릴 정도로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하기 전에 절대 소원과 유진을 건드리지 않고 몸을 사렸을 텐데 말이다. 그랬다면 지금 행복하게 육경한과 결혼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방민아는 거의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지금 당장 이혼해요. 이혼만 해준다면 돈은 원하는 만큼 두둑이 챙겨주고 아이랑 떠날 수 있게 해줄게요. 어때요?”소원이 콧방귀를 뀌었다.“방민아 씨, 진심이에요? 설마...”소원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원하는 걸 얻고 나서 우리가 다시 눈엣가시라고 생각해 우리를 다시 찾아내거나 함정을 팔 수도 있잖아요.”방민아는 그녀의 생각을 속속들이 꿰뚫어 보는 소원이 너무 싫었다. 소원과 유진은 정말 방민아가 잊으려 해도 자꾸만 거슬리는 눈엣가와도 같아 빼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 두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육경한의 마음을 영원히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기에 방민아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절대 그럴 일 없어요. 약속한 거니까 변하지 않아요.”소원이 웃으며 말했다.“방민아 씨,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한 승낙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어요. 내가 방민아 씨를 믿을 일은 더더욱 없고요. 나는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 최선을 다해 지킬 거예요. 돈도 많고 신분도 있는 방민아 씨가 이번에도 무사히 나올지 모르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것만 기억해요.”“아악. 내가 당신 죽여버릴 거야.”방민아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미친 사람처럼 소원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려 했다. 하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젊은 경찰이 방민아를 제압하더니 날카롭게 경고했다.“방민아 씨, 난동 그만 부리고 업무에 협조해 주세요. 첫 번째 경고에요.”무슨 일이 있으면 방씨 가문에서 대신 해결해 줬기에 방민아는 이런 상황에 놓인 적이 단
소원은 출동한 경찰이 나이가 젊고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어 남자인 줄 알았는데 목소리가 얇은 걸 봐서는 여자였다. 그래도 방민아의 기세에 전혀 밀리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다.“경찰 번호는 3210921, 아가씨,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경찰서로 연행하고 있으니 협조 바랍니다.”방민아가 코웃음 쳤다.“적법하면 체포영장 내놔요. 신고한다고 다 잡아가지 말고.”“그건 조사에 협조하면 다 밝혀질 일이에요.”그러더니 손을 내밀어 방민아의 손을 뜯어내려는데 손이 닿기도 전에 방민아가 막무가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건드리지 마요. 집행하는 척하면서 성추행하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요?”젊은 경찰은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출동하면서 막무가내로 체포에 불응하는 사람을 많이 보기도 했고 경찰이 서비스 업종도 아니었기에 범죄자의 체면을 봐주거나 범죄자가 하자는 대로 해줄 리가 없었다.젊은 경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저기요, 아줌마, 자중하세요. 이 장면은 보디캠으로 전부 기록하고 있어요. 게다가 전 여자고요. 제 옷을 잡고 놓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방민아 씨입니다. 전 그저 제 옷을 잡은 손을 떼어내려 했을 뿐이고요.”아줌마라는 호칭에 방민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서울에서 내놓으라 하는 가문의 여식으로 살아온 방민아를 보는 사람마다 아가씨로 존칭했는데 이 경찰은 난동 좀 부린 거 가지고 바로 아줌마라고 불렀다. 아줌마는 방민아 같은 나이에 쓰일만한 호칭이 아니라 40에서 50대는 되는 여자들을 부르는 말인데 말이다.“아줌마라니. 예의라는 게 없어요? 죽고 싶어요?”방민아가 발악하자 젊은 경찰은 구겨진 제복을 툭툭 털며 말했다.“내 말 틀렸나요? 방민아 씨 말대로라며 나도 아줌마한테 성추행당했다고 할 수 있잖아요.”약이 잔뜩 올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방민아를 보며 소원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방민아 씨, 경찰이 무슨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방씨 가문 도우미인 줄 알아요?”방민아는 이런 상황을 만든 소원을 보며 걷잡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