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그녀를 불쌍히 여긴 것인지 어느 날 윤아름의 ‘눈’이 갑자기 회복되었다.그러나 그녀는 원진우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고 계속해서 ‘눈먼 사람’인척 연기했다.그렇게 해야 원진우가 지나치게 경계를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어느 날 집에 돌아온 원진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윤아름은 그 틈을 타 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몰래 도망쳐 나왔다.그렇게 곽진명을 찾아갔고 그 뒤 윤아름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원진우의 아이였다.윤아름은 극심한 고통에 빠졌다.이 아이를 낳을지 아니면 지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꿈에 나타나 ‘아이는 우리 대신 너와 함께 있어 줄 존재다’라고 말하는 꿈을 꾸었다.그 순간 아이는 죄가 없다는 것을 윤아름은 깨달았다.하여 그녀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곽진명은 윤아름에게 결혼을 제안했고 곽경천은 곽진명이 입양한 아이로, 세상에는 윤아름의 친아들로 알려졌다.그 사이 윤아름과 곽진명은 원진우가 윤아름의 부모님을 죽인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원진우는 너무나 치밀하고 잔인하게 일을 처리했기에 그를 조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윤아름이 자신이 곽진명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일부러 알린 이유는 자신이 계속 숨어만 있으면 언젠가는 원진우에게 다시 붙잡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차라리 공개적으로 신분을 드러내는 것이 원진우가 그녀를 납치하는 데 더 큰 제약이 생길 것이었다.그리고 실제로 원진우는 몇 년 동안 잠잠해졌다. 그것은 윤아름이 가장 행복했던 몇 년이었다.아이들과 함께였고 곽진명 역시 훌륭한 아버지였으니 말이다.그러나 원진우가 단지 잠잠한 척만 했을 뿐이라는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그는 그동안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결국 다시 윤아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악몽은 다시 반복되었다.하지만 이제 그 길고 긴 악몽을 끝낼 시간이 되었다.원진우는 윤아름의 말
“푹!”손등에서 순식간에 피가 솟구쳤다.예상치 못한 상황에 원진우는 본능적으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윤아름은 그 포크를 차 좌석에 꽂아 원진우의 손을 단단히 고정시켰다.이 포크는 그녀가 오랫동안 갈고 닦은 것으로 원진우의 손을 완전히 꿰뚫어 버렸고 쉽게 빠지지 않게 만들어졌다.만약 억지로 빼내려 한다면 엄청난 고통이 뒤따를 것이었다.다음 순간 윤아름은 팔꿈치를 들어 올려 그의 후두부를 강하게 가격했고 원진우는 결국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운전기사는 깜짝 놀라 외쳤다.“가주님!”하지만 원진우가 여전히 윤아름의 손에 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윤아름은 그동안 품어왔던 깊은 증오를 담아 모든 행동을 신중하게, 그러나 강하게 취했다.비록 직접 이 악마를 죽여 부모님의 복수를 하지 못할지라도 윤아름은 원진우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운전기사를 향해 말했다.“포크에는 독이 묻어 있어.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해.”사실 포크에는 독이 묻어 있지 않았고 그녀의 상황에서는 독을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을 벌기 위해 윤아름은 운전기사를 속였다.말을 끝내자마자 윤아름은 차에서 뛰쳐나와 사람이 많은 식당으로 달려갔다. 운전기사는 핏기없는 원진우를 보며 윤아름이 너무도 잔인하다고 생각했다.‘남자는 사랑에 휘말리면 이렇게 멍청해지는 걸까? 심지어 평소에 그렇게 똑똑한 가주님마저 애인에게 속아 넘어가다니...’하지만 운전기사는 안심했다.원진우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윤아름이 오늘 무슨 일을 벌일지 이미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기사는 원진우가 왜 이런 고통을 굳이 감수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다 예측하고 있었다면 왜 사건을 미리 막지 않고 일부러 이런 일을 당하게 놔둔 것일까?부유한 사람들의 생각은 정말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곧 운전기사는 미리 준비한 강력한 주사제를 꺼내 원진우의 팔에 주입했다.
운전기사는 아직 많이 놀란 상태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원진우가 손가락으로 좌석을 톡톡 쳐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가주님.”운전기사가 얼른 약상자를 꺼내 안에서 찾은 붕대로 원진우의 손을 섬세하게 감싸줬다.원진우는 운전기사가 너무 늘청거리자 아예 붕대를 앗아가더니 아무렇게나 손을 둘둘 말고 붕대를 북 찢더니 다시 일정한 길이를 잘라내 목에 감았다.원진우에게 이렇게 작은 상처는 상처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윤아름이 찌른 상처였기에 그래도 조금은 아팠다.실망에서 온 아픔이었다. 원진우는 정말 윤아름에게 너무 실망이었다....도망 나온 윤아름은 바로 사람이 많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온몸에 피가 묻은 채 초라한 모습으로 말이다.“살려주세요. 신고 좀 해주세요.”점주는 중년 여성이었는데 윤아름이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걸 보고 얼른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점주는 현지인이었기에 표준어를 사용하지 못했지만 간단한 외국어는 할 수 있어 윤아름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윤아름은 나쁜 사람이 자기를 납치하려 하니 얼른 신고 좀 해달라고 했다.점주는 일단 윤아름을 다독여주더니 얼른 핸드폰을 가져와 건네줬다.윤아름은 현지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서에서 주소를 요구하자 점주는 친절하게 여기가 어딘지 알려주기까지 했다.윤아름이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점주가 입을 열려는 데 갑자기 가게 안이 소란스러워졌다.큰 체구를 가진 남자가 문 앞을 가리자 가게 안으로 들어오던 빛을 전부 막아버렸다.하지만 더 큰 소란을 일으킨 건 남자의 행색이었다. 몸은 피를 뒤집어쓴 것처럼 피투성이였고 반반한 곳이라고는 얼굴밖에 없었다.윤아름은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원진우가 이렇게 빨리 깨어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쇠갈고리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남자는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손바닥에 뚫린 구멍이 너무 컸고 제때 처리하지 않아 붕대를 감아도 전혀 지혈할 수가 없었다.“아름아, 이제 집에 가야지.”원진우가 안
게다가 원진우가 타고 온 차의 번호판도 오만하게 올블랙이었다. 올블랙 번호판은 군부대에서만 쓸 수 있었다.누가 뭐래도 천민들이 북안도에서 세력이 제일 센 사람의 일에 관여할 수는 없었다.윤아름은 절망했다.식당에 30명이 넘는 사람이 있었지만 다들 차갑게 이 ‘사냥’을 지켜보기만 했다.윤아름에게 믿을 구석이라고는 이제 그녀 자신밖에 없었다. 하여 옆에 놓인 의자를 들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원진우에게 던졌다. 원진우가 의자를 피하는 틈을 타 옆으로 도망가려 했다.그렇게 원진우를 지나치려는데 원진우는 이미 민첩하게 의자를 피하고 윤아름의 머리채를 꽉 움켜잡더니 힘껏 당겼다.“아악.”원진우의 손에 머리를 잡힌 윤아름은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피가 철철 흘렀다.원진우가 반쯤 몸을 숙이더니 기다란 손가락으로 윤아름의 이마에 묻은 피를 닦아내더니 변태처럼 피가 묻은 손을 입에 넣고 천천히 빨아먹기 시작했다.“아름아, 왜 자꾸 실망하게 만들어.”원진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윤아름은 남자의 행동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는 토하기 시작했다.“웩. 웩. 웩.”하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은 터라 위액만 뱉어냈다. 위가 마치 불로 지지는 것처럼 아팠다. 앞에 앉아 있는 악마도, 그리고 이런 상황을 차갑게 외면하는 사람도 너무 역겨웠다.원진우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아리를 잡듯 윤아름의 뒷덜미를 잡은 채 손쉽게 밖으로 걸어갔다.윤아름은 얼굴에 피범벅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테이블 다리를 부둥켜안은 채 남자를 따라가지 않겠다고 버텼다.원진우는 인내심이 크지 않았기에 윤아름의 다리를 잡아 바깥쪽으로 당겼다.윤아름의 두 손이 바닥에 쓸려 끌려간 자리에 핏자국이 그대로 남았다.윤아름은 다시 잡혀가기 싫었다. 만약 이번에 다시 잡혀간다면 영영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못할 것이다. 하여 온 힘을 다해 바닥을 짚고 버텼고 그러면서 손톱이 다 뜯어져 너덜너덜한 게 너무 불쌍했다.윤아름이 갈라진 목소리로 구조 요
눈을 떠봐도 앞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어둠이었다. 이에 윤아름은 부모님이 차 사고가 났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갑자기 닥친 슬픔에 스트레스성 실명에 걸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나날은 윤아름에게 잊을 수 없는 악몽이 되었다.“... 아악.”잠깐 침묵하던 윤아름이 겁에 질린 듯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는 갈라질 대로 갈라져 있었고 성대가 불에 그을린 것처럼 너무 아팠다. 게다가 아까 억지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더 화끈거렸다.아까 식당에서 목이 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성대를 상한 건지 소리를 낼 때마다 너무 아팠다.하지만 윤아름은 지금 너무 무서웠다. 눈이 멀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악몽의 심연으로 빠지는 게 두려웠다.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윤아름은 의자에 묶인 채 바닥으로 넘어졌다.팔이 딱딱한 바닥에 부딪혀 부러질 듯 아팠고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반신불수가 딱 이런 상태일 것 같았다.이때 누군가가 큰 손으로 그녀를 일으켰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눈을 가렸던 띠를 풀었다. 윤아름은 그제야 다시 빛을 볼 수 있었다.눈앞에 보이는 남자는 샹들리에의 빛을 받아 온몸이 반짝반짝 빛나는 게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해 보였지만 윤아름은 그런 남자의 모습이 우스울 뿐이었다.가면, 다 가면이었다.“느낌은 어때?”원진우는 뻔히 알면서 일부러 이렇게 물었다. 윤아름에게 그 기억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면서 마치 자선가처럼 웃으며 느낌이 어떠냐고 묻고 있으니 말이다.윤아름은 빠득빠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꽉 악물었다. 원진우의 살을 가르고 뼈를 발라내고 싶은 기분이었다.“그건 내가 해야 하는 질문 아니야?”윤아름이 이를 갈더니 말했다.“내 부모님을 죽인 사실을 영원히 잊지 말라고 이러는 거야?”윤아름이 비아냥댔다.“이러지 않아도 기억해. 부모님을 죽인 사람인데 평생 못 잊지.”윤아름은 오랫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하느라 참아왔던 울분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이제는 눈치
윤아름은 색이 바랜 보고서를 읽어봤다. 의사 사인란에는 기성주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기성주는 윤씨 가문에서 쓰던 가정 주치의는 맞았지만 이 보고서의 진위는 확인하기 어려웠다.원진우는 색이 바랜 편지지를 내밀며 말했다.“너희 아버님이 남긴 유언이야.”“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너에게 줄 편지를 쓰기 시작하셨어. 일이 터지기 전에 18통의 편지를 남겼더라.”윤아름이 떨리는 손으로 편지지를 열었다. 필적을 보아하니 아버지가 남긴 편지가 맞았다.한마디 한마디에 윤아름에 대한 미련과 걱정이 담겨 있었다. 건강에 대한 걱정보다는 그들이 떠난 후 아끼는 딸이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혹시나 딸이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닌지를 더 걱정했다.모든 편지를 다 읽은 윤아름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슬픔에 사로잡혀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원진우는 윤아름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아냥거렸다.“사실 부모님이 죽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해. 적어도 너희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암에 걸렸다는 거 몰랐으니까.”윤아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앞에 앉은 남자를 바라봤다.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같았다.“부모님을 죽인 게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라고?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해?”원진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아니면? 생사가 이미 결정된 사람들인데 생이별을 겪으면서 영원히 고통스러워할 바에는 차라리 그렇게 떠나는 게 낫지 않아? 내가 너 도와준 거라니까.”“아악...”윤아름은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 부모님을 해친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였다.애초에 이 남자와 거리를 두었다면 이 남자가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부모님을 죽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부모님이 정말 암에 걸렸다 해도 이 남자만 아니었다면 작별할 시간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시간에 함께 하고 싶었던 걸 할 수 있었을 테고 갑작스럽게 생이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아무 말도 남기지 못했는데 아쉬움만 남았으니 평생 너무 안타까웠다.“아름아, 넌 너무 나약해.”
원진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더니 조용히 윤아름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만끽했다. 윤아름이 단단히 겁을 먹어야만 다시 도망갈 엄두를 못 낼거라고 생각했다.윤아름은 원진우가 꺼낸 블루 하트 얘기와 진우희의 찢어진 입을 보며 뭔가 알아챘다.순간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윤아름은 더는 참지 못하고 위액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심지어 피도 섞여 있었다.하지만 원진우의 징벌은 끝나지 않았다. 원진우는 육체적인 벌보다 마음의 벌이 더 잊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다.원진우가 원하는 것도 윤아름이 오늘을 영원히 기억하고 다시는 배신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원진우는 다소 차가워 보이는 얇은 입술로 차갑게 말했다.“곽경천? 아들이지? 아껴준 보람이 있더라? 진우희를 찾아내면 뭐 해. 그때는 진우희가 이미 죽고 없는데.”“건드리지 마.”윤아름이 미친 것처럼 원진우에게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고 큰 소리로 말했다.“건드리면 내가 당신 죽일 거야.”하지만 윤아름은 이내 원진우에 의해 바닥에 제압당하고 말았다.원진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잔인한 말을 이어갔다.“진우희를 찾느라 총알을 맞았나?”“...”윤아름은 소리를 지르려 해도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믿어왔던 신념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암에 걸린 부모님도 원진우 손에 죽었고 그녀를 위해 정보를 전달하려던 진우희도 죽었고 그녀를 찾으러 다니던 곽경천도 총알을 맞고 생사를 알 수 없었다.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그녀를 도우려고 했던 사람들이 당하지 않아도 될 불행을 당한 것이다.구슬을 품은 것이 그 죄라는 말을 알 것 같았다.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한 건 다 윤아름 때문이었다.윤아름은 몸을 천천히 웅크리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찢어질 듯한 마음의 고통이 살짝 줄어들 것 같았다. 하지만 고통은 전혀 달래지지 않았다. 그 고통은 다름 아닌 자신을 향한 원망에서 온 것이었다.윤아름은 다른 사람에게 불행만 가져다주는 자신이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배남준이 예상했던 것처럼 곽경천에게 총을 쏜 사람은 곽경천에게 겁을 주려는 것이지 정말 목숨을 앗아가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저 더는 조사하지 말라고, 아니면 피를 볼 것이라고 에둘러서 경고하고 있었다.하지만 곽경천은 마음속으로 너무 기뻤다. 이런 행보를 보인다는 건 진실과 더 가까워졌다는 의미였다. 그러면 윤아름을 찾을 희망이 점점 더 커지게 된다.윤혜인은 시간만 나면 진우희의 인간관계를 연구하는 곽경천을 보며 휴식을 더 취하라고 타일렀다. 일어난 지 고작 며칠이었다. 총상을 입었으니 두세 달은 족히 몸조리해야 할 것 같았다.곽경천은 겉으로는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돌아서면 몰래 배남준과 어떻게 해야 할지를 토론했다.그들은 눈길을 진우희가 돌보던 몇몇 가문으로 돌렸다. 그러다 두 사람의 눈빛이 일제히 원진우에게로 향했다.하지만 그들은 원진우와 윤아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다.곽경천은 곽진명에게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곽진명은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이야기를 들은 윤혜인과 곽경천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원지민의 셋째 삼촌과 어머니 윤아름이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정말 그런 거라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윤아름의 실종이 원진우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윤아름이 지금 원진우에 의해 북안도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 생각에 곽경천과 윤혜인은 너무 기뻤다.드디어 엄마 윤아름을 만날 날이 다가온 것이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마주한 사실은 잔인했다. 어떻게 원진우의 별장을 수색할지가 문제였다.북안도는 서울과는 달랐다. 아무리 서울이라고 해도 확실한 증거와 검찰에서 발부한 수색영장이 없으면 용의자의 집을 수색할 수 없었다. 북안도는 무법천지였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북안도는 귀족에게만 해당하는 법률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택에 침입한 자들을 그대로 사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만약 억지로 진입한다면 무력 충돌이 있을 수밖
주석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지금은 미열이 나는 것뿐이에요.”소원은 그나마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었다.일단 미열이 있다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주석훈은 소원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말했잖아요. 생사는 운명에 달려 있다고.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거예요. 소원 씨와는 상관이 없어요. 다 내 운명이니까 자책하지 마세요.”주석훈이 이렇게 말할수록 소원은 더욱 미안해져 조용히 한마디 했다.“주 변호사님, 그렇게 위로하지 않아도 돼요. 저도 제 책임이 크다는 거 알아요. 내가 갑자기 아프지만 않았어도 주 변호사님이 저를 병원에 데려가는 일은 없었겠죠. 그러면 그 취객에게 물리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이미 일어난 일, 우리 같이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도해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 주 변호사님에게 큰 빚을 졌으니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반드시 도울게요.”주석훈이 말했다.“내가 어떻게 말해도 소원 씨는 본인 책임이라고 생각하겠군요. 하하, 그럼 진짜로 문제가 생기면 소원 씨에게 부탁할게요.”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마디 한 주석훈에 그나마 마음이 놓인 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꼭이요!”이때 소원의 전화에 낯선 번호가 걸려왔다.문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지만 전화기 너머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소원이 물었다.“여보세요, 누구세요?”“...”“계속 말하지 않으면 끊을게요.”소원이 장난 전화인 줄 알고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상대방이 말했다.“소원 언니...”소원은 깜짝 놀랐다.목소리만으로도 안지영임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지난 며칠 동안 안지영의 집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 강민혜가 말했다. 가족들이 집에만 틀어박힌 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그리고 안상철도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아무래도 그들이 경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안상철이 눈치를 챈 것이다.소원이 아무리 초조해해도 나타나지 않으면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육경한은 감정을 억누르며 이 신비한 인물의 다음 액션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황진수가 계속 말했다.“하지만 최근에 그때 당시 한 청소부가 바닥에서 펜을 주웠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청소부는 그 펜이 예뻐서 손자에게 주기 위해 가져갔대요. 청소부를 찾아가 무슨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은 없는지 물었더니 그제야 말하더라고요.”황진수는 청소부에게서 가져온 펜을 꺼내며 말했다.“바로 이겁니다.”육경한이 사인펜을 손에 들고 살펴봤다. 무게도 어느 정도 무거운 것이 가치가 상당할 것 같았다.평소 육경한이 사용하는 사인펜과 비슷했다.평소 글을 잘 쓰지 않는 소종은 뭔가 쓸 일이 생기면 손에 잡히는 펜을 아무것이나 집어서 글을 썼다. 이런 고급스러운 사인펜을 소지할 리가 없었다.이 펜은 소종의 거친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황진수도 같은 생각이었다.“소종 비서는 이런 펜을 사용한 적이 없어요. 조사해 봤는데 이건 이탈리아 왕실 귀족들이 사용하는 사인펜이에요. 한 자루에 수천 달러가 넘죠. 일반 사람들은 펜의 브랜드를 신경 쓰지 않아요. 이 펜의 주인은 아마도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이 펜을 자주 사용하는 것 같아요. 사람 자체가 우아하고 점잖을 거예요. 물론 내면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런 척하겠죠.”황진수의 분석은 아주 일리가 있었다. 배후 인물이 누구인지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귀족용 펜이라 서울에서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야. 이탈리아 쪽 주문 리스트를 받아서 서울에 있는 사람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 없는지 확인해 봐.”육경한이 말했다.이 사람은 배후에 계속 숨어 있었기에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라고는 이 펜뿐이었다.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적이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어 밝은 곳에 있는 그들은 매우 수동적인 상황이 되었다.육경한은 속으로 반드시 이 사람을 빨리 잡아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떻게든 소원이 출산하기 전에 배후에 있는 조종자를 제거해야 했다.“그리고 진아연
오랫동안 약을 먹은 소원이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는 것은 약이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말해줬다.게다가 무녀의 장수 효과도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평생 늙지 않는 그런 신비로움은 없었다.육경한이 말했다.“난 서현재를 믿지 않아. 내가 사람을 시켜 확인해 볼게. 그다음에 결정하자.”서현재를 믿지 않는다는 육경한의 말에 소원도 더 이상 그와 논쟁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아이를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다. 서현재를 믿지 않으니 본인이 믿는 사람을 찾겠다는 것은 이 일을 매우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줬기에 굳이 논쟁할 필요도 없었다.“알았어. 하지만 시간을 너무 오래 끌지는 마.”소원이 한마디 했을 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발신자를 보니 주석훈이었다.오기 전에 주석훈에게 병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던 그녀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자 주석훈이 걱정되어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통화버튼을 눌러 주석훈에게 곧 갈 것이라고 말한 소원이 전화를 끊었을 때 육경한이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소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이만 가 봐야겠어.”육경한이 말했다.“주석훈, 너무 가까이하지 마. 그다지 믿을 만한 사람 같지 않아.”육경한이 직감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사실 사람을 시켜 조사도 해봤지만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다. 이력이 훌륭했고 신상 정보도 매우 완벽했다.하지만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느꼈다.소원에게 접근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주석훈이 예전에 이선 그룹에서 일한 것도 확인해 봤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소원이 물었다.“왜 그러는데?”소원은 육경한이 무슨 증거를 찾았거나 의심스러울 만 한 단서라도 있는 줄 알았지만 육경한은 단답형으로 한마디 내뱉었다.“직감이 그래.”소원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육경한 씨, 모든 사람을 본인 생각으로만 판단하지 마. 세상에 그렇게 많은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 어디 있어.”소원의 말에 육경한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에 믿을
말투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어젯밤부터 오늘까지 그 일로 육경한은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오직 다른 남자에게 사줬던 이 죽을 맛보고 싶었다.육경한이 소심한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혹시라도 주석훈에게 태클을 걸까 봐 일부러 설명을 덧붙였다.“주석훈의 병문안을 간 것은 주석훈이 나를 돕다가 다쳤기 때문이야. 게다가 꽤 심각해. 나 때문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이 고통을 받는데 어떻게 가보지 않을 수 있어?”“참 착하기도 하지.”육경한의 약간 비꼬는 듯한 말에 소원이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이 남자, 과연 그녀가 알고 있던 그 육경한이 맞나?너무 이상하게 변한 것이 아닌가?도도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나니 말이다.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하지만 소원은 육경한의 감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착한데. 하지만 누구에게나 다 착한 것은 아니야. 사람을 가리거든.”너무나 명확한 말에 육경한이 침묵하다가 말했다.“저기 있는 생선 먹고 싶어.”소원은 순간 멈칫했지만 육경한이 환자인 것을 감안해 생선 배 부분의 가시 없는 살을 떼어 죽과 함께 먹여 주었다.생선 배 부분의 살을 소원에게 먼저 먹여 주는 것은 육경한의 옛날 습관이었다.육경한은 생선을 다 먹은 뒤 말했다.“배불러.”소원이 말했다.“좀 더 먹어. 그래야 빨리 회복하지. 그러면 황진수 씨도 배 아픈 척 안 해도 되고.”소원은 황진수가 배 아프다고 했던 것이 연기인 것을 알아차렸다.육경한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는 빈 생선 뼈를 보며 한마디 했다.“소원아, 나 후회해. 전에 너에게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하지 말걸... 많이 후회하고 있어.”소원은 순간 손이 멈칫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육경한은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이가 또 생겨서인지 몰라도 왠지 그녀에게 남다른 감정이 생긴 것 같았다.두 사람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이준혁은 육경한의 행동과 일 처리 방식이 너무 극단
컵을 받아 물을 마신 육경한은 이내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컵을 내려놓자 소원이 말했다.“그럼 밥 먹어. 난 갈게.”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소원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가려 했다.문 앞까지 왔을 때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육경한이 침대에서 떨어졌다.키가 188cm인 남자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바닥에 넘어져 있으니 매우 허약해 보였다.소원은 급히 가서 육경한을 부축했다.“일어날 수 있겠어?”소원은 갑자기 허약해진 육경한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침대에 있던 사람이 왜 갑자기 바닥에 떨어지냐 말이다.이내 육경한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아파.”이 말을 들은 소원은 순간 육경한이 꾀병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색을 보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관자놀이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상처 난 등이 촉촉한 것을 보니 아마도 상처가 다시 터진 것 같았다.황산에 의한 상처는 피가 아니라 고름이 나오기에 소원은 상처가 터졌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날 육경한이 망설임 없이 뛰어든 것을 생각하니 차마 모른 척할 수는 없었기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힘주지 마. 날 잡아. 조심하고.”소원의 팔에 기댄 육경한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오랜만에 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에 육경한은 심장이 졸깃했다. 소원의 몸에서는 여전히 은은한 향기가 났다. 그 냄새는 마치 약처럼 아픔을 잊게 했다.육경한을 다시 침대에 눕힌 소원은 침대 높이를 조절해 그가 더 편안하게 앉을 수 있게 했다.모든 것을 마친 후 소원이 돌아서자 육경한은 그녀가 또 떠날까 봐 급히 말했다.“소원아, 나 배고파.”순간 소원은 조금 전 넘어진 것이 진짜로 고의는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조금 전 넘어지면서 손을 다쳐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간병인은 어디 갔어?”“간병인 없어. 평소에 황진수가 도와줘.”육경한의 말에 소원이 짜증 내며 한마디 했다.“왜 간병인을 안
연기가 제법인 황진수는 진짜로 배가 아픈 척했고 심지어 자신의 혀를 깨물어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며 이마에 땀까지 흘렸다.순간 멍해진 소원이 한마디 물었다.“왜 그래요? 의사를 부를까요?”황진수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아니요. 화장실 갔다 오면 될 것 같아요. 이것 좀...”그는 손에 들고 있던 죽을 높이 들었다. 혹시라도 소원이 받지 않을까 봐 일부러 그녀의 손에 쥐여 주기까지 했다.“소원 씨, 이것 좀 부탁드릴게요. 육 대표님에게 전해주세요. 의사가 염증이 생길 수 있으니 지금 차가운 걸 먹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황진수는 말을 마친 뒤 재빨리 사라졌다.죽을 들고 좌우를 둘러보던 소원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육경한이 있는 VIP층으로 향했다.문 앞에 도착한 소원은 죽을 경호원에게 넘겨주려고 했지만 육경한 병실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사실 조금 전 황진수는 그녀와 육 대표를 만나게 하기 위해 경호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바로 철수하라고 했다.소원이 문을 두드리자 방안에서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와.”소원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보고서를 보고 있는 육경한은 소원이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는 황진수인 줄 알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그냥 거기에 둬.”테이블 위에 놓여진 손도 대지 않은 음식과 손에 든 죽을 번갈아 본 소원은 육경한이 갑자기 죽을 먹고 싶어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다만 이 죽 가게가...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어제 샀던 죽 가게와 이름이 비슷한 것 같았다.하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손에 든 죽을 놓은 소원은 육경한이 여전히 그녀를 알아채지 못하자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그런데 이때 육경한이 고개를 들더니 의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소원?”소원이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황 비서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나더러 대신 갖다 주라고 했어.”육경한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나를 보러 온 줄 알았네.”약간 서운함이 담긴 말투에 소원은 이왕 온 김에 몇 마디 안부는 주고받아야
사생아가 많은 방현수는 여자아이인 방민아 하나쯤은 포기할 수 있었다.그리고 방민기는 이미 판결이 났고 방씨 가문이 아무리 인맥이 넓다고 해도 여론이 너무 떠들썩했기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그 일 이후, 방현수의 정신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가장 기대하던 두 아이가 동시에 문제를 일으켰으니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방민아는 아마도 방현수의 비밀을 쥐고 있기 때문에 방현수가 돈과 힘을 들여 그녀를 빼내려고 하는 것이다.자신의 추측을 말한 황진수가 한마디 보탰다.“방민아 씨가 역시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방현수의 마음도 바꾸고요.”육경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방민아가 나오면 소원은 그녀의 첫 번째 타겟이 될 것이다. 여자들 사이의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 욱경한은 잘 알고 있었다.육경한이 황진수에게 말했다.“방씨 가문의 움직임을 주시해 봐. 그리고 방민아가 나오면 반드시 24시간 내내 감시하여 소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황진수가 말했다.“알겠습니다.”육경한이 또 물었다.“진아연 쪽은 어때, 소식이 있어?”진아연이 또 도망쳤다. 지난번 병원에서 목숨을 건진 후 몸이 나아지자 간호사가 한눈을 판 사이 몰래 빠져나갔다.아마도 육경한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그래서 육경한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까 걱정되어 기회를 잡아 도망친 것이다.하지만 소원의 아버지 일도 그녀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육경한은 그녀에게 확실히 물어봐야 했다.이때 황진수가 말했다.“아직 조사 중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서울을 벗어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각 출입국 사무소에 다 물어봤지만 아직 다른 데로 갔다는 소식은 없습니다.”육경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긴장을 놓치면 안 돼. 진아연이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을 거야.”황진수가 알겠다고 하자 육경한도 조금 지쳤는지 한마디 했다.“이만 나가 봐.”황진수는 집사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요리를 육경한이 한 입도 먹지 않은 것을 보고 한마디 말했다.“육 대표님, 입에 맞지 않아서 안
병실 밖에 있던 황진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들었다.감정적 가치라니? 대체 무슨 말인가! 이지애는 가스라이팅에 정말 능숙했다.육경한에게서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그녀가 과연 육경한을 걱정하는 척하며 그런 감정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었을까?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탐욕스러워지다니...솔직히 말해서 먼 친척이 가까운 이웃만 못 한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황진수가 소리 지르는 이지애를 끌어내어 경호원들에게 넘기자 이지애가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감히 나를 이렇게 대하다니! 내가 육경한의 누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오늘 나를 무례하게 대한 일, 나중에 분명 후회할 때가 있을 거야.”황진수는 냉정하게 말했다.“여사님, 더 이상 자신을 육 대표의 누나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저 사촌 누나일 뿐인데 왜 항상 ‘사촌’이라는 말을 잊으시는 건가요? 밖에서 본인을 육 대표의 친누나라고 말하며 사기를 치다 보니 입에 붙어서 못 고치는 건가요?”황진수는 이지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육경한의 누나라는 명목으로 많은 회사 대표들에게서 이익을 취했다. 또 육경한과도 자주 만났기에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진짜로 육 대표의 누나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이지애는 결국 자업자득의 꼴이 되었다.이지애가 분노하며 말했다.“너 같은 놈은 평생 이 꼴로 살 거야. 개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해. 잘 들어, 경한이는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 나를 누나로 생각할 거야. 그때면 널 첫 번째로 해고할 테니 두고 봐!”“그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황진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 정말!”이제 육경한이 그녀의 뒤를 봐주지 않으니 황진수도 당당하게 억지를 부리는 이지애를 무시하며 바로 경호원들에게 말했다.“데려가세요. 앞으로 육 대표 주위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세요.”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지애는 욕을 하면서 문을 잡고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찾아와 이지애를 보더니 통
하지만 쉽게 인정할 이지애가 아니었다. 그녀는 도리어 육경한을 비난하며 말했다.“경한아, 우리 모녀를 돕지 않는 것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나를 모함하면 안 되지. 나는 너희 집에 빚진 게 없어. 네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 그래서 그 여자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여자를 위해 우리 연주를 희생시키면 안 돼. 너도 어릴 때부터 연주를 봐왔었잖니? 그런데 진짜로 감옥에 들어가 고통받는 것을 지켜볼 거야?”이지애는 말을 빙빙 돌리며 돈을 빌린 것을 일절 말하지 않았다. 다시 육경한의 탓을 하는 이지애는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육경한이 말했다.“누나, 사실 이 돈은 조사하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어요. 그때 개업한 미용원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우리 엄마 돈으로 한 거잖아요. 누나, 내가 정말로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육경한의 말에 이지애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어 일부러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경한아, 그때 미용원을 연 것은 네 엄마의 뜻이었어. 나는 단지 네 엄마를 도운 것뿐이야. 나중에 네 엄마가 돌아가시고 너도 큰 충격을 받았잖아. 그때 미용원도 파산 직전이었어. 그때는 네가 이 난장판을 처리할 겨를이 없어서 내가 대신 맡은 거야. 나는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인데 너는 어떻게 나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니?”이지애의 임기응변 능력은 진짜로 일반인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 같았다.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그녀의 이런 말에 속았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가지 일을 겪은 육경한은 이지애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사람은 역시 욕심에 눈이 먼 동물이었다.이지애의 현재 모습은 정말 탐욕스러웠다.하지만 이해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이지애는 육경한의 도움이 있어야만 육연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억울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경한아, 미용원을 돌려받고 싶으면 바로 줄게. 내가 여러 해 동안 운영해 왔지만 사실 다 네 엄마를 대신해서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