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남준은 윤혜인이 산 것이면 가지려고 했다.“아니야. 그렇게 까탈스럽지는 않아.”배남준이 웃으며 말했다.“집에 가자.”배남준이 차 문을 열며 윤혜인을 차에 태웠다.차는 이미 떠났지만 창문가를 꿋꿋이 지키는 그림자는 여전했다.이준혁은 화기애애한 두 사람을 보며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처럼 아팠다.그녀의 손을 잡고 안고 달래는 건 원래 그가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배남준이 그의 자리를 완전히 뺏어가 버렸다.이준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이준혁은 이튿날 비행기로 떠났다.지금 서울로 돌아가 수술한다면 윤혜인의 출산 예정일을 놓칠 게 뻔했다.이준혁은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윤혜인은 매정하게도 그 기회를 주지 않았다.윤혜인은 눈앞에 펼쳐진 현실로 다른 사람과 새로운 삶은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이준혁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친근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요동쳤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정말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더 미쳐가거나 아니면 더 비굴해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준혁의 교양과 자존심이 그가 더 비굴해지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그럴 바에는 차라리 서울로 돌아가 윤혜인이 원하는 조용한 삶을 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윤혜인은 이준혁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여전히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 구경도 하고 산책도 했다.그럴 때마다 옆에는 배남준이 함께했다.저녁이 되자 테이블에는 윤혜인의 입맛을 맞춰서 준비한 요리들이 올라왔지만 윤혜인은 젓가락만 헤집을 뿐 별로 먹지 않았다.배남준이 다가와 물었다.“저녁 먹어?”윤혜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배남준을 올려다봤다.“오빠, 어쩐 일로 왔어요?”도우미가 배남준의 손에서 외투를 받아 걸었다.배남준이 말했다.“같이 밥 먹으려고 왔지.”배남준은 요즘 호적을 따로 옮기느라 바빴다. 윤혜인과 아이를 데리고 다른 나라로 이민 하러 가겠다는 핑계로 말이다.배씨 가문은 이런 규정이 있었다.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면 호적
배남준은 차갑게 굳은 어머니의 시체를 지키고 있었지만 배영석은 걸음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배남준은 언젠가 배씨 가문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내리게 되었다.그렇게 조금 크고 나서도 배씨 가문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특출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교육자가 되는 걸 선택했기 때문이다사실 배남준은 학식이 높을 뿐만 아니라 머리도 총명했다. 국제 무역도 막힘없이 해냈고 다른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냈다.배영석은 평생을 용맹하게 산 자신과는 달리 유약한 서생으로 자란 배남준을 보며 후계자 교육을 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하여 배남준이 호적을 따로 파겠다고 해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배영석은 배남준이 북안도를 떠나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교육자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아이도 제대로 키우지 못할 텐데 고생 좀 하다 보면 다시 북안도로 돌아와 의지할 곳을 찾을 것이다.배영석은 배남준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지만 배남준의 와이프 윤혜인과 처남인 곽경천이 궁금했다.곽씨 가문은 L 국에서도 꽤 유명했다. 이번에 곽진명은 몸이 좋지 않아 오지 못했지만 곽진명과 어떻게 항운 사업을 확장할지를 관해 토론해 보고 싶었다.곽씨 가문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라도 배영석은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러주며 새며느리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그러면 북안도에서 며느리를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한편, 배남준이 손을 씻고는 식탁을 마주한 채 앉았다.도우미가 수저를 내다 주고는 천천히 물러가자 주방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배남준이 야채를 집어서 먹더니 말했다.“맛 괜찮네. 이거 먹어봐. 아이에게 좋대.”윤혜인이 한 젓가락 집어서 입에 넣었지만 나무껍질을 씹는 것처럼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그 뒤로도 배남준이 먼저 한입 먹고 괜찮다 싶으면 윤혜인에게 말해줬다. 윤혜인은 그런 배남준의 성화에 못 이겨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먹었다.웬만큼 먹자 배남준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이준혁 씨 수술 잘 받았고
윤혜인도 조금이라도 많이 먹고 싶어 억지로 먹지만 그러고 나면 다 토해내기 일쑤였기에 오히려 역효과였다.심지어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할 것 같았고 합격한 엄마도 될 수 없을 것 같았다.하지만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곽경천과 배남준은 다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윤혜인도 배가 점점 불러왔기에 아무것도 도울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란 최대한 번거로운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배남준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배남준이 뭔가 눈치챈 것 같았다.다 털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 참다간 정말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누군가를 잡고 얘기하는 게 제일 전형적인 자아 구제 수단이었다.윤혜인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병이 나기 전에 적극적으로 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오빠, 나 살짝 힘들어. 아무것도 못 하는데 짐만 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아이 셋을 잘 키워낼 수 있는지도 의문이야.”윤혜인은 마음속에 꾹꾹 눌러뒀던 말을 내뱉고 나서야 참아왔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원지민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짐이 된 것이다.배남준은 윤혜인의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발견했다. 배남준과 곽경천은 매일 자기가 할 일에 몰두하느라 여자가 임신하면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걸 놓치고 말았다.방에 앉아 소식만 기다리는 나날 속에 윤혜인은 자기가 점점 쓸모없는 사람으로 되어간다고 생각했다.“혜인아.”배남준이 윤혜인 맞은편에 앉더니 손을 꼭 잡으며 윤혜인을 바라봤다.“혜인아, 너 지금 엄청 잘하고 있어. 부담 갖지 마. 우리 기분 걱정하느라 무슨 생각이 들어도 꾹 참고 혼자 소화해 내면서 몸도 잘 챙기고 있잖아.”“모든 일을 질서정연하게 잘 해내고 있는데 아이들을 잘 키워내지 못할 리가 있겠어?”“아름이 봐봐 얼마나 건강하고 예뻐. 네가 좋은 엄마라는 제일 좋은 증거잖아.”배남준이 곽아름 얘기만 꺼내도 윤혜인은 잠시 기분 나쁜
곽경천이 윤혜인을 찾아 얘기를 나눴다. 별다른 진척은 없어도 배남준의 건의에 따라 윤혜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이를 들은 윤혜인이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오빠, 혹시 그 CCTV 영상 나 보여줄 수 있어?”얘기를 들어보니 CCTV 속에 찍힌 안경남이 유일한 단서 같았다.곽경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윤혜인이 임신 중에 걱정하는 게 싫었지만 이 일은 윤혜인에게 큰 고민거리가 된 것 같았다.곽경천은 CCTV 영상을 태블릿에 카피해 윤혜인에게 건네더니 자기도 옆에 앉아서 같이 봤다.이 영상을 500번도 넘게 본 곽경천이었다. 남자가 사라진 골목의 CCTV도 100번 넘게 봤지만 전혀 단서라고 할만한 게 없었다.멀쩡한 사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니 정말 난해했다.윤혜인이 다시 한번 쭉 보더니 순환 재생을 누르며 여러 번 돌려봤다.남자가 어딘가 이상했지만 도대체 어디가 이상한지는 콕 집어내긴 힘들었다.옷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 까만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어깨에 엄청 두꺼운 패드를 욱여넣은 것 같았다. 이렇게 두꺼운 패드를 넣었다는 건 체격을 불리기 위해서였다.남자는 점잖으면서 빈약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키도 작은 편이었다. 겨우 170이 되는 키에 어깨 패드를 잔뜩 욱여넣으니 꼴이 오히려 우스워 보였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곽경천의 말처럼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다.그래도 윤혜인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 번 더 돌려봤다. 곽경천이 나가서 30분 남짓하게 통화를 하고 왔지만 윤혜인은 아직도 소파에 앉아 쿠션을 앉고 영상을 보고 있었다.“됐어.”곽경천이 그쪽으로 다가가 말했다.“내일 마저 봐. 그러다 눈 나빠지겠다.”곽경천이 이렇게 말하며 태블릿을 끄려 했다. 하지만 태블릿을 아래로 누르는 순간 윤혜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잠깐만.”곽경천이 멈칫했다. 윤혜인이 정지 버튼을 누르자 화면은 안경남이 진열장 앞에 3초 정도 머물러 있는 게 보였다.하지만 진열장 안에는 눈길을 끌 만한 물건이 없었다. 그저 하얀 벽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여자라니.곽경천은 문득 그 사람이 사라진 골목에 까만 옷을 입은 행색이 수상한 여자를 봤던 게 떠올랐다. 백번도 넘게 본 영상이라 틀림없었다.곽경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혜인을 꼭 끌어안으며 칭찬했다.“혜인아, 정말 고마워. 정말 큰 도움이 됐어.”윤혜인은 너무 기뻤다. 윤아름을 찾을 단서가 다시 생겨난 것이다.곽경천은 골목 CCTV 영상을 핸드폰에서 카피해 윤혜인과 계속 돌려보기 시작했다.이번에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까만 옷을 입은 여자가 약재를 사 간 안경남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이에 그들은 이 여자가 윤아름과 관련되어 있음을 확신했다. 아니면 약재 하나를 사기 위해 남자로 위장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동시에 윤아름이 살아있다는 게 망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도 설명할 수 있었다.‘엄마가 아직 살아있다니.’곽경천은 이 영상을 컴퓨터 고수에게 보내 이 여자의 형상만 단독으로 따내 알아보기 쉽게 해상도를 높여달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정면 형상이 나왔다.곽경천은 그 사진을 배남준에게 보내 조사해달라고 했다. 배남준이 북안도에서의 세력이라면 여자를 빠른 시일 내에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아니나 다를까 해가 지기도 전에 소식이 왔다.여자는 강북구 진 의사님의 딸 진우희였고 마찬가지로 의대생이었다.곽경천은 여자를 찾는 일에는 윤혜인을 나서지 못하게 했다. 언제든 잠재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윤혜인도 배가 나날이 커져 불편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따라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그저 조심하라고 당부하며 절대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말라고 덧붙였다.곽경천이 가고 윤혜인은 마음을 졸이며 집에서 기다렸다.한편. 원씨 저택.오늘은 윤아름에게 주기적으로 침을 놓는 날이었기에 진우희는 문 앞에 서서 집사가 나오길 기다렸다.집사가 검사를 마치고 진우희에게 지하로 통하는 숨겨진 문을 열어줬다.안으로 들어가자 윤아름이 침대맡에 앉아 수놓기하고 있었다. 원진우에게 한참 빌어서야 특제된 바늘로 심심풀이할 수 있게 동의했다
작은 여자아이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엄마, 나는 잘 모르겠어요. 무슨 이야기에요?”“엄마가 들려줄 테니까 얌전하게 자야 해.”윤아름이 여자아이의 머리를 만지며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요. 엄마.”여자아이가 윤아름의 품에 기대 눈을 감고 윤아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엄마 제비와 작은 제비는 원래 수풀이 우거진 숲에 살고 있었는데 정말 풍요로운 숲이었어. 안에는 친절한 이웃들도 많고 먹을 것도 참 많았단다. 엄마 제비와 작은 제비는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엄마 제비는 작은 제비에게 많은 걸 가르쳐줬지. 그들이 둥지를 튼 작은 나무 아래는 식물이 하나 자라나고 있었는데 작은 제비는 여러 꽃과 식물을 알아가는 걸 좋아했단다. 새로운 식물을 볼 때마다 엄마에게 이건 무엇이냐고 물었지.”“그러면 엄마 제비는 그 식물이 아주 좋은 약재인 당귀라고 말해줬어. 병을 고쳐줄뿐더러 목숨까지 구해줄 수 있는 신선들이 먹는 약이라고.”“천진난만한 작은 제비는 이렇게 물었어. 엄마, 그러면 우리 둥지 아래 자라난 저 당귀 팅커벨이 변한 게 아닐까요? 우리 집 지켜주려고요.”“엄마 제비가 말했지. 맞아. 당귀가 자라난 옆이 바로 우리 집이야. 만약 어느 날 길을 잃으면 당귀를 찾아. 그러면 엄마가 꼭 거기에서 기다릴 거야.”“작은 제비는 잘 기억하겠다고 말했어.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제비가 작은 제비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러 갔다가 천재지변이 일어난 거야. 무시무시한 불이 숲을 삼켜버릴 기세로 활활 타올랐어. 숲에 있던 동물 친구들이 하나둘씩 죽어갔고 엄마 제비가 먹이를 물고 돌아왔을 때는 까맣게 타버린 나무 기둥만 발견했지. 숲은 까맣게 탄 재와 잔가지들만 남아 있었고 녹음은 찾아볼 수 없었어.”엄마 제비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애타게 작은 제비를 불렀지만 더는 작은 제비가 해맑은 목소리로 엄마라고 부르는 걸 들을 수가 없었어.”“산불이 지나갔지만 엄마 제비는 숲을 떠나지 않았어. 착한 인간들이 숲을 재건하는 걸 보며 엄마 제비는
“엄마 제비는 이제 며칠이나 더 살 수 있는지 몰라...”“그러던 중에 또 ‘짹짹’하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어. 엄마 제비는 또다시 환청이 들리는 줄 알고 눈조차 뜨지 않았지.”“짹짹. 짹짹. 짹짹...”“울음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너무 또렷하게 들리는 거야.”“엄마 제비가 눈을 떠보니 웬 털북숭이가 머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거야. 익숙한 목소리에 똑같은 냄새라니, 작은 제비가 돌아온 거였어.”“훗날 현지인들에게 이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면서 예쁜 시구까지 생겼지.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 제비가 둥지로 날아드네.”이야기가 거의 끝나갔지만 여자아이는 아직도 잠들지 않고 눈물이 살짝 고인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엄마, 엄마 제비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잖아요.”윤아름은 여자아이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더니 부드럽게 말했다.“엄마 제비는 굳게 믿고 있었거든. 단 하루도 작은 제비를 찾는 걸 포기한 적이 없었어. 작은 제비가 아직 살아있다고 믿었고 끝내는 작은 제비가 돌아오는 날까지 버텼던 거야.”“엄마, 만약에 내가 작은 제비처럼 길을 잃으면 어떡해요?”여자아이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는 물었다.“엄마도 엄마 제비처럼 나를 찾으면서 나를 기다릴 거예요?”“당연하지. 엄마는 내 새끼 포기하지 않아. 엄마는 꼭 네가 다시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여자아이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엄마, 나도 포기하지 않고 꼭 엄마를 찾아낼 거야.”“그래. 이제 자자.”“...”여자아이가 얌전하게 눈을 감았다. 윤아름은 여자아이의 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따듯해졌다.사실 이야기 자체는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엄마 제비는 죽을 때까지 작은 제비를 만나지 못했다. 마지막에 본 장면은 그저 죽기 전에 본 환각일 뿐이었다. 작은 제비는 어쩌면 진작 산불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람이 지구에서 고지능 생물로 남을 수 있었던 것도 낙천적인 태도를 가지고 약자를 보호하며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치장해 줬기
윤아름이 눈살을 찌푸렸다.‘배씨 가문과 원씨 가문이 서로 아는 사이인가? 그렇다면 원진우도 뭘 알아낸 건 아니겠지...’진우희는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아참, 저번에 그 답례품도 배씨 가문에서 선물했을 거예요. 아니면 어떤 가문이 답례품에 그렇게 사치를 부리겠어요?”윤아름이 캐물었다.“신부가 정말 예뻤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요?”“나와...”윤아름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또박또박 물었다.“나와 닮았던가요?”진우희가 그런 윤아름을 보며 송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사모님, 신부는 보지 못했습니다. 배씨 가문 잔치에 갈 자격이 아직 부족하거든요. 하지만 제가 아는 친구가 안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어서 신부가 예쁘다고 알려줬어요.”윤아름은 살짝 실망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무조건 윤혜인이라고 생각했다. 북안도에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더 있을 리가 없었다.게다가 이 이야기는 윤아름이 미화한 것이었다.윤아름이 진우희에게 당귀를 사라고 시키자마자 한국 국적을 가진 아가씨가 북안도로 시집왔고 제비가 둥지로 날아드는 그림을 수놓은 답례품을 선물로 집마다 보냈다.신부가 윤아름의 딸이 아닐지라도 무조건 딸과 관련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아니면 곽경천일 수도 있다. 아니, 곽경천이라고 생각했다. 곽경천이 실종된 동생을 찾았고 동생이 그 이야기를 곽경천에게 들려줬을지도 모른다.윤아름은 자기 추측이 맞다는 생각에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우희 선생님, 혹시 뭐 좀 부탁해도 될까요?”윤아름이 진우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진우희는 윤아름이 원하는 게 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한 번만 도와줘요.”윤아름이 약간은 조잡한 자수를 진우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이 자수를 그 신부에게 전해줘요.”진우희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단칼에 거절했다.“사모님, 죄송합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진우희가 자수를 다시 윤아름에게 돌려주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저는 그럴 용기가 없어요. 죄송해요. 사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