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천이 윤혜인을 찾아 얘기를 나눴다. 별다른 진척은 없어도 배남준의 건의에 따라 윤혜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이를 들은 윤혜인이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오빠, 혹시 그 CCTV 영상 나 보여줄 수 있어?”얘기를 들어보니 CCTV 속에 찍힌 안경남이 유일한 단서 같았다.곽경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윤혜인이 임신 중에 걱정하는 게 싫었지만 이 일은 윤혜인에게 큰 고민거리가 된 것 같았다.곽경천은 CCTV 영상을 태블릿에 카피해 윤혜인에게 건네더니 자기도 옆에 앉아서 같이 봤다.이 영상을 500번도 넘게 본 곽경천이었다. 남자가 사라진 골목의 CCTV도 100번 넘게 봤지만 전혀 단서라고 할만한 게 없었다.멀쩡한 사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니 정말 난해했다.윤혜인이 다시 한번 쭉 보더니 순환 재생을 누르며 여러 번 돌려봤다.남자가 어딘가 이상했지만 도대체 어디가 이상한지는 콕 집어내긴 힘들었다.옷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 까만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어깨에 엄청 두꺼운 패드를 욱여넣은 것 같았다. 이렇게 두꺼운 패드를 넣었다는 건 체격을 불리기 위해서였다.남자는 점잖으면서 빈약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키도 작은 편이었다. 겨우 170이 되는 키에 어깨 패드를 잔뜩 욱여넣으니 꼴이 오히려 우스워 보였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곽경천의 말처럼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다.그래도 윤혜인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 번 더 돌려봤다. 곽경천이 나가서 30분 남짓하게 통화를 하고 왔지만 윤혜인은 아직도 소파에 앉아 쿠션을 앉고 영상을 보고 있었다.“됐어.”곽경천이 그쪽으로 다가가 말했다.“내일 마저 봐. 그러다 눈 나빠지겠다.”곽경천이 이렇게 말하며 태블릿을 끄려 했다. 하지만 태블릿을 아래로 누르는 순간 윤혜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잠깐만.”곽경천이 멈칫했다. 윤혜인이 정지 버튼을 누르자 화면은 안경남이 진열장 앞에 3초 정도 머물러 있는 게 보였다.하지만 진열장 안에는 눈길을 끌 만한 물건이 없었다. 그저 하얀 벽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여자라니.곽경천은 문득 그 사람이 사라진 골목에 까만 옷을 입은 행색이 수상한 여자를 봤던 게 떠올랐다. 백번도 넘게 본 영상이라 틀림없었다.곽경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혜인을 꼭 끌어안으며 칭찬했다.“혜인아, 정말 고마워. 정말 큰 도움이 됐어.”윤혜인은 너무 기뻤다. 윤아름을 찾을 단서가 다시 생겨난 것이다.곽경천은 골목 CCTV 영상을 핸드폰에서 카피해 윤혜인과 계속 돌려보기 시작했다.이번에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까만 옷을 입은 여자가 약재를 사 간 안경남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이에 그들은 이 여자가 윤아름과 관련되어 있음을 확신했다. 아니면 약재 하나를 사기 위해 남자로 위장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동시에 윤아름이 살아있다는 게 망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도 설명할 수 있었다.‘엄마가 아직 살아있다니.’곽경천은 이 영상을 컴퓨터 고수에게 보내 이 여자의 형상만 단독으로 따내 알아보기 쉽게 해상도를 높여달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정면 형상이 나왔다.곽경천은 그 사진을 배남준에게 보내 조사해달라고 했다. 배남준이 북안도에서의 세력이라면 여자를 빠른 시일 내에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아니나 다를까 해가 지기도 전에 소식이 왔다.여자는 강북구 진 의사님의 딸 진우희였고 마찬가지로 의대생이었다.곽경천은 여자를 찾는 일에는 윤혜인을 나서지 못하게 했다. 언제든 잠재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윤혜인도 배가 나날이 커져 불편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따라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그저 조심하라고 당부하며 절대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말라고 덧붙였다.곽경천이 가고 윤혜인은 마음을 졸이며 집에서 기다렸다.한편. 원씨 저택.오늘은 윤아름에게 주기적으로 침을 놓는 날이었기에 진우희는 문 앞에 서서 집사가 나오길 기다렸다.집사가 검사를 마치고 진우희에게 지하로 통하는 숨겨진 문을 열어줬다.안으로 들어가자 윤아름이 침대맡에 앉아 수놓기하고 있었다. 원진우에게 한참 빌어서야 특제된 바늘로 심심풀이할 수 있게 동의했다
작은 여자아이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엄마, 나는 잘 모르겠어요. 무슨 이야기에요?”“엄마가 들려줄 테니까 얌전하게 자야 해.”윤아름이 여자아이의 머리를 만지며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요. 엄마.”여자아이가 윤아름의 품에 기대 눈을 감고 윤아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엄마 제비와 작은 제비는 원래 수풀이 우거진 숲에 살고 있었는데 정말 풍요로운 숲이었어. 안에는 친절한 이웃들도 많고 먹을 것도 참 많았단다. 엄마 제비와 작은 제비는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엄마 제비는 작은 제비에게 많은 걸 가르쳐줬지. 그들이 둥지를 튼 작은 나무 아래는 식물이 하나 자라나고 있었는데 작은 제비는 여러 꽃과 식물을 알아가는 걸 좋아했단다. 새로운 식물을 볼 때마다 엄마에게 이건 무엇이냐고 물었지.”“그러면 엄마 제비는 그 식물이 아주 좋은 약재인 당귀라고 말해줬어. 병을 고쳐줄뿐더러 목숨까지 구해줄 수 있는 신선들이 먹는 약이라고.”“천진난만한 작은 제비는 이렇게 물었어. 엄마, 그러면 우리 둥지 아래 자라난 저 당귀 팅커벨이 변한 게 아닐까요? 우리 집 지켜주려고요.”“엄마 제비가 말했지. 맞아. 당귀가 자라난 옆이 바로 우리 집이야. 만약 어느 날 길을 잃으면 당귀를 찾아. 그러면 엄마가 꼭 거기에서 기다릴 거야.”“작은 제비는 잘 기억하겠다고 말했어.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제비가 작은 제비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러 갔다가 천재지변이 일어난 거야. 무시무시한 불이 숲을 삼켜버릴 기세로 활활 타올랐어. 숲에 있던 동물 친구들이 하나둘씩 죽어갔고 엄마 제비가 먹이를 물고 돌아왔을 때는 까맣게 타버린 나무 기둥만 발견했지. 숲은 까맣게 탄 재와 잔가지들만 남아 있었고 녹음은 찾아볼 수 없었어.”엄마 제비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애타게 작은 제비를 불렀지만 더는 작은 제비가 해맑은 목소리로 엄마라고 부르는 걸 들을 수가 없었어.”“산불이 지나갔지만 엄마 제비는 숲을 떠나지 않았어. 착한 인간들이 숲을 재건하는 걸 보며 엄마 제비는
“엄마 제비는 이제 며칠이나 더 살 수 있는지 몰라...”“그러던 중에 또 ‘짹짹’하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어. 엄마 제비는 또다시 환청이 들리는 줄 알고 눈조차 뜨지 않았지.”“짹짹. 짹짹. 짹짹...”“울음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너무 또렷하게 들리는 거야.”“엄마 제비가 눈을 떠보니 웬 털북숭이가 머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거야. 익숙한 목소리에 똑같은 냄새라니, 작은 제비가 돌아온 거였어.”“훗날 현지인들에게 이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면서 예쁜 시구까지 생겼지.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 제비가 둥지로 날아드네.”이야기가 거의 끝나갔지만 여자아이는 아직도 잠들지 않고 눈물이 살짝 고인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엄마, 엄마 제비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잖아요.”윤아름은 여자아이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더니 부드럽게 말했다.“엄마 제비는 굳게 믿고 있었거든. 단 하루도 작은 제비를 찾는 걸 포기한 적이 없었어. 작은 제비가 아직 살아있다고 믿었고 끝내는 작은 제비가 돌아오는 날까지 버텼던 거야.”“엄마, 만약에 내가 작은 제비처럼 길을 잃으면 어떡해요?”여자아이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는 물었다.“엄마도 엄마 제비처럼 나를 찾으면서 나를 기다릴 거예요?”“당연하지. 엄마는 내 새끼 포기하지 않아. 엄마는 꼭 네가 다시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여자아이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엄마, 나도 포기하지 않고 꼭 엄마를 찾아낼 거야.”“그래. 이제 자자.”“...”여자아이가 얌전하게 눈을 감았다. 윤아름은 여자아이의 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따듯해졌다.사실 이야기 자체는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엄마 제비는 죽을 때까지 작은 제비를 만나지 못했다. 마지막에 본 장면은 그저 죽기 전에 본 환각일 뿐이었다. 작은 제비는 어쩌면 진작 산불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람이 지구에서 고지능 생물로 남을 수 있었던 것도 낙천적인 태도를 가지고 약자를 보호하며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치장해 줬기
윤아름이 눈살을 찌푸렸다.‘배씨 가문과 원씨 가문이 서로 아는 사이인가? 그렇다면 원진우도 뭘 알아낸 건 아니겠지...’진우희는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아참, 저번에 그 답례품도 배씨 가문에서 선물했을 거예요. 아니면 어떤 가문이 답례품에 그렇게 사치를 부리겠어요?”윤아름이 캐물었다.“신부가 정말 예뻤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요?”“나와...”윤아름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또박또박 물었다.“나와 닮았던가요?”진우희가 그런 윤아름을 보며 송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사모님, 신부는 보지 못했습니다. 배씨 가문 잔치에 갈 자격이 아직 부족하거든요. 하지만 제가 아는 친구가 안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어서 신부가 예쁘다고 알려줬어요.”윤아름은 살짝 실망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무조건 윤혜인이라고 생각했다. 북안도에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더 있을 리가 없었다.게다가 이 이야기는 윤아름이 미화한 것이었다.윤아름이 진우희에게 당귀를 사라고 시키자마자 한국 국적을 가진 아가씨가 북안도로 시집왔고 제비가 둥지로 날아드는 그림을 수놓은 답례품을 선물로 집마다 보냈다.신부가 윤아름의 딸이 아닐지라도 무조건 딸과 관련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아니면 곽경천일 수도 있다. 아니, 곽경천이라고 생각했다. 곽경천이 실종된 동생을 찾았고 동생이 그 이야기를 곽경천에게 들려줬을지도 모른다.윤아름은 자기 추측이 맞다는 생각에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우희 선생님, 혹시 뭐 좀 부탁해도 될까요?”윤아름이 진우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진우희는 윤아름이 원하는 게 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한 번만 도와줘요.”윤아름이 약간은 조잡한 자수를 진우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이 자수를 그 신부에게 전해줘요.”진우희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단칼에 거절했다.“사모님, 죄송합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진우희가 자수를 다시 윤아름에게 돌려주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저는 그럴 용기가 없어요. 죄송해요. 사모님.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천민으로 구분되지 않고 고개를 쳐들고 다녀도 되는 곳이었다.커다란 유혹 앞에 원씨 가문 가주의 위협은 보잘것없어 보였다. 게다가 최근 가주는 사람을 별로 죽이지 않았고 몸을 사리고 있었다. 그녀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말이다.아무튼 진우희는 그 제안에 마음이 흔들렸다. 진우희는 윤아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결심이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사모님. 도와드릴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 보장이라는 게 얼마 정도 되죠?”사람은 재산을 쫓다가 가랑이가 찢어지고 새는 음식을 쫓다가 죽는다는 말이 있다.진우희는 북안도에서 20년 넘게 하인으로 살아왔다.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존중은 눈곱만치도 없었다.그렇게 돈 많은 사람들 집을 드나들었지만 가는 곳마다 오만한 모습으로 그녀를 무시하기 일쑤였다.북안도에서 가정 의사는 중산계급이어도 가질 수 있었지만 진우희는 되고 싶지 않았다. 원씨 가문도 후보에 없었지만 핍박에 못 이겨 결국 오게 되었다.지금 평민의 신분을 벗어날 기회가 왔는데 누군들 설레지 않겠는가.윤아름은 진우희가 이걸 물은 줄은 몰랐다. 보장을 섭섭지 않게 할 생각이었지만 윤아름도 지금 시세가 얼마인지 몰랐다.나갈 수만 있다면 시세에 맞게 보장을 제공할 생각이었다.윤아름이 잠깐 고민하다가 20년 전만 해도 매우 높은 금액을 말했다.“10억 줄게요.”“10억이요?”진우희가 넋을 잃었다. 그러더니 하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사모님, 10억이면 저기 패물함에 있는 목걸이에 달린 펜던트 하나도 못 사요.”진우희는 윤아름의 패물함을 본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아무거나 골라도 20억 이상을 훌쩍 넘는 최고급 액세서리였다.윤아름은 이런 진우희를 본 적이 없었다. 감춰뒀던 탐욕이 지금 이 순간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윤아름이 말했다.“그러면 얼마를 원하는데요?”진우희는 현재 시세를 모르는 윤아름을 이해하기로 했다.“160억 주세요.”진우희가 말했다.200억을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너무 많
윤아름의 신임은 이미 진우희에게 많은 이점을 가져다줬다. 원진우도 진우희는 남다르게 보고 있었다.그것 외에 다른 내놓으라 하는 가문에서도 원씨 가문의 중시를 받는 진우희를 보고 사적으로 찾아와 고액의 보수를 주며 병을 봐달라고 했다.하지만 이 돈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신분 상승을 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다른 나라로 이민가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고 가끔 여행 가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이래저래 계산기를 뚜드리던 진우희는 결국 눈길을 윤아름에게 돌렸다.윤아름은 만나는 사람이 적어 매우 단순할뿐더러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사악한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게다가 진우희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편을 들어주려고 하니 제일 좋은 동아줄이긴 했다.“하지만...”윤아름은 이랬다가 나가지 못하면 진우희에게 줄 돈이 없을 것 같아 망설였다. 윤아름의 손에는 지금 돈이 없었고 무턱대고 원진우에게 달라고 했다가는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알아요.”진우희는 윤아름이 망설이는 원인을 알고 있었다. 나가지 않는다면 돈이 없으니 말이다.원진우의 재산이 나나를 뒤흔들 만큼 많다 해도 문도 나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돈을 줄 리는 없었다. 그리고 윤아름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원진우는 척척 알아서 사가지고 왔다.윤아름은 종일 이 호화로운 감옥에 갇혀 있으니 돈을 쓸데도 딱히 없었다.진우희가 뭘 갖고 싶어 하는지는 윤아름도 진작 알고 있었다.“그러면 블루 하트를 제게 주세요.”윤아름이 멈칫했다. 진우희가 말하는 블루 하트가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원진우가 액세서리를 수도 없이 선물했지만 윤아름은 원진우가 가면 바로 끼기 싫어서 벗어두곤 했다.여기 이렇게 갇혀 있는데 해도 보여줄 사람이 없었다.진우희가 말했다.“중간에 엄청 큰 블루 다이아몬드가 달린 목걸이요.”진우희의 묘사는 정확했다. 저번에 딱 한 번 봤지만 진우희의 눈길을 사로잡은 목걸이였다.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는 목걸이였다.진우희는 그렇게 크고 맑은 블루 다이아몬드를 처
하지만 그 목걸이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진우희는 어기적거리며 윤아름이 잡는지 지켜봤다.“선생님...”아니나 다를까 윤아름이 진우희를 불러세웠다.진우희가 걸음을 멈추자 윤아름이 설명했다.“아쉬워서 그러는 건 정말 아니에요. 그냥 진우 씨가 발견하면 선생님이 불리해질까 봐 그러는 거예요...”“액세서리가 그렇게 많은데 하나 정도 없어진다고 어떻게 알아요?”진우희는 어이가 없었다. 윤아름이 아까워서 그러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여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그냥 줄지 말지만 얘기해요. 주기 싫다면 저도 언젠가 가주님을 보고 무서워서 횡설수설할지도 모르겠네요. 가끔은 입이 머리보다 먼저 움직여서...”너무 노골적인 협박에 윤아름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윤아름은 오랫동안 사람을 별로 만나지 못했다. 잠에서 깨어난 후로 방 청소하는 벙어리 아줌마 외에 제일 많이 만난 사람이 진우희였다.진우희를 착하지만 두려움이 많은 아가씨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에 따라 두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었다.거래만 틀어진 거라면 그냥 진우희에게 부탁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고민해 볼 생각이었다. 성공 가능성이 반으로 준다고 해도 목걸이 하나 때문에 진우희가 위험해지는 건 싫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진우희는 지금 다 같이 죽자는 심보로 윤아름을 협박하고 있었다.윤아름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줄게요.”기분이 좋아진 진우희가 얼른 표정을 정리하더니 부드럽게 말했다.“사모님 좋은 분인 거 저도 알고 있어요. 어차피 끼지도 않을 거 제가 먼저 보관해 드릴게요.”윤아름은 즐거워하는 진우희의 얼굴을 보며 자꾸 어딘가 불안했다.진우희가 재촉했다.“사모님, 얼른 금고 열어주세요.”액세서리는 특별 제작한 유리 금고에 들어 있었고 홍채와 비밀번호로만 열 수 있었다.저번에 윤아름이 깜빡하고 닫지 않았다는 걸 발견하고 몰래 꺼내서 착용해 본 것이었다.원씨 가문은 경비가 삼엄했다. 그날은 금속탐지기를 넘을 수 있는 주머니를 챙기지 않았기에 바로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