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보름 동안 윤혜인도 매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아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순간부터 윤혜인은 이미 고통의 심연에 빠져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그래도 원지민의 말을 무시하고 두 사람의 아름다운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이준혁의 병을 고칠 수 없다면 여생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아쉬움이 남지 않게 노력할 생각도 했다.가족이 되어 한 지붕 아래 오손도손 살 수만 있어도 전생에 쌓은 덕이라고 했다.그러다 한 사람이 갈지라도 추억만 있으면 그렇게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다 같은 곳으로 갈 거라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다.마음은 아프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후회하기보다는 이준혁의 곁을 지키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 했다.윤혜인은 앞으로 더 안 좋아질 건 없다고, 같이 이겨내다 보면 아름다운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순간 모든 생각이 바뀌었다.원지민의 지독한 저주가 현실로 변하고 말았다.이준혁과 만난 뒤로 자꾸만 안 좋은 일만 생겼다. 윤혜인을 대신해 칼을 맞는가 하면 벼락에서 추락했고 윤혜인의 실종으로 배에서 지내며 윤혜인을 찾을 때까지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 뒤로도 독액과 폭탄, 그리고 총상까지…어느 하나 목숨이 위태롭지 않은 게 없었다. 마치 이준혁이 죽어야만 끝나는 악순환 같았다.병원에 보름 정도 있으면서 윤혜인도 끊임없이 반성했다. 정말 몸에 살이 많아서 그녀를 가까이하는 남자마다 만신창이가 될뿐더러 온갖 고난을 겪는 게 아닌지 말이다.그렇게 윤혜인은 이준혁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하루에도 여러 번 들었고 깨어나서도 회복이 빠르지 않다는 소식만 여러 번 들었다. 전부 안 좋은 소식이었다.그럴 때마다 윤혜인의 마음은 큰 돌덩이에 짓눌린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윤혜인에게는 이제 선택지가 없었다. 떠나주는 게 제일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윤혜인도 마음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 잘 알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아직 이준혁을 사랑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이준혁이 다치고 망
이준혁의 수술이 내일 잡혀 있었기에 안으로 들어가려면 무균복을 입고 들어가야 했다.주훈은 윤혜인이 이준혁과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알아서 밖으로 나갔다.침대에 누워 있는 이준혁의 몸에 장기를 검사하기 위해 넣어둔 튜브가 보였다.윤혜인을 무균복을 입었지만 이준혁의 몸에 달린 튜브를 보고 만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먼 발치에서 이준혁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윤혜인은 이준혁의 부풀어오르는 가슴을 보고 이준혁의 심장 박동과 숨결을 느꼈다. 만질 수 없다고 해도 그걸로 충분했다.“준혁 씨, 앞으로 내가 없어도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해요. 난 그걸로 돼요…”병실에서 나가기 전 윤혜인이 손을 내밀어 이준혁의 얼굴에서 약간 떨어진 곳을 매만지며 수척해진 이준혁의 얼굴을 손으로 그려냈다.눈물을 흘리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수술 성공을 기원하려고 했지만 마음 같지 않았다.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준혁 씨, 미안해요…”윤혜인은 아쉬움이 남는 듯 이준혁의 얼굴을 허공에 그리며 울먹였다.“약속 못 지킬 거 같아요. 우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꼭 잘 지내야 해요…”“약속해요. 이번 생은 꼭 건강하게 무사하게 아무 일 없이 오래오래 살아야 해요.”윤혜인이 눈물을 머금고 이렇게 기도했다. 마지막으로 윤혜인은 아랫배를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가, 너희들 생각도 엄마랑 같지? 아빠가 무사히 잘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하자.”“아빠한테 인사해야지?”윤혜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아랫배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에 윤혜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자리에 선 채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아까 느꼈던 태동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다시 잠잠해진 아랫배를 보며 윤혜인은 태동이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다시 확인하고 싶었던 윤혜인이 이렇게 말했다.“아가, 아빠랑 인사하고 싶으면 다시 한번만 움직여 볼래?”5초 후, 윤혜인은 아랫배가 다시 움직이는 걸 느꼈다. 착각이 아니라 진짜 태동이었다.아이들이
윤혜인은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지만 티를 낼 수가 없어 슬픔을 억지로 누르며 말했다.“네. 나아질 거예요. 앞으로 준혁 씨 잘 부탁드려요.”“제 일인걸요.”주훈이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하고 나니 어딘가 이상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니, 윤혜인이 어디 간다는 말로 들렸다.하지만 더 묻기도 애매해 고개를 들어 윤혜인의 눈치를 살폈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지극히 정상이라 오히려 더 이상했다.“비서님, 그러면 저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윤혜인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이튿날, 7시.윤혜인은 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옆에는 여은과 곽경천도 보였다.곽경천은 윤혜인이 계속 창밖으로 이준혁의 병원이 있는 쪽을 내다보자 잠깐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혜인아, 걱정되면 지금 돌아가도 돼.”“아니야. 오빠.”이 말을 뒤로 윤혜인은 담요를 뒤집어쓰더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곽경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윤혜인이 정말 떠나고 싶은 게 아니라는 걸 곽경천도 알고 있었다. 병원에 있을 때도 몸이 진작에 나았지만 이준혁이 걱정돼 퇴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이준혁이 수술하는 날 떠나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도 아마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서일 것이다.외국 시간으로 새벽 세 시에 곽경천은 서울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이준혁의 수술은 아무 문제없이 끝났고 3, 4개월 천천히 몸조리만 하면 침대에서 내려와 설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중요 장기를 피해 갔다고는 하나 가슴에 총알을 맞았기에 관절의 활동 능력은 조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릎뼈가 아작난 터라 잔뼈를 제거하고 3D 프린터로 프린트한 관절뼈를 장착하긴 했지만 상처가 아물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적어도 회복에 반년은 걸린다는 소리였다. 어느 하나 바로 되는 게 없었다.곽경천은 이 좋은 소식을 윤혜인에게 알렸다. 윤혜인이 멈칫하더니 덤덤하게 잘됐다고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
간호사는 이준혁이 왜 갑자기 손을 빼갔는지 몰라 억울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환자분, 왜…”“장갑은요?”이준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간호사는 그제야 이준혁이 결벽증이 있어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것을 싫어한다는 걸 알아챘다.하여 오기 전에 수간호사가 무조건 무균 장갑을 착용해야만 수액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간호사가 연신 사과하더니 카트에 놓인 장갑을 끼며 말했다.“지금 바로 착용하겠습니다.”이준혁은 간호사의 능력을 의심했지만 장기적으로 보살핌을 받는 것도 아니고 고작 수액 하나 놓아주는 거라 뭐라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간호사가 장갑을 끼더니 남자의 손을 받아와 바늘을 꽂아야 하는 곳에 알코올 솜으로 소독했다.장갑을 끼고 있어 촉감이 살짝 떨어지긴 했지만 손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간호사의 심장이 툭 터질 것만 같았다.VIP층에 잘생긴 남자가 입원해 있다는 소식은 이미 병원에 퍼다 하게 퍼진 상황이었다.하지만 남자는 조용한 걸 좋아했고 여자와 접촉하는 걸 싫어했기에 평소에는 거의 남자 의사가 와서 검사하고 치료해 줬고 수액 같은 작은 일도 남자 간호사를 찾았다.마침 이번 주에 수액을 책임진 남자 간호사가 휴가를 내는 바람에 여자 간호사로 대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간호사는 어린 간호사들이 다른 마음을 품을까 봐 VIP층의 간호사들이 하루에 한 번씩 바꿔가며 수액 해주기로 정했다.하지만 첫날 수액 하러 온 간호사가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선을 넘으며 남자에게 쪽지를 건넸다.남자는 쪽지를 받자마자 수간호사에게 건넸고 간호장은 그 간호사를 호되게 혼내고는 제일 아래층에 있는 일반층으로 보내버렸다.그러자 그 뒤로 온 간호사 셋은 매우 얌전했고 선을 넘는 행동을 할 엄두를 못 냈다. 그저 남자에게 수액만 꽂아주고는 바로 자리를 떠났다.지금 수액 하러 온 간호사도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는 마음이 붕 뜬 상태라 동료 간호사가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걸리면 기껏해야 제일 아래층에 있는
게다가 누가 봐도 잘난 이 남자와 함께라면 인생의 정점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이 좋으면 명분을 얻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명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차와 집은 무조건 얻어낼 수 있을 테니 손해 볼 건 없었다.이렇게 생각한 간호사는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남자 간호사가 고작 한주만 휴가 냈기에 이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그러니 이 기회를 어떻게든 잘 이용해야 했다.간호사가 얼굴을 붉히더니 말캉한 목소리로 말했다.“환자분, 이제 수액 넣을 거예요. 따끔하니까 좀 참으세요.”이준혁은 몇 끼는 굶은 것 같은 간호사의 말투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도도한 남자의 모습에 간호사는 더 흠뻑 빠지고 말았다.게다가 남자는 딱 봐도 신분이 남달라 보였다. 대표라면 이 정도 도도함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간호사는 마치 마사지하듯 이준혁의 손등을 톡톡 건드리며 혈관을 찾았다.이준혁이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자 간호사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죄송해요. 혹시 제가 아프게 했나요? 좀 더 살살해드릴게요...”간호사가 여전히 말캉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준혁은 그 말투가 역겨워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빨리 해요.”“네.”두어 번 더 두드린 간호사가 혈관을 찾았는지 바늘을 찔러넣었다.이준혁의 미간은 펴진 적이 없었고 바늘을 찔러넣자마자 얼른 손을 거뒀다. 하지만 이때 간호사가 남자의 손을 꼭 잡더니 꿀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환자분, 이러면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거치대에 고정해 줄게요.”간호사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남자의 손을 자꾸 알게 모르게 자기 가슴으로 갖다 댔다.간호사는 자기 가슴에 자신감이 넘쳤다.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있었는데 설레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가슴에 손이 닿기도 전에 남자가 억지로 손을 빼더니 불쾌한 듯 이렇게 말했다.“필요 없으니까 나가세요.”간호사는 어렵게 온 기회를 그대로 날려버릴 생각이 없어 마지막으로 용기 내어 이렇게 말했다.“환자분, 저 할 줄
“환자분, 혹시 잘못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저는…”임이나가 얼른 수화기를 잡더니 버벅거렸다.“잘못 말하신 거죠? 왜 저를 해고하시는 거예요?”“당장 꺼져.”이준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갑게 쏘아붙였다.이에 임이나는 자기가 잘못 들은 게 아님을 눈치채고 어쩔 바를 몰라 했다.임이나가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애걸복걸했다.“안… 안 돼요. 환자분,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해고만은 안 돼요…”이 병원은 서울에서 제일 큰 병원이었다. 여기서 해고당하면 그녀를 받을 병원이 없었다.게다가 이 신분이 있으면 괜찮은 남자 친구를 찾을 수 있는데 해고당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환자분,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해고하지만 않으면 뭐든… 뭐든 다 할게요.”임이나는 아직도 헛된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공짜로 잠자리를 가지기 위해 이걸로 협박하는 거라고 생각했다.이렇게 잘생긴 남자라면 임이나는 하루 정도 자는 것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이준혁은 그런 임이나가 너무 역겨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당장 나가지 않으면 서울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해줄게.”“…”이준혁의 매정함을 맛본 임이나는 이준혁이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머리를 굴리던 임이나는 매니저가 병실로 들어오기 전에 제복을 풀어 헤치더니 울면서 하소연했다.“환자분, 왜 이러시는 거예요… 싫다고 말씀드렸는데 옷을 찢은 것도 모자라 모함까지 하면 어떡해요…”임이나는 병실에 CCTV가 없다는 걸 알고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문을 열고 들어온 매니저가 눈앞의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이준혁의 제보가 겹쳐지자 간호사를 협박해 뭔가 얻어내려다 실패하고 들킬까 봐 먼저 고발한 상황 같았다.VIP 병실의 환자들은 돈이 많지 않으면 지체가 높았기에 매니저도 이런 상황에서 바로 처리하기보다는 상관에게 보고하고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마침 이 병원의 관리자가 김성훈의 친구였다. 김성훈은 요새 이준혁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병원에서
임이나는 이쯤까지 왔으니 당연히 연극을 끝까지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얼굴을 감싸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네, 네... 이분이 제 옷을 찢었어요...”김성훈은 이준혁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런데 이준혁은 무표정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자신을 변호하지도 않고 여전히 손에 든 신문을 태연하게 넘길 뿐이었다.김성훈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임이나를 일으켜 세우며 다정하게 말했다.“대체 어떻게 옷을 찢었다는 거예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김성훈은 잘생긴 얼굴에 말투도 부드러워 항상 웃음기 가득한 눈매가 여자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았다.임이나는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줄 알고 차가운 이준혁을 잡지 못해도 김성훈을 잡으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제가 들어와서 이분께 수액을 다 놓아드리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절 불러 세우시더니... 그러고는... 그러고는...”마치 말하기 부끄러운 듯 머뭇거리는 모습을 연출했다.김성훈은 미소를 머금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괜찮으니까 마음 편히 말해봐요. 이나 씨가 우리한테 정확하게 얘기해주지 않으면 우리도 도와줄 수 없잖아요.”그러자 임이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이분이 제 가슴 모양이 예쁘다며 만져봐도 되냐고 했어요... 저는 당연히 거절했죠. 그런데 이분이 갑자기 절 잡아당겨 자기 품으로 끌어안으면서 손으로 여기저기 만지면서 저를 희롱했어요. 제 옷까지 찢어버리는 걸 간신히 몸을 빼내 도망친 거예요...”임이나는 얼굴을 감싸고 울며 말했다.“그러고는 화가 나서 저를 해고시키겠다고 하셨어요. 분명 제가 피해자인데... 주임님, 저 좀 꼭 도와주세요. 안 그러면 제 억울함을 다른 사람들한테 다 말할 수밖에 없어요...”병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꺼려한다는 걸 임이나는 잘 알고 있었다.VIP 병실에 입원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부유하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인데 당연히 좋지 않은 스캔들이 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이런 상황을
관리 주임은 김성훈이 병원장과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아부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혹시 좋은 생각 있거든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다시 협의해보면 되니까요. 안 될 것도 없지 않습니까...”그러면서 임이나를 가리키며 덧붙였다.“임이나 씨는 꽤 오래 일했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뭐든 이야기하면 다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임이나 씨?”관리 주임이 자신을 언급하자 임이나는 고개를 떨구고 마치 억울한 듯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르는 표정을 지었다. 연기처럼 적절하게 상황을 이용한 모습이었다.임이나는 말했다.“저도 병원 규칙을 잘 알고 있습니다. VIP 병실 환자분들은 모두 귀한 분들이죠. 이분께서 아무래도 저를 다른 분으로 착각하신 것 같으니 이 일은 이쯤에서 그만하죠.”이 순간 임이나는 김성훈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했기에 더는 일을 크게 만들지 않으려 했다.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더 큰 보상을 요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성훈은 그 말을 듣고는 비웃듯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요. 제 친구가 아무나 고르지 않는다는 걸 아나 봐요?”임이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김성훈의 말을 듣고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그때 병상에 있던 이준혁이 입을 열었다.“넌 지겹지도 않냐?”이 말은 김성훈에게 한 것이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분명 화가 난 것이 느껴졌다.김성훈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알았어, 알았어. 이제 그만할게.”그러고는 몸을 세우고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곧 전화가 연결되자 상대방이 말했다.“성훈아, 무슨 일이야?”김성훈이 스피커폰을 켜 놓은 상태라 병실에 있던 두 사람은 병원장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그러자 그들의 얼굴이 즉시 굳어졌다.김성훈이 말했다.“너희 병원 간호사들은 모두 극작과 출신이냐? 이야기 꾸미는 솜씨가 대단하네!”병원장은 학술 세미나에 참석 중이었는지 주위가 시끄러워 짧게 대답했다.“무슨 소리야? 나 지금 바쁘니까 할 말 있으면 빨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