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나는 이쯤까지 왔으니 당연히 연극을 끝까지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얼굴을 감싸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네, 네... 이분이 제 옷을 찢었어요...”김성훈은 이준혁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런데 이준혁은 무표정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자신을 변호하지도 않고 여전히 손에 든 신문을 태연하게 넘길 뿐이었다.김성훈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임이나를 일으켜 세우며 다정하게 말했다.“대체 어떻게 옷을 찢었다는 거예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김성훈은 잘생긴 얼굴에 말투도 부드러워 항상 웃음기 가득한 눈매가 여자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았다.임이나는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줄 알고 차가운 이준혁을 잡지 못해도 김성훈을 잡으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제가 들어와서 이분께 수액을 다 놓아드리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절 불러 세우시더니... 그러고는... 그러고는...”마치 말하기 부끄러운 듯 머뭇거리는 모습을 연출했다.김성훈은 미소를 머금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괜찮으니까 마음 편히 말해봐요. 이나 씨가 우리한테 정확하게 얘기해주지 않으면 우리도 도와줄 수 없잖아요.”그러자 임이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이분이 제 가슴 모양이 예쁘다며 만져봐도 되냐고 했어요... 저는 당연히 거절했죠. 그런데 이분이 갑자기 절 잡아당겨 자기 품으로 끌어안으면서 손으로 여기저기 만지면서 저를 희롱했어요. 제 옷까지 찢어버리는 걸 간신히 몸을 빼내 도망친 거예요...”임이나는 얼굴을 감싸고 울며 말했다.“그러고는 화가 나서 저를 해고시키겠다고 하셨어요. 분명 제가 피해자인데... 주임님, 저 좀 꼭 도와주세요. 안 그러면 제 억울함을 다른 사람들한테 다 말할 수밖에 없어요...”병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꺼려한다는 걸 임이나는 잘 알고 있었다.VIP 병실에 입원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부유하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인데 당연히 좋지 않은 스캔들이 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이런 상황을
관리 주임은 김성훈이 병원장과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아부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혹시 좋은 생각 있거든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다시 협의해보면 되니까요. 안 될 것도 없지 않습니까...”그러면서 임이나를 가리키며 덧붙였다.“임이나 씨는 꽤 오래 일했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뭐든 이야기하면 다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임이나 씨?”관리 주임이 자신을 언급하자 임이나는 고개를 떨구고 마치 억울한 듯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르는 표정을 지었다. 연기처럼 적절하게 상황을 이용한 모습이었다.임이나는 말했다.“저도 병원 규칙을 잘 알고 있습니다. VIP 병실 환자분들은 모두 귀한 분들이죠. 이분께서 아무래도 저를 다른 분으로 착각하신 것 같으니 이 일은 이쯤에서 그만하죠.”이 순간 임이나는 김성훈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했기에 더는 일을 크게 만들지 않으려 했다.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더 큰 보상을 요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성훈은 그 말을 듣고는 비웃듯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요. 제 친구가 아무나 고르지 않는다는 걸 아나 봐요?”임이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김성훈의 말을 듣고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그때 병상에 있던 이준혁이 입을 열었다.“넌 지겹지도 않냐?”이 말은 김성훈에게 한 것이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분명 화가 난 것이 느껴졌다.김성훈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알았어, 알았어. 이제 그만할게.”그러고는 몸을 세우고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곧 전화가 연결되자 상대방이 말했다.“성훈아, 무슨 일이야?”김성훈이 스피커폰을 켜 놓은 상태라 병실에 있던 두 사람은 병원장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그러자 그들의 얼굴이 즉시 굳어졌다.김성훈이 말했다.“너희 병원 간호사들은 모두 극작과 출신이냐? 이야기 꾸미는 솜씨가 대단하네!”병원장은 학술 세미나에 참석 중이었는지 주위가 시끄러워 짧게 대답했다.“무슨 소리야? 나 지금 바쁘니까 할 말 있으면 빨리해.”
임이나는 부유한 사람들의 심리를 꽤나 잘 파악하고 있었다.돈 많은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키는 걸 꺼리기 때문에 대개 돈을 주고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김성훈은 그녀의 의도를 읽고 웃으며 물었다.“오, 그럼 어떻게 해결하고 싶어요?”“말했잖아요. 옷값만 보상해 주시면 돼요. 많지도 않아요. 10억 정도면 충분해요.”“헉!”김성훈조차도 이 말을 듣고는 놀란 듯 숨을 들이쉬며 비웃었다.“참, 요구가 크네요!”“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임이나는 자신이 요구한 금액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과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그리 큰 금액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월급이 겨우 200만 원이 조금 넘고 연말 보너스를 모두 합쳐도 1년에 6000만 원 남짓 벌 뿐이었다.10억은 그녀가 밥도 안 먹고 한 푼도 안 쓰고 10년 넘게 모아야만 벌 수 있는 돈이었다.그러나 임이나는 자신의 연봉이 많지 않음에도 명품 가방과 옷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물론 그 돈은 모두 병원에서 번 외부 수입이었다.병원에서는 돈 많은 남자들을 만나기 쉬웠고 그들은 춤추는 여자들보다는 간호사가 낫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임이나 같은 사람들은 간호사라는 직업을 이용해 여러 부정한 수입을 얻고 있었다.10억은 부자들에게 한 번 밥을 사거나 노래방에서 노는 데 쓰는 소액에 불과했다.그런 돈을 아끼다가 자신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을 생각하면 그 금액은 아무리 따져도 손해라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관리 주임은 임이나가 요구한 금액을 듣자마자 곧장 말했다.“이 정도 금액이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 일은 이렇게 해결하는 게 좋겠네요. 제가 임이나 씨를 잘 달래겠습니다.”이 결과에 관리 주임과 임이나 모두 만족스러워 보였다.사실 김성훈이 한 말이 맞았다.두 사람은 사실 서로 애인 관계였고 이렇게 사기를 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관리 주임은 임이나의 높은 소비를 감당하지 못해 그녀에게 부유한 사람들을 상대로 협박을 하라는
임이나는 일을 벌이면 그 성격상 분명 바로 관리 주임을 고발할 것이고 그럼 관리 주임 본인도 꼼짝없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그는 어떻게든 그녀를 보호해야만 했고 절대 실수가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관리 주임은 이미 여러 번 이런 일을 겪어본 터라 자신 있었다.VIP 병실에는 절대 CCTV를 설치하지 않고 일반 병실도 마찬가지로 내부에는 설치되지 않으며 복도에만 카메라가 있었다.증거도 없고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결국 둘의 말만 남게 되는 것이다.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약한 여성을 더 쉽게 동정하는 경향이 있기에 일이 커지면 누가 불리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 약자라는 위치가 대중의 동정심을 자극할 가능성이 컸다.관리 주임은 계속해서 설득을 이어갔다.“선생님, 제가 보기엔 이 일에 굳이 끼어들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긴 CCTV도 없는데 어떻게 친구분이 무조건 잘못 없다고 확신하시는 건가요? 임이나 씨 일은 제 당직 때 생긴 일이고 또 병원장님과 선생님은 친분도 있으시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이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테니까요. 다만 임이나 씨 아직 젊잖아요. 얼굴이 이렇게 팔리면 안 되죠. 조금의 보상이면 될 겁니다. 시간을 조금 드릴 테니 친구분과 상의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임이나 씨한테도 제가 말해서 보상금을 조금 깎도록 설득하겠습니다. 이미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으니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을 겁니다.”이런 설득을 여러 번 해본 듯 관리 주임은 말이 청산유수처럼 나왔다.그러자 김성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이런 일을 여러 번 했나 보군요. 마침 이번에 전부 조사해 보면 되겠네요. 병원장이 제 친구가 아니었으면 저도 이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관리 주임은 김성훈이 강경하게 나오자 결국 본색을 드러내며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전 이 일을 더 이상 중재하지 않겠습니다. 임이나 씨가 신문에 내거나 인터넷에 호소하는 건 제가 막을 수 없습니다. 젊은 여자애가 자칫 충격을 받아서
그는 여론을 권력층이 힘을 남용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려고 하며 온갖 헛소리를 늘어놓았다.그러자 김성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제가 뭐 언제 권력을 남용하겠다고 했나요? 자, 저기 뭐가 보여요?”관리 주임과 임이나는 그의 손가락을 따라 천장을 쳐다보았다.거기엔 숨겨진 카메라가 하나 있었다!김성훈이 스위치를 누르자 카메라에 불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관리 주임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말도 안 돼. 이걸 언제 설치한 겁니까? 병실에선 CCTV 설치가 금지되어 있잖아요!”김성훈은 냉소하며 말했다.“지난번 한 간호사가 아래층으로 쫓겨난 후 설치된 겁니다. 바로 당신들 같은 사람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죠.”그는 비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이번엔 이 CCTV 덕분에 병원의 명예를 해친 벌레들을 제대로 잡아낼 수 있겠군요.”관리 주임은 얼굴이 붉어졌다가 다시 창백해지며 억울함을 호소하려 했지만 이미 누군가에 의해 끌려나가고 있었다.이제 임이나의 차례였다. 역시 창백해진 얼굴로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 저...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그저 장난 좀 친 거였어요...”“장난?”김성훈은 콧방귀를 뀌었다.“맞아요. 정말 장난이었어요. 선생님은 대인배시잖아요. 제발 저한테 이러지 말아주세요. 저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그녀는 김성훈의 발치로 기어가며 눈물 범벅된 얼굴로 애원했다.“김 선생님, 제가 다 따를 테니... 용서해 주세요. 네?”“나 만지지 마.”김성훈은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더러우니까.”임이나는 이 말에 얼굴이 순식간에 잿빛이 되었다.곧이어 그녀가 더 말을 잇기도 전에 주훈이 빠르게 다가와 임이나를 끌고 나갔다.더 이상 기다리면 이준혁이 분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사라지자 병실은 다시 고요해졌다.김성훈은 이준혁의 차가운 표정을 못 본 척하고 의자를 끌어와 이준혁 앞에 앉았다.“이제 좀 기분 풀렸어?”이준혁은 아무런 표정 없이 김성훈을
오랜 친구로서 김성훈은 이준혁을 잘 알았다.깨어난 후 윤혜인을 보지 못한 뒤로 그가 이렇게 변한 것이었다.하지만 이준혁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어떤 일들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성인이라면 서로 눈치챌 수 있었다.윤혜인이 이준혁의 수술 당일 떠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결국 이 관계를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그리고 이준혁은 신체적인 이유로 병원을 떠날 수 없었고 다리마저 움직일 수 없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침묵하고 기이하게 변해갔다.그는 모든 것에 무관심해졌고 매일 기계처럼 자신의 생명을 일에 소모했다.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자 김성훈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속을 태웠다.무슨 말을 해도 이준혁은 듣지 않는 듯했고 여전히 자신의 방식대로만 행동했다.기본적인 재활 치료조차도 거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이렇게 가다간 언제쯤 이 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이준혁의 다리는 장기간 움직이지 않으면 정말 평생 걸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그리고 좋은 친구로서 김성훈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그렇게 활기차고 자유롭게 살던 애가 평생 휠체어에 의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순 없어.’김성훈은 침대 옆에 앉아 사과를 깎으며 평소처럼 이준혁에게 이런저런 소식을 전했다.“찰스의 사람들이 원한은 반드시 갚는다는 말이 사실이더라. 원지민의 새엄마가 시켜서 버린 그 유골을 찾아서 북안도로 가져갔대. 무녀를 불러서 어떤 금술을 썼다던데 영혼을 지옥의 불길 속에서 매일 밤낮으로 고통받게 하는 금지된 주술이래.”이런 괴담이 사실이라면 원지민은 죽어서도 결코 평안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살아 있을 때 받지 않은 벌을 죽어서라도 받는 것이 마땅할지도 모른다.“근데 이번에 좋은 일도 생겼어. 찰스 가문이 에단 찰스의 시신을 부검하지 않도록 하려고 서울과 협상을 했대. 서울에서 다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만약 찰스 가문의 사람이 서울에서 사고를 치면 그들을 서울로 넘겨서 심판받게 할 거라고 했지.”잔인하고 무법적인
이준혁의 표정은 마치 얼음 속에 갇힌 것처럼 차가웠다. 한 달 넘게 유지되던 평온한 가면이 바로 그 순간 깨져버렸다.김성훈이 대답할 틈도 없이 이준혁의 목소리가 다시 급박하게 울렸다.“혜인이가 누구랑 결혼하는데?”“내...”김성훈이 말을 꺼내는 순간 이준혁의 손에서 딱 하고 관절 소리가 났다.그의 손에 가해진 압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준혁의 어두운 눈동자는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심연처럼 깊었다.비록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이준혁은 여전히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툭 하는 소리와 함께 김성훈이 깎고 있던 사과가 바닥에 떨어지며 과즙이 튀었다.“아이구...”김성훈이 이를 드러내며 짧게 소리를 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내가 아니고 들은 바로는 배씨 가문 아들이래.”그제야 이준혁의 손에서 힘이 빠졌고 김성훈의 손은 놓여졌다.“아... 진짜 아프네...”김성훈은 팔을 휘저으며 생각했다.‘다음에 말할 때는 절대로 중간에 멈추지 말아야겠다...’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내 손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이렇게 꽉 쥐면 어떡해!”김성훈은 손에 보험까지 들 정도로 아끼는 편이었다.그런데 이준혁이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목이 부러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의사로서의 습관이 나와서 그는 방금 했던 말을 잊고 이준혁의 회복 상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그런데 너 참 이상하네. 매일 재활 훈련은 안 하면서 손의 회복력은 꽤 좋은데?”그는 궁금해서 물었다.“혹시 나 몰래 밤에 재활하는 거냐?”“언제?”이준혁은 냉담하게 물었고 김성훈은 잠시 당황했다.“언제라니. 네가 언제 몰래 연습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설마 꿈에서라도 연습한 거야?”의심이 가득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김성훈이 계속해서 물었다.“너 예전엔 몽유병 같은 거 없었잖아? 혹시 침대에 오래 누워 있다가 새로 생긴 증상이야?”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이준혁의 눈을 들여다보려 했다. 혹시 다른 증상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그러나 이준
이준혁의 회복력은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났다.김성훈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혜인 씨가 진짜 신의 약이구먼. 죽은 사람도 살리고 썩은 뼈도 되살릴 정도라니... 이건 거의 뭐 화타의 신비한 약 정도잖아?”그리고 그는 사과를 한 입 크게 베어 물며 놀란 마음을 가라앉혔다....이준혁은 깨어난 이후 처음으로 병원을 떠났다.그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층 버튼을 누르고 있었는데 마침 올라오던 주훈과 마주쳤다.주훈은 처음엔 그냥 지나치려다 이준혁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멈춰 섰다.그는 입을 벌리고 숨을 들이쉬며 무려 10초가 지나서야 겨우 말을 꺼냈다.“대표님!”“회사로 가자.”이준혁은 그 한마디만 남기고 휠체어를 조작해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 하자 주훈은 황급히 외쳤다.“자... 잠시만요. 대표님!”아직 놀란 상태에서 그는 평소의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잊고 느린 말투로 대응하더니 급하게 앞으로 다가가 문이 닫히기 전에 발을 넣고 겨우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엘리베이터가 닫히자 주훈은 이준혁을 바라보며 물었다.“대표님, 갑자기 회사에는 왜 가십니까?”“처리할 일이 있어.”이준혁은 깨어난 이후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할 수 있는 한 짧게 대답했고 가능하면 한두 마디로 대화를 끝냈다.이런 이준혁의 상태가 걱정되어 주훈은 김성훈을 찾아갔었다.김성훈은 이준혁의 팔꿈치에 맞는 새로운 인공 관절 재료를 연구하느라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었다.하지만 이준혁의 말을 듣고 김성훈은 연구를 중단하고 매일 병원에 와서 이준혁과 시간을 보냈다.그는 성격이 활발하고 말이 많아서 이준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혼자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덕분에 이준혁도 이따금 짧게나마 반응을 보이곤 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주훈은 습관적으로 이준혁의 휠체어를 밀려고 했다.하지만 이준혁은 이를 거절하며 말했다.“내가 스스로 할 거야.”그는 휠체어의 버튼을 눌러 직접 조작하며 앞으로 나아갔다.차 앞에 도착하자 주훈이 이준혁을 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