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의 표정은 마치 얼음 속에 갇힌 것처럼 차가웠다. 한 달 넘게 유지되던 평온한 가면이 바로 그 순간 깨져버렸다.김성훈이 대답할 틈도 없이 이준혁의 목소리가 다시 급박하게 울렸다.“혜인이가 누구랑 결혼하는데?”“내...”김성훈이 말을 꺼내는 순간 이준혁의 손에서 딱 하고 관절 소리가 났다.그의 손에 가해진 압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준혁의 어두운 눈동자는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심연처럼 깊었다.비록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이준혁은 여전히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툭 하는 소리와 함께 김성훈이 깎고 있던 사과가 바닥에 떨어지며 과즙이 튀었다.“아이구...”김성훈이 이를 드러내며 짧게 소리를 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내가 아니고 들은 바로는 배씨 가문 아들이래.”그제야 이준혁의 손에서 힘이 빠졌고 김성훈의 손은 놓여졌다.“아... 진짜 아프네...”김성훈은 팔을 휘저으며 생각했다.‘다음에 말할 때는 절대로 중간에 멈추지 말아야겠다...’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내 손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이렇게 꽉 쥐면 어떡해!”김성훈은 손에 보험까지 들 정도로 아끼는 편이었다.그런데 이준혁이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목이 부러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의사로서의 습관이 나와서 그는 방금 했던 말을 잊고 이준혁의 회복 상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그런데 너 참 이상하네. 매일 재활 훈련은 안 하면서 손의 회복력은 꽤 좋은데?”그는 궁금해서 물었다.“혹시 나 몰래 밤에 재활하는 거냐?”“언제?”이준혁은 냉담하게 물었고 김성훈은 잠시 당황했다.“언제라니. 네가 언제 몰래 연습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설마 꿈에서라도 연습한 거야?”의심이 가득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김성훈이 계속해서 물었다.“너 예전엔 몽유병 같은 거 없었잖아? 혹시 침대에 오래 누워 있다가 새로 생긴 증상이야?”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이준혁의 눈을 들여다보려 했다. 혹시 다른 증상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그러나 이준
이준혁의 회복력은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났다.김성훈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혜인 씨가 진짜 신의 약이구먼. 죽은 사람도 살리고 썩은 뼈도 되살릴 정도라니... 이건 거의 뭐 화타의 신비한 약 정도잖아?”그리고 그는 사과를 한 입 크게 베어 물며 놀란 마음을 가라앉혔다....이준혁은 깨어난 이후 처음으로 병원을 떠났다.그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층 버튼을 누르고 있었는데 마침 올라오던 주훈과 마주쳤다.주훈은 처음엔 그냥 지나치려다 이준혁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멈춰 섰다.그는 입을 벌리고 숨을 들이쉬며 무려 10초가 지나서야 겨우 말을 꺼냈다.“대표님!”“회사로 가자.”이준혁은 그 한마디만 남기고 휠체어를 조작해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 하자 주훈은 황급히 외쳤다.“자... 잠시만요. 대표님!”아직 놀란 상태에서 그는 평소의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잊고 느린 말투로 대응하더니 급하게 앞으로 다가가 문이 닫히기 전에 발을 넣고 겨우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엘리베이터가 닫히자 주훈은 이준혁을 바라보며 물었다.“대표님, 갑자기 회사에는 왜 가십니까?”“처리할 일이 있어.”이준혁은 깨어난 이후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할 수 있는 한 짧게 대답했고 가능하면 한두 마디로 대화를 끝냈다.이런 이준혁의 상태가 걱정되어 주훈은 김성훈을 찾아갔었다.김성훈은 이준혁의 팔꿈치에 맞는 새로운 인공 관절 재료를 연구하느라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었다.하지만 이준혁의 말을 듣고 김성훈은 연구를 중단하고 매일 병원에 와서 이준혁과 시간을 보냈다.그는 성격이 활발하고 말이 많아서 이준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혼자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덕분에 이준혁도 이따금 짧게나마 반응을 보이곤 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주훈은 습관적으로 이준혁의 휠체어를 밀려고 했다.하지만 이준혁은 이를 거절하며 말했다.“내가 스스로 할 거야.”그는 휠체어의 버튼을 눌러 직접 조작하며 앞으로 나아갔다.차 앞에 도착하자 주훈이 이준혁을 도우
이준혁은 이러한 모든 것들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깨어난 이후 그의 과거와 미래가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살아는 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이 로봇처럼 움직이는 삶이었다.회사를 찾은 이준혁은 이신우가 자신의 대표 사무실을 그대로 보존해 둔 것을 발견했다.이신우는 자신을 위한 새로운 사무실을 따로 마련해 두고 있었다.이준혁이 방에 들어섰을 때 이신우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준혁이 네가 여긴 웬일이야?”그러자 이준혁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삼촌, 혜인이가 결혼한다던데... 알고 계세요?”이준혁이 알고 있냐 묻는 것은 단순한 소식을 넘어 그 안에 숨겨진 어떤 진실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혜인이는 지금 임신 중인데... 결혼하면 아이는 어떻게 처리되지? 상대 집안에서 받아는 들이나? 그리고 배씨 가문은...’솔직히 말해 이준혁은 지금 반쯤 불구가 된 상태에서도 배씨 가문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겉으로는 명문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내부의 음모와 복잡한 일들은 그들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좋은 서울을 두고 북안도에 자리를 잡겠다는 선택만으로도 그 가문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배남준도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사람이란 시간이 흐르면 변할 수밖에 없다.‘지금 혜인이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까? 과연 가족의 압박을 이겨내고 다른 여자를 맞이하지 않고 혜인이에게만 충실할 수 있을까?’이신우는 이준혁이 묻는 뜻을 이미 알고 있었다.윤혜인의 결혼 소식을 듣자마자 이신우는 그녀에게 바로 연락을 취해 상황을 물었다.그는 윤혜인과 어느 정도 교분이 있었고 서울에서도 그녀를 도와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신우의 질문을 거부하지 않고 잠시 침묵한 후 사실이라고 말했다.이준혁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이신우는 고민 끝에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알아본 바로 별다른 숨겨진 일은 없어. 혜인 씨가 배남준과 결혼하는 건 사실이야. 둘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고 배남준은 나름
이준혁이 어릴 때부터 보여준 놀라운 사업적 재능을 이신우는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재능 속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그는 냉정하고 차가웠으며 오로지 이선 그룹의 이익만을 고려하고 있었다.작은 기업들이 이선 그룹과 같은 대기업에 의존해 살아남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그들이 망하든 손해를 보든 상관하지 않았다.그들이 힘들어 찾아와 불만을 제기해도 이준혁은 아주 냉담하게 안 되면 다른 곳을 찾으면 된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그의 눈에는 언제나 이익과 성공만이 중요했고 때로는 자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았다.물론 악의를 품고 사람을 해친 적은 없었지만 기업 간의 경쟁에서 거칠게 나가기도 했다.이신우는 이런 이준혁의 이익만을 중시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없는 태도를 매우 불편해했다.그래서 그가 처음 귀국해 윤혜인을 만났을 때 그들의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다는 것을 알고 윤혜인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이준혁이라는 천재적인 인물이 너무 거만하다고 생각해 그를 조금 눌러보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신우는 이준혁이 윤혜인의 존재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예를 들어 이준혁은 무관심했던 직원 복지나 이선 그룹에 의존하는 기업들의 이익 보장 문제에 대해 스스로 강력한 보장 제도를 마련했다.결혼 후 이준혁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자선 활동을 하며 아픈 아이들과 외로운 노인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윤혜인의 선한 행동들이 서서히 이 차가운 남자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를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특히 이신우가 알게 된 것은 이준혁이 이렇게 냉정했던 이유가 이천수로부터 어린 시절 받은 정서적 학대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이준혁은 그 집에서 전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천수를 친아버지처럼 여겼다.하지만 따로 속셈을 품은 이천수는 오랫동안 이준혁을 그릇된 길로 이끌려 했다.다행히도 이준혁은 자제력이 강해 냉정하게 행동하며 불법적인 행위나 타인을 해치려 하지
다리가 불편해진 것이 그에게 불편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존감까지 낮아지지는 않았다.오랜 시간 사업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과 상황을 겪으며 병으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도 장애를 딛고 성공한 사람도 봐왔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자신의 다리 부상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뒤로 손을 모은 채 서 있는 이신우도 이준혁의 고민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잠시 생각을 하다 그는 입을 열었다.“내가 이미 비서한테 북안도로 가는 가장 빠른 항공편을 알아보라 했다. 최근 훈련 문제로 교통 통제가 실시돼서 소식은 기다려야 하지만 말이다.”그는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혜인 씨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가서 물어봐. 병원에 누워서 죽어가는 것처럼 있지 말고! 이게 우리 이씨 집안 남자의 태도냐?”이신우는 한 번에 말을 쏟아냈다. 그는 이준혁에게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결정하는 건 빠르게 하고 통보만 할 뿐이었다.“최대 석 달까지는 너를 도울 수 있어. 석 달 후에 혜인 씨의 아이가 태어나면 너도 마음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어? 그동안 재활에 신경 쓰고 답을 찾든 아이의 출생을 지키든 네가 알아서 해. 어쨌든 석 달 후에는 나도 손 뗄 거야. 나도 내 일이 있으니까. 그때 가서 이선 그룹 대표 자리에 앉을 사람이 없다 해도 나 찾지 말고!”그가 긴 이야기를 마치자 밖에서 비서가 들어와 회의 참석을 요청했다.그렇게 이신우는 문 앞에 서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던졌다.“가끔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해. 혜인 씨가 정말 결혼했다 해도 아이는 네 아이야.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넌 책임을 지고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해.”이신우는 이준혁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지 않았다.해야 할 말은 다 했으니 말이다.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이하진이라는 아이 하나만 키워왔지만 친자식이 아니었다.이신우도 아버지로서 부족한 점도 많았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엔 아버지란 역할은 마음에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어떤 방식으로
만약 그가 윤혜인을 찾고 싶었다면 막 깨어났을 때 비록 들것에 누워 있어야 했더라도 방법을 찾아 그녀를 찾아갔을 것이다.하지만 이준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이는 그 또한 그녀의 결정을 받아들였다는 의미다.윤혜인은 더 이상 이준혁과 얽히고 싶지 않아 자신의 삶을 선택했고 그는 그 선택을 존중해야 했다.그러나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윤혜인이 여전히 자신에게 미련이 남아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총상을 입던 날 이준혁은 고열에 시달리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으며 윤혜인과 함께한 마지막 순간조차 흐릿하게 기억났다.다만 마지막에 그가 윤혜인을 대신해 총을 막아냈다는 것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윤혜인이 이준혁의 수술 당일에 떠난 것은 그녀의 결정을 간접적으로 알려준 셈이었다.김성훈과 이신우는 아마도 이준혁이 다리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져 윤혜인을 찾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하지만 사실 그에게는 사랑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그를 무너뜨리지 못했다.그러나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나도 쉽게 이준혁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그의 내면은 감정적으로 그리 강하지 않았으니 말이다.이준혁이 윤혜인을 찾지 않기로 한 것은 자신의 집착적인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보지 않고도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운 이준혁이 만약 윤혜인을 직접 마주한다면 어떤 일을 저지를지 자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다음 날 점심 즈음에 남자 간호사가 다시 돌아와 이준혁에게 수액을 놓아주었다.간호사는 나가면서 이준혁의 과일 접시에 놓인 전날 과일을 보고 그가 전날 과일을 먹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그렇게 간호사는 양해를 구하고 그 과일을 청소 아줌마에게 건네주었다. 이 일은 이미 몇 날 며칠째 반복되는 일이었다.하루가 지난 과일을 먹지 않는다는 게 아니고 이준혁은 원래 그저 그 과일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었다.그리고 과일을 상해 버리기 전에 신선할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는 게 더 나았고 말이다.병실에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캐묻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 아니다.남자 간호사는 계속해서 아줌마에게 눈짓을 보내며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그런 적이 없다뇨?”하지만 아줌마는 남자 간호사의 눈짓을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했다.“전에 아주 예쁜 아가씨가 있었어요. 얼굴이 하얗고 작고 눈이 크고 아주 온화했죠. 그 아가씨를 자주 봤어요.”아줌마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그녀가 손자의 수술 때문에 휴가를 냈다가 오늘 처음으로 복귀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윤혜인이 떠난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남자 간호사는 아줌마가 잘못 기억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다.“아줌마께서 분명 잘못 기억하신 거예요. 그만하고 나가시죠.”그러나 아줌마는 고집스러웠다.“아니에요. 제가 잘못 본 게 아닙니다. 전 이분께 감사 인사를 할 겸 그 아가씨에게 돈을 돌려드리려고 온 거예요.”남자 간호사는 이준혁이 화낼까 봐 아줌마를 끌어당기며 말했다.“이쯤 하시고 가시죠, 아줌마.”아줌마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평소에 남자 간호사가 자신과 손자를 잘 돌봐주었기에 그의 말을 잘 따랐다.곧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준혁에게 말했다.“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빨리 회복하시길 바라요.”그렇게 남자 간호사가 아줌마와 함께 나가려 하자 이준혁이 그들을 불렀다.“잠깐만요.”그는 아줌마를 바라보며 물었다.“아줌마, 돈을 돌려준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아줌마는 이준혁이 자신을 부르자 깜짝 놀랐다.그는 겉모습만 보아도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남자 간호사처럼 자신을 ‘아줌마’라고 불러주며 존댓말을 해주니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저한테 그렇게 예의 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그러자 이준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습니다. 아줌마,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전에 제가 근무하던 때였어요. 선생님께서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을 때였죠. 제가 이 구역을 청소하고 있었어요. 돈을 더 벌려고 그달에는 계속 야간 근무를 했거
이준혁은 그 카드를 받아든 채로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지었다.아줌마는 말했다.“선생님, 그 아가씨 참 착한 사람이에요. 제가 보기엔 정말 선생님을 많이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매번 여기서 나올 때면 눈이 항상 빨갛게 부어 있었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그 아가씨는 정말 선생님을 걱정하고 있던 거예요...”남자 간호사가 아줌마를 데리고 병실을 나간 후에도 이준혁은 그 카드를 보며 멍하니 있었다.윤혜인이 그를 그렇게 많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바로 그때 주훈이 들어왔고 이준혁은 입을 열었다.“내가 혼수상태였던 한 달 동안의 복도 CCTV 영상을 모두 가져와.”주훈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대답했다.“알겠습니다.”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물었다.“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비서로서 대표님의 안전과 관련된 상황이라면 당연히 확실히 알아봐야 했다.“아니. 그냥 지금 당장 가져와.”“알겠습니다.”주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갔다.“잠깐만.”그때 이준혁이 그를 불렀다.“가면서 남자 간호사한테 그 아줌마 집 사정 좀 알아봐달라고 해. 그 집 손자를 위해 필요한 지원도 좀 준비하고.”주훈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얼마 후 주훈은 복사한 USB를 들고 와 이준혁에게 건넸다.“대표님, 어떤 화면이 필요하신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까요?”이준혁이 컴퓨터 화면을 계속 보고 있으면 눈이 피곤해질까 걱정이 돼서였다.“아니. 내가 직접 볼 거야.”주훈이 나간 후 이준혁은 USB를 노트북에 꽂았다.시간을 밤으로 돌리자 마침내 자정이 넘은 시간에 윤혜인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그녀는 매일 오지는 않았지만 간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병실에서 항상 한 시간 이상 머물렀다.다른 화면을 통해 확인해보니 그녀는 병실에 들어가진 않았고 창문 앞에 서서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었다.그것이 윤혜인이 매일 오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렇게 오래 서 있으면 몸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그녀는 유리창 너머로 잔뜩 집중한 채 이준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