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했는데 받질 않아요.”이하진은 짜증스럽게 말했다.“몰라요. 이제 출발할래요. 저 혜인 선생님 결혼식 놓치고 싶지 않다고요.”“그래. 이만 가봐. 도착하면 연락하고.”이신우는 전화를 끊었다.이하진은 입으로는 기다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이준혁을 기다렸다.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자 그는 화가 나서 승무원에게 말했다.“됐어요. 더 이상 안 기다릴게요. 문 닫으세요”.”기내 문이 닫히고 비행기가 이륙했다.한편, 먼 북안도의 개인 전용 착륙장에서 막 도착한 한 대의 한국의 개인 전용기가 있었다.기체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 세련된 정장을 입고 연한 색 변색 렌즈의 선글라스를 쓴 한 잘생긴 남자가 내렸다.북안도의 날씨는 추웠고 남자가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그의 비서는 남자에게 진한 남색 양모 코트를 걸쳐 주었다.이로 인해 키가 크고 날씬한 체격에 더해 고급스럽고 냉철한 분위기가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비행기에서 무릎을 굽히고 내려오는 그의 걸음이 약간 불편하다는 것을 모두 알 수 있었다.손에 들고 있는 금색 장식이 있는 지팡이는 장식품인 줄 알았는데 사실 걸음을 돕기 위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공항 직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걸음이 불편하다니...’그러나 남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고 지팡이를 짚고 몇 걸음 만에 차 앞으로 걸어갔다.그를 위해 누군가 차 문을 열어주자 남자는 몸을 숙여 차에 탔다.자리에 앉자 앞 좌석에 있던 비서는 핸드폰을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대표님,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있습니다.”이준혁은 전화를 받아 확인했다.부재중 통화 목록에서 가장 많은 것은 이하진의 전화였고 그 외에도 업무 관련 전화 몇 통이 있었다. 그리고 이신우가 보낸 문자 한 통이 있었다.[도착했니?][네. 도착했어요.]이신우는 역시 이준혁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반면 이하진은 아직도 이준혁이 오지 않은 줄 알고 비행기에서 투덜거리고 있을 것이다.
“신랑이 보고 깜짝 놀라실 거예요.”“감사합니다.”윤혜인이 인사했다.“여기 잠깐만 앉아 있어요. 비서가 밖에 있던데 불러드릴게요.”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나가고 윤혜인은 거울 앞에 앉아 멍을 때렸다.‘드레스를 입으면 이런 모습이구나.’처음 이준혁과 결혼할 때 비밀 결혼이라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고 그저 등기하고 둘이 상반신 샷을 찍은 게 전부였다. 사진은 모두 8부가 나왔고 쓰고 남은 6장은 집에 가져가 고이 간직했다.그녀의 마음속에 그 사진은 마치 웨딩사진과 같은 의미였다. 좋아하는 남자와 웨딩사진을 찍는 게 로망이었지만 이혼할 때까지 그 로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그러다 이준혁과 재결합했지만 오해가 있었고 먼저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없었기에 오해도 풀지 못하고 윤혜인에게 일이 터졌다. 두 번째도 여전히 아쉬움이 많은 엔딩이었다. 뒤에 원지민이 이준혁을 위해 드레스를 입었다. 결혼식은 가짜였지만 드레스는 진짜였고 그 옆에 선 남자도 진짜였다.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그리고 지금 윤혜인도 드레스를 입었지만 옆에 선 남자는 이준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두 사람은 신성한 의미가 담긴 옷을 입을 때 옆에 선 사람이 다 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늘은 진작에 두 사람의 만남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줬지만 윤혜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부딪혔다. 그렇게 얻은 교훈이라면 가끔은 무작정 앞으로 가는 것보다는 뒤로 물러서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대기실 문이 열렸다.거울에 비친 윤혜인이 고개를 들었다. 들어온 사람은 여은이 아니라 곽경천이었다.윤혜인을 본 순간 곽경천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윤혜인이 드레스를 입으니 정말 너무 윤아름과 닮아 있었다.윤아름은 늘 곽경천을 따듯하게 감싸주고 이해해 줬다. 곽경천은 그때가 되어서야 엄마의 사랑이 이렇게 따듯할 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윤혜인은 곽경천이 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점점 마음이 근질근질했다.“오빠, 혹시 이상해?”곽경천이 정신을 차리더
“괜찮아. 원래도 서로 원하는 게 있어서 하는 결혼인데. 남준은 배씨 가문 호적에서 나와 따로 호적을 파는 건데 그러려면 첫 번째 조건이 결혼하는 거잖아. 아니면 배씨 가문 수장이 절대 동의할 리 없어.”곽경천이 위로했다.“너도 남준이 성격 알잖아. 좋아하는 여자도 없는데 피해주기는 싫어서 이 기회를 잡은 거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잖아.”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앞으로 남준 오빠가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이 과거를 신경 쓴다면 내가 꼭 대신 설명해 줄 거야.”곽경천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윤혜인은 어두운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물었다.“오빠, 우리 이번에 정말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곽경천이 시선을 축 늘어트린 채 말했다.“걱정하지 마. 꼭 찾을 수 있을 거야.”윤혜인이 배남준과 가짜 결혼하려는 이유가 있었다. 곽경천의 조사에 따르면 저번에 파티장에서 윤혜인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북안도와 관련된 사람이라고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상대는 찰스가 보낸 사람이 아니었다. 몸에 찰스 가문의 휘장이 없었다.윤혜인은 귀국한 지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윤혜인을 쫓던 사람들이 여기까지 쫓아와 여러 번의 암살을 시도했다.윤혜인이 죽어야만 끝날 것 같았다.곽경천이 여러모로 알아봤지만 찰스 가문과는 상관이 없다고 나왔다. 그리고 윤혜인은 이제 더는 그들의 추격 대상이 아니었다.누가 윤혜인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건지 궁금했다.곽경천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는데 배남준이 소식을 전해왔다. 곽경천이 전에 유의하라고 했던 한약재를 누군가 사 갔다고 말이다.상대는 아무 정보도 남기지 않았고 한약재를 사간 뒤로 서울에서 자취를 감춰 더는 찾을 수가 없었다.곽경천은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 갔다. 그 약재는 엄마가 떠나기 전 남겨준 약속이었다. 누구든 위험에 부딪히면 약방에서 ‘환혼’이라는 약재를 사서 살아있다는 걸 알리는 의미로 정하자고 했다.그런데 지금 누군가 그 약재를 사 갔다. 그것도 전에 약속했던 여섯 잎이었다.
한 번에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일이었고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기도 했다.곽경천도 배남준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으로서는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윤혜인의 안전도 보장하면서 윤아름의 행방도 찾을 수 있었다.곽경천은 이 방법을 윤혜인에게 알렸고 윤혜인도 동의했다. 윤혜인도 곽경천이 바쁜 와중에 그녀의 안전을 걱정하는 게 싫었다.게다가 지금 윤아름의 소식도 있으니 곧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너무 잘된 일 같았다.일은 계획대로 잘 흘러갔다. 배남준은 아일란보 신부가 보는 앞에서 부부로 되었고 북안도로 돌아와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집안에 거짓말했다.배남준의 아버지 배영석은 별다른 의심 없이 아들의 요구를 들어줬다. 사실 배남준의 아버지도 아는 게 많은 아들과 친해지고 싶었다.가문이 계속 발전하려면 다방면으로 뛰어난 후계자가 필요했다. 배남준은 머리가 비상해 배씨 가문의 대부분 경영 난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하지만 배남준은 배영석과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배영석은 여자가 많았고 배남준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는 바람에 아마 배영석은 배남준의 어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잊어버렸을 것이다.배남준이 결혼한다는 말에 배영석도 돈을 아끼지는 않았고 첫 결혼을 아주 성대하게 치러주려 했다. 배씨 가문에 경사가 났다는 사실을 북안도 전체에 알리려는 것처럼 말이다.윤혜인이 원하는 것도 이것이었다. 결혼 소식이 널리 알려져야만 윤아름도 그들이 북안도로 왔다는 걸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들을 만나러 올 방법을 생각하거나 더욱 많은 정보를 전달하려 할 것이다.하지만 배씨 가문이 안전한 건 윤혜인이 배남준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신분에 빈틈이 보이면 후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다.곽경천이 당부했다.“혜인아, 평소 밖에 있을 때는 그래도 부부인 척해야 해. 절대 들키면 안 돼. 예정일까지 배씨 가문 정원에만 있으면 안전할 거야.”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안전 조심해야 해.”윤혜인이 걱정스레 말했다.“걱정하지 마. 지금
윤혜인이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시야에 누군가의 눈동자가 보였다.까만 눈동자가 은하수에 퐁당 빠진 것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깊고도 매혹적인 눈동자가 참 치명적이었다.예쁜 눈망울과 잘생긴 얼굴, 윤혜인에게는 더없이 익숙한 사람이었다.순간 윤혜인은 머리가 새하얘졌다. 혹시나 헛것을 본 게 아닌가 싶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머나먼 타국에 있는 남자가 어떻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건지 의문이었다. 눈길이 닿자 윤혜인은 뭐라도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두 사람은 그렇게 대치하면서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윤혜인은 꿈을 꾸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꿈은 너무 현실 같았다. 눈앞에 버젓하게 서 있는 모습이 정말 진짜와 다를 바 없었다.“당신이 왜 여기에...”있냐는 말을 입에서 꺼내기도 전에 윤혜인은 이준혁의 손에 이끌려 창가로 갔다. 진실한 촉감에 윤혜인은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준혁이 정말 결혼식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순간 윤혜인의 머리에 긴 코트가 씌워졌다.쨍그랑.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윤혜인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이준혁이 그녀를 번쩍 어깨에 둘러메더니 다시 품속에 꼭 끌어안았다.머리가 코트가 씌워져 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윤혜인은 허둥지둥 팔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읍... 이준혁 씨... 뭐... 뭐 하는 거예요...”윤혜인이 불안해하는데 이준혁이 윤혜인을 살포시 내려줬다. 등 뒤로 폭신한 매트가 느껴졌다.이준혁이 옷을 걷어내자 윤혜인이 눈을 떴다. 눈 깜짝할 새에 차로 옮겨져 있었다.이준혁은 팔에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아까 창문에서 뛰어내리며 긁힌 것 같았다.주변을 돌아보고 나서야 윤혜인은 아까 있던 그 대기실 창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하객 주차장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앞에 잠겨 있는 작은 문으로 두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작은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아마도 이준혁이 연 것 같았다.윤혜인이 다급하게 말했다.“뭐 하려고 그래요?”이준혁이 짧고
자칫하면 북안도가 방위 수준이 떨어진다고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윤혜인은 이준혁의 처지를 매우 걱정했다. 초대를 받지 않았으니 무단으로 침입한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잡히면 매우 번거로워지게 된다.이준혁의 팔에 난 상처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던 윤혜인이 팔에 한 레이스를 풀어 건네며 물었다.“팔에 피나는데 처리 좀 할래요?”이준혁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봤다.윤혜인은 가슴이 욱신거렸다. 관심한 바에 그냥 상처도 치료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아니면 그냥 내가 처치해 줄게요. 처치 끝나면 돌아가요. 네?”윤혜인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준혁이 대꾸하지 않자 윤혜인은 그가 이 말에 동의했다고 생각해 그의 소매를 살살 걷었다. 그리고는 휴지를 한 장 빼서 팔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레이스를 감기 시작했다.차가 자리가 좁기도 했고 윤혜인의 드레스가 펑퍼짐했기에 드레스 옷깃이 이준혁 몸에 찰싹 붙어 있었다.윤혜인은 상처를 처치하는 데 집중했고 레이스를 감고 예쁘게 리본까지 묶어줬다.처치하고 나서야 이준혁의 팔뚝이 예전에 비하면 너무 말라 있다는 걸 발견했다. 도대체 몸조리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자꾸만 말라가는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윤혜인은 이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신부가 사라졌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알기 전에 얼른 현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야 아무 소동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윤혜인이 이준혁의 손을 뿌리치려는데 이준혁이 잡고 있던 윤혜인의 손을 확 잡아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윤혜인은 심장이 벌렁거렸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이준혁의 품에 안겨 있었다. 이준혁의 품속은 여전히 따듯하고 포근했다.코끝에 차가우면서도 향긋한 남자의 향기가 맴돌았다. 그 향기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졌다.순간 윤혜인은 두 사람이 다시 제일 뜨거웠던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때는 임세희도 원지민도 한구운도 없었고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
윤혜인은 질질 끄는 걸 싫어했다. 결정했으면 흔들리지 말고 그대로 밀고 나가야 했다.“정말 나한테 할 말 없어?”호수처럼 깊은 이준혁의 눈동자는 왠지 모르게 너무 슬퍼 보였다.그런 이준혁을 보며 윤혜인은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윤혜인은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리더니 덤덤하게 말했다.“내 결혼식에 와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북안도 상황이 좋지 못해서 결혼식에 초대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사실 윤혜인에겐 다른 생각이 있었다.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신성한 결혼식 복장을 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윤혜인은 겪어봐서 잘 알고 있었다.마찬가지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무대 위에 서 있는 걸 관중석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면 그 느낌도 별로 좋지는 않을 것이다.하여 그 기분을 느끼지 않게 미연에 방지할 생각이었다. 그녀를 이기적이라 생각해도 좋고 도망간다고 생각해도 좋지만 어쨌든 잘라낼 바에는 깨끗하게 자르는 게 좋다고 여겼다.“난 이만 돌아갈게요. 준혁 씨도 배씨 가문에 대해 잘 알잖아요. 위험한 일은 하지 마요.”이준혁은 윤혜인의 충고를 못 들은 척하더니 윤혜인의 발그스름한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아니야. 혜인아. 넌 아직 날 속이고 있어...”윤혜인은 빠져들어 갈 것 이준혁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봤다. 정말 당장이라도 빠져들어 갈 것 같았지만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며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을 티 나지 않게 견뎌냈다.더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두 사람 다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윤혜인이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준혁 씨. 내가 준혁 씨를 왜 속여요. 준혁 씨도 봤잖아요. 나 결혼하려는 거...”“진심이 아니잖아.”이준혁이 윤혜인의 턱을 살짝 들더니 말캉한 그녀의 입술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돌적으로 키스했다.“읍... 이준혁 씨...”이준혁은 윤혜인의 목소리까지 함께 삼켜버렸다. 그는 윤혜인의 턱을 꽉 잡더니 몸을 더 바짝 붙이고는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더 깊게 공략했다.윤혜인은 본능적으로 손을
윤혜인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기력을 살짝 회복한 윤혜인은 바로 손을 내밀어 이준혁을 밀어내려 했지만 이준혁이 손을 덥석 잡았다.이준혁의 눈동자는 아까 나눈 키스로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살짝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아이까지 데리고 누구랑 결혼한다는 거야?”아이라는 말에 키스로 살짝 흐트러졌던 정신이 순간 말짱해졌다.‘그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 남자가 다치면 안 되는데.’윤혜인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차갑게 쏘아붙였다.“아이가 내 뱃속에 있으면 내 아이예요. 당신과 부부 사이도 아닌데 내가 누구랑 결혼하든 내 마음이죠.”덤덤하던 이준혁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달콤한 그녀의 입술을 맛보았는데 순간 거리가 확 벌어진 느낌이 들었다.이준혁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또박또박 서늘하게 말했다.“나는 허락 못 해.”윤혜인이 차갑게 웃었다.“준혁 씨 허락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내 결혼은 진짜예요.”이 말은 마치 이준혁이 올렸던 그 가짜 결혼식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윤혜인은 그 일을 신경 쓰는 티가 많이 났다.이준혁이 그윽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 결혼은 가짜야. 왜인지 알아? 너는...”“이준혁 씨.”윤혜인이 이준혁의 말을 차갑게 잘라버렸다.“나를 위해서 그런다는 말로 나 사랑한다고 하지 마요. 나는 그런 사랑 필요 없어. 알아들어요?”이준혁의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윤혜인은 멈추지 않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당신이 그런 선택을 한 순간 우리 사이는 끝났어요.”“아니. 혜인아. 우린 아직 안 끝났어...”이준혁이 윤혜인의 손을 꼭 잡더니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눈시울이 빨개졌다.“아니야. 안 돼.”“이준혁 씨.”윤혜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나를 위해서, 나를 지키려고 세운 계획이었지만 내가 받은 상처도 다 진짜예요.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당신을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