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지민은 아이를 원래부터 원하지 않았고 최근 있었던 출산 전 검사 후에는 더더욱 그 아이를 지우고 싶어졌다.이번 사건을 통해 윤혜인의 손을 빌려 아이를 없앤 것은 계획대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얻은 결과가 있었다.원지민은 이 사건을 이용해 윤혜인을 감옥에 넣고 그녀가 임신한 아이까지 없애려고 했다.하지만 원지민의 계획은 곧 그녀의 비서가 전한 소식으로 물거품이 됐다. 비서는 소심하게 말했다.“아가씨, 그 여자를... 이 대표님께서 풀어줬습니다.”“뭐라고?”원지민은 분노에 차서 비서를 노려보았다.그러자 비서는 작은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했다.“그 여자를... 이 대표님께서 풀어줬습니다.”곧 원지민은 물 주전자를 집어 비서의 얼굴에 던지며 소리쳤다.“이 쓸모없는 놈! 내가 그 여자를 감옥에 넣으라고 했잖아! 후문에는 CCTV도 없는데... 네가 끝까지 내가 밀렸다고 주장했으면 분명 그 여자를 감옥에 넣을 수 있었을 거라고!”이런 계획을 세우며 원지민은 윤혜인이 자신을 잡아주길 유도한 것이었다.만약 윤혜인이 손을 내밀었다면 아이는 물론이고 그녀 자신도 심각한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그리고 원지민은 윤혜인이 자신을 밀쳤다고 주장하며 사건을 조작할 생각이었다.그렇게 되면 원지민은 간단히 빠져나가고 원하지 않았던 아이를 잃게 되며 윤혜인은 법적 문제에 얽히게 될 것이었다.그러나 예상보다 똑똑했던 윤혜인은 함정에 빠지지 않았고 그래서 원지민은 자신만 아이를 잃은 것을 그저 넘길 수 없었다.하여 이 일로 반드시 윤혜인을 감옥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그런데 비서가 이 간단한 일을 망쳤다. 비서는 끓는 물에 맞고도 피하지 않으며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이 대표님의 비서가 저를 막았어요. 만약 거짓 증언을 하면 바로 저를 첫 번째로 감옥에 보내겠다고 경고했습니다.”화가 난 원지민은 또 다른 물건을 던지며 소리쳤다.“겁을 준다고 그냥 믿은 거야? 증거가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금 당장 가서 신고해, 그 여자를 잡아넣으라고!”비서
원지민은 이준혁의 말을 듣고 순간 얼어붙었다.아이를 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내 아이는 이미 죽은 거 아니었어?’그러나 이준혁이 손뼉을 치자마자 주훈이 흰 장갑을 끼고 검은 천으로 덮인 작은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그 순간, 원지민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졌다.무언가를 직감한 듯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몸을 떨며 소리쳤다.“오지 마! 제발 오지 마!”하지만 주훈은 원지민의 말을 무시하고 이준혁의 명령만을 따르며 상자를 그녀 앞으로 가져갔다.천이 걷히자 원지민은 그 안에 든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아아아아!!!”짧은 침묵 후, 그녀는 소스라치게 비명을 질렀다.상자 안에 있는 것은 더 이상 아기라고 부를 수 없는 끔찍한 모습이었다.네 개의 다리와 여덟 개의 손가락 얼굴은 둥글지만 코와 입이 없는 흉측한 형상이었다.이 아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숨을 쉴 수 없었고 곧바로 질식해 죽을 운명이었다.원지민은 이 광경을 보자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곧 역겨움과 혐오가 담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최신 4D 초음파 검사를 통해 그 아이의 기형을 미리 본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의사들은 원지민에게 이 아이가 호르몬 약물 복용으로 인해 변형되었다고 말했다.임신 후에도 아름다움을 유지하려고 그녀는 계속해서 호르몬 약물을 복용했고 이로 인해 아이의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특히 아이가 이준혁의 아이가 아님을 알게 된 이후, 원지민은 약물 복용에 더욱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과거의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해 더욱 많은 약물을 복용했고 결과적으로 아이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아이의 체내에는 너무 많은 수은이 축적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했다.이러한 아이가 배 속에 계속 있었으니 원지민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원지민은 이 아이가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윤혜인을 이용해 아이를 없애려는 결심을 굳혔다.병원 의사들도 이미 그녀에게 매수되어 있었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 즉시 비밀
원지민은 처음으로 이준혁에게 두려움을 느꼈다.원래는 병약해져 죽어가야 할 이준혁이 이렇게까지 무서운 존재일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이 남자한테는 내가 모르는 게 얼마나 더 있는 거지?’긴장감에 원지민은 주먹을 꽉 쥔 채 애써 미소를 지어 분위기를 가볍게 넘기려 했다.“준혁아, 농담이지? 이런 농담은 좀...”하지만 이준혁의 눈은 차갑게 반짝였다.“농담 아니야. 내가 네 아들의 죽음을 억울하지 않게 해줬잖아. 혜인이는 곧 서울을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그가 하는 말에서 묻어나는 냉기를 감지할 수 있었기에 원지민은 잠시 말을 잃었다.그녀는 분명히 느꼈다.만약 지금 충분하지 않다라고 말하면 이준혁은 주저 없이 자신의 목을 조를 것이라는 걸 말이다.때문에 원지민은 최대한 순종적인 태도를 취하며 말했다.“이 일은 준혁이 네가 알아서 해.”이준혁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지만 그 미소 속에는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숨어 있었다.“원지민, 정말 이렇게 순순히 행동했었다면 넌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거야.”원지민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좋은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는 공포에 떨며 물었다.“이준혁, 대체 뭘 하려는 거야?”그의 차가운 태도가 단순한 위협이 아님을 곧 알게 되었다.이준혁의 얼굴은 상냥했던 표정에서 급격히 차갑게 변했고 목소리마저 얼음처럼 냉정했다.“원지민, 난 해야 할 말은 이미 다 했어. 하지만 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지.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어.”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운 얼음처럼 변하며 그는 무자비하게 말했다.“그러니까 여기서 조용히 쉬어. 결혼식이 열리는 날까지.”그러자 원지민은 입을 크게 벌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사실상 그녀를 감금하겠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이준혁! 난 네 신부지 죄수가 아니라고! 날 이렇게 가둬둘 순 없어. 네가 나한테 이렇게 하면 우린 결혼 못 해!”원지민은 이 말이 자신에게 있어
‘임호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이 아이를 지키려고 했었잖아. 이제 이 괴물 같은 아이가 임호와 함께 저승길을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황천길에서라도 둘이 같이 있을 수 있을 테니 어쩌면서 좋은 일일지도 몰라.’하지만 마음속에 남은 불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아이가 이제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 건 사실이지만 원지민은 손해 보는 거래는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녀의 아이가 죽었다면 반드시 그 대가로 몇 배의 생명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결혼식이 끝나면 찰스 가문을 통해 윤혜인과 그 가족을 전부 없애버릴 계획이었다.‘이준혁... 그 여자를 보호하겠다고?’원지민은 비웃었다.서울에서는 찰스 가문의 손이 미치지 못했지만 외국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윤혜인이 출국하면 원지민의 한 마디에 그녀는 즉시 사라질 운명이었다....병원에서 돌아온 윤혜인은 지쳐 쓰러지듯 잠에 빠졌다.곽경천은 소식을 듣고 동생을 찾으러 왔지만 깊이 잠든 그녀를 깨울 수 없어 조용히 기다렸다.새벽이 되어 잠에서 깨어난 윤혜인은 소파에서 잠든 곽경천을 발견했다.윤혜인은 조용히 담요를 가져와 그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 하지만 그 작은 움직임에 곽경천이 깨어나며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혜인아!”그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윤혜인은 오빠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그의 팔을 가볍게 두드리며 안심시켰다.“오빠, 나 여기 있어.”곽경천은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괜찮아?”그러자 윤혜인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응. 괜찮아.”하지만 곽경천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그 여자 너를 몇 번이나 해치려 했어. 오빤 그냥 두지 않을 거야.”분노하는 곽경천을 달래며 윤혜인이 말을 이었다.“오빠, 그러지 마. 우리 그 사람들이랑 싸우지 말자. 서울은 우리 땅이 아니야. 그냥 떠나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아버지도 연로하셨는데 굳이 계속 싸우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윤혜인은 조용히 덧붙였다.
지금 모든 것이 변해버린 상황에서 윤혜인은 이 다리를 다시 한번 건너기로 결심했다.이제 이곳에서 모든 것을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말이다.다리 위에 서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고 윤혜인의 눈에는 멀리 있는 이선 그룹의 거대한 네온사인이 들어왔다.‘이선’이라는 두 글자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정말 멋지지 않아?”한 남자의 목소리가 윤혜인의 귀에 들려왔다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한구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윤혜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하지만 한구운은 윤혜인의 표정 변화를 전혀 개의치 않고 깊고 검은 눈으로 빛나는 두 글자를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나도 여기 서서 보는 걸 좋아해. 여기에 서면 저 고층 건물을 아주 선명하게 볼 수 있거든.”곧 윤혜인이 돌아서서 가려 하자 남자는 그녀의 팔을 단번에 붙잡았다. 그러자 윤혜인이 힘껏 팔을 빼려 하며 소리쳤다.“이... 이 손 놔요!”하지만 한구운은 손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하게 윤혜인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한구운... 으음...”그는 윤혜인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파묻으며 남은 말을 삼켜버리도록 했다.그 어두운 눈빛에는 광적인 기운이 감돌았다.“흥분하지 마. 난 그저 너와 대화하고 싶을 뿐이니까.”윤혜인은 숨이 막혀서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애초에 남녀 간의 힘의 차이는 너무나 컸고 그녀는 몸부림칠수록 체력이 고갈될 뿐이었다.그래서 윤혜인은 최대한 몸에 힘을 풀며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한구운은 윤혜인이 얌전해진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어릴 때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말은 바로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었어. 왜 저 사람은 떳떳하게 소위 말하는 부자의 삶을 누리는데 나는 누구에게나 미움받고 쥐새끼처럼 숨어 살아야 하는 사생아로 살아야 했을까?”윤혜인은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고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손을 가방 쪽으로 움직였다.한구운은 술을 많이 마신 듯 말할 때마다 술 냄새가 약
윤혜인은 팔목을 세차게 들어 올려 한구운의 가슴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지지직...”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나며 한구운은 짧은 신음을 내뱉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윤혜인은 손에 들린 작은 호신용 전기 충격기를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차갑게 말했다.“지금처럼 한구운 씨는 힘이 세다는 이유로 남을 억누르고 강자처럼 행동하잖아요. 그런 사람은 절대 남의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한구운은 윤혜인이 자신을 전기 충격기로 공격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전혀 대비하지 못한 그는 온몸의 힘이 빠져 몇 번이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겨우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뿐 그녀를 제어할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가슴을 부여잡고 한구운은 창백한 얼굴로 윤혜인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그 남자는? 이준혁이 지금 널 이렇게 대하는데도 넌 이준혁이 일하는 곳을 이렇게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는 거야? 이준혁이 그렇게도 좋아?”그러자 핏기조차 없는 얼굴로 윤혜인이 고개를 숙였다.“이준혁 씨와는 이미 끝났어요. 내가 여기 서 있는 건 그 사람을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예요...”그 말만 남기고 윤혜인은 돌아서서 떠나버렸다.곧 한구운의 뒤에서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경호원이 나타나 그를 부축했다.경호원들은 떠나는 윤혜인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도련님, 저분을 막을까요?”“그럴 필요 없어.”한구운은 전기 충격으로 인한 가슴의 고통이 조금씩 가라앉자 몸을 세우며 멀리서 빛나는 건물을 바라보았다.그의 까맣고 깊은 눈동자에는 차가움과 잔혹함이 서려 있었다.지금 그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모든 것을 차지하게 되면 그때 그 몰락한 자가 무엇을 가지고 자신과 맞설 수 있을지 두고 보겠다는 생각뿐이었다.‘여자는 돈과 시간만 들이면 언제든 내 손에 들어올 수 있어.’한구운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은 아무도 존중하지 않으며 무엇 하나 가질 수 없다는 것을.그래서 그는 이 중요한 순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었다.
“네, 문제없습니다. 내일 파리 한 마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겁니다.”이준혁은 멀리서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듯 그곳을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래. 그때 바깥에서 상황 좀 봐줘.”주훈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대표님, 그래도 제 생각엔 제 옆에 계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현재 이준혁의 건강 상태를 고려했을 때 주훈은 그를 잠시도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다가오는 결혼식을 앞두고 주훈은 바깥일을 마무리하느라 밤낮없이 일했고 이제는 그 중요한 순간에 이준혁의 곁을 지키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지난번 폭탄 사건 같은 일은 다시 일어나게 둘 수 없었다.필요하다면 주훈은 이준혁을 대신해 기꺼이 희생할 생각이었다.주훈이 이렇게 결심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하나는 이준혁이 그를 발굴하고 키워준 은인이라는 점에서였다. 그 누구도 주훈을 믿지 않던 시절 이준혁은 그를 직접 길러냈다.다른 하나는 이준혁의 지혜와 능력이었다.이준혁의 머리는 마치 금융이라는 폭풍 속에서도 안정적인 항해를 이끄는 배와 같았고 그 덕분에 한국의 금융 시장이 외국인들에게 짓밟히지 않고 높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국가의 명예를 세우고 외세에 무시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주훈이 지켜온 신념이었다.그래서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국가에 기여하고 있는 이준혁 같은 사람을 지켜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괜찮아. 바깥도 중요해.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엔 내가 불안하니까.”이준혁이 환한 빛 속에 앉아 있었지만 주훈은 그가 어느 순간 먼 곳으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하지만 그 느낌은 잠시였고 이준혁의 말에 금세 설득당했다.이준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덧붙였다.“내부는 W에게 맡길 거야.”W는 이준혁의 해외 프로젝트에서 가장 신뢰받는 인물이었고 주훈과 맞먹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게다가 W는 위험한 상황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위기 대처 능력은 오히려 주훈보다 더 뛰어났다.주훈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준혁의 지시에 따랐다.“알겠습니다, 대표님.”“이제 나가봐.
잠시 멈춰서더니 그는 금고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여기에 제가 쓴 편지가 있습니다. 나중에 혜인이에게 같이 전해줘요.”하지만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서류를 받지 않고 탐색하는듯한 시선을 던졌다.“대표님, 혹시 저한테 숨기고 있는 다른 일이 있는 건가요?”“아까부터 왜 이렇게 예의를 차리십니까? 대표님은 무슨, 말씀 편하게 하세요. 다른 일은 없고 전 그저 미리 대비하는 것뿐입니다.”이준혁은 무표정하게 답했다.남자는 몇 초간 침묵한 후 입을 열었다.“중요한 일을 논의하는 거니 그래도 예의를 차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혜인 씨는 좋은 사람이예요. 그건 저도 알 수 있어요.. 예전부터 늘 대표님을 마음에 두고 있었잖아요. 게다가 대표님 건강도 아직 회복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요. 굳이 모든 길을 끊을 필요는 없어요.”그러자 이준혁은 갑자기 가볍게 웃었다.이후 그는 자신의 바짓자락을 걷어 올리며 말했다.“봐요. 내가 아직도 선택지가 있어 보이나요?”원래 탄탄했던 그의 종아리는 앙상하게 뼈만 남아 있었다.이렇게 마른 다리로 키가 190에 가까운 남성의 몸을 지탱했다는 것이 상상하기 어려웠다.게다가 다리 위로는 짙은 자주색과 보랏빛으로 부어오른 혈관이 뒤덮여 있었고 독이 퍼지면서 그 혈관들은 더욱 검은 자줏빛을 띠고 있었다.이 다리는 이준혁의 잘생긴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그 자체로 섬뜩했다.심지어 세상 풍파를 많이 겪어본 맞은편의 남자도 미간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이준혁의 표정은 허망함을 지나 더 이상 담담해질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해졌다.“저는 혜인이에게 행복을 줄 수 없어요. 차라리 깨끗이 놓아주는 게 낫습니다.”맞은편 남자의 표정도 침울해졌고 더 이상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많은 일은 직접 겪지 않으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윤혜인은 아버지와 며칠간 해외에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해외 온라인 운영 회사의 일로 바빠졌다.그녀는 몇 년간 곽씨 가문에서 건강을 잘 챙겼기 때문에 임신 초기
소원이 집을 나선 후, 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영숙에게 연락해 선미의 거처를 물었다.주소를 받은 소원은 택시를 타고 선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차 안에서 소원은 내내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그것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고 오랜 세월 동안 이 일을 떠올리는 것조차 두려웠다.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기 때문이다.사실 처음에는 소진용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소진용은 늘 강인한 사람이었다.한이 그룹이 그동안 여러 차례 큰 위기를 겪었지만 소진용은 늘 이를 버텨냈었다.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었다.한 번은 큰 실수가 발생해 회사가 파산하고 수십억대의 빚을 질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그때 아버지는 가족을 한자리에 모아 최악의 상황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었다.“걱정하지 마라. 이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경우일 뿐이야. 어떤 일이 있어도 너희를 버리지 않을 거야. 내가 있잖아. 파산하면 어때? 천천히 갚으면 되고 집을 팔고 전세로 가도 괜찮아. 결국 가족이 함께 있다는 게 제일 중요한 거야.”결국 그 일은 순조롭게 해결되었고 소진용의 뛰어난 스트레스 대처 능력과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큰 힘이 되었다.그런 소진용이 왜 그때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소원은 이해할 수 없었다.‘당시 파산과 청산을 맞닥뜨린다 해도 과거의 상황보다 더 심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게다가 그녀와 전미영에게 단 한 마디도 남기지 않고 떠난 것은 소진용답지 않은 행동이었다.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의문투성이였다.머리가 터질 듯 아픈 소원은 눈을 감고 천천히 진정하려고 했다.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잠시 후 소원은 눈을 떠 창밖을 바라보았다.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 차량이 멈춰 있는 순간, 옆 차선의 컨버터블 스포츠카에 앉아 있는 사람이 서현재라는 사실을 알아챘다.소원은 깜짝 놀라 입을 열었지만 ‘현재야’하고 나지막한
“알겠어요, 언니. 꼭 그렇게 할게요.”강민혜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둘은 어느새 안상철의 집 근처까지 도착했다.이곳은 20년 넘게 재개발되지 않은 오래된 동네였다. 현재는 철거를 앞두고 있었는데 만약 철거가 시작되고 나서 이곳에 왔다면 안상철의 집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안상철의 집은 매우 낡은 삼층짜리 오래된 건물 안에 있었다.소원은 3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오랜 세월이 지난 만큼 과연 안상철이 여전히 여기 살고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게다가 안상철이 정말로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도망쳤을 가능성도 있었다.잠시 후 문이 열리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나타났다.노인은 물었다.“누구를 찾으시는 겁니까?”소원은 노인을 알아보지 못했고 집 안을 둘러봤지만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르신, 혹시 여기가 안상철 아저씨 댁인가요?”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상철? 그런 사람 모르오.”소원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어르신, 이 집에 새로 이사 오셨나요?”그러나 노인은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우리 집에는 나랑 아내밖에 없소.”소원은 다시 물었다.“그럼 이전에 살던 분이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아세요?”노인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소원을 바라보았다.“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곧 소원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어르신, 이전에 살던 분이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아세요?”그러자 노인은 갑자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돈 달라는 거요? 돈 없으니 다른 데 가서 찾으시오.”그러고는 문을 쾅 닫아버렸다.소원은 한숨을 쉬었다.“...”안상철은 이미 이사 간 것이 분명했다. 이번에도 단서가 끊긴 것이다.강민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제가 나중에 동료들에게 부탁해서 안상철 가족의 출입국 기록을 한번 확인해볼게요.”하지만 강민혜는 팀장이 아니라 일반 경찰관이었기에 이런 일은 정식 절차를 거쳐야 했다.이번에는 주소를 얻은 후 바로 오긴 했지만 그녀
“찾을 수 있을 거예요.”소원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그건 예전에 안상철의 딸 덕분이었다.한 번은 그 아이가 병을 앓던 날, 폭우까지 내리던 날씨 속에서 안상철이 딸을 데리고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실패했다.마침 그때 소지용이 안상철에게 업무와 관련된 전화를 걸었고 통화 중 안상철의 상태가 이상함을 눈치챈 소진용은 사정을 듣고 바로 차를 몰아 그 아이를 병원까지 데려다줬다.소원 역시 그때 차에 동승했으며 병원으로 가는 동안 아이를 돌봐줬던 기억이 있었다.“그럼 다행이네요.”강민혜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평소 그녀는 당찬 성격으로 팀에서는 ‘남자보다 더 남자 같은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소원 앞에서는 왠지 모르게 수줍음을 타는 모습이었다.소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민혜 씨, 괜찮으면 저를 언니라고 불러요. 소원 씨라고 부르는 건 너무 딱딱하게 들리잖아요.”강민혜는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해 했다.“그럼 제가 소원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강민혜는 소원과 자신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소원은 명문가의 장녀였고 자신은 후원이 필요했던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생활 방식부터 교육까지 모든 것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하지만 다른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거리낌 없이 공적인 태도로 대할 수 있었던 그녀도 소원만큼은 다르게 느꼈다.직접 만나본 소원은 소진용처럼 정직하고 선하며 강한 사람이었다.소원 가족은 강민혜에게 은인이었고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소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물론이죠. 민혜 씨 같은 동생 있었으면 참 좋았겠어요.”만약 동생이 있었다면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렇게나 버거운 시간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심리적으로도 더 안정적이었을 것이다.소원은 강민혜를 보며 어릴 적 부모님이 동생을 낳으셨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난 아기가 떠올랐다.그 사건으로 온 가족이 한동안 큰 슬픔에 잠겼었다.비록 아무도 그 아기를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잊지 못하
“알겠어요, 여보.”윤혜인은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아, 그리고 다음 주에 센디오로 출장 가야 해.”윤혜인은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비록 이씨 집안은 재력이 풍부했지만 윤혜인은 계속 일을 하고 싶었다.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산후 우울증에 걸리기 쉬웠기 때문이다.일은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하나의 방법이었다.다행히 이준혁은 그녀의 복직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다른 남편들처럼 집이 넉넉하니 아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며 남편을 보살피라는 식의 생각을 하지 않았다.오히려 윤혜인의 복직을 먼저 제안한 사람도 이준혁이었다.그는 그녀의 감정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고 말했다.“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일하러 나가도 돼.”윤혜인은 그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다음 주?”이준혁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일정 조정해서 데려다줄게.”“괜찮아요. 당신 일도 중요한데요.”윤혜인은 남편이 자신의 일을 제쳐 두는 게 부담스러웠다.“걱정 마. 잘 조정할 테니까. 내 아내만큼 중요한 건 없어.”이 말에 윤혜인의 가슴은 달콤함으로 가득 찼다.“알겠어요. 내 일도 이틀 정도 비울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우리 이번 기회에 휴가처럼 보내요.”아이가 생긴 이후로 둘이 함께 여행을 간 건 너무 오래전 일이었다.게다가 집에는 문현미와 홍승희를 비롯한 여러 도우미들이 있어 아이들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좋아. 벌써 기대돼.”이준혁은 설렘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이어서 덧붙였다.“여보, 지난번에 내가 사준 그 잠옷 가져갈 수 있어?”“그거요?”윤혜인의 얼굴이 빨개졌다.그 잠옷은 일종의 코스튬 같은 옷이었다.그녀가 과거 이선 그룹에서 이준혁의 비서로 일했을 때 입던 정장을 변형한 스타일이었다.하지만 원래 정장보다 훨씬 노출이 심했고 필요한 부분이 다 드러나는 디자인이었다.“응. 난 당신이 그거 입은 모습이 너무 좋아.”그는 자신의 취향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그 잠옷을 입은 윤혜인을 보면 그는 스스로를
소원은 육경한이 회사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그는 간단한 집안 차림새를 하고 있었고 서재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 한참 동안 서재에서 일하고 있었던 듯했다.그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소원에게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부드럽게 말했다.“머리도 제대로 못 빗고 뭘 이렇게 서둘러?”소원의 심장이 조여왔다.강민혜와 함께 조사하려는 일이 그와도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그가 눈치채지 않게 하려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혜인이가 같이 잠깐 나가자고 해서.”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육경한은 이내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래.”더 이상 캐묻지 않고 그는 도우미의 손에서 국을 받아 들고는 말했다.“기운 좀 보충해. 어젯밤에 힘 좀 썼잖아. 마시고 나가.”소원은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가 의심할까 봐 얌전히 국을 받아들고 마셨다.“다 마셨어.”곧 도우미가 다가와 그릇을 치웠고 육경한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잠깐 기다려. 옷 갈아입고 데려다줄게.”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소원이 급히 말했다.“아니, 괜찮아.”“응?”육경한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원은 손바닥을 꽉 쥔 채 아무 설명 없이 말했다.“그냥 싫어.”육경한은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알겠어. 그럼 기사 불러줄게.”소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혜인이가 차 보내줬어.”그 말을 듣고서야 육경한은 걱정을 조금 내려놓았다. 윤혜인의 집안 차량이라면 안전도가 높아 별문제는 없을 테니 말이다.“그래, 다녀와.”그는 소원을 현관까지 배웅하며 그녀가 차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행히 그녀는 미리 계획해 둔 덕분에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윤혜인의 스카이 별장은 이곳에서 멀지 않아 그녀가 메시지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량이 도착했다.소원은 전화를 걸었다.“혜인아, 고마워. 나 나왔어.”“고맙긴.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꼭 말해야 해, 알겠지?”윤혜인은 소원을 걱정하고
소원은 육경한이 그렇게 말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결국 남자는 활이 이미 당겨진 상태라면 멈추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의 신체적인 변화는 너무나도 분명했기 때문이다.소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 그는 더 이상 손발을 함부로 놀리지 않았고 꽤나 얌전하게 행동했다.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것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듯했다.별장에 도착하자 소원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육경한의 손에 손목이 잡혀 멈춰야만 했다.육경한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내가 너를 봐줬는데 너는 나 안 도와줄 거야?”소원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계하며 물었다.“내가 어떻게 도와줘? 설마 차 안에서 또 하려는 건 아니지?”“아니야.”육경한은 단호하게 부정하며 말했다.“내 방패가 돼 달라는 거야.”소원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사이 육경한은 차에서 내려 소원을 품에 안아 올렸다.그러자 소원은 육경한의 품에 움츠러들었고 그가 그녀에게 덮어준 재킷이 적당히 민망한 것을 가려주었다.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긴 했다.소원은 더 이상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많기에 그를 자극하면 자신의 행동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남자는 그녀를 방으로 데려간 후 침대에 던지듯 올려놓았다.쿵 소리가 나며 소원은 부드러운 침대에 깊이 파묻혔다.“뭐 하는 거야!”놀란 소원이 외쳤고 육경한은 몸을 숙여 그녀를 눌렀다.“숙제 계속해야지.”소원은 몸부림쳤다.“안 한다고 하지 않았어?”남자는 그녀의 목덜미를 가볍게 물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피를 빨아낼 듯 굶주려 있었다. 소원은 찌릿찌릿한 통증을 느꼈다.“차 안에서는 안 한다고 했지. 집에서는 안 한다고는 안 했어.”그는 불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이후 모든 말은 흔들리는 침대 위에서 사라졌다.지칠 대로 지친 소원은 그만 정신을 잃고 잠이 들었다.육경한
육경한은 그녀의 말을 듣고 옅게 미소 지었다.“넌 내 아내야. 아내랑 하는데 무슨 수단이 필요하겠어?”그는 소원의 부드러운 몸을 따라 손길을 내려보내며 신중하게 그녀의 모든 민감한 부분을 자극했다.두 사람의 몸은 이미 한 번 완벽히 맞아 들었던 경험이 있었고 그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지난번 그 불꽃 같은 밤 이후, 이 감정은 다시금 불타오르고 있었다.육경한은 그녀의 몸을 자기 몸처럼 잘 알고 있었다.어디를 만지면 그녀가 민감해질지, 어디를 자극해야 몸이 반응할지, 육경한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얼굴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소원은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당... 당신 진짜 미쳤어! 이 손 치워!”하지만 육경한은 그녀의 거칠게 반항하는 모습조차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곧 그는 소원의 목덜미로 입술을 가져가 부드럽고 달콤한 숨결을 불어넣었다.“불편해?”그는 낮고 깊은 목소리로 물으며 그녀의 목을 가볍게 흡입했다.잠시 후, 육경한은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눈앞에 대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정말 불편해?”소원은 그의 손가락 끝에 맺힌 흔적을 보자 얼굴이 붉어졌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진짜 무슨 병 있는 거 아니야?!”육경한은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더욱 흐뭇해했다.“그래, 맞아. 난 너한테만 병이 있어.”그는 속으로 말했다. 그건 그리움의 병이었고 밤마다 소원을 떠올리며 잠 못 이루는 병이었다.소원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뼛속까지 각인된 병이었다.육경한은 늘 후회했다.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기회를 얻어 소원에게 더 잘 대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녀가 자신을 사랑했던 그 마음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소원은 육경한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그건 누구라도 반응했을 거야. 착각하지 마.”그녀는 애써 무심한 척하며 육경한의 행동에 기가 차 웃음을 흘렸다.“뭐 이런 거로 잘난 척하는 거야? 차라리 클럽에 가서 남자 찾는 게 낫겠다. 그 사
소원이 이렇게 말하자 육경한의 잘생긴 얼굴에 한층 더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알잖아. 난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아.”그가 방민아와 결혼했던 건 단지 소원 때문에 완전히 망가진 마음 때문이었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 선택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방씨 가문에 대한 미련은 이미 오래전에 끊어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죄책감 따위 남아 있지 않았다.육경한은 방씨 가문의 구세주가 아니다.그 멍청하고 생각 없는 남매를 계속 뒤치다꺼리해줄 이유도 없었다.그가 방민아를 무시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하지만 방민아는 변해 있었다.사랑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바뀌는 걸까?누군가는 스스로 치유의 길을 선택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길을 선택한다.결국 방민아와 육경한은 닮아 있었다.둘 다 사랑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무모한 존재들이었다.소원은 천천히 육경한을 올려다보며 비웃음을 지었다.“그렇겠지. 당신은 정이 없는 대신 누구에게나 쉽게 마음을 주는 사람이잖아. 도처에 널린 것들에겐 아무런 도전심이 안 들겠지.”그 말에 육경한의 눈빛이 번뜩였다. 분노가 서려 있었다.그는 오늘만큼은 감정을 억누르고 소원의 말을 받아넘기려 했지만 그녀의 한마디는 육경한의 신경을 건드렸다.“그래, 맞아.”그는 낮은 목소리로 냉소를 머금으며 말했다.“난 가시 돋친 걸 좋아하거든.”이와 동시에 그는 손을 들어 소원의 턱을 붙잡아 고정시켰다.“그래서 네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거야.”소원이 몸을 비틀며 불쾌한 듯 외쳤다.“이 손 놔!”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읍...!”소원은 온몸으로 저항하며 그를 밀쳐내려 했지만 남자는 오히려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육경한은 소원의 반항을 가볍게 제압했고 손놀림 하나로 그녀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그의 손이 피부 위를 스치자 소원의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그녀는 육경한의 입술을 물었고 겨우 두 마디를 뱉었다.“이...
소원은 육경한의 반응에 살짝 놀랐다.적어도 그녀를 질책하거나 화를 낼 줄 알았으니 말이다. 아니면 무언가 벌이라도 내릴 줄 알았는데 그의 표정은 지나치게 평온했다.마치 정말 단순히 소원을 데리러 온 것처럼 보였다.사실 방민아에게 했던 말은 거짓이었다.육경한이 그녀가 원본 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소원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그저 방민아의 마음속에 의심의 씨앗을 심고 싶었을 뿐이다.육경한은 조용히 차 문을 열었다. 소원도 거부하지 않았다.애초에 그녀는 오늘 육씨 가문의 차를 타고 온 상황이었다.운전기사가 앞 좌석에 앉아 차를 몰았고 두 사람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겉으로 보면 아름다운 남녀였지만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깊은 벽이 존재했다.오랜 침묵 끝에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네가 맞췄어. 네가 원본 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난 막지 않았어.”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영상을 방현수에게 넘겨줄 때,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소원이 그 영상을 터뜨리지 않을 거라는 희미한 기대가 있었다.왜냐하면 만약 영상이 퍼지면 방씨 가문과 밀접하게 협력하는 미우 그룹이 연루될 것이 분명했고 육연주처럼 가까운 가족도 휘말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너무 많은 문제를 동반한 일이었다.하지만 그는 도박에 졌다.소원의 마음속에는 육경한을 위한 단 1%의 여지도 없었던 것이다.미우 그룹 또한 그녀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왜 그 사람들의 죄악을 덮어주고 그들이 편히 살게 둬야 하지?”그날의 치욕을 떠올리자 소원은 눈빛이 붉게 물들었고 온몸이 떨렸다.“몇 번이나! 당신들 눈엔 다른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하찮은 거야?”“다른 사람은 나와 상관없어.”육경한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잘생긴 얼굴에는 얼음 같은 무표정만이 드리워졌다.소원은 그가 이제서야 그녀를 질책할 것이라 생각하며 말을 기다렸다.하지만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하지만 이번엔 네가 있어서, 난 그냥 두 눈을 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