촤락.홀에 있던 장막이 서서히 열렸다.뒤에는 티 없이 맑은 유리 벽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소원은 꼬박 하루 동안 실종된 서현재를 보게 되었다.그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길고 굵은 쇠사슬에 묶인 상태였다.입고 있던 옷은 구타로 인해 갈기갈기 찢어졌고 빨갛게 물든 채로 몸에 걸려 있었다. 다리는 너무 맞은 탓에 무릎과 발목은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지금도 너무 처참한데 린치는 끝나지 않았다.옆에 러닝을 입은 보디가드가 손에 든 쇠사슬을 휘두르고 있었다.철썩.한번 휘두를 때마다 고막이 아플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소원은 머리가 윙 했다. 마치 이 세상에 가학적인 그 소리만 남은 것 같았다.“육경한...”입술이 떨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버벅거렸다.“육경한, 제발 풀어줘. 현재랑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니까... 제발 풀어줘.”소원이 육경한의 소매를 잡고 몸무게를 전부 악마 같은 그에게 실으며 울부짖었다.“풀어줘... 풀어줘. 육경한, 풀어주라고.”소원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목은 어느새 갈라져 있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애원했다.육경한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 소원이 애원해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소원아. 내가 전에 너무 잘해줬어. 너도 이제 강해져야지.”육경한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 웃음이 어딘가 음침하면서도 섬뜩했다.“후회한다고 해서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야. 세상에는 용서할 수 없는 배신도 있어.”소원의 눈동자가 요동치더니 얼굴이 일그러졌다.육경한은 마치 사악한 뱀처럼 치명적인 독이 발린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이게 진짜 육경한이었다.재판 현장에서 사람에게 칭송받던 육경한의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육경한, 네가 뭔데 사람을 때려. 너 이거 범죄야. 너...”“하하하.”소원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육경한이 웃음을 터트렸다.“소원아, 정말 귀여울 정도로 순진하네.”육경한은 소원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품에 꼭 끌어안았다. 차갑
육경한은 소원을 끌고 유리 벽 앞으로 다가가 뒤에서 꼭 끌어안더니 억지로 안을 쳐다보게 했다.“어제 네 애인을 붙잡아간 사람이 누군지 알아?”소원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육경한이 말을 이어갔다.“서진태야.”소원의 눈동자가 커졌다.‘그럴 수가. 어르신이 왜...’육경한이 말했다.“방씨 가문을 통해 내가 무사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나 봐. 그래서 숨겨둔 자식인 서현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외국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죽어도 안 가겠다고 여기 남겠다고 했대.”“왜 안가겠다고 했을까?”육경한이 유리에 비친 소원의 얼굴을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소원은 서현재가 왜 안 가겠다고 했는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다 그녀를 위해서였다.서현재는 무슨 일이 있든 절대 그녀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버틴 것이다.육경한은 바로 이유를 알아챈 소원이 미웠다. 두 사람 사이에 이런 케미가 생겼다는 것에 질투 나 미칠 지경이었다.육경한이 음침하게 웃더니 말했다.“사실 바로 도망갔으면 나도 서씨 가문을 용서했을지 모르지. 근데 어리석게도 너의 천사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봐. 그만한 능력도 없으면서.”육경한은 소원의 턱을 움켜잡더니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똑똑히 보라고 말했다.“저 사람 서씨 가문 사람이야?”육경한이 입꼬리를 당기며 말했다.“서진태도 눈치가 참 빨라. 그냥 사업체 하나를 가져갔을 뿐인데 바로 서재현을 묶어서 업소로 찾아왔더라고. 혼쭐을 내주겠다면서.”소원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은 빨갛게 충혈됐지만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서진태가 직접 명령을 내려 서현재를 매질할 줄은 몰랐다.서씨 가문 산업을 지키기 위해 서현재의 목숨 따윈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서현재가 요즘 서씨 가문을 위해 낸 아웃풋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이다.육경한은 마치 소원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차갑게 귀띔했다.“서씨 가문의 산업 앞에서 숨겨둔 자식은 아무것도 아니지.”“어떻게 이렇게 모질게 대해요. 현재
이대로 지켜볼 수는 없었다. 절대 그럴 수 없었다.소원의 인생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서현재의 인생도 소원 때문에 똑같이 망가지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다.그랬다간 정말 그대로 미쳐버릴 수도 있다.“육경한, 원하는 게 뭐야...”소원이 육경한의 옷깃을 덥석 잡더니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소리를 질렀다.“도대체 원하는 게 뭐냐고. 말 좀 해봐.”“나를 신고할 때 이런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은 못 했나 보지?”육경한이 입꼬리를 당기며 말했다.“소원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면 그건 피했어야지. 저 사람 속죄하려면 아직 멀었어.”육경한의 미소는 전혀 온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육경한이 내뱉은 그 어떤 말보다 더 섬뜩하게 다가왔다.다리에 힘이 풀린 소원이 그대로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육경한,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풀어줘... 이러지 마. 정말 저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정말이야...”소원은 누구한테 빌어야 제일 효과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지시한 사람이 서진태라고는 하나 서진태도 결국 육경한이 두려워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 육경한의 마음이 풀려야만 서현재가 풀려날 수 있다.육경한은 바닥에 앉아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소원을 보며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원인 모를 짜증만 더 치밀어 올랐다.하여 소원을 턱을 들어 올리더니 가식적으로 웃었다.“네가 이렇게 비는데 당연히 기회를 줘야지.”소원은 순간 너무 기뻤다. 큰 충격을 받아 흐릿해진 대뇌는 육경한이 진심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었다. 그래도 육경한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 정말 고마워... 약속은 꼭 지킬게.”“에이, 일단 고맙다는 인사는 넣어두고.”육경한은 덤덤한 표정으로 다리를 들어 그녀의 손을 뿌리치더니 주름진 부분을 툭툭 털어내고는 옆에 있는 소종에게 지시했다.“서현재에게 전해. 외국으로 간다면, 소원의 목숨을 걸고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면 서진태에게 말해서 풀어줄 수도 있다고.”소원은 그대로 바닥에 주
저쪽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유리 벽이 진동하자 서현재가 그쪽을 바라봤다.서현재는 힘겹게 유리 벽을 향해 고개를 흔들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누나, 나 괜찮아요. 버틸 만해요... 그러니까 절대 나를 위해서... 그 사람한테 빌지 마요...”이 말에 매질이 더 혹독해졌다.서현재가 육경한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하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서진태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래도 안 되면 아예 말을 못 하게 해도 된다고 했다.서씨 가문이 작은 점포에서 지금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다 서진태의 독기와 과감함이 있었기 때문이다.아무리 숨겨둔 자식인 서현재를 예뻐했어도 일단 실망하면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풉.”서현재가 피를 왈칵 토해냈다.그는 고통에 몸을 웅크리려다 소원이 보고 걱정할까 봐 억지로 참았다.그러더니 웃음을 지으며 처참한 자기 모습만 비치는 유리 벽을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누나, 나 진짜 괜찮아요...”준수한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런 얼굴로 아무리 예쁘게 웃는다 해도 예쁠 수가 없었다.소원은 힘껏 유리 벽을 두드렸다. 어찌나 힘껏 내리쳤는지 손이 빨개지고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서현재. 너 바보야? 내가 뭐라고 이래... 정말 내가 뭐라고...”소원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하염없이 흘러내렸다.육경한은 기분이 잡쳤다. 그가 원하던 장면이 아니었다.‘허. 내 앞에서 절절한 드라마라도 찍겠다는 건가?’두 사람의 확고한 감정은 육경한을 더 자극할 뿐이었다.육경한이 소종에게 말했다.“표정을 보니 서현재 도련님 뭔가 불만 있어 보이는데?”이내 이 소식은 안에 전해졌다.철썩. 서씨 가문에서 보낸 사람이 힘껏 쇠사슬을 서현재의 얼굴에 내리쳤다.육경한의 화를 잠재울 수 있다면 뭐든지 해도 좋다는 서진태의 분부가 있었기에 내리칠 때 전혀 힘을 빼지 않았다. 쇠사슬을 거두는데 살점이 뜯겨 나가며 피가 터져 나왔다.한
아니, 절대 이대로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소원이 다시 그쪽으로 달려가 육경한의 종아리를 꽉 끌어안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육경한, 이제부터 네 말 들을게. 다 들을게... 이제 너를 해치겠다는 생각 버릴게. 그러니까 제발. 제발 부탁이야... 화풀이는 나 한 사람에게만 해. 이러지 마. 제발. 부탁이야... 현재에게 더는 빚질 수 없어... 정말이야... 더는 안 된다고...”소원이 육경한 앞에 꿇어앉은 채 눈물을 쏟아내며 비굴하게 애원했다.육경한은 철저히 굴복한 소원을 보고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그는 원래 좋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동정이라는 감정도 없었다.외국에서 몇 년간 지옥 같은 생활을 하면서 다짐한 게 있다면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때 절대 마음 약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가 오히려 자기가 다칠 수도 있다.소원이 서현재와 합심하고 그를 해치려 들었으니 그 교훈은 어떻게든 줘야 했다.하지만 육경한도 서현재가 죽는 건 원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소원의 마음속에 다른 남자가 들어가는 건 절대 싫었다.“소원아, 알텐데...”육경한이 다시 쪼그리고 앉았다. 말투가 드물게 매우 부드러웠다.“나는 너를 벌주고 싶은 게 아니야. 근데 네가 자꾸만 내 심기를 건드리잖아. 다음에도 그러면 정말 인내심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어.”“아니. 절대 그럴 일 없어...”소원이 육경한의 팔을 잡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절절하게 애원했다.늘 기세등등하던 소원이 지금은 힘을 쫙 뺀 채 약자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소원의 아리따운 얼굴까지 더해지자 그렇게 어여쁠 수가 없었다.소원은 그럴 자본이 있었다. 특히 유리구슬처럼 맑은 눈동자에 눈물이 가닥 차오르자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겼다.육경한이 지금 해야 하는 건 소원에게 교훈을 가르치면서 다른 마음이 생기지 않게 경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육경한은 미친 듯이 소원이 갖고 싶었다.육경한은 절대 원하는 걸 참은 적이 없었다.5
소원의 예쁜 얼굴이 순간 눈보다 더 하얗게 질렸다.육경한은 급해하지 않았다. 느긋하게 몸을 숙여 소원의 얼굴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아직도 망설이는 거야? 결정하면 그때 다시 얘기할까?”탈칵.문이 열리는 소리에 소원은 자극을 받았는지 몸을 파르르 떨었다.“가지 마.”소원이 육경한을 잡았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육경한의 벨트를 풀었다.전에 육경한과 여러 번 해봤기에 어떻게 해야 그가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소원의 손짓 하나하나에 육경한은 강렬한 자극을 받았다. 뇌에서는 도파민이 끝없이 분비되고 있었다.육경한은 이제 소원을 완전히 정복한 상태였다.그런 소원이 너무 매혹적이라 정말 뱃속에 꿀꺽 삼키고 싶었다.쿵.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육경한은 소원을 유리 벽에 바짝 몰아붙였다.소원은 맞은편에 있는 서현재를 보며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안 돼...”소원이 갈라진 목소리로 힘겹게 그를 불렀지만 결국 그 소리는 안으로 전해지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육경한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악마 같은 입을 열었다.“소원아, 고집을 부린 결과를 봐. 돌고 돌아 결국 내 시중을 들고 있잖아.”육경한의 모욕적인 말과 행동은 마치 고속도로 돌아가는 믹서기처럼 소원의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을 먼지보다 잘게 갈아버렸다.소원은 이제 자신이 더는 사람 같지 않았다.욕구를 해소할 구멍이 된 듯한 느낌이었고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짐승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아무 감정도 없는 갈취에 소원은 너무 아파 발가락까지 힘이 들어갔다.몸을 섞었지만 누구 하나 만족스럽지 않았고 아프기만 했다.두 사람은 오랫동안 해소하지 못한 분노를 안고 버티는 중이었다.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소원의 인생을 전부 돌아볼 만큼 말이다.육경한을 만나지 전에는 모든 게 꿀처럼 달콤했지만 육경한을 만난 뒤로 그녀의 인생에 남은 건 어둠밖에 없었다. 그런 인생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의식을 잃기 전 소원은
깨어나서 처음 한 일이 바로 울먹이며 다른 남자를 찾는 것이었다.소원은 육경한이 화나든 말든 그의 손가락을 꼭 잡고 말했다.“약속했잖아. 제발 좀 말한 대로 하면 안 돼?”육경한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의사는 소원의 몸이 해충에 잠식당한 나무와 같다고 했다. 겉보기엔 멀쩡해도 보여도 속은 이미 볼품없이 망가져 있으니 몸조리는 필수고 자극을 적게 받으면 몇 년 더 살 수도 있다고 했다.육경한은 씩씩거리며 원장을 찾아가 그 의사를 당장 자르라고 했다.돌팔이가 말을 함부로 한다고 생각했다. 몇 년 더 살 수도 있다니, 참 어처구니없었다. 소원은 이제 고작 20대인데 몇 년을 더 산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하지만 육경한은 그 의사의 말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고 더는 듣고 싶지 않았기에 다른 의사를 찾지도 않았다.하지만 몰래 영양사를 찾아 소원의 식단을 전문적으로 관리했다. 보양 식단을 엄격히 짜고 거기에 맞춰 꼬박꼬박 먹게 했다.소원은 육경한의 눈치를 볼 겨를이 없이 다급하게 물었다.“육경한, 내가 묻잖아.”소원은 자기가 지금 육경한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이에 육경한의 기분이 조금 좋아졌고 느긋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안 죽었어. 서진태가 치료할 수 있게 데려갔어.”소원은 그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몸이 좋아지면 소원 자신도 조사할 수 있는 내용이었기에 육경한도 그녀를 속일 필요는 없었다.“아참, 서진태가 너에게 고맙다고 전해달래.”육경한이 비아냥댔다.“서현재를 놓아줘서 고맙다고.”소원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서진태는 정말 고마운 게 아니라 서현재를 그만 놓아달라고, 더는 연락하지 말라고 에둘러서 경고하는 것이다.소원도 다시 연락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잘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했다.육경한은 간병인 손에서 뜨끈뜨끈한 전복죽을 건네받더니 말했다.“이만 나가봐요.”간병인이 가고 침대맡에 앉은 육경한이 인내심 있게 한 숟가락
그때 육경한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 핏덩어리가 자기 핏줄인지 아닌지 정식으로 조사하지 못했다.그런 상황에서 소원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은 것이다.게다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대 의학이 그렇게 발달했는데 소원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육경한의 아이로 둔갑할 리가 없었다. 하여 그의 아이를 잃었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어제 의사가 한 말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바로 그때 중절 수술을 책임진 의사를 알아냈다.조사한 결과 정말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알아냈다.그때 갑자기 어지럼증이 도졌던 의사가 중절 수술은 작은 수술이라 생각해 간호사에게 일임한 것이었다.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그 의사가 집도한 게 아니었다.그러니 중간에 누가 수작을 부려도 알 길이 없었다.육경한은 그때 그 간호사를 찾아내려 했지만 이미 이민 가고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리고 그 간호사가 이민 하러 가기 전에 부유한 티를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 간호사는 누군가에게 매수된 게 틀림없었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상했다.소원은 그때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제왕절개로 낳을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약물로 중절 수술을 했다면 의사가 지금 와서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던 흔적을 찾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시간을 따져보면 소원은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질 시간이 없었다.그렇다면 진실은 단 하나, 바로 소원이 몰래 그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육경한은 소원의 멱살을 꽉 부여잡더니 그녀가 고민할 새도 없이 계속 캐물었다.“소원아, 내 아이 어디로 빼돌렸어.”육경한의 강압적인 말투에 소원은 잠깐 넋을 잃었다. 그러더니 이내 귀싸대기를 날렸다.철썩.귀싸대기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병실을 가득 메운 소리가 이를 증명했다.육경한의 얼굴은 그 따귀에 한쪽으로 돌아가고 말았다.순간 잘생긴 육경한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소원아, 죽고 싶어서 환장...”“육경한.”소원이 소리를 꽥 지르더니 육경한의 말을 잘라버렸다.“네가 그 아이 얘기를 꺼낼 자격이 있어? 그래
말을 마친 주석훈은 손에 감았던 삼각 머플러를 풀어 칼을 깨끗이 닦은 뒤 다시 넣고는 진아연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참혹하게 죽은 채 혼자 남겨진 진아연은 숨이 멎는 순간에도 눈을 크게 뜬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지 못한 채로 죽어버렸다....집에서 하룻밤을 쉰 소원은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서둘러 병원으로 유진을 보러 갔다. 다행히 점점 좋아지는 유진의 상태에 소원은 안도했다.육경한은 그녀를 만나 최근에 확인한 소식을 알려주었다.“진아연이 죽었어.”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에 소원은 자리에 얼어붙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어떻게...”소원은 단서가 이렇게 쉽게 끊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진아연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을 알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었는데 이제 그녀가 죽었으니 그동안 애써 찾아낸 다른 단서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었다.순간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범인은 안상철과 같은 방식으로 진아연을 죽였어. 똑같이 67번을 찔렀어. 범인은 인체 해부에 아주 숙련된 사람이야.”소원은 경계심을 품으며 물었다.“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상철 삼촌을 죽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말이야...?”만약 정말 같은 사람이라면 이 범인이 아마도 아버지를 죽인 진범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이 두 사람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응, 내 추측도 그래. 너도 조심하고 경계심을 잃지 마.”육경한은 반지를 꺼내 소원에게 건넸다.“이거 받아.”반지를 본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이게 뭐야?”소원이 손을 내밀지 않자 그녀가 오해한 것임을 눈치챈 육경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이건 호신용 반지야. 끼고 있어. 안에 바늘이 있는데 그 바늘에는 독이 있어서 이 바늘로 찌르면 상대방은 온몸의 힘이 빠지게 돼.”반지의 기능을 들은 소원은 그제야 이 작은 물건이 유용한 곳에 쓰인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받아서 손에 꼈다. 하지만 결혼반지를 끼는 곳에 아니라 독신임을 상징하는 손가락에 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지만 주석훈은 여전히 온화하고 젠틀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이런 장면에 익숙해진 듯 별 반응이 없었다.마지막 몇 번의 칼질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진아연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칼날이 그녀의 살을 천천히 파고들며, 생명은 마치 촛불이 꺼지듯 서서히 소멸해 갔다.죽을 수 있을 만큼의 고통, 그러나 죽지 못하게 만드는 고통. 그야말로 가장 잔혹한 죽음이었다.기운이 다 빠진 진아연은 주석훈의 차분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알겠어... TV 뉴스에 나왔던 안상철의 죽음도 당신...”진아연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진작 알아차려야 했다.“당신... 맞지...”이제야 모든 진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늦어도 너무 늦었다...그날 현장에 있었던 그녀는 안상철이 도망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상철이 돈을 숨겨둔 곳까지 몰래 따라갔다. 그녀는 그 돈이 신비로운 인물이 준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신비로운 인물이 주석훈인지 몰랐다.안상철을 따라간 진아연은 그 돈을 손에 넣어 자신의 도피 자금으로 쓰려고 했다.그래서 안상철이 돈을 파내는 것을 보고 망치를 들어 안상철의 머리를 내리친 뒤 돈을 챙겨 차를 타고 도망쳤다.그 후 며칠 동안 숨어 지내며 안상철에 대한 소문을 기다렸고 그러다가 안상철이 칼에 여러 번 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칼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강하게 내리쳤을 뿐이었고 힘도 많이 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안상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얻는 것이었다.살인이 두려워서 안상철을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살인죄까지 뒤집어쓰면 도주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 시점에서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것은 스스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하지만 안상철을 죽인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 이렇게 점잖은 주석훈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아연이 물었다.“왜... 왜 그 사람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는 거야...”주석훈이
심지어 진아연은 얼마 전까지도 주석훈을 젠틀한 문화인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큰 착각을 한 것 같았다.진아연은 주석훈을 향해 아첨하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변호사님, 어떤 일이든 할게요. 제발...”“쉿!”주석훈은 두 번째 손가락을 입가에 올리며 ‘쉿’하는 소리를 냈다.‘쉿’하는 그 소리에 온몸에 식은땀이 난 진아연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번뜩이는 칼날을 휘두르던 남자는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를 찔렀다.“안녕, 나는 주석훈이야.”“으악!”진아연은 하늘을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칼은 급소를 찌르지 않았지만 충분히 고통스러웠다.이어서 또 한 번 칼을 휘두른 주석훈은 이번에도 급소가 아닌 뼈 사이를 정확히 찔렀다. 날카로운 칼날이 조금씩 몸을 파고들자 진아연은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주석훈이 친절하게 말했다.“여긴 무릎뼈가 있는 곳이야. 다음은 발목뼈, 아마 통증이 다를 거야.”“왜... 왜, 왜 이러는 거예요?”진아연은 쉰 목소리로 힘겹게 물었다.“세상 일에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네가 저지른 일에는 인과응보가 따르는 법이지. 지금 겪는 건 그저 그 대가일 뿐이야.”말을 하면서 그녀의 뼈 사이를 정확히 찌른 주석훈은 날카로운 칼날로 진아연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또다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주석훈은 들리지 않는 듯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하나만 말해줄게. 나는 사실 법의학자가 될 뻔했어. 예전에 인체 해부하는 것을 좋아했거든.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어. 변호사가 된 이유는 돈을 빨리 벌기 위해서야.”주석훈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진아연에게 이야기했다.고통에 죽을 지경인 진아연은 울며 말했다.“나를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육경한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렇게 말했지. 하지만...”주석훈은 뼈관절을 해부하며 말을 이었다.“너를 믿을 수 없어. 쓰레기 주제에 두 번째 기회를 바라다니, 꿈 좀 그만 꿔!”무자비하게 조롱하는 주석훈의 말에
진아연의 이름을 들은 육경한은 매우 침착하게 천천히 말을 뱉었다.”괜찮아, 아마 걔는 살 수 없을 거니까.”“...”황수진은 육경한이 진아연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고 매우 놀랐다. 그가 보기엔 이 신비한 사람이 진아연을 구출한 것을 보면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한 패거리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하였지만 뜻밖에도 육경한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육경한은 동네 정문 쪽 동영상을 보면서 이리저리 보다 지프차량이 진아연을 돌격하는 곳에서 멈추었다.차량은 아무런 인정사정이 없이 그 자리에서 사고를 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마도 진아연 단지 입구에서 죽는다는 것이 정말 번거롭고 또 잠재된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방안을 바꾼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이 방안은 집행될 것이고 이 신비한 사람은 절대 진아연의 목숨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황수진이 지프차를 보았는데, 분명히 가짜 번호판이었지만 조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그가 한국 본토에서 활동하는 한 날 중에는 언제든지 증거가 남게 될 것이다.반대편 차 안에서 진아연은 그곳을 본 후 안색이 어두워졌다."제트 씨, 왜 저를 이렇게 황량한 교외에 두셨어요? 택시를 타고도 돌아가기도 곤란해요."“여기 안 오고 들키고 싶어요?"제트의 기분은 나빠지자 진아연은 감히 말하기 무서웠다."그럼 제가 내려가도 되나요?"진아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후에야 천천히 진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내려요.“진아연은 기쁜 마음으로 차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주 쉽게 차 문이 열렸다. 그녀는 일종의 재난을 모면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매우 기뻤다는데 한 발이 발밑의 땅을 금방 밟았을 때, 뒤에서 누가 등이 세게 걷어찼다.진아연은 멀리 차여 입에서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고 마치 자신의 몸이 해체되는 것처럼 느껴졌다.차근차근 차에서 내려 진아연의 앞에 다가와 걸음을 멈춘 남자를 보고 진아연은 어리둥절해졌다.“왜... 왜 저를 발로 차요?"제트는
남자는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만약 제가 당신에게 기회를 준다면요?”“무슨 기회요?”진아연은 자신이 누구와 거래하는지 잊지 않고 전전긍긍하며 물었다.남자의 두 눈은 마치 별을 숨긴듯 하였다. 그는 반혹적인 어조로 말했다.“육경한을 죽일 기회를 줄게요. 만약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저는 당신의 잘못을 추궁하지 않고 평안히 출국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 진아연 씨, 어떻게 생각해요?”“정말이에요?”진아연은 그의 말을 정말 믿기 어려웠다.제트를 마주할 떄 진아련은 항상 착각에 빠졌다. 사실은 육경한을 죽이는 것보다 제트를 마주하는게 더 어려웠다. 이 두 문제를 함께 놓으면 비교가 될 것이다.왜냐하면 그는 아주 신비하기에 누구도 그의 배경과 내력을 알 수 없어 그와 상대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경한의 약점은 아주 많다. 소원이와 그녀 뱃속에 있는 아이, 그리고 망할 놈 유진이... 심지어 하나하나의 나쁜 계획은 이미 진아연의 마음속에서 형태를 갖추게 되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제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물론 정말이에요, 당신이 성공하면 저는 말한 대로 다시는 따지지 않을 것이에요. ”말하는 사이에 남자는 뒤에 쫓아오는 세 대의 차를 가볍게 따돌렸다.이 제트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마냥 무섭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진아연의 마음속에 있는 제트는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그녀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어 놀라지 않았다.진아연은 눈앞의 남자를 보면서 자신의 충성심을 알려 주었다.“제트 씨, 안심해요, 저는 반드시 임무를 완수할 거니까. 당신은 저를 죽이지만 않으면 됩니다.”“음, 기대가 되네요.”“...”뒤따라오던 세 대의 차가 앞차를 잃어버린 후, 경비원들은 실시간 정보를 병실의 VIP 라운지에 전달했다.유진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남자는 황수진보고 유진이의 휴식에 방해 안 되는 대기실에 오라고 했다.지금 육경한의 안색은 매우 안 좋았다.경호원들이 전송해 오는 화면
남자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잡히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또 오다니 정말 바보 중의 바보예요!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곳 경비원은 다른 동네 분들과 다를 줄은, 이곳 경비원은 정말 최고급 경호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여자가 원망하자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진아연, 당신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멍청한 사람인 것 같아요. ”진아연은 순간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가 라는 생각에 그녀는 그를 경계하면서 물어봤다.“누구세요? “남자는 침묵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 가리려고 마스크를 썼지만, 눈빛에 드러나는 냉랭함은 숨길 수 없었다. 진아연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나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당신이 바로 제트 씨이세요? ”남자는 그녀를 상대하지도 않고 부인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설명했다. 진아연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바지에 실수까지 할 뻔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늑대 무리에서 도망쳐 나와 호랑이 굴에 들어갈 줄을... "제트 씨... 아주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여기에 나타난 건 아니예요. 지금 당장 꺼질게요. ”놀라움은 하여금 진아연의 이성을 잃게 만들어 고속도로에서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릴 생각까지 하였다.제트와 비교했을 때, 지금 뒤에서 자신을 쫓아오는 경비원들이 구세주라고 생각되었다. 진아연은 제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필경 지난번에 그의 손에서 죽을 뻔했으니까... 진아연의 손이 차 문손잡이에 닿았을 때, 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진아연은 절망 속에서 두 손을 비비며 용서를 비는 자세를 취했다. “죄송해요... 제트 씨... 저 진짜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저를 놓아주세요. ”안장이 좁아서 진아연은 무릎을 꿇을 수 없어 두 손을 끊임없이 비비며 아주 작은 희망을 찾고 있었다.남자는 역시 수단과 방법을 숨기고 있었다. 뒤차의 추격을 피하는 동시에
여자가 작은 골목에 들어섰을 때, 경비원이 말했다. “아가씨, 길을 잘못 들었어요. 13동은 저쪽에 있어요.”여자는 할 수 없이 돌아섰는데 경비원이 다시 말했다. “아가씨, 친구 보러 처음 오셨어요?”여자는 이곳의 경비원이 왜 범인을 검문하는 것처럼 자신을 물어보는지 이해 안 가 속으로 욕했다.여자는 대충 대답했다.“네네, 처음 왔어요.”13동 문 앞에 오자 경비원이 직접 603의 초인종을 눌렀고 방울 소리가 울리자,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경비원은 여자보고 말하라고 고개를 돌렸다.“...”정말 어쩔 수 없어 여자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아이고, 배가 너무 아파요.”여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경비원은 즉시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경비원이 구급차를 부르는 사이에 여자는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도망쳤다.“거기서요!”경비원은 일반인보다 더 빠르게 반응해 무전기에 대고 빨리 저 검은 옷 입은 여자를 잡으라는 말을 했다.여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점점 닫혀 가는 문을 보며 당황해 어리둥절했다.“닫지 말아요.”안에서 경비원이 소리를 듣고 여자 쪽으로 돌진해 왔다. 그들은 마치 여기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듯 일반 경비원보다 속도가 더욱 빨랐다.바로 얼마 전 육씨 그룹이 이곳의 부동산을 사서 전문적인 경호원으로 바꾸어 수상한 인물을 주시하여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파출소로 보냈다. 여자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어디로 도망갈지 몰랐다. “저 여자 잡아요.”전에 여자와 얘기하던 경비원이 소리쳤다. 여자가 잡힐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펑!큰 소리가 나 그곳을 보자 검은색의 지프차 한 대가 돌진해 들어와 난간에 부딪혀 부서지는 것이 보였다.대중들은 모두 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어리둥절하여 반응하지 못했지만, 지프차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자, 경비원들은 모두 재빨리 몸을 피했다.유독 여자만 제자리에서 자신한테 향해 오는 것을 멍하니 보며 어찌할 바
소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유진이를 보러 갈래”“필요 없어”육경한은 단호히 거절하다 멈칫했다. 그러다 소원이 자신이 아이를 못 본다고 오해 할가봐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보고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일도 다 병원에 가지고 갈 거니까. 넌 휴식이 필요해. 알았어? “유진이 병으로 쓰러진 후 소원은 며칠 동안 거의 밤새 자지 못해 눈 밑에는 이미 짙은 다크써클이 생겼지만 그녀는 억지로 버티는 중이었다.소원은 유진이 자신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육경한은 무슨 일이든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직접 휴대폰 음성 메시지를 소원이에게 들려주었다.“아빠, 엄마 보고 잠자고 있으래요.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저는 삼촌이라고 부를 거예요. ”“엄마보고 많이 휴식하고 있으래요. 그렇지 않으면 뱃속의 아기가 천천히 자랄 거예요. 저는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어요. 아기한테 오빠가 지금 힘이 세니까 아기를 업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캐톡에서 유진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협박한 것을 보니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좋은 것 같았다. 유진이의 소리는 듣기에도 정신이 맑고 괜찮아 보였다.소원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생각해 보니 자기가 쉬지 않은 것을 아이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은 즉 유진에게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기에 소원이는 말 듣고 차에서 내려서 휴식을 취하러 갔다.네 명의 경호원은 육경한의 분부에 따라 두 명은 아파트 입구에 두 명은 계단 입구를 엄중히 지켜 사수의 파리 한 마리조차 날아 들어갈 수 없었다.육경한의 차가 떠나자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여인이 사방을 둘러보며 나타났다.그녀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채 마스크를 쓰고 수상한 모습으로 나타나 동네 경비원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저기요, 당신은 어느 건물로 가나요? 여기에서 뭘 하고 있습니까? “여인은 경비원한테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요... 사람을 찾고
주석훈이 웃으며 말했다.“허허. 몰랐죠? 저 평소엔 되게 허당이에요.”“변호사님 은근히 유머가 넘친다니까요.”주석훈은 언변에 능했기에 단 몇 마디에 간호사가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지었다.“저기는 왜 저런 거래요? 아까 길을 잘못 들었는데 막더라고요.”주석훈이 물었다.“아, 저기요.”간호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어떤 여자애 한 명 들어왔는데 가족이 살해당했다나 뭐라나. 실어증에 걸려서 한마디도 못 했는데 평소 믿고 따르던 언니가 와서 입을 열었다고 들었어요.”주석훈이 물었다.“여자애요? 많이 놀랐나 보네요.”“그러게요.”간호사가 대답했다.“가족이 칼 맞고 죽었는데 누가 견딜 수 있겠어요.”“억울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범인만 잡아도 다행 아니겠어요?”주석훈이 말했다.“어려울 것 같던데요?”간호사가 말했다.“뭐 유용한 단서가 안 나왔나 보더라고요. 아빠가 여자애를 지키겠다고 같이 들어가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 봤대요. 진술한 상황이 경찰이 알고 있는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경찰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만 내쉬더라고요.”간호사가 이렇게 많은 내용을 알 수 있었던 건 안지영의 간호를 책임진 간호사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주석훈이 더 물으려는데 다른 간호사가 들어왔다.“어? 이 간호사 있었네? 저쪽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 빨리 가봐.”이 간호사가 말했다.“알겠어요.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게요.”치료를 받은 주석훈이 이 간호사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이 간호사가 얼굴을 붉히며 괜찮다고 말했다.주석훈이 멀리 가고 나서야 다른 간호사가 이렇게 말했다.“이 간호사, 아까 저 사람이랑 무슨 얘기 했어? 저 병실에서 나온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 돼.”“저 별말 안 했어요. 다들 아는 내용 얘기해준 거예요.”이 상황에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인정하면 바보나 다름없었다.“그래. 앞으로 조심해. 자칫하다간 징계 먹을 수도 있어.”나이 많은 간호사가 귀띔했다.“알아요.”이 간호사가 얼른 대답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