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육경한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 핏덩어리가 자기 핏줄인지 아닌지 정식으로 조사하지 못했다.그런 상황에서 소원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은 것이다.게다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대 의학이 그렇게 발달했는데 소원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육경한의 아이로 둔갑할 리가 없었다. 하여 그의 아이를 잃었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어제 의사가 한 말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바로 그때 중절 수술을 책임진 의사를 알아냈다.조사한 결과 정말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알아냈다.그때 갑자기 어지럼증이 도졌던 의사가 중절 수술은 작은 수술이라 생각해 간호사에게 일임한 것이었다.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그 의사가 집도한 게 아니었다.그러니 중간에 누가 수작을 부려도 알 길이 없었다.육경한은 그때 그 간호사를 찾아내려 했지만 이미 이민 가고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리고 그 간호사가 이민 하러 가기 전에 부유한 티를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 간호사는 누군가에게 매수된 게 틀림없었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상했다.소원은 그때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제왕절개로 낳을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약물로 중절 수술을 했다면 의사가 지금 와서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던 흔적을 찾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시간을 따져보면 소원은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질 시간이 없었다.그렇다면 진실은 단 하나, 바로 소원이 몰래 그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육경한은 소원의 멱살을 꽉 부여잡더니 그녀가 고민할 새도 없이 계속 캐물었다.“소원아, 내 아이 어디로 빼돌렸어.”육경한의 강압적인 말투에 소원은 잠깐 넋을 잃었다. 그러더니 이내 귀싸대기를 날렸다.철썩.귀싸대기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병실을 가득 메운 소리가 이를 증명했다.육경한의 얼굴은 그 따귀에 한쪽으로 돌아가고 말았다.순간 잘생긴 육경한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소원아, 죽고 싶어서 환장...”“육경한.”소원이 소리를 꽥 지르더니 육경한의 말을 잘라버렸다.“네가 그 아이 얘기를 꺼낼 자격이 있어? 그래
육경한은 입술을 앙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래서 지금 뭘 증명하고 싶은 건데?”소원이 매정하게 비웃었다.“매정한 살인자라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거야? 자기 아이까지 살해한 그런 독한 사람이라고?”한참 침묵하던 육경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아니, 나는...”사실 육경한은 아이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이와 같이하는 미래까지 상상했던 적이 있다.부모님이 처참하게 세상을 떠나고 육경한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에 매우 큰 거부감을 느꼈었다. 이번 생에 아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불행을 이어가는 게 싫었다. 육경한은 음침하고 잔혹한 그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만약 그 아이가 소원이 낳아준 아이라면 살짝 기대가 되긴 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이내 소원의 차가운 웃음소리에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육경한, 그 아이는 너 때문에 죽은 거야. 넌 정말 이름 그대로 차갑기 그지없는 사람이야.”육경한의 손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소원은 육경한의 기분을 참 잘도 쥐고 흔들었다.같은 아픔을 안고 있는 원수라 서로를 매우 잘 알았다.그러다 육경한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아이는 뭐 다시 낳으면 되지.”이 말에 소원은 모든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다시금 손을 들어 육경한의 귀뺨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손을 잡히는 바람에 실패했다.육경한은 소원의 창백한 얼굴과 갈라 터진 입술을 보며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아이는 너만 좋다면 다시 낳아도 돼.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몸조리를 잘하는 거야.”“육경한.”소원이 마치 모르는 사람을 바라보듯 육경한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내가 아이를 좋아하는 건 너랑 아무 상관이 없어. 그리고 나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이 몸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사실 소원은 육경한처럼 양심을 악마에게 팔아먹은 사람은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지금은 아이를 걱정하듯 아이의 근황을 물어보지만 상황이
떠나면서 육경한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반드시 육경한이 골머리를 앓을만한 일을 만들어야 한다. 육경한이 자리를 비우지 못하게 말이다. 그러자면 일단 그녀 자신이 망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육경한도 망가트려야 했다....일주일간 입원해 있던 소원은 퇴원할 것을 요구했다.육경한은 의사의 소견을 물어봤다. 저번에 어떤 의사가 말을 잘못했다가 육경한이 잘라버리는 바람에 이번에 온 의사는 말을 꽤 돌려서 했다.“환자는 집으로 돌아서도 푹 쉬면서 몸조리해야 합니다. 일단 기본부터 잘 다져야 해요.”이 의사의 말은 그래도 듣기가 꽤 편했다.육경한이 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이 약 얼마나 더 먹어야 하나요?”의사가 말했다.“3개월에서 5개월은 드셔야 합니다. 매달 병원으로 오셔서 재검진받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육경한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종에게 약을 받아오라고 하고는 먼저 병실로 들어갔다.소원은 정리할 물건이 별로 없었다. 입원하러 올 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고 전부 육경한이 와서 준비해 준 것이었다.육경한이 고개를 돌려 차분하게 물었다.“오아시스로 갈래 아니면 저번에 묵었던 별장으로 갈래?”소원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마치 찬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두 곳 다 소원에겐 감옥 같은 곳이었다.그렇게 한참 뜸을 들이던 소원이 입을 열었다.“내 집으로 가면 안 돼?”육경한이 가볍게 웃었다. 마치 그녀의 순진함을 비웃는 것 같았다.“몸도 안 좋은데 내 옆에 있어야지. 그래야 챙겨줄 사람도 마련해줄 거 아니야.”육경한이 최대한 돌려서 말했지만 소원은 모를 리가 없었다.육경한은 어떻게든 그녀를 옆에 묶어두려고 했고 그녀는 거절할 권리가 없었다.소원은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리더니 운명을 받아들인 듯 가볍게 말했다.“그러면 내일 넘어갈게. 집에 가서 정리할 물건이 있어.”“정리할 물건이 뭔데. 내가 사람 보낼게.”육경한은 사실 소원이 힘들까 봐 한 말이었다. 소원의 몸은 아직 낫자면 시간이 필요했다.하지만 소원이
마치 그 눈빛을 느끼기라도 한 듯 서현재가 고개를 돌려 소원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하지만 서현재의 눈에 들어온 건 육경한이 아니라 육경한의 품에 안긴 여자였다.육경한이 고개를 숙여보니 소원도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한 두 사람의 시선에 육경한의 심장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뭘 그렇게 봐?”육경한이 음침하게 물었다.“별거 아니에요.”소원이 먼저 시선을 거뒀다. 하지만 딱딱하게 굳어버린 몸 때문에 결국 육경한에게 들키고 말았다.언젠가 소원의 눈에 온통 육경한으로 가득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과 오해가 두 사람 사이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갈라놓았다.소원은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 그쪽에서 눈길을 뗐지만 서현재가 아직도 맑은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에 소원은 수치스러웠다.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유리 벽으로 가려져 있어서 다행히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이건 결국 정신 승리에 불과했다. 서현재는 소원이 악마에게 유린을 당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이내 서현재가 휠체어를 타고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육경한은 지금 무슨 기분인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소원을 차에 내려줬다.조수석에 오른 순간 육경한은 씩씩거리며 그녀 위로 올라타더니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의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읍...”소원은 갑자기 들이닥친 키스에 숨이 올라오지 않았다.입술이 막혀 숨을 내쉴 수가 없었던 소원은 곧 질식할 것 같았다. 손으로 육경한을 밀어내려 했지만 강압적인 육경한은 힘이 무시무시했다. 소원이 상대하기엔 너무 강력한 상대였다.소원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만은 없어 얼른 육경한을 얼굴을 손톱으로 긁기 시작했다. 보름 정도 기른 손톱이라 귓가에 긴 손톱자국이 나고 말았다.찢어질 듯한 아픔에 육경한이 정신을 조금 차렸다. 하지만 이내 소원의 턱을 꽉 잡고는 화를 내뿜기 시작했다.“서현재가 그렇게 좋아? 그날 받은
소원이 너무 매혹적이라 당장이라도 맛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소원은 육경한의 몸에 일어난 변화에 화들짝 놀라더니 불같이 화내며 욕설을 퍼부었다.“육경한,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벌건 대낮에 문도 닫지 않고 짐승 같은 짓을 저지르려 하고 있다.육경한은 욕구가 달아오른 상태라 소원을 너무 갖고 싶었지만 일단 꾹 참는 수밖에 없었다.“오늘은 일단 용서해 줄게. 너 몸조리 끝나면 그때 보상하는 걸로 해.”소원은 대꾸조차 하기 싫었다. 정말 미친놈 같았다.육경한은 운전석으로 돌아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어째서인지 상태가 아까보다 훨씬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소원이 이번에 배신한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배신하고 칼로 찌르긴 했지만 이걸로 소원을 향한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줄었다.벌도 줄 만큼 주었으니 이제 앞으로 나아가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소원이 지내는 아파트에 도착한 육경한은 문 앞까지 데려다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소원은 그런 육경한을 경계했다. 혹시나 아까 마무리하지 못했던 일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문 앞까지야. 들어오면 안 돼.”소원이 소녀처럼 교태를 부린 건 참 드물었다. 육경한이 웃음을 터트리더니 마른기침했다.“나도 며칠 밤을 꼬박해서 체력이 안 돼.”“거짓말하지 마.”소원이 육경한을 반박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아까 욕구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육경한이 멈칫하더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입가에 걸린 웃음이 점점 짙어졌다.소원이 돌아온 뒤로 육경한은 처음 이렇게 많이 웃어봤다. 하지만 의심이 많은 성격은 변하기 힘들었다.“소원아, 설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지?”소원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비아냥댔다.“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는데 내가 없다고 해봤자 믿어줄 것도 아니잖아.”육경한이 오히려 되물었다.“믿어도 돼?”주변은 아주 고요했다. 육경한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었다.“소원아, 믿어도 되냐고.”육경한이 고집스럽게
모든 증오를 그녀는 더 깊고 먼 곳으로 숨겼다.두 사람이 헤어지려 할 때, 처음으로 묘한 감정이 솟구친 육경한은 긴 다리를 뻗어 문을 막으며 웃으며 말했다.“정말로 들어가게 안 해 줄 거야?”소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아까 분명 약속했잖아.”하지만 육경한은 성큼 한 발을 내디뎌 안으로 들어와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분노가 치밀어 오른 소원이 화를 내려는 순간 그는 그녀를 풀어주며 가볍게 웃었다.“알아.”곧 육경한은 예의 바르게 물러나 문틀에 기대어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는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내일 밤 데리러 올게.”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감정이 실린 ‘쾅’하는 문 닫는 소리였다.육경한은 꽉 닫힌 문을 몇 초 동안 바라보다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 떠났다.그는 알지 못했다. 문 뒤에서 소원은 시종일관 영상 초인종을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을.남자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내려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후, 그녀는 창가로 달려가 육경한의 차가 떠나는 것도 직접 확인했다.검은색 마이바흐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자마자 소원은 즉시 찬장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해 금고를 열고 별 기능이 없는 구식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아주머니, 아침 6시 비행기 표를 예약했어요. 지금 짐을 챙기세요. 조금 있으면 차가 아주머니와 유진이를 공항으로 데리러 갈 거예요. 도착 후에도 차가 준비되어 있을 테니 우리는 도착 후에 다시 만나요.”전화를 끊은 후, 소원은 유심 카드를 뽑아 라이터로 칩을 까맣게 태운 뒤 반으로 쪼개서 변기에 흘려보냈다.핸드폰 케이스는 칼 손잡이로 부숴 쓰레기봉투에 담아 가져갈 준비를 했다.그런 다음 미리 준비해 둔 짐을 꺼내 검은색 야행복으로 갈아입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신중한 판단으로 소원은 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가지 않고 아파트 단지의 임시 주차장으로 가서 눈에 띄지 않는 폭스바겐 차에 올랐다.그렇게 차를 몰고 뒷문으로 나가려 했지만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경비실의 사람들
당황한 표정으로 소원은 서현재를 바라보며 말했다.“서현재, 네가 왜 여기에...”하지만 서현재는 아무 말도 없이 지팡이를 꺼내 들어 몸을 일으킨 후 지팡이를 내려놓고 방금 지팡이를 짚었던 왼손을 내밀어 그녀를 잡아주었다.소원은 그가 오른 손목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일어서자마자 그녀는 서현재의 손에 이끌려 옆에 있던 한 대의 SUV에 탔다.걸어가는 도중, 소원은 서현재가 오른손뿐만 아니라 왼쪽 다리도 심하게 다쳐서 절뚝거리며 걷는다는 것을 발견했다.소원의 마음이 아려왔다.“현재야,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야?”“일단 차에 타요.”소원이 차에 오르자 서현재는 고개를 숙여 손을 내밀며 말했다.“키 줘요.”“키?”“네. 줘요.”그러자 소원은 멍하니 차 키를 건넸고 서현재는 차 키를 받아 짐가방을 실어 넣었다.차 문을 닫고 그는 뒷좌석에 앉으며 말했다.“비행기 타려고 했어요? 타지 마요. 내가 친구한테 부탁해서 가짜 탑승 기록을 만들어놨어요. 유진이 쪽도 비행기 기록을 취소했고 누나가 말한 장소로 유진이랑 아주머니를 데려가도록 차를 준비했어요.”그러더니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아마 지금쯤 출발했을 거예요.”소원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서서히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서현재, 너 미쳤어? 나랑 엮이지 말고 빨리 떠나. 사람들이 보기 전에...”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차 문을 열고 나가려 했지만 차 문은 이미 잠겨 있었다.서현재는 소원은 손목을 꽉 잡고 놓지 않으며 한 마디 한 마디 천천히 말했다.“가려면 같이 가요.”그의 얼굴에 남아 있는 흉터를 보자마자 소원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너 바보야? 진짜...”서현재는 한 손으로 소원은 손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었다.그래서 소매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우리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약속했잖아요. 누나 나 버리려는 거예요?”더 이상 소원은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넌
이 순간, 어떤 감정 때문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아마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연민일 수도 아니면 무엇인가가 질적으로 변하는 감정일 수도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서현재의 손에 안심하고 맡겼다.서현재는 소원이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차는 빠르게 달려 남안 도로로 들어섰다.소원은 열려 있는 선루프를 통해 하늘에 가득 찬 별들을 바라보며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비현실감을 느꼈다.“우리 정말로 도망쳐 나온 거야?”“네. 나왔어요.”소원이 물었다.“넌 내가 오늘 밤 떠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오늘 간호사가 나한테 쪽지를 전해준 후에 짐작했어요.”떠나기 전에, 그녀는 서현재도 같은 병원에 있다는 걸 알고 간호사에게 쪽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그 쪽지에는 서씨 집안을 떠나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다.서진태는 아주 잔인한 사람이었다. 비록 친가족이라도 중요한 순간이 오면 주저 없이 버릴 사람이었다.소원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2시 31분이었다.그녀는 앞에 있는 LCD 화면을 가리키며 물었다.“저 화면으로 뉴스 볼 수 있지?”“볼 수 있어요.”“켜봐.”그녀가 말했다.화면이 켜지자 뉴스 속보, 경제 속보, 연예 속보에서 폭발적인 뉴스를 일제히 보도했다.유민 그룹의 대표와 한 여성이 클럽에서 촬영된 고화질 영상이 공개된 것이었다.화면 속 남자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했고 거의 학대에 가까웠다.밑에는 뜨거운 반응의 댓글들이 쏟아졌다.[이게 진짜 돈 많은 사람들이 노는 방식인가?][이게 유민 그룹 대표 육경한이라고? 이건 좀 변태적인데?][여자가 자발적이었다 해도 이렇게 더러운 방식으로 놀면 안 되지...][육경한은 말을 너무 독하고 악랄하게 해. 협박처럼 들리는데? 그리고 명확하게 보이는 화질은 아니지만 누군가 맞고 있는 것 같은데?]“봤지?”소원이 말했다.“그날 내가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어.”소원은 육경한과 만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피할 수 없
말을 마친 주석훈은 손에 감았던 삼각 머플러를 풀어 칼을 깨끗이 닦은 뒤 다시 넣고는 진아연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참혹하게 죽은 채 혼자 남겨진 진아연은 숨이 멎는 순간에도 눈을 크게 뜬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지 못한 채로 죽어버렸다....집에서 하룻밤을 쉰 소원은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서둘러 병원으로 유진을 보러 갔다. 다행히 점점 좋아지는 유진의 상태에 소원은 안도했다.육경한은 그녀를 만나 최근에 확인한 소식을 알려주었다.“진아연이 죽었어.”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에 소원은 자리에 얼어붙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어떻게...”소원은 단서가 이렇게 쉽게 끊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진아연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을 알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었는데 이제 그녀가 죽었으니 그동안 애써 찾아낸 다른 단서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었다.순간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범인은 안상철과 같은 방식으로 진아연을 죽였어. 똑같이 67번을 찔렀어. 범인은 인체 해부에 아주 숙련된 사람이야.”소원은 경계심을 품으며 물었다.“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상철 삼촌을 죽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말이야...?”만약 정말 같은 사람이라면 이 범인이 아마도 아버지를 죽인 진범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이 두 사람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응, 내 추측도 그래. 너도 조심하고 경계심을 잃지 마.”육경한은 반지를 꺼내 소원에게 건넸다.“이거 받아.”반지를 본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이게 뭐야?”소원이 손을 내밀지 않자 그녀가 오해한 것임을 눈치챈 육경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이건 호신용 반지야. 끼고 있어. 안에 바늘이 있는데 그 바늘에는 독이 있어서 이 바늘로 찌르면 상대방은 온몸의 힘이 빠지게 돼.”반지의 기능을 들은 소원은 그제야 이 작은 물건이 유용한 곳에 쓰인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받아서 손에 꼈다. 하지만 결혼반지를 끼는 곳에 아니라 독신임을 상징하는 손가락에 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지만 주석훈은 여전히 온화하고 젠틀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이런 장면에 익숙해진 듯 별 반응이 없었다.마지막 몇 번의 칼질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진아연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칼날이 그녀의 살을 천천히 파고들며, 생명은 마치 촛불이 꺼지듯 서서히 소멸해 갔다.죽을 수 있을 만큼의 고통, 그러나 죽지 못하게 만드는 고통. 그야말로 가장 잔혹한 죽음이었다.기운이 다 빠진 진아연은 주석훈의 차분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알겠어... TV 뉴스에 나왔던 안상철의 죽음도 당신...”진아연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진작 알아차려야 했다.“당신... 맞지...”이제야 모든 진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늦어도 너무 늦었다...그날 현장에 있었던 그녀는 안상철이 도망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상철이 돈을 숨겨둔 곳까지 몰래 따라갔다. 그녀는 그 돈이 신비로운 인물이 준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신비로운 인물이 주석훈인지 몰랐다.안상철을 따라간 진아연은 그 돈을 손에 넣어 자신의 도피 자금으로 쓰려고 했다.그래서 안상철이 돈을 파내는 것을 보고 망치를 들어 안상철의 머리를 내리친 뒤 돈을 챙겨 차를 타고 도망쳤다.그 후 며칠 동안 숨어 지내며 안상철에 대한 소문을 기다렸고 그러다가 안상철이 칼에 여러 번 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칼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강하게 내리쳤을 뿐이었고 힘도 많이 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안상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얻는 것이었다.살인이 두려워서 안상철을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살인죄까지 뒤집어쓰면 도주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 시점에서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것은 스스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하지만 안상철을 죽인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 이렇게 점잖은 주석훈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아연이 물었다.“왜... 왜 그 사람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는 거야...”주석훈이
심지어 진아연은 얼마 전까지도 주석훈을 젠틀한 문화인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큰 착각을 한 것 같았다.진아연은 주석훈을 향해 아첨하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변호사님, 어떤 일이든 할게요. 제발...”“쉿!”주석훈은 두 번째 손가락을 입가에 올리며 ‘쉿’하는 소리를 냈다.‘쉿’하는 그 소리에 온몸에 식은땀이 난 진아연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번뜩이는 칼날을 휘두르던 남자는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를 찔렀다.“안녕, 나는 주석훈이야.”“으악!”진아연은 하늘을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칼은 급소를 찌르지 않았지만 충분히 고통스러웠다.이어서 또 한 번 칼을 휘두른 주석훈은 이번에도 급소가 아닌 뼈 사이를 정확히 찔렀다. 날카로운 칼날이 조금씩 몸을 파고들자 진아연은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주석훈이 친절하게 말했다.“여긴 무릎뼈가 있는 곳이야. 다음은 발목뼈, 아마 통증이 다를 거야.”“왜... 왜, 왜 이러는 거예요?”진아연은 쉰 목소리로 힘겹게 물었다.“세상 일에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네가 저지른 일에는 인과응보가 따르는 법이지. 지금 겪는 건 그저 그 대가일 뿐이야.”말을 하면서 그녀의 뼈 사이를 정확히 찌른 주석훈은 날카로운 칼날로 진아연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또다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주석훈은 들리지 않는 듯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하나만 말해줄게. 나는 사실 법의학자가 될 뻔했어. 예전에 인체 해부하는 것을 좋아했거든.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어. 변호사가 된 이유는 돈을 빨리 벌기 위해서야.”주석훈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진아연에게 이야기했다.고통에 죽을 지경인 진아연은 울며 말했다.“나를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육경한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렇게 말했지. 하지만...”주석훈은 뼈관절을 해부하며 말을 이었다.“너를 믿을 수 없어. 쓰레기 주제에 두 번째 기회를 바라다니, 꿈 좀 그만 꿔!”무자비하게 조롱하는 주석훈의 말에
진아연의 이름을 들은 육경한은 매우 침착하게 천천히 말을 뱉었다.”괜찮아, 아마 걔는 살 수 없을 거니까.”“...”황수진은 육경한이 진아연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고 매우 놀랐다. 그가 보기엔 이 신비한 사람이 진아연을 구출한 것을 보면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한 패거리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하였지만 뜻밖에도 육경한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육경한은 동네 정문 쪽 동영상을 보면서 이리저리 보다 지프차량이 진아연을 돌격하는 곳에서 멈추었다.차량은 아무런 인정사정이 없이 그 자리에서 사고를 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마도 진아연 단지 입구에서 죽는다는 것이 정말 번거롭고 또 잠재된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방안을 바꾼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이 방안은 집행될 것이고 이 신비한 사람은 절대 진아연의 목숨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황수진이 지프차를 보았는데, 분명히 가짜 번호판이었지만 조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그가 한국 본토에서 활동하는 한 날 중에는 언제든지 증거가 남게 될 것이다.반대편 차 안에서 진아연은 그곳을 본 후 안색이 어두워졌다."제트 씨, 왜 저를 이렇게 황량한 교외에 두셨어요? 택시를 타고도 돌아가기도 곤란해요."“여기 안 오고 들키고 싶어요?"제트의 기분은 나빠지자 진아연은 감히 말하기 무서웠다."그럼 제가 내려가도 되나요?"진아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후에야 천천히 진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내려요.“진아연은 기쁜 마음으로 차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주 쉽게 차 문이 열렸다. 그녀는 일종의 재난을 모면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매우 기뻤다는데 한 발이 발밑의 땅을 금방 밟았을 때, 뒤에서 누가 등이 세게 걷어찼다.진아연은 멀리 차여 입에서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고 마치 자신의 몸이 해체되는 것처럼 느껴졌다.차근차근 차에서 내려 진아연의 앞에 다가와 걸음을 멈춘 남자를 보고 진아연은 어리둥절해졌다.“왜... 왜 저를 발로 차요?"제트는
남자는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만약 제가 당신에게 기회를 준다면요?”“무슨 기회요?”진아연은 자신이 누구와 거래하는지 잊지 않고 전전긍긍하며 물었다.남자의 두 눈은 마치 별을 숨긴듯 하였다. 그는 반혹적인 어조로 말했다.“육경한을 죽일 기회를 줄게요. 만약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저는 당신의 잘못을 추궁하지 않고 평안히 출국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 진아연 씨, 어떻게 생각해요?”“정말이에요?”진아연은 그의 말을 정말 믿기 어려웠다.제트를 마주할 떄 진아련은 항상 착각에 빠졌다. 사실은 육경한을 죽이는 것보다 제트를 마주하는게 더 어려웠다. 이 두 문제를 함께 놓으면 비교가 될 것이다.왜냐하면 그는 아주 신비하기에 누구도 그의 배경과 내력을 알 수 없어 그와 상대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경한의 약점은 아주 많다. 소원이와 그녀 뱃속에 있는 아이, 그리고 망할 놈 유진이... 심지어 하나하나의 나쁜 계획은 이미 진아연의 마음속에서 형태를 갖추게 되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제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물론 정말이에요, 당신이 성공하면 저는 말한 대로 다시는 따지지 않을 것이에요. ”말하는 사이에 남자는 뒤에 쫓아오는 세 대의 차를 가볍게 따돌렸다.이 제트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마냥 무섭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진아연의 마음속에 있는 제트는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그녀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어 놀라지 않았다.진아연은 눈앞의 남자를 보면서 자신의 충성심을 알려 주었다.“제트 씨, 안심해요, 저는 반드시 임무를 완수할 거니까. 당신은 저를 죽이지만 않으면 됩니다.”“음, 기대가 되네요.”“...”뒤따라오던 세 대의 차가 앞차를 잃어버린 후, 경비원들은 실시간 정보를 병실의 VIP 라운지에 전달했다.유진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남자는 황수진보고 유진이의 휴식에 방해 안 되는 대기실에 오라고 했다.지금 육경한의 안색은 매우 안 좋았다.경호원들이 전송해 오는 화면
남자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잡히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또 오다니 정말 바보 중의 바보예요!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곳 경비원은 다른 동네 분들과 다를 줄은, 이곳 경비원은 정말 최고급 경호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여자가 원망하자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진아연, 당신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멍청한 사람인 것 같아요. ”진아연은 순간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가 라는 생각에 그녀는 그를 경계하면서 물어봤다.“누구세요? “남자는 침묵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 가리려고 마스크를 썼지만, 눈빛에 드러나는 냉랭함은 숨길 수 없었다. 진아연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나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당신이 바로 제트 씨이세요? ”남자는 그녀를 상대하지도 않고 부인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설명했다. 진아연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바지에 실수까지 할 뻔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늑대 무리에서 도망쳐 나와 호랑이 굴에 들어갈 줄을... "제트 씨... 아주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여기에 나타난 건 아니예요. 지금 당장 꺼질게요. ”놀라움은 하여금 진아연의 이성을 잃게 만들어 고속도로에서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릴 생각까지 하였다.제트와 비교했을 때, 지금 뒤에서 자신을 쫓아오는 경비원들이 구세주라고 생각되었다. 진아연은 제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필경 지난번에 그의 손에서 죽을 뻔했으니까... 진아연의 손이 차 문손잡이에 닿았을 때, 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진아연은 절망 속에서 두 손을 비비며 용서를 비는 자세를 취했다. “죄송해요... 제트 씨... 저 진짜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저를 놓아주세요. ”안장이 좁아서 진아연은 무릎을 꿇을 수 없어 두 손을 끊임없이 비비며 아주 작은 희망을 찾고 있었다.남자는 역시 수단과 방법을 숨기고 있었다. 뒤차의 추격을 피하는 동시에
여자가 작은 골목에 들어섰을 때, 경비원이 말했다. “아가씨, 길을 잘못 들었어요. 13동은 저쪽에 있어요.”여자는 할 수 없이 돌아섰는데 경비원이 다시 말했다. “아가씨, 친구 보러 처음 오셨어요?”여자는 이곳의 경비원이 왜 범인을 검문하는 것처럼 자신을 물어보는지 이해 안 가 속으로 욕했다.여자는 대충 대답했다.“네네, 처음 왔어요.”13동 문 앞에 오자 경비원이 직접 603의 초인종을 눌렀고 방울 소리가 울리자,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경비원은 여자보고 말하라고 고개를 돌렸다.“...”정말 어쩔 수 없어 여자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아이고, 배가 너무 아파요.”여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경비원은 즉시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경비원이 구급차를 부르는 사이에 여자는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도망쳤다.“거기서요!”경비원은 일반인보다 더 빠르게 반응해 무전기에 대고 빨리 저 검은 옷 입은 여자를 잡으라는 말을 했다.여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점점 닫혀 가는 문을 보며 당황해 어리둥절했다.“닫지 말아요.”안에서 경비원이 소리를 듣고 여자 쪽으로 돌진해 왔다. 그들은 마치 여기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듯 일반 경비원보다 속도가 더욱 빨랐다.바로 얼마 전 육씨 그룹이 이곳의 부동산을 사서 전문적인 경호원으로 바꾸어 수상한 인물을 주시하여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파출소로 보냈다. 여자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어디로 도망갈지 몰랐다. “저 여자 잡아요.”전에 여자와 얘기하던 경비원이 소리쳤다. 여자가 잡힐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펑!큰 소리가 나 그곳을 보자 검은색의 지프차 한 대가 돌진해 들어와 난간에 부딪혀 부서지는 것이 보였다.대중들은 모두 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어리둥절하여 반응하지 못했지만, 지프차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자, 경비원들은 모두 재빨리 몸을 피했다.유독 여자만 제자리에서 자신한테 향해 오는 것을 멍하니 보며 어찌할 바
소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유진이를 보러 갈래”“필요 없어”육경한은 단호히 거절하다 멈칫했다. 그러다 소원이 자신이 아이를 못 본다고 오해 할가봐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보고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일도 다 병원에 가지고 갈 거니까. 넌 휴식이 필요해. 알았어? “유진이 병으로 쓰러진 후 소원은 며칠 동안 거의 밤새 자지 못해 눈 밑에는 이미 짙은 다크써클이 생겼지만 그녀는 억지로 버티는 중이었다.소원은 유진이 자신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육경한은 무슨 일이든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직접 휴대폰 음성 메시지를 소원이에게 들려주었다.“아빠, 엄마 보고 잠자고 있으래요.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저는 삼촌이라고 부를 거예요. ”“엄마보고 많이 휴식하고 있으래요. 그렇지 않으면 뱃속의 아기가 천천히 자랄 거예요. 저는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어요. 아기한테 오빠가 지금 힘이 세니까 아기를 업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캐톡에서 유진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협박한 것을 보니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좋은 것 같았다. 유진이의 소리는 듣기에도 정신이 맑고 괜찮아 보였다.소원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생각해 보니 자기가 쉬지 않은 것을 아이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은 즉 유진에게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기에 소원이는 말 듣고 차에서 내려서 휴식을 취하러 갔다.네 명의 경호원은 육경한의 분부에 따라 두 명은 아파트 입구에 두 명은 계단 입구를 엄중히 지켜 사수의 파리 한 마리조차 날아 들어갈 수 없었다.육경한의 차가 떠나자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여인이 사방을 둘러보며 나타났다.그녀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채 마스크를 쓰고 수상한 모습으로 나타나 동네 경비원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저기요, 당신은 어느 건물로 가나요? 여기에서 뭘 하고 있습니까? “여인은 경비원한테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요... 사람을 찾고
주석훈이 웃으며 말했다.“허허. 몰랐죠? 저 평소엔 되게 허당이에요.”“변호사님 은근히 유머가 넘친다니까요.”주석훈은 언변에 능했기에 단 몇 마디에 간호사가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지었다.“저기는 왜 저런 거래요? 아까 길을 잘못 들었는데 막더라고요.”주석훈이 물었다.“아, 저기요.”간호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어떤 여자애 한 명 들어왔는데 가족이 살해당했다나 뭐라나. 실어증에 걸려서 한마디도 못 했는데 평소 믿고 따르던 언니가 와서 입을 열었다고 들었어요.”주석훈이 물었다.“여자애요? 많이 놀랐나 보네요.”“그러게요.”간호사가 대답했다.“가족이 칼 맞고 죽었는데 누가 견딜 수 있겠어요.”“억울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범인만 잡아도 다행 아니겠어요?”주석훈이 말했다.“어려울 것 같던데요?”간호사가 말했다.“뭐 유용한 단서가 안 나왔나 보더라고요. 아빠가 여자애를 지키겠다고 같이 들어가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 봤대요. 진술한 상황이 경찰이 알고 있는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경찰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만 내쉬더라고요.”간호사가 이렇게 많은 내용을 알 수 있었던 건 안지영의 간호를 책임진 간호사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주석훈이 더 물으려는데 다른 간호사가 들어왔다.“어? 이 간호사 있었네? 저쪽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 빨리 가봐.”이 간호사가 말했다.“알겠어요.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게요.”치료를 받은 주석훈이 이 간호사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이 간호사가 얼굴을 붉히며 괜찮다고 말했다.주석훈이 멀리 가고 나서야 다른 간호사가 이렇게 말했다.“이 간호사, 아까 저 사람이랑 무슨 얘기 했어? 저 병실에서 나온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 돼.”“저 별말 안 했어요. 다들 아는 내용 얘기해준 거예요.”이 상황에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인정하면 바보나 다름없었다.“그래. 앞으로 조심해. 자칫하다간 징계 먹을 수도 있어.”나이 많은 간호사가 귀띔했다.“알아요.”이 간호사가 얼른 대답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