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그 눈빛을 느끼기라도 한 듯 서현재가 고개를 돌려 소원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하지만 서현재의 눈에 들어온 건 육경한이 아니라 육경한의 품에 안긴 여자였다.육경한이 고개를 숙여보니 소원도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한 두 사람의 시선에 육경한의 심장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뭘 그렇게 봐?”육경한이 음침하게 물었다.“별거 아니에요.”소원이 먼저 시선을 거뒀다. 하지만 딱딱하게 굳어버린 몸 때문에 결국 육경한에게 들키고 말았다.언젠가 소원의 눈에 온통 육경한으로 가득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과 오해가 두 사람 사이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갈라놓았다.소원은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 그쪽에서 눈길을 뗐지만 서현재가 아직도 맑은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에 소원은 수치스러웠다.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유리 벽으로 가려져 있어서 다행히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이건 결국 정신 승리에 불과했다. 서현재는 소원이 악마에게 유린을 당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이내 서현재가 휠체어를 타고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육경한은 지금 무슨 기분인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소원을 차에 내려줬다.조수석에 오른 순간 육경한은 씩씩거리며 그녀 위로 올라타더니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의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읍...”소원은 갑자기 들이닥친 키스에 숨이 올라오지 않았다.입술이 막혀 숨을 내쉴 수가 없었던 소원은 곧 질식할 것 같았다. 손으로 육경한을 밀어내려 했지만 강압적인 육경한은 힘이 무시무시했다. 소원이 상대하기엔 너무 강력한 상대였다.소원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만은 없어 얼른 육경한을 얼굴을 손톱으로 긁기 시작했다. 보름 정도 기른 손톱이라 귓가에 긴 손톱자국이 나고 말았다.찢어질 듯한 아픔에 육경한이 정신을 조금 차렸다. 하지만 이내 소원의 턱을 꽉 잡고는 화를 내뿜기 시작했다.“서현재가 그렇게 좋아? 그날 받은
소원이 너무 매혹적이라 당장이라도 맛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소원은 육경한의 몸에 일어난 변화에 화들짝 놀라더니 불같이 화내며 욕설을 퍼부었다.“육경한,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벌건 대낮에 문도 닫지 않고 짐승 같은 짓을 저지르려 하고 있다.육경한은 욕구가 달아오른 상태라 소원을 너무 갖고 싶었지만 일단 꾹 참는 수밖에 없었다.“오늘은 일단 용서해 줄게. 너 몸조리 끝나면 그때 보상하는 걸로 해.”소원은 대꾸조차 하기 싫었다. 정말 미친놈 같았다.육경한은 운전석으로 돌아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어째서인지 상태가 아까보다 훨씬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소원이 이번에 배신한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배신하고 칼로 찌르긴 했지만 이걸로 소원을 향한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줄었다.벌도 줄 만큼 주었으니 이제 앞으로 나아가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소원이 지내는 아파트에 도착한 육경한은 문 앞까지 데려다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소원은 그런 육경한을 경계했다. 혹시나 아까 마무리하지 못했던 일을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문 앞까지야. 들어오면 안 돼.”소원이 소녀처럼 교태를 부린 건 참 드물었다. 육경한이 웃음을 터트리더니 마른기침했다.“나도 며칠 밤을 꼬박해서 체력이 안 돼.”“거짓말하지 마.”소원이 육경한을 반박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아까 욕구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육경한이 멈칫하더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입가에 걸린 웃음이 점점 짙어졌다.소원이 돌아온 뒤로 육경한은 처음 이렇게 많이 웃어봤다. 하지만 의심이 많은 성격은 변하기 힘들었다.“소원아, 설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지?”소원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비아냥댔다.“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는데 내가 없다고 해봤자 믿어줄 것도 아니잖아.”육경한이 오히려 되물었다.“믿어도 돼?”주변은 아주 고요했다. 육경한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었다.“소원아, 믿어도 되냐고.”육경한이 고집스럽게
모든 증오를 그녀는 더 깊고 먼 곳으로 숨겼다.두 사람이 헤어지려 할 때, 처음으로 묘한 감정이 솟구친 육경한은 긴 다리를 뻗어 문을 막으며 웃으며 말했다.“정말로 들어가게 안 해 줄 거야?”소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아까 분명 약속했잖아.”하지만 육경한은 성큼 한 발을 내디뎌 안으로 들어와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분노가 치밀어 오른 소원이 화를 내려는 순간 그는 그녀를 풀어주며 가볍게 웃었다.“알아.”곧 육경한은 예의 바르게 물러나 문틀에 기대어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는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내일 밤 데리러 올게.”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감정이 실린 ‘쾅’하는 문 닫는 소리였다.육경한은 꽉 닫힌 문을 몇 초 동안 바라보다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 떠났다.그는 알지 못했다. 문 뒤에서 소원은 시종일관 영상 초인종을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을.남자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내려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후, 그녀는 창가로 달려가 육경한의 차가 떠나는 것도 직접 확인했다.검은색 마이바흐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자마자 소원은 즉시 찬장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해 금고를 열고 별 기능이 없는 구식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아주머니, 아침 6시 비행기 표를 예약했어요. 지금 짐을 챙기세요. 조금 있으면 차가 아주머니와 유진이를 공항으로 데리러 갈 거예요. 도착 후에도 차가 준비되어 있을 테니 우리는 도착 후에 다시 만나요.”전화를 끊은 후, 소원은 유심 카드를 뽑아 라이터로 칩을 까맣게 태운 뒤 반으로 쪼개서 변기에 흘려보냈다.핸드폰 케이스는 칼 손잡이로 부숴 쓰레기봉투에 담아 가져갈 준비를 했다.그런 다음 미리 준비해 둔 짐을 꺼내 검은색 야행복으로 갈아입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신중한 판단으로 소원은 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가지 않고 아파트 단지의 임시 주차장으로 가서 눈에 띄지 않는 폭스바겐 차에 올랐다.그렇게 차를 몰고 뒷문으로 나가려 했지만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경비실의 사람들
당황한 표정으로 소원은 서현재를 바라보며 말했다.“서현재, 네가 왜 여기에...”하지만 서현재는 아무 말도 없이 지팡이를 꺼내 들어 몸을 일으킨 후 지팡이를 내려놓고 방금 지팡이를 짚었던 왼손을 내밀어 그녀를 잡아주었다.소원은 그가 오른 손목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일어서자마자 그녀는 서현재의 손에 이끌려 옆에 있던 한 대의 SUV에 탔다.걸어가는 도중, 소원은 서현재가 오른손뿐만 아니라 왼쪽 다리도 심하게 다쳐서 절뚝거리며 걷는다는 것을 발견했다.소원의 마음이 아려왔다.“현재야,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야?”“일단 차에 타요.”소원이 차에 오르자 서현재는 고개를 숙여 손을 내밀며 말했다.“키 줘요.”“키?”“네. 줘요.”그러자 소원은 멍하니 차 키를 건넸고 서현재는 차 키를 받아 짐가방을 실어 넣었다.차 문을 닫고 그는 뒷좌석에 앉으며 말했다.“비행기 타려고 했어요? 타지 마요. 내가 친구한테 부탁해서 가짜 탑승 기록을 만들어놨어요. 유진이 쪽도 비행기 기록을 취소했고 누나가 말한 장소로 유진이랑 아주머니를 데려가도록 차를 준비했어요.”그러더니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아마 지금쯤 출발했을 거예요.”소원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서서히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서현재, 너 미쳤어? 나랑 엮이지 말고 빨리 떠나. 사람들이 보기 전에...”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차 문을 열고 나가려 했지만 차 문은 이미 잠겨 있었다.서현재는 소원은 손목을 꽉 잡고 놓지 않으며 한 마디 한 마디 천천히 말했다.“가려면 같이 가요.”그의 얼굴에 남아 있는 흉터를 보자마자 소원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너 바보야? 진짜...”서현재는 한 손으로 소원은 손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었다.그래서 소매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우리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약속했잖아요. 누나 나 버리려는 거예요?”더 이상 소원은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넌
이 순간, 어떤 감정 때문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아마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연민일 수도 아니면 무엇인가가 질적으로 변하는 감정일 수도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서현재의 손에 안심하고 맡겼다.서현재는 소원이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차는 빠르게 달려 남안 도로로 들어섰다.소원은 열려 있는 선루프를 통해 하늘에 가득 찬 별들을 바라보며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비현실감을 느꼈다.“우리 정말로 도망쳐 나온 거야?”“네. 나왔어요.”소원이 물었다.“넌 내가 오늘 밤 떠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오늘 간호사가 나한테 쪽지를 전해준 후에 짐작했어요.”떠나기 전에, 그녀는 서현재도 같은 병원에 있다는 걸 알고 간호사에게 쪽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그 쪽지에는 서씨 집안을 떠나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다.서진태는 아주 잔인한 사람이었다. 비록 친가족이라도 중요한 순간이 오면 주저 없이 버릴 사람이었다.소원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2시 31분이었다.그녀는 앞에 있는 LCD 화면을 가리키며 물었다.“저 화면으로 뉴스 볼 수 있지?”“볼 수 있어요.”“켜봐.”그녀가 말했다.화면이 켜지자 뉴스 속보, 경제 속보, 연예 속보에서 폭발적인 뉴스를 일제히 보도했다.유민 그룹의 대표와 한 여성이 클럽에서 촬영된 고화질 영상이 공개된 것이었다.화면 속 남자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했고 거의 학대에 가까웠다.밑에는 뜨거운 반응의 댓글들이 쏟아졌다.[이게 진짜 돈 많은 사람들이 노는 방식인가?][이게 유민 그룹 대표 육경한이라고? 이건 좀 변태적인데?][여자가 자발적이었다 해도 이렇게 더러운 방식으로 놀면 안 되지...][육경한은 말을 너무 독하고 악랄하게 해. 협박처럼 들리는데? 그리고 명확하게 보이는 화질은 아니지만 누군가 맞고 있는 것 같은데?]“봤지?”소원이 말했다.“그날 내가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어.”소원은 육경한과 만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피할 수 없
그날 밤 이후로 윤혜인은 며칠 동안 이준혁을 다시 만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같은 도시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혜인은 만약 이준혁이 자신을 만나고 싶지 않다면 아마 평생 다시는 그와 마주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날 밤 이준혁의 차가운 태도와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이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지만 밤이 되어 눈을 감기만 하면 윤혜인은 이준혁이 폭약이 가득 실린 차에서 자신을 밀어내던 그 순간의 결연한 눈빛이 떠올랐다.그때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는 눈빛과 지금의 차갑고 무관심한 눈빛.‘지금의 준혁 씨는 정말 그 사람이 맞는 걸까?’오후가 되어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름이는 또다시 자신을 구해준 할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아마도 혈연의 끈 때문인지 아름이는 구출된 이후 몇 번이나 문현미의 상태를 물어보았다.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윤혜인은 아름이를 데리고 문현미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준혁이 내린 금지령 때문에 그녀는 아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우리 음식을 좀 만들어서 할머니 병실 밖에 두자. 그때 엄마가 들어가 볼게. 들어갈 수 없다면 우리 마음만 전해도 괜찮아.”그러자 아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엄마. 아름이 말 잘 들을게요.”딸의 순종적인 모습에 윤혜인의 마음이 아려왔다.사실 아름이는 아빠를 만나고 싶다는 말을 홍 아줌마에게 전했었지만 곧 윤혜인과 이준혁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걸 눈치채고 윤혜인 앞에서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윤혜인은 직접 국을 끓였다. 하지만 마음이 불안한 탓인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윤혜인은 뜨거운 국에 데어 손에 물집이 두 개나 생겼다.그녀는 간단하게 붕대로 감싸고 국을 들고 아름이와 함께 여은이 운전하는 차에 타 병원으로 향했다.문현미가 있는 VIP층에 도착했을 때, 예상대로 문현미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혹여 아이를 보고 싶어 하지는 않을까 하여 윤혜인은 경호원에게 아름이를 언급했다.어쨌든 그녀가 목숨을 걸고 구한 아이이니 아름이를 보고 싶지 않을 이유
보온병을 막 내려놓고 돌아선 윤혜인의 눈에 바로 이준혁이 다가오는 모습이 들어왔다.그 역시 문현미를 보러 온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윤혜인의 옆을 지나가며 이준혁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곧장 걸음을 옮겼다.윤혜인은 잠시 멍해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그를 불렀다.“준혁 씨.”그제야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감정 없이 ‘응'이라고 답했다.남자의 잘생긴 얼굴은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더욱 차갑고 냉정하게 보였다.윤혜인은 아름이를 데리고 문현미를 한번 보고 싶었다. 예전에 문현미가 자신에게 어떻게 대했든 간에 이번에는 목숨을 걸고 자신들을 구해주었으니 마땅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게다가 이준혁이 사고를 당했을 때도 문현미만이 윤혜인을 믿어주었으니 말이다.그래서 이준혁이 불쾌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간절히 요청했다.“아주머니를 잠깐만 뵐 수 있을까요?”“안 돼.”이준혁은 냉담하게 말했다.윤혜인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도했다.“정말 잠깐만 볼게요. 방해하지 않을게요...”하지만 윤혜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준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를 가로막았다.“볼일 없으면 떠나. 외부인은 받지 않으니까.”‘외부인...’그가 이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지라 윤혜인은 손이 떨렸다.그들 사이의 관계가 아무리 변했다 해도 ‘외부인'이라는 말로 전부 설명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조금 전까지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경호원들에게 말했던 윤혜인은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그녀는 간신히 체면을 유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방해해서 죄송합니다.”곧 떠나려는 순간, 이준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외부 물건을 받으라고 했어?”그러자 경호원이 서둘러 말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사모님과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버려!”남자는 짜증스럽게 말했다.돌아설 때, 윤혜인은 자신이 4시간 동안 끓이고 손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정성 들인 국이 병원의 쓰레기통에 던져져 있는 것을 보았다.그동안 그녀는 이준혁을 보통의 사고방
왜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윤혜인을 이리도 상처받게 한 것이냐고 말이다.아름이는 울면서 마음속에 있던 말을 참지 못하고 쏟아냈다.“나쁜 아빠! 엄마를 슬프게 해서 이제는 더 이상 아빠를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는 아빠라고 부르지도 않을 거예요!”아름이는 울며 발끝을 세워 이준혁을 향해 주먹질하다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순간 바닥에 엎어지며 아이는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여은이 재빠르게 움직여 윤혜인보다 먼저 아름이를 안아 올렸다.그들이 서 있던 위치에서 봤을 때 마치 이준혁이 아름이를 짜증스럽게 밀어낸 것처럼 보였다.이 행동에 윤혜인은 즉각 분노를 터뜨렸다.“준혁 씨, 뭐 하는 거예요?!”그녀는 이준혁을 세게 밀쳤다. 예상치 못한 것은 그 키 큰 남자가 윤혜인이 밀쳤다고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그러나 그 순간 윤혜인은 이런 디테일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윤혜인은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했다.“준혁 씨, 내가 정말 잘못 봤어요. 당신을 믿은 내가 바보였어요!”그가 냉담하게 대했을 때, 심지어 자신이 끓인 국을 쓰레기통에 버렸을 때조차 그녀는 울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윤혜인은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왜 우리 아름이까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거냐고...’굵은 눈물이 한 방울씩 그녀의 뺨을 타고 떨어졌고 그 눈물은 하나하나 이준혁의 심장을 때렸다.이준혁은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억누르며 자신을 애써 무심하게 서 있게 만들었다.여은이 울고 있는 아름이를 안은 채 윤혜인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아가씨, 우리 가요.”윤혜인은 자신이 이렇게 비참한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어 단호하게 돌아섰다.그 뒤에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준혁이 서 있었다. 고통을 참느라고 그의 턱 근육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겉으로는 냉정한 척하며 그는 다시 한번 아름이와 윤혜인을 지나쳐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자마자 그의 큰 몸이 갑자기 ‘쿵'하며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