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은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왜 산에서 나 대신 칼을 막았죠? 왜 산사태가 일어났을 때 절벽 아래로 뛰어들어 나와 함께 죽으려고 했던 거예요?”그녀는 이준혁의 뒷모습을 향해 절규하듯 소리쳤다.“그게 사랑이 아니면 도대체 뭐예요! 도대체 뭐냐고요!”윤혜인은 마치 이성을 잃은 듯 필사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이준혁이 여러 번 목숨을 걸고 윤혜인을 구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어떻게 다시 여기 설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주변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준혁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널 사랑할 때는 당연히 너를 감동시키고 싶었지. 하지만 이제는...”앞에 서 있는 윤혜인의 창백해지는 얼굴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는 무자비하게 말했다.“이제는 사랑하지 않아...”가벼운 몇 글자가 모든 것을 부정했다.복잡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였다.“지나친 집착은 사람을 질리게 할 뿐이야. 스스로 잘 판단하길 바라.”그 말을 남기고 이준혁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휴게실을 떠났다.문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닫혔다.공허한 방안은 조명마저도 차갑게 느껴졌고 윤혜인은 소파의 한구석에 몸을 웅크렸지만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은 도무지 따뜻해지지 않았다.이준혁은 윤혜인을 그냥 두고 떠나버렸다. 심지어 그녀가 어떻게 집에 돌아갈지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정말 내게 관심이 없어진 거야?’반 시간 후, 윤혜인은 계단을 내려갔다.그녀는 지하 주차장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원래대로 그곳을 통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에는 더 이상 윤혜인을 기다리고 있는 차가 없었고 결국 그녀는 혼자 터벅터벅 주차장 출구까지 걸어갔다.밤공기는 물처럼 차가웠고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윤혜인은 우산도 쓰지 않고 차를 부르는 것도 잊어버린 채, 그저 무작정 빗속을 걸었다.차가운 습기가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스며들어 그녀를 오싹하게 만들었다.그때 갑자기 귀를 찢는 듯한 ‘빵빵’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한번 잘못 보이면 사소한 일로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보행자에게 양보하지 않은 죄로 감옥에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은 인생을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이준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가서 우산 건네줘.”비서가 잠시 멈칫했다.‘비 맞으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서 있었는데 인제 와서 우산을 주라고? 고생할 거 다 시키고 나서 이제야 구해주는 셈 아닌가...’하지만 상사의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둘러 우산을 챙기러 갔다.이준혁은 여전히 비 내리는 밤하늘 아래서 꼿꼿이 서 있었다.그가 움직이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움직이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서 있으면 몸이 점점 굳어가며 마치 기계처럼 멈춰버리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순간도 그는 오로지 의지로 버티고 있었다.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시간이 부족했고 이것이 윤혜인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비도 맞고 고생도 해봤으니 이제 더 이상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길 바랄 뿐이었다.윤혜인은 한 친절한 행인에게서 우산을 건네받고 나서야 비로소 몸이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했다.그녀는 자신의 몸을 해치려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현명했다.분풀이는 충분히 했고 이제는 더 이상 혼자만이 아니기에 윤혜인은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곧 윤혜인은 운전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를 데리러 온 사람은 뜻밖에도 곽경천이었다. 윤혜인을 기다리다 그녀가 나타나지 않자 걱정이 된 곽경천이 연락을 하려던 찰나, 운전기사가 윤혜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온몸이 젖어 있는 윤혜인의 모습을 본 곽경천은 마음이 아파 서둘러 자신의 재킷을 벗어 그녀에게 둘러주었다.“혜인아, 왜 비를 맞고 있었어? 운전기사는 왜 데려오지 않았고?”그 말에 코끝이 찡해진 윤혜인은 차에 앉아 몸이 조금씩 따뜻해지자 조용히 말했다. “오빠, 운전 기사님 탓하지 마. 내가 먼저 돌려보냈어.”곽
“엄마에 대한 소식이 있다고?”“응. 외국 출신의 한 아주머니가 7~8년 전에 한 가정집에서 임시 가정부로 일할 때 어머니를 본 적이 있다고 해. 그 아주머니가 말한 집을 확인해 봤는데 그 집 사람들은 이미 이사를 갔더라. 시간이 너무 오래돼서 어디로 이사 갔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다른 나라로 간 것 같다고들 해.”아직 어머니를 찾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로도 큰 진전이었다.이전에는 윤아름이 살아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했으니 말이다.그 아주머니는 윤아름이 ‘잠자는 미녀' 같았다고 말했지만 곽경천은 윤혜인이 걱정할까 봐 그 부분은 말하지 않고 좋은 소식만 전했다.“정말 다행이야, 오빠.”눈가는 여전히 빨갰지만 윤혜인의 기분은 어느 정도 나아진 듯했다.‘확실히... 엄마는 아직 세상에 살아 계신 거야.’곽경천은 윤혜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꼭 어머니 찾을 거야.”30분쯤 지나서야 윤혜인은 집에 도착했다.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한 후, 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에 들었다.잠을 자고 나면 내일은 또 새로운 하루가 될 것이다....소원은 육경한이 구속된 사이에 회사의 주도권을 다시 손에 넣고 있었다.회사는 원래부터 한이 그룹과 깊은 연관이 있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이전에 소진용이 맡았던 에너지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제 소원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 프로젝트를 되살리고 있었다.소진용이 받았던 오명을 씻으려면 육경한이 직접 인정하지 않는 한 어려울 것이었다. 하지만 오명을 씻어낸다 해도 과거의 한이 그룹은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소원도 더 이상 그런 집착을 갖지 않았다. 소진용의 본래 목적은 에너지 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그저 에너지 산업을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이 아버지의 유언을 이루는 일이라고 생각했다.오늘, 소원은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했고 퇴근하려고 문을 나서던 중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서현재를 마주쳤다.그는 카키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잘생긴 외
길을 가던 중, 서현재가 물었다.“소원 누나, 저녁에 뭐 먹을까요?”“난 아무거나 괜찮아.”소원은 뉴스를 스크롤 하며 무심코 대답했다.그렇게 차는 조용한 한식당 주차장에 들어섰고 그곳은 꽤 아늑해 보였다.자리 잡고 앉자마자 음식이 빠르게 나왔다. 모두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담백한 음식들이었다.서현재가 입을 열었다.“소원 누나, 육경한 건에 대해 알아봤어요. 방씨 가문은 이미 두 번이나 큰 타격을 입었고 이번에 방민기의 일까지 겹치는 바람에 그쪽에서는 자구책으로 육경한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어요. 이번에는 증거도 충분해서 실수가 없을 거예요.”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육경한이 아직 법적으로 판결을 받지 않은 이상, 소원은 안심할 수 없었다.육경한은 유민 그룹을 거의 3년 만에 모두가 주목하는 위치로 끌어올렸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 아주 능숙했다.그래서 소원은 여전히 유진이를 공공연히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육경한이 어떤 반격을 준비하고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첫 번째 재판 날짜가 다가올수록 소원의 불안감도 점점 커져갔다.“이 기간 동안 방씨 가문을 계속 주시해야 해.”소원은 서현재에게 신중하게 당부했다.원래 그녀는 서현재를 이 복잡한 상황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이미 서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불법적인 거래를 증거로 제출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물러설 수 없었다.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신들을 지키는 것이었다.“네. 사람들을 붙여서 주시하고 있어요.”특별한 날인만큼 소원은 오늘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하려고 했다.그래서 그녀는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요즘 어르신께서 너한테 선자리 보러 다니라고 안 하셔?”“몇 번 봤어요.”서현재가 대답했다.“안 그러면 아버지가 화를 내셔서요.”소원은 그의 표정을 보고 상황을 이해했다.“다 잘 안됐구나?”그녀는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도 이제 적당한 사람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나처럼 되지 말고.”소원은 한 번 사랑에 깊이 상처를
소원은 ‘사랑’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과거에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역겨움이 몰려왔다.그녀의 몸조차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서현재는 소원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핸들을 살짝 움켜쥐고 말했다.“됐어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서현재는 속으로 생각했다.그녀가 육경한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그것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진정한 사랑은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소원이 서현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짝사랑은 멈추지는 않을 것이었다.그래서 서현재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침을 꿀꺽 삼키며 서현재가 한마디 했다.“들어가요. 바람이 차요.”말을 마치고 그는 곧장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윙윙거리는 소리 속에서 소원이 조용히 말했다.“사랑하지 않아.”주변은 엔진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밤바람이 살며시 불어와 은은한 조명이 소원의 얼굴에 쏟아졌다.그녀의 눈동자는 슬픔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 소원은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다.서현재는 붉은 입술을 살짝 다물고 말했다.“재판이 잘 되길 바랄게요.”몇 초가 흐른 뒤, 소원은 다시 입을 열었다.“현재야, 난 이생에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거야.”크지는 않았지만 명확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 부드러운 음색 속에는 깊은 절망과 슬픔이 담겨 있었다.한때 소원도 사랑을 꿈꾸던 소녀였지만 그 끔찍한 수치와 고통을 겪은 후, 그녀는 사랑하고 사랑받을 능력을 잃어버렸다.심지어 그녀는 한때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다.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이 자신이 뭘 잘못해서 그런 것일까 하며 말이다.소원과 육경한은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미친 사람들처럼, 누가 더 깊이 찌를 수 있을지 내기를 하는 것 같았다.육경한은 소원을 놔줄 생각이 없었고 소원 역시 육경한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끝은 비극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괜찮아요.”서현재는 소원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소원 누나, 누나가 사랑할 수 없다고
소원은 육경한이 법정에 앉자마자 자신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았다.그 미소를 보는 순간, 소원의 몸은 마치 자연스럽게 반응한 듯 소름이 돋았다.옆에 앉아 있던 한 아주머니가 그녀의 표정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아가씨, 괜찮아요?”그러자 소원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저 괜찮아요.”그 아주머니는 친근하게 말을 이어갔다.“아가씨는 저분과 친구 사이인 거예요?”소원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아, 그럼 저랑 같은 이유로 여기 오신 거예요?”아주머니가 물었다.소원은 아주머니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는지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아주머니는 소원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창백한 얼굴에 슬픔이 묻어 있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아가씨도 저랑 마찬가지로 저분께 도움을 받은 사람들 중 한 명인 거군요.”아주머니가 설명했다.이 말을 듣자마자 얼굴에 억지로 지은 미소가 사라지며 소원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어갔다.“저는 법기사 앞에서 면을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해요. 몇 년 전 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는데 육경한 선생님께서 그걸 알고 저에게 의족을 연결해 줄 사람을 찾아주셨어요. 이후로도 제 가게를 계속 도와주셨죠. 매년 절에 네 번씩 찾아와 제게 선물도 가져다주시곤 했어요.”소원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법기사요? 그곳에서 장사하셨나요?”소진용과 전미영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 바로 법기사였다.“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났고 몸이 안 좋아서 자식을 낳지도 못했어요.”아주머니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말을 이었다.“행운스럽게도 법기사의 장로님이 저를 거두어 주셔서 절 앞에서 장수면을 팔면서 지내고 있죠.”소원은 아주머니의 얼굴이 점점 더 익숙하게 느껴졌다. 바로 그 법기사 앞에서 면을 팔던 아주머니였다.아주머니는 말을 이어갔다.“육경한 선생님께서는 항상 절에 와서 고인을 위해 제사를 지내셨어요. 몇 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네
소원은 그 순간, 몸서리가 쳐지는 기분을 느꼈다.자신에게는 끔찍한 악마였던 육경한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선인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황당하고 터무니없었다.그렇게 소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발이 걸려 소리가 났고 그 소리에 육경한의 눈빛이 그녀에게로 향했다.소원은 본능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고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심지어 재판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들리지 않았다.그녀는 비틀거리며 법정 안을 빠져나와 복도에 있는 기둥을 붙잡고 천천히 주저앉았다.가슴이 쿵쾅거리고 심장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마치 모든 것이 뒤집혀 버린 듯한 충격을 느꼈다.‘육경한이 다른 사람들 눈에 착한 사람으로 비친다고? 말도 안 돼! 이렇게 터무니없는 일이 어딨어!’육경한이 자신에게 한 짓들을 생각할수록 소원의 분노와 공포는 극에 달했다.그는 소원을 모욕했고 그녀를 불러다 배가 나온 사업가들과 함께하도록 강요했으며 때로는 여러 명과 함께하도록 했다.그뿐만 아니라 육경한은 소원의 뺨을 때리고 바다로 뛰어들어 고기밥이 되라고 협박했으며 그녀가 병으로 몸이 망가졌을 때조차도 가혹하게 대했다.너무나도 많은 끔찍한 기억들이 떠올랐다.다른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이었던 그가 소원에게는 악마였고 지옥이었다.그녀에게 있어 육경한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했다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그저 어둠에 물든 이 세상에서 소원은 육경한이 더더욱 잔혹하게 보일 뿐이었다.소원은 몰랐지만 그녀가 떠난 그 5년 동안 육경한은 다른 사람들 눈에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의 집착은 뼛속 깊이 박혀 있었고 소원과 관련된 일에서는 결코 정상적이지 못했다.육경한은 소원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소원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그래서 소원이 그런 기미를 보일 때마다 육경한은 세상을 파괴하고 자신과 그녀를 함께 묻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결국, 세상에는 진정한 의미의
소원은 예상보다 너무나도 빨리, 그리고 완전히 멀쩡한 모습으로 육경한이 풀려난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이 모든 일이 너무 빨리 일어났고 육경한이 그 짧은 시간 안에 아무런 피해도 없이 나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아주머니는 소원이 자신과 같은 이유로 기뻐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아가씨도 기쁘죠? 육경한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요? 저기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축하하고 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아주머니는 소원의 손을 잡고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며 육경한에게 다가갔다.소원은 마치 좀비처럼 경직된 상태로 움직였고 아주머니는 그녀가 얼마나 무기력한 상태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사람들 사이를 뚫고 들어간 아주머니는 웃으며 육경한에게 인사했다.“선생님, 여기 예쁜 아가씨가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육경한은 침착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원을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네? 저한테 무슨 감사 인사를 하시려고?”아주머니는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당황하며 소원을 바라보았다.“아가씨,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뭐라고 드릴지 말해보세요. 지금 여기 계시잖아요...”법정 밖의 차가운 흰 빛이 소원의 얼굴에 비춰 그녀의 혈관과 푸른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창백해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아주머니도 그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다.아주머니는 소원의 손을 꽉 잡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아가씨, 왜 이렇게 손이 차가워요?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소원은 온몸에 무기력함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차분해지라고 다그쳤다. 육경한이 방금 풀려난 이 순간, 그녀가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무슨 일 있나요? 몸이 안 좋아요?”육경한은 아주머니의 손에서 소원의 손을 넘겨받으며 차분하면서도 이질적으로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날 건드리지 마!”소원은 마치 덫에 걸린 새처럼 갑자기 뒤로 물러나며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육경한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증오
소원은 육경한이 그렇게 말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결국 남자는 활이 이미 당겨진 상태라면 멈추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무시하려 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의 신체적인 변화는 너무나도 분명했기 때문이다.소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 그는 더 이상 손발을 함부로 놀리지 않았고 꽤나 얌전하게 행동했다.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것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듯했다.별장에 도착하자 소원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육경한의 손에 손목이 잡혀 멈춰야만 했다.육경한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내가 너를 봐줬는데 너는 나 안 도와줄 거야?”소원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계하며 물었다.“내가 어떻게 도와줘? 설마 차 안에서 또 하려는 건 아니지?”“아니야.”육경한은 단호하게 부정하며 말했다.“내 방패가 돼 달라는 거야.”소원이 아직 이해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사이 육경한은 차에서 내려 소원을 품에 안아 올렸다.그러자 소원은 육경한의 품에 움츠러들었고 그가 그녀에게 덮어준 재킷이 적당히 민망한 것을 가려주었다.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긴 했다.소원은 더 이상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많기에 그를 자극하면 자신의 행동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남자는 그녀를 방으로 데려간 후 침대에 던지듯 올려놓았다.쿵 소리가 나며 소원은 부드러운 침대에 깊이 파묻혔다.“뭐 하는 거야!”놀란 소원이 외쳤고 육경한은 몸을 숙여 그녀를 눌렀다.“숙제 계속해야지.”소원은 몸부림쳤다.“안 한다고 하지 않았어?”남자는 그녀의 목덜미를 가볍게 물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피를 빨아낼 듯 굶주려 있었다. 소원은 찌릿찌릿한 통증을 느꼈다.“차 안에서는 안 한다고 했지. 집에서는 안 한다고는 안 했어.”그는 불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이후 모든 말은 흔들리는 침대 위에서 사라졌다.지칠 대로 지친 소원은 그만 정신을 잃고 잠이 들었다.육경한
육경한은 그녀의 말을 듣고 옅게 미소 지었다.“넌 내 아내야. 아내랑 하는데 무슨 수단이 필요하겠어?”그는 소원의 부드러운 몸을 따라 손길을 내려보내며 신중하게 그녀의 모든 민감한 부분을 자극했다.두 사람의 몸은 이미 한 번 완벽히 맞아 들었던 경험이 있었고 그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지난번 그 불꽃 같은 밤 이후, 이 감정은 다시금 불타오르고 있었다.육경한은 그녀의 몸을 자기 몸처럼 잘 알고 있었다.어디를 만지면 그녀가 민감해질지, 어디를 자극해야 몸이 반응할지, 육경한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얼굴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소원은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당... 당신 진짜 미쳤어! 이 손 치워!”하지만 육경한은 그녀의 거칠게 반항하는 모습조차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곧 그는 소원의 목덜미로 입술을 가져가 부드럽고 달콤한 숨결을 불어넣었다.“불편해?”그는 낮고 깊은 목소리로 물으며 그녀의 목을 가볍게 흡입했다.잠시 후, 육경한은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눈앞에 대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정말 불편해?”소원은 그의 손가락 끝에 맺힌 흔적을 보자 얼굴이 붉어졌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진짜 무슨 병 있는 거 아니야?!”육경한은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더욱 흐뭇해했다.“그래, 맞아. 난 너한테만 병이 있어.”그는 속으로 말했다. 그건 그리움의 병이었고 밤마다 소원을 떠올리며 잠 못 이루는 병이었다.소원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뼛속까지 각인된 병이었다.육경한은 늘 후회했다.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기회를 얻어 소원에게 더 잘 대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녀가 자신을 사랑했던 그 마음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소원은 육경한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그건 누구라도 반응했을 거야. 착각하지 마.”그녀는 애써 무심한 척하며 육경한의 행동에 기가 차 웃음을 흘렸다.“뭐 이런 거로 잘난 척하는 거야? 차라리 클럽에 가서 남자 찾는 게 낫겠다. 그 사
소원이 이렇게 말하자 육경한의 잘생긴 얼굴에 한층 더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알잖아. 난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아.”그가 방민아와 결혼했던 건 단지 소원 때문에 완전히 망가진 마음 때문이었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 선택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방씨 가문에 대한 미련은 이미 오래전에 끊어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죄책감 따위 남아 있지 않았다.육경한은 방씨 가문의 구세주가 아니다.그 멍청하고 생각 없는 남매를 계속 뒤치다꺼리해줄 이유도 없었다.그가 방민아를 무시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하지만 방민아는 변해 있었다.사랑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바뀌는 걸까?누군가는 스스로 치유의 길을 선택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길을 선택한다.결국 방민아와 육경한은 닮아 있었다.둘 다 사랑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무모한 존재들이었다.소원은 천천히 육경한을 올려다보며 비웃음을 지었다.“그렇겠지. 당신은 정이 없는 대신 누구에게나 쉽게 마음을 주는 사람이잖아. 도처에 널린 것들에겐 아무런 도전심이 안 들겠지.”그 말에 육경한의 눈빛이 번뜩였다. 분노가 서려 있었다.그는 오늘만큼은 감정을 억누르고 소원의 말을 받아넘기려 했지만 그녀의 한마디는 육경한의 신경을 건드렸다.“그래, 맞아.”그는 낮은 목소리로 냉소를 머금으며 말했다.“난 가시 돋친 걸 좋아하거든.”이와 동시에 그는 손을 들어 소원의 턱을 붙잡아 고정시켰다.“그래서 네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거야.”소원이 몸을 비틀며 불쾌한 듯 외쳤다.“이 손 놔!”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읍...!”소원은 온몸으로 저항하며 그를 밀쳐내려 했지만 남자는 오히려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육경한은 소원의 반항을 가볍게 제압했고 손놀림 하나로 그녀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그의 손이 피부 위를 스치자 소원의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그녀는 육경한의 입술을 물었고 겨우 두 마디를 뱉었다.“이...
소원은 육경한의 반응에 살짝 놀랐다.적어도 그녀를 질책하거나 화를 낼 줄 알았으니 말이다. 아니면 무언가 벌이라도 내릴 줄 알았는데 그의 표정은 지나치게 평온했다.마치 정말 단순히 소원을 데리러 온 것처럼 보였다.사실 방민아에게 했던 말은 거짓이었다.육경한이 그녀가 원본 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소원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그저 방민아의 마음속에 의심의 씨앗을 심고 싶었을 뿐이다.육경한은 조용히 차 문을 열었다. 소원도 거부하지 않았다.애초에 그녀는 오늘 육씨 가문의 차를 타고 온 상황이었다.운전기사가 앞 좌석에 앉아 차를 몰았고 두 사람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겉으로 보면 아름다운 남녀였지만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깊은 벽이 존재했다.오랜 침묵 끝에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네가 맞췄어. 네가 원본 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난 막지 않았어.”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영상을 방현수에게 넘겨줄 때,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소원이 그 영상을 터뜨리지 않을 거라는 희미한 기대가 있었다.왜냐하면 만약 영상이 퍼지면 방씨 가문과 밀접하게 협력하는 미우 그룹이 연루될 것이 분명했고 육연주처럼 가까운 가족도 휘말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너무 많은 문제를 동반한 일이었다.하지만 그는 도박에 졌다.소원의 마음속에는 육경한을 위한 단 1%의 여지도 없었던 것이다.미우 그룹 또한 그녀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왜 그 사람들의 죄악을 덮어주고 그들이 편히 살게 둬야 하지?”그날의 치욕을 떠올리자 소원은 눈빛이 붉게 물들었고 온몸이 떨렸다.“몇 번이나! 당신들 눈엔 다른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하찮은 거야?”“다른 사람은 나와 상관없어.”육경한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잘생긴 얼굴에는 얼음 같은 무표정만이 드리워졌다.소원은 그가 이제서야 그녀를 질책할 것이라 생각하며 말을 기다렸다.하지만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하지만 이번엔 네가 있어서, 난 그냥 두 눈을 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정말 알고 있는 걸까? 경한 씨가 정말... 알고 있는 걸까?’방민아의 눈빛이 흔들렸다.그가 방씨 가문에게 단 하나의 숨 쉴 틈도 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이렇게 몰아세우면 결국 방씨 가문과 육경한은 물고 물리는 싸움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처음으로 방민아는 육경한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움을 느꼈다.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 그런데 그를 이렇게까지 몰랐던 걸까?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경찰서를 벗어나기 전, 방민아는 다시 경찰에게 불려갔다.그녀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변호사의 손을 붙들고 애원했다.“아빠한테 말해주세요. 절 구해달라고요. 육경한은 믿으면 안 돼요. 절 꼭 구해야 해요. 들어가기 싫어요. 하루라도 안 돼요!”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원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녀가 원했던 건 바로 이런 결과였다. 방씨 가문과 육씨 가문이 완전히 갈라서고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드는 것.결국 방씨 가문은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육경한의 수완으로 보아 방씨 가문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건 시간문제였다.그렇게 되면 방민아와 방민기를 보호하던 방패막이 무너질 것이고 그들은 마침내 자신이 저지른 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소원이 공개한 영상은 다른 피해자들도 용기를 내어 방민아와 방민기의 악행을 세상에 폭로하도록 촉구하고 있었다.경찰에게 끌려가던 방민아는 육경한 옆을 지나치며 절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육경한, 저 여자가 한 말이 정말이야? 이미 원본 영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네가 그걸 이용해 우릴 협박한 거야? 당신이 어떻게 우리 집에 이럴 수 있어!”그녀는 이성을 잃은 듯 울부짖었다.“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는데... 얼마나 사랑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육경한, 당신은 정말 마음도 없는 거야?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이야!”아무리 울고 불며 소리를 질러도 남자는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얼음처럼 차가운 눈동자는 멀리 서 있는 소원을 바라보며 그녀를 이해하
방민아는 육경한이 온 것을 보고 소원의 계획을 전혀 모른 채 문제를 해결하러 왔다고 생각했다.마음속에 작은 기대감이 솟아나자 그녀는 눈을 굴리며 결심했다.반드시 육경한의 앞에서 이 여자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고 소원이 얼마나 악랄하고 비열한지 깨닫게 해야 한다고.“넌 경한 씨를 이용하고 있어. 결혼한 것도 경한 씨를 이용하려는 속셈이지? 네 힘만으로는 방씨 가문을 쓰러뜨릴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경한 씨와 결혼하지 않으면 경한 씨가 너에게 마음을 놓지도, 네 행동을 그냥 두고 보지도 않을 걸 알고 있었으니까.”방민아가 소원을 향해 매섭게 쏘아붙였다.“그래서 어쩌라고?”소원은 그녀의 말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치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방민아는 갑자기 하늘을 보며 큰소리로 웃어댔다.“하하하하... 이제 알겠어. 넌 경한 씨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용하고 있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우리를 갈라놓고도 넌 그 사람을 전혀 사랑하지 않잖아! 그거 알아? 경한 씨가 네 자식을 위해 정관 수술까지 했다는 거. 나한테 결혼하자고 했을 때 자식은 평생 가질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어. 그게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빨리...”문득 말을 멈춘 방민아는 자신이 말실수를 할 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하마터면 자신의 악행을 자백할 뻔했던 것이다.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무슨 차이가 있을까? 소원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고 방민아가 한 짓으로 단정하고 있었다.그녀가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육경한이 얼마나 큰 희생을 했는지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원이 그를 이렇게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육경한이 이런 말을 듣고도 충격을 받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 분명히 마음속에 큰 상처가 생길 것이고 그러면 육경한은 더 이상 소원이 이렇게 제멋대로 굴게 두지는 않을 것이었다. 적어도 방민아는 이렇게 생각했다.“네 말이 맞아.”소원은 그녀를 보며 간단히 인정했다.“내가 그 사람을 이용하는 게 뭐가 어때서?”방민아는 소원이 이렇게 쉽
마치 과거에 소원이 육경한을 상대하던 방식을 똑같이 돌려받고 있는 듯한 상황이었다.방민아는 의심스러웠다.‘이 여잔 정말 이 세상에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없나?’“넌 그럴 리 없어. 이런 일을 하면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될 거야. 네 아이도 장차 그걸 알게 될 텐데 정말 부끄럽지 않아?”방민아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네 아이의 엄마가 이런 대우를 받았다는 걸 알면 사람들이 네 아이를 비웃지 않을 거라 생각해?”그러나 소원이 대답 대신 터뜨린 것은 거침없는 웃음이었다.“하하하하하...!”그 웃음소리는 광기 어린 울림이었고 방민아는 본능적으로 오싹한 기분에 휩싸였다.“웃지 마! 이 미친 여자야, 네 웃음소리 소름 끼친다고!”방민아가 소리쳤지만 소원은 웃음을 멈추지 않고 그녀를 보며 물었다.“방민아, 당신 말이 너무 우스워서 그래. 내가 부끄러워야 한다고? 당신은 가해자이고 나는 피해자인데 왜 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하지?”소원은 단호한 목소리로 이어갔다.“내가 왜 부끄러워야 하지? 내 아들이 왜 부끄러워야 하지?”목소리는 점점 더 단단해졌다.“내가 맞고 약을 먹고 힘을 잃었던 게 부끄러운 일이야? 내가 힘이 부족하고 권력이 없으며 당신들처럼 배경이 좋지 않은 게 내 잘못이야? 그래서 내가 당신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야 하고 모욕을 받아야 하는 거야?”소원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정말로 부끄러워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잘 생각해 봐. 당신들이 그렇게 잘 보관하던 영상... 그 조회 수가 얼마인지 알아?”잠시 숨을 고른 뒤, 소원이 단호하게 말했다.“1억! 조회 수가 1억이야!”그녀는 비웃음을 머금고 말했다.“1억 명의 네티즌에게 판단을 맡겨보자고. 누가 부끄러워야 하는지. 사람들이 공정하게 답을 줄 거야.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두겠는데 설령 이번에도 운명이 나를 돕지 않는다 해도 나는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아. 부끄러운 건 내가 아니라 병든 세상이니까.”소원은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렷이 발음하며 덧붙였다.“그리고 내 아들
방민아의 초조한 기색은 고스란히 소원의 눈에 들어왔다.소원은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말했다.“방민아, 육경한이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미친 사람이야. 나 같은 미친 사람이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이 미칠 필요가 있을까?”“경한 씨가 네가 이런 짓을 하는 걸 가만둘 리 없어.”방민아는 육경한이 그녀를 방치할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만약 가만히 둔다면 그것은 곧 미친 짓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소원은 웃으며 대답했다.“그 사람이 날 막든 말든 내가 뭘 하든 그건 내 마음이야. 아무도 날 막을 순 없어.”“너 진짜 미쳤구나?”이 순간 방민아는 소원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깨달았다.자신이 진짜 위험한 사람을 건드렸다는 사실에 서늘한 공포가 몰려왔다.이 여자는 자신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내가 왜 이렇게 오래 당신이랑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아?”소원이 갑자기 방민아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맑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뭘 하려고 하는 거야?”방민아는 그녀의 눈빛에 소름이 돋으며 뒷걸음질 쳤다.이 여자가 또 무슨 충격적인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저기 누가 있는지 봐.”소원이 멀리 경찰차가 멈춘 곳을 가리켰다.고개를 돌려 본 방민아의 시선에 방민기가 손이 뒤로 묶인 채 경찰차에서 내리고 있는게 보였다.“오빠...!”그녀는 입을 틀어막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속삭였다.‘어떻게 이런 일이...’그녀는 고개를 돌려 소원을 노려보며 물었다.“너 그날 밤 영상을 경찰에 넘긴 거야?”‘그럴 리 없어. 그 영상의 원본은 경한 씨가 직접 아빠한테 건네주며 파기했다고 하지 않았나?’방현수는 직접 나서서 육경한과 협상하며 이번 사건이 크게 번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조건으로 방씨 가문과의 과거 은혜 관계를 정리하고 완전히 남남이 되기로 했다고 했었다.방씨 가문이 미우 그룹으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은혜는 육경한을 평생 얽매는 무기가 될 수 있었다.방현수가 그렇게 한 이유도 단순히 방민아
방민아는 경호원의 말을 듣고 폭발하려던 감정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그렇다. 자신이 이런 여자의 몇 마디 말에 흔들릴 필요가 없었다.예전의 방민아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자제력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난 멍청하고 생각 없는 사람들과 달라. 계속 이미지를 망칠 순 없어.’그녀는 이내 다시 평정심을 되찾고 부드럽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소원 씨, 두고 봐요. 소원 씨도 곧 이 안에 들어가서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게 해줄 테니까.”소원은 웃으며 물었다.“그 전에 소송은 다 끝났어요? 그렇게 대단하면 민아 씨 일부터 해결하지 그래요?”방민아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내가 무슨 소송에 얽혀 있다는 거예요? 이번 일은 나랑 아무 상관없어요. 이미 누군가 대신 책임졌으니까 소원 씨도 날 함부로 모함할 생각은 하지 마요.”소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정말 아무 상관도 없다고요? 그럼 밤에 잠은 잘 와요? 지난 세월 동안 민아 씨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망쳐놓았는지 생각해 보면서도요?”순간 방민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소원은 그녀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당신이 저지른 모든 악행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신의 가식적인 얼굴을 벗겨낼 거야.”그 순간 방민아는 자신도 모르게 소원에게 완전히 기세가 눌렸음을 깨달았다.하여 어쩔 수 없이 계속 물러서기만 했다.“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하겠지? 이제 안심하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소원은 천천히 방민아에게 다가갔다.그녀가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방민아는 한 걸음씩 뒷걸음질 쳤다.“방민아, 당신도 알다시피 난 몸이 좋지 않지만 죽기 전에 한 가지는 할 수 있어. 그건 바로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제대로 된 벌을 받게 만드는 거야.당신은 절대 내 아이를 건드렸어서는 안 됐어.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를 건드렸으니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방민아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소원이 왜 이렇게 무서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