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다음 날, 신은지는 정오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고 눈이 부신 햇살 때문에 눈이 따가웠지만 온몸이 시큰거려서 움직일 수 없었다.박태준은 언제 일어났는지 이미 방에 없었고, 그녀는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고는 커다란 침대에서 뒹굴었다.이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가사 도우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진씨 성을 가진 아가씨가 지금 아래층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신은지는 진유라가 왔다는 말에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태준이는요?”“대표님도 아래층에 계십니다.”세수를 마치고 내려온 신은지는 진유라가 피곤한 얼굴과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을 정도의 짙은 다크써클로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어젯밤 뭐 했어?”가사 도우미는 따뜻한 꿀 대추차와 간식 몇 접시를 가져다주면서 말했다.“대표님께서 점심을 먹으려면 아직 2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먼저 간식을 드시라고 하시네요.”진유라는 기운이 없는 듯 나른하게 소파 등받이에 기대고 앉아 있다가 신은지의 귀에 대고 나지막한 소리로 몇 마디 했다.“그게...”때마침 차를 마시고 있던 신은지는 진유라의 말에 충격을 받아 사레에 걸려서 연신 기침까지 했다.“너 정말 대단해! 그래서 우리 집에 피신 온 거야?”진유라는 이를 드러내면서 환하게 웃었다.“은지야, 나 며칠만 여기 있게 해줘. 안방이랑 가장 멀리 떨어진 방에서 너희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있을게.”어젯밤 진유라는 여기저기서 들은 팁으로 자기가 잠자리를 리드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했지만, 결국 곽동건의 뜨거운 욕망에 짓눌려 속수무책으로 끌려가야만 했다.밤새도록 곽동건의 거친 움직임을 받아들여야 했던 진유라는 온몸이 욱신거렸고 자기의 집과 호텔보다는 신당동이 안전할 것 같아 눈 뜨자마자 여기로 온 거였다.진유라는 어젯밤 일이 또다시 떠올라 얼굴을 붉히면서 신은지에게 불만을 털어놨다.“은지야, 어젯밤 동건 씨가 얼마나 날 거칠게
진유라는 곽동건이 너무 빨리 자기의 위치를 알아낸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그에게 알려줬다고 생각했다.“은지가 알려줬을 리는 없고, 설마 태준 씨가 당신한테 연락했어요?”“네.”곽동건의 너무 빠른 인정에 당황한 진유라가 비꼬는 말투로 다시 물었다.“당신이 이렇게 빨리 태준 씨를 팔았다는 걸 알면 얼마나 후회하겠어요!”“각자 필요한 것만 이용하는 거지, 팔아넘긴 건 아니죠.”진유라는 눈까지 희번덕거리며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대화를 나누는 동안,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졌고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방안을 비추고 있어 두 사람의 표정이 흐릿하게 보였다.곽동건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신은지에게 물었다.“내가 바지까지 입혀 줄까요?”진유라는 어젯밤 아픔을 참지 못하고 곽동건에게 베개를 내던진 것이 생각났다.“당장 나가요!”“그러니까 얼른 옷 입어요,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요.”진유라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놀렸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면서 한마디 했다.“유라 씨, 나 며칠 동안 지방 출장이 잡혔어요.”환한 조명 아래의 곽동건은 청춘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늘씬한 자태와 잘생긴 외모를 뽐내고 있었다.진유라는 어젯밤 자기가 술에 취해 주정을 부려서 곽동건의 욕구를 불러일으켰기에 다른 사람을 원망할 수도 없었고 자꾸만 야한 생각과 생동감 넘치는 야릇한 장면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그녀는 일부러 곽동건을 골탕 먹이려고 방에서 늦게 나온 것보다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쑤셔서 빨리 행동할 수 없었다.게다가 곽동건을 피하고자 신당동을 온 거였는데, 그가 출장을 간다고 하니 더 이상 신은지와 박태준의 알콩달콩한 신혼 생활을 방해하면서까지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가요.”곽동건은 그녀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얼굴까지 찡그리며 걱정되는 말투로 물었다.“아직도 아파요?”“동건 씨가 이런 걸 물어볼 자격이 있어요? 당신이 조금만
5월, 신은지는 한 프로그램의 녹화를 한 적이 있었다.강혜정은 지인들과 집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고, 그중 한 명이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리다가 신은지가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보고 흥분해서 언성을 높였다.“빨리 이거 봐봐요!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 혜정 씨 며느리가 맞죠?”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강혜정은 고개를 돌려 TV를 응시했고, 지인의 말대로 신은지가 문화재 복구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방송되고 있었다.“평범한 사람은 출연도 못 하는 프로그램에 나온 걸 보면 너무 대단하지 않아요?”강혜정은 사실 신은지가 방송 출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어서 무슨 프로그램인지 전혀 몰랐지만, 과장된 표현까지 써가면서 자랑하기에 바빴다.그중 한 명의 지인이 조심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태준이랑 은지가 결혼한 지도 꽤 됐는데 아이는 언제 가질 생각이래요?”강혜정도 두 사람이 아이를 빨리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 먼저 말을 꺼내지 않고 있었다.“맞아요,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아이를 가지기도 힘들고 출산 후유증도 많은 데다가 회복도 느리잖아요.”“내 친정 조카딸은 올해 둘째를 낳자마자 셋째를 계획하고 있대요. 아직 어려서인지 임신과 출산을 연달아 해도 회복이 빠르고 힘든 기색이 하나도 없더라고요.”“맞아요! 여자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아이를 낳아야 해요. 내 남편의 동료는 젊었을 때 사업에 몰두하느라고 아이를 가지는 시기를 놓쳤는데 30대가 되어서 낳으려고 하니까 뱃속 태아를 지키는 데만 몇십만 원이나 들었대요.”강혜정은 그녀들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더 복잡하고 불안해졌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두 사람은 아직 둘만의 시간이 좋대요. 그리고 은지가 올해 겨우 26살이니까 적어도 2년은 더 놀아도 괜찮아요.”그녀의 말에 한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요즘 젊은이들은 우리랑 다르게 자기주장이 센 편이죠. 부모님이 아무리 잔소리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잖아요!”“월명사가 용하다고 하던데 우리 오늘 다른
그 이후로 박태준과 신은지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신은지의 배를 힐끔힐끔 쳐다봤다.시간이 조금 흐른 뒤, 신은지도 그의 시선을 알아채고 대뜸 물었다.“아이를 갖고 싶어?”박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좌우로 가로저었다.사실 그에게 있어서 아이를 가지는 것보다는 자기가 불임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했고 신은지가 자기한테 실망할까 봐 더욱 걱정되었다.이런 불안한 나날들이 두 달 동안 계속되었고, 박태준은 결국 남몰래 비뇨기과 검진을 예약했고 모자와 마스크로 중무장을 한 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그는 샘플을 채취한 용기를 실험실에 맡겼고, 담당 간호사는 바쁜 나머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여기 샘플 보관함에 두시고 오후 3시에 검진 보고서를 찾으러 오시면 됩니다.”수상쩍은 남자가 창가 구석에서 주위를 살피다가 박태준이 떠나자마자 박태준의 샘플을 자기의 샘플 용기에 부은 다음 빈 용기를 가지고 태연하게 화장실로 향했다.사실 그 수상쩍은 남자는 결혼 6년이 지나도 임신 소식이 없자, 1년 안에 임신하지 못하면 이혼하라는 처가의 최후통첩에 자기가 불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검사를 받으러 온 거였다.그러나 그 남자는 자기가 불임이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고 편안한 데릴사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샘플을 바꿔치기하기로 마음먹고 오전 내내 건장한 남자를 물색했다. 결국 박태준이 그의 타깃이 되었고, 모두를 철두철미하게 속이기 위해 미리 경비실까지 매수한 상황이었다....박태준이 차에 올라타자마자 신은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지만, 그는 마음이 복잡한 나머지 화면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은지야...”“뭐해?”“나...”박태준의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병원을 향하면서 여러 가지 변명을 생각했지만, 막상 입을 열었을 때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대충 둘러댔다.“일이 있어서 밖에 나왔어, 왜 그래?”“그럼, 점심에 회사로 들어와? 너랑 점심을 먹으려고 지
“저도 검사받으러 왔는데 결과가 아직 안 나와서 좀 긴장돼요.”말하고 나서 그는 떨리는 손을 박태준에게 보여주었다.“미리 공부하려고 그래요. 많이 보면 제 차례가 됐을 때 긴장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다 남자니까 이해해요.”그는 박태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따뜻한 인사를 건네려고 손을 뻗었지만 박태준이 피했다. 남자는 민망해하지도 않고 가까이 다가와 나지막이 말했다.“이런 일은 남자들이 알지 여자들은 비웃기만 해요. 우리는 낯선 사람이니 문을 나서면 다시 볼일도 없잖아요. 정말 뭐가 있으면 제가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줄게요.”그는 티 나지 않게 신은지를 훑어보았다. 옷부터 가방, 신발까지 명품 아니면 슈퍼 VIP만이 받을 수 있는 신상품이었다. 마지막에 그녀의 얼굴에 시선이 닿자 그는 눈이 번쩍 뜨였다.아내의 몸매와 외모가 그녀의 10분의 1이라도 된다면 그는 밥만 축내는 등처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못해도 자기 힘으로 노력해서 양말 한 켤레라도 사 주었을 것이다.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이 윙윙 진동했다. 그의 부자 아내에게서 걸려 온 전화다. 마음이 급한 그는 박태준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무슨 뜻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제가 한의사를 아는데 위로 3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궁중의 어의...”박태준은 그에게 현혹되지 않았다. 박씨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사기 식별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이 사람이 친절하게 굴수록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신은지 앞을 막아섰다.“가세요. 계속 이러면 경비원을 부를 거예요.”남자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달갑지 않은 듯 욕지거리를 하면서 혹시라도 박태준이 마음을 바꾸지는 않을까 싶어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이 소동이 있고 나서 박태준은 더 답답했고 심지어 불길한 예감까지 들었다. 그 남자가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보고 그는 검사결과지를 들고 의사를 찾아갔다.의사는 검사결과지를 훑어본 후 박태준을 쳐다보면서 콧등의 안경을 쓸어올리고 입을 열었다.“사정자증이에요. 살아
익숙한 병원 이름을 들은 박태준은 외래 병동의 번쩍이는 로고를 올려다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맞는데요. 무슨 일이죠?”“박태준 씨, 정말 죄송합니다. 방금 경비원이 CCTV를 보다가 수상한 사람이 당신들을 따라다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조사해 보니 그 사람이 박태준 씨의 검사 샘플을 바꿔치기했어요. 언제 시간 되면 다시 와서 검사받으실래요?”“샘플을 바꿔치기했다고요?”“죄송합니다. 우리 병원의 부주의로 생긴 일이니 이번에 낸 비용은 3배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다음번 검사 비용은 전액 면제하고 후속 치료가 필요하다면 그것도 무료로 해드리겠습니다. 혹시 다른 배상을 요구하시면 얘기하셔도 됩니다. 제때에 발견되어 아직 심각한 결과는 초래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책임을 회피하는 이 변명을 들은 박태준은 쓴웃음만 나왔다.“됐습니다. 뒷일은 변호사가 당신들 책임자와 얘기할 것입니다.”차가운 한마디를 내뱉고 그는 직접 전화를 끊었다.신은지는 입술을 너무 꽉 깨물어서 새하얘졌다. 그녀는 이미 최대한 참고 있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키득키득 웃었다. 방금 조성됐던 애틋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박태준은 구차해서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부드럽고 사랑 넘쳤다. 그녀가 눈물까지 흘리면서 웃는 것을 보고 다정하게 손수건까지 건네주었다.“그렇게 웃겨?”“아니, 웃기지 않아.”그녀가 웃긴다고 말하면 박태준은 틀림없이 화를 낼 것이다.귀가 도중에 곽동건이 정리된 영상과 함께 그 등처가의 자료를 보내왔다.“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에요?”오후에 본 얼굴이라 박태준은 낯설지 않았다. 검사결과지를 뽑을 때 이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친절하게 다가와서 다른 병원의 의료 브로커인 줄 알았다.화면 속 남자는 슬금슬금 검사 창구로 가서 샘플을 바꿔치기했는데, 수법이 서툴러 딱 봐도 초보였다. 의사, CCTV실 중 어느 한 곳이 직무에 충실했다면 바꿔치기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자가 진료실 밖에 숨어서 결과를 듣는 장면도 있었다.그 사람은 자기
박태준이 나간 후, 신은지는 베개 위에 놓인 그의 휴대폰을 가져다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려 했다. 잠금을 풀자마자 박태준과 고연우의 대화 기록이 보였다.“잘 아는 비뇨기과 의사가 없어?”“잘라버려. 한 번 고생하면 영원히 편해질 거야.”박태준은 화가 났는지 답장하지 않았다.30분 후, 박태준이 밥 먹으라고 부르러 올라왔을 때 신은지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는 침대 옆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일어나서 씻어. 내가 옷을 찾아줄까?”신은지는 얼굴을 이불 속에 반쯤 파묻고 말했다.“응.”박태준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돌아서려는데 신은지가 갑자기 일어나 앉더니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태준아, 검사받지 마. 우리 그냥 순리에 맡기는 게 어때?”“...”여인의 나른한 팔은 빨갛게 달아오른 쇠처럼 그의 허리에 밀착되어 옷을 사이에 두고도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박태준은 들어 올렸던 손을 천천히 그녀의 등에 내려놓았고, 섹시한 목젖이 오르락내리락했다.“그래.”신은지는 기뻐하며 상을 주듯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기특해.”그녀가 입술을 떼려는 순간 박태준은 그녀의 허리를 잡고 굶주린 호랑이처럼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배고픈 신은지는 그에게 밀려 다시 부드러운 침대로 돌아갔다.이튿날 박태준이 회사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몸이 비쩍 마르고 얼굴이 초췌한 남자가 모퉁이에서 뛰어나와 그의 차 옆에 서서 눈물 콧물 쥐어짜며 사과했다.“박 대표님, 부디 넓은 아량으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잠깐 어떻게 되었었나 봐요. 이게 다 아내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아내와 결혼한 지 몇 년 됐는데 계속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처가에서 최후통첩을 내렸거든요. 제 건강상의 문제로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이혼시키겠다고.”그가 오기 전에 조사한 결과, 박태준은 아내 바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를 접점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가깝게 만들려 했다. 인간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
박태준은 울지 않고 눈시울만 붉혔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신은지의 배를 바라보며 손을 뻗어 만지려 했다.신은지는 그의 눈길이 불편해 입술을 깨물었다.“아직 수정란 상태라 너랑 교감할 수 없어. 가자, 빨리 나가자. 의사 선생님이 아직 밖에 있어.”그녀는 박태준을 밀고 방에서 나왔다. 강혜정이 의사에게 임신 중에 뭘 주의해야 하는지 묻고 있었다. 의식주와 교통 등 사소한 것까지 캐묻는 모습은 전혀 경험이 없는 초보 같았다.적지 않은 월급과 두둑한 연말 보너스를 생각해서 의사는 아주 인내심 있게 자세히 대답했다.“사모님은 입덧이 아닙니다. 아침을 드시지 않은 데다 멀미가 나서 속이 안 좋았던 것입니다. 입덧은 보통 6주 정도에 시작되는데, 생리가 9일 늦춰졌을 뿐이라 당분간 임신 반응은 없을 것입니다.”박태준과 신은지가 나오자, 그는 또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는데, 특히 3개월까지 잠자리를 가지면 안 된다는 말을 강조했다.“...”의사를 보낸 후, 강혜정은 상의하는 어조로 그녀에게 물었다.“은지야, 아니면 우리 영양사를 고용할까? 태준이 평소에 일도 바쁘고 또 거칠어서 전문가처럼 세심하지 못할 거야. 넌 지금 혼자 먹어서 둘이 흡수하기 때문에 영양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나중에 고생해. 영양사는 뒤채의 직원 방에 묵게 하면 돼. 어때?”“그렇게 해요.”“그럼, 지금 바로 친구들에게 믿음직한 영양사, 육아/산후 도우미를 소개해달라고 할게. 산후조리원도 예약해야겠어. 지금 좋은 산후조리원은 예약이 그렇게 어렵대.”박태준과 강혜정이 너무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임산부인 그녀가 오히려 가장 덤덤해 보였다.이튿날 그녀가 깨어나자마자 박태준이 작은 목소리로 그녀의 배에 대고 말했다.“너 얌전히 있어. 엄마를 괴롭히지 말고. 안 그러면 나중에 나한테 맞을 거야.”신은지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태교할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너는 때리겠다고 말해? 앞으로 불효자가 나와서 너랑 싸웠으면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