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박태준이 그가 그녀를 차버릴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녀의 눈에 갑자기 밝은 빛이 감도는 것을 보았다. 분명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눈빛이었다.“...”아무리 고급 차라도 차 안의 공간은 제한적이다. 가뜩이나 좁은데, 무거운 얘기까지 나누면 더욱 숨이 막힌다.그녀는 허구한 날 곽동건과 헤어지기를 고대했지만 정말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왠지 모르게 긴장됐다.곽동건은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가 대답하지 않으면 줄곧 그러고 있을 것처럼.그녀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은 엄숙하고 진지했다.진유라는 긴장한 듯 침을 삼키고 사실대로 말했다.“그렇게까지... 하지만 저는 따뜻한 남자친구를 찾고 싶어요. 입만 열면 원칙을 말하고 항상 저에게 법을 보급하는... 아버지가 아니라.”마지막 한 마디를 그녀는 잠깐 멈췄다가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곽동건은 들었다.“...”후!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니 더 이상 겁낼 것 없는 진유라는 한꺼번에 쏟아냈다.“저는 스무 살까지 집에서 늦게 일어나면 아버지한테 혼나고...”진유라의 아버지는 원래 군인이었고, 진씨 가문에 돈도 많아서 일반 집안보다 규율이 엄했다.“이불을 개지 않으면 혼나고 일을 그르치면 혼나고 늦게 귀가해도 혼났어요. 어른이 된 후 겨우 독립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는데, 앞으로 40년 또 아버지 같은 사람과 살면서 매일 혼나고 싶지 않아요.”진유라는 멈추지 않고 불만을 늘어놓았다. 곽동건은 그녀의 말솜씨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내용을 듣고 기가 막혔다.“그리고 우리가 정말 결혼해서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면 더 끔찍해요. 성격이 나 같으면 나처럼 매일 혼날 건데, 많이 혼난 아이는 우울증에 걸린대요. 성격이 당신 같으면 더 비참하죠. 저 혼자서 두 사람한테 혼날 거니까. 제가 오래 살아서 죽고 싶은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살겠어요?”불구덩이인 줄 뻔히 알면서도 눈을 가리고 뛰어드는 것은 연애에 올인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녀 같은 정교한 이기주의자는 절대 평생 그런
이렇게 급하고 격식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결혼 축하연일 가능성은 없다. 박태준이 반년 동안 경인시에 없었고, 또 급하게 떠났던 터라 상류층에서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이제 돌아왔으니 강혜정이 루머를 잠재우려고 연회를 마련했다. 이 기회를 빌려 박태준이 사람들의 얼굴을 익히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연회 장소는 신당동이었고, 신은지가 박태준 아내의 신분으로 그와 함께 사람들을 접대했다.그녀와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사람들과 인사하고 접대하는 모습에서 전혀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연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신은지는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감쪽같이 박태준에게 상대방의 신분을 알려줄지 고민했다. 그의 기억을 잃은 것에 대해 몇몇 가까운 사람들만 알고 있다. 오늘 온 사람들은 모두 지인들이라 알아보지 못하면 너무 난처할 것이다. 그런데 전혀 그녀가 필요하지 않았다.박태준은 사람들의 호칭을 알 뿐만 아니라 능숙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해도 잘 받았다.“기억이 돌아온 거야?”신은지가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 술잔으로 옆얼굴을 가린 후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아니.”박태준이 고개를 약간 숙이고 그녀의 모습을 흉내 내더니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미리 공부 좀 했어.”그는 진영웅한테 상류층 사람들의 자료를 사진, 배경, 취미, 인간관계까지 상세히 나열해 달라고 했다.두 사람의 혼인신고 소식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광경을 보고 사람들이 소곤거렸다.“박 대표님과 신은지 씨가 곧 좋은 일이 있을 것 같군요.”“그럴 때도 됐죠. 열애 사실을 공개한 지 언젠데요. 얼마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시샘하는 사람도 있었다.“아직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죠. 내일 헤어질지도 몰라요. 그걸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요? 게다가 전에 한 번 이혼했었잖아요. 혼인신고해도 확실하지 않은데, 신고도 하지 않은 지금이야 더 말할 것도 없죠.”축복, 부러움, 질투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이런 말들을 사
성격이 털털한 진유라는 신은지의 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지금 동건 씨랑 만나는 중이니까 결혼 상대라면 당연히 그 사람밖에 생각나야 하는 거 아니야? 은지야, 나 생각보다 도덕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설마 날 바람둥이라고 생각했던 거야?”“됐어, 됐어. 너 한결같은 사람이란 거 나도 알아. 너 언제 결혼할 거야? 우리 이참에 같이 할래?”“우리는 아직 결혼 생각 없어. 네가 나랑 동반 결혼식을 하겠다고 계속 기다리면 태준 씨가 날 가만히 놔두지 않을걸?”형광등 아래 비친 진유라의 얼굴은 흠잡을 데 없이 빛났고 그녀는 애꿎은 케이크를 포크로 계속 찔러대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은지야, 넌 이미 혼인신고도 다 했잖아! 그래서 결혼식은 언제 올릴 거야? 지금 다들 너희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다는 걸 모르니까 여자들이 태준 씨를 꾀어서 박씨 가문에 들어오겠다고 난리잖아. 내가 방금 들어왔을 때도 많은 여자가 태준 씨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어.”신은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경인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둘 다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서 아직 정하지 않았어. 결혼식 날짜가 정해지면 너한테 첫 번째로 알려줄게.”“너 전혀 조급해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이야?”“나 사실 별로 하고 싶지 않아.”진유라는 생각지도 못한 신은지의 말에 언성을 높였다.“돈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왜 안 해!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안 하면 너 이후에 후회할 거야! 전에는 네가 태준 씨한테 마음이 없어서 결혼식을 안 올려도 상관없었지만, 지금은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인데 당연히 해야지. 게다가 태준 씨는 지금 주머니에 널 넣고 다니고 싶어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너와의 관계를 알리고 싶어서 안달 났는데 결혼식을 올리지 않겠다는 네 말에 동의할 거로 생각해?”신은지의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박태준에게로 향했고, 그도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뚫어져라 쳐다봤다.이어 박태준은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옆 사람과 몇 마디 하고
화장실 안 여자들의 대화는 끝날 줄 몰랐고 신은지는 어쩔 바를 몰라 고연우를 몇 번이고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그는 예상외로 담담한 표정으로 대화를 듣고 있었다.신은지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떠나려는 순간, 그녀의 발걸음 소리에 고연우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신은지가 뭐라 말하려고 할 때,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고 곧이어 세 여자가 깔깔거리며 나왔다.그녀들은 험상궂은 표정의 고연우를 발견하고 얼굴이 굳어지면서 말까지 더듬거렸다.“연... 연우 도련님, 당신이 왜 여기에...”고연우는 섬뜩할 정도로 무서운 미소를 지으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무섭고 지독하다고요?”“...”그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세 여자는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거실의 시끄러운 소리마저 배경음으로 바뀔 정도로 그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고, 신은지도 남의 입에 오르내린 것이 자기가 아니었기에 마음 놓고 흥미진진한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한편, 박태준은 신은지가 한참 동안 보이지 않자, 여기저기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찾아다녔다.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를 깨는 박태준의 목소리가 들리자, 신은지는 그에게로 황급히 달려가면서 얼른 입을 막았다.“조용히 해! 여자들이 민아 씨의 뒷담화하는 걸 연우 씨가 들었어. 지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박태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한마디 했다.“우리는 이만 가지.”신은지는 한참이 지나도 세 명의 여자가 연회장에 나타나지 않자, 연신 복도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박태준에게 물었다.“연우 씨가 그 여자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건 아니겠지?”신은지는 고연우와 정민아의 부부 사이가 얼마나 돈독한지는 몰랐지만, 박태준의 말에 따르면 그는 누군가가 아내를 죽이려고 달려든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신 칼을 맞아줄 정도로 아내를 사랑하는 순애보라고 했다.그녀는 문득 고연우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세 여자에게 무슨 짓이라도 저지르기라도 한다면 연회의 주최자인 박씨 가문에서 책임을
신은지는 문득 박태준의 병세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아 슬픔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뒤섞여 있는 와중에 그가 쓴 일기장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져서는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펜을 들고 그가 까먹었던 추억들을 보충해 주던 모습이 떠올랐다.그녀는 박태준이 지금은 두 사람의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자기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행복하고 고마웠다.신은지의 글씨체를 본 적 있는 박태준은 그녀가 쓴 내용이 맞다고 확신했지만, 그녀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확신이 불확신으로 변하면서 다시 물었다.“설마... 네가 쓴 게 아니야?”신은지는 자기의 글씨체를 뻔히 알고 있는 박태준이 계속 묻자, 답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졌고 그녀가 대답하지 않을수록 그는 더욱 집요하게 물었다.“은지야, 이 내용들은 네가 쓴 거 맞아?”그녀는 집요하게 대답을 요구하는 박태준을 옆으로 밀쳐내며 퉁명스럽게 답했다.“아니, 귀신이 쓴 거야.”“네가 귀신이야?”“...”박태준은 원하던 답을 얻어내자,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고 해맑은 미소와 함께 발걸음도 가벼워졌다.침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뒤에서 신은지를 끌어안고 그녀의 얇은 어깨에 턱을 기대면서 일기장의 한 구절을 가리키면서 진지하게 물었다.“은지야, 이때 너 나한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었어?”박태준은 신은지의 귓볼에 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자, 순간 짜릿한 느낌이 그녀의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신은지는 정신을 차리고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내용을 내려다보았다.박태준이 가리키는 곳에는 신은지가 나유성을 따라 부자들의 등산 활동에 참여하러 갔다가 도련님들의 저질 체력을 사전에 고려하지 못한 주최자의 실수로 하산 시간이 원래 계획보다 4시간이나 늦어져 물과 음식이 부족한 상황이었던 날에 벌어졌던 일이 적혀있었다.그날 산 중턱까지 내려왔을 때, 다들 목마른 데다가 지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을 타 박태준은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반병 정도의 물을 그녀에게 건네주었었다.그때의 신은지의 눈
지수호가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인턴이 신은지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려고 찾아와서 결국 두 사람의 유쾌하지 않은 대화는 무산되고 말았고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신은지에게 궁금한 점이 있어서 찾아왔던 인턴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었다.“수호 씨가 하루 종일 선생님 주변만 맴도는데 설마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직원들은 지수호의 아버지가 정계에서 활약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에 그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박물관과 관련된 전공을 졸업한 것도 아닌 데다가 직업에 대한 애정도 딱히 없는 것 같은 지수호가 박물관에 생각보다 오래 머무는 것을 보고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까지 하고 있었다.“장난치지 마세요. 그리고 저 이미 결혼했어요! 제 남편이 소심해서 이런 말 들으면 엄청나게 질투해요.”“은지 선생님, 미안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박 대표님한테는 절대 말씀드리지 마세요.”지수호가 하루 종일 업무 보고 외에는 신은지의 앞에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자기의 단호한 거절이 먹혔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잠시 후, 지수호는 박물관 입구에서 퇴근하려는 신은지를 막아섰다.“은지 씨...”신은지의 떨떠름한 표정에 지수호는 밝게 웃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은지 선생님, 그동안 당신의 가르침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게 되어서 정말 고마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오늘 저녁을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으세요?”“사양할게요. 전 그동안 수호 씨에게 아무것도 가르친 게 없고 모든 건 당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니까 그동안 고생한 자신을 위해 밥을 사는 게 맞는 것 같네요.”“...”그녀의 단호한 한마디에 지수호가 오후 내내 생각해 낸 핑계가 수포가 되었다.신은지는 지수호를 향해 가벼운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옮겼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서 있던 그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쫓아갔다.“은지 씨, 당신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래요. 여기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으니, 장소를 옮겨도 될까요? 식사가 부담스럽다면 커피 한 잔
박태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으려고 노력했지만, 애석하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방금 지수호에 관한 자료를 훑어보다가 꽤 낯익은 이름을 봤어. 내 생각에는... 그 여자를 아는 것 같아.”신은지는 박태준이 지수호를 조사할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다.“누구?”“공예지, 이름이 너무 익숙해.”신은지는 순식간에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졌고 당황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메뉴판만 뚫어져라 보면서 말했다.“난 너한테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너무 흔한 이름이라서 네가 착각한 거 아니야?”박태준은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답했다.“그럴 수도 있겠네.”두 사람은 더 이상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신은지는 복잡한 마음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수호 씨가 어떻게 예지 씨를 알지? 두 사람이 나와 태준이 앞에 나타난 시기가 비슷한 건 정말 우연일까?’결국 신은지는 젓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휴대폰을 집어 들면서 말했다.“태준아, 그 자료 나한테 보내줘.”박태준은 신은지가 지수호의 자료에 관심을 보이자, 자기한테 무언가를 속이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입꼬리가 축 처졌다.“너 왜 갑자기 그놈한테 관심을 가지는 거야?”신은지는 잠시 박태준이 엄청난 소유욕과 질투심을 가진 남자라는 걸 잊고 있었다.그녀는 박태준의 질투심을 잠재우려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내 조수인 그의 흑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면 일하는 데 도움 되지 않겠어?” 흑역사 얘기가 나오자, 박태준의 머릿속에는 과거 자신의 어리석었던 애정사가 떠올라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곧 아니게 될 거야.”“...”다음날 신은지는 지수호가 박물관 일을 그만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정계에서 활동하는 아버지 밑에서 남 부러울 것 없이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외동아들이 그런 수모를 당했으니 그만둔 것도 당연했다.평소에도 자주 결석하는 지수호였기에 어젯밤 일을 있는 몇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가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도
박태준은 순식간에 저력이 다시 솟아올랐고 눈살을 찌푸리며 강혜정을 바라봤다.“어머니, 저와 은지는 그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하지 마세요!”강혜정도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박태준을 노려보았다.“너 정말 누구 닮았니? 네가 은지를 만났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진작에 다른 사람에게 속아 넘어가 빈털터리가 됐을 거야!”이어 강혜정은 신은지 곁으로 더욱 가까이 가면서 말했다.“은지야, 태준이가 하는 말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청첩장이나 고르자.”“좋아요, 어머님!”신은지는 며칠 동안 일에 집중하느라고 피곤이 쌓였는지 손으로 뒷덜미를 주물렀다.그 광경을 본 박태준은 급히 손을 뻗어 신은지의 목덜미를 주물러 줬고 그 덕에 피곤이 풀리면서 어지러운 증상도 완화되었다.강혜정은 청첩장을 고르는데 정신이 팔려 다른 건 신경 쓸 새도 없었다.“난 이 몇 개가 마음에 드는데 은지는 뭐가 좋아?”강혜정은 신은지가 박태준이 화해한 이후로 이날만을 기다려왔기 때문에 신은지의 취향에 따라 모든 것이 진행되길 바랐다.신은지는 강혜정이 고심 끝에 고른 몇 개의 청첩장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말했다.“다 예쁘지만 저는 이게 더 좋아요.”“그러면 은지가 선택한 걸로 내일 주문할게. 웨딩드레스랑 이브닝드레스는 생각해둔디자이너가 있어? 날짜를 맞추려면 조금 서둘러야 할 것 같아.”청첩장, 웨딩드레스, 예식장 스타일과 사회자까지 두 여자의 토론은 갈수록 뜨거워졌지만, 박태준은 한마디도 끼지 못했다.피로연이 끝나고 하객들에게 줄 답례품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갈 때, 박태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어머니, 아무리 그래도 제 결혼식인데 저도 대화에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요?”“넌 돈만 내면 돼.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돌리고 결혼식 당일에 턱시도를 입고 무대에 오르는 거로는 부족해?”“그래도...”박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혜정이 단칼에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내 말에 토 달지 마! 게다가 미적 감각도 없는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