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은 고개를 숙이고 신은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얼굴에 불어오는 그의 뜨거운 숨결에 신은지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남자의 부드러운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 그리고…….그리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박태준은 그대로 몸을 일으키고 신은지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일찍 자.”“…….”몸은 이미 뜨거워졌고 느낌도 왔는데 신은지가 상상했던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그렇다고 정색하면, 내가 너무 허기져 보이잖아.’그래서 신은지는 이불을 한방에 차버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엉뚱한 일로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다.“자긴 뭘 자! 아직 씻지도 않았는데. 몸에 먼지가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그대로 침대에 내려놓을 수가 있어? 얼마나 더러운지 알아?”말을 마친 그녀는 박태준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빠른 걸음으로 욕실에 들어갔다.박태준이 차에서부터 안고 온 탓에 신은지는 아직 외출 신발을 신고 있었다.슬리퍼를 갈아신기 불편해서 신발을 벗고 그냥 맨발로 걸어갔다.신은지가 샤워를 마치하고 나왔을 땐, 박태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녀의 슬리퍼만 욕실 밖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아직 이른 시간이라 신은지는 잠이 오지 않았다. 술을 마셔서 속이 불편한 그녀는 일 층에 내려가 우유 한잔 데워서 마시기로 했다.‘박태준 그 녀석, 꽃다발을 받은 후부터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걸 보니, 나한테 알려주고 싶지 않은 건가?’신은지는 이렇게 생각하며 우유를 한 잔 더 데웠다.방금 내려올 때, 서재 문틈 사이에서 새어나온 불빛을 봤다. 그래서 신은지는 우유를 들고 서재로 걸어갔다.그녀가 문을 두드리려는 찰나, 서재에서 탄내가 나는 걸 맡았다.‘설마 자살하려는 건 아니겠지?’신은지는 노크할 새도 없이 손잡이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그러자 책상 위에 놓인 향로에 불길이 이글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향로 안에 던지려던 박태준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고 문 쪽을 쳐다보았다.이때 마침 박태준이 들고 있는
그와 동시에 다급한 목소리가 신은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장경준, 당신 아들이 납치됐습니다. 납치범이 장경준 씨랑 통화하고 싶답니다. 10초 밖에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당신 아들을 죽이겠다고 했으니까, 얼른 받으세요.”수화기를 뺏으려던 신은지의 손이 허공에서 굳어버렸다.그리고 자기가 장경준 입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거란 걸 깨달았다.장경준의 아내와 아들의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해도 장경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장경준은 일그러진 얼굴로 유리창에 덮쳐들며 횡설수설했다.“나 장경준이에요. 알았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제 아들 놔주세요. 제발.”그는 이렇게 말하며 연신 머리로 유리를 박았다.“제발. 제가 이렇게 빌게요.”교도관은 장경준의 자해 행동을 미처 막지 못했다. 너무 세게 박은 이마에서 피가 났다.신은지는 유리를 따라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넋을 잃었다.면회실에서 나왔을 때, 그녀의 손발은 아주 차가웠다.너무 기뻐서 울먹거리는 장경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감사합니다. 감사해요.”교도소에서 나오자, 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비췄다. 하지만 신은지는 따뜻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그저 춥기만 했다.마음에서 전해져 나온 한기에 그녀의 두뇌마저 얼어버리고 말았다.신은지는 차에 탔다.교도소의 주차장은 뻥 뚫려 있어서 그늘진 곳이 전혀 없었다.뜨거운 햇볕 아래 오래 달궈진 차 안은 후끈했다.그러나 신은지는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처럼 에어컨도 켜지 않고 그냥 앉아있었다.그러다 몸이 견디지 못하고 생리적인 항의를 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얼른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최대한 시원하게 틀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신은지의 핸드폰이 울렸다.진유라한테 걸려 온 영상통화였다.신은지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뭐해?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진유라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콘서트 티켓 두 장 샀어. 너랑 나, 둘이 가면 딱 맞겠다. 드디어 나한테도 이런 기회가
공기 중에 가죽이 타는 악취가 진동했다. 창가 자리의 가장자리는 형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식되며 거품이 끓어올랐고 좌석 등받이에도 황산이 튄 곳이 모두 부식되었다. 만약 곽동건이 급 브레이크를 밟아 신은지를 향해 가던 황산의 방향을 틀지 않았다면, 지금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은 그녀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신은지는 진유라와 함께 반대편 차문 쪽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팔뚝에 화상을 입었다. 곽동건이 막 소리치는 것을 들은 신은지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창문을 닫았지만, 반응 속도가 늦어 창문을 닫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러나 신은지가 늦게 반응한 찰나의 순간은 이미 잘 준비되어 있는 상대방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신은지가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섰지만 부상은 이미 피할 수 없었다. 또한 결정적인 순간 진유라가 신은지를 잡아당겼기에 진유라의 손에도 황산이 튀었다. 그 차는 이미 유유히 그들을 지나갔다. 바람에 휩쓸린 낙엽 몇 개와 피할 수 없는 독설만이 남았다. ”똑바로 봐요, 이건 경고일 뿐이에요.” 곽동건은 차를 세우고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신은지에게 던졌다. ”상처에 묻은 황산을 깨끗이 닦아요.” 곽동건은 진유라의 팔뚝에 선홍 빛 화상을 힐긋 쳐다보며 말했다. "살갗이 벗겨지지 않도록 조심해요. 차 안에 물이 있어요?” "트렁크에 있어요.” 진유라는 이미 고통을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진유라의 두 눈은 토끼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엉엉 울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이성적으로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녀는 다 큰 어른이 고통스러워 우는 것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흉터가 남을까?” 신은지 진유라의 상처에 남아있는 황산을 닦아내는데 집중하며 말했다. "아니, 내가 제일 잘하는 피부과를 찾아서 가장 비싼 약을 사용해서라도 상처 안 남게 해 줄게.”곽동건의 셔츠 원단은 부드럽고 흡수력이 높아 피부에 2차 손상을 주지 않고 황산을 닦을 수 있었다. 진유라는 너무 아
곽동건의 전화를 받았을 때 박태준은 회의 중이었는데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주위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있던 박태준은 온몸에 힘이 빠진 듯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조차 힘들었다. 10여 초가 지나서야 빠져나간 힘이 서서히 돌아왔다. 박태준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없이 일어나 성큼성큼 회의실을 걸어 나갔다.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 자리에 있던 임원들은 박태준의 얼굴이 얼마나 흉악하고 우울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미안해.” 둘 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신은지가 마치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정신세계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면 박태준은 마치 생명력 없는 인형 같았다. 박태준이 신은지의 손을 세게 잡자 그녀가 정신을 차렸다. “실버.” 신은지의 흐트러졌던 시선이 마침내 집중되어 차가운 박태준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이 나를 공격했어.” "알고 있어.” 곽동건이 이미 전화로 그에게 간단히 보고했다. "유라에게 나를 데리러 오라고 하지 않았으면, 유라는 다치지 않았을 거야.” 박태준은 흉터 입지 않은 신은지의 다른 손목을 잡아 자신의 품에 그녀를 안았다. 박태준은 신은지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안겼다. “넌 모든 일을 예측할 수 있는 신이 아니야. 널 탓할 필요 없어.” 신은지는 박태준의 품에 안겨 익숙한 향을 들이마셨다. 박태준은 신은지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박태준의 무거운 호흡이 그녀의 귓가에 들렸고 그의 가슴은 심하게 오르락내리락거리고 있었다. 박태준의 품에 안긴 신은지는 마치 분출구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교도관이 전화기를 들고 회견장으로 돌진했을 때의 실망과 낙심, 그리고 진유라에게 해를 입혔다는 자책과 슬픔, 배후세력에 대한 거리낌 없는 분노, 그리고 수많은 감정 속에 감춰둔 두려움이 박태준의 품에 안기는 순간 닫혔던 마음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 순간 강한 버팀목이 모두 무너졌다.박태준의 셔츠 자락을 움켜쥔 신은지는 셔츠가 상처를 스치며 통증을 유발했지만 손을 놓지
일을 마친 뒤, 몸에 힘이 다 빠진 신은지는 채 가시지 않은 욕망의 여운을 느끼며 침대 위에 누워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찢어진 콘돔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방에 어떻게 이런 게 있을 수 있지?” 박태준는 신은지를 씻어주기 위해 그녀를 침대에서 안아 들고 욕실로 가며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손에 물이 닿지 않게 씻어야 하는 신은지를 위해 박태준은 그녀를 세면대 위에 앉혀 놓고 욕조에 물을 채웠다. 지루함을 느낀 신은지는 세면대 아래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행동이었기에 서랍은 좁은 폭으로 열렸다 닫혔다 했다. 그러던 중 서랍이 조금 길게 빠지자 신은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서랍 안에 들어있던 파란색 상자를 본 신은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이게 화장실에서도 필요할 때가 있어?” 욕조에 물이 거의 다 차자 박태준은 신은지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박태준은 그녀를 안고 욕조로 가지 않고 무릎을 굽혀 그녀의 다리를 벌린 후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보라고 손짓하며 말했다. "이 자리가 딱 좋아.” "……” 신은지는 더 견딜 수가 없었다. 박태준이 다가와 키스하려 하자 신은지는 발을 들어 그의 가슴에 대었다. "오늘부터 나랑 3미터 떨어져 있어. 그렇지 않으면 넌 이 인턴 기간을 통과하지 못할 거야.” 신은지는 말을 마친 뒤 재빨리 발을 내렸고 세면대에서 내려왔다. ”지금 당장 욕실에서 나가.” 박태준은 조심히 신은지를 뒤에서 껴안았다.마침내 가까워진 관계가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왔다. "네가 물어봐서 대답한 것뿐이야. 항상 예쁜 너를 두고 장식용으로 사용했다고 말하수도 없잖아. 아니면 넌 내가 핑계를 대고 널 속였으면 좋겠어?” "……” 신은지는 화가 좀 가라앉았지만 매섭게 박태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거 또 어디에 있어?” 혹시라도 나중에 누가 와서 서랍을 열고 이걸 본다면, 신은지는 그 자리에서 죽을 만큼 부끄러울 것이다. "……” 박태
신은지는 진유라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나라면 너에게 미끼를 던지고 너를 유인한 다음 일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할 거야. 첫째, 오늘일을 이야기한다. 둘째, 네가 아이를 해외로 보내고 그 교수를 그의 주치의가 되도록 성공시킨다. 세 번째는 내가 해외에서 정착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진유라의 말에는 허점이 있기는 했지만 꽤 설득력이 있었다. “인성이 그래서 가족과 친구들은 아직 완전히 믿을 수 없어. 속아서 미얀마로 간 사람들 봐봐. 스스로가 욕심을 부려서 간 것 외에 다 아는 사람에게 속아서 간 거야.” "그 사람은 네 어머니를 치어 죽인 범인이야. 만약 들고 있는 카드가 없으면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 만약 장경준이 정말 돈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죽일 정도로 미쳤다면, 그는 선량한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야. 그 사람이 과연 네가 관대한 성모 마리아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 신은지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진유라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전화가 있든 없든 간에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을 들을 수 없었어. 그렇다면, 너는 자책할 필요가 없어." 진유라는 도톰한 입술과 섹시한 미모를 지녔다. 진유라는 멜론 한 조각을 신은지의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 “사람은 자신과 타협하는 법을 배워야 해.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하지 마. 90kg의 몸이 1000kg의 짐을 지려고 하면 힘들지 않겠어?” "진실은 바로 거기에 있어. 어디 도망갈 곳도 없다고. 이번에 찾지 못하면 계속 조사하면 돼. 이 문이 막히면 우리는 창문을 찾으면 돼. 길은 찾아서 뚫으면 돼.” 입안 가득 멜론의 단맛을 느낀 신은지의 우울한 마음은 마치 먹구름 낀 하늘이 걷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라야, 네가 문화재 가게를 차린 건 정말 재능낭비야.” "안 그러면 주민위원회 반장이라도 될까? 아니면 매일 봉사활동복을 입고 호숫가를 돌아다니며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힘을 내라고 설득하며 다닐까?" 진유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
신은지는 깜짝 놀랐다. 박태준은 이미 신은지의 옆 의자를 당겨 앉아 그녀의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앉았다. 그의 태도는 신은지에 대한 소유욕이 넘치는 자세였다. "강 어르신, 강씨 가문의 가족 수십 명은 어르신이 통제하기에 부족한가 봅니다. 이제 어르신 손이 저희 박씨 가문까지 닿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강태민은 덤덤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손을 탁자 위에 얹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박 대표와 은지 씨는 이미 이혼하지 않았나? 내가 왜 박씨 가문까지 손을 뻗는다고 하나?” "저와......” 박태준은 자신과 신은지가 사귀고 있다고 말하려다가, 문득 자신은 아직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은 정식 남자친구가 아니기 때문에 신은지가 대외적으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박태준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처라도 해도 다른 사람에게 속아 넘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도 없고, 저는 지금 은지를 쫓아다니고 있어요…" 신은지는 책상 밑에서 재빨리 박태준의 양복바지를 잡아당겼다. 강태민이 오늘 신은지를 찾아온 것은 그녀와 공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강태민은 지금 그녀의 사장으로 앉아있는 것이다. 방금 박태준은 신은지의 사장 앞에서 그녀에게 고백을 한 것과 다름없었다. 이게 무슨 낯 뜨거운 상황인가?신은지는 박태준의 말을 끊었다. "여긴 왜 왔어?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녀의 말에 박태준은 입을 오므렸다. "집 경호원이 어떤 남자가 널 데려갔다고 하면서 막을 수 없었다고 나한테 전화했어.” 그는 사실 줄곧 신당동에 있었다. 황산을 뿌린 사람을 찾아냈고, 집 뒤에 있는 가사 도우미 방에 그를 가둬두었다. 박태준은 신은지를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고, 게다가 심문 과정에 피비린내가 날 수밖에 없어서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박태준은 철저하게 조사한 후에 신은지에게 알려 줄 계획이었다. "내가 안 왔으면 너는 이 늙은 남자에게 속아 넘어갈 거야.” 박태준은 불만 가득
신당동으로 돌아온 신은지는 여전히 강태민이 자신에게 해외로 출국하라고 한 일에 관해 생각했다. 강씨 가문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쩐지 갑자기 경인시에 와서 가문이 발전하기는 했다. 신은지는 강씨 가문의 일을 생각하느라 박태준의 상처를 잊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 좋은 기회를 두고 요구하지 않다니 이건 박태준 답지 않다. 신은지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하는 순간 나유성에게 전화가 왔다. “은지야, 회사에서 역사 관광 지구 프로젝트를 위해 파티를 할 예정인데, 시간 있어? 프로젝트팀 사람들이 하루 종일 너 보고 싶다고 하던데, 네가 온다면 분명 다들 좋아할 거야.” 신은지는 회사에서 매일 4시간을 넘지 않게 일하는 시간제 근무자이다. 빡빡한 스케줄로 인해 그녀는 잡담할 시간도 없이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바로 업무를 시작한다. 따라서 그들은 신은지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일부러 나유성을 놀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신은지도 나유성의 마음을 몰랐으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신은지는 말했다. "유성아, 미안해. 이따가 일이 있어서 많이 바쁠 것 같아......” 나유성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참, 우리 엄마가 며칠 전에 집안을 정리하시다가 너희 어머니가 남겨주신 물건을 찾으셔서 너에게 직접 전해주려고 하셨는데, 요 며칠 아파서 일어나질 못하셔. 내가 파티장으로 가져갈게.” "너희 어머님이 아프셔? 심각해?" "감기 걸리셨는데 워낙 기본 체력이 안 좋은 데다가, 병원을 바로 가지 않으셔서 병이 깊어졌어.”그의 말에 신은지는 걱정이 되었다. 나유성 어머니는 신은지 엄마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이었고 평소 신은지를 잘 챙겨준 사람이었다. "그럼 너희 어머니를 뵈러 갈게. 지금 병원에 계셔?” "집에 계셔. 나도 잠깐 들렀다가 아파트로 갈 건데 내가 데리러 갈까?” 나유성이 아파트 관리실에서 듣기로는 신은지는 오랫동안 아파트로 돌아오지 않았고, 이사 나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