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은 머리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하려고 했고, 손은 그녀의 등의 곡선을 따라 내려와 잘록한 허리를 감싸 안았다.신은지는 가까이 다가온 그를 보고 입을 벌려 그의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힘껏 깨문 탓에 순간 피가 났고, 피비린내가 입안에서 진동했다.“스읍……”박태준은 가볍게 숨을 쉬고 그녀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신은지가 미처 손을 빼고 그를 밀치기 전에 그는 그녀의 오른손을 잡고 손가락을 도어락에 댔다.“띠리.”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남자는 그녀의 힙을 받치고 그녀를 훌쩍 들어 안았다. 신은지의 몸은 허공에 붕 떴고 상반신은 그에게 기댄 채 두 다리도 그의 허리를 감는 자세가 되었다.박태준은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녀를 현관 수납장 위에 앉혔다.이 과정은 몇 초 동안에 이루어졌고, 신은지는 미처 반항하기 전에 이미 박태준은 그녀의 스웨터를 걷어 올렸다.그제야 그녀는 자신과 박태준이 체력적으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고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얘기했다. “입술을 무니 기분이 좋아?”신은지는 그의 핍박에 그의 눈을 보게 되었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분노를 분출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박태준은 이러한 그녀의 태도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즐거워하면서 웃었고, 웃음에는 예전의 차가움과 비아냥거림이 사라졌다. “조금 있으면 더 기분이 좋을 거야.”그는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고, 미세한 신체적인 변화를 신은지는 모두 감지할 수 있었다.뒤에는 벽이 있고, 앞에는 건장한 남자의 몸이 있었기에 신은지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녀의 다리는 아직 그의 허리에 붙어 있었기에 뛰어내릴 수도 없었다.그녀는 짜증 나고 또 화도 났다. “박태준……”이름을 부르자 박태준의 피 묻은 입술은 이미 그녀의 목에 닿았다. 그는 그녀를 물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키스한 자리는 약간 따끔거렸고, 그가 얼마나 힘껏 키스했는지 알 수 있었다.신은지는 아픔을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박태준
박태준은 신은지 집에서 나온 후 회사에 가려고 했지만, 강혜정의 전화 한 통에 저택으로 불려갔다. 주차하고 그는 먼저 미간을 만졌고 또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차에서 내렸다.거실의 분위기는 싸했다.가정부 아줌마는 집에 없었고, 그의 부모님은 차가운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박태준은 스스로 신발을 바꿔 신었다. “아버지, 어머니.”그가 앉으려고 할 때 강혜정은 눈총을 쏘면서 얘기했다. “누가 앉아도 된다고 했어? 하긴, 박 대표님께서 얼마나 대단하신 인물인데. 이혼과 같은 이런 큰일조차 미리 얘기도 해주지 않고 바로 해버리고, 이혼 후에도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았는데 소파에 허락 없이 앉는 것은 일도 아니지!”박태준: “……”그는 강혜정이 화낼 것을 예상하고, 시간을 내서 차분하게 얘기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실검이 터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그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머니, 화나시면 저한테 화내세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지 마시고.”“내가 트집을 잡아?” 강혜정은 화가 나서 이놈의 머리를 비틀고 싶었다: “은지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어? 우리 집에 시집와서 3년 동안 며느리로서 할 도리를 다했어. 네가 그 방면으로 부족한 것도 참아주고, 인상 쓰고, 사람을 달랠 줄 몰라도 다 참아준 여자를, 네가 기어코 공개석상에 나서지도 못할 전예은 때문에 이혼해야겠어?”이혼 후 이틀 동안, 박태준의 귓가에는 늘 ‘신은지’라는 세 글자가 맴돌았다. 그는 머리가 아팠고, 튀는 미간을 손으로 누르면서 시선을 옆에 있는 박용선에게 돌렸다.박용선은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는 그저 옆에 들러리처럼 앉아 있을 뿐, 집안의 소소한 일이든 큰일이든, 그에겐 결정권이 없었다.박태준: “정말 남자의 체면을 구기시네요. ”박용선: “아비가 너에게 전처 결혼식에 갈 축의금은 마련해 줄 수 있어.”박태준: “……”강혜정의 높아진 목소리에 그는 정신이 돌아왔다: “얘기해 봐, 너 지금 후회하고
강혜정은 신은지와 쇼핑하러 가려고 했었고, 그 참에 그녀의 마음을 염탐해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을 목격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고, 난처한 나머지 미소를 띠고 있던 얼굴마저 굳었다. 어쩌다 보니 우아하고 각종 상업적인 자리에 많이 참석해 본 귀부인을 말더듬이로 만들어 버렸다: “이거, 두리안 너 먹어, 두 사람 같이 먹어. 은지야 우린 다음에 다시 약속하고, 너……”그녀는 소유욕이 강한 진성호를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옆에 있는 박태준을 잡고 자리를 떴다.“……” 신은지는 미처 한 마디도 못한 채 두 사람을 보내게 되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그녀는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진성호의 손을 물리쳤다. “당신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 기어이 이렇게 해야겠어요?”“할 일이 없는 건 저 사람이 아닌가요? 이혼했는데 아직도 당신 앞에서 얼쩡거리고. 예전에 저 사람과 결혼한 것도 혹시 철면피처럼 달라붙어서 하는 수 없이 결혼을 한 것 맞죠?”신은지가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그도 따라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손으로 막았다: “일해야 해서요. 당신도 그만 돌아가요. 전 나쁜 마음을 먹지 않아요.”진성호: “……”문은 인정사정도 없이 닫혔다.신은지는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묶으면서 작업실로 걸어갔다. 사실 진성호의 말은 맞는 부분이 없었다. 박태준은 그녀에게 매달린 적이 없었고, 그땐 그녀가 먼저 침대에서 그와 결혼하겠다고 했었다. 비록 박태준이 승낙했지만 얼굴에는 비아냥거림이 가득했었다. 후에 그녀는 욕실에 가서 샤워하면서 이성을 되찾으니 후회되어서 그한테 빚을 갚을 돈만 빌리려고 했었고 박태준은 흔쾌히 대답했다.만약 언론에서 두 사람이 함께 호텔에 있은 일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아마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역시 박태준 그 놈이 문제이다. 늘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에게도 불똥이 튀는 일을 만드니!‘쾅쾅’ 밖에서 조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또 들렸다.신은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문을 열었다. “진
박태준의 입꼬리는 내려갔고, 시선을 돌렸다: “신 선생님 들으셨죠. 저와 따님은 정말 인연이 없습니다. 전에 제가 빌려드린 돈은 일주일 이내에 제 카드에 입금 부탁드립니다.”이렇게 되자 신진하의 안색은 완전히 변했다. 박태준이 그때 빌려준 돈은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그 돈은 자네가 자발적으로 준 것인데 다시 돌려받는 법이 어디 있어?”“그 돈은 내 아내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준 돈입니다. 저흰 이미 이혼했고, 당신이 저 사람을 괴롭히든 아니든 이젠 저랑 더 이상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발적이라고 하면……” 박태준은 작은 보이스펜을 상위에 놓았다. “신 선생님, 그때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신진하는 침울한 얼굴로 이를 갈며 얘기했다.“됐어.”상위에 놓은 박태준의 전화가 울렸고 그는 발신자를 확인했다. “죄송합니다, 전화 받고 오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그는 일어서서 나갔다.신진하는 신은지를 노려보면서 얘기했다. “재혼하겠다고 약속해.”신은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박태준이 길에 널린 쓰레기인가? 버리고 싶으면 버리고, 줍고 싶으면 다시 줍게?그녀는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표명했다: “그렇게 못해요.”신진하는 몇 초 침묵을 지키더니,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싫다면 아비도 너를 강요하지 않겠다. 하지만 박씨 집안처럼 덕망이 높은 가문을 이렇게 순순히 포기하기에는 아깝고, 너도 태준과 함께 사는 것을 원치 않으니, 그와 지연을 이어주도록 해라.”신은지가 박씨 가문에 시집간 지 몇 년이 되어도, 장인어른인 그는 조금도 그 복을 누리지 못했다.신은지는 놀란 나머지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드디어 신지연이 오늘 이런 옷차림으로 이 자리에 나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두 부녀가 감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신지연과 박태준?”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꿈 깨세요.”박태준이 이혼을 한 번만 한 것은 그렇다 치고, 눈이 멀지 않는 한, 이혼을 여러 차례 했어도 절대 신지연과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신진하는 화가 치밀
박태준은 그를 바라보면서 차갑게 얘기했다. “너 비행기 전세 냈어?”나유성: “……”“이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가족들 만나러 가는 거야?”나유성은 말하지 않고 무시하기로 했다.가는 내내 퍼스트 클래스의 분위기는 냉랭했고, 일촉즉발의 긴박감이 감돌았다.비행기가 착륙하자 핸드폰에 신호가 들어왔고, 신은지는 외삼촌이 그녀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공항에 나와 있다는 내용이었다.외삼촌은 공처가이고 외숙모는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기에, 두 집안은 그저 설날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안부를 묻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녀가 사전에 외삼촌에게 전화한 것은 외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기 위함이었고, 예의상 인사를 했을 뿐, 호텔까지 이미 예약해 놓았다.외삼촌에게 ‘알겠어요.’라고 답장한 후, 신은지는 일어서서 밖으로 향했다. 퍼스트 클래스를 지날 때 다른 사람은 이미 다 나가고 두 사람만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한 사람은 나유성, 다른 한 사람은……박태준?신은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어?”“당신 삼촌이 얘기하지 않았나 봐?” 박태준은 일어서서 짐을 꺼냈다. “삼촌이 함께 설을 쇠자고 초대했어.”뒤에 사람이 있기에 신은지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고 먼저 비행기에서 내렸다.비행기를 나서서 그녀는 재빨리 그를 따라잡았다: “박태준, 우린 이미 이혼했어. 그런데 당신이 왜 우리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왜? 당신을 방해할까 봐?” 그는 뒤에 있는 나유성을 한 번 보았다.신은지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그러니까 지금 당장 돌아가.”“이 말은 당신 외삼촌에게 하라고 해. 그분이 나를 초대했으니까.”“……”그래서 외삼촌이 백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게 주동적으로 픽업하러 나온 것이었네. 이건 그녀를 픽업하러 온 것이 아닌 다이아몬드 수저 박태준을 픽업하러 나온 것이 분명하다!신은지는 더 이상 박태준을 상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며칠 동안 그녀는 호텔에서 머물 것이고, 외할아버지 제사만 끝나면 바로 경인 시에 돌아
옆에 앉은 신호연은 미래의 사장인 박태준한테 잘 보이려고 계속 말을 걸었다. 잘 보여야만 좋은 일자리를 얻어 편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일 좋기는 경영층이길 바랐다.이렇게 하면 그는 매일 사무실에서 앉아, 에어컨을 틀고 차를 마시며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을 지시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매형, 저 학교에서 매년 장학금도 받고 교수님들도 저를 칭찬......” 신나게 얘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한테 치여 엘리베이터에서 뛰쳐나와 자기 누나의 손을 잡고 있었던 남자한테 부딪치게 되었다.나유성은 잠시 신은지의 손을 놓고 신호연을 부축하였다.신호연은 바로 정신 차리고 생각했다. “제기랄, 누가 날 찬 거야?”하지만 엘리베이터 안에는 자기 부모님 빼고 다들 나 몰라라 하는 눈빛이었고 부모님은 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호연아, 왜 나갔어? 빨리 들어와, 올라가야지. 엘레베이터 문 거의 닫혀.”이때 박태준은 옆에 서 있던 신은지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끌어당겼다. 때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게 되었다.신호연은 자기가 누구한테 차였는지 알 거 같았고 옆에 있는 나유성을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저기 우리 누나랑 무슨 사이세요?”자기 매형 앞에서 누나 손까지 잡다니 궁금해 물어보았다.나유성은 자기 옷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자네 누나를 좋아해서 지금 구애하고 있는 단계야.”“얼굴도 반반하게 생겼고 보니까 집안도 괜찮은 거 같은데, 왜 굳이 남의 가정에 끼어들려고 하세요?”“너네 누나랑 매형 이미 이혼했어.”“뭐라고요? 말도 안 돼요.”이혼이라니? 그럼 자기 일자리는 물 건너 가는 건가?“넌 기사도 안 봐? 그리고 여기서 계속 기다릴 거야?”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나유성은 안으로 들어갔다.신호연은 매일 게임질이었지 뉴스를 볼 사람이 아니다. 급히 핸드폰으로 박태준을 검색하니 온통 이혼 기사로 깔렸다. 신호연은 너무 큰 충격으로 식당에 들어가서도 계속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팽현희는 자기 아들의 멍한 표정을 보고 정신 차리게
박태준의 손에 든 담배는 이미 끝까지 블타올라 담뱃불이 손끝을 데었을 거 같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담배를 끄고 말했다. “알고 있었어......”신은지는 박태준의 말을 듣고 웃는 듯 안 웃는 듯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비록 들키지는 않았지만 얼굴에는 비웃는 표정이 한가득이었다.어색한 흐름 속에 그들의 식사가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신은지의 외삼촌은 그들을 집으로 초대했다.그러자 신은지는 외삼촌의 요청을 거절했다. “저희도 오늘 오느라 피곤해서 호텔에 가서 쉴게요. 내일 외할아버지 묘지에 갔다 오고 다시 집에 인사드리러 갈게요.”하지만 팽현희는 그들을 쉽게 보낼 일이 없다. 자기 아들 일자리 찾는 게 우선이다. 말이 좋지, 내일 혹시 묘지에 갔다가 바로 경인 시로 돌아가면 그때 다시 잡을 수도 없다. 이건 아들의 한평생과 관련된 일이니 자기 눈앞에 있어야 안심이 됬다.팽현희는 곧바로 신은지의 팔짱을 끼고 차 안으로 끌면서 혼내듯 말했다. “우리 한가족인데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너를 호텔에서 자게 하니? 뭐 집이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네 잠자리가 없을까 봐? 내일 외삼촌이랑 같이 묘지로 가면 되겠네.”“아니요, 신경 쓰지 마세요. 외할아버지 묘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운성 시의 전통에 따르면 아들들은 설 후에 묘지로 가고 딸이랑 외손자들은 설 전에 가는 거다.“그게 이년동안 우리집이 잘 안되서 점쟁이를 모셨더니 외할아버지 묘 자리가 안 좋아서 우리 집 형편이 점점 안 좋아진거래. 너한테 알리지도 못하고 외할아버지 묘지를 옮겼어. 새로 옮긴 데가 찾기도 어렵고 네비로 가기에도 힘들어. 그러니까 내일 외삼촌이 데려다주게 해줘. 그래야 나도 안심이 되지.”묘지 옮긴 건 사실이니 팽현희이 거짓말한 것도 아니었다.이 상황에 신은지는 더 이상 마다할 수도 없어 나유성한테 말했다. “유성아, 먼저 호텔로 가, 내일 내가 다시 데리러 올게.”“나 선생님도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 집으로 가시죠. 먼 길 오셨는데 고생 많으세요. 설에 혼자
욕실에서 나온 박태준은 침대에 누운 사람을 보고 얼굴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네가 여기 왜 있어?”나유성은 어디에서 가져온지 모르는 고등학교 화학 교재를 보며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은지가 너랑 같은 방 쓰기 싫데.”“나도 너랑 같이 자고 싶지 않은데 굳이 여기 계속 있겠다면 그냥 바닥에서 자.”나유성은 이제야 책에서 눈을 떼, 박태준을 쳐다보고는 눈을 감고 바로 침대에 누워 잤다.박태준은 사실 어디서나 잘 잔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잠이 안 와 베란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바같만 쳐다보았다.운성의 겨울은 경인 시보다 온도는 높았지만 습기가 차 뼈에 스며 드는 추움이었다. 베란다와 거실 사이는 미닫이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문은 닫혀져 있어서 에어컨의 따뜻한 바람이 오지 않아 그의 손은 이미 얼어 아무 감각이 없는 거 같았다.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화장대에 놓인 드라이기를 보고 생각에 빠졌다. 새벽에 잠을 설친 박태준은 밖에 소리가 있어 일어나 보니 거실에서 누군가가 플래시를 쥐고 서랍장을 뒤지고 있었다. 지금 시간이 새벽 2시라 밖은 어두웠고 오직 가로등만 불빛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외삼촌 집은 고층이라 희미한 불빛이 비쳐 들어와 간신히 물건을 볼 수 있었다. 박태준은 실눈을 뜨고 자세히 보니 신은지였다. 그녀는 머리를 풀고 편한 잠옷을 입고 이 새벽에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박태준은 조용히 신은지 옆에 다가 갔지만 슬리퍼 소리 때문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새벽에 여기서 뭐 하고 있어?”“아......”신은지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핸드폰도 떨어졌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식은땀이 나 안색이 너무 안 좋았다. 박태준도 걱정한 눈빛으로 그녀의 이마에 손을 놓고 물었다. “왜 그래?”한겨울에 이렇게 식은땀이 나는 걸 보니 어디 아픈 거 같았다.신은지는 주저앉은 채 일어나지도 못하고 목소리까지 떨면서 말했다. “배 아파, 그러니까 진통제 있는지 찾아봐줘.”정말 너무 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