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한참이 지나서야 박연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하서인에 대해 거짓말한 게 재미있었어요?”조은혁이 몸을 기울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조금의 성깔도 없이 평온하기 그지없었다.“너도 남자친구를 지어내서 나를 화나게 했잖아. 그 사람이... 정말 네 남자친구라고 할 수 있어?”박연희가 급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그녀는 이례적으로 그에게 답변을 주었다.“그 사람은 이지훈이에요.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로티에 있을 때, 지훈 씨가 저를 많이 도와줬고 귀국한 후에도 계속 연락했고요.”조은혁은 예민한 남자이다.박연희는 설명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이지훈에 대해서는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을 늘어놓는다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결국, 조은혁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지훈이 너에게 구애할 때, 설렜어?”박연희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를 몰고 바깥의 어둠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다른 나라에서 보살핌을 받고 또 서로 이혼을 했으니 쉽게 동병상련의 느낌이 들죠... 설렜던 건 사실이에요.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요.”그러나 B시로 돌아온 뒤 박연희는 줄곧 조은혁에게 시간을 빼앗겼다.그날 밤 주방에서 서로 어루만지고 키스를 하며 그녀는 이지훈을 거절했다.물론 박연희는 이를 말하지 않았다. 이지훈을 거절하였다고 하여 반드시 조은혁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해 그녀가 가졌던 충동은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희미해지며 꿈처럼 느껴졌다.밤이 깊어가고...힘없는 가로등 불빛 아래 아름다운 여인이 길목에 서서 손님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아름다운 붉은 입술에 가슴이 깊게 팬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표정 속에는 생활에 쫓기는 듯한 낭패감을 가지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박연희가 급정거를 했다.박연희는 차에 앉아 걷잡을 수 없이 그 여자를 보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 여자는 진시아였다.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날 때, 진시아는 초라하기 그지
말이 끝나자마자 조은혁이 전화를 끊었다.그는 박연희의 손에 쥐어져 있는 차 키를 가져가 음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진범이 지금 병원에 있대. 빨리 가자.”박연희는 묻지도 않고 그를 바짝 따라갔다.지금, 이 순간에는 진시아와 하서인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진범이, 그들의 아들만이 우선이다. 심지어 조은혁은 밤에 술을 마신 것도 잊은 채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박연희도 뒤따라 차에 올라탔다.안전벨트를 매고 있을 때, 조은혁이 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번에는 심지철에게 전화한 것이다.그는 대표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어르신이라고 부르지도 않았으며 직접 심지철, 그의 이름을 불렀다.“심지철, 진범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나, 조은혁 심씨 가문과 목숨을 걸고 싸울 거야.”전화 건너편의 심지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대답을 기다릴 틈도 없이 조은혁은 휴대폰을 시트에 내동댕이쳤다.가속페달을 밟자 BMW는 빠른 속도로 병원을 향해 질주했다.차창이 내려오고 차가운 밤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박연희는 그의 옆에 앉아 침묵을 지켰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음 길목의 빨간 등불에 따뜻한 손바닥 하나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덮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지금, 박연희는 이 온기가 필요했다...30분 후, 차는 입원실 아래층에 주차되었고 B시 병원의 최고급 병동에서 조은혁과 박연희는 그들의 아들인 진범이를 보게 되었다. 소파에 멀쩡히 잘 앉아있었지만 소매는 걷어 올리고 팔꿈치에는 흰색 테이프가 붙어있는 것을 보니 방금 피를 뽑은 것이 분명했다.병실 입구, 조그마한 불빛들이 한곳에 모여있었다.진범이가 작은 소리로 아빠를 불렀다.조은혁은 안색이 극도로 안 좋아 보였지만 진범이에게 다가가 아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나지막이 물었다.“피 얼마나 뽑았어?”그러자 진범이가 입술을 달싹이며 조심스럽게 답했다.“500mL요.”“500mL?”조은혁은 조용히 다시 한번 반복하고는 이내
김이서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어려서부터 명문 출신으로 넉넉한 조건으로 살아오던 그녀가 어느 날 사람들 앞에서 이토록 큰 창피를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의 시댁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그녀는 잠깐 넋을 잃고는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당신은 심씨 가문이 당신과 맞설 것이 두렵지도 않아요?”“당연히 두렵죠.”조은혁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문짝에 내리치자 김이서의 머리에는 즉시 커다란 혹을 부풀어 올랐다.“당신 정말 법이라는 걸 모르는군요!”조은혁은 그녀의 머리를 꼭 누르고 심지철을 바라보며 반문했다.“법이란 바로 당신들이 내 아들을 데려와 동의 없이 그의 피 500mL를 뽑는 것입니까... 이게 바로 심지철의 법이냐고요?”말을 마치자 그는 김이서를 내던지고 바로 심지철의 코를 가리키며 으름장을 놓았다.“다음에 또 이러면 피를 흘리게 되는 건 심경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 심지철일 겁니다. 나 조은혁, 당신에게 아무리 수단과 권세가 많아도 당신 종손이 죽든 살든 그건 저, 그리고 조진범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당신이 내 아들의 피를 더 원한다면 나 조은혁, 제일 먼저 심씨 가문을 뒤집어엎을 것이니 각오하세요... 어쨌든 처음도 아니니까.”...심지철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고 폭풍우의 전야가 닥쳐왔다.그러나 조은혁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그는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며 비꼬았다.“어르신의 몇십 년간의 위풍은 확실히 흔들리기 쉽지 않죠. 하지만 뒤처리를 깨끗이 했는지 잘 생각해보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만약 깨끗이 처리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에게 약점이라도 잡히면 어쩌시려고요.”백열등 아래, 심지철이 조은혁을 향해 냉소를 지었다.“조 대표, 정말로 나와 맞서려는 거야?”“어르신도 이제 노망들었군요. 당신들이 먼저 내 아들을 잡아서 500mL의 피를 빼앗아간 거잖아요. 내가 당신 심씨 가족을 잡아서 피를 흘린 게 아니라... 하지만 만약 어르신께서 이 책임을 꼭 제 머리에 덮어주신다면 사실 저도 개의치
심지철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심지철의 입가는 계속하여 경련을 일으켰다. 당시 김이서를 마음에 들어 한 것은 그녀가 예의를 지키고 도덕이 있는 여자라 여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100억에 박연희를 없애려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참다못한 심지철이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화를 냈다.“이 멍청이 같으니라고.”“저도 심씨 가족을 위해서입니다.”김이서가 울먹거리며 변명하자 참다못한 최민정이 입을 열었다.“연희 씨도 결국 아버님의 혈육인데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까?”김이서는 마음이 답답했지만 남들 앞에서 그녀의 고뇌를 발설하기 싫어서 입술을 꼭 오므리고 고집을 부렸다.그러자 조은혁은 그녀를 향해 냉소를 터뜨렸다.“100억이라, 당신 눈에는 제가 거지로 보입니까?”조은혁은 진심으로 그녀가 원망스러웠다.그는 지갑에서 돈다발을 꺼내 김이서의 얼굴에 굴욕적으로 내동댕이쳤다. 날카로운 지폐가 그녀의 잘난 체하는 얼굴에 핏자국을 두 줄 그렸다.그러자 김이서는 얼굴을 가리고 낮은 목소리로 신음을 흘렸다...“다음에 또 그런다면 당신의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테니까 각오하세요.”말을 마치고 그는 진범이를 안아 올린 뒤, 다른 한 손으로 박연희를 끌어당겼다.깊은 밤.바깥 복도는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고 오직 세 식구의 또렷한 발걸음 소리만이 점점 멀어져 갔다...병상에 누워있던 심윤이가 울기 시작했고 김이서는 얼굴의 상처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가 아들을 안으며 달래주었다.“괜찮아. 괜찮아.”그러나 심윤은 그녀의 품을 원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이리저리 몸을 꼬며 눈 속에는 말로 이룰 수 없는 공포감이 깃들어 있었다.김이서는 눈을 들어 심지철을 바라보며 억울함을 호소했다.“혈액은행에는 피가 부족하고 이런 혈액형은 어디에도 없어요. 다음에 심윤에게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합니까? 어르신께서 박연희에게 다시 말씀하셔서 설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뭘 설득해?”“진범이 더러 윤이의 혈액은행 역할을 하도
박연희는 정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아 눈물을 흘렸지만 울음소리는 내지 않았다.운전을 하는 조은혁은 당장이라도 이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그는 심씨 집안 사람들을 모두 잡아다가 총으로 쏴 죽여버리지 못한 것에 한이 맺혔다.30분 후, 차는 박연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아래층에 주차되었고 조은혁은 차에서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진범이는 박연희의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고 등을 만져보니 옷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조은혁은 코트를 벗어 진범이의 몸을 감싼 후 손을 번쩍 들어 그를 안아 들었다.그리고 박연희가 그의 뒤를 따랐다.깊은 밤, 무거운 침묵이 그들을 감싸들었다...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아직 잠들지 않은 아주머니가 잠에서 깨어난 조민희를 안고 거실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민희는 반쯤 비몽사몽한 상태였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에 마치 고양이처럼 쪼르르 달려가 진범 오빠를 불렀다.조은혁은 진범이를 안고 안방 안으로 들어갔고 박연희는 조민희를 데리고 들어갔다.진범이는 깨어나지 않았고 그의 잘생긴 얼굴은 매우 피곤해 보였다.조민희는 또 진범이에게 다가가 계속하여 그를 불렀다.“진범 오빠.”그러자 조은혁은 조민희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오빠에게 몸을 기대게 한 뒤 박연희에게 말을 건넸다.“넌 애들이랑 같이 있어. 내가 주방에 가서 팥죽 좀 끓여올게. 피를 뽑았으니 진범이도 혈을 좀 보충해야지.”그는 자연스럽게 집에 남으려는 모양이었다.박연희도 이에 따질 겨를이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마침내 그가 집에 묵는 것을 동의했다.자욱한 불빛이 방안을 비추었다. 그녀는 침대 옆에 기대어 눈길을 떼지 못하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도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러자 조은혁이 다가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있으니 무서워하지 마.”박연희가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올려다보았고 박연희는 그의 눈동자 속에서 남자의 의연함과 부드러움을 보아냈
박연희가 순식간에 애처로운 신음을 흘렸다.그녀는 남자의 가슴에 손을 대고 필사적으로 거절했지만 남녀의 힘은 차이가 너무 분명한지라 조은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결국, 박연희는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그가 가져다주는 정조를 막아냈다.조은혁은 너무 오랫동안 옆자리를 비워두고 있었던지라 허겁지겁 박연희의 몸을 삼키기에 급급했다. 게다가 이때 박연희는 그 어떤 힘도 없어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조은혁에게 있어 이렇게 대충 한 번 하는 거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처음은 그래도 낭만적이며 물처럼 부드러움이 가득해야 한다.하여 그는 애써 이성을 되찾아 무례함을 버리고 그녀에게 최고의 경험을 주도록 노력했다.사색을 마친 조은혁은 잠깐 텀을 두고는 그녀의 붉은 입술에 입술을 포개어 쉰 목소리로 말했다.“침대에 가서 한 번 할까?”“싫어요!”박연희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그녀는 얼굴을 옆으로 돌렸지만 아무리 용기를 내어 힘을 써봐도 조은혁을 이길 수 없었다.“저더러 이불을 가져오라고 한 것도 결국 이것 때문이에요?”뜻밖에도 그는 쿨하게 인정했다.남자는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맞아. 네 생각만 해도 몸이 터질 것 같았거든.”조은혁은 또 박연희에게 만져보라고 강요했다.박연희의 작은 손이 그의 손에 잡혀 도무지 빼어낼 수가 없었고 결국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남자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 남자와 여자의 시선이 마침내 한 공간에서 마주쳤고 남자의 눈빛은 거의 박연희를 한입에 삼킬 정도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마침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정말 정이 남아있다면...]확인해 보니 발신자는 뜻밖에도 심경서였다.그녀는 받고 싶지 않았지만 조은혁이 재빨리 수신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전화 건너편으로부터 심경서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연희 씨, 오늘 일은 제가 잘못했어요. 윤이가 심하게 넘어지는 바람에... 만약 제때 수혈하지 않았
그가 소중하게 여기던 감정이, 그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실 한오리도 걸치지 않고 조은혁의 품에서 기뻐하다니.그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조은혁보다 어디가 모자라단 말인가? 야밤에 심경서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 이비서가 빠르게 달려와 바닥에 널브러진 파편 조각들을 보며 가슴 아파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아무리 화가 나도 자신 몸에 풀면 안 되죠. 핸드폰을 이렇게 던져버리면 수리도 못 하잖아요." 이미 늦은 밤에 신경서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비서에게 물었다. "핸드폰은 수리할 수 있지만 감정은 다시 수리할 수 없잖아요. 다시 수리할 수 없다면 가져서 뭐 해요?" 이비서는 조심스럽게 핸드폰 카드를 꺼내고 바닥에 널브러진 파편을 쓰레기통에 담아 넣었다. 일을 마치고 그는 신경서를 힐끗 바라보았다. "돌아가서 쉬셔야죠." "혼자 있고 싶어요." 이비서는 흠칫 놀랐지만 결국 자리를 떠났다. 늦은 밤, 심경서는 혼자 달 아래서 앉아 있다가 쓰레기통 옆으로 다가가 미친 사람처럼 쓰레기통을 다시 뒤졌다.그러자 3개 파편들이 다시 맞춰졌다. 그는 핸드폰 속에 박연희의 사진이 있음을 기억했다. 박연희는 심씨 저택의 월계수 아래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달빛에 나무 뒤에서 박연희의 얼굴을 더욱더 생생하게 비쳤고 그건 심경서가 여태까지 본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는 무엇에 이끌린 듯 그녀의 모습을 핸드폰으로 담았고 몰래 소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진이 자신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심경서는 차가운 바닥에 앉아 그 파편을 안아 들고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그와 박연희의 과거가 그렇게 깨졌다. 그렇게 산산조각 났다. ...오피스텔에서 조은혁이 전화를 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박연희를 바라보았다. 그는 손을 들어 방안의 모든 등을 껐다. 이렇게 하면 오랜만에 만난 그들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그도 하고 싶은 대로 그녀에게 할 수 있었다. 마음속에 부담을 가질 필요
이른 아침 박연희가 눈을 떴다. 눈을 뜨자 그들이 밤중에 했던 남녀간의 사랑의 냄새가 간간이 올라왔다. 그리고 침대맡에는 어젯밤 그녀가 입었던 실크 잠옷이 놓여져 있었다. 실크잠옷이 머리맡에 개어져 있었지만 어젯밤의 격렬한 사랑에 구김이 진 건 여전히 보아낼 수 있었다. 박연희는 어젯밤 그들이 나누었던 관계를 떠올렸다. 조은혁은 여전히 예전과 변화가 없었다. 금방 시작했을 때 그는 항상 그녀를 귀하게 다루다가 뒤에 흥분했을 때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격렬하게 움직인다. 보통 여자들은 그의 이토록 강렬한 욕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젯밤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박연희는 몸이 다시 달아올랐다. 그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잠옷을 입고 욕실로 들어갔다. 물을 틀어놓고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잠옷을 입었지만 여전히 어젯밤의 빨간 자국들은 가려지지 않았다. 그 모든 건 그의 난폭한 소유욕이었다. 어젯밤 그녀의 울부짖음과 서로에 대한 욕망을 생각하자 그녀는 얼굴이 빨개졌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결코 후회하진 않았다. 그들은 모두 성인 남녀였다. 어젯밤 그들은 오랫동안 참아왔던 자신들의 욕구를 분출할 돌파구가 필요했을 뿐이다. 게다가 그녀도 오랫동안 남자와 관계를 하지 않았기에 그의 움직임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하지만 다시 이로써 조은혁을 사랑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냥 욕구를 분출한 것뿐이었다. ...박연희가 간단히 씻고 나온 후 용기를 내 안방으로 들어갔다. 조은혁은 안방에서 자고 있었다. 그는 알몸으로 하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그의 구릿빛 피부에 여자의 손톱자국이 몇 개 나 있었다. 그건 어젯밤 그녀가 절정에 올랐을 때 새긴 상처였다. 그리고 그의 양옆에는 조진범과 민희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진범은 아빠의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었다. 민희는 조은혁의 품에 안겨 얼굴을 아빠의 가슴속에 기대여 잠을 자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