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고 송도윤을 향해 작별 인사를 했다.심씨 가문에서 그에게 식사를 권하지 않았으니 송도윤도 멋대로 남기 어려웠다. 그도 심씨 가문의 의중을 대략 추측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와 박연희를 진심으로 맺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두 가문의 친분으로 인해 굳이 말리지 않을 뿐이었다.떠나는 송도윤의 모습은 사뭇 처량했다.심경서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 아쉽지 않아요? 송씨 가문은 문화계에서 명망 높으니 송도윤의 미래도 나쁘지 않을텐 데요?”박연희가 심경서와 나란히 걸었다.한참 후, 그녀가 가볍게 말을 이었다.“아쉽지 않아요. 같은 길을 걸을 사람이 아닌걸요.”심경서가 살짝 웃었다.식사를 마치고 박연희는 걱정을 숨긴 채 혼자 방으로 돌아와 문에 등을 기대었다.그녀는 눈을 감은 채 조은혁을 생각했고, 하민희의 상태를 생각하고 있었다.조은혁과 부부로 지낸 시간이 있다 보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모진지 박연희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그런 사람에게 하민희의 부양권을 주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로 골수 기증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박연희는 그와 함께 있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었다.시린 달빛 아래, 박연희의 눈에서 처연한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녀는 조은혁이 왜 여전히 과거의 감정을 고수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의 옆에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면서 말이다.박연희는 저녁 내내 잠을 설쳤다.한밤중에 겨우 잠이 든 그녀는 꿈속에서 하인우 부부를 만난 듯했다.꿈속에서, 전소미는 끊임없이 하인우를 부르고 있었다.꿈속에서, 전소미는 심씨 저택으로 와 박연희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나랑 인우 씨의 아이는 연희 씨한테 부탁할게요! 어른이 될 때까지 잘 키워주세요. 저랑 인우 씨는 하늘에서 감사해하며 있을게요.”박연히가 놀라 벌떡 일어났다.그녀의 등 뒤는 식은땀으로 인해 젖어있어 축축하고 차가웠다.그녀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조은혁은 마음이 아파졌다.그는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앞으로 자주 그녀를 볼 수 있었지만, 박연희는 그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그를 더 싫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개의치 않았다. 정말 개의치 않았다.당일 김 비서가 변호사를 불러 관련 절차를 밟았다. 앞으로는 법적으로도 하민희가 조민희로 되었고, 조은혁의 친딸로 주민등록등본에 등재되었다.절차를 마친 후, 박연희는 조민희라는 이름을 보며 한참 동안 멍해 있었다.일주일 뒤, 조민희는 골수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조은혁의 몸에도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모든 일이 순조로웠다.조은혁도 민희를 친딸처럼 아끼고 사랑했지만 박연희의 마음을 동하게 하지는 못했다.악어의 눈물에 감동할 사람은 없었다.조민희가 퇴원한 날은 봄바람이 부는 2월이었다.박연희가 병실에서 그녀의 짐을 싸주며 눈에는 아쉬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옆에 있던 장씨 아주머니가 말했다.“아니면, 은혁 씨한테 다시 한번 부탁해 보는 건 어때요?”박연희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정말 마음이 여렸다면 오늘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진작에 동의해 줬겠죠.”비록 같은 도시에 있었지만 박연희는 세심하게 모든 물건을 정리해서 쌌다. 그녀는 장씨 아주머니도 함께 조은혁의 아파틍에 보냈다. 조민희가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입지도 못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장씨 아주머니가 눈물을 금치 못하며 박연희를 향해 맹세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는 한 민희가 굶은 일은 없을 거예요! 가끔 문안도 오실거니 민희도 힘들지 않을 거예요.”박연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문 앞에 와있던 조은혁은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박연희 손에 든 캐리어를 받아 들고 한 손으로 조민희를 안아 들며 부드럽게 말했다.“아빠랑 집에 가자!”조민희도 그를 매우 잘 따랐다.민희가 조은혁의 목을 껴안으며 동글한 눈동자로 박연희를 보며 말했다.“엄마... 같이... 민희는 엄마도...”박연희는 눈물을
조은혁이 손바닥으로 그녀를 감쌌다.그의 검은 눈동자는 박연희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그녀를 한번 또 한 번 건드렸다. 가끔 견딜 수 없었던 박연희의 작은 콧방울이 윙윙거리며 떨려 나는데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그녀와 자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박연희는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고개를 살짝 젖히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왜 울어!”조은혁이 다가와 그녀의 눈물에 가볍게 입술을 포갰다.“하와이에 있을 때는 좋았잖아. 우린 분명 딱 한 번 했는데 넌 두 번이나 절정에 이르렀고.”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연희의 손이 매섭게 그의 뺨을 스쳤다.얼굴이 화끈거리며 아파 났다.간의 부위는 더욱 둔한 통증이 밀려왔다.그러나 조은혁은 무심코 그 부위를 살짝 스쳐 지난 듯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한편, 박연희는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고 지그시 눈을 감은 뒤, 산산조각이 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조은혁 씨, 당신 또 이러면 나 다시는 여기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 강요하지 마요.”“강요하지 않아.”조은혁은 박연희를 일어나 앉히기 위해 가볍게 몸을 옮겼다.옷이 흐트러지고 단정하게 걷어 올린 검은 머리카락도 전부 흩어지며 능멸의 아름다움이 그녀의 온몸에 떨치고 있었다. 박연희는 침대 옆에 기대어 손가락을 떨며 옷을 정리했지만 하염없이 떨려 나는 손가락은 쌀알만 한 단추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그러자 조은혁이 다가와 박연희의 손을 잡고 그녀를 대신하여 단추를 잘 채워주었다.그는 그녀의 매혹적인 볼륨을 바라보며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고 목젖은 절로 움찔거렸다.그 모습을 눈치챈 박연희가 다급히 자리에서 도망쳐 나왔다.밖으로 뛰쳐나가던 박연희는 마침 장씨 아주머니와 마주치게 되었고 장씨 아주머니는 유경험자로서 단번에 안에서 일어난 일을 짐작하고는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읊조렸다.“대표님은 정말 짐승만도 못하네요.”박연희의 손가락은 아직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그녀는 가방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더니 장씨
물도 없이 허겁지겁 진통제를 삼켰고 약을 삼키는 순간은 사실 더 아팠지만 조금 있으니 통증도 많이 완화되었다.통증이 완화되고 그의 검은 눈동자에도 다시 생기가 감돌았다. 그는 그녀의 무너진 모습을 바라보며 묵묵히 차 문을 열었다.“타. 데려다줄게.”“저 혼자 운전할 수 있어요.”“박연희, 말 들어.”이 한 마디는 마치 신혼 때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녀는 그를 오빠라고 불렀고... 그녀의 일이라면 전부 조은혁이 결정해주니 그녀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다만.그것도 결국 이별로 끝을 맺지 않았는가.조은혁은 차 문을 당겨 박연희를 강제로 밀어 넣은 뒤 곧 다른 쪽으로 돌아 운전석으로 향했다.차에 올라탄 뒤 그는 또 차 안의 온도를 높이고 그녀더러 젖은 옷을 벗도록 하였다.그러나 박연희는 두 팔로 몸을 감싸 안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됐어요. 어차피 멀지도 않은데.”조은혁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그가 가속 페달을 밟자 하얀색 BMW가 큰 빗줄기를 뚫고 심씨 집안 저택 쪽으로 향했다. 비가 많이 오는지라 조은혁은 매우 느리게 운전했고 도로를 달리고 있는 하얀색 차는 마치 회색빛의 물 막을 뚫고 다른 세계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그리고 그 세계에는 오직 두 사람, 조은혁과 박연희만이 있을 뿐이다.다른 사람 한 명 없이, 은혜와 원한 하나 없고 상처와 과거도 없는 그저 그런 세계.콧방울이 계속하여 붉게 타오르며 박연희는 얼굴을 돌렸다... 그렇게 차 안에는 침묵과 슬픔,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사랑과 미움, 어리석음과 원망만이 남았을 뿐이다.한 시간 후, 조은혁은 박연희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오후에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며 하늘과 땅 사이에 기괴한 빛이 나타나 두려운 기색을 띠었다.차가 천천히 멈춰서고 박연희는 차에 앉아 낮고 쉰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도 인정사정없는 것은 아니었다.“차 가지고 돌아가세요. 차는 나중에 제가 가지러 갈게요.”하지만 조은혁은 필요 없다며 거절했다.그는 우산을
심씨 저택 안.박연희가 홀에 들어서자 송씨네 세 식구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 방금 그들 모두 조은혁을 보았기 때문이다.그중 송도윤의 어머니인 윤시연은 분명 기분이 나빠진 모양이다. 하여 그녀는 일부러 날카로운 어투로 쏘아붙이며 불만스럽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박연희 씨, 우리 송씨 가문은 진심으로 당신에게 혼담을 꺼내기 위해 왔습니다. 당신이 우리 도윤이에 대해 의견이 있다면 괜찮지만 알 수 없는 남자와 함께 어울려 우리 도윤이를 망치게 둘 순 없죠.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박연희는 그 선물들에 시선을 내리깔고 매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우선, 조은혁 씨는 알 수 없는 남자가 아닙니다. 제 전남편이죠. 그리고 저는 송도윤 씨와 이미 헤어진 지 오래고 혼담은 더더욱 없습니다... 이것들은 전부 가져가세요. 저는 선물을 원하지도 않았고 송도윤 씨와 재결합하지도 않을 겁니다.”듣자 하니 체면이 더욱 구겨진 그녀는 언성을 높여 더욱 신랄하게 말을 퍼부었다.“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 도윤이가 당신을 받아준다는 건 당신의 영광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처럼 두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가 어디 가서 좋은 가정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박연희가 막, 말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심지철이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연희라면 사모님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당신 집안의 마마보이나 잘 관리하시죠. 그게 더 중요해 보이는데. 우리 집 연희는 멀쩡하게 잘살고 있고 심씨 집안과 혼담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이쪽부터 저쪽까지 늘어서니까요.”심지철이 이토록 무례한 말투로 선을 넘는 것은 처음이었다.윤시연은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고 한참 후에야 넋을 잃은 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어르신, 어떻게 바깥 여자 때문에...”그 순간, 윤시연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심지철이 컵을 내동댕이쳐 박살 내고 말았다.그는 입구를 가리키며 송씨네 세 식구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당장 꺼져! 썩 꺼지지 못해?”윤시연은 무어라 말을 더하고 싶었지
박연희도 더 이상 선을 보지 않았다.하지만 그렇다고 조은혁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조은혁은 조민희를 데리고 살았지만 그의 형편은 정말 좋은 편은 아니다. 그는 오랜 시간을 사업에 투자했고 그의 간은 줄곧 아프고 불편했다. 많은 진통제를 처방받았지만 의사는 그에게 휴식을 취하며 몸을 보양할 것을 권했다.하지만 그는 늘 괜찮다며 제안을 거절했다.병을 달고 일할 때, 그는 늘 그날 심씨 저택에서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고 또한 과거에는 분명 박연희에게 여러 가지 여자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현재의 그는 박연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줄 수 없다.하여 그는 필사적으로 돈을 벌었고 아무리 작은 프로젝트라도 모조리 받아들였다.밤이 되어도 조은혁은 여전히 일에 몰두했고 장씨 아주머니는 과거를 떠나서 현재의 그의 모습은 확실히 조금 안타까웠다. 그녀는 설탕물과 한 그릇과 계란 하나를 삶아서 조은혁의 작은 책상 위에 내려놓고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뭐 좀 드시고 일하세요.”조은혁도 장씨 아주머니의 마음을 받아들였다.그는 노트북을 덮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장씨 아주머니는 그의 옆에 앉아 그를 나무랐다.“대표님께서 돈을 더 벌어 사모님을 잘 대해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급한 일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사모님도 지금도 돈이 부족하지 않으니 대표님은 건강을 잘 챙기셔야죠. 속담에 청산만 남아있으면 땔감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조은혁의 손이 순간 멈칫하더니 그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장씨 아주머니 말도 일리가 있지만 그는 집에서 쉬고 은서, 그의 여동생에게 회사를 전부 맡길 수는 없다...그는 4년이라는 계획을 세웠다. 4년 동안 그는 JH 그룹을 원래 규모로 복원할 것이다.그리고 그 자신에 대해서 말하자면...어쩌면 그때의 그는 이미 모든 기름이 다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조은혁은 습관적으로 담배 한 개비를 만지작거리다가 장씨 아주머니에게 빼앗겨 담배는 두 동강이 나
그 순간, 무언가가 굴러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탁자 위에 놓여있던 물컵이었다.그 소리에 조민희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고 그녀는 멍하니 땀투성이가 되어 아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조민희는 작은 침대에서 힘겹게 일어나 아빠 팔을 힘껏 껴안고 어른 흉내를 내면서 호호 불어주었다. 몇 번 호호 해 주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이다... 그토록 말랑한 어린 녀석이 마치 깃털처럼 그의 마음을 스쳤다.조은혁이 살며시 그녀를 끌어안았다.조민희를 품에 끌어안은 조은혁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고 오직 조은혁 자신만이 왜 조민희를 그토록 계속 남겨두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박연희를 되돌리고 싶은 것 외에도... 그는 지난날의 후회와 아쉬움을 달래고 싶었다.그들의 태어나지 못한 은희.조은혁은 손을 부르르 떨며 핸드폰을 꺼내 김 비서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떨릴 정도로 통증이 엄청나 결국 실수로 박연희에게 전화를 걸고 말았다...그는 벽에 기대어 숨을 헐떡였다.조민희는 박연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웅얼거리며 계속 소리쳤다.“아쁘아! 아쁘아!”상황을 알게 된 박연희는 깊은 밤에 다급히 달려왔다.도착했을 때, 조은혁의 상태는 이미 괜찮아진 뒤였다.그는 조민희를 안고 싱글 침대에서 잠이 들었고 옆으로 누운 그의 품속에서 어린 조민희가 작은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그녀의 작은 손은 그의 허리에 걸치고 있었고 작은 손톱은 분홍빛으로 매우 귀여웠다.박연희는 말없이 그들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그녀의 마음은 끝없는 슬픔에 잠겼다.조민희가 그의 손에 있는 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만날 것이다. 그녀는 절대 아이를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조은혁은 꿈속에서 헤매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박연희는 조금 망설였지만 조심스럽게 그의 이마에 손을 대보았다. 열은 나지 않았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그의 주머니에서 미끄러져 나온 진통제를 보게 되었다.박연희는 그 진통제를 가지고 와서 한참 동안 바라
박연희가 살며시 눈을 감았다.“우리 사이에 이러는 건 합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은혁 씨, 이거 놔요.”하지만 조은혁은 그녀를 놓아주려는 의도가 없었다.그녀의 반짝이는 흰 비단 위의 정교한 팔 라인, 두 사람은 그렇게 짙은 회색 침대 시트에 감겨버렸고... 여자의 간간한 몸부림도 결국 잠자리에서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이 온몸을 포개고 약간의 기복을 따라 출렁이며 매우 유혹적인 매력을 자랑했다.조은혁은 검은 눈으로 섹시하게 그녀를 노려보며 천천히 다가와 그녀의 입술을 찾으며 그녀에게 깊은 키스를 퍼부었다.그는 단 1초도 눈을 감지 않고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보았고 그녀의 표정 변화 하나하나를 관찰했다. 그녀가 가늘고 부드러워졌을 때, 그가 몸을 반쯤 받치자 온몸의 근육이 한곳에 뒤엉켜 분기를 일으켰고 다른 한 손바닥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받쳐 자신의 몸을 향하게 하여 그녀의 탄성을 자아냈다.눈꺼풀을 내리 드리우면 분명 득의양양했지만 그렇게 연약해 보일 수가 없다.조은혁은 또 그녀와 목을 맞대고 키스를 이어갔다.창밖에는 파초잎이 밤빛 아래 있어 신선하고 연한 빛깔을 띠었다.키스를 한 후 그의 어깨에 쓰러지듯 엎드린 박연희는 기복을 멈출 수가 없었고 또 한편으로 마음속의 가책을 느꼈다...“무슨 생각해?”조은혁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여전히 그녀의 가는 허리를 잡고 있었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저 그렇게 맞대고 앉아 그녀를 내려다보았고 그의 눈빛 속에는 오로지 흐트러진 푸른 실크와 느슨한 옷깃만이 보였다.조은혁은 호흡이 좀 흐트러졌다.좁은 침실 안에는 어린 조민희의 우유 냄새가 가득하여 남녀 간의 정과 욕망을 희석했다.박연희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그녀는 말하고 싶지 않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때는 몸부림치며 침대에서 내려온 것이 오히려 더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았다. 결국,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그의 어깨에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조은혁도 어찌 됐든 여자를 잘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