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의사가 정색하며 말했다.“혈연관계가 없다면 매칭 가능성은 0입니다.”“검사해보죠.”조은혁이 박연희를 보며 말했다.박연희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저도 해보죠.”심철산 부부도 검사를 해보고 싶다고 나섰다. 민희가 심씨 가문의 핏줄은 아니지만 박연희가 친혈육으로 여긴 이상 민희는 심씨 가문의 자식이었다.결국 심지철과 서지앙까지 검사를 했다.검사 결과는 3일이나 기다려야 했다.의사는 그들에게 아이의 상태가 위험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고, 그들의 골수는 가능성이 희박하니 당장 하와이로 가서 아이의 직계 가족을 찾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밤이 되고 비가 끊임없이 내렸다.박연희는 병실 바닥 창가에 서서 창밖으로 누렇게 시든 바나나 잎이 빗물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유리에 옅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그녀는 이미 하씨 가문과 연락이 닿았고 그들은 조은혁을 만나려 했다.과거는 가슴을 짓누르는 큰 바위처럼 그녀의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병상 곁에서 심지철은 직접 손녀를 극진히 돌보고 있었다.그는 하민희의 손을 잡고는 박연희에게 말했다.“민희 병 나으면 가서 이름부터 바꿔. 내 성을 따라 심 씨로 바꿔. 그러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거야.”박연희는 가볍게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그녀는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하씨 가문을 상대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하씨 가문의 누구와도 골수가 맞지 않다면 민희는 어떡해야 할까?깊은 밤, 그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일주일 동안 그녀는 눈에 띄게 야위었다.심지철은 안타까운 마음에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기왕 하와이에 갈 거면 오늘 밤 짐 싸서 떠나. 여긴 나랑 아주머니가 보고 있으면 되니까 경서랑 같이 가. 그럼 도윤이도 안심할 거고.”박연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아침에 돌아오면 제가 말할 거예요.”심지철은 애틋하게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가서 푹 쉬어. 이 아빠가 있는데 뭔 걱정이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며 마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결국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 자신의 손을 뺐다.“우리 안 맞는 것 같아. 헤어져.”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송도윤은 잠시 멍해졌다가 일어나서 쫓아가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다급해진 그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내 말이 틀렸어? 늘 내가 양보했어. 나도 결혼한 적 있지만 우리 사이를 방해할 아이는 없다고. 하지만 넌 두 명이나 되잖아. 연희야, 이성적으로 한 번 선택해 봐.”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헤어져.”송도윤도 갑자기 안색이 차가워졌다.“박연희, 후회하지 마.”그녀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차로 가서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차에 탔을 때, 그녀는 가슴이 울렁거렸다.어쨌든 반년을 만났으니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지만 그녀는 송도윤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한참 후에야 그녀는 페달을 밟고 떠났다.그녀가 심씨 저택에 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이미 그녀가 송도윤과 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민희가 아픈 상황이라 식사할 때 모두 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점심시간에 박연희가 짐과 여권을 챙겨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최민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녀의 짐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식사 전에 송씨 가문 사람들이 전화 와서 진짜 헤어질 마음인지 물어보더라고요. 그쪽 태도가 너무 거만해서 내가 대신 그렇다고 해버렸어요. 난 언제나 아가씨 편이에요. 비록 송도윤이 모든 면에서 뛰어나고 여태까지 두 사람 잘 지내왔지만 중요한 순간에 사람 인품을 알 수 있는 거잖아요. 민희한테 진심으로 대해 주지 않는데 두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차라리 일찍 끊는 게 맞아요.”박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대답했다.최민정은 참지 못하고 떠보듯 물었다.“조은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진짜 민희 친아버지라도 된 것처럼 여기저기 바삐 움직이던데.”박연희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박연희는 그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떨었다.“당신이랑 상관없잖아.”그녀가 발버둥 쳤지만 남자는 더 큰 힘으로 그녀를 억눌러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안에 한 가닥의 기대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박연희는 그의 뜻을 알아채고 눈을 늘어뜨렸다.“그래요. 헤어졌어요! 하지만 그건 우리 사이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아요. 아니,우리는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죠. 조은혁 씨... 우리는 영원히 끝났어요.”엘리베이터 안은 고요했고 그의 가쁜 숨결만 있었다.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받쳐 든 팔은 얇은 셔츠 천을 사이에 두고 근육이 튀어 올랐다. 긴장의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나간 심경서가 다시 돌아와 입구에 서 있었다.“도착했어요.”두 사람은 곧 떨어졌고 심경서의 눈빛은 헤아릴 수 없었다....이 해프닝으로 박연희는 밥을 먹으러 내려가지 않았다.밤 8시, 심경서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그가 음식을 가지고 와서 그녀와 함께 먹으니 설날 저녁도 같이 먹는 셈이었다.두 사람은 묵묵히 있었다.잠시 후, 심경서가 박연희의 그릇에 담긴 미동도 하지 않은 음식을 보더니 물었다.“무슨 생각 해요? 방금... 그 사람 때문에?”“아니에요!”박연희는 손에 든 포크로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헤집으며 말했다.“걱정하고 있었어요! 하씨 가문 사람도 맞는 사람이 없을까 봐.”심경서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럴 리 없을 거예요. 민희 몸에 있는 부적 못 봤어요? 그건 할아버지가 특별히 서 비서에게 시켜 보방사에 가져온 거예요. 아주 신통하다고 들었어요.”박연희는 그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고마워요.”“송도윤 씨는요? 조금의 미련도 없는 거예요?”박연희는 어리둥절해 하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그리하여 심경서는 그녀가 송도윤과 새로운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사랑이든 미움이든 조은혁의 자리가 있으리라 생각했다.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녀에게
그때 하인우는 참혹하게 죽었다.그녀도 두 어르신과 급히 한 번 만났을 뿐 후에 그녀는 베를린으로 갔다.다시 만난 것은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이었다.조은혁은 그녀가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연희야, 네 잘못 아니야!”박연희는 여전히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그녀는 두 어르신을 바라보며 땅바닥에 엎드렸다.“다 제 잘못입니다. 만약 두 고인의 영혼이 있다면 민희가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인우 오빠를 봐서라도 아이를 살려주세요.”하인우의 부모는 그저 울기만 했다.그들도 아이를 구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의 제약을 받아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이때 하인아가 나섰다.그녀는 박연희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쏘아 붙였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인우 오빠라고 불러? 당신만 아니었다면 우리 오빠 손이 부러지지도 않았고, 오빠랑 새언니가 비참하게 죽지도 않았어.”박연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하인아는 악독한 눈으로 박연희의 뺨을 때리려고 손을 뻗었다.그녀는 자신이 조은혁에서 겪었던 좌절을 이 따귀로 모조리 갚고, 그녀를 발밑에 세게 밟아야만 자신이 잃었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누군가 그녀의 손을 막았다.조은혁의 검고 어두운 눈동자에는 노기가 찼다.“이게 무슨 짓이죠?”하인아는 손을 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그녀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왜, 마음 아파요? 마음 아프면 당신이 무릎 꿇던가. 무릎 꿇고 스스로 손가락 세 개를 잘라 내! 손가락 하나에 목숨 하나. 우리 오빠랑 새언니... 그리고 우빈이 한쪽 다리까지!”조은혁은 그녀의 뼈를 부러뜨릴 뻔했다.하인아의 사랑은 원망으로 변했다.설령 지금 이 남자가 초라해져도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와 임우빈은 잘 지낼 것이고 그녀에게 아직 좋은 미래가 있었다.박연희는 얼굴을 들고 조은혁을 바라보았다.그는 하인우를 싫어하고, 민희와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 송
“안돼!”하인우의 어머니가 처량하게 소리를 지르더니 그에게 다가가 뺨을 세게 때렸다.그녀는 그 칼을 빼앗아 품에 꼭 껴안고 통곡했다.“만약 인우가 살아 있다면 절대 이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 우리 인우가 얼마나 순하고 착한 아이인데. 절대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을 자르라고 하지 않았을 거야! 우리 인우는 절대... 오직 하늘에서 자기 딸이, 나의 손녀가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기도하고 있겠지.”“손가락 세 개를 자르면 인우가 살아 돌아와? 내 손녀를 구할 수 있는가?”...하인우의 어머니는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제발 부탁이네. 우리 민희를 위해 다들 검사 한 번 해주게. 인우 체면을 봐서라도 인우 딸에게 살길을 열어줘야지. 나랑 인우 아빠는 이미 저세상 길에 오를 사람인데 무슨 원한을 내려놓지 못하겠는가.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그녀는 여러 사람을 향해 끊임없이 절을 했다.노년에 아들을 잃고 원래 건강이 좋지 않은데 지금은 봄바람에 더욱 휘청거려 안쓰러워 보였다.사람은 역시나 감정의 동물이었다.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제일 먼저 검사하겠네!”그러자 옆 사람도 앞다투어 말했다.“나도 하겠네. 인우는 우리 혈육이야. 이 큰아버지가 안 구하면 누가 구하겠어? 내 골수가 맞다면 내가 기증하겠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증인이야!”“나도!”“나도! 내 가죽이 제일 두꺼워!”...삽시간에 하씨 가족들은 모두 하인우의 어머니를 지지하기 시작했고 하인아는 조급해 났다.그녀는 골수를 기증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우리 오기 전에 약속했잖아요. 민희 양육권 되찾고, 저 사람들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내자고. 다들 잊은 거예요?”하인우의 어머니가 울며 말했다.“민희가 연희 양 옆에 있는 것도 인우 소원이야.”하인아는 화가 난 죽을 지경이었다.“큰어머니, 정신 차려요! 이렇게 쉽게 용서하자고요? 오빠랑 새언니를 죽인 범인이에요! 그리고 우빈이를 건물에서 뛰어내려 다리를 부러뜨리게 한 장본인이고!”하씨 가족
박연희는 바로 문을 열었다. 그녀의 눈에는 기대가 가득했고 심장은 너무 긴장된 나머지 튀어나오려는 것 같았기에 말하는 목소리도 살짝 떨려왔다.“은혁 씨, 결과가 어떻게 됐어요? 적합한 결과가 나왔어요?”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들린 서류봉투를 박연희에게 건네주는 조은혁의 검은 눈동자에는 슬픔이 비쳐있었다. 박연희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녀는 이런 충격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문틀을 잡고 겨우 중심을 잡았다. 하씨 가문의 열 명이 넘는 친척들 가운데서 적합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민희는 어떻게 되는가? 어린 민희는... 아직도 병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 이때 B시에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민희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박연희는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 제가 실례를 범했어요.”박연희는 창가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아이가 자신이 우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다정하게 어르고 달랬다. 그쪽에서는 장숙자가 민희에게 말을 가르쳤고 민희는 연약하지만 말랑한 말투로 말했다.“엄마, 민희는 엄마가 보고 싶어요.”“엄마도 민희 보고 싶어.”입을 열자마자 박연희의 목소리는 흐느낌이 더 심해졌다. 전화를 끊고 통유리창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이런 결과를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했다. 더욱이 그녀는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민희의 천진난만한 눈빛을 어떻게 마주하여야 하며 하인우 부부한테 어떻게 얘기를 했으면 좋을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호텔 방안은 고요했고 조은혁은 조용히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는 박연희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안다. 박연희에게 다가가는 그의 발걸음 소리는 두꺼운 러그에 파묻혀 박연희가 알아채기도 전에 조은혁은 이미 그녀의 뒤로 와서 떨리는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살며시 잡았다.“연희야, 울지 마. 그만 울어.”박연희는 갑자기 뒤돌았고 가까
“내가 못할 줄 알아요?”골격이 두드러진 조은혁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마치도 하인아의 뼈마디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곧 부서질 듯했다...하인아는 검붉은 색으로 질린 얼굴로 발버둥을 쳤다. 그녀의 목구멍에서는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조건이 있어요. 들어주면 검사하러 갈게요.”조은혁은 바로 하인아를 풀어주었고 그녀는 목을 붙잡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진정이 된 후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알약을 하나 꺼내 조은혁에게 건네면서 아름다운 눈을 접어 웃으며 교태를 부렸다.“이걸 먹어요. 그럼 병원으로 갈게요.”조은혁은 남자였고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하인아의 몸에서 남녀가 즐긴 쾌락의 냄새를 맡았고 그녀가 지금은 완전히 타락하여 돈을 위해 몸을 판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 하인아가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라면 의심할 바가 없이 남자의 흥분을 돕는 물건일 것이다. 하인아는 조은혁의 추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역시 하인아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박연희를 위해 그렇게 몸을 아낀다면서요? 이걸 먹으며 아마 참지 못할 거예요. 그때가 되면 은혁 씨는 몸을 주체못하고 여자와 그 일을 하려고 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당신이 아직도 박연희를 기다리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조은혁은 충혈된 두 눈으로 약을 쪼개서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하인아를 택시에 태웠고 하인아는 조은혁이 정말 그것을 먹을 줄 몰랐기에 깜짝 놀랐다. 후회막심한 하인아는 차창을 두드리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조은혁 씨, 아직도 당신이 예전의 그 조은혁인 줄 알아요? 나는 병원을 가지 않을 거고 그 아이와 적합성 검사도 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왜요? 내가 왜 그 애한테 골수를 이식해줘야 해요?”조은혁은 단번에 하인아의 머리를 잡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험악하게 말했다.“말을 어긴다면 지금 당장 당신의 숨통을 끊어버릴 거예요.”하인아는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알고 있던 조은혁은 교만하고 위험했지만 지금 눈앞에 있
문이 열리자 흐트러진 조은혁의 옷매무새와 남자의 욕구가 가득 서린 얼굴이 보였고 그의 검은 눈동자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박연희는 본능적으로 물러나며 도망가려고 했지만, 조은혁이 더 빨랐다. 박연희가 반응하기도 전에 조은혁은 이미 그녀의 얇은 손목을 끌어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고 그녀를 문짝에 거칠게 밀쳤다. 그의 몸은 달궈진 쇳덩이처럼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다. 조은혁의 몸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은 박연희의 옷을 적셔서 찐득하게 했지만, 박연희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박연희는 순진한 여자아이가 아니었고 그가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난감한 듯 얼굴을 피했다.“가서 찬물로 샤워하고 좀 진정해요.”“나는 진정하고 싶지 않아.”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관능적인 남자의 매력이 묻어있었고 그는 한쪽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조은혁은 손이 컸기에 손바닥이 그녀의 얼굴 전체를 거의 다 가렸기에 시각적으로 무척 자극을 주었다.조은혁은 박연희의 옷을 벗기지 않았고 더듬으며 그녀의 얇은 손목을 찾아 한 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어깨에 기대서 깊은 호흡을 하며 극도로 억제하고 있었다. 박연희의 몸도 따라서 이따금 떨고 있었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도 따라서 떨려왔다.“은혁 씨...”조은혁은 작게 대답했는데 무심한 척했지만,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다. 박연희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빨개졌고 마치 그녀를 한입에 삼키려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는 천천히 그녀를 탐하고 있었다. 그는 박연희의 가녀린 목덜미를 야금야금 물면서 그녀의 나른한 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안돼요...”박연희는 그를 밀쳐냈다. 그녀의 가슴은 크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고 손은 문을 세게 쥐고 있었다. 빠르게 뒤돌아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지만, 몸은 이미 조은혁의 품에 안겨져 있었고 두 사람의 몸이 마침 맞물려있었다. 두 남녀 사이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타올랐다...박연희는 고개를 들고 울음이 섞인 가녀린 음성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