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하인우는 참혹하게 죽었다.그녀도 두 어르신과 급히 한 번 만났을 뿐 후에 그녀는 베를린으로 갔다.다시 만난 것은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이었다.조은혁은 그녀가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연희야, 네 잘못 아니야!”박연희는 여전히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그녀는 두 어르신을 바라보며 땅바닥에 엎드렸다.“다 제 잘못입니다. 만약 두 고인의 영혼이 있다면 민희가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인우 오빠를 봐서라도 아이를 살려주세요.”하인우의 부모는 그저 울기만 했다.그들도 아이를 구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의 제약을 받아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이때 하인아가 나섰다.그녀는 박연희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쏘아 붙였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인우 오빠라고 불러? 당신만 아니었다면 우리 오빠 손이 부러지지도 않았고, 오빠랑 새언니가 비참하게 죽지도 않았어.”박연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하인아는 악독한 눈으로 박연희의 뺨을 때리려고 손을 뻗었다.그녀는 자신이 조은혁에서 겪었던 좌절을 이 따귀로 모조리 갚고, 그녀를 발밑에 세게 밟아야만 자신이 잃었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누군가 그녀의 손을 막았다.조은혁의 검고 어두운 눈동자에는 노기가 찼다.“이게 무슨 짓이죠?”하인아는 손을 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그녀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왜, 마음 아파요? 마음 아프면 당신이 무릎 꿇던가. 무릎 꿇고 스스로 손가락 세 개를 잘라 내! 손가락 하나에 목숨 하나. 우리 오빠랑 새언니... 그리고 우빈이 한쪽 다리까지!”조은혁은 그녀의 뼈를 부러뜨릴 뻔했다.하인아의 사랑은 원망으로 변했다.설령 지금 이 남자가 초라해져도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와 임우빈은 잘 지낼 것이고 그녀에게 아직 좋은 미래가 있었다.박연희는 얼굴을 들고 조은혁을 바라보았다.그는 하인우를 싫어하고, 민희와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 송
“안돼!”하인우의 어머니가 처량하게 소리를 지르더니 그에게 다가가 뺨을 세게 때렸다.그녀는 그 칼을 빼앗아 품에 꼭 껴안고 통곡했다.“만약 인우가 살아 있다면 절대 이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 우리 인우가 얼마나 순하고 착한 아이인데. 절대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을 자르라고 하지 않았을 거야! 우리 인우는 절대... 오직 하늘에서 자기 딸이, 나의 손녀가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기도하고 있겠지.”“손가락 세 개를 자르면 인우가 살아 돌아와? 내 손녀를 구할 수 있는가?”...하인우의 어머니는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제발 부탁이네. 우리 민희를 위해 다들 검사 한 번 해주게. 인우 체면을 봐서라도 인우 딸에게 살길을 열어줘야지. 나랑 인우 아빠는 이미 저세상 길에 오를 사람인데 무슨 원한을 내려놓지 못하겠는가.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그녀는 여러 사람을 향해 끊임없이 절을 했다.노년에 아들을 잃고 원래 건강이 좋지 않은데 지금은 봄바람에 더욱 휘청거려 안쓰러워 보였다.사람은 역시나 감정의 동물이었다.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제일 먼저 검사하겠네!”그러자 옆 사람도 앞다투어 말했다.“나도 하겠네. 인우는 우리 혈육이야. 이 큰아버지가 안 구하면 누가 구하겠어? 내 골수가 맞다면 내가 기증하겠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증인이야!”“나도!”“나도! 내 가죽이 제일 두꺼워!”...삽시간에 하씨 가족들은 모두 하인우의 어머니를 지지하기 시작했고 하인아는 조급해 났다.그녀는 골수를 기증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우리 오기 전에 약속했잖아요. 민희 양육권 되찾고, 저 사람들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내자고. 다들 잊은 거예요?”하인우의 어머니가 울며 말했다.“민희가 연희 양 옆에 있는 것도 인우 소원이야.”하인아는 화가 난 죽을 지경이었다.“큰어머니, 정신 차려요! 이렇게 쉽게 용서하자고요? 오빠랑 새언니를 죽인 범인이에요! 그리고 우빈이를 건물에서 뛰어내려 다리를 부러뜨리게 한 장본인이고!”하씨 가족
박연희는 바로 문을 열었다. 그녀의 눈에는 기대가 가득했고 심장은 너무 긴장된 나머지 튀어나오려는 것 같았기에 말하는 목소리도 살짝 떨려왔다.“은혁 씨, 결과가 어떻게 됐어요? 적합한 결과가 나왔어요?”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들린 서류봉투를 박연희에게 건네주는 조은혁의 검은 눈동자에는 슬픔이 비쳐있었다. 박연희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녀는 이런 충격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문틀을 잡고 겨우 중심을 잡았다. 하씨 가문의 열 명이 넘는 친척들 가운데서 적합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민희는 어떻게 되는가? 어린 민희는... 아직도 병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 이때 B시에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민희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박연희는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 제가 실례를 범했어요.”박연희는 창가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아이가 자신이 우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다정하게 어르고 달랬다. 그쪽에서는 장숙자가 민희에게 말을 가르쳤고 민희는 연약하지만 말랑한 말투로 말했다.“엄마, 민희는 엄마가 보고 싶어요.”“엄마도 민희 보고 싶어.”입을 열자마자 박연희의 목소리는 흐느낌이 더 심해졌다. 전화를 끊고 통유리창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이런 결과를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했다. 더욱이 그녀는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민희의 천진난만한 눈빛을 어떻게 마주하여야 하며 하인우 부부한테 어떻게 얘기를 했으면 좋을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호텔 방안은 고요했고 조은혁은 조용히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는 박연희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안다. 박연희에게 다가가는 그의 발걸음 소리는 두꺼운 러그에 파묻혀 박연희가 알아채기도 전에 조은혁은 이미 그녀의 뒤로 와서 떨리는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살며시 잡았다.“연희야, 울지 마. 그만 울어.”박연희는 갑자기 뒤돌았고 가까
“내가 못할 줄 알아요?”골격이 두드러진 조은혁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마치도 하인아의 뼈마디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곧 부서질 듯했다...하인아는 검붉은 색으로 질린 얼굴로 발버둥을 쳤다. 그녀의 목구멍에서는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조건이 있어요. 들어주면 검사하러 갈게요.”조은혁은 바로 하인아를 풀어주었고 그녀는 목을 붙잡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진정이 된 후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알약을 하나 꺼내 조은혁에게 건네면서 아름다운 눈을 접어 웃으며 교태를 부렸다.“이걸 먹어요. 그럼 병원으로 갈게요.”조은혁은 남자였고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하인아의 몸에서 남녀가 즐긴 쾌락의 냄새를 맡았고 그녀가 지금은 완전히 타락하여 돈을 위해 몸을 판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 하인아가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라면 의심할 바가 없이 남자의 흥분을 돕는 물건일 것이다. 하인아는 조은혁의 추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역시 하인아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박연희를 위해 그렇게 몸을 아낀다면서요? 이걸 먹으며 아마 참지 못할 거예요. 그때가 되면 은혁 씨는 몸을 주체못하고 여자와 그 일을 하려고 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당신이 아직도 박연희를 기다리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조은혁은 충혈된 두 눈으로 약을 쪼개서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하인아를 택시에 태웠고 하인아는 조은혁이 정말 그것을 먹을 줄 몰랐기에 깜짝 놀랐다. 후회막심한 하인아는 차창을 두드리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조은혁 씨, 아직도 당신이 예전의 그 조은혁인 줄 알아요? 나는 병원을 가지 않을 거고 그 아이와 적합성 검사도 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왜요? 내가 왜 그 애한테 골수를 이식해줘야 해요?”조은혁은 단번에 하인아의 머리를 잡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험악하게 말했다.“말을 어긴다면 지금 당장 당신의 숨통을 끊어버릴 거예요.”하인아는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알고 있던 조은혁은 교만하고 위험했지만 지금 눈앞에 있
문이 열리자 흐트러진 조은혁의 옷매무새와 남자의 욕구가 가득 서린 얼굴이 보였고 그의 검은 눈동자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박연희는 본능적으로 물러나며 도망가려고 했지만, 조은혁이 더 빨랐다. 박연희가 반응하기도 전에 조은혁은 이미 그녀의 얇은 손목을 끌어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고 그녀를 문짝에 거칠게 밀쳤다. 그의 몸은 달궈진 쇳덩이처럼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다. 조은혁의 몸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은 박연희의 옷을 적셔서 찐득하게 했지만, 박연희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박연희는 순진한 여자아이가 아니었고 그가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난감한 듯 얼굴을 피했다.“가서 찬물로 샤워하고 좀 진정해요.”“나는 진정하고 싶지 않아.”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관능적인 남자의 매력이 묻어있었고 그는 한쪽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조은혁은 손이 컸기에 손바닥이 그녀의 얼굴 전체를 거의 다 가렸기에 시각적으로 무척 자극을 주었다.조은혁은 박연희의 옷을 벗기지 않았고 더듬으며 그녀의 얇은 손목을 찾아 한 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어깨에 기대서 깊은 호흡을 하며 극도로 억제하고 있었다. 박연희의 몸도 따라서 이따금 떨고 있었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도 따라서 떨려왔다.“은혁 씨...”조은혁은 작게 대답했는데 무심한 척했지만,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다. 박연희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빨개졌고 마치 그녀를 한입에 삼키려는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는 천천히 그녀를 탐하고 있었다. 그는 박연희의 가녀린 목덜미를 야금야금 물면서 그녀의 나른한 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안돼요...”박연희는 그를 밀쳐냈다. 그녀의 가슴은 크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고 손은 문을 세게 쥐고 있었다. 빠르게 뒤돌아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지만, 몸은 이미 조은혁의 품에 안겨져 있었고 두 사람의 몸이 마침 맞물려있었다. 두 남녀 사이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타올랐다...박연희는 고개를 들고 울음이 섞인 가녀린 음성을 내뱉었다.“
박연희는 거절했지만, 조은혁은 다가가서 살며시 세면대에서 그녀를 안아 내린 뒤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는 여전히 박연희의 옷을 벗기지 않았고 그저 뜨거운 물로 그녀의 몸을 씻어주고 손으로 그녀를 어루만졌다...두 사람 사이에는 뿌옇고 축축한 공기가 있었고 반년의 이별이 있었다. 조은혁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억제하는 모습이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먼저 그녀를 씻어준 후, 조은혁은 하얀 가운을 그녀에게 건넸다.“방에 가서 젖은 옷을 갈아입어. 내가 다 씻은 다음 얘기하자.”박연희의 몸은 계속 떨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운을 건네받았다. 조은혁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뒤돌아 두 손으로 욕실의 벽을 짚고는 뜨거운 물이 포식을 끝낸 이 몸뚱이를 마음대로 씻겨 내리도록 했다. 방금 조은혁은 박연희와 않았지만, 그 느낌은 그의 사지를 가로질렀다... 하여 그는 박연희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샤워를 마친 조은혁은 깨끗한 셔츠와 정장 바지로 갈아입었다. 가운을 갈아입은 박연희는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조은혁이 다가오자 박연희는 고개를 들고 그를 보며 물었다.“하인아를 찾으러 갔었어요?”박연희는 똑똑한 여자였기에 바로 알수 있었고 조은혁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박연희의 맞은편에 앉아 담배를 꺼내 들고 입에 물었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조은혁은 다시 고개를 들어 박연희를 보면서 낮게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데리고 가서 적합성 검사를 받았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잖아.”박연희가 낮게 말했다.“하인아 씨 성격에 적합하다고 해도 기증하지 않을 거예요.”조은혁의 검은 눈동자가 깊어졌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몇 년간의 부부생활을 했던 박연희는 그의 뜻을 바로 알아채고 깜짝 놀랐다. 분위기가 살짝 미묘해졌을 때, 조은혁은 B 시의 의사가 걸어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는 조은혁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주었다.“조은혁 씨, 정말 기적입니다! 은혁 씨의 견본이 환자와 적합하다고 결과가 나왔어요. 지금 바로 B시로 와서 골수 이식
구름이 걷히고 비가 멈췄다.두 사람은 서로 끌어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사실 한 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하지만 두 사람은 그 누구도 다시 할 생각이 없었다.그들은 그렇게 서로 말없이 껴안고 있으며 하민희가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은 몸과 영혼 모두 같은 주파수를 지니고 있었다.한참 지나자 땀도 식어갔다.조은혁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너랑 송도윤은...”조은혁은 박연희에게 송도윤과 어디까지 갔는지 묻고 싶었다.남자들은 그런 게 신경 쓰였다.목까지 차오르는 말이었지만 조은혁은 자신이 그럴 신분이 안 된다고 생각해 다시 말을 삼켰다. 하지만 박연희는 그가 묻고 싶은 말을 눈치챘다.박연희가 몸을 일으켜 소파 한쪽에 기대었다.가운으로 몸을 가렸지만 고문 살결과 붉은 자국은 가려지지 않았다.그녀가 눈을 내렸다. 기다란 속눈썹이 불빛 아래 촘촘한 그림자를 드리워 그녀의 얼굴에 세련된 느낌을 더해주었다. 박연희가 담담히 답했다.“은혁 씨, 오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부담 없이 한 행위라고 생각해 주세요. 오늘이 지나면 없던 일로 하는 거예요.”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박연희의 말을 들은 조은혁의 이마에 핏줄이 곤두섰다. 조은혁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하지만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었고, 그녀와 송도윤이 어디까지 갔는지 알 수 없었다.박연희가 싱겁게 웃으며 답했다.“제가 그 사람과 관계를 맺었든 안 맺었든 은혁 씨랑은 관계가 없잖아요. 은혁 씨, 우리 몸은 서로 자유로워요.”그녀의 말에 화가 난 조은혁이 거친 말을 내뱉었다.“방금 신나서 신음을 내던데 송도윤이 너를 만족시키지 못하나 봐?”“상관없잖아요.”박연희는 그에게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설명할 필요도 없는 사이였다.오늘 사건은 사고였고 앞으로 다시는 없을 일이었다. 박연희는 조은혁과 감정적으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가운을 걸치고 젖어
조은혁이 누구인가?모를 리가 없었다.그는 사실 박연희가 그와 관계 맺은 것을 후회한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도 자신의 태도로 조은혁에게 변한 것은 없다는 의지를 전했다.가는 내내 그녀를 바라보는 조은혁의 눈빛은 어둡기 그지없었다.그들은 서둘러 B시로 돌아갔고 집에 들를 틈도 없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주치의는 그들을 만나 골수 일치 여부를 확인했고 조은혁과의 개인적인 면담을 요청했다.조은혁이 멈칫했다.이어 그가 박연희와 심경서에게 말했다.“의사랑 얘기 나눌 테니까 먼저 가서 애 보고 있어. 며칠 동안 못 봤잖아.”박연희는 조은혁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심경서는 탐색의 눈빛으로 조은혁을 바라보았다.다른 사람들이 떠나고 조은혁이 문을 닫고 돌아서 의사를 바라보았다.“임 원장님, 할 말 있으시면 바로 말씀하세요.”임 원장이 머뭇거리다 말했다.“은혁 씨, 최근 건강검진 보고서를 봤습니다. 1년 전에 한 번 간을 기증한 적이 있더군요. 비록 새로운 간은 잘 자랐지만, 기타 수치는 골수 기증 지표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꼭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골수 기증 후 면역 체계가 균형을 잃는다면 은혁 씨의 건강은 피라미드처럼 갑자기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일 거예요. 그러니 이번의 기증은 큰 위험을 감수하셔야 합니다.”임 원장은 하민희가 조은혁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임 원장은 조은혁에게 다시 고려해 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결국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조은혁의 눈빛이 이글거렸다.“제가 기증하지 않으면요?”임 원장이 조용히 답했다.“적합한 골수는 기다리지 못한다면 반년도 못살 것이고 몇 달이 지나 적합한 골수를 찾는다고 해도 이식이 가능한 조건일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은혁 씨,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기증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제 아내에게 알리지 말아주세요.